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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년 독립자’ 그들이 홀로 선 이유
- 노년에 독립에 도전하는 이들이 있다. 20~30년 짊어졌던 책무, 스스로 옭아맨 관성, 혹은 삭막하고 답답한 도시 등 벗어나고자 하는 대상도 다양하다. ‘노년 독립자’들이 독립을 꿈꾸게 된 이유, 그 밖의 것들로부터 독립을 시도하게 된 계기와 이유를 들여다봤다. 노년과 독립, 두 단어의 조합이 낯설다면 MBN ‘나는 자연인이다’(이하 ‘자연인’) 프로그램을 떠올려보자. ‘야생 체험을 통해 삶의 의미를 깨닫는다’를 모토로 2012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이 프로그램은 중장년층 시청자의 ‘최애’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2020년에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TV 프로그램’ 순위에서 다큐멘터리로는 지상파와 비지상파 통틀어 최초로 1위에 오를 만큼 연령에 관계없이 폭넓게 사랑받고 있다. 노년 독립, 시초에 자연인이 있다 자연인들이 살던 세상을 떠나온 이유는 다양하다. ‘자연인’ 프로그램의 공동 MC인 윤택은 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연인의 유형을 몸이 아파서, 사업에 실패하거나, 주변 지인들에게 배신당해서,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거나, 자연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으로 나눴다. 사연은 제각기 다르지만 자연인들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일구며 살아간다. 친숙하면서도 진정성 있는 삶의 이야기와 그들의 행복한 모습은 시청자로 하여금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 고민하게 한다.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신동민 PD는 2019년 이달의 PD상 수상 소감으로 “시청자들의 로망을 간접적으로 실현해주는 부분이 있어 큰 호응을 보내주시는 것 같다”고 전한 바 있다. 프로그램 방영이 햇수로 10년이 되어가면서 ‘자연인’ 프로그램을 보고 자연인이 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화면 속 자연인들이 선배로서 자연인 꿈나무들을 양성하는 모양새다. 게다가 710만 명에 육박하는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를 앞두고 있는 상황. 다수의 중년이 은퇴 후 귀농·귀촌을 꿈꾸는 걸 고려한다면, 자연인이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하는 목소리가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시니어 1인 가구 “간섭 싫어, 연락 안 해” 실제로 시니어 1인 가구는 꾸준히 증가 추세를 보인다. 통계청의 2021년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고령자 1인 가구는 166만 가구로 전체 고령 가구의 35.1%에 달한다. 노인 세 명이 모이면 그중 한 명은 홀로 살고 있다는 것이다. 통계들이 가리키는 방향이 명확하다. 책 ‘2022 대한민국이 열광할 시니어 트렌드’에 시니어 1인 가구 증가에 대한 자세한 분석이 실려 있다. 자녀와 살고 싶다고 대답한 노인 비율은 2008년 32.5%에서 2011년 27.6%, 2014년 19.1%, 2017년 15.2%, 2022년 12.8%로 지속적으로 낮아지는 추세다. 자녀와 동거하는 비율 역시 2017년 23.7%에서 2020년 20.1%로 내려앉았다. 흔히들 중장년층이 자녀와 함께 살기를 바란다고 생각하지만 이제 그렇지도 않다. 무엇보다 시니어들 스스로 독립적인 삶을 원한다. 혼자 살든 공동체를 이뤄 생활하든 젊은 세대를 포용하며 살든, 가족에게 간섭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 노인 단독 가구로 사는 이유에 대해 응답자의 62.0%가 ‘건강과 경제적 안정 등 자립을 원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2017년 노인 실태조사 결과와 비교하면, 따로 사는 자녀들과의 연락 빈도는 줄어들었으나 친구나 이웃과의 연락 빈도가 더 높아지는 양상도 보였다. 노인들 삶의 모습이 자녀와 같이 살지도 않고 자주 연락하거나 왕래하지도 않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가족·결혼 대신 따로 또 함께 최후의 순간까지 도움받지 않고 자립적으로 사는 것. 이 시대 중장년층의 바람을 실제로 실천하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9월, KBS1에서는 한 집에 살며 서로를 돌보고 생활하는 68세 노인 3명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방영됐다. 결혼 유무부터 생활 방식이 전혀 다른 이들이 함께하는 공간의 이름은 ‘노루목 향기’다. 노루목 향기는 요양원, 복지시설이 아닌 마을형 노인 생활공동체를 꿈꾼다. 지난해에는 고용노동부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에서 주관하는 ‘2021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도 선정됐다. ‘사회적협동조합 사람과세상’ 유튜브 채널을 통해 밝힌 사업 목표는 ‘노인들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개척해 지역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성공 모델을 제시하는 것’. 심재식 노루목 향기 대표는 ‘2021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 최종 선정 소감으로 “노인 스스로 살아갈 방법을 찾아나가는 과정에서, 노루목 향기의 노인 공동생활이 남긴 경험과 사례는 분명 사회적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근 진행된 크라우드 펀딩(후원, 기부, 투자 등을 목적으로 다수의 개인으로부터 인터넷으로 자금을 모으는 일)에서는 후원자들에게 무공해 국내산 행주, 스카프, 차받침, 농촌 민박 1박 등 다양한 후원 보상품을 제공했다. 다큐멘터리 방송을 보고 노루목 향기를 응원하는 이들이 늘어 목표액보다 더 많은 후원금이 모였다. 이는 기대수명이 연장되면서 길어진 노년기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노년이 되기 전에 이미 결혼으로부터 독립하고 나선 이들도 있다. ‘여성생활문화공간비비협동조합’(이하 ‘비비’)의 조합원들이 그렇다. 올해로 20년 된 비비 역시 삶을 함께하는 비혼 여성 1인 가구 생활공동체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전주시 반영구 임대아파트에 모여 살기 시작한 것이 2006년의 일이다. 이제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비혼 여성들만 20~30명 정도다. 같이 살지 않지만 회비를 내는 회원까지 합하면 비비는 50여 명으로 늘어난다. 이 중에서도 50세가 넘었거나 50세를 앞둔 창립 멤버들의 최근 관심사는 여성 노인 공동체 주택이다. 이들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비혼이라는 정체성보다 노인이라는 정체성이 우리의 삶을 가득 채울” 때가 다가오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답한 바 있다. 이들은 노인이 독립된 주체로서 살 수 있는 공동체 주택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영국 런던의 ‘뉴 그라운드’, 프랑스 파리 ‘바바야가의 집’ 등 여성 노인들이 꾸린 사회적 주택을 방문해 어떻게 함께 살아가고 있는지 이야기를 듣는 식이다. 독립이 항상 선택지로 남는 것은 아니다. 선택하고 싶지 않지만 떠밀리듯 독립하게 되는 사람들도 있다. 아무런 연고 없이 혼자 거주하는 독거노인, 혹은 실직자의 경우가 그렇다. 경기도 부천시 범안종합사회복지관에서 도시락 배달 봉사를 하는 권오예 어르신은 기초수급자다. 반찬을 제공해주는 복지관 직원들이 너무 바빠 보여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일이다. “받은 만큼의 백분의 일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 복지관 팀장님한테 그랬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거면 뭐든 도울 테니 봉사 좀 시켜달라고.” 원치 않는 독립, 그럼에도 일어서다 권 어르신은 남편의 상습적인 폭행에 못 이겨 집을 도망쳐 나왔다.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도와준 지인과 함께 살았지만, 그 역시 2017년 세상을 떠난 후부터는 혼자 살 수밖에 없었다. 얼마 안 가 복지관 담당자에게 봉사를 자청하며 나선 그는 그 뒤로 쉬지 않고 봉사에 임했다.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배달 봉사를 하면서도 ‘식사 맛있게 하세요’ 한마디 겨우 건넬 뿐이지만, 더 좋지 못한 처지의 노인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게 행복하기만 하다. 중장년 남성의 원치 않은 독립으로는 실직이 흔하다. 50대에 실직으로 원치 않은 독립을 하게 된 가장들은 특히나 ‘사추기’(思秋期)를 겪기 쉽다. 사추기란 50대 전후 중년들이 겪는 변화를 사춘기에 빗댄 표현이다. 일자리를 잃어버린 중년들은 ‘나는 뭘 위해 살아왔나’ 하는 정체성 혼란을 겪게 된다. 또 일자리를 잃으면서 따라오는 자연스러운 경제적 위기, 사회적 지위의 박탈 등으로 은퇴남편증후군을 겪는 이들도 종종 있다. 책 ‘남자 독립 선언서’를 낸 이치원 씨 역시 50대 초반 실직 후 얼마간 혼란을 겪어야 했다. 교사, 광고회사, 제조회사, 금융회사 등 30년 동안 다양한 직업과 직장을 거쳤지만 50대 초반의 실직은 그간의 실직과 다른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정규직으로의 재취업이 어렵고, 실직이 은퇴로 굳어질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크고 치명적인 차이점이었다. 게다가 ‘실직 후 대처 매뉴얼’이 전혀 없었다. 사회는 사람 채용하는 데만 관심이 있고, 회사를 나가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실업수당은 어디서 신청하는지, 의료보험 지역가입자는 얼마를 보험료로 내야 하는지조차 몰랐던 것이다. 한참을 헤맨 끝에 의료보험 지역가입 신청을 끝낸 그는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실직은 인생이란 책에서 독립의 페이지로 넘길 수 있는 터닝 포인트임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그는 실직을 독립의 계기로 삼기 위해 일자리를 찾았다. 경제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새로운 직장을 갖는 게 중년 남성의 정체성을 찾는 데 가장 빠르고 정확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는 노후 자금이 충분한 사람에게도 일을 할 것을 권한다. 그 다음이 건강과 취미다. 원치 않은 독립, 실직 후 조언을 구하기 위해 그를 찾는 이에게 ‘평생 운동’과 ‘평생 취미’를 한 개씩은 구비해두라고 조언한다. 아무리 독립이 좋다고 해도 건강 없는 장수, 즐거움 없는 삶은 형벌이나 다름없기에.
- 2022-02-07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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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 년의 시간이 익는 술독, 신평양조장
- 흰쌀밥과 검은 김이 동시에 나는 고장, 당진시 신평면. 이곳에는 막걸리와 함께 시간이 익어가는 양조장이 있다. 할아버지에서 아버지, 손자까지 3대에 걸쳐 대물림된 방식을 고집한다. 해풍 맞은 쌀과 산에서 기른 연잎으로 익어간 세월만 100년이다. 참기름 바른 김이 흰쌀밥과 어울리듯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지는 양조장, 바로 신평양조장이다. 인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이 술이다. 술은 즐거운 자리, 위로가 필요한 자리에 함께했다. 이 중에서도 막걸리는 오랜 시간 서민의 곁을 지켜준 좋은 벗이다. 이런 서민의 술이 대기업 회장단의 건배주, 청와대 만찬주로 거듭나기까지 묵묵히 자리를 지킨 아버지들이 있다. 찬란한 햇빛이 쏟아지고 상쾌한 바닷바람이 부는 어느 가을날, 시간이 켜켜이 쌓인 신평양조장을 찾았다. 전통 연잎주에 오늘을 입히다 ‘아버지들의 익어가는 시간’. 신평 양조뮤지엄 전시 제목 중 하나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양조장의 역사를 썼던 술독, 장인이 한 권씩 모았을 주조법이 담긴 고서… 잠시 자리를 비운 김동교 대표를 기다리며 조용하되 치열했던 삶의 흔적을 좇았다. 얼마 뒤 도착한 그는 신제품 연구가 한창이라 많이 바쁘다며 머쓱하게 웃었다. 소탈한 차림에 어울리는 사람 좋은 웃음이었다. 늦춰진 시간을 무마하려 서둘러 양조장 투어에 나섰다. 그냥 시간도 아니고, 왜 하필 ‘아버지’의 시간일까. 양조뮤지엄 전시실 안 양조장 연대표 앞에 선 김 대표의 설명에서 그 이유를 어렴풋이 눈치챌 수 있었다. “할아버지께서 돈과 땅을 기부해 창건된 사찰이 있습니다. 여기서 5분 거리에 있는 흥국선원이라는 곳이에요. 그곳에서 기른 연꽃으로 술을 빚고 있어요. 할아버지께서 사찰로부터 전수받은 연잎 활용법에 아버지께서 현대적 양조 기술을 적용해 지금의 백련막걸리가 탄생했습니다.” 예부터 주조에 사용하는 연꽃은 하얀색 꽃잎의 백련(白蓮)이었다. ‘규합총서’, ‘증보산림경제’ 등 연잎주 빚는 방법이 담긴 18세기 문헌에서는 공통적으로 술 빚는 시기를 강조한다. 전통 연잎주는 늦여름 채취한 생연잎으로 발효하고, 서리 내리기 전에 빚는 세시주(계절에 맞게 빚는 술)다. 하지만 현재는 발효 과정에서 건조시킨 연잎을 활용한다. 술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양조장에서 매번 생연잎을 사용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잎의 전통과 현대의 양조 방식이 만나 더욱 은은한 향과 부드러운 맛의 백련막걸리가 탄생했으니, 전통과 현대의 바람직한 조우라고 봄직하다. ‘문화’라는 술독에서 미래를 빚다 해풍 불어오는 비옥한 평야와 물이 좋은 고장에서 나는 술이라 맛으로는 이미 정평이 났다. 김 대표의 조부이자 신평양조장의 1대 대표 김순식 씨 생전에는 막걸리를 들고 찾아오는 손님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덕분에 김 대표는 어릴 적부터 주전자에 막걸리를 떠다드리며 막걸리 맛을 보곤 했다. 나고 자랄 때부터 전통주 문화를 접한 그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양조장으로 돌아온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의 아버지가 연잎주의 전통을 이어받는 데서 그치지 않고 10년의 세월을 거쳐 백련막걸리를 개발해냈듯, 그 역시 백련막걸리를 생산해 판매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양조장을 전통문화의 장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2013년 농림축산식품부의 ‘찾아가는 양조장’ 사업에 첫 번째로 선정된 뒤 신평양조장은 체험관광이라는 문화 콘텐츠를 차근차근 준비했다. 미곡창고로 쓰던 건물을 전시관으로 개조하고, 최근에는 현대적 설비와 체험관을 갖춘 양조센터도 세웠다. 한국인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온 손님들이 전통술을 배우며 신기해하면서도 즐거워했다. 구수한 냄새에 홀린 듯 밥덩이를 집어먹는 어린 손님도, 전통주를 낯설어하던 파란 눈의 외국인 손님도 막걸리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 폴란드에서 온 단체 관광객들이 백련막걸리의 가치와 정신, 아름다움에 감동한 나머지 2대 김용세 장인과 그에게 축복의 노래를 불러준 일도 더러 있었다. 중장년층 방문객에게는 ‘연잎주 막걸리 빚기 체험’이 인기다. 조선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방식으로 직접 술을 만들기 때문에 옛 정취와 맛을 느낄 수 있어서다. 김 대표는 “고객들을 직접 마주하며 그들에게 연잎주의 문화와 역사적 가치를 전하는 일”이라며 “수익성이 높진 않지만 지역을 대표하는 양조장 주인으로서 또 다른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신평양조장 바로 앞 골목에는 1930년대부터 들어선 신평5일장이 있다. 그만큼 목 좋은 곳에 자리한 덕분에 양조장은 항상 사람들로 북적였다. 오랫동안 농사를 지어왔던 우리 민족은 이웃과 노동 공동체인 두레를 결성했고, 고된 농사일 중간중간 막걸리를 나눠 마셨다. 말하자면 ‘농주’(農酒) 막걸리는 노동력 공유와 이웃과의 교류를 위한 매개체였고, 흥겨운 잔치의 핵심이었다. 김 대표가 어렸을 때는 양조장이 지역사회 커뮤니티의 중심이었던 셈이다. 지금은 도시에서 농촌으로, 주택에서 아파트로 환경이 옮겨져 공동체의 의미가 흐릿해졌다. 물 좋고 바람 좋은 고장에서 신평양조장은 스러져가는 옛 가치를 되살리려 한다. 100년의 세월을 품은 술독에 과거를 빚어 미래를 만들고자 함이다. 매일 항아리 속 막걸리에게 “고맙습니다” 인사를 건네는 장인의 한결같은 겸손함이 막걸리에 가 닿는다면 충분하다. 오늘도 고두밥 찌는 구수한 내음 사이로 건강하고 향긋한 희망이 피어나고 있다.
- 2021-10-26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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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죄에 손대는 '노인 장발장' 증가
- 국민의힘 이명수 의원실이 공개한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61세 이상 절도 범죄 피의자는 2016년 1만 4021명에서 지난해 2만 1341명으로 늘어났다. 반면 같은 기간 19세 이하, 20~30세, 31~40세, 41~50세의 절도 범죄는 모두 줄었다. 51세~60세 절도 범죄만 소폭 늘었다. 유독 고령층 절도 범죄 피의자만 늘어나고 있는 모습이다. 절도액으로 따지면 특히 소액 절도 범죄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5년 새 절도 범죄를 재산 피해액별로 나눈 결과 1000만 원 이하, 1억 원 이하 등 모든 구간에서 절도가 줄었지만 유독 1만 원 이하 소액 절도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1만 원 이하 절도는 2016년 1만 1506건에서 지난해 1만 1971건으로 증가했다. 이른바 ‘노인 장발장’이 늘고 있는 셈이다. 절도는 요즘 경찰들 사이에서 가성비 떨어지는 전통 범죄로 인식된다. 도둑질해도 취할 수 있는 돈이 크지 않은 데다, CCTV로 발각될 우려도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생계가 나아지지 않고 코로나19로 경제위기에 내몰리자 노인들이 소액 절도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노인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야 하지만 일각에선 생활이 빈곤해진 것은 개인의 책임인데 세금을 낭비하며 사회가 구제해야 하느냐고 되묻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노인 빈곤이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고 말한다. 지금 노인 세대가 한창 경제활동을 할 때 각종 사회복지가 온전히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에 고령층이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경우가 많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국민연금 제도가 시작될 때 가입 기간과 기업 규모 같은 조건 때문에 많은 노인이 제외됐다”며 “한국사회에서는 노인을 가족이 부양해야 한다는 의식이 강해 복지 시스템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지만 이후 고용불안정이 오면서 복지체계가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채 가족까지 노인을 부양할 능력을 상실했다.”고 설명했다. 어느 정도 경제력을 갖춘 베이비붐 세대가 노인이 되면 노인 빈곤율은 줄어들겠지만 지금 노인 세대를 손 놓고 지켜만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한 경제적 어려움이 해결되더라도 노인들이 살아가는 데에는 돈뿐만 아니라 의료, 주거, 여가 등 다양한 사회 복지가 필요하다. 이에 대해 정재훈 교수는 “노인의 사회복지서비스, 주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회주택이 필요하다”며 “미래에 고령 인구가 더 많아질 것을 공공임대처럼 단순 주거 공간이 아닌 공동체 속에서 사회복지사의 관리를 받는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2021-10-21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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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상주시 올해 귀농귀촌 사업비 125억5000만 원
- 강영석 상주시장 인터뷰 오래전부터 쌀, 누에, 곶감의 도시로 유명한 상주시는 다른 어떤 도시보다 농업 도시로서의 확고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 지난해 치러진 4·15 보궐선거를 통해 민선 7기 8대 상주시장으로 취임한 강영석 시장은 상주시의 농업 혁신 도시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 강 시장은 인터뷰에서 상주시가 귀농귀촌 1번지로서 손색이 없다고 밝히며, 농업 혁신 도시로서의 가능성과 귀농귀촌인을 위한 정책, 그리고 농촌의 애환 등을 솔직하게 술회했다. “농업 여건만 보더라도 상주시로 귀농귀촌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그에게 상주시의 귀농귀촌 여건과 현실에 대해 들어봤다. “우리 시는 낙동강과 백두대간을 사이에 낀 천혜의 자연환경과 방대한 농지, 풍부한 용수량 등으로 예부터 뛰어난 농업 여건을 자랑해온 곳입니다. 삼백(三白, 쌀·누에·곶감)으로 잘 알려진 전통적인 농업 도시로서 국제 슬로 시티로 인증도 받았죠.” 강영석 상주시장의 말대로 상주시의 농가는 1만3885호로 전국에서 네 번째, 경북에서 두 번째다. 농업 인구도 2만9290명으로 전국에서 일곱 번째, 경북에서 두 번째고, 농지 면적은 2만5315ha로 도내에서 으뜸이다. 그야말로 경상북도에서 손꼽히는 거대 농업 도시라고 할 수 있다. 덕분에 농업의 선택지도 무척 다양하다고 강 시장은 밝혔다. 상주시의 귀농귀촌 강점 “곶감과 시설오이는 전국 생산량의 60%를 차지하며, 근래는 신품종 청포도가 고소득 작물로 각광받고 있어 생산 면적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양봉, 육계, 한우, 쌀, 배 등의 기존 작물도 전국 1~2위 생산량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마트팜 혁신밸리와 경북농업기술원을 유치함에 따라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선진 농업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습니다.” 강 시장은 곶감과 쌀, 친환경 농업, 과수 등의 중점 품목을 지속적으로 지원하여 농사만 잘 지으면 마음 놓고 살 수 있도록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상주시가 귀농귀촌인의 유입을 강력하게 필요로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농지 면적은 도내 최고이나 전체 인구수는 면적에 비해 턱없이 적다. “우리 시는 2019년 초부터 10만 이하 인구로 돌아섰습니다. 2021년 5월 통계로는 9만6337명입니다. 시내 동 지역에 거주하는 인구가 4만9957명이니, 실제로 18개 읍면 지역에 거주하는 인구는 4만6380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1개 면의 인구가 2500명 이하로 떨어지면 생활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삶의 기반 자체가 위협을 받게 됩니다. 특히 우리 시는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31%가량 되는 초고령 지역이기도 합니다. 향후 농촌 사회, 지역 사회를 이끌어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신규 인력이 유입되어야 합니다.” 2021년 귀농귀촌 사업비로 125억5000만 원 귀농귀촌인을 위해 상주시가 준비하고 있는 옵션은 다양하다. 올해 상주시 귀농귀촌 사업 비용은 총 125억5000만 원에 달한다. 분야는 귀농귀촌인 보조 및 융자 지원, 귀농귀촌인 유치를 위한 주거 조성, 귀농귀촌 활성화를 위한 교육 사업이다. 귀농귀촌인 보조 지원은 총 3억1200만 원으로 주민 초청 행사 운영, 주거 임대료, 주택 수리비, 정착 지원 사업 등을 추진한다. 융자 지원은 올해 상반기 선정분만 해도 45억 원 규모이며, 39개소의 귀농인에게 토지 구입, 하우스 신축, 농가 주택 매입 및 신축 등의 사업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한다. 귀농귀촌인 유치를 위한 주거 조성 사업에는 72억 원을 투자하여 한국토지주택공사와 공동으로 추진하는 귀농귀촌형 공공임대주택단지 사업과, 매년 2~3개소씩 추가로 조성하는 귀농인의 집 조성 사업이 있다. 귀농귀촌 활성화를 위한 교육 사업으로는 총 3억5000만 원을 투자하여 마을 단위 융화 교육, 공동체 귀농학교, 농촌생활기술학교, 귀농귀촌인 역량 강화 교육 프로그램 등을 추진한다. 또한 귀농귀촌인을 지원하기 위한 민간 지원 조직으로 상주다움 사회적협동조합을 지원하여 민간 차원에서 교육과 공동체 사업을 활발하게 추진하는 것도 타 시군과는 다른 상주시만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전국 최초 귀농귀촌형 공공임대주택 마련 특히 주목할 부분은 공검면 양정리의 귀농귀촌형 공공임대주택단지와 사벌국면 삼덕리의 스마트팜 혁신밸리와 인접한 청년보금자리 조성 사업을 통해 농촌 지역에 주택을 마련하고자 하는 부분이다. 전국 최초로 올 연말에 조성되는 귀농귀촌형 공공임대주택단지는 규모는 작지만 널리 알려져 농촌형 주거 복지 사업을 새롭게 이끌어나가리라 기대되고 있다. 농촌 지역에 단독주택단지를 지어 공공임대로 제공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1만여 명의 귀농귀촌인이 지역에 와서 농업과 농업 관련 직종에 종사하면서 지역의 활력소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각 지역의 농업과 농촌 관광, 농산물 가공 분야 등에 종사하면서 지역의 스타 농부가 되고 성공 사례가 되어, 다른 귀농귀촌인들을 유인하는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특히 2009년에 생긴 민간 공동체귀농지원센터가 주축이 되어 귀농귀촌인들의 커뮤니티를 조성하고 많은 귀농귀촌인의 디딤돌이 되어주었습니다. 매년 계속되는 교육과 모임으로 귀농귀촌인들이 모이는 구심점이 되어주고, 우리 시로 오고자 하는 귀농귀촌인들을 맞이하는 마중물이 되어주어 감사한 마음입니다.” 귀농귀촌을 하려면 급격한 변화에 대비 많은 사람들이 귀농귀촌을 통해 농촌 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고자 하는 꿈을 갖고 있지만, 대부분의 귀농귀촌인들은 지역 사회에 적응하는 것만 해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게 현실이다. 이에 대해 강 시장은 급격한 변화는 반드시 갈등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하고, 변화의 밝은 부분에 주목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지역 사람들과 귀농귀촌인 간에 갈등이 생기면 기존 지역 사회에서 이루어지던 방식으로는 봉합되지 않고 갈등이 드러납니다. 이는 순기능도 있지만 귀농귀촌인에게 왜곡된 시선을 갖게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일부 언론이나 방송에서는 귀농귀촌인들이 조용한 지역 사회에 갈등을 부추기는 것처럼 보도하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 지역에는 고소득 영농을 위해 귀농하는 분들이 많아, 막상 투자한 만큼 결과를 얻지 못하면 원인을 외부로 돌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텃세를 지레 두려워하여 기존 마을과 떨어진 곳에 거주하고자 하는 귀농귀촌인들도 있습니다. 고향에 온 귀농귀촌인 중에도 마을 주민들과의 불화로 마을을 옮기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귀농귀촌으로 인해 생겨난 변화가 좋은 것만 있는 것도 아니고, 귀농귀촌인들이 지역에 와서 반드시 잘 지내는 것도 아닙니다만, 지역 주민과의 갈등을 ‘텃세’라고 이름 짓는 것은 어폐가 있다고 봅니다.” 텃세라는 말의 어폐, 다르게 생각해봤으면 텃세라는 것은 지역 주민들이 하나가 되어 새로 들어온 귀농귀촌인을 괴롭힌다는 뜻이 있지만, 귀농귀촌인이 관련된 갈등에서 기존 마을 주민들이 일방적으로 귀농귀촌인을 가해하는 경우는 없다고 강 시장은 밝혔다. 오랜 시간 지역민과 귀농귀촌인을 보아온 강 시장은 도시에서는 그런 갈등이 없느냐고 반문한다. 무엇보다도 현재 농촌의 현실이 텃세가 발생하기 어렵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기존 마을 공동체도 많이 붕괴됐고, 노인들밖에 없어 텃세를 부릴 만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현재 대부분의 귀농귀촌인들이 이장과 새마을지도자, 부녀회장, 자율방범대장 등을 차지하고 있는데 텃세가 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도시 지역에서도 층간 소음, 주차 등으로 끊임없이 언성 높일 일이 생깁니다. 특정 인물이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는 일은 대도시에도 당연히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 농촌은 과거처럼 긴밀한 대면 접촉이 일상화된 공간이 아닙니다. 노년층도 스마트폰으로 정보화 사회를 살고 있고, 옛날처럼 동네 사람들이 장례식과 마을 잔치를 하며 모이는 일도 줄었습니다. 진입로와 토지 경계, 소음, 쓰레기, 축사 악취 등으로 이웃 간 갈등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텃세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포털 검색창에서 ‘상주 귀농’ 검색 강 시장은 매년 1400가구 1800명을 유치하여 농촌 지역의 인구 유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 5년간 매년 1200여 가구, 세대원은 1700여 명이 유입되고 있다. “귀농귀촌은 농촌에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염원일 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를 지속 가능하게 가꾸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의 꿈입니다. 통계와 숫자로는 잡히지 않지만, 지역에 이미 터를 잡은 귀농귀촌인들이 지역에 만족하고 기존 주민들과 화합하며 어울려 살 수 있도록 많은 고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강 시장은 마지막으로 귀농귀촌을 꿈꾸는 독자들에게 당장 두 가지를 해봤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한 가지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통해 검색창에 농업교육, 귀농교육을 입력하고 동영상 온라인 교육을 듣거나 오프라인 교육 행사에 참가해보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가고 싶은 지자체의 이름과 귀농을 붙여서 ‘상주 귀농’과 같은 식으로 검색해서 시군 귀농귀촌 담당자에게 전화를 해보는 것입니다. 귀농귀촌 담당자들이 친절하고 간결하게 귀농귀촌에 대한 여러 궁금증을 풀어줄 것입니다.” 강 시장은 다양한 귀농귀촌 정책을 개발하고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 조성’과 ‘사람이 찾아오는 환경 조성’을 통해 인구 감소 문제를 적극적으로 풀어갈 것이라고 전했다.
- 2021-07-0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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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버타운에서 여생을 보내도 될까?
- 삶과 죽음이 한끝 차이이듯 ‘웰다잉’을 위해서는 ‘웰빙’이 선행되어야 한다. 시니어의 웰빙은 대부분 거처가 좌우한다. 노후에 어떤 형태의 돌봄을 받고, 어디에 머무는지에 따라 삶의 질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집 또는 병원, 두 가지 선택지가 전부였지만, 평안한 삶의 마무리를 고민하는 ‘웰엔딩’에 관심이 늘면서 ‘실버타운’이 제3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실버타운 입주를 고민 중인 이들을 위해 실버타운의 이모저모를 살펴봤다. ‘인생은 육십부터’라는 말이 더 이상 농담이 아닌 시대다. 의료 기술이 발달하고 기대 수명이 늘어나면서 과거엔 10여 년, 길어야 20년 정도로 여겨지던 노후의 정의가 30~40년 가까이 늘어났다. 직장에서 몸담은 시간보다 노후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진 만큼 질 좋은 서비스와 시설로 눈을 돌리는 시니어가 늘고 있다. 30여 년간 ‘열일’ 한 대가로 얻은 경제력이 있으니,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누리고 싶은 것은 인간이라면 당연한 심리다. 실버타운은 이 같은 액티브 시니어의 수요를 만족시켜주며 최근 몇 년간 노후의 또 다른 보금자리로 각광받고 있다. 실버산업 전문가 이한세 초고령사회미래연구원 위원장은 “20여 년 전의 60대와 지금의 60대는 다르다. 옛날에는 60대만 돼도 ‘인생 다 살았다’고 했지만 지금은 노후를 편안하고 활기차게 보내려는 시니어가 많다. 또 과거에는 실버타운 입주 보증금이 강남 아파트 한 채를 팔아야 충당할 수 있는 정도였는데, 20년 사이 보증금은 크게 오르지 않은 반면 집값은 10배 가까이 오르면서 진입장벽이 낮아졌다”며 “이런 사회적 변화 속에 실버타운의 선호도가 높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분위기”라고 말했다. 실버타운 언제, 어디로 가야 하나 한마디로 오늘날 ‘액티브 시니어’라 불리는 이들은 실버타운에 입주할 경제력을 갖췄으며, 노후를 즐길 시간도 충분하다. 문제는 언제, 어떤 실버타운에 들어가느냐다. 포털 사이트에서 ‘실버타운’을 검색하면 각종 노인주거복지시설이 쏟아져 나와 정확한 정보를 추리기 어렵다. 또 노후가 길어진 만큼 어느 연령대에 입주해야 하는지도 새로운 고민거리다. 적절한 시기에 실버타운에 입주하기 위해서는 먼저 노인주거복지시설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노인복지법 제32조에 따르면 노인주거복지시설은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어르신들이 공동으로 생활하는 곳’을 말하며, 성격에 따라 양로시설과 노인공동생활가정, 노인복지주택으로 구분한다. 양로시설은 크게 무료 및 실비, 유료로 나눌 수 있는데, 무료 및 실비 양로시설은 65세 이상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 등 취약계층을 위해 마련된 곳이다.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금을 바탕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기초적인 서비스 외에 기타 부대시설을 유치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반면 유료 양로시설은 60세 이상이라면 누구나 입주 가능하다. 대개 경제력 있는 시니어를 대상으로 운영해 입소자로부터 비용을 전부 수납하며, 그 특성상 여가 시설, 취미 프로그램, 의료 서비스 등이 특화돼 있다. 비유하자면 유료 양로시설은 시설이 뛰어난 5성급 호텔, 무료 및 실비 양로시설은 비용이 합리적인 게스트하우스와 비슷한 개념이다. 이 같은 노인주거복지시설 가운데 고급형 노인복지주택과 소수의 유료 양로시설을 합한 개념을 통상적으로 실버타운이라 부른다. 즉 실버타운은 60세 이상이라면 누구나 입주 가능하다. 그렇다면 노후 어느 시기에 입주하는 것이 일반적일까. 서울시니어스타워 관계자는 “실버타운 초창기에는 60~65세에 입주하는 분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고령화 시대가 되면서 70대 중반에서 80대에 오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개 가사노동을 할 체력이 되지 않거나 크고 작은 돌봄을 받고 싶을 때 이곳을 찾으신다”라며 “그러나 열에 아홉은 ‘더 일찍 들어올걸’ 하며 후회하신다. 나이가 들수록 동호회나 취미 프로그램, 행사 등을 즐기기에 육체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실버타운의 각종 시설을 알차게 이용하기 위해서는 조건에 부합하는 연령이 되었을 때 바로 입주하는 것을 권장한다”라고 말했다. [TIP] 실버타운 입주 시 고려해야 할 4가지 비용 ▶ 가장 먼저 자신이 충당할 수 있는 입주 보증금과 월 생활비를 고려해야 한다. 입주 보증금은 대개 2억~9억 원, 월 생활비는 100만~200만 원 선이다. 같은 실버타운도 평수에 따라 금액이 달라지니, 싱글이라면 가장 많은 세대를 차지하는 평수를 기준으로 고려하는 것이 좋다. 위치 ▶ 실버타운은 위치에 따라 도시형, 근교형, 전원형으로 나눌 수 있다. 위치는 개인의 선호도나 자녀의 거주지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좋다. 다만 수도권 내에 있는 실버타운은 땅값에 따라 입주 보증금도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병원 ▶ 복용 중인 약이 있거나 만성 질환을 앓고 있는 시니어는 대형병원이 가까운 실버타운이 좋다. 또 ‘너싱홈’(실버타운과 요양원의 성격이 결합된 형태)이나 ‘데이케어센터’(주간보호시설) 시스템을 함께 운영하는 곳도 있으니, 각 실버타운에서 제공하는 의료 서비스를 꼼꼼히 살피는 것이 좋다. 여가 ▶노후의 질은 여가가 좌우한다. 후보별로 각 절기별 행사와 교육 프로그램, 취미 활동, 커뮤니티 센터 등을 알아본 다음 알맞은 곳을 택한다. 단 해당 서비스가 실제로 이행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체육관은 있지만 트레이너의 관리가 허술하고, 동호회가 존재하지만 참여하는 사람이 없으면 ‘보여주기 식’일 가능성이 높다. 프로그램의 활성화 정도를 함께 고려한다. 피해 줄었지만 상담 꼼꼼해야 알맞은 실버타운을 골랐다면 다음은 입주 상담이다. 실버타운 입주에는 적지 않은 비용이 드는 만큼 충분한 상담으로 머물 곳을 신중히 선정해야 한다. 특히 입주 보증금 반환 방식을 세밀하게 살펴 만일의 상황에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 최근에는 입주 보증금 관련 피해가 문제시되고 있지 않지만, 수년 전 일부 실버타운이 분양 저조, 사업비 부족 등의 이유로 입주민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 몇 차례 논란을 빚은 바 있다. 대표적으로 경기도 용인시 A실버타운은 서비스 불이행, 일방적인 관리비 인상, 보증금 미지급 등 사업자의 독단적인 운영으로 구설수에 오르다 2017년 시설폐쇄명령을 받았다. 경기도 성남시 B실버타운은 2016년 무리하게 사업 분야를 키워나가면서 부도가 발생해 입주민들이 수십억 원에 달하는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노인복지법 시행규칙은 사업자가 입주 보증금의 50% 이상을 돌려주는 보증보험에 가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전세권이나 근저당권 설정으로 보호하는 경우 예외 조항이 적용돼 보증보험에 가입하지 않을 수도 있다. 문제는 전세권 및 근저당권 설정으로 보호받을 경우 건물이 경매로 넘어갈 때까지 대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피해를 막기 위한 장치에도 한계가 있지만, 전문가들은 과거에 비해 제도에 다각적인 보완이 이뤄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강대빈 전국노인주거복지시설협회 부회장은 “요즘은 시공자나 금융권에서도 사업성을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어 과거와 같은 큰 피해 이슈는 없지만, 운영의 건전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문제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소비자 차원에서도 대비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입주하려는 실버타운이 운영상 문제가 없고 건실한지 분별하기 위해서는 사업자의 전문성과 사회적 신용도를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파악하기 어려울 땐 식사 체험을 하며 입주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궁금한 사항을 물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최종 계약을 할 때는 보증금 반환 보장 방안과 지급 방법이 구체적으로 기재돼 있는지 꼼꼼하게 읽어봐야 한다. 이 위원장은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가 잘 갖춰져 있는 것이 중요하다. 시설만 강조하는 곳보다 시니어에 대한 직원들의 진정성이 돋보이는 곳이 좋다”라고 강조했다. “인생의 보너스 같아”…공동체서 찾는 활력 실버타운에서 여생을 보내기로 결심한 입주자들의 실제 후기는 어떨까. 대부분 비용에 상응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특히 여성 입주자들은 식사 준비를 비롯한 가사노동의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을 큰 장점으로 꼽는다. 50여 년 운영하던 약국을 닫고 서울시니어스 고창타워에 나란히 입주한 조명자(77)·조미자(73)·조경희(65) 자매는 “모든 게 만족스럽지만 무엇보다 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 세 자매에게 꿈만 같은 일”이라며 “함께 식사를 하고 웃음꽃을 피우다 보면 이곳에 오길 잘했단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남편과 함께 서울시니어스 강서타워에 입주한 정태분(78) 씨도 “정성과 영양 가득한 식사와 청소 서비스는 그동안 고생한 인생의 보너스 같아 매일이 행복하다”라고 말했다. 실버타운 내 각종 취미 프로그램도 즐거움을 더하는 요인 중 하나다. 서울시니어스 고창타워에 3년 간 거주한 배순애(72) 씨는 “매일 아침에 일어나 조깅을 한다. 코스도 다양하고 산책로도 여러 개다. 10년째 취미로 하는 색소폰을 무대에서 뽐낼 수 있는 기회가 있고, 동호회 활동도 활발히 이뤄져 심심할 틈이 없다”며 “최근에는 코로나19로 모임이 잠정 중단됐지만 남편과 주변 관광지를 돌며 나들이 다니는 것이 또 다른 즐거움이다”라고 말했다. 다양한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각종 해프닝도 공동체 생활에서만 겪을 수 있는 쏠쏠한 재미다. 특히 은퇴 후 외로움을 느끼는 시니어에게 실버타운은 또 다른 만남의 장이다. 젊은 시절로 돌아간 듯 이성 간 건강한 교류를 맺는 이들도 있고, 사회복지사 직원과 입주자가 서로 엄마, 아들이라 부르며 모자지간처럼 지내는 경우도 있다. 김숙응 숙명여대 실버비즈니스학과 주임교수는 “같은 실버타운에 입주한 시니어는 서로 라이프스타일이 비슷하고 빈부 격차가 크지 않기 때문에 비슷한 공감대로 친밀도를 쌓기 쉽다”며 “동호회, 문화 프로그램 등으로 형성해나가는 사회적 관계는 노후의 또 다른 활력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나에게 맞는 실버타운은 어디? 전국 40여 곳의 실버타운을 직접 방문해본 이한세 초고령사회미래연구원 위원장이 추천한 실버타운을 세 곳을 소개한다. ✽비용은 1인 기준 TYPE A | 액티브한 도시형 ▶ 서울 ‘더클래식500’ ‘소셜 리더를 위한 실버 하우스’라는 슬로건에 알맞게 최상급 복지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하우스 키핑, 퍼스널 컨시어즈, 발레파킹 등 호텔식 서비스와 건국대학교병원 교수진으로 구성된 전문의 및 전담 관리팀이 개인별 맞춤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스파, 피트니스, 골프연습장, 수영장 등 여가 시설과 각종 문화 행사도 다양하게 마련돼 있다. 입주자 중 은퇴 후에도 강연, 컨설팅 등 도시 내에서 활발하게 사회활동을 하는 액티브 시니어가 많다. 입주 보증금 9억 원 월 생활비 213만 원(식비 26만 원) 문의 02-2218-6000 TYPE B | 편리한 근교형 ▶ 인천 ‘마리스텔라’ 성모요양병원, 인천국제성모병원을 가까이에 끼고 있어 응급 시 신속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또 단지 내 일반 상가와 푸드 코트 등이 있어 식사의 선택지가 다양하고, 젊은 사람과 어린이 등 외부인의 방문이 잦아 고립감이 덜하다. 천주교 인천교구가 운영하는 곳으로, 1층 성당에서 매일 미사가 진행되어 종교 생활을 할 수 있다. 도시의 편리함과 근교의 호젓함을 모두 느끼고 싶은 시니어에게 알맞다. 입주 보증금 2억4000만~4억 원 월 생활비 142만~196만 원 문의 032-280-1500 TYPE C | 정다운 전원형 ▶ 김제 ‘부영실버아파트’ 전국 실버타운 가운데 보증금이 가장 저렴한 편에 속하지만, 중가 실버타운 수준의 합리적인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인근에 노인대학과 게이트볼장, 요양병원, 노인종합복지관이 들어서 있어 주변 시설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고, 식사는 복지관 식당에서 저렴하게 해결 가능하다. 여름에 다 같이 모여 문 열어놓고 비빔밥을 해 먹고, 단체로 여행을 떠나는 등 입주민 간 교류가 잦으며 정겨운 분위기다. 입주 보증금 2000만~4000만 원 월 생활비 없음 문의 063-545-0343
- 2021-06-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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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은이책'
- 몇 년 전부터 나만의 북큐레이션으로 무장하고 독자와 호흡하는 소소한 이벤트로 세상에서 사라져가던 동네 책방을 되살려내는 책방지기들이 등장했다. 책 산업에 종사했던 전문가들이 은퇴를 앞두고 인생 2막을 설계하며 자연스럽게 “책방이나 내볼까?” 했던 말들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말이 씨앗이 되어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린 우리 동네 책방들을 찾아 소개한다. 조은희. 하고 싶은 일을 꾸준히 해왔다. 출판사에서만 일해온 지 올해로 37년째. 그림책 독자는 오직 유아뿐이던 시절부터 그림책 전문 출판사에서 책을 펴냈다. 2000년대 초반이 되자 국내 그림책 시장은 크게 도약했다. 특히 어른을 위한 그림책 시장까지 성장하면서 그녀는 우리나라 대표 그림책 전문 출판사인 한솔수북 대표가 됐다. 그렇게 출판인으로서 전문성과 경력을 인정받아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출판인의 삶을 살아오던 어느 날이었다. 말을 타고 전장에서 싸움을 지휘하는 장군처럼 쉴 틈 없이 달리며 바쁘게 지냈던 그녀는 불현듯 이 매력덩어리 책들과 씨름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현타’(현실자각 타임)가 몰아치는 걸 느꼈다. ‘은퇴하면 직업인으로서는 더 이상 책을 접하지 못하는 건가?’ 조은희 씨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출판인으로서의 경력 최대 임계점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 고민의 산물이 바로 조은이책이다. 은퇴를 하더라도 여전히 책과 함께하고 싶었던 그녀는 책방 주인이 되기로 했다. 그리고 2017년 2년의 준비 끝에 마포구 성산동 다가구 주택 1층에 책방을 열었다. 마을 골목 입구 1층에 있는 책방을 찾아가봤다. 실내가 환히 들여다보이는 전면 유리창이 먼저 눈에 띄었다. 개방감을 강조한 공간에는 알록달록한 그림책들과 캐릭터 인형들이 전시돼 있었다. 서점이 아니라 마치 예쁜 문구점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책이 대형 쇼핑몰의 장식품이 되고 인스타그램용 사진을 찍기 위한 핫 플레이스 장소가 되고 있지만 그림책은 아이들에게 꿈을 길러주고 미적 감각을 키워주는 훌륭한 촉매제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습니다. 1~2년 후 출판사 일을 그만둘 생각이에요. 은퇴 후 책방 운영에 전념하며 인생 2막을 펼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가장 애착이 가는 공간은 전시 코너 조은이책은 크게 2개의 섹션으로 구성돼 있다. 다른 서점과 차별화되는 조은이책만의 섹션은 바로 그림책과 캐릭터 전시 공간이다. 작가와의 대화, 출간기념 사인회도 이 공간에서 열린다. 그림책 보러 왔다가 캐릭터 전시 공간에 호기심을 갖는 사람이 많다. 이 캐릭터들은 조은희 씨가 20년간 모은 그림책 주인공들이다. 페이지를 넘기면 웅장한 캐슬이 되기도, 광활한 마을이 되기도 하는 다양한 입체 책들은 유럽이나 일본 등지에서는 아동 교육용으로 많이 제작되고 있다. 제작기술이 얼마나 정교한지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다.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인 장인의 손길이 느껴진다. 책과 캐릭터가 전시된 공간은 그림책 전문 편집을 수십 년 넘게 해온 책방지기의 철학이 그대로 담겨 있는 듯하다. 조은희 대표가 일본, 유럽, 미국 등 유명 그림책 북 페어에 갈 때마다 하나둘씩 구입해 모아온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 개인 컬렉션 공간은 그녀가 애지중지하는 ‘아가들’의 방인 셈이다. “20년 넘게 모아온 캐릭터와 입체 책은 한국에서는 구하기 힘든 것들입니다. 집에서 저 혼자 감상하기에는 너무 아깝더라고요. 더 많은 사람이 함께 즐기고 감동을 받으면 기쁨이 두 배, 세 배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컬렉션 전시 공간 겸 그림책 코너를 가장 넓게 배치했습니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 서점이 아닌 동네 책방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이곳만큼 확실하게 보여주는 곳이 있을까? 운영자의 취향과 감성이 듬뿍 담긴 사랑스런 공간이다. 뻔한 책 소개는 싫다 그때그때의 이슈에 따라 꾸려지는 기획도 색다르다. 신예 작가들의 신간을 묶어 소개하는 코너 ‘우리 시대의 빛 젊은 작가들’과 코로나19로 여행을 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독서 여행을 권하는 코너 ‘책방보다 더 재미있는 여행지는 없다’는 최근 기획했다. 조은희 씨는 책방지기의 안목과 아이디어에 따라 고객들의 눈길이 머무르는 시간이 다르다는 노하우를 슬쩍 귀띔해준다. 바깥쪽으로는 에세이와 문학서, 책방지기가 추천하는 책들이 전시돼 있다. 이들 코너 외에도 ‘두근두근 국내 소설’, ‘고양이, 그 매력의 끝은 없다’ 등의 카피 아래 국내 소설과 고양이와 관련한 단행본 및 그림책을 소개해 냥이 집사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동화 속 주인공이 나무 덩굴을 타고 지하세계로 떨어지면 이상한 나라로 들어가 온갖 모험을 하게 되는 것처럼 조은이책 문을 열고 들어서면, 예기치 못한 환상의 세계에 빠져 잠시 정신줄을 놓게 된다. 동네 책방 감성 살린 기획 출판사 일을 오래 해온 대표가 운영하는 책방이라서 그런지 작가와의 인연을 활용한 다양한 이벤트가 풍성한 것도 매력이다. 작가와의 대화는 물론 출간기념 북토크와 사인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있다. 전국 동네서점연합과 독립영화 창작자들을 잇는 독립영화 상영회도 개최한다. 얼마 전 상영한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은 지난해 작고한 아녜스 바르다 감독의 작품이다. 동네서점연합과 함께한 이 이벤트는 고객들이 영화도 보고 대화도 나누면서 색다른 경험을 공유하도록 해 큰 호응을 얻었다. 조은희 대표가 꾸준히 운영하고 있는 글쓰기 클래스는 책 만드는 사람으로서 가졌던 마음가짐을 잘 녹여낸 프로그램이다. 그녀가 남다른 애착을 보이고 있는 이유를 들어봤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사람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을까요? 오랫동안 책을 만들어온 사람으로서 작은 공동체를 통해 공유와 나눔을 실천하고 싶었어요. 클래스 참가자들이 글쓰기를 통해 상처를 치유하고 위로받았다는 얘기를 하면 정말 기쁘더라고요.”
- 2020-08-1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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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 시대에 바라본 지구 이야기
- AD 2020년 ‘창백한 푸른 점’이라 불리는, 은하계 행성 중 하나인 지구에 큰 혼란이 일어났다. 당시 지구에 사는 인간들은 그 혼란이 재앙인지, 유행인지, 축복인지 구분하지 못했다. 하지만 무지는 회복탄력성이 되었다. 곧 눈앞에 벌어질 일에 대해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하는 것만 인간의 무지는 아니었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지난 일을 잊어버리는 증상도 있었다.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지구를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개인별 감(지구의 다른 생명체와 결정적으로 차별화되는 인간만의 능력)으로 충격이 강한 몇몇 일과 현상을 일정 기간 뇌에 저장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인간은 용량을 규정할 수 없는 뇌라는 저장장치를 가지고 있다). 인간은 그것을 기억 혹은 추억이라고 불렀다. 당시 발생한 혼란의 원인은 지구를 지배해온 인간의 욕심 때문이었다. 그들은 지구가 푸른색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편리와 효율성을 위해 지구를 붉은빛을 띠는 별로 오염시켰다. 한 줌도 안 되는 추상적, 독점적 지배논리(이데올로기, 종교, 국가 개념 등)로 서로 반목하면서 인간의 특징인 ‘따스한 마음의 결’도 황폐화시켰다. 결국 이러한 욕심은 인간의 생명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는 바이러스를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지구의 모든 것을 완전히 바꿔버린 AD 2020년의 ‘코로나19’다.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지구별 전체의 합쳐진 힘이 필요했다. 근본 원인이 된 인간의 욕심을 내려놓은 ‘공존과 배려의 공동체 의식’이 치료제다. ‘코로나19’가 처음 발생했을 때 다른 외계에서는 지구 회복과 그곳에 사는 인간의 보편적 행복 증진이 동시에 진행될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어리석게도 인간은 그러지 않았다. 인간이 바이러스에 대응하기 시작할 때 우리 ‘K-1625(지구로부터 7500광년 떨어진 곳에 있다) 행성’의 연구자들은 한반도 남쪽에 있는 녹색 점을 주목했다. 파란 바다에 떠 있는 섬이 유독 싱그럽게 보였다. 자연과 인간이 잘 어울려 공존하는 장소였다. 두 개의 큰 섬과 부속 섬으로 이뤄진 이곳은 수려한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한려해상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특별 관리를 받아온 ‘남해’다. 바이러스가 발붙일 틈을 보이지 않았다. 인간은 일정한 규칙과 방법에 따라 신체 기량이나 기술을 겨루는 운동을 하거나, 보는 것을 즐겼다. 남해는 천혜의 경기장들을 갖추고 있어 운동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훈련을 하러 온다. 그만큼 인간의 신체가 최고의 쾌적함을 느낄 수 있는 자연환경을 지니고 있다. 그 밖에 남해에는 몇 가지 숨겨진 보물들이 있다. 1. 남해 바래길 2010년에 개통한 문화생태탐방로인 ‘남해 바래길’은 총 16개 코스로 이뤄져 있다. 이 중 ‘가천 다랭이 길 4km’와 ‘물미 해안길 2km’ 코스는 해안을 따라 걷는 ‘해안 누리길’이다. 살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외로움이 파도처럼 밀려와 앞으로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남해 바래길’은 걷는 것만으로도 영혼을 토닥거려주는 치유제가 된다. 남해의 길들은 풀잎을 보고도 우주를 상상할 수 있게 해주고, 도처에서 요정을 만나게 해주는 묘한 힘이 있다. 길은 난이도에 따라 4등급으로 나눠져 있다. 자신에게 맞는 코스를 선택해 걸으면 된다. 단, “너무 빨리 걷지 마라. 영혼이 따라올 시간을 주어라”는 아프리카 격언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남해 바래길은 치유의 길이자 성장의 길이기 때문에. 2. 독일마을 1960~70년대에 한국 경제를 끈 주역들이 있다. 바로 산업 역군으로 독일에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들이다. 이 마을은 그들의 고국 정착을 위해 조성된 곳이다. 남해의 아름다운 자연과 잘 어우러진 주황색 지붕의 예쁜 독일식 주택. 이 마을의 이국적 풍경은 많은 드라마 촬영의 배경이 됐다. 파독 전시관에 들러 어려웠던 시절의 기억을 회상해보는 시간도 의미 있다. 3. 토피아랜드 언덕 경사지에 조성한 편백나무 숲 체험장이다. 평온과 안식의 휴식처인 이곳에 오르면 아름다운 꽃과 나무와 정원에 스며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어떤 노력과 기도에도 열리지 않던 문이 저절로 스르륵 열릴 것만 같다. 자연과 타인과 접속하기 위한 영혼의 준비 운동을 하기에 최고의 공간이다. 세상을 치유하는 깊은 힘의 원천이 남해에 있다. 인생이 이기적 목적을 위한 경쟁으로 채워지는 것만큼 슬픈 일은 없다. 막다른 골목에서도 ‘혼자’가 아님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지구의 인류가 ‘코로나19’를 극복하는 길이다. 남해의 길과 자연에서 그 깨달음의 온기를 느낄 수 있다.
- 2020-07-10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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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몸 어르신 보린행복주택 신청하세요”
- 서울 금천구(구청장 유성훈)가 어르신 맞춤형 공공원룸주택인 ‘보린행복주택 6호점’ 입주 신청을 3월30일부터 4월3일까지 거주지 동주민센터에서 접수한다. 보린행복주택은 어르신들의 열악한 주거환경 개선과 건강한 노후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금천구가 서울시, SH(서울도시주택공사)와 협력해 도입한 어르신 맞춤형 공공원룸주택이다. 보린행복주택 6호점은 독산로27길 44(시흥1동)에 대지면적 255.75㎡, 연면적 511.23㎡, 지상 5층 1개동 총 15세대 규모로 조성됐다. 입주대상은 금천구 거주 만 65세이상 기초생활보장수급자 홀몸어르신이다. 공동체주택 특성에 맞게 관리규약을 준수하고 공동체프로그램 참여에 동의해야 한다. 임대료는 주변시세의 30% 수준이며, 기본 임대기간은 2년이다. 입주자격을 유지하는 경우 최장 20년까지 거주 가능하다. 입주 자격요건, 신청장소, 임대료 등 자세한 내용은 금천구청 홈페이지 ‘고시•공고’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최종 입주자 발표는 2020년 6월5일 예정이다. 6월12일 호실 추첨과 공동체교육을 실시한다. 입주자는 6월말 SH공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8월초까지 입주하게 된다. 금천구는 임대보증금의 90%를 연 2% 이율로 융자지원 하며, 어르신 안부확인과 공동체활성화 프로그램을 통해 어르신 고독사 예방과 맞춤형 주거생활을 지원한다. 금천구는 지난 2015년 보린주택(1호점)을 시작으로 보린두레(2호점), 2016년 보린햇살(3호점), 보린함께(4호점), 2020년 보린희망(5호점), 보린행복주택(6호점)을 조성, 어르신들의 행복한 노후생활을 지원하고 있다.
- 2020-03-31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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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들은 인생 포기한 걸로 알지만
- 생활이란 우리가 자주 착각하는 것처럼 멍에가 아니라 사방으로 열린 활공장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지향에 있다. 오체투지처럼 궁구하는 삶이 있으며, 경주마처럼 각축하는 삶이 있고, 바람의 사주를 받아 가뿐히 떠도는 삶이 있다. 연극인 최영환(49)은 아마도 바람과 동맹을 맺은 계열에 속할 것이다. 그는 한결 자유로운 삶을 원해 귀촌했다. 누군들 자유로운 삶을 갈구하지 않으랴. 단 한 번 주어진 생을 가급적 자유롭게 쓰고 가고자 하는 갈망. 이는 거의 가당찮은 꿈일망정 고달픈 일상을 견디게 하는 힘과 탄력을 가져다준다. 인생이란 근본적으로 고(苦)라지. 그러나 고통 속에 나뒹굴 때라야 비로소 자유로운 지평을 절박하게 찾아 나서는 게 사람이다. 최영환이 그랬다. 요컨대 그는 삶을 바꾸고 싶었던 것이다. 자유롭다고 믿었던 그간의 삶에 섞인 혼선에 몹시 식상했던 것 같다. ‘괴로운 자각’이라 할 만한 격렬한 회의가 우레처럼 그의 머리를 쳤던 모양이다. 그는 서울에 살며 연극판에서 땀 흘려 뛰었다. 극단 ‘죽죽’에 소속, 연기활동을 해왔다. 일찍이 열일곱 나이 때 연극에 입문했던 그는 1991년, ‘부산연극제’ 최연소 신인연기상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배우로 나섰다. 이후 서울의 대학로를 근거로 삼아 20여 년간 연극인으로 살았다. 그러나 대차게 덤벼들어 긴 세월 비지땀을 쏟은 만큼의 결과가 돌아오지 않는 이상한 현실을 발견하고 남몰래 울상을 지었던 것 같다. ‘나, 연극배우 맞아? 이건 뭐 이룬 게 없질 않은가?’ 그는 아마도 그렇게 독백했을 게다. 그간 수없이 무대에 서서 대사를 읊조렸겠지만, 오직 자신에게만 들려준 그 독백의 톤은 연극이 아니라서 한결 절절했을 것이며, 번뇌의 산물이었기에 그 맛은 유감스럽게도 소태처럼 쓰디썼을 테지. “배우로서의 정체성이 사라지는 느낌이었어요. 날마다 대학로에서 살다시피 하며 연극활동을 해왔고, 딴에는 자유롭게 살고 있다고 자부했지만, 사실은 점점 퇴행하고 있다는 회의가 몰려들었던 거죠. 딱히 스케줄 없는 날이 늘어났고, 그저 술이나 마시게 되고. 야, 이건 참 무의미한 생활이구나, 타성에 젖어 휩쓸려가고 있구나, 그런 자각으로 괴로웠지요. 연기자다운 활동의 미비와 열악한 생계 상황, 이중고가 있었던 겁니다.” 그는 새로운 생활 속으로 뛰어들어야 할 필요를 느꼈다. 황급히 활로를 찾아야 했다. 궁리 끝에 찾은 대안이 시골살이였다. 그즈음 마침 일단의 대학로 연극인들이 단양군의 농촌으로 귀농을 했다. 최영환도 거기에 합류했다. 적적하고 적막한 농촌에 연극판을 펼쳐 고독한 시골 사람들의 삶을 어기영차 북돋우고, 손수 농사까지 지어 생계를 해결함으로써 연극과 농사가 융합된 새로운 문화 공동체의 모델을 본때 있게 구축하겠다는 취지를 표방한 동아리였다. 독특한 패기에 찬 이 공동체에 동참한 최영환은 서울의 집과 단양을 오가며 지냈다. 즉 절반쯤 귀농한 상태로 3년여를 살아왔다. 그러다 성향이라는 게 맞질 않아 동아리를 탈퇴했단다. 그리곤 팍팍한 서울생활을 아예 싹 청산, 처자를 대동하고 단양군 영춘면 면 소재지로 본격적인 귀촌을 했다. 달랑 3000만 원 들고 귀촌 이후 2년이 흐른 현재, 그는 찻집을 운영하며 낯선 객지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용을 쓰고 있다. 그가 추구하는 건 언제 어디서건 자유로운 영혼. 해서, 사방팔방으로 자신을 개방하고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사람들을 척척 받아들이기 위해 그간의 반백년 인생에서 쌓은 모든 재능을 쏟아 붓고 있다. 이번 여로의 종착만큼은 근사한 것이길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만만치 않은 게 귀촌생활이다. 또 그러나 최영환 역시 만만치 않은 인간이 보유할 만한 자질을 가지고 있을 터인즉, 이 사람이 펼쳐 보이는 귀촌생활의 양상이란 어쩌면 연극보다 흥미진진할지도. “이곳에 내려온 지 불과 2년이 지났지만 5년 이상이 지난 것처럼 친숙함을 느낍니다. 주민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한 결과죠. 서울은 머릿속에서 거의 지워졌어요. 전화통화량을 가만히 따져봤더니 서울 지인들과는 10%, 이곳 주민들과는 90%. 어느 사이에 그렇게 변해 있더라고요.” “별안간 대학로를 떠난 당신을 두고서 지인들이 아쉬워하지 않았어요? 연극 동네 특유의 동지 의식이라는 게 있을 텐데.” “웬 귀촌? 그러면서 다들 놀라는 눈치이던걸요. 아예 인생 포기한 걸로 알더라고요.(웃음) 사실, 연극인들의 이탈은 흔합니다. 대략 60% 정도가 중도에 분야를 바꿔 빠져나가죠. 경제문제 등 여러모로 한계 상황에 봉착해서.” “연극배우란 배고픈 직업이라고 알려졌죠. 유능한 데다 열정마저 겸비한 인재들이 결국 견디지 못하고 다른 길을 찾아가는 건 참 섭섭한 현실이에요.” “이름난 배우들에겐 큰 문제가 아니겠지만 저 같은 사람에겐 난감하기 마련이죠. 대리운전 기사를 하는 식으로 생활비를 벌며 버텼으나, 뭔가 확실한 타개책이 아니면 더 가혹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겠더라고요. 그렇다면 시골에 가서 소박한 생활을 하자, 그런 작정을 했던 겁니다.” 혼자 살 때엔 그럭저럭 지냈더란다. 혼밥과 혼술도 홀가분한 자유의 증빙으로 보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40대 중반, 좀 늦은 나이의 결혼으로 아이까지 얻은 뒤론 사정이 급박해졌다. 아자아자! 시골에서 나를 맘껏 풀어놓고 생활의 야전 속으로 들어가자! 그는 그리 자신과 담판을 짓고 귀촌했던 것이다. 연극이야 버릴 수 없는 동행. 미련 이상의 관습으로 삶에 이미 들러붙은 것이라서 이삿짐에 실려 함께 시골에 내려왔다. 연극 행위가 없는 삶은 식물인간처럼 절망적일 지경은 아닐지라도 좌우간 탁 놔버릴 수 없는 애착이 이미 깊었기에, 그는 귀촌의 나날을 연극을 위해서도 사용하기로 했다. 다시 말해, 어엿이 먹고 살 수 있는 생활 방편을 찾고, 덩달아 연극활동에도 새로운 피를 수혈하자는 것. 최영환의 귀촌 청사진엔 그 두 가지 목표가 새겨져 있다. “이곳에 오자마자 이웃들에게 제가 어떤 사람인가를, 무얼 하기 위해 귀촌했는가를 기탄없이 밝혔지요. 연극단체를 만들어 주민들과 함께 공연을 하고 싶다는 뜻을 전하자 모두들 귀를 기울이더군요. 물론, 호의적인 반응만 있는 건 아니었어요. 아하, 그 무슨 극단을 만들어 지원금이나 빼먹으려는 속셈 아니여? 그런 의심에 찬 소문들이 돌기도 했으니까.” “낯선 사람 하나가 시골에 등장한다는 건 시골이라는 무대 위에 배우 하나가 올라선 것과 같은 효과를 낳게 마련이죠. 모두가 그의 동태를 예의주시 감상하게 되니까. 감상 평론도 중구난방으로 무성하고요.” “통과 의례라는 게 있게 마련이죠. 면 소재지 상가 거리 복판에 찻집을 차리자 주변 상인들이 긴장하는 분위기도 완연했어요. 그렇잖아도 가뜩이나 영세한 상가에 경쟁자 하나가 출현했다고 본 거죠.” “다양한 자영업 중에 찻집을 선택한 건, 그게 가장 유망하다 판단해서?” “아내가 바리스타예요. 커피집이 적격이라 봤어요. 소자본으로 오픈할 수 있는 업종이기도 했고요. 저희는 달랑 3000만 원을 가지고 귀촌했는데, 가게를 차리고 셋집 주택을 얻는 데 다 썼지요. 찻집 운영으로 연 1500만 원 정도의 매상을 올립니다. 월세 나가지, 겨울 비수기엔 힘들지, 아직 자리가 잡히지 않았지만 차차 호전될 거라 봐요.” 찻집엔 ‘꽃피는 커피’라는 상호가 걸려 있다. 아담하고 소박해서 정겹다. 가게 좌우로는 식당, 옷집, 식육점, 주점, 빵집 등속이 있고, 맞은편엔 하나로마트가 있다. 상업이 성행할 리 없는 고즈넉한 시골이지만 그나마 요지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더라도 세 식구의 믿을 만한 호구지책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해서, 최영환 부부는 찻집일 외에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해치운다. 가게는 한 사람이 지키면 되기에 나머지 한 사람은 일거리가 생기면 쪼르르 달려간다. 의외로 일거리가 많은 게 시골이란다. 주로 막노동이지만 최영환은 가리지 않고 일을 찾아 전전해왔다. 아로니아 가공공장에 단기 취업을 하기도 했다. 아내는 인근 사찰에서 총무 일도 봤다. 생존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뭐든 다 해야만 한다. 그보다 더 절박한 진실이 달리 어디에 있겠는가. 첫발 내딛은 ‘청춘극단’ 면 소재지의 하오 풍경은 나른하다. 부스스 마른 볏짚처럼 광택 없는 거리. 별 목적 없어 보이는 한가한 걸음새로 어슬렁거리는 사람들. 저녁 반찬거리를 사기 위해 마트를 드나드는 몇몇 아낙네들. 수족관처럼 조용한 정경이지만 스피커로 외쳐대는 물오징어 판매 차량이 등장하자 별안간 사람들이 북적이며 몰려든다. 최영환도 덩달아 바빠진다. 아는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일을 참을 수 없어서다. 2년여 사이에 발휘한 사교성 덕분에 이미 그는 이 동네 사람 다 됐다. “제가 서울에서보다 더 바쁘게 삽니다. 이웃들과 적극적으로 어울리며 사는 것이죠. 청년회나 탁구동호회 등 소소한 모임들에 참여하고 있으며 감투를 쓰기도 했어요. 시골의 배타성이나 텃세에 대해 많이 듣고 내려왔지만 여기는 다르더라고요. 상당히 개방적이고 우호적이에요.” “원주민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일. 이건 귀촌 성공 필살기 1칙이라 할 만하죠.” “제가 원래 가만히 있질 못하는 스타일입니다.(웃음) 체육대회나 축제에서 사회를 보기도 하고 마이클 잭슨 춤을 신나게 추기도 했어요. 이웃과 어울려 살지 않고선 무슨 재미가 있을까? 극단을 꾸려 키워나가기 위해서도 주민 속으로 파고드는 일이 필요해요. 부지런히 눈도장 찍으며 살아왔어요.” “서울의 연극단체들도 흔히 가시밭길을 걸어요. 도발적인 투지가 아니고선 시골 극단을 착상조차 하기 어려울 것 아니겠어요? 현재 어떤 연극활동을 하고 있죠?” “겨우 첫발을 내딛은 단계입니다. 천천히 가되 충실히 기반을 다지고자 해요. 참여 인력은 이 지역 사람들로 영입할 생각이고, 우선은 제가 연기와 연출 등 모든 걸 도맡아 해나갈 참입니다. 구상과 포부는 크지만 재정 문제 등 하나하나 해결해나갈 과제들이 산적해 있어요. 극단 이름은 ‘청춘극장’입니다. 올여름엔 낭독공연물 ‘절대사절’을 선보였지요.” “단원은 몇 명이나 되죠?” “저를 포함, 세 명입니다. 당분간은 2인극 정도 공연할 수 있는 상황이에요. 단원 중 한 명은 제 아내이지요. 연극에 대한 아내의 열정이 은근히 대단해요. 작은 동네이지만 열심히 씨를 뿌리면 열매를 맺을 거라 굳게 믿으며 함께 노력하고 있지요. 일단은 생활 안정이 화급한 과제이지만, 부부가 공히 추구하는 가치 있는 일과 목표를 가지고 산다는 게 즐겁습니다.” 최영환은 대학로 극장에서 아내 이동순을 만났다. ‘관객모독’이라는 작품에 출연 중 관객으로 찾아온 이동순과 눈이 맞았던 것. 연극 애호가였던 이동순은 ‘관객모독’을 자그마치 100여 회나 관람했더란다. 그 바람에 극단 단원들의 환대를 받았는데, 유독 최영환에게 필이 꽂혔던 거다. 부부 사이엔 어여쁜 유치원생 딸 하나가 있다. 아내의 나이는 올해 33세로 최영환보다 열여섯 살 연하. 남녀의 가슴에 연정이 돋으면 술 취하듯 흥겨운 황홀이 밀려드는 법이니 그걸 사랑이라 한다. 여기엔 경계나 모순이 없어 나이 차 따위는 무의미하다. 세상을 보는 촉에선 세대 차가 있겠지만. “아내가 워낙 긍정적인 스타일이라서 매사 공감대가 넓은 편입니다. 다소 이견이 있어도 합리적이다 싶으면 곧바로 긍정하지요. 어! 그래? 해보지 뭐! 이게 우리 부부가 살아가는 방식이에요. 뭐든 두려움 없이 해보자는 것, 하다하다 안 되면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된다는 것, 그런 낙관을 공유하며 사는 겁니다.” 오랫동안 스타 등극을 소망하며 연극배우로 진력했던 사람.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흥흥거리며 살아왔으나, 이제야 세상 무서운 걸 알겠노라’고 술회하는 남자. 그, 최영환은 여전한 물적 부실 앞에 서 있으나 훌훌 벗어던져야 할 껍질은 이미 벗어던졌다. ◇ 최영환이 주는 귀촌 Tip ◇ •이민보다 더 힘든 게 귀촌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목적 설정부터 정확하게 하자. 막연한 낭만이나 도피적 망상에 의한 귀촌은 절대 금물이다. •경관을 기준 삼아 귀촌 지역을 선택하는 건 위험하다. 충분한 사전답사와 원주민 접촉을 통해 지역의 인심과 풍토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소읍이나 면 소재지에서의 자영업은 그리 이상적이지 않다. 친척이나 동창 등 인맥 중심으로 고객이 형성되는 게 시골의 자영업이기 때문이다. •원주민과의 융화를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누군가 무거운 짐을 들고 갈 때 같이 거들어줄 수 있는 정도의 심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박원식 소설가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와 동대학원 졸업. 광주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오랫동안 자연과 문화에 관한 글을 써왔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대상을 좋아할수록 아득해지는 미스터리가 늘 그를 궁리하게 만든다.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안목을 얻는 일의 요원함을 실감한다. 그가 즐기는 것은 산촌의 적막, 암자의 풍경소리, 낯선 여행지의 선술집, 우연한 만남 등이다. ‘천년 산행’, ‘암자에서 듣다’, ‘산골로 간 예술가’ 등의 저서가 있다.
- 2019-12-13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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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여! 나부터 잘해보더라고!
- 귀촌을 위해 집을 샀으나 온전히 그의 것이 아니다. 남의 토지 위에 들어앉은 건물만 샀으니까. 건물 값은 900만 원. 토지 사용료는 연세(年貰)로 치른다. 폐가에 가까운 건물이었다지. ‘까짓것, 고쳐 쓰면 그만이지!’ 그런 작심으로 덤벼들었다. 뭐든 뚝딱뚝딱 고치고 바꾸고 꾸미는 재주가 있는 그는, 단지 두 달여 만에 쓸 만한 집을 만들어냈다. 민병덕(64) 씨의 귀촌살이는 그렇게 시작됐다. 조촐하고도 옹골차게. 집 밖으로 물처럼 찰랑찰랑 흐르는 게 있다. 음악이다. 처마 밑에 매단 스피커에서 출발한 선율이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아리아 ‘사랑의 산들바람은’이다. 환영사인가? 방문객을 위해 미리 준비한? 알고 보니 그것만은 아니다. 늘 음악을 튼다는 게 아닌가. 음악이 없는 인생은 사막처럼 황량하다, 그게 민병덕 씨의 생각이다. 잠자는 시간 외엔 항상 음악을 듣는단다. 그 좋은 음악을 혼자 즐기기엔 아까워 옥외 스피커까지 장착했다. 담장 밖 길을 오가는 마을 사람들도 귀를 씻을 수 있도록. 마음껏 음악을 즐길 수 있다는 것. 이건 민 씨의 귀촌 이유이기도 하다. 대문 바깥으로까지 종일 음악이 흘러나가도 무사할 수 있는 게 시골이니 말이다. 도시에선 다르다. 남의 피곤한 귀를 괴롭히는 소음 유발자로, 악취미의 소유자로 탕탕 규탄받을 가능성이 많다. 음악은 그의 밥줄이기도 하다. 음악을 짓거나 노래하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그는 빈티지 오디오를 수리하는 기술자다. 진공관식 오디오 수리에 관한 한 마지막으로 남은 전문가를 자처한다. 최상의 선율을 듣기 원하는 이들이, 진공관식 전축으로 고품격 음질을 갈구하는 마니아들이, 고장 난 장비 때문에 실의에 젖어 끙끙대던 이들이 그의 시골집을 찾아온다. 어려서부터 팝송에 폭 빠졌다지. 1970년대 중반, 수원에 있었던 ‘역마차 다방’을 기억하는 독자가 계시려나? 당시 이 음악다방 디제이의 인기는 하늘까지는 아니더라도 다방의 천장 정도는 무난히 찌를 지경이었다. 다방이 미어터지게 처녀들이 몰려와 디제이가 선곡해 들려주는 팝송에 넋을 놓은 채 청춘의 참을 수 없는 우수와 뜨거운 갈증을 다독였다. 이 디제이는 입대 뒤 100통이 넘는 감미로운 팬레터를 받았다. 그건 재수 없는 고참병들에게 괜스레 쥐어터지고 으깨어지는 게 다반사인 군대에서의 일상을 견디게 하는 힘이 돼주었다. 민병덕 씨가 바로 그 ‘역마차 다방’ 디제이였다. 음악에 관한 취향과 애호, 경험이 결국은 인생의 길이 되고 방향이 됐다. 죽 한 길을 살아온 건 아니다. 이런 사업, 저런 영업, 전전한 바가 많으며 굴곡도 심했다지. 세상은 아름다워 뒤에 두고 떠나기엔 섭섭하다. 아울러, 아름답기는커녕 세상은 때로 정나미 떨어지는 난장판이다. 민 씨의 삶에도 곡절이 많았단다. 믿었던 이들에게 당하거나 뜯기거나 찢겨 궁지에 몰리기도 했다. 이게 또한 그의 귀촌 동기다. 하이고, 지겨워라, 나 이제 조용한 시골에서 살래! 그는 그리 속으로 외치며 난생처음인 시골살이를 시작했다. 뭐든 쓱싹 잘 고쳐주는 남자 “시골에서라고 이상적인 생활이 저절로 주어지는 게 아님을 알고 있었지만, 각박한 도시를 벗어나 마음 편하게 살고 싶었어요. 낯선 농촌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그런 걱정은 거의 없었고요. 제가 원래 매우 낙천적인 사람이거든요. 이웃들에게 잘하면, 마을 어른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면 무슨 어려움이 있겠나, 그런 자신감으로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거나 딱히 준비한 것 없이 귀촌했지요.” “완전한 내 집이라 할 수 없는, 이른바 ‘지상권 주택’을 사서 오셨어요? 굳이 그래야 했을 이유라도?” “그야 뭐, 돈이 없었으니까. 하하하!” “그간 뭘 하셨기에? 모으기보다 쓰기에 주력하셨나?” “제가 잘나갈 땐 상가 건물도 소유했어요. 근데 어쩌다 보니 다 날아가더라고. 제 능력 부족 탓에 사업을 망친 경우엔 그러려니 했지만, 믿었던 사람에게 금전적 손실을 당했을 땐 괴롭더라고요. 아무튼 지상권 건물은 제 처지에 적격이었어요. 3000만 원 정도 들여 집을 싹 고쳤지요. 아 참, 제가 이 집에 매력을 느낀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마당에 있는 커다란 목련나무가 맘에 들었다는 거. 야, 이 집에 살면 봄철에 백목련을 실컷 즐길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에 들떴으니까.” “꽃을 좋아하는 남자?” “꽃이 세상을 환하게 하니까. 꽃나무 안에 사계의 순환이 있고요. 식물들이 주는 소소한 행복을 포기하기란 어렵죠. 좁은 마당이지만 갖가지 화초와 나무들을 가꾸는 이유가 거기에 있어요. 라일락, 쥐똥나무, 배나무, 능소화, 장미, 머루, 다래, 패랭이, 달맞이꽃, 튤립….” 꽃에서 꽃피기까지의 상처와 고통을 보는 사람이 있다. 꽃에서 기어이 피어날 삶의 축복과 환희를 보는 사람이 있다. 민 씨의 성향은 후자 쪽이다. 낙관과 순응을 속에 담고 사노라 말하고 있지 아니한가. 그런 그의 귀촌은 긍정적인 예견과 함께 단행되었다. 남들 보기엔 허술한 귀촌처럼 보일 수 있겠으나, 실은 적극적인 청사진을 내장한 상태로 시골에 등장했다. 그가 집을 보수한 뒤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한 일은 꽃 가꾸기였다. 마을 안길에 꽃길 만들기! “이사하기 전, 마을을 몇 번 드나들며 퍼떡 꽃길 조성을 생각했어요. 보시다시피 나지막한 산들이 에워싼 이 마을 풍광은 썩 아늑합니다. 그러나 입구에 공장도 있고 꽤나 어수선한 분위기더라고. 아하, 꽃길을 가꾸면 마을 인상이 훤해지겠구나, 누군들 꽃을 싫어하랴! 그런 생각으로 집 앞 도로변부터 꽃을 심기 시작했어요. 버려진 보도블록을 잔뜩 실어다 화단을 만들어 꽃씨를 뿌렸어요. 뿌리면 피어나는 법. 크게 힘들이지 않고 모두가 좋아하는 꽃길을 얻은 셈이죠. 덤으로 원주민들에게 호감을 샀어요.” 원주민에게 호감 사기. 이는 귀농귀촌의 튼실한 뿌리를 내리는 데 가장 필요한 영양성분이다. 도시나 시골이나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명암과 요철은 하등 다를 게 없다. 부처님 가운데 토막처럼 주로 점잖은 사람들이 모여 오순도순 사는 곳이 시골일 거라 여기는 바보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시골 사람들이 요상하게도 더 사납고 더 이기적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의외로 많다. 이는 도시 사람들이 더 사납고 더 이기적이라고 도매금으로 싸잡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관념이다. 이런 인간, 저런 인간이 골고루 분포해 먹이를 사냥하는 게 인간사회라는 수렵장이지 않던가. ‘이기적 유전자’를 씨앗처럼 몸에 달고 태어난 인간들의 공동체 어디건 가혹한 생존 조건을 보유하고 있다는 걸 염두에 둔다면 한결 공정한 관점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 ‘너나 잘하세요!’라는 말. 이 안엔 우렁찬 진실이 서려 있다. ‘닥치고, 너부터 잘하세요!’라는 말과 동의어일 이 시쳇말엔 존중과 자존과 이타(利他)를 설하는 경책이 들어 있으니 말이다. 민병덕 씨는 세상에서 배운 지혜의 모든 걸 귀촌생활에 쏟아 부은 것 같다. ‘내가 먼저 진심을 다해 베풀면 무슨 사단이 나랴, 알것제? 나여! 나부터 잘해보더라고!’ 그는 자신에게 그렇게 속삭이며 귀촌생활에 발동을 걸었던 모양이다. 이사 직전 그는 동네 이장을 찾아갔더란다. 자못 쓸모 있는 사람 하나가 마을에 새로 출현하게 됐음을 예고하기 위해서였다지. “마을발전기금이라는 거. 요즘은 귀촌귀농인들에게 그런 희한한 것까지 요구한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러나 저는 가진 게 없는 사람이에요. 그렇다고 주눅들 게 뭐란 말인가. 이장에게 말했어요. ‘난 내가 가진 재주를 유익하게 나누겠다, 내가 전자 기술자다, 뭐든 다 고칠 수 있다. 이제부터 마을 분들의 고장 난 가전제품은 내가 다 무료로 고쳐드리겠다!’ 돌아온 응답은 훈훈한 환영사였어요.” “당신이 가진 재능을 아낌없이 이웃들에게 베풀라! 이건 귀촌귀농의 성공 필살기죠.” “혼자 돌아앉아 고독과 고립을 벗 삼아 살 게 아니라면 어울려야죠. 그게 돈으로 해결되는 문제만은 아녜요. 주민들에게만 좋은 일도 아니고요. 결국은 나 자신을 위하는 현명한 처신이니까.” “뭐든 쓱싹 잘 고쳐주는 남자. 결국 그렇게 소문난 거예요?” “고장 난 경운기를 고칠 수 있는 용접기까지 미리 장만하고 주민들을 기다렸어요. 주로 할머님들이 가전제품 수리를 부탁해오더라고요. 전기밥통, 믹서, 선풍기, TV 등 뭐든 다 수리해드렸죠. 점차 입소문이 나면서 저 건너 이웃마을에서도 저를 불렀어요. 그러면 재까닥 달려갑니다. ‘아유 고마워라, 수리비는 얼마요?’ 처음엔 그리 묻는 분들이 많았고.” “받은 게 있으면 반드시 갚는 게 시골 사람들이죠.” “그게 시골 특유의 정서죠. 외지인에게 배타적이고, 어떤 특정한 상황에선 돌변하기도 하지만, 선의라는 건 통하는 법이라서 준 만큼 받게 되는 게 농촌이에요.” “주로 무엇을 받으시지? 우호적인 마음, 친밀감, 신뢰, 그런 거?” “한마디로 따뜻한 인정이죠. 뭐든 농작물이나 음식을 수시로들 가져와요. 제가 집에 없을 땐 대문 앞에 놓고 가는데, 자주 고양이들이 음식을 먼저 먹어치웁니다. 그래 대문간에 아예 전용 보관함을 설치했어요.(웃음)” 해마다 마당에서 펼치는 꽃 축제 민 씨는 아마도 잘나가던 시절의 잉여물일 외제차와 외제 바이크를 타고 다닌다. 물개처럼 늘씬한 사냥개 두 마리도 기른다. 인근의 강변 활터에 나가 활쏘기도 즐긴다. 이런 그의 동향에 마을 사람들은 이물감이나 위화감을 느꼈을 수도 있겠지. 사생활의 자유를 보장하는 게 이 나라이지만, 편견과 간섭이 가랑비처럼 쏟아지기도 하는 게 세사이지 않던가. 어라, 수상한 한량 하나가 우리 마을에 들어왔네! 눈총이 쏟아지고 괜히 미운털이 박힐 수도 있었을 거다. 일테면, 귀촌자가 개를 끌고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일은 거북이를 끌고 돌아다니는 일만큼이나 오해를 살 수도 있는 게 농촌이니 말이다. 그걸 모를 리 없는 민 씨는 응분의 노력을 다해 융화와 조화를 이루며 살고 있다. 손수건에서 비둘기를 뽑아 날리는 재주만이 마술은 아니다. 인간관계의 지반을 촉촉이 적시어 생활의 여건을 증진하는 일, 없었던 우정을 돋우어 삶의 재미를 촉진하는 일도 마술처럼 유쾌하다. 마을 속으로, 이웃 속으로 빗물처럼 스며들어 귀촌의 재미와 안락을 누리는 민 씨의 행장엔 한 번뿐인 아까운 생을 스스로 부양할 줄 아는 자의 현명과 전략이 서려 있다. 10년. 그가 귀촌 이후 흘려보낸 세월이 그렇다. 그 10년간 흘린 진땀이 숱할 테지. 그러나 그의 진정한 관심사는 ‘놀이’에 있다 하니 솔깃해진다. 사람은 일벌레가 아니니 나이 든 자라면 놀이에도 일가견이 있어야 할 게 아닌가. “어떻게 하면 더 잘 놀 수 있을까? 자주 그런 생각합니다. 답은 간단해요. 내 처지에 맞는 즐거운 놀이, 민폐가 없는 취미, 내가 진정 좋아하는 특기를 찾아 몰입하면 된다는 것.” “일은 뒷전이어도 좋은 거예요?” “아하, 일단 일은 최선을 다해야죠. 이곳이 시골이지만, 문제가 생긴 오디오를 들고 저를 찾아오는 손님들이 꽤 많습니다. 기술이 녹슬지 않는 한 외진 산골짝에 살더라도 밥 굶을 일은 절대 없지요. 아아, 가고 싶다, 깊고 고요한 산골로.” “외롭지 않을까? 산중생활이라는 거.” “점점 자연으로 마음이 쏠립니다. 외로움이란 도시의 군중 속에서 더 커지는 게 아닌가? 제게는 많은 지인이 있어요. 어딜 가든 찾아오는 정든 벗들 말이죠. 저는 그들을 초대해 축제를 해요. 귀촌 10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매년 두 차례 잔치를 벌여왔어요. 백목련 축제와 장미 축제죠. 저의 집 마당에 목련이 필 때, 장미가 만개할 때, 그 좋은 꽃철에 맞춰서.” 그는 ‘요섹남(요리하는 섹시한 남자)’을 자처한다. 대접할 요리 구상까지 해놓은 뒤 정성껏 만든 축제 초대장을 보낸다지. 꽃 속에서 신나게 놀아보자고. 초대받을 자격에 미달하는 인사들은 사절이다. 일테면, 부부 동반이 아닌 경우가 그렇다. 정작 민 씨는 ‘돌싱’이지만. 어떻게 하면 더 잘 놀 수 있을까? 자주 그런 생각합니다. 답은 간단해요. 내 처지에 맞는 즐거운 놀이, 민폐가 없는 취미, 내가 진정 좋아하는 특기를 찾아 몰입하면 된다는 것 ◇민병덕 씨가 말하는 귀촌 Tip◇ •굳이 집 마련에 큰돈 쓸 일 아니다. 자금이 부족하다고 낙심할 것도 없다. ‘지상권 건물’을 매입하면 된다. 공들여 수소문할 경우, 의외로 쉽게 찾을 수도 있는 게 지상권 건물이다. •귀촌 장소를 신중히 물색해야 한다. 과연 내가 정붙이고 살 수 있는 마을인지 사전에 자주 드나들어 판단하자. 이장을 미리 만나 마을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도 필수. •원주민들과 인간적 신의를 쌓아야 한다. 불신을 사 외톨이 신세가 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우울증이 찾아올 수 있다. 박원식 소설가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와 동대학원 졸업. 광주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오랫동안 자연과 문화에 관한 글을 써왔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대상을 좋아할수록 아득해지는 미스터리가 늘 그를 궁리하게 만든다.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안목을 얻는 일의 요원함을 실감한다. 그가 즐기는 것은 산촌의 적막, 암자의 풍경소리, 낯선 여행지의 선술집, 우연한 만남 등이다. ‘천년 산행’, ‘암자에서 듣다’, ‘산골로 간 예술가’ 등의 저서가 있다.
- 2019-08-05 08: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