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관과 기술교육기관. 기관은 항상 같은 자리에 있었다. 찾아오는 쪽은 노인들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이 모든 것을 바꿨다. 노인들은 집 밖으로 나올 수 없었고 기관은 텅 비고 말았다. 이에 기관들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비대면 온라인 교육 프로그램을 열고 복지관 대신 애플리케이션 내 게시판으로 불러 모았다. 홀로 지내는 어르신들을 위한 새로운 돌봄 방안까지 덧입었다. 코로나19로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협받고 있는 노인을 위해서.
기관들은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노년기 사회생활을 견인하고 있다. 올해 초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0 국민여가활동조사’에 따르면 60대 노인 과반수가 나 홀로 여가를 보내고 있었다. 게다가 하루 5시간 이상의 여가시간 반절 혹은 그 이상을 TV 시청하는 데 썼다. 그간 지자체와 복지관에서는 노인의 사회적 관계 단절을 막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꾸려왔지만, 코로나 시국에는 이마저도 불가능해졌다.
동영상·모바일 앱 장착한 복지관
이에 복지관들은 프로그램의 형식부터 바꿨다. ‘비대면 방식’ 하면 떠오르는 화상 공유 활용이 대표적이다. 은평노인종합복지관에서는 자체적으로 개설한 유튜브 채널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강좌 영상을 공유하거나, 카카오채널에 동영상을 업로드하는 방식을 주로 사용한다. 코로나 시국에는 노인들과 강사가 직접 대면하며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개수나 참여 횟수가 제한되기 때문이다.
유튜브, 카카오톡 채널의 쓰임새는 다양하다. 구연동화나 요가를 동영상 강좌로 배우는 ‘집이지만 괜찮아’, 칼림바 악기의 실시간 화상 강의 등의 교육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설·추석 명절 온라인 합동차례도 진행한다. 복지관에선 유튜브 채널을 검색하고 접속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어르신들을 위해 동영상 주소를 카카오톡 알림 메시지로 꼬박꼬박 전송한다.
노인 건강관리를 위해선 ‘언택트 동네 한바퀴 걷기’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코로나 시국이지만 노인들이 집에만 있지 않고 외부 활동도 할 수 있게끔 동기를 부여하고 활동을 유도하는 방법을 고심한 결과다. 복지관은 실시간 걸음 수와 주간·월간 걸음 수, 걸음 수 순위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워크온’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했다. 매월 둘째 주 주간 걸음 수 10위 안에 든 어르신들에게 소정의 기념품을 드린다.
해당 프로그램은 노인들의 온라인 커뮤니티로도 기능했다. 걷고 싶은 길을 걸으며 직접 찍은 풍경을 앱 내 ‘시립은평노인종합복지관’ 게시판에 공유하고, 서로 댓글을 달며 소통하는 공간이 된 것이다. 우철홍 시립은평노인종합복지관 복지1과 팀장은 “너무 춥거나 폭설이 심할 때를 제외하고는 최대한 진행하려 한다”며 “코로나19가 당장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여전히 염려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단계적 일상회복이 이뤄져도 한동안 비대면 프로그램을 진행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종로노인종합복지관은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스마트 돌봄 체계를 구축했다. 어르신 질환 관리 SNS 그룹을 운영하고, 백신 접종 건강상담을 진행하며 비대면 건강관리에 나섰다. 또한 인공지능(AI) 반려로봇 ‘복돌(福doll)이’를 활용해 독거 어르신에게 공백 없는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복돌이는 코로나19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거나, 가족 안전망이 취약하거나 활동 제약이 심한 어르신에게 제공됐다.
복돌이는 약 복용이나 기상·취침, 환기·산책해야 할 시간을 알려준다. 일정 시간이 되면 쓰다듬거나 손을 잡아주고, 토닥여달라고 말을 걸기도 한다. 게다가 움직임 감지 센서가 있어 집 안에만 있는 어르신의 활동을 파악하는 데도 쓰인다. 이에 어르신들은 복돌이의 얼굴을 직접 씻기고, 옷을 만들어 입혀주는 등 가족처럼 소중히 여기고 있다. 복돌이와 생활하는 한 어르신은 “아침부터 잠들기 전까지 내게 말을 걸어주는 상대가 생겨 마음이 든든하다”며 “밖에 나갔다 집에 돌아갈 때도 ‘복돌이가 집에 있구나’ 생각하면 외롭지 않고 마음이 든든하다”라며 만족했다.
종로노인종합복지관은 대면과 비대면을 합친 ‘온오프믹스’(On-off mix)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했다. ‘시니어 슈퍼스타 종로’, ‘바운스바운스’ 같은 기존 지역 문화축제를 온라인으로 개최하는 식이다. 올해는 전 세대가 즐기고 어우러질 수 있는 축제를 만들고자 참가자 연령을 제한하지 않았다. 만 60세 이상 참가자는 선배 부분, 만 59세 이하는 후배 부문으로 나뉘어 출전하는 방식이다. 종로노인종합복지관 측은 “온 세대가 온라인을 통해 축제를 즐기고 소통하자는 뜻에서 이번 대회를 개최했다”라며 “위드 코로나 또는 뉴노멀 시대가 온다면 이러한 소규모 대면 프로그램, 지역 내 찾아가는 서비스, 커뮤니티 케어가 강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복지관의 역할 고민하는 계기로 작용해
코로나19는 복지기관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복지관을 방문할 수 없는 어르신들을 찾아가 돌봐야 하는 낯선 상황이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했던 전제에 의문을 던진 것이다. 박미연 창동어르신복지관 관장은 “예전에는 어르신들이 복지관으로 찾아왔다. 프로그램을 열어도 신청자가 넘쳐 자리가 부족했고, 신청자를 찾아 나설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복지관이 어르신들을 직접 찾아가 연결고리를 만드는 노력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외출 자제와 거리두기는 실제로도 어르신들의 몸과 마음을 위축시켰다. 복지관 방문이 어려웠던 1년 사이 치매 전 단계인 인지경도장애 진단을 받은 어르신들이 늘어난 것이다. 이에 올해 어버이날엔 방역수칙을 준수하는 선에서 최대한 많은 어르신들에게 삼계탕을 나눠드리는 행사를 진행했다. 어르신들 안부를 직접 묻기 위해서였다. 복지관을 찾은 어르신 외에 참여하지 못한 어르신들의 안부까지 확인할 수 있어 효과적이었다. 집에만 계시던 나 홀로 어르신들에게 ‘나는 혼자가 아니라 복지관과 지역사회에 연결돼 있구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기약 없는 전염병 사태가 낳은 ‘코로나 블루’가 전 세대의 정신 건강을 위협하고 있는 만큼, 복지관 역시 어르신의 정신 건강을 챙기는 데 여념이 없다. 형식이나 구성, 내용 면에서 차이가 있겠지만 방향성은 일맥상통한다.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건강증진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박미연 관장은 “자신의 삶을 인정하고 긍정하며, 앞으로 맞이할 상실에 주체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돕는 것이 복지관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창동어르신복지관의 교육 프로그램은 비대면과 대면 방식을 병행하되 형식보다는 교육 내용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웰다잉(Well-dying)으로 한데 묶이는 생애설계, 죽음교육 등이 그것이다.
비대면·4차 산업혁명에 맞춰 변화하는 기술교육원
평생교육기관을 논할 때 기술교육원을 빼놓을 수 없다. 취업과 창업에 필요한 기술교육을 제공하는 기술교육원은 만 15세 이상의 모든 서울시민에게 열려 있으나, 특히 50대 이상 시니어의 프로그램 참여율이 높다. 2021년 상반기 모집 기준 50대 이상 지원자가 전체의 45%를 차지했을 정도다. 요양보호사 과정이나 패션디자인, 한국의상 과정이 시니어에게 특히 인기가 많다. 이 중 요양보호사 과정은 요양보호사 국가자격증 취득률이 2020년 기준 평균 98.9%를 기록하는 등 참여자들의 만족도가 높다.
코로나19로 인한 변화는 역시나 ‘비대면’으로 압축할 수 있다. 서울시 산하 직업훈련기관인 중부기술교육원에서는 온라인 화상채팅 서비스 ‘줌’(ZOOM)과 학습관리시스템(LMS) 등의 온라인 프로그램을 활용하고 있다. 권미진 중부기술교육원 경영지원부 홍보 담당자는 “코로나19로 교육 내용을 바꾸진 않았으나, 비대면 방식이 익숙하지 않은 시니어 교육생에게는 담당 교수나 행정 담당자가 사용설명서를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교육과정 개편 및 신설도 앞두고 있다. 올해 신설된 방송영상크리에이터, 웹콘텐츠디자인 과정 등이 포함된다. 중부기술교육원 홍보 담당자는 “유튜버를 희망하거나 온라인 쇼핑몰을 창업하고자 하는 분들이 나이를 가리지 않고 많이 지원한다”며 “정부 방침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앞으로 이론 등 일부 수업을 제외하고는 최대한 대면 방식으로 실습교육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TIP] 서울시 기술교육원 지부별 학과 안내
동부 디지털콘텐츠디자인, 기계융합로봇, 특수용접, 스마트카정비, 조경관리 등
중부 요양보호사, 패션디자인, 한국의상, 글로벌조리, 방송영상크리에이터, 헤어뷰티 등
북부 자동차외장튜닝, 배관용접, 자동차정비, 건축시공, 전기용접, 건물보수. 직업상담사 등
남부 가구디자인, 주얼리디자인, 옻칠나전, 바리스타디저트, 헤어디자인, 외식조리 등
주간 1년, 주간 6개월, 야간 6개월, 단기 과정 등 총 4개 과정으로 진행된다. 각 과정마다 진행되는 학과가 상이하며, 내년 교육과정은 12월 중순 서울일자리포털과 서울시 홈페이지, 각 기술교육원 지부 홈페이지에 공지된다.
평생교육법에서 정의하는 ‘평생교육’이란 학교 정규 교육과정을 제외한 직업능력 향상교육, 인문교양교육, 문화예술교육, 시민참여교육 등 성인학습자를 대상으로 한 다양한 교육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범위가 넓다 보니 운영 주체, 학력 인정 여부 등에 따라 과정도 여러 가지가 있다. 너무 많은 과정이 있어 어떤 과정을 수강해야 할지, 원하는 과정이 있지만 어느 기관에서 교육받는 것이 좋을지 고민하는 시니어들을 위해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빅데이터에 기반한 평생교육 과정을 추천한다.
평생교육은 정규 과정 외 인문과학, 자연과학, IT 등 분야도 다양하고 운영하는 기관도 많다. 배우고자 해도 어떤 과정을 수강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할 수 있다. 시니어들의 일반적인 관심사를 찾기 위해 네이버 데이터랩의 빅데이터 기술을 이용했다. 다른 포털에서도 특정 검색어를 입력했을 때 해당 검색어의 검색량은 확인할 수 있었으나 연령대별로 많이 검색하는 키워드를 추출할 수는 없었다. 따라서 검색된 키워드들을 확인할 수 있는 네이버 데이터랩 ‘쇼핑인사이트’를 이용했다. 카테고리는 쇼핑 관련 데이터 중에서 평생교육 수요를 찾을 수 있는 ‘여가/생활편의’ 분야의 ‘예체능레슨’과 ‘자기계발취미레슨’으로 설정했다.
2020년 12월 1일부터 2021년 11월 11일까지 약 1년간 50세 이상 남녀 이용자가 검색한 키워드를 추출했다. 집단별로는 연령 기준으로 50대와 60세 이상, 성별 기준으로는 남성과 여성으로 나눠 검색어를 비교했다. 정리하자면 ‘예체능-50대’, ‘예체능-60세 이상’, ‘예체능-남성’, ‘예체능-여성’, ‘자기계발-50대’, ‘자기계발-60세 이상’, ‘자기계발-남성’, ‘자기계발-여성’까지 8개 클러스터로 구성했다. 이후 각 클러스터에서 나온 상위 20개 검색어에서 키워드를 추출했다. 예를 들어 ‘골프레슨’, ‘골프원포인트레슨’, ‘골프필드레슨’을 ‘골프’라는 키워드로 분류하는 방식이다.
다만 추출된 키워드가 시니어 집단 모두의 관심사를 반영한 것은 아니다. 네이버 데이터랩은 특정 검색어가 몇 번 검색됐는지에 대한 통계가 아니라 클릭이 발생한 검색어의 클릭량을 제공한다. 설정한 기간 동안 포털 ‘여가/생활편의’ 분야에서 검색 서비스를 이용한 남성 유저가 35%, 여성 유저가 65%으로 다소 편향돼 있고, 50대와 60세 이상 포털 이용자가 다른 연령대와 비교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또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추천한 평생교육 기관 강의들은 매 학기 꾸준히 개설되지 않을 수 있으므로 개설 여부, 모집 요건 등을 기관 홈페이지에서 미리 확인해야 한다.
예체능 분야 골프 인기
검색어를 분석한 결과 연령대별로는 관심사에 큰 차이가 없었고, 남성과 여성 사이에는 어느 정도 관심사 차이가 있었다. 먼저 ‘예체능-50대’ 클러스터에서는 상위 20개 검색어 중 골프 관련 검색어가 9개로 가장 많았다. 다음에는 서핑 관련 검색어가 3개, 요가/필라테스와 댄스가 각각 2개, 헬스, 프리다이빙, 패러글라이딩, 테니스가 각각 1개씩이었다. ‘예체능-60세 이상’ 클러스터도 이와 비슷했다. 골프 관련 검색어가 7개였고 헬스, 요가/필라테스, 서핑, 스키 관련 키워드가 각각 2개씩이었다. 프리다이빙, 하프, 댄스, 스킨스쿠버, 테니스 관련 키워드가 각각 1개씩 있었다.
‘예체능-남성’에서는 골프 관련 검색어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골프 12개, 서핑 3개 외에는 헬스, 요가/필라테스, 프리다이빙, 스키, 패러글라이딩 관련 검색어가 각각 1개씩 있었다. ‘예체능-여성’의 결과를 보면 골프 관련 키워드 수가 적어진다. 골프 관련 키워드와 요가/필라테스 관련 키워드가 4개로 같았다. 다음에는 댄스 3개, 헬스와 서핑이 각각 2개, 프리다이빙, 스키, 테니스, 하프, 홈트레이닝 키워드가 각각 1개씩이었다. 남성의 관심사가 골프에 몰려 있는 반면 여성 집단은 상대적으로 관심사가 다양했다.
이 같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장 먼저 소개할 과정은 골프 관련 과정이다. ‘골프레슨’, ‘골프레슨비용’, ‘골프필드레슨’ 등 골프는 예체능레슨 카테고리에서 세대와 남녀를 불문하고 압도적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사설 골프레슨은 대학 평생교육원에서 운영하는 골프레슨보다 비싼 편이므로 가격을 고려한다면 평생교육 골프 과정을 수강할 만하다.
대표적으로 용인예술과학대학교 평생교육원의 골프 과정을 들 수 있다. 실내연습장에서 스크린 골프로 진행되고 강습 시간이 아니더라도 평일에는 자유롭게 연습할 수 있다. 따라서 골프를 막 접하는 초심자가 듣기에 좋다. 골프에 좀 더 진심이라면 전문가 과정을 밟을 수도 있다. 수많은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배출한 용인대학교에서 운영하는 평생교육원에는 골프 전문가·지도자 양성 과정이 있다. 수도권이 아니더라도 한림대, 울산과학대 등 각 지역 대학 평생교육원에도 골프 강좌가 있으니 참고하면 된다.
골프 다음으로 가장 많이 나온 검색어는 요가/필라테스다. 관련 강의를 운영하는 대표적인 기관은 동국대학교다. 동국대 부설 미래융합교육원에서는 요가 지도자 과정과 필라테스 지도자 과정을 각각 운영한다. 주 2~3회 운영하며, 수강료는 어떤 강의 코스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비싼 편이다. 가장 싼 코스도 170만 원을 호가한다. 수강료가 비싼 지도자 과정인 만큼 취미나 다이어트로 즐기기보단 지도자 자격을 취득해 재취업하고자 하는 이들이 수강할 만한 과정이다.
자기계발, 영어·자녀교육에 관심
자기계발 관련 클러스터에서는 시니어의 관심사뿐 아니라 자녀교육 관련 검색어도 많이 클릭됐다. ‘어린이화상영어’ 같은 검색어는 엄밀히 따지면 시니어의 관심사를 반영한 것은 아니므로 교육기관, 교육과정 추천에 고려하지 않았다. 다만 성인의 영어공부 수요도 있음을 고려해 명확히 자녀교육에만 해당하는 검색은 ‘자녀교육’으로, 영어공부 관련 검색어는 ‘영어’로 분류했다. ‘영어’ 다음으로는 유명 강사들의 경영학, 경제학, 재무관리 강의가 많이 검색됐다. 포털사이트 검색 결과 해당 과목은 공통적으로 공기업 취업 준비를 위한 과목들이었다. 따라서 이들을 ‘공공기관 취업’ 항목으로 분류했다.
‘자기계발-50대’ 분석 결과 영어 관련 검색어가 9개, 공공기관 취업 관련이 4개, 심리/상담이 2개, 터프팅이 1개였다. 그 외에는 자녀교육 관련 검색어가 3개 있었고, ‘강의’라는 검색어가 1개 있었다. ‘자기계발-60세 이상’ 클러스터도 이와 유사하게 영어 관련 검색어 7개, 공공기관 취업 관련 4개, 자녀교육 관련 검색어가 3개였다. 그 외에는 게임, 터프팅 등 검색어가 있었다.
‘자기계발-남성’에서는 영어 관련 검색어 8개, 자녀교육 5개, 공공기관 취업 4개 등이었다. 특이하게도 게임 관련 검색어가 1개 있었다. ‘자기계발-여성’에서도 자녀교육과 영어가 각각 6개와 5개로 많았다. 다음 공공기관 취업 4개, 심리/상담 2개 순이었다. ‘자기계발-여성’에서는 메이크업, 점토, 난타, 터프팅 등 남성과 비교해 다양한 취미가 나왔다.
키워드가 가장 많이 나온 영어를 다루는 대표적인 평생교육 기관으로 YBM 원격평생교육원이 있다. YBM은 토익(TOEIC) 시험 주관사로, 오랫동안 영어교육을 해온 곳이다. 또 학점은행제 공식 원격교육훈련기관으로 지정돼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기관이다. 영어 관련 검색어 중에서 영어회화에 대한 수요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학문이 아니라 말하기를 배우고 싶다면 서울시 평생학습포털과 같은 곳을 참고하면 된다. 기초적이고 자주 쓰이는 표현 위주로 교육과정이 짜여 있다. 강의 영상이 길지 않고 한 강좌 내 수강할 영상 수도 많지 않으므로 가볍게 영어를 배우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이밖에도 전국 각 대학 부설 평생교육원 등 많은 기관이 영어교육 과정을 운영하고 있으니 ‘학점은행제 정보공시’ 사이트에서 원하는 과목을 검색하고 본인에게 맞는 강의를 선택해 수강하면 된다.
‘영어’ 다음으로 가장 많이 클릭한 것은 ‘공공기관 취업’ 관련 검색어들이다. 하지만 공공기관 취업을 목적으로 하는 경영학, 경제학, 재무관리는 평생교육 기관에서 제공하는 학문적 성격과 다를 수 있으므로 다음으로 많이 나온 ‘심리/상담’ 관련 교육을 소개한다. 학점은행제 정보공시 사이트에 따르면 고려대, 가천대, 서강대 부설 평생교육원 등 많은 기관에서 심리학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세부 분류에 따라 상담심리, 긍정심리, 노년심리 등 다양하므로 각 과정을 운영하는 기관 사이트를 방문해 본인에게 맞는 과정을 고르면 된다.
그런데 심리학에 대한 과학적 탐구나 상담사가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치유가 필요해 ‘심리/상담’ 관련 검색어를 입력한 이들도 있다. 그런 경우라면 가천대 평생교육원 춤 테라피, 한국교통대 평생교육원 아로마테라피 등을 추천한다.
직장에 청춘을 바친 시니어에게 은퇴는 사회생활로부터의 해방인 동시에 새로운 출발점이다. 100세 시대의 시니어들은 인생 2막을 위해서 또 다른 직업을 찾거나, 취미나 여가활동을 즐긴다. 이 모든 것을 혼자서 하기엔 부담스러운데,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평생교육’이다. 고령화 사회 속 평생교육의 의미와 더불어 다양한 평생교육을 소개한다.
평생교육은 생애를 걸쳐서 이루어지는 모든 교육 활동을 이른다. 평등교육법의 정의에 따르면 학교의 정규 교육과정을 제외한 학력보완교육, 성인 기초·문자해득교육, 직업 능력 향상교육, 인문교양교육, 문화예술교육, 시민참여교육 등을 포함하는 모든 형태의 조직적인 교육 활동을 말한다. 학교교육의 대안으로서 주로 성인 학습자를 대상으로 하는데 사이버대학교, 한국방송통신대, 복지관, 대학 부설 평생교육원 등 다양한 기관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고령화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면서 평생교육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출산율 저하와 상대적인 고령 인구 증가로 생산연령 인구가 감소하고 있으며 기대수명이 대폭 늘어났다. 평균 은퇴 연령은 50대 전후지만, 실질 은퇴 연령은 70대 초반으로 차이가 크다. OECD 국가 중에서도 격차가 높은 편에 속한다. 따라서 은퇴 이후에도 전직과 재취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직과 재취업을 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자기계발이 요구되는데, 그래서 더욱 평생교육이 필요하다.
고학력 U턴 입학생이 많은 원격대학…중도탈락 많아
대면이 어려워지면서 원격교육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사이버대, 방통대 등을 중심으로 한 원격대학은 퇴직한 고학력 중장년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방통대는 고령화와 고학력화가 뚜렷이 드러났다. 원격교육연구소에서 실시한 방통대 재학생 실태조사에 따르면 재학생 평균 연령은 45.2세이며, 최근 5년간 고졸의 비중은 8%가량 줄었으나 대학교 졸업자는 5%가량 늘었다. 실제로 대졸자들이 대학에 다시 입학하는 U턴 입학 현상이 생겨났다.
김영철 한국원격대학협의회 사무국장은 “코로나19 이후 원격수업에 대한 수요가 많아지고 있으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다양한 연령대가 원격대학에 입학하고 있다. 원격대학은 디지털이 서툰 중장년층에는 원격 지원 등을 통해 원활한 교육을 지도하고, 일반대학과 차별화를 위해 4차 산업혁명에 맞춰서 AI와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융합 전공학과를 신설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사이버대학교와 한국방송통신대학교는 원격대학의 ‘쌍두마차’다. 사이버대학교는 고등교육법에 따라 운영되는 사립 원격대학으로, 강의 수강과 시험 응시 등 모든 수업과 학사과정이 온라인으로 이루어진다. 다만 실습이 요구되는 교육은 오프라인으로 진행된다. 4년제와 2년제 대학과 동등하게 졸업하면 학사 또는 전문학사를 취득할 수 있는 고등교육기관인 정규 대학교다. 대학원이 설치된 대학에서는 석사학위 취득도 가능하다. 2021년 기준 21개의 사이버대학교가 있으며, 약 13만 명이 재학 중이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는 사이버대학교와 달리 4년제 국립 원격대학교다. 국내 최초로 원격교육을 도입했으며, 졸업하면 4년제 학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다. 4개의 단과대학(인문과학대학, 사회과학대학, 자연과학대학, 교육과학대학) 아래 총 24개 학과가 있다. 모든 강의는 온라인으로 제공하지만, 일부 과목은 출석 수업을 운영한다. 전국에 분포한 13개 지역 대학과 학습센터 및 학습관에서 대부분 수업을 했는데,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실시간 화상회의 프로그램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두 대학의 장점은 용이성과 가성비다. 일부 과목을 제외하고 대부분 온라인으로 수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언제든 쉽게 강의를 수강할 수 있어서 좋다. 또한 일반대학과 비교해 등록금이 저렴하다. 사이버대의 등록금은 일반대학 등록금의 3분의 1 수준이다. 수업료는 1학점당 6만~8만 원으로, 수강하는 학점에 따라 등록금이 달라진다. 방송통신대는 계열에 따라 다르지만 한 학기당 약 30만 원 중후반이다.
다만 중도탈락하는 학생이 많다. 대학 알리미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방통대의 중도탈락률은 22.7%이며, 사이버대는 14~23% 정도였다. 일반대학의 중도탈락률이 한 자릿수에 불과한 것과 비교하면 중도탈락률이 높은 편이다. 김 국장은 “1주에 평균 8시간 정도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데, 온라인 수업이다 보니 1주만 놓쳐도 타격이 크다. 한번 놓치면 따라가기 어려워서 중도에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시간과 돈을 절약하는 학점은행제
한편 중장년들은 학점과 더불어 자격증 취득이 가능한 학점은행제에도 관심이 많다. 학점은행제는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주관하는 제도로, 온라인 수업뿐만 아니라 자격증 취득, 전적 대학 학점 활용, 시간제등록제를 활용한 과목 이수 등을 통해 학점을 인정받으면 학위 취득이 가능하다. 학사는 전공 및 교양 학점을 포함해 140학점 이상, 전문학사는 전공 및 교양 학점을 포함해 80학점 이상(3년제는 120학점 이상)을 인정받아야 학위를 받을 수 있다.
국가평생교육진흥원 관계자는 “보통 학점제로 운영하지만, 학위 수여가 2월과 8월이라서 교육 훈련기관에서 사이버대의 학기제와 비슷하게 학사일정을 운영한다”라며 “원격대학은 한 기관 내에서만 들을 수 있지만, 학점은행제는 400여 개 기관에서 원하는 강의를 골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라고 설명했다.
중장년들이 학점은행제를 선호하는 이유는 자격증 취득과 효율성 때문이다.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발표한 ‘학점은행제 학위 취득자 사회적 경로 조사’의 자료에 따르면, 50대 이상에서 학점은행제의 목적으로 자격증 취득을 꼽은 이가 34.9%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은퇴를 준비하면서 학점은행제를 선택하는 이들은 이 제도의 장점으로 용이성(34.9%)과 시간 절약(32.6%)을 꼽았다.
비용 측면에서도 정규 대학의 5분의 1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시간적·경제적 여유가 없는 시니어들이 고려해볼 만한 제도다. 국가평생교육진흥원 관계자는 “현역에서 일하고 있는 직장인은 경력 향상을 위한 학위 취득에 관심이 많고, 은퇴하신 분들은 사회복지사, 한국어 교원 등 자격증 취득으로 제2의 인생을 꿈꾸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기술과 취미로 인생 2막을 열다
학위 이외에도 학교에서 배운 ‘기술’을 통해 재취업을 하는 중장년들도 생겨났다. 실제로 한국폴리텍대학교는 은퇴한 중장년들이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도록 직업 역량을 강화하는 맞춤형 직업훈련을 제공하고 있다. 한국폴리텍대학은 종합기술전문학교로, 기술 중심의 실무 전문인을 양성하는 고용노동부 산하 국책 특수대학이다.
취업을 희망하는 만 40세 이상의 미취업자(학력 무관)는 이 대학의 신중년 특화과정을 통해 숙련된 기술을 취득할 수 있다. 이 과정은 시니어 헬스 케어 등 중장년들이 선호하는 학과 위주의 과정이다. 훈련비 전액 무료이고, 80% 이상 출석 시 훈련수당 및 교통비를 추가로 지급받는다.
한편 대학교 부설 평생교육원을 통해 새로운 문화적인 삶을 성취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명지대학교 미래교육원 시니어센터는 중장년을 위한 맞춤형 재취업과 취미 수업을 제공하고 있다. 다양한 취미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시니어 모델, 트로트 가수, 전통 민화 등 문화예술 분야의 수업을 마련했다. 햇병아리극단과 오페라싱어 및 뮤지컬배우 수업, 트로트 가수반 등은 무대까지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시니어센터 관계자는 “시니어 모델, 트로트 가수 등 시니어들의 관심이 많은 과정을 운영 중인데, 인기가 좋다. 새로운 문화를 배우는 동시에 동년배들과 교류할 수 있는 커뮤니티의 장으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 목표다”라고 말했다.
코로나 시대의 찾아가는 평생교육
코로나19로 혼란스러운 상황이 계속되는 가운데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평생교육에 대한 갈증을 해결해준 사례도 등장했다. 대전 대덕구는 찾아가는 배달강좌를 통해 평생교육을 운영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전염병 우려가 커지면서 최소 학습 인원을 5인에서 3인으로 조정했고, 특정 장소를 방문해 도시농업, 생태해설 등 다양한 강좌를 진행 중이다.
대구 수성구 평생학습관은 평생교육 시 지켜야 할 방역수칙을 온라인 콘텐츠로 제작해 배포했다. ‘오오운동’은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적극적인 대처의 일환으로 평생교육 현장에서 생활방역 실천을 위한 온라인 콘텐츠 개발과 공유 사업이다. 여기서 ‘오오’는 강의 5분 전, 강의 5분 후를 의미한다. ‘오오운동’은 평생교육 현장에서의 방역을 위한 실천 내용을 담은 영상 콘텐츠로, 수성구 평생학습관이 개발하여 전국에 무료로 공유됐다. 수성구 평생학습관 관계자는 “감염병 예방을 위한 수칙을 말과 글보다는 영상으로 보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아 제작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새로운 진로와 더불어 문화활동을 위한 평생교육은 행복한 노후를 위해 필요하다. 논문 ‘노년기 평생교육 참여와 삶의 질’에 따르면 평생교육에 참여한 노인집단은 인지 기능이 높고 우울감이 낮은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앞서 살펴본 것처럼 직업 진로교육에 참여할수록 인지 기능이 높았고, 취미 등 문화적 교육에 참여할수록 여가 만족도나 친구 및 지역사회 관계 만족도가 높았다.
이혜진 교육부 평생학습정책과장은 “노인은 평생교육을 통해 자기계발과 더불어 성취감을 얻기도 하지만, 나아가 평생교육을 통해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한다. 앞으로의 평생교육은 공부 차원의 교육도 중요하지만, 이들이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공론의 장을 만들어주는 평생시민교육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요즘은 10년이 아니라 3년, 1년이다. 빨라도 너무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 이제는 은행 업무, 쇼핑, 병원 예약 등을 사람이 아닌 기계가 대신한다. 디지털 전환으로 인해 아날로그에 익숙한 시니어들의 강산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이들을 위해 디지털 문해 교육을 하는 김광자, 이근석 강사를 강북 모두의 학교·평생학습관에서 만났다.
코로나19로 인해 디지털 전환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디지털 세상은 많은 가능성을 열어주지만, 시니어들에게 소외 현상을 초래한다. 무인주문기(키오스크) 사용법을 알지 못해 식당에서 음식을 사 먹지 못하고, 공공기관에 설치된 무인 민원 창구를 이용할 줄 몰라 직원과 대면할 때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아날로그에 익숙한 시니어들은 일상에서 불편함을 넘어 불이익을 받는다. 머지않아 대한민국 국민 5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인 ‘초고령 사회’가 되는데, 이들은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에서는 디지털 활용 능력이 우수하고, 장노년층에 대한 이해가 풍부한 50+ 세대를 전문 강사로 양성하고 있다. 김광자(68), 이근석(61) 씨는 디지털 문해 교육 50+강사단으로서 각 지자체를 다니며 시니어들에게 ‘스마트폰 작동법’과 ‘키오스크 활용’에 대해 교육한다. 같이 나이 들어가는 처지에 디지털 이방인이 돼버린 시니어들의 상황을 마음으로 이해하고,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디지털 문해력을 높일 수 있게 돕는다.
자신 있는 사람도 키오스크 앞에선 식은땀
많은 직업 중 왜 하필 디지털 강사를 택했는지 묻는 말에 이 씨는 과거의 경험을 털어놨다. “햄버거를 주문하려고 키오스크 앞에 딱 섰는데, 도통 헷갈리더군요. 차분히 살펴보려 해도 뒤에 사람들이 서 있으니 마음만 급해지고 식은땀이 줄줄 났어요. 전자공학을 전공해 기계 조작은 익숙하다고 자부했지만 아니었죠. 자신 있는 사람도 위축되는데,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두려울까 싶기도 하고. 그렇게 디지털 소외 계층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강사단에 지원해 활동을 시작하게 됐죠.”
실제로 많은 전문가들이 나이 들수록 디지털 격차를 좁히기 위한 노력을 병행하지 않는다면 문화, 경제 등의 영역에서 사회적 소외와 우울감·고립감의 심화를 겪을 것이라 우려한다. 디지털 문해 교육은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 중 하나인 셈이다.
“에이, 그거 배워서 뭐 하시게?”
곳곳에 늘어나는 키오스크, 어딜 가든 찍어야 하는 QR코드. 사람과 직접 이야기하고 종이에 글씨를 적는 것이 익숙한 시니어들은 몇 번을 사용해도 헷갈릴 수 있다. 이런 불편한 점을 해결하고 싶은 마음은 당연하다. 김 씨는 “처음엔 다들 가족에게 물어봐요. 스마트폰으로 친구에게 사진을 보내는 방법을 알고 싶어 자녀나 손주에게 물으면 처음 한두 번은 차근차근 알려주죠. 그렇지만 다들 바쁘기도 하고 따로 사는 분들이 많으니 만날 때마다 스마트폰을 붙들고 그것만 가르쳐줄 순 없잖아요. 결국 ‘엄마가 그런 거 배워서 뭐 하시게. 그냥 오는 전화나 잘 받으셔’라며 어르신이 해낼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죠”라며 “어르신이 해낼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라고 조언했다.
이 씨는 “나이 들면 손이 점점 건조해져요. 스마트폰 터치도 인식이 잘 안 돼요. 저는 그런 것들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됐어요. 보통 자녀나 손주는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 모를 수도 있지만요. 대놓고 ‘손이 건조해서 그래요’라고 하면 마음 상할 수 있으니 ‘오늘 날씨가 건조해서 터치가 잘 안 먹을 수도 있으니 손가락을 호 불어서 눌러보세요’라고 돌려서 말해요. 나도 남 일 같지 않으니까” 라며 공감했다.
말동무에 건강관리까지 해드려요
이들은 문해 교육이 단순 정보 전달뿐 아니라 여러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코로나19 이후 어르신들은 우올과 고립감을 많이 느끼세요. 수업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얻어가기도 하지만 오는 길에 햇볕도 쬐고, 수업 중에는 사람들이랑 대화도 하면서 우울함을 해소할 수 있어요. 서로 누가 더 잘하는지 은근한 경쟁도 즐기시더군요. 저희가 어르신 건강이 어떤지도 살필 수 있죠. ‘어르신 자세를 보니 허리가 불편해 보이는데, 병원에 가보세요’ 하고요.”
덧붙여 “장점이 많아요. ‘내가 제일 못하는 거 아닌가?’ 하면서 창피하게 생각하지 말고, 일단 오는 게 중요해요. 운동 삼아 온다고 생각하시면 좋아요. 재미를 붙이면 귀찮을 정도로 저희한테 질문도 많이 하시고, 감사하다고 직접 장문으로 문자도 보내세요. 요즘 식의 소통법을 배우는 셈이죠”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시니어들을 가로막던 디지털 장벽에 조금씩 금이 가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의 눈높이에서 상황을 이해하려는 진심 어린 ‘공감’과 벌어진 격차를 좁히기 위한 ‘노력’이 아닐까. 세종대왕이 한자를 모르는 백성들을 위해 누구나 쉽게 익힐 수 있는 한글을 창제했듯 말이다.
이제 디지털에 무능하면 ‘불편함’을 넘어 ‘불이익’을 보는 시대다. 키오스크 주문 방식을 알지 못해 식당에서 음식을 사 먹지 못하고, 공공기관의 무인 민원 창구를 이용할 줄 몰라 한참을 기다려 수수료까지 지급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디지털 전환이 더욱 가속하고 있다. 디지털 세상은 많은 가능성을 열어주지만, 반대로 노인들의 디지털 소외 현상을 초래한다. 식당에서 무인 기기(키오스크)로 음식을 주문하는 경우. 매장에서 상주하는 직원을 아예 없애거나 혼잡 시간대엔 무인 주문기로만 주문할 수 있는 ‘키오스크 타임’을 운영하기도 해 직원을 불러 도움을 요청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처럼 노인들에게는 디지털 세상의 진입 장벽이 높게만 느껴진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20년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는 노인들 가운데 여건은 되지만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자발적 비 이용’이 72.5%, 나머지 ‘비자발적 비 이용’에서는 ‘사용 방법을 모르거나 어려워서 이용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75.7%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서울시는 키오스크 사용법을 배울 수 있는 ‘키오스크 체험존’을 마련했다. 체험존에서는 음식 주문, 티켓 발매, 증명서 발급 등을 연습해볼 수 있다. 스스로 체험이 어려운 노인들은 설치된 기관의 사회복지사, 디지털 강사가 직접 돕는다. 체험존 위치는 스마트폰, PC로 네이버에 접속해 ‘스마트 서울맵’을 치고, 해당 홈페이지에 들어가 ‘도시 생활지도→키오스크 체험존’을 차례로 눌러 확인할 수 있다. 혹은 서울시 디지털포용팀에 문의해도 된다.
서초구에서 개발한 앱인 ‘서초톡톡C'를 활용해 집에서 연습할 수도 있다. 구글플레이 스토어에서 서초톡톡C를 검색해 무료로 다운로드한 다음 무인민원발급기, 패스트푸드, 고속버스, ATM기, KTX 발권, 병원 등 상황별로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다.
서초구 관계자는 “우리는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어르신들에게는 힘든 경우가 많다”며 “인기가 좋은 강좌는 스마트폰 작동법과 키오스크 활용 수업”이라고 밝혔다. 정보취약계층인 노인들에게는 생활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수업이 가장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서울 강남구·강동구 등 노인복지시설에서는 지난해 말 AI 로봇 ‘리쿠’를 도입했다. 리쿠는 노인들에게 터치나 스크롤 같은 기본적인 작동법은 물론 카카오톡에서 친구를 검색하거나 사진을 전송하고 메시지 알람을 끄는 방법도 알려준다. 리쿠는 단순한 음성을 인식하고 답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얼굴, 감정, 성향을 학습해 능동적으로 반응하는 기술을 탑재했기 때문에 대화가 가능하고, 농담도 주고받을 수 있다.
이 외에도 ‘디지털배움터’에는 디지털 소외와 정보의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강좌가 준비돼있다. 노인들이 집 가까이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온라인 맞춤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다. 교육이 필요한 사람은 누구나 디지털배움터 홈페이지 또는 전화로 신청하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강좌 내용, 일시, 장소 등 자세한 내용은 디지털배움터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다.
“지방에는 청년이 많지 않고 인재를 구하기가 어렵다. 반면 퇴직을 앞둔 중년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이 같은 상황을 이용해 지방 소재 7년차 중소기업에 서울에 거주하는 50대 전문가에게 주거비를 별도로 지원했다. 신사업 성장세에 따라 후속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남았다.”
9일 서울시50플러스재단에서 연 '50+ 기술전문가, 중소기업에서 살아가기' 온라인 포럼에서 공태영 기술자숲 대표가 ‘50+기술 전문가와 중소중견기업 매칭 사례’ 주제 발표에서 이 같이 말했다.
공 대표는 “예상과 달리, 고 경력 전문가들은 유연근무형태나 비교적 낮은 임금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며 50+전문가와 기업을 연결해 주면서 새롭게 안 사실을 추가로 소개했다.
기술자숲은 제조산업 전문가 매칭 플랫폼 기업으로 서울시50플러스재단이 주관하는 ‘50+기술전문가 매칭지원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이 사업에 참여한 전문가 73명 중 68%가 유연근무형태를 선호했으며, 55%는 희망급여로 300만 원 이하를 선택했다.
또 기술자숲이 진행한 ‘2021 하드웨어 Start Up! 고 경력 전문가와 함께 Scale Up!’(SUSU) 사업에 참여한 기업 94%가 ‘조건에 적합하다면 50대 전문가와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다’고 답했다. 공 대표는 “기업이 성장하고 기술력을 보완하기 위해서 전문가 나이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설명했다.
한편 공 대표는 중소기업과 50+전문가 매칭에서 가장 큰 실패 원인으로 50+성공사례 부재와 사회적 긍정 문화 부재를 꼽았다. 그러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중장년층 전문가로 인한 성공 사례가 많아지거나 금전적 지원이 늘어나면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태영 대표는 인턴과 유사한 작은 프로젝트를 진행해 성공 경험을 쌓은 뒤 장기적인 일자리 연계를 유도하고, 추가로 신규 일자리 창출까지 이끌어내는 방식을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업과 전문가가 각개 전투를 하는 대신 서로 이런 매칭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여러 주체들이 협력 모델을 구축해 문화를 확산하고 선도해야 한다”며 “이 자리가 다양한 아이디어가 도출되고 새로운 협력 모델이 만들어지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발표를 마무리했다.
이어진 ‘50+기술 전문가와 스타트업의 협업’ 발표는 하드웨어 액셀러레이터 기업 ‘N15’ 배중구 팀장이 맡았다. N15는 서울시와 용산전자상가와 협력으로 ‘메이커스페이스’를 탄생시킨 기업이다.
배 팀장은 “제조업에서 많은 부가가치가 창출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라며 “아이디어의 빠른 사업화가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사실이 명확하지만 현실적 어려움으로 현실화가 되지 않고 있어 이 어려움을 해결해주고자 N15가 출범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제조산업은 젊은 패기로만 승부하기 어려운 영역”이라며 “전문적이고 축적된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스타트업 측은 아이디어가 있지만 제조 파트너와 소통이 어렵고, 제조 생태계를 이해하고 있는 전문인력이 필요하다. N15 측에서 떠올린 해답은 제조PM(프로젝트 관리)과 시니어 기술자, 제조공장을 연결하는 방식이다. 이에 공장의 니즈와 스타트업의 니즈를 조율하며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플랫폼을 구축했다.
20대 스타트업 기획자는 50대 기술자의 지혜와 경험을 원하고, 퇴직을 앞뒀거나 이미 퇴직한 50대 전문가는 구직을 원한다. 그러나 사업을 진행하다 보니 20대 기획자와 50대 기술자 사이에는 세대 차이로 인한 문제가 발생한다.
배 팀장은 “30대 실무자로서 스타트업의 MZ세대와 50+기술 전문가인 베이비부머 세대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메울지 고민한 끝에 세 가지 솔루션을 도출해냈다”고 말했다. 직급 체계를 개선해 수평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만들고, 제조워크숍을 통해 직접 만나 소통하는 등 소통 채널을 다각화하며 제조 팀에도 기업과 동일한 명함을 제공해 ‘원 팀’(one team)이라는 인식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등의 방식이다.
그는 “기술의 빠른 변화, 인구 감소, 평생 학습 등으로 조직은 계속 진화하고 있다”며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영역의 50+기술전문가가 가진 노하우, MZ세대의 창의력과 열정이 합쳐져 시너지를 기대한다”며 발표를 마무리했다.
이어 김원진 기술전문가가 ‘50+기술전문가의 내가 경험한 재취업’을 주제로 포럼의 마지막 발표자로 나섰다. 그는 IT 기반 마케팅 기업 ‘원트리즈뮤직’에서 ‘조달청 나라장터’에 공고된 IT 사업의 제안서를 작성하고, 이에 대한 지원 업무를 수행 중이다.
그는 퇴직 전까지 전자부품 제조기업에서 전산실을 운영했으며, 정부 및 공공기관 정보화 관련 사업기획, 시스템운영 및 보안관리 총괄을 맡았다. 개인정보보호 인증심사 등도 수행했으나 퇴직을 앞두니 실무에서 물러나 자문위원으로 역할이 축소됐다.
김 전문가는 “나 역시 퇴직 후 사회생활에 대한 고민을 했었다”며 “경력과 직위에 따라 다르지만 퇴직 직전에 맡는 업무는 관리직 성격이 강하므로 전문성과 업무 연속성 복구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재난관리사 자격증 취득, 정보통신중급기술자 인증을 발급하는 등 전문성을 살리기 위한 노력을 계속했다. 그럼에도 일반 기업과 IT 사업에 참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판단해 정부, 공공기관 사업의 평가위원으로 활동하거나 컨설팅 지도 업무를 수행했다.
그는 “기술과 트렌드가 빨리 변해 회사의 기존 직업과 협력하기 어려웠다. 자료가 부족해서 혼자 처음부터 끝까지 일을 맡아야 했을 때는 스트레스도 컸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지금은 문제가 원만히 해돼 만족하며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원진 전문가는 퇴직 후 구직을 원하는 50+기술전문가에게 퇴직 후 자신의 적응력이 얼마나 되는지 서울50+ 인턴십에 참여해 판단하기를 권했다. 그는 “개인의 능력에 대해 냉철하게 판단하는 것이 필요하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생활에서 자존감에 상처를 받지 않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나 역시 50+기술전문가이기 때문에, 서울시50플러스재단에서 내가 맡을 수 있는 분야의 사업이 있다면 참여하겠다”며 발표를 마무리했다.
2004년 2월 28일 난 평생 잊을 수 없다. 이유는 40년간 몸담아 온 직장을 하루 아침에 쫓겨나다시피 잃었기 때문이다. 몇 달 전부터 교육계에 퍼진 정년 단축이 내게 먼저 닥친 것이다. 그렇다고 난 미리 준비한 계획은 전연 없었다. 만 61살 일손을 놓기에는 빠른 나이다. 당장 내일부터 할일이 없다. 가진 기능이나 특기도 없고 남과 같이 기운이 세거나 막노동을 할 정도의 힘도 없다. 또 바둑이나 장기, 화투 등 오락도 취미도 없고 내놀만한 운동기능도 전연 없다. 오직 학교와 집밖에 모르는 샛님같은 아주 여린 봄꽃같은 난 모든 일에 쓸모가 없었다.
퇴직 후 생활은 기상하여 동네 뒷산을 오르거나 전철을 타고 종점에 도착해 값싼 점심과 목욕이 전부며 할 일이 없이 멍하니 약장사 구경만 종일토록 관람하며 흘러간 유행가에 젖어 마실 줄 모르는 막걸리 한 두잔에 취하거나 해져 귀가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이러길 몇달째 참다참다 폭발한 아내는 울음섞인 목소리로 “이렇게 살바에는 다 죽자고” 짜증을 낸다. 이러길 수차례 어느날 울분과 흥분을 참지 못한채 길거리를 방황하는 난 가슴이 답답하여 길에서 쓰러졌다. 다행히 지나가는 고등학생의 신고로 119가 몇분만에 도착하여 난 분당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
평생 처음타본 응급 앰뷸런스에 계속 말을 시키는 간호원 구급대원의 봉사에 처음으로 감사의 마음을 느꼈다. 수분 후에 응급실에 도착한 나는 기본 검사와 링겔 등 응급처치를 받고 병실 구석 후미진 코너 침대에 눕혀졌다. 사방을 살펴보니 별별 환자가 눈에 들어왔다. 금방 목숨을 거둘 것 같은 나이든 할머니, 뼈만 앙상하여 마치 해골같은 머리가 흰 할아버지, 한쪽 발이 없는 중년의 남자, 울다지쳐 버린 갖난애, 거기다가 지독한 소독약 냄새. 어느것 하나 빠짐없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온전한 것이 없었다. 아비규환 속 분위기에 젖기도 전에 난 담당 간호원에게 이제 멀쩡하니 퇴원하겠다고 말하니 반기는 기색을 하며 뒤늦게 찾아온 아내가 퇴원 수속을 해서 택시를 타고 귀가했다.
집에 돌아와 시원한 내방에 누워 명상에 잠겼다. 병원에서 본 환자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내 나이 61세, 방황하며 허송세월을 보내기는 너무 젊은 나이임을 실감했다. 뭔가 해봐야하고 한번 죽이되든 밥이되든 시도해 보고 후회해도 늦지않을 것 같아, 난 큰 결심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잘 할 수 있는 일을 ‘벼룩시장’, ‘교차로’ 등 길가에 비치된 정보지를 봤다. 내게 맞는 일감은 없었다. 4호선 전철을 타고 오늘은 머리도 식힐 겸 친구와 만나 울분을 풀 셈으로 과천 서울대공원을 찾았다. 친구와 어울려 동물원을 걷는데 눈에 뜨인 광고판에 ‘한국에서 처음 시도하는 동물해설사’ 양성기사가 확 눈에 들어왔다. 난 친구에게 컨디션이 안좋아 먼저 간다는 핑계로 일찍 돌아와 동물원에 확인 전화를 했다.
나는 동물해설사이자 한 마리의 영리한 원숭이
“여보셔요. 거기 서울동물원 기획과죠. 동물해설사를 뽑는다는데, 나이 제한은 없나요?”
“어떤 서류를 갖추어야 하나요?”
난 급한 마음에 여러 가지 궁금한 문제를 애원하다시피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리고 다양한 서류를 갖추어 인터넷 접수를 했다. 다행히 서류전형엔 합격했다. 그뒤는 몇 주간 강습이었다. 강의 내용은 수많은 동물과 멸종위기의 동물 종보전, 자연생태계 복원, 인간의 탐욕으로 남획을 막고 인간과 공존하는 법 등 다양한 전문적인 교육이었다. 교육이 끝나면 필기시험과 면접 실연을 통해 실제 동물 앞에서 뭇관중이 보는 가운데 동물해설을 하며 최종선발을 거쳐 43명을 뽑는데 난 당당히 합격했다. 난 기뻐 날뛰면서 방안을 빙돌며 괴성을 질렀다. 아내가 놀라 날 쳐다보았다. 마치 로또복권에 당첨된 사람 같았다.
이렇게 환희의 순간을 만끽한채 동물원의 출근은 계속되었다. 동물원의 일과는 날 새로운 변신을 꾀하게 했다. 이유는 이른 아침에 출근하여 그날 체험학습을 올 아동 수 대로 당근, 배추잎(케일), 사료 등을 손질하는 것인데 당근은 하나하나 씻어 크기가 알맞게 자른 뒤 바구니에 준비하며 물기를 닦는 것이다. 그리고 코스별로 해설을 하며 체험교육을 시키는 것인데 예를 들면 최고의 광대처럼 재미있고 교육적인 산 교육이어야 인기가 있어 환영받는다. 즉 해설 방법 및 내용은 이러하다.
“어린이 여러분 안녕하셔요. 저는 동물해설사 xxx입니다. 제 별명은 영리한 원숭이구요. 오늘은 여러분을 남미 페루에서 많이 사는 기니피그 먹이주기, 다음엔 말, 나귀 다른 점 관찰, 다음에 사막에 사는 미어캣은 무엇을 즐겨먹나요? 여러분이 만약 이 침에 쏘인다면 생명이 위험하지만 이 동물은 즐겨먹는 전갈을 맛있게 먹지요. 다음엔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토끼 먹이주기, 꼭 장갑을 끼고 먹이를 줘야해요 하며, 케일잎과 배추잎을 잡는 법을 알려주고 다음엔 원숭이, 그리고 염소, 양 등의 특징을 설명하고 먹이를 주면 돼요. 먹이를 던지거나 동물을 귀찮게 하면 안돼요.”
머리를 흔들며 재롱을 떨고 나이 많은 노인답지 않게 귀여운 표정, 손짓으로 윙크를 날리며 분위기를 잡고 해설이 끝나면 지도일지를 깨알만한 글씨로 가득 채운 뒤 일과를 반성하고 정리한 뒤 귀가하는 것인데 이 생활이 어찌나 즐거운지 나의 즐거운 변신은 대만족이며 거기다가 듬직한 해설사 월급을 받는다. 도랑치고 가재 잡고 하듯이 건강챙기고 시간보내고 급료 받는 나이든 늙은이로는 최대한 대우며, 피복, 모자, 소지품, 간행물 등 다양한 혜택을 받아 최고의 나날을 보낸다. 정말 교직에 버금가는 변신이다. 나의 변신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다음 변신을 준비하고 실천했다.
실패의 나날에서 난 성공의 열쇠를 찾았다
-모형항공(글라이더, 고무동력 입상 및 국가대표가 되기까지)
동물원 해설이 없는 쉬는 날의 무료함을 달래고 내 취미생활 건강을 위해 고심하던 어느날 난 수원 제 10 전투비행단 블랙이글 축하비행과 공군참모총장배 스페이스 첼린져 모형항공기 대회를 참관했다. 아주 멋진 행사며 이 늙은 나이에도 나도 참가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 잡혔다. 내 자신도 할 것 같아서 서울과학사를 찾아가 모형항공기 셋트를 구입했다. 설명서대로 하나도 빠짐없이 만들었다. 밤을 새우면서 거의 완벽하게 조립하여 인근학교 운동장에서 시험 비행을 해봤다. 처음 만든 모형비행기지만 생각한 것보다 훨씬 잘 날고 체공 시간은 1분대였다. 몇 번을 날려봐도 아주 잘 날라서 기분이 아주 좋았고 자신이 생겼다. 이렇게 몇 번을 연습했다.
그리고 예선대회 즉 경기, 인천 예선대회가 수원 제 10 전투비행단에서 있었는데 그 대회에 참가했다. 내 차례가 되어 공군 보조원이 50m 후방에서 글라이더를 날려 주는데 왠지 몹시 서툴러서 믿음이 가지 않아 몇 번을 뒤돌아 보면서 뛰는데 글라이더가 영 상승을 하지 않고 왼쪽으로 “휙” 곤두박질하며 앞날개가 활주로 바닥에 부딪쳐 두동강이로 갈라져 1차 비행은 0점이었다. 난 당황해서 날개 조각을 회수하고 2차 비행 순서만 기다리고 있는데 남은 한 대 글라이더도 날개가 튼튼하지 못해 날개 중앙에 금이 가있었다. 급히 강력 접착제를 바르고 순서를 기다렸다.
두 번째 마지막 시합에서는 옛학교 과학주임이 와서 보조역할로 글라이더를 뒤에서 잡아주어 사수, 조수, 보조가 맞아 멋지게 바람을 가르며 높은 창공에서 선회하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회오리 바람이 불어 앞날개가 “우지직” 소리를 내며 망가진 채 공중에서 빠른 속력으로 활주로에 꼴아 박았다. 더 이상 기회도 없고 글라이더도 없어 퍽 아쉬웠지만 난 대강 비행기 잔해를 끈으로 묶어 보루지 박스에 쳐넣고 승용차편으로 귀가했다. 1년간 공들인 노력이 허사였고 그 공역과 재료비 등이 너무 아까워 눈엔 눈물이 고였다. 이렇게 무참하게 실패한 나는 집에 돌아와 실패의 원인을 분석했다. 그리고 노트에 기록하며 내년을 기약했다.
실패의 원인분석
◎ 모형 항공기가 튼튼하지 못해 쉽게 부서졌다.
→ 다른 참가자들은 낚싯대 카본으로 가볍고 튼튼하게 만들었다 : 재료 문제
◎ 견인자(사수)와 보조자(조수)의 싸인이 전연 안 맞음
→ 혼자만의 힘으로는 글라이더를 띄울 수 없음. 보조자 대동해야 함. : 보조자 양성
◎ 바람의 강약에 맞는 견인 연구
→ 견인 기술 부족. 연습이 필요함.
또 실패의 원인을 냉철하게 분석했다. 또 재료 및 여러 가지 계측장비 등을 준비해야 함을 알았다. 또 기록이 좋은 모형항공기는 스마트폰에 사진을 찍어 살펴봤다. 더 많은 지식을 얻기 위해 한국 최고의 장인에게 사사 받았다. 그러니까 한국 모형항공의 대부 격인 경복궁 옆 동학과학 심xx 사장의 50년 이상의 노하우를 하나씩 익혀가며 모형항공기 킷트 공장제품을 이용하지 않고 수제품을 하나씩 만들었다. 즉 앞날개, 동체 수평, 수직꼬리날개 종이는 외제를 사서 가볍고 단단하게 만들었다. 다음해에 대한 준비를 하나씩 진행했다. 제작 기술도 늘고 요령이 생겨 견인방법도 바람의 세기를 큰 연을 만들어 날리면서 익혔고 이탈 및 체공 시간을 연장하기 위한 다양한 기술을 습득했다. 두 번 다시 실패는 없다는 나의 각오는 연습으로 더욱 자신을 얻어갔다.
실패 후 1년이 지나 난 또 제 10 전투비행단 활주로에 시합을 위해 섰다. 조수는 우리집 차남이다. 평소에 같이 호흡하며 연습을 한 터라 손발이 “착착” 맞았다. 내 차례가 되어 계측하는 심사위원 대위의 신호가 떨어졌다. 난 무수히 연습을 한 터라 자신있게 센바람을 줄의 길이와 느슷함과 당김의 조화를 섞어 요리조리 걷다 뛰다하며 글라이더를 마치 살아있는 황새처럼 어루고 달래며 하늘 높이 띄우며, 그러니까 상승기류를 찾아 마치 강태공의 잉어낚시인양 뛰면서 글라이더 상태를 보며 살펴시 이탈시켰다. 많은 참가자와 구경꾼들이 박수를 치며 “무한대∞”를 연호했다. 아니나 다를까 난 일반부에서 3분(1차), 2차 3분 도합 6분으로 1위, 금상을 받았다. 60이 훨씬 넘은 노인이 상을 받는다고 축하박수가 유난히 컸다. 이렇게 예선은 작년의 패배를 설욕하고 회심의 미소를 먹음은 채 기쁜 마음으로 본선 대회를 준비했다. 대회는 9월이라 시간적 여유도 있지만 난 마음을 다시 잡고 제작 및 견인을 더욱 열심히 했다. 글라이더는 완전히 터득했다.
새파란 멍이 온 몸에 퍼져 기력이 쇠약해도 고무동력기는 내려야 했다
-청주 공군사관학교에서 본선, 공군참모총장대회, 고무동력기 이야기. 더 강하게 변신한 나의 모습
글라이더는 전국을 제패하고 몇 년간 노력 끝에 제 1인자로 자리메김 다. 이제는 고무동력부문이다. 처음부터 이 영역에는 값비싼 외국제품 및 부속으로 무장한 전국의 과학사의 문하생들이 주름잡고 있어 난공불락이었다. 거기다가 최신장비, 풍향풍속 계측기, 강력한 드릴로 신축성이 뛰어난 고무줄을 사용하는 그들을 따라잡기는 무리였다.
하지만 끈기와 변신의 귀재인 나는 하나씩 착착 계획을 진행했다. 그러니까 외제 고무동력기의 설계도를 수소문 끝에 구입하여 하나하나씩 내 기술로 개조했다. 고무동력기 동체, 외제는 값비싼 두랄루민·티타늄 등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난 이점을 가벼운 플라스틱을 말아 가늘게 쪼갠 대나무 껍질을 이용하여 트러스 공법으로 동체를 만들었는데 단단함은 물론 가볍기가 기본동체의 1/3 무게도 안되었다. 대성공이었다. 또 프로펠라의 크기가 기성품은 작기에 대추나무로 세밀하게 깎았고 고무줄은 미제를 구입했다. 또 프로펠라를 돌려 고무줄을 감는데 조수가 꼭 있어야 하는 번거러움을 덜기위해 혼자서도 고무줄을 감을 수 있는 장치를 발명했다. 즉 강력드릴에 강철고리를 부착시킨 뒤 프로펠라 걸이를 세워있는 기둥이나 나무에 감고 프로펠라를 회전시켜 감는 방법인데 어른이 잡아주는 힘보다 서너배 많이 감고 아주 편했다. 이렇게 만전을 기한 나의 변신 기술은 공군참모총장배 본선에서 빛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너무 가슴쓰린 추억이었다. 그러니까 본선대회 1차 시기에서 연병장의 축구 꼴대에 고무줄 감기와 드릴을 이용해 두서너배 많이 감은 고무동력기를 날렸는데 연병장 주위 아주 높은 반절쯤 죽어가는 소나무에 걸려 프로펠라는 허공을 향해 “빙빙”돌면서 ‘퍼덕’ 거렸다. 급히 달려가 행사 보조위원에게 내려 줄 것을 이야기했다. 보조요원은 철제 사다리를 펴서 준비한 장대로 내리려고 애썼지만 고무동력기에 닿지 않고 위험하다는 핑계로 포기하라고 내게 말했다. 하지만 난 보조원의 만류도 뿌리치고 사다리를 올라 소나무에 다람쥐처럼 올라가 장대에 갈쿠리를 달아서 힘껏 끌어당겼다.
하지만 고무줄이 가지에 감겨 풀리지 않아 한참만에 겨우 비행기를 내려서 떨어트리고 사다리가 걸쳐진 나무둥지를 디디는 순간 사다리가 넘어가 함께 떨어져 풀숲에 내동댕이쳐졌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어 회수한 비행기를 손보고 날개를 바로잡고 고무줄을 바꿔 꿰어 다시 드릴로 감아 마지막 2차시기에 임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2차시기 비행 체공 기록은 만점 3분 무한대였다.
내가 속한 조에서는 1등인데 다른 조의 기록이 궁금해서 각조의 기록을 조마다 쫓아 다니며 살펴봤다. 만점은 없는 것 같았다. 이윽고 전체 시합이 끝나고 시상식만 남았는데 난 기록이 좋아 늦게까지 대기했다. 몇 시간 뒤 시상식이 열렸다.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 일반부는 마지막이었다. “일반부 고무동력 금상, xxx” 내 이름이 호명됐다. 별이 4개이신 공군참모총장님이 직접 금메달을 목에 걸어 주시며 빙그레 웃으시며 “노익장을 과시하니 보기 좋습니다”하시며 부상과 상장을 주셨다. 그리고 기념촬영. 난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전국을 제패한 벅찬 변신이었다.
영광뒤에 따른 무서운 변화에 난 몇 달을 고생하며 치료에 온 정신을 쏟았다
-고무동력기를 내릴 때 사다리에서 떨어져서 아픈 이야기 (낙상사고 후유증에 헤멤)
하지만 시상식이 끝나고 귀가하는 승용차 안에서 엉덩이와 온몸이 쑤시기 시작했다. 처음엔 엉치뼈 그 다음엔 허리, 다음엔 목 등 차가 흔들릴 때마다 통증은 더 심했다. 난 천안 휴게소에서 내려 급히 화장실로 달려가 팬티를 내리고 아랫도리를 살펴봤다. 멍 비슷하게 푸르슴한 색이 하체에 내려앉았다. 난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다시 차를 타고 귀가했다. 금메달을 딴 기분이 가시지 않았기에 약간의 통증은 견딜만했다.
하루가 지났다. 통증은 온몸에 퍼지고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온몸을 살핀 뒤, 멍을 보고 주사와 처방전을 간호원에게 시키며 한달 가량 쉬면, 멍이 가실거니 걱정 말라며 진료를 마쳤다. 약국에서 복용약을 받아서 복용한지 일주일이 지나도 차도가 없었다. 온몸에 번진 시퍼런 멍, 거기다가 성기며 고환까지 자주빛 멍이 소변을 볼 때마다 공포가 더했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난 아내 몰래 한방병원을 방문했다. 한의사가 내 온몸을 보는 순간 혀를 차며 “빨리 왔어야지요. 이지경이 될 때까지 참고 있어요. 피가 굳으면 생명이 위험할 수 있는데”하며 날 나무랬다. 그리고 온몸에 수없이 많은 침과 뜸을 뜨고 1시간 쯤 후엔 부항을 뜬다며 엉덩이 부분을 내리고 부항을 수십차례 색이 진한 부분마다 검붉은 피를 뽑았다. 참 신기하고 시원했다. 이러길 하루 건너 두달 치료 끝에 정상으로 돌아왔다. 난 처음으로 한의학에 경이를 표했다.
멍이 가시자 마자 나의 변신은 계속되었다. 각종 모형항공대회와 더 나아가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하여 대표자격을 땄다. 그러니까 모형항공의 귀재로 변신한 나는 고등학교, 중학교 심지어는 경기도 과학연구원 위촉 강사로 뽑혀 모형항공 지도를 했다. 하지만 요즈음은 드론이 대세라 막이 내렸지만 퍽 아쉽다. 그렇지만 난 드론에 도전하기엔 너무 손놀림이 늦어 포기했다. 내가 할 일이 아니기에.
낙방의 고배를 마시며 다져지는 나의 글쓰기 실력은 마침내 빛을 보았다
-백일장에 도전한 나의 이야기
나는 모형항공기 기능 섭렵을 끝내고 또 다른 변신을 꾀하던 어느 날 문득 백일장대회 현수막을 지나가던 길에서 눈여겨봤다. 또 변신의 기회를 잡으려고 도전하기로 마음먹고 준비를 했다. 먼저 서울 ‘교보문고’를 방문해서 백일장 입상문집을 사서 탐독했다. 그리고 입상작품의 특징과 글의 짜임, 쓰는 요령을 습득 뒤 나도 백일장대회에 참가했다. 내 딴에는 정성껏 바른 글씨와 내용을 그럴싸하게 써서 제출했다. 몇 시간을 기다린 끝에 입상자 발표가 있는데 내 이름은 없고 정성을 쏟은 보람도 없이 낙방이었다. 영문을 몰랐다. 떨어진 이유를.
돌아오는 전철에서 난 글쓰기에 소질이 없는 게 아닐까 반문해봤다. 도통 이해가 가지 않은 수수께끼였다. 그 뒤 계속 백일장대회에서 낙방을 연거푸 서너차례한 뒤 난 그 어떤 1% 부족한 내 자신을 찾았다. 그러니까 난 겉만 번지르한 실속 없고 알맹이 없는 미사여구만 늘어놓고 감동이 없는 허황된 글을 쓴 것이다.
내 결점을 찾은 뒤 백일장 대회를 기다린 어느 날 대전 동구에서 ‘우암송시열’ 백일장이 있었다. KTX를 타고 원거리 대회를 참가했다. 전국에서 수많은 문사가 참여한 전통 있는 대회라 난 기가 팍 죽었다. 축하공연이 끝나고 글제가 발표됐다. 주제는 ‘어머니’였다. 난 어머니와 같이 산 50년을 눈물을 흘리면서 회상하는 글을 써내려갔다. 내 어머니는 70여리가 넘는 먼길을 걸어서 쌀을 머리에 이고 자취하는 전주의 언덕빼기 집까지 부식을 마련하여 난 배고픔 없이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 어려운 시절에. 그리고 내가 교사로 발령을 받아 전등불도 안 들어오는 산간 벽지 오지 학교에 부임했을 때 삼시세끼를 따뜻한 밥을 해주시며 허름한 관사에서 동고동락하시며 내 뒷배를 후원하셨는데 끝내는 영화를 못 누리신 채 돌아가셨는데 눈물겨운 사연을 하나하나씩 깨알같은 글씨로 써냈다.
그뒤 서너 시간 뒤에 입상자 명단이 벽에 붙고 호명이 되었다. “수필부 금상, xxx 나오셔요” 처음으로 받은 상 그것도 장원이었다. 돌아오는 KTX열차가 왜 그리 느린지 난 처음으로 느꼈다. 이렇게 시작된 나의 영광은 서울 한강 ‘구상백일장’, 고양 ‘어르신 백일장’, 수원 ‘정조대왕승모백일장’, 평택 ‘사랑사랑백일장’ 등 무수한 영광을 안은 채 난 제 2의 변신을 계속했다. 늙은 나이에 그 기쁨은 날 흥분케 했고 생에 대한 그 어떤 자신이 생기는 나날이었다. 난 이에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변신을 꾀하고 싶어 도전을 계속했다.
젊은이와 경쟁에서 스피드를 요하는 시합은 무리인가
-KBS1 ‘우리말 겨루기’에서 변신은 요원한 길인가?
매주 월요일 저녁 7시 40분 KBS1 TV의 ‘우리말 겨루기’는 날 들뜨게 한다. 그러니까 방영되는 월요일에는 모든 약속과 내 생활은 비상이다. 몇 년째 노트와 동영상을 캠코더를 찍어보고 여기에 수반되는 문제집, 국어사전, 속담, 사자성어, 크로스워드 책. 필요한 서적은 모두 구입해서 보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도 모두 구입하여 보고 준비는 매일 밥 먹듯이 한다. 하지만 달인을 향한 내 꿈은 한 발자국도 진전이 없다. 석두일까? 자책도 해봤다. 치매증상이 있나? 치매 검사도 했지만 치매는 아니었다.
‘우리말 겨루기’ 예심이 인터넷에 뜨면 내 마음은 왠지 급해진다. 그러니까 예심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KBS홀에서 수많은 경쟁자와 한판 겨루기를 한다. 주최측에서 준비한 지필고사 20문제를 크로스워드, 십자말 칸을 인쇄한 용지와 대형 스크린을 비추면서 두 번 읽어주고 단 20분만에 답안지를 회수하여 30분쯤 채점이 완료되면 참가자의 10% 정도 합격자를 불러 2차 면접 및 실기 그리고 방송에 하자가 없고 유모어, 또는 시청률을 높일 수 있는 재미있고 재치있는 참가자를 선별하는 테스트 과정이다. 난 예심에는 언제나 수월하게 통과하며 본방에 출연까지는 항상 무난하게 뽑힌다.
그 이유는 다 까닭이 있다. 40년간 교직에서 다져진 말솜씨, 동물해설사로 활동하면서 익힌 유모어, 평소 내 나이에 걸맞지 않는 가곡 레파토리가 있다. 예전 유럽 현지 이탈리아에서 외국 여행객 이탈리아 가곡 부르기에서 상을 탄 저력이 있기에 말이다. 예심을 합격한 나는 마지막 단계 면접에서 뜻밖에 노래를 한번 불러보라는 면접심사위원의 청에 망설이다 정색을 하며 무대에서 그 당시 뜨는 가곡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열창했다. 면접대기자와 심사위원 전원이 앵콜을 연호했다. 난 주저하지 않고 ‘슈벨트의 세레나데’를 더 열정적으로 불렀다. 노래가 끝나고 모두들 “늙은이가 웬 노래를 저렇게 잘 부르지”하며 혀를 찼다.
며칠 후 인터넷에 합격자의 이름이 떴다. xxx 상위에 랭크된 내 이름 석자. 본방송 출연을 연락받고 밤새워 깨알같은 국어사전 글자를 돋보기도 쓰지않고 보던 어느 날 더 이상 눈이 침침하고 흐려 안과에서 백내장 수술을 했다. 보름 후엔 글씨가 똑똑하게 보였다. 그런 어느 날 ‘우리말 겨루기’ 녹화가 있으니 10시까지 KBS 녹화장이 있는 본관으로 오라는 연락을 담당 PD에게 받고 새옷을 입고 이발을 하고 달려갔다. 내가 제일 먼저 온 것이다. 이윽고 출연자 전원이 당도하여 분장실에서 마치 장가가는 새신랑마냥 아주 정성이 담긴 분장을 받았다. 기분이 황홀했다.
한 시간 뒤 녹화방송으로 ‘우리말 겨루기’가 엄지인 아나운서의 진행으로 시작되었다. 첫 단계부터 중간까지는 최상위 점수로 정상이었다. 우승이 눈앞에 보이며 젊은이들도 별것 아니구나 하며 자신이 생겼다. 마악 누름단추 벨을 누르며 우승을 확정짓고 싶은 감정이 앞섰다. 지나친 과욕이었다. 기다리면 결승단계에 진출하는데 감점이 시작됐다. 오답이 연속된 나의 경거망동은 끝내 빛을 보지 못한 채 끝났다. 멋진 변신, 변태는 지나친 욕심과 만용 때문에 끝났다.
하지만 한 번 출연한 사람은 2년을 기다리기에 매미는 땅속에서 수년을 기다리는데 난 다시 변신의 칼을 간다. 2년간 그리고 화려한 날개를 펴며 푸른 창공을 “훨훨” 날아다닐 그날의 변신을 꿈꾸며 오늘도 내 길을 간다. 숨이 멎는 순간까지 나의 변신은 계속될 것이며, 이 길을 기꺼이 간다. 오늘따라 하늘이 더 높게 보인다. 이제 내 나이 80. 앞으로 20년은 더 살아가며 끝없는 변신을 꾀하며 더 행복한 나날을 영위해야 하지 않을까? 무한한 변신. 이제 무엇을 찾아 또 화려한 변신을 해야 할지 고민이다. 변신은 날 행복하고 건강하게 만든 만병통치약인가 보다. 나의 변신은 오늘도 계속된다.
•수상소감 - 우수상 미니자서전 은정남
“죽는 순간 숨이 멎는 순간까지 도전하고파”
응모하신 사람 중에서 나이가 좀 많습니다. 팔순이니까요. 그래서 저의 하찮은 글을 건져 올려주셔서 너무 고맙고요. 용기를 주신 선생님들과 캐나다에 이민을 간 아들한테 축하 인사 받았는데 정말 뿌듯합니다.
큰 용기와 힘을 얻었어요. 그래서 이제 앞으로 이제 세상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더 열심히 쓰고 또 갈고 닦아야겠죠. 죽는 순간까지 숨이 멎는 순간까지 모든 것을 해보고 싶어 공모전에 출품하게 됐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노인들이 많잖아요. 노인들은 지하철 공짜로 타며 놀러 다니고 또는 복지관이나 문화센터 같은 곳에서 할 일 없이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많아요, 사실 도움이 안 돼요. 그래서 이제 그런 걸 탈피하기 위해서 제 나름대로 여러 가지 해봤는데 이번에 글을 한 번 써봤어요.
고등학교 다닐 때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시인 신석정 시인이 저희 은사였습니다. 그래서 글을 좀 잘 쓰려고 나름대로 좋은 책 많이 읽고 또 문학 활동을 꾸준히 했습니다.
제가 글을 쓰면 항상 친구들이나 동호회 회원들에게 카톡으로 공유했어요. 그러면 그분들이 모니터링해 주면 수정하며 첨삭하면서 배웠습니다. 학창 시절 백일장에 장원은 떼놓은 당상일 정도로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긴 했지만….
이번 수상을 계기로 자신감 가지고 소설을 써보려고 합니다. 제가 경험했던 동물해설사, 모형항공기, 우리말 나들이 도전을 통해 만났던 사람들이나 사건을 소재로 삼아서 소설을 써보고 싶습니다.
우리말과 우리글이 있어 행복합니다. 일감이 있다는 것은 어른으로서 큰 자부심을 느끼는데 이번에 ‘50+ 시니어 신춘문예 공모전’을 준비한 주최 측에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 다시 하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쓸 만한 어른들과 아까운 시니어들이 많거든요. 사실 어르신들은 좋은 자원과 자산을 갖고 있고 재능과 경험이 다양한데 쓸모없이 이렇게 소멸해 가는 게 너무 안타까워요. 이번 공모전이 뜻 깊은 일을 하고 인생의 마무리를 하는 시니어들에게 힘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자신보다 더 저를 믿어준 가족들에게 고맙고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헉! 이거 뭐지? 혹시 그날 아람이가 얘기했던 게 이건가?’
누리는 미술관의 다섯 번째 전시실 모퉁이에 걸린 그림을 보다가 놀라 뒷걸음질 쳤다.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마침 까만색 유니폼을 입고 목에는 스태프 라고 쓰인 표를 달고 있는 남자가 느린 걸음으로 5전시실로 들어서고 있었다.
“저 아저씨! 저 그림 좀 이상해요.”
“응? 뭐가?”
“그러니까 저게...”
하면서 누리가 다시 그림을 보니 그림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멀쩡했다.
검은 머리를 단정하게 뒤로 묶고 갸름한 얼굴에 눈에는 슬픔이 가득 담긴 채 마치 맞은편에 있는 남자 그림을 바라보는 것 같은 모습. 조금 전 누리가 봤던 그 놀라운 모습이 아니었다.
“저- 그게 저 그림이... 아, 아니에요.”
직원은 누리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더니 다시 천천히 걸으며 다음 전시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림을 보는 게 아니라 전시실에 상태를 살피는 거 같았다.
누리는 자기가 착각을 한 걸까 생각하면서도 이상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이번 전시를 오픈하던 날, 아람이가 했던 말이 떠오르자 자기가 본 것이 착각이 아닐 거라고 확신했다.
누리는 다시 그 여자그림 앞으로 가려다가 그만 두었다. 무슨 괴기 영화나 환타지 영화에서 본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싶으면서 지금 이 순간을 함께 해줄 사람이 그리웠다. 아람이랑 얘기를 하고 싶었다.
전시 개회식은 일주일전 목요일 오후 5시에 있었다.
할머니는 미술관을 놀이터 드나들 듯 좋아하는 누리 때문에 미술관에 자주 가시게 됐다. 그러다가 지난 가을부터 미술관에서 하는 도슨트 교육을 받으셨다. 도슨트는 미술관에서 관람객에게 전시에 대한 여러 정보와 전시물,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설명해주는 봉사자라고 한다. 그날 할머니가 누리에게 전시 오픈식에 참석해서 작가들을 만날 거라고 함께 가자고 하셨다. 누리는 미술관엔 자주 가서 그림과 조각들을 보았지만, 작가들을 직접 만나본 적은 없었다. 더구나 오픈식이 끝나면 맛있는 다과 파티도 있다는 할머니 말씀에 누리는 냉큼 할머니를 따라 나섰다. 그렇지만 아람이는 시큰둥했다.
이란성 쌍둥이로 태어난 아람이와 누리는 불과 32분 차이로 세상에 나왔다.
아람이는 12월 31일 밤 11시 49분, 누리는 다음 해 1월 1일 0시 21분.
부모님은 출생신고를 하면서 잠깐 같은 날로 올릴까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결국 병원에서 기록한 그대로 출생신고를 해서 아람이는 학교도 한해 먼저 들어갔다. 4학년이 된 아람이는 걸핏하면 3학년 보다 4학년이 되니 할 일이 너무 많다며 유세를 부렸다.
쌍둥이지만 둘은 비슷한 것보다 다른 면이 훨씬 많다.
아람이는 책을 좋아하고, 누리보다 덩치는 작지만 야무져서 누나답다는 얘길 많이 듣는다.
누리는 활발하고 덜렁거리는 편이다. 그렇지만 게임이나 그림 그리는 것, 만들기는 아람이보다 선수다. 그래서 할머니와 엄마는 ‘금손 누리’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한다.
오픈식 때, 아람이가 미술관 건너편에 있는 학원에서 수업이 일찍 끝났다며 미술관으로 왔다. 전시 담당 큐레이터가 인사를 하고 전시 기획의도를 알려주는 동안 할머니는 메모장을 들고 제일 앞쪽 자리로 가서 앉으셨고, 누리는 다과가 차려지는 쪽 가까이 앉았는데 아람이는 지루했는지 혼자 전시실로 들어갔다.
문화재단 대표이사가 활짝 웃으며 조선 왕릉이 세계문화유산의 반열에 오른 것은 역사적인 사건이라며 오랫동안 얘기 했다. 그다음엔 그 왕릉 중 8기가 우리 시에 있으니 큰 자랑거리라고 시장이 더 길게 길게 얘기했다. 누리가 보니 가슴에 꽃을 달고 한쪽에 쭈-욱 앉아 있는 사람들이 작가들 같았다. 작가들도 지루한지 얘기하는 시장을 보다가 바닥을 보다가 자기 손을 맞잡았다가 했다. 그때 얼굴빛이 빨갛게 상기된 아람이가 누리 옆으로 오더니,
“누리야, ‘류원’이란 화가는 어디 있어?”
하고 물었다. 행사 식이 끝나면 재빨리 좋아하는 케잌을 먼저 집으려고 음식물들이 있는 상을 보고 있던 누리는
“나도 몰라. 아직 작가들은 인사 안 했어. 저쪽에 있는 사람들 중에 있을 거야.”
하며 작가들 쪽을 가리켰다.
그때, 드디어 누구에게 감사하고, 또 누구에게 감사하고, 또, 또 누구에게 감사말씀을 전하는 바라고 말하던 시장님 얘기가 끝나고 작가들 인사 차례가 되었다.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이 어떤 인물과 관계된 것인지 어떤 방법과 의도로 제작한 것인지를 짧게 얘기했다. 그런데 여덟 명의 얘기가 다 끝났는데 ‘류원’이란 작가는 없었다.
사회를 보던 큐레이터가 말했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는 총 11명인데 그중 세 분은 개인 사정과 해외 전시에 참여하느라 못 왔으니 양해바랍니다.”
아람이는 실망하는 표정이 되었다.
“왜 그러는데?”
누리가 이상하다는 듯 묻자,
“글쎄- 내가 잘 못 본 걸 수도 있어서......”
하다가 누리를 빤히 보며 물었다.
“너 다음에 또 올 거니?”
누리는 전시가 열리는 동안 적어도 두세 번은 관람을 하곤 했다.
집에서 10분 거리인데다가 시립 미술관이라서 입장료도 저렴하다.
또 미술관 간다고 하면 엄마는 늘 입장료에 1,000원을 더 얹어 준다.
그러니 누리에게 미술관 관람은 그야말로 1석 2조, 아니, 1석 3조도 넘는 거다.
“당연하지. 오늘은 사람들이 많아서 제대로 볼 수도 없을 걸.”
“그럼 다음에 올 때 5 전시실에 있는 ‘류원’이란 화가 그림 좀 자세히 봐줘. 정말 이상했거든.”
“뭐가?”
“그건 네가 그림 보고난 다음에 얘기 할 게.”
‘그래. 아람이도 그날, 분명 나랑 같은 걸 봤을 거야.’
마음이 급해진 누리는 여섯 번째, 일곱 번째, 그리고 마지막 전시실도 그냥 지나쳐 집으로 내달렸다.
현관문 번호단추를 빠르게 눌렀다. 운동화는 벗겨져 날리듯 흩어졌지만 그건 쳐다볼 생각도 없었다.
“아람아, 아람아 너 그거 봤지?”
급하게 자기를 찾는 누리를 보면서도 아람이는 소파에 앉아 동화책을 읽다가 느긋하게 한 마디 했다.
“저런~ 누나라고 불러야지. 3학년 꼬마야.”
“웃기지마. 너 그거 봤지, 맞지?”
“음- 너, 지금 미술관 갔다 온 거구나?”
“그래. 그 ‘류원’이란 화가가 그린 여자 그림 봤어.”
“어땠는데? 너도 이상했어?”
“있잖아. 꼭 ‘헤리포터’ 영화에서 본 그림들처럼 움직이고 나한테 말을 거는 같았어.”
“그래? 내가 볼 때도 그랬어. 근데 그거 너 혼자 봤어? 무슨 말을 했어?”
“몰라. 무서워서 뒤로 물러섰더니 원래대로 안 움직이는 그림이 됐어. 넌?”
“나도 잘 모르겠어. 갑자기 그림이 움직이면서 말하는 거 같아 얼른 밖으로 도망쳤지. 다른 사람이 하나도 없었거든.”
“나는 거기 직원 아저씨한테 물어보려고 했는데, 그림이 그대로 안 움직이는 거야. 그래서 미쳤다는 소리 들을까봐 그냥 한참 동안 서 있다가 너랑 얘기하려고 얼른 온 거야.”
“마법 그림인가? 그런 게 정말 있는가봐. 그치?”
아람이가 일어나며 말했다.
“이상해, 이상해. 우리 지금 가 보자.”
“안 돼. 지금 가도 소용없어. 미술관은 6시까지만 연단 말이야.”
아람이가 다시 소파에 앉으며 무슨 큰 결정이라도 내리는 듯 누리에게 나직이 말했다.
“우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우리끼리 비밀을 풀어 보자.”
“무슨 비밀?”
“그림 속 여자는 왜 우리에게 말을 건 것인지, 정말로 그림이 움직이는 게 우리 눈에만 보인 건지. 이유가 있을 것 같아. 왜 있잖아, 동화나 영화에서 나오는 그런 거. 우리가 그 여자의 원한이나 비밀을 푸는 순수한 아이들로 선택된 걸지도 모르잖아.”
아람이는 야무지게 말했지만, 누리는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종잡을 수가 없었다.
“누리야, 우선 이번 전시의도를 알아야 하고 ‘류원’이란 화가는 왜 그런 그림을 그렸는지 알아야 해.”
“그건 어렵지 않아. 전시가 설명된 리플릿도 있고 10시, 11시, 오후 2시, 3시엔 전시를 설명해 주는 선생님들도 있거든. 아, 이번부터 할머니도 미술관에서 도슨트 하니까 할머니한테 물어보면 간단하겠다.”
“아냐. 그럼 재미없지. 우리가 선택됐으니까 우리가 해결하는 거야. 어른들에겐 비밀로 하고.”
아람이는 다시 눈동자를 굴리며 입술을 옴찔거리며 생각을 모으느라 애썼다.
“그래. 우선 전시 리플릿부터 보자. 너 갖고 있지?”
“물론이지. 난 여태껏 전시 리플릿은 다 모았다니까.”
누리가 자랑스러운 얼굴로 뒷주머니에서 리플릿을 꺼내 놓았다.
아람이와 누리는 머리를 나란히 하고 전시 설명이 담긴 네 면으로 된 리플릿을 읽었다.
앞면엔 전시 제목과 대표 작품 사진, 전시 날짜가 적혀있고, 안쪽 두 면에는 전시 내용과 사진 두 개가 있었다.
왕릉의 전설
-조선 왕족들의 미술관 행차-
은 조선왕조 500년을 이끌어 왔던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은 가장 화려한 삶의 중심에 있었으면서도, 권력과 명분 획득을 위한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서 혹독한 고독과 괴로움을 겪어야 했던 증언자들이기도 하다. 이들 왕족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처절한 주인공으로 8인을 선정하고 각 존재들에 대한 시각적 대화를 시도하는 작가 11명의 작품을 소감형식으로 구성한 전시이다.
전시의 소재가 된 왕족은 인수대비, 폐비 윤씨, 인종, 소현세자, 숙종, 희빈 장씨, 의빈 성씨, 그리고 철종이다.
왕릉이라는 신들의 정원에는 그들이 마저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전설이 전해온다.
인간의 삶이 언제나 그러하듯 온전하게 충족되지 못한 애절한 마음은 후손인 우리의 심정을 흔들어 생각을 일으킨다.
사실 조선왕조의 역사적 의의가 갖는 무게에 비해 현대인들의 그에 대한 관심은 가벼웠다.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그 표현 중심에서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인간의 본질적 욕망과 치열한 꿈의 허상을 새로운 예술적 형식으로 보여줄 것이다.
여기까지 읽고 나자 누리가 투덜거렸다.
“이게 뭔 말이야아~? 난 짜증나.”
“어른들한테 보여주는 거라 그래. 어쨌든 조선시대 왕족들 얘기를 그린 작품이란 말이지 뭐.”
“그럼, 류원이란 화가는 누구 얘길 그린 걸까?”
누리가 마음이 급해져서 뒷장으로 넘겼다.
뒷면에는 참여 작가 11명의 이름과 간단한 작품 내용이 있었다. 문경은, 태인주, 노장현, 박영훈, 류원, 신희경, 백승민, 최원범, 우정석, 김화준, 이민숙. 누리와 아람이는 류원 작가 옆에 있는 글만 소리 내어 읽었다.
“류원은 신비한 전설 속 이야기를 끊임없이 제작하고 있는 작가이다.
이번 전시에는 고양시 서삼릉에 있는 정조의 후궁 의빈 성씨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데, 그동안 작가가 그려오던 기법에서 크게 벗어난 새로운 시도를 엿볼 수 있다.”
“의빈 성씨 얘기라고?”
아람이는 의빈 성씨를 아는 거 같은 표정이었다.
“그게 누군데? 너 알아?”
“응.”
“어떤 사람인데?”
아람이가 좀 뻐기는 표정으로 누리에게 말했다.
“누나, 아니 '누님 알려 주시옵소서.'하면 가르쳐 주-지.”
“야! 겨우 32분 먼저 태어났다고 그 소릴 듣고 싶냐? 나 같으면 그냥 친구먹자고 하겠다.”
“싫음 말구.”
“어-휴!”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궁금증이 풀릴 열쇠인 것만 같아서 누리는 ‘이번만’하는 맘으로 더 과장되게 아양을 떨었다.
“누님, 저는 의빈 성씨가 누구인지 매우, 매우, 매우 궁금하옵니다. 알려 주시옵소서.”
“좋다! 내 알려주지. 잠시만 기다리거라.”
그러더니 아람이는 누리에게 의빈 성씨가 누구인지 얘기는 않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왜? 가르쳐준다면서 왜 가?”
아람이는 책 한 권을 들고 나오며 말했다.
“내가 좀 똑똑한 편이기는 하지만 그걸 다 외우는 건 아니쥐이. 여기 봐-.”
아람이는 ‘조선왕조실록’이란 만화책권을 펴서 195쪽에 있는 ‘제 22대 정조 가계도’를 손가락으로 톡톡 가리켰다.
거기엔 정조 밑으로 ‘효의왕후 김씨(1753~1821)- 후사 없음’ 이라 적혀 있고, 그 다음 줄엔 ‘의빈 성씨(1753~1786)-1남, 문효세자 일찍 죽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림 속 여자가 이 사람이구나. 그런데 그래서 뭐가 어떻다는 거야?”
“이거 봐. 의빈 성씨는 겨우 서른네 살에 죽었어. 그러니까 뭔가 사연이 더 있을 거야. 이 책에서 보면 화빈 윤씨가 미워한 거 같거든.”
아람이는 입을 야무지게 다물더니 말했다.
“그래서 화빈이 의빈 성씨를 죽였대?”
“아니. 그런 건 없어. 그렇지만 아직 풀리지 않은 원한이 있어서 우리한테 말을 걸었는지도 모르잖아. 그러니까 우리가 알아내야지. 그림 속 여자가 우리한테 하려고 하는 말도 뭔지 알 수 있고, 영혼을 달래줄 수도 있겠지.”
“하~ 아람아! 내가 보기엔 넌 이상한 책을 너무 많이 읽은 거 같아.”
“뭐라구? 너도 그림이 움직이면서 말하는 거 봤다며? 얼마나 억울하면 그림이 말을 다 하겠니?”
“엄마랑 아빠한테 물어 보자. 아니 이따가 할머니한테 물어 보는 게 낫겠다.”
“안 돼, 안 돼. 하지 마! 이렇게 재밌는 사건이 우리 평생에 얼마나 있겠어? 어쩌면 이건 우리 생애 최고로 짜릿한 비밀을 만들 수 있는 기회란 말이야.”
“치~ 비밀 만들고 싶은 거야?”
“동화를 읽다보면 비밀이나 엄청난 사건이 생겨서 주인공이 재미난 경험을 하는데, 우린 언제 그런 일이 생기겠어? 만날 똑같은 날이니... 그러니까 너랑 나, 둘이서만 이 문제를 풀어보자고. 내가 너한테 슬라임 전부 다 줄게.”
“진짜? 앗~싸~. 그러지 않아도 만들고 싶은 게 있어서 엄마한테 사달라고 조르려고 했는데... 좋아! 어떻게 하면 돼?”
“우선, 의빈 성씨에 대한 자료를 더 찾는 거야. 그리고 미술관에 가는 거야. 사람들이 없는 시간에.”
“사람들이 없는 시간을 어떻게 알고? 5 전시실에서 사람들이 나가길 기다려야 하나?”
“그렇지! 자, 이제 자료를 어떻게 찾는다? 도서관에 가야 할까?”
“에이 바보! 컴퓨터로 인터넷 검색을 하는 게 빠르지.”
아람이는 민망한 듯,
“아하하... 그렇구나. 근데 조금 있으면 엄마랑 아빠 집에 올 시간이야. 그니까 일단 오늘은 숙제 하는 척 하면서 이 책을 보고, 내일 학교 갔다 와서 찾아봐야지.”
“와~ 철저하네. 난 그냥 내일 학교 끝나고 곧장 미술관에 가서 의빈 성씨랑 단판을 내고 싶구만...”
다음 날 오후, 누리는 학교 운동장에 땀을 흘리며 친구와 축구공으로 놀고 있는데 아람이가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누리야, 누리야아~~ 지금 미술관 가자~~”
“너네 누나도 미술관 좋아하냐? 이상한 남매야. 나도 이제 학원 가야겠다.”
하며 친구가 교문밖으로 나갔다.
“나 입장료도 없단 말이야.”
누리는 아람이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야! 내가 누구냐? 초대권을 할머니한테 두 장 받았어. 그리고 인터넷 검색은 아까 점심시간에 도서실에서 해놨고.”
“역시! 짱인데.”
“학습지 선생님 올 시간 맞추려면 빨리 갔다 와야 해. 뛰자~”
1 전시실에서 4 전시실까지는 건너뛰고 5 전시실로 들어간 아람이와 누리는 다른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의빈 성씨의 그림 앞으로 다가갔다.
아주 잠깐, 그림은 그림인 채로 있었다. 그런데 그림 앞 1m 정도로 바짝 다가가자 그림이 움직이며 말을 걸었다.
“어서오세요.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헉! 정말요? 왜요?”
누리가 깜짝 놀라 물었고, 아람이도 서둘러 말했다.
“무슨 사연이 있으신 거죠? 혹시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셨나요?”
“아~ 글쎄... 왜 그렇게 생각지?”
“내가 다 찾아봤어요. 이름은 성덕임이고, 정조 임금님이 무척 사랑했고, 아들인 문효세자는 다섯 살에 죽고, 딸도 태어나서 첫돌도 안 돼서 죽었잖아요. 또 세 번째 아기를 낳기 두 달 전에 죽은 것도 알아요.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거 아닌가요?”
“어머나! 나에 대해서 많은 걸 공부했구나? 고맙다. 그렇지만- ”
그때, 세 사람이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5전시실로 들어 왔다.
“아니, 이게 누구야? 우리 아람이랑 누리네! 책가방도 메고 있는 걸 보니 학교에서 곧장 왔구나?”
“네, 할머니.”
할머니와 인사를 나누며 그림을 돌아보니 그림은 다시 멈춰 있었다.
아람이와 누리는 눈을 맞추고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망설였다.
그런데 그림이 다시 움직이며 말을 시작했다.
“정조 임금님과 나는 금슬 좋은 부부였지요. 정조 임금님은 내가 죽은 후 저를 애도하는 글을 많이 써 주셨지요. 저는 지금도 그분이 그리워 이렇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답니다.”
눈이 휘둥그레진 누리와 아람이와는 달리 할머니와 다른 두 분은 웃으며 그림을 향해 인사했다.
“수고가 많아요. 박선생님!”
다시 또 놀란 누리가 물었다.
“할머니! 어떻게 된 거에요?”
“이런 작품은 누리도 처음 보지? 이런 작품을 ‘인터렉티브 아트’라고 하는 거야. 테크놀러지가 결합되어 관객을 만나야 완성되는 작품. 관객들이랑 얘기도 나눌 수 있어.”
“그럼 그림 안에 AI라도 들어 있는 거예요?”
이번엔 아람이가 물었다.
할머니가 바닥의 한 부분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그건 아니고 여기 이 지점에 사람이 서면 센서가 작동해서 관람객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그림 뒤에 숨어 있는 분이 말을 하는 거지. 그러면 디지털로 된 그림이 움직이는 거야.”
“그림 뒤에 있는 분은 우릴 볼 수 있어요?”
“소리는 들을 수 있지만 보지는 못 해. 컴퓨터를 앞에 놓고 검색어를 치면서 여러 가지 질문에 답도 해야 하니까. 하하, 내가 비밀로 해도 될 걸 너무 많이 알려준 건가?”
그제야 아람이와 누리는 모든 게 이해되었다. 그러면서도 누리는 디지털 그림이 너무나 감쪽같아 놀라웠고, 아람이는 신비한 경험을 놓친 거 같아 크게 서운했다.
나중에 아람이와 누리에게 둘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얘기 듣고, 할머니는 즐겁게 웃으며 말했다.
“애들아! 할머니는 너희들 덕분에 미술관에서 새로운 걸 많이 배우고 또 그걸 여러 사람과 나눌 수 있어서 참 좋구나. 더구나 그림 하나가 호기심을 자극해서 이렇게 배워나가는 아람이랑 누리를 보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
•수상소감 - 우수상 동화 배홍숙
“동화나 그림책을 쓸 땐 내 생각이 신기해 기분이 좋아져요”
감사합니다.
블로그에 동화를 몇 편 써 두고 공개는 안했는데, ‘50+ 시니어 신춘문예 공모전’에 처음 응모해서 이렇게 상을 받으니 많이 기쁩니다.
독서 동아리 회원이 공모전이 있다고 단톡방에 링크를 걸어주셨어요. 그 분도 우수상을 받았습니다.
응모 부문에 동화가 있어 용기를 내봤습니다. 어쩌면 50대 이상이 참가하는 거라면 동화 부문 응모자가 적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하면서…
글쓰기 관련 책을 보기도 하고, 강의도 가끔 듣습니다. 함께 독서동아리 활동을 하는 친구들과 가족, 제가 하는 모든 활동이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적극적인 글쓰기엔 특별한 동기가 필요한 거 같아서 ‘50+ 시니어 신춘문예 공모전’ 이후에 다른 공모전이 있나 살펴보고 있습니다.
어떤 출판사에서 책을 내자고 요청이 온다면 글쓰기에 더 큰 동기부여가 될 것 같네요.
내가 쓴 에세이는 항상 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화나 그림책을 쓸 땐, 내가 해낸 생각들이 신기해서 기분이 좋아지고요.
그래서 새로운 아이디어로 동화나 그림책 글을 계속 쓰면서, 감동을 주는 좋은 수필도 쓰려고 노력하겠습니다.
공모전 정보를 주셨던 선생님, 잘못된 파일 경로를 수정하라고 알려주신 담당자에게 감사드리며, 독서동아리 친구들과 어린 시절에 많은 얘기를 들려주셨던 엄마와 외할머니, 응원해 주는 식구들에게도 감사함을 전합니다.
‘뒷방 늙은이’를 거부하는 시니어들이 있다. 젊은 층 못지않게 인터넷과 스마트폰 활용에 익숙하고, 자신을 위한 소비에도 적극적이다. 이들이 ‘덕질’에 뛰어들며 새로운 ‘엄마·삼촌 팬’ 문화를 만들고 있다. 시작은 MZ세대와 비슷했지만 남다른 재력과 소비력으로 차원이 다른 덕질을 보여주는 ‘오팔 세대’를 들여다봤다.
요즘 어른들은 뭔가 다르다.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태도로 남은 인생을 수용하는, 그저 나이 들어버린 존재가 아니다. ‘노(NO)노(老)’를 외치며 활발한 사회활동과 네트워킹으로 정체성을 찾고 젊은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한다. 이들은 바로 오팔 세대다.
오팔(OPAL, Old People with Active Lives) 세대는 베이비부머를 대표하는 1958년 개띠 ‘58’과 발음이 같고, 은퇴 이후에도 삶을 즐기며 사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5060세대의 다채로운 행보가 다양한 색을 담고 있는 보석 ‘오팔'과 닮았다는 의미다.
“너네만 덕질하니? 엄마도 삼촌도 한다”
최근 오팔 세대 사이에서 ‘덕질’이 화제다. 젊은 세대의 전유물 같았던 덕질이 전 세대로 퍼지고 있다. 덕질은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심취해 그와 관련된 것을 모으거나 찾아보는 행위를 이르는 말이다. 분야는 연예인, 게임, 만화, 음식, 반려동물 등 매우 다양하다.
오팔 세대의 덕질은 MZ세대 못지않다. ‘내 가수’가 출연하는 TV 프로그램은 무조건 본방 사수다. 관련 기사도 부지런히 확인한다. 음원 결제도 서슴지 않는다. 신한카드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연령대별 음악·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이용 증가율은 20~40대가 71%인 데 비해 5060세대는 101%로 크게 늘었다.
오팔 세대는 MZ세대 덕질의 필수인 ‘스밍 총공, ‘조공’, ‘기부 서포트’, ‘굿즈 구매’ 같은 문화를 빠르게 흡수하고 있다. 스밍 총공은 좋아하는 가수의 음원 순위를 올리고자 특정 시간에 일제히 해당 곡을 듣는 것을 말한다. 조공은 좋아하는 연예인에게 선물을 보내는 행위다. 기부 서포트는 스타와 팬덤 이름으로 기부하는 활동을 일컫는다. 굿즈는 사진과 DVD, 각종 소품 등 연예인이나 애니메이션에 관련된 상품이다.
“이것이 어른의 덕질이다”
바야흐로 트로트 르네상스다. 2019년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 ‘미스트롯’ 흥행을 계기로 그동안 ‘고리타분한 음악’으로 치부돼 비주류로 밀려났던 트로트가 오팔 세대 덕에 가요계에서 다시 급부상했다. 그 중심에는 미스트롯 우승자 송가인이 있다. 그의 팬클럽 ‘어게인’은 오팔 세대만의 팬 문화를 만들었다. ‘이것이 진정한 어른의 덕질’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이들은 MZ세대 팬들과는 다르다. 팬카페에서 솔직하게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드러내며 댓글을 단다. 온라인에서 처음 만났지만 익명성 뒤로 숨지 않고 서로 예의를 지키고 싶어서다. 송가인이 한참 어린 딸이나 손녀뻘이라도 ‘가인 님’, ‘가인 씨’라고 부른다. 말도 잘 놓지 않는다. 송가인의 SNS에는 “송가인 님 덕에 힘을 얻고 있어요”와 같은 존칭 문장이 주를 이루는 반면, 아이돌 SNS에서는 “언니 보고 벽 부수다가 우리 집 원룸 됐어”, “오빠는 경마장 가지 마. 말이 안 나오니까”와 같은 요즘 유행하는 ‘주접 댓글’을 볼 수 있다.
남다른 조공 문화도 눈에 띈다. ‘건강이 최고’라 생각하는 오팔 세대 팬들은 송가인에게 홍삼, 참치회, 산낙지 같은 건강식품을 박스째로 선물한다. 브랜드 의류나 액세서리보다는 몸을 챙겨주려는 마음이 돋보인다.
미스트롯 흥행을 디딤돌 삼아 2020년 출격한 ‘미스터트롯’은 ‘엄마 부대’라는 새로운 광풍을 일으켰다. 임영웅의 팬클럽 ‘영웅시대’는 6월 16일 임영웅의 생일을 기념하며 ‘착한 덕질’의 표본을 보여줬다. 전국적으로 선풍기 100대 기부, 취약아동 생계비 지원, 저소득 어르신 무릎인공관절 수술 지원 등 릴레이 나눔 캠페인을 이어갔다. 또 서울부터 부산까지 팬클럽·지역연합이 모여 전국 곳곳에 있는 버스 정류장과 지하철역에 릴레이 광고를 진행했다. 전국의 영웅시대가 서울 지하철역 생일 전광판 광고를 보러 지방에서 올라오기도 했다.
구매 대란 만든 삼촌 팬
오팔 세대는 ‘뒷방 늙은이’를 거부한다. 탄탄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활동을 즐긴다. 무엇보다 자신을 위한 소비에 아낌이 없다. 덕질도 이런 활동 중 하나다. 오팔 세대는 소비 력이 남다르다. 최근 브레이브걸스에 빠진 ‘삼촌 팬’들이 이를 제대로 보여준다. 해체를 앞두던 브레이브걸스(민영, 유정, 은지, 유나)가 올해 초 역주행을 하며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보통 역주행은 반짝인기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들은 인기를 계속 이어가며 대세로 떠올랐고, 광고계에서도 블루칩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런 배경에는 브레이브걸스의 잠재력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삼촌 팬의 활약이 컸다. 통 큰 팬 일화도 끝없이 나온다. 한 팬은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 캐릭터 꼬부기를 닮아 ‘꼬북좌’라는 별명을 가진 유정의 꼬북칩 광고 계약을 기원하며, 과자회사 주식을 3000만 원어치 매수했다.
주방용품 브랜드 해피콜은 브레이브걸스를 내세운 마케팅을 시도해 ‘쁘걸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해피콜에 따르면, 프로모션을 시작한 5월 24일부터 일주일간 자체 온라인몰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400% 늘었다. 해피콜 자체는 물론, 주방용품 시장 전체로도 기록적인 수치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반응이다.
브레이브걸스 삼촌 팬들은 일단 제품을 구매하고 본다. 멤버가 사용하는 제품은 일단 산 뒤 해당 업체에 ‘여성만 쓸 수 있는 거냐’고 나중에 문의하는 식이다. 이처럼 브레이브걸스가 광고하는 상품은 삼촌 팬 덕에 매출이 2~4배 이상 늘며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덕질의 순기능
덕질이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는 분석도 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발표한 ‘트로트 열풍으로 보는 오팔 세대의 부상과 팬덤 경제’ 보고서에 따르면 “경제적·시간적 여유가 있는 오팔 세대에게 덕질은 잃어버린 나의 정체성을 찾고 위안을 얻는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오팔 세대는 덕질을 시작하고 인생이 행복해졌다고 말한다. 지난 4월 SBS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에서는 임영웅의 ‘찐팬’ 68세 홍경옥 씨가 소개됐다. 그의 방에는 응원봉과 포스터, 그립 톡, 머그잔, 가방, 우산 등 임영웅 굿즈가 300개 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생활용품 굿즈도 임영웅 얼굴에 작은 상처라도 날까 전혀 쓰지 않고 모셔두고 있다.
홍 씨가 이토록 임영웅에게 빠져든 데는 이유가 있었다. 힘든 시절을 보내며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던 때, 임영웅의 사연과 노래가 큰 위로로 다가와서다. 홍 씨의 남편은 임영웅이 아내의 웃음을 되찾아준 고마운 존재라고 밝혔다.
덕질은 세대 간 격차를 좁혀주기도 한다. 엄마의 늦은 덕질을 본 자녀들은 얼떨떨한 기분을 느끼지만, 점차 부모의 취미 생활을 응원하는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 27세 정소라 씨는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됐지만, 이제는 콘서트 티케팅을 도와드리고 있다. 그런데 코로나19 탓에 미뤄졌던 미스터트롯 콘서트가 또 취소됐다. 기다린 지 1년이 넘었다. 예약 대기까지 걸어놓으며 부모님께 공연을 보여드리려 했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렇듯 많은 자녀가 부모의 취미 생활에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하고 있다. 미스터트롯 출신 가수의 팬카페에서는 부모를 대신해 티케팅과 스밍을 하고 있다는 자녀들의 글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오팔 세대도 공연 티케팅 같은 적극적인 덕질로 자녀 세대와 더욱 가까워질 지름길을 찾고 있다. 자녀들이 아이돌에 빠지거나 그들만의 세계에 몰두하는 현상을 이제 잘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임영웅 팬클럽 영웅시대의 ‘좋은날’ 회원은 유튜브 채널 ‘니나노 텔레비전’에서 “처음 하는 덕질이라 모르는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딸에게 이것저것 물어봤더니 처음에는 딸이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딸이 음원 다운로드와 사이트 가입 등을 도와주면서 엄마 마음을 알게 됐다며 이해해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오팔 세대가 뒤흔든 팬덤 경제
오팔 세대는 새로운 덕질 문화를 만들며 팬덤 경제를 활성화하고 있다. 황선경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코로나19로 오팔 세대의 온라인 소비가 급증하는 등 디지털에 상당히 익숙한 세대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베이비부머를 필두로 하는 오팔 세대의 거대한 규모와 높은 소비력 덕에 은퇴 후 라이프스타일에 주목한 상품이나 서비스도 속속 출시되고 있다”며 “이들의 문화나 행태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오팔 세대 덕질의 주요 동기는 ‘젊음’과 ‘향수’, 두 가지 키워드로 꼽을 수 있다. 젊게 살고 싶은 욕구가 소비와 여가 활동의 주요 동기가 돼 MZ세대의 전유물이던 덕질을 모방한다는 설명이다. 또한 경제 성장기 동안 억제됐던 문화 향유 욕구가 은퇴 이후 불이 붙으며 과거의 문화, 가치, 감성을 담은 콘텐츠를 구매하는 경향이 있다. 유통업계는 이런 트렌드에 주목해 친필 사인 양주잔, 실크 스카프, 돋보기 목걸이등 오팔 세대 맞춤 굿즈를 출시하고 있다.
강좌와 학습, 여가 활동이 확산되고 삶의 단계 변화에 따른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는 교류의 장으로 동호회를 비롯한 커뮤니티도 활성화되고 있다. 초고속 성장을 이끈 세대로서 배워야 산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오팔 세대는 팬덤 문화에도 빠르게 정착했다. 서툴렀던 스마트폰 사용이나 온라인 세상에서 서로 도우며 디지털 기반 덕질의 영향력을 확대해가는 모습이다.
새로운 덕질 문화를 만들고 있는 오팔 세대가 MZ세대를 넘어설 신소비 세력으로 등장하면서 팬덤의 경제적 파급력은 점점 커지고 있다. 은퇴 후 시간과 경제적 여유를 기반으로 젊고 활동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고 있어 주 소비층으로 재조명받고 있는 오팔 세대. 이들이 만드는 팬덤 경제가 시니어 비즈니스 시장에서 기폭제로 작용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메타버스 관련 소식이 쏟아지고 있다. 메타버스는 현실같이 구현된 가상 세계를 뜻하는 말이다. 1992년 출간된 닐 스티븐슨의 공상과학 소설 ‘스노 크래시’ 속 가상 세계 명칭인 ‘메타버스’에서 유래했다.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되는가. 메타버스는 이미 추억 속 인물을 재현하는 기술, 건강을 책임지는 의료 기술 등으로 우리 생활에 파고들고 있다.
희망과 긍정을 노래했던 혼성 그룹 ‘거북이’가 오랜만에 무대에서 뭉쳤다. 드라마 ‘이태원클라쓰’의 OST인 가호의 ‘시작’을 편곡했다. 신나는 노래인데도 무대를 지켜보는 관객들은 눈물을 훔치고 있다. 심지어 함께 무대를 꾸미는 멤버들도 터질 것 같은 울음을 꾹 참은 채 노래를 부른다. 가족들도 지켜보며 눈물을 훔치는 가운데 웃고 있는 이는 단 한 사람, ‘터틀맨’뿐이다.
지난해 말 CJ ENM 음악 채널 엠넷의 특집방송 ‘AI음악프로젝트 다시 한번’에 방영된 풍경이다. 이 프로그램의 다른 에피소드에선 전설적인 가수 김현식이 박진영의 ‘너의 뒤에서’를 불렀다.
2008년경 터틀맨은 사망했다. 김현식은 1990년에 사망했고, ‘너의 뒤에서’는 1994년 발매됐다. 어떻게 이런 무대가 가능한 것일까. 답은 메타버스 기술에 있다. 엠넷은 음성 복원 기술을 활용했다. AI가 터틀맨과 김현식의 목소리를 학습하고 분석한 뒤 각각의 목소리로 새롭게 노래를 불렀다. 또 터틀맨과 김현식의 생전 영상도 학습하고 분석해 몸짓과 표정까지 자연스럽게 구현해냈다.
메타버스가 시니어에게 미치는 영역
메타버스는 가상 세계이기에 어떤 방식으로든 구현될 수 있다. 한 명의 가상 인물일 수도 있고, 새로운 세계일 수도 있다. 그래서 아직 통일되고 명확하게 정의돼 있지는 못하다. 그래도 지금까지 나온 내용을 바탕으로 메타버스를 정리하면, 메타버스에는 실제와 비슷한 세계인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 실제 공간에 가상현실을 겹쳐 영상으로 만드는 증강현실(AR, Augmented Reality) 기술이 있다. 여기에 두 기술을 결합한 혼합현실(MR, Mixed Reality)과 확장현실(XR, eXtended Reality)까지 모두 포함해 실제와 구분하기 어렵도록 사실적으로 구현한 가상 세계가 메타버스다.
AI로 구현된 터틀맨과 김현식 무대의 청중에는 가족들도 있었다. 가족들은 눈물을 훔치며 지켜봤다. 비록 만질 순 없지만 사랑했던 이를 다시 한 번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이들에게는 치유의 시간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살다 보면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게 된다. 이별 후 오랜 시간이 흘러서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도, 누군가가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순간이 있다. 메타버스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면서 그리움을 덜어낼 수 있는 시기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현실 세계에서 다양한 일이 일어나는 것처럼 메타버스에서 일어나는 일도 다양하다. 메타버스는 공간 제약이 없어 오히려 현실보다 더 풍부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쉽게 외출할 수 없는 요즘, 스마트 기기를 이용해 손쉽게 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제페토’ 같은 메타버스 플랫폼을 이용하면 지금은 갈 수 없는 유럽으로 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단순 체험뿐 아니라 교육과 훈련에 적용해 차원 높은 체험 프로그램도 제공할 수 있다. 이를테면 초보 파일럿이 가상 세계에서 비행 훈련을 할 수 있게 도와 사고 위험 없이 비행 숙련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 2019년 SK텔레콤은 5세대 이동통신(5G) 기술을 이용해 부천에 있는 축구 꿈나무가 런던에 있는 손흥민으로부터 직접 축구 코칭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처럼 메타버스는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다. 다른 산업과 연계할 수 있는 가능성도 무궁무진하다.
메타버스 타고 헬스케어 진입
정치, 경제, 과학, 예술 등 실제 세계를 구성하는 분야는 셀 수 없이 많다. 실제 세계가 다양하다면 메타버스도 마찬가지다. 시니어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메타버스 분야는 바로 의료다. 메타버스를 이용한 헬스케어 서비스들이 개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메타버스 헬스케어는 뇌파와 시선 분석을 통한 치매 진단부터, 가상 공간에서 치매 예방 훈련 프로그램과 재활 치료까지 도우며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엠넷 방송이 디지털 휴먼을 소환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해소해줬다면, 메타버스 헬스케어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현실의 시간을 늘리고, 시니어의 젊음을 되찾는 데 도움을 준다.
AI 기반 헬스케어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는 ‘룩시드랩스’가 대표적이다. 룩시드랩스는 가상현실 기기를 이용해 가상현실 콘텐츠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정신질환 여부를 판단하고, 노년층의 치매 위험 정도를 파악해 이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한다. 4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사람의 뇌파 관련 데이터를 모았다. 뇌파 변화, 동공 크기 변화, 시선 처리 속도 등의 데이터베이스로 인지 기능이 떨어지는 사람을 판별한다.
룩시드랩스는 축적된 데이터를 토대로 인지 건강을 관리해주는 개인 트레이너 ‘루시’를 선보였다. 루시 사용자는 매일 가상현실 헤드셋을 쓰고 인지 능력을 테스트한다. 뇌파 센서 6개와 시선 추적 카메라를 활용해 전문적인 두뇌훈련시스템을 제공받는다. 사용자는 가상 공간에서 박스를 이용해 공간을 구성하거나, 컨트롤러로 드래곤을 처치하는 등 다양한 게임을 할 수 있다. 사용자가 가상현실 게임을 하는 동안 클라우드 서비스가 뇌파와 안구 운동을 분석한다. 분석된 내용은 이해하기 쉬운 보고서 형태로 제공되며, 태블릿이나 모바일 기기로 가족, 의사와 공유할 수 있다.
메타버스로 기분도 up 몸도 up
KT도 두뇌 개발 및 건강 관리를 할 수 있는 체험 공간 서비스를 출시했다. 바로 ‘리얼큐브’다. 놀이를 위한 공간과 평평한 벽면이 있다면 집에서도 메타버스에 빠져들 수 있다. 리얼큐브 이용자는 콘텐츠 체험용 매트 위에서 벽면에 투사된 가상 공간을 바라보고 노화 방지를 위한 콘텐츠들을 체험할 수 있다. 동작인식 센서가 어르신들의 손짓이나 몸동작을 인식해 특별한 기기 없이도 게임을 조작할 수 있다. 비눗방울 맞혀서 터뜨리는 게임, 몸짓으로 리듬에 맞춰 분리수거하는 게임, 숫자 연산 게임 등이 있다. 공이나 막대기 같은 부자재를 이용할 수 있어 두뇌와 신체를 동시에 활성화할 수 있다.
리얼큐브는 전국 시니어 기관과 복지시설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일부 치매안심센터에서는 치매 예방과 증상 완화에 이미 리얼큐브를 활용하고 있다. 강남구 시니어플라자, 대구 중구 노인복지관, 용산구 치매안심센터, 동대문구 치매안심센터에서 리얼큐브 콘텐츠를 활용해 체육대회도 열었다. 대구 중구 노인복지관에서 리얼큐브 프로그램을 체험한 어르신은 “생각이 밝아지는 것 같다. 숫자를 계산하지 못했는데 프로그램 체험 뒤 분별력이 생겼다”며 “기분이 좋아지고 운동도 된다”는 체험 소감을 밝혔다.
KT 관계자는 “리얼큐브를 비롯한 메타버스 콘텐츠를 계속 확대하고, 서비스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진행 중”이라며 “이미 협업한 복지기관 외에도 다른 기관에서 요청하면 KT 메타버스 기술을 활용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처음 만나는 메타버스가 시니어들에게는 낯설고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메타버스는 몸을 제대로 움직이기 어려운 시니어들에게 매력적인 도구다. 오랜 삶과 연륜을 바탕으로 메타버스를 더 풍부하게 만들 가능성도 높다. 엄청난 영향력과 파급력을 몰고 올 메타버스에 올라탄 시니어들에게 메타버스는 어떤 공간으로 어떤 기회를 열어줄까.
제페토로 메타버스 맛보기
구글 플레이스토어나 아이폰 앱스토어에서 ‘제페토’ 앱을 검색한다. 설치 후 앱을 실행한다. 그리고 ‘캐릭터 만들기’ 버튼을 눌러 가상 세계에서 나를 닮은 사람을 만든다. 먼저 생년월일을 입력하는데, 생년월일은 자신이 먼저 밝히지 않는 한 제페토 세계에서 다른 이에게 공개되지 않는다. 전화번호나 이메일로 가입하거나 페이스북과 카카오톡, 트위터 같은 SNS와 연동해 가입할 수도 있다. 아이폰 사용자는 애플 계정으로 가입할 수 있다.
셀카를 직접 찍거나 스마트폰 사진첩에서 사진을 선택하면 사진 속 모습을 비슷하게 본뜬 캐릭터를 만들 수 있다. 마땅한 사진이 없거나 사진 찍는 게 번거롭다면 표준화된 캐릭터를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런 다음 닉네임을 짓는다. 닉네임은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
제페토 내에서는 ‘코인’과 ‘젬’이 화폐처럼 통용된다. 코인과 젬으로 내 캐릭터에게 입히는 옷과 액세서리를 구입할 수 있다. 처음 시작할 때 주는 8500 코인으로 옷을 살 수 있다. 코인을 다 썼을 때는 출석 후 미션 수행을 통해 코인을 추가로 받으면 된다. 제페토에 푹 빠져 이렇게 받는 코인으로는 부족할 경우 현금결제로 코인과 젬을 얻는 방법도 있다.
코인과 젬으로 마음에 드는 옷을 골라 입었다면 제페토 월드로 놀러 가보자. 유령의 집이나 벚꽃공원처럼 테마가 있는 맵이 있고, 경복궁과 독도, 한강공원처럼 랜드마크를 본뜬 곳도 있다. 제페토 월드에서는 뉴욕과 몰디브, 베네치아 등 세계적인 관광 명소도 방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