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구로구 평생학습관 어르신 동화구연 교실
- “안 된단 말이야. 데구루루… 너무 아팠어요.” “어디 보자. 우리 채소들이 얼마나 잘 자랐나. 허허, 녀석들 예쁘구나!” 목을 쭉 빼고, 깍지 낀 손가락 위에 턱을 괴고, 고개를 갸우뚱. 점점 빠져든다. 입가에 웃음이 배는 건 어쩔 수 없다. 입담에 알록달록 교구와 손 유희가 어우러지니 잠시 잊고 있었던 동심이 새록새록 피어오른다. 세대와 세대를 잇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프로그램. 지금은 시니어의 자부심뿐만 아니라 어린이 교육에 한 걸음 다가가는 역할도 제대로 하고 있는 중이다. 할머니 무릎에 앉아 동화를 들어요 5년째 이어오고 있는 구로구 평생학습관 프로그램 ‘어르신 동화구연 교실’은 해를 거듭할수록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관내는 물론 다른 지역 시니어의 문의가 쇄도해 까다롭지 않다지만 작은 오디션(?) 과정을 거치는 일도 있다. 올 초 모집 당시 예상 수강 인원을 훨씬 웃도는 인원이 원서접수를 했다고 구로구청 교육지원과 평생학습팀 김은아 주무관은 말했다. “지난해보다 10명을 늘렸는데도 모든 지원자를 수용하지 못했습니다. 지원자 목록을 만들어서 취소자가 나오면 신규 신청을 받았어요. 이때 전화상담이 중요해요. 동화구연을 해보셨는지, 자원봉사에 열의가 있으신지, 동화구연활동을 할 시간은 있는지 물어봅니다. 오셔서 신청하시는 분들은 책도 읽어보게 하고요.” 구로구 어르신 동화구연이 인기 있는 이유는 체계적으로 안정됐을 뿐만 아니라 곧바로 현장에 나가기 때문이다. “현재 35명의 시니어가 동화구연 프로그램에 참여하시는데 2인 1조로 17개 기관에 가서 활동하고 있어요. 이야기는 각자가 각색해서 구연하십니다.” 한 달 격주로 평생학습관에 와서 동화구연 학습을 받은 후, 격주로 구로구의 도서관과 복지관, 어린이집 등에 방문해서 어린이들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준다. 올해는 동화구연을 배우는 시니어의 요구에 따라 교육과 활동시간을 늘렸다. “상·하반기 각각 6번씩 12번 강좌를 했습니다. 매번 강좌가 끝날 때마다 간담회를 했는데 좀 더 시간을 늘렸으면 하셔서 2회 늘렸습니다. 다들 너무 잘하시고 열성도 대단하십니다.” 동화구연, 세대 간 소통의 고리가 되다 동화구연은 알다시피 동화를 사람들 앞에서 재미있게 읽어주는 행위다. 이때 그냥 읽어주면 재미없다. 동화 내용에 어울리는 다양한 손가락 인형에 부직포 등을 이용한 교구 등을 사용한다. 그거만 있으면 다 된 걸까? 아니다. 목소리 연기 또한 필요하다. 일인극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동화구연을 하기 위해서는 갖출 것이 많고 알아야 할 것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교구를 제작하고 새로운 방법을 배우고 실력을 쌓는 일이 중요하다. 특히 동화구연 관련 자격증이 많이 생겨나고 시니어 대상 동화구연대회도 종종 열리는 것은 동화구연이 은퇴 후 시니어 세대의 재능기부 활동으로 관심받고 있기 때문이다. “60세 이상을 대상으로 한 평생교육 프로그램으로 시작됐습니다. 시니어가 구민으로서 동화구연을 통해 자기계발도 하고 자원봉사도 하면 적지만 활동비도 드립니다. 일자리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어린이 입장에서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소통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동화구연활동은 시니어의 사회 참여뿐만 아니라 세대 간 소통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5년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동화구연 전문가 집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 손에서 나온 교구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교구 창작과 함께 동화 창작도 한다. 취재를 갔던 날은 하반기 수업 첫날. 손수 만든 전문가급 교재를 들고 나와 이야기하는 시니어의 모습이 너무 예뻐 보였다. 시니어 대부분이 동화구연 자격증은 기본이고 대회에 나가 많은 상을 탔다. “무엇이든지 사업 초기에는 잘되기를 바라면서도 걱정이 되잖아요. 해를 거듭할수록 이 사업이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걸 점점 더 깨닫고 있습니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다른 구에도 어르신 동화구연 프로그램이 생겼으면 하는 것이죠. 구내 프로그램이다 보니 구민먼저 경력자 우선이거든요.” 김 주무관은 앞으로 워크숍과 동화구연 기초반 신설에 대해 깊이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늘어나는 관심에 보답하고 더 많은 곳에 찾아가 자신의 장기를 펼치며 소통하는 시니어가 구연동화 프로그램을 통해 많이 생겨나기를 기대합니다.” mini interview 동화구연 선생님입니다 5년 전 이 강좌가 개설됐을 때 바로 시작했어요. 느티나무 은빛극단에서 연극을 하고 있는데 단원들과 함께 와서 동화구연을 했습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회장직을 맡고 있고요. 이곳에 와서 교구 제작이랑 동화구연 방법 등을 배워서 구로구 내 복지관이나 도서관에 가서 아이들에게 동화를 들려주고 있어요. 동화구연 자격증도 두 개 땄고요. 나이 먹고 집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손주들한테 하는 거처럼 하니까 아이들도 많이 따릅니다. 동화구연이 끝나면 “가지 마세요” 하고 매달리기도 해요. “언제 또 오냐”며 묻고 또 물어요. 교구 제작하고 연습하고 그러면 가끔 내 나이를 잊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그냥 할머니라고 못 부르게 합니다. 동화구연 선생님으로 저를 소개합니다. 손주들 교육에도 제가 한몫합니다 저도 동화구연한 지 5년 됐습니다. 딸아이 가족과 함께 사는데 손주가 열 살, 아홉 살, 다섯 살 셋입니다. 아이들 어렸을 때부터 책을 읽어줬는데 마침 동화구연을 배울 수 있는 곳이 생겨서 저도 들어왔습니다. 아이들과 교감하는 거도 좋고 삶의 활력소도 됩니다. 오늘처럼 교육이 있는 날 집에 돌아가면 손자들이 소파에 쫙 앉습니다. 책 읽어 달라는 거죠. 우리 큰손자가 성격이 조금 소극적이에요. 그런데 작년 학예발표회 때 자기가 손을 들고 구연동화를 한다고 했대요. 올해는 학교에서 인형극을 하는데 읽기 오디션을 봤답니다. 당당히 5명에 뽑혔대요. 요즘도 아침에 30분에서 40분씩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데 그 효과가 있었던 거겠죠? 책은 아이들 수준보다 좀 높여서 선택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아이들이 그 책을 읽고 있더라고요. 제가 손주한데 얻은 별명이 ‘이야기 박사’입니다. 동화구연이 저에게도 좋지만 아이들에게 굉장히 좋습니다.
- 2018-10-04 15:46
-
- “노후, 일자리 찾기보다 생애설계가 먼저”
- 연일 일자리 정책에 대한 뉴스가 쏟아진다. ‘58년 개띠’로 대표되는 ‘700만 베이비붐 세대’까지 은퇴 후 유입되면서 취업 시장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경쟁이 심해졌다는 것은 당사자들에겐 더욱 일자리가 필요해졌다는 뜻. 정년 후 20~30년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 시니어 입장에선 단 한 번의 실패도 극복하기 어렵기에, 제2직업에 대한 선택과 도전이 매우 중요한 일이 됐다. 그렇다면 어떻게 준비하고 선택하는 게 좋을까? 중장년 일자리와 관련해 대표적 전문가로 손꼽히는 김대중(金大重·51) 노사발전재단 중장년일자리본부 본부장을 만나 물었다. 김대중 본부장은 퇴직자나 재직자의 전직(轉職)지원 분야에서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 국내에서 몇 안 되는 전문가 중 한 명이다. 많은 정부부처에서 운영 중인 공공부문 전직지원 프로그램은 대부분 그가 개발한 모델을 원형으로 만들어졌다. 그런 그가 중장년일자리사업 총괄 본부장으로 돌아왔다. 순환보직으로 4년 만의 귀환이다. 수요 늘었지만 기관 규모는 제자리 과거와 변화가 느껴지느냐는 질문에 김 본부장은 “시장이 확대된 것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중장년 일자리 지원 사업에 나선 기관이나 지자체도 많이 늘었죠. 하지만 그 이상으로 중장년 일자리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서비스의 성격이 개인별 맞춤 서비스보다는 단체를 대상으로 한 획일적인 교육이나 취업 알선에 국한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일자리 정책 하면 우리는 흔히 두 가지를 떠올린다. 바로 교육훈련과 취업 정보다. 구직경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기술을 알려주고, 교육훈련을 마치면 갈 만한 일자리를 알려주는 방식. 하지만 김 본부장은 이런 단편적인 접근은 전직자들이 재취업 일자리에서 1년 버티기도 힘들게 한다고 단언한다. “지금 40대 이상의 중장년들은 적성과 무관하게 전공을 선택하고, 전공과 무관하게 직장을 고른 사람이 많아요. 다시 말하면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잘할 수 있는 게 뭔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라는 뜻입니다. 젊을 땐 학습능력도 있고, 시행착오를 이겨낼 힘도 있으니까 버틸 수 있지만, 중장년이 되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방황할 수 있는 1~2년의 여유도 없어요. 개개인에게 맞지도 않는 교육과 알선은 오히려 인생 후반부 역시 그분들을 그릇된 길로 안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맞춤형 서비스가 중요합니다.” 내가 원하는 일 뭔지 알아야 그래서 그가 최근 심혈을 기울인 일이 9월 11일 진행된 ‘신중년 인생3모작 박람회’다. 단순히 구직정보만 나열해 즉흥적인 취업을 유도하기보다는 중장년들이 재취업과 재취업 후의 인생 설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안내하는 역할을 하고 싶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중장년 입장에선 자신이 원하는 일자리의 조건들이 정해져 있어요. 본인 진로에 대한 계획 없이 근무 지역이나 급여 등의 조건만 챙기면 전직에 실패하게 돼요. 또 엉뚱한 교육을 받느라 시간만 낭비하기도 하죠. 이런 시행착오를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었습니다.” 그가 중장년 일자리와 관련해 주목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구인의 주체인 기업이다. 중장년 구직자들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꿔주고 싶다는 것. “나이가 많으면 열정이 없다, 급여 수준이 높다, 고집이 세다는 선입견이 커요. 기업들이 중장년을 고용하지 않으려는 이유죠. 사실은 그렇지 않은 분들이 훨씬 많은데 말입니다. 이러한 선입견을 깨기 위해 임원 대상 간담회나 채용 담당자를 대상으로 한 설명회 등을 늘려나가고 싶습니다.” 중장년이 청년 일자리를 침범한다는 인식도 개선해야 할 부분. 그는 “중장년은 자식(청년) 보살피고 고령의 부모를 모셔야 하는 가정의 기둥이기 때문에 조건 없는 희생을 요구해선 안 된다”고 강조하면서, “되레 전통적으로 중장년이 해왔던 일자리에 청년들이 진출하는 것이 가정까지도 해체시킬 수 있는 더 큰 문제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인생의 2모작, 3모작을 원하는 중장년들은 어떻게 대비하면 좋을까?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뭔지 파악하는 것이 첫 번째”라고 강조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게 되면 열의가 생겨 스스로 공부하고 자기계발에 나서기도 합니다. 또 조건보다는 일에 초점을 맞춰 접근하면 구직자가 능동적으로 행동하게 됩니다.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모르더라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많은 구직자가 그러니까요. 전국에 있는 저희 노사발전재단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에는 이런 분들을 위한 전문 컨설턴트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분들과 상담하다 보면 진짜 내가 원하는 제2직업을 찾을 수 있습니다.”
- 2018-09-21 11:43
-
- 인생은 ‘용도변경’ 무조건 다 쓰고 가자!-변용도 동년기자
- 평범하게 사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들 한다. 1990년대 후반 IMF를 악으로 깡으로 견뎌야 했던 부모 세대에게 묻는다면 ‘평범했노라’ 회상하는 이는 극히 드물 것이다. 넥타이를 매던 손놀림이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된 어느 날 아침부터 부지런히 살아야만 했던 수많은 아버지 중 변용도 동년기자도 있었다. 남들보다 이른 ‘용도폐기’ 인생을 딛고 잇따른 ‘용도변경’ 요구에도 능숙 능란 살아온 인생. 세월 역경을 딛고 여유로운 귀촌생활에 도시생활 잘 섞어가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푸른 들판이 바라보이는 땅콩집에 산다 인터뷰가 있기 며칠 전, 변용도 동년기자와 점심식사를 하다가 지금 살고 있는 집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아내와 가깝게 지내던 이웃사촌 부부와 마음이 맞아 경기도 고양시에 대지를 사들이고 건물을 지어 두 가구가 같이 사는 이른바 ‘땅콩하우스’에 산다고 했다. 텃밭을 일궈 봄부터 가을까지 다양한 채소를 따먹고 집 주위 논밭 다니며 사진을 찍기도 한다. 변용도 동년기자는 우렁이 알과 관련한 기사를 ‘브라보 마이 라이프’ 온라인에 게재하며 귀촌해서 사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아침마다 찾아오는 참새에게 모이도 가끔 준다고.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누리는 귀촌생활이라니. 마침 8월호 커버스토리가 귀농·귀촌 이야기라 변용도 동년기자의 집에 방문하기로 했다. 햇빛 잘 드는 텃밭에서는 상추, 오이, 가지, 파 등이 잘 자라고 있었다. 집 안 마당에 깔아놓은 잔디도 깔끔하게 정돈돼 있었다. 아내 이흥열 씨가 집에서 딴 부추로 만들었다며 부추전을 부쳐 내오신다. “논에 가면 우렁이도 있고 오리도 봅니다. 가을이면 밤도 많이 떨어져요. 사실 이곳에는 안사람 때문에 왔습니다. 이렇게 한번 살아보고 싶다 하더라고요. 대신 아내가 제 매니저 역할을 종종 해줍니다. 지방 강의가 있을 때 운전을 해주기도 하고 주변 역까지 차로 바래다주고 마중도 나오고 말이죠.” ‘좌절할 시간에 뭐든 했다 멀리 내다보이는 들이며 밭이며 마음 참 편안하게 해주는 곳에 사는 것을 보니 부럽기도 하다. 이 정도면 성공한 인생을 사는 사람 아닐까? 현재 변용도 동년기자의 직업은 전문강사다. 여가 설계와 생애 재설계뿐만 아니라 사진이나 스마트폰으로 찍는 사진 등을 또래 시니어에게 가르친다. “정년퇴임 후 여가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취미생활이라든지 봉사활동, 학습 이런 것들에 관해 강연합니다. 제 경험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요. 다행히 강의를 듣는 분들이 잘 호응해주셔서 강의시간이 즐겁습니다.” 뿐만 아니다. SBS러브FM ‘유영미의 마음은 언제나 청춘’ 리포터로 시니어 소식을 전하고 있다. 시니어 자격으로 노크할 수 있는 매체란 매체는 두루 섭렵했다. 글을 좋아하다 보니 저서도 출간했고 육십 넘어서부터는 사진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최근에는 연기에 관심이 생겨 연극무대에 설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미투 운동을 ‘춘향전’에 접목한 창극 ‘어화둥둥 아.우.성’에서 변사또 역으로 출연합니다. 50플러스영등포센터에 있는 연극 소모임 작품인데 저는 회원은 아니고 이름이 특이해서 뽑혔대요. 이래봬도 제가 고등학교 때와 군 시절에 연극무대에 서본 경험이 있거든요. 7월 30일 공연이고 10월에도 서울시청에서 공연한다는군요.” 말 그대로 액티브 시니어의 삶을 살고 있는 이가 바로 변용도 동년기자다. 하지만 은퇴는 그의 생각보다 빨랐다. “마흔일곱 살에 회사 그만뒀거든요. 쌍용화재 영남권 본부장이었는데 IMF 앞두고 하루아침에 해임됐습니다.” 꽤나 잘나가던 시절이었다. 우리나라 보험 상품을 최초로 개발한 이들 중 한 사람이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낚시보험, 골프보험 등 특색 있는 보험에서부터 가정종합보험, 해양시추보험 등을 개발했다. 텃새 심한 제주도권 본부장으로 지낼 때 만났던 직원들은 아직까지도 변용도 동년기자가 제주에 떴다 하면 만나기를 청한다. “회사에서 나오고 나서 참 많은 일을 했어요. 청학동 산골에서 나고 자라다 대학교를 다녀야해서 서울로 왔고 졸업한 뒤로 회사에만 있었으니 제가 뭘 어떻게 했겠어요. 회사 나와서 처음으로 한 사업이 만화방이었습니다. 화정 L마트 옆에서 한 3년 했어요. 요즘 만화방이 유행이던데, 예전에 집에서 만화 보던 식대로 드러누워서 만화를 볼 수 있게 만들었는데 잘됐어요. 처제에게 인수하고 부대찌개 집을 한 1년 했습니다. 술도 팔다 보니 늦게 끝났습니다. 안사람 고생이 심했죠.” 힘에 부쳐 부대찌개 가게를 팔았다.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 들어간 곳이 당시 호황을 누리던 생활정보지 회사 건물. 보직은 조경관리사였다. “고양, 일산 이쪽에서 생활정보지가 상당히 잘됐습니다. 그 회사 건물에서 조경관리사를 뽑더라고요. 말이 좋아 조경관리사지 쓰레기도 치우고 허드렛일 다 했죠. 그때 월급이 40만 원이었습니다. 제가 가끔 강의할 때 그 시절 이야기를 하는데 ‘명색이 대기업 임원이던 양반이 대비전 마당쇠 했다’ 그래요.” 나무 좀 가꾸다 쓰레기 치우고, 단풍 치우고, 잔디도 깎았다. 마음이 썩 내키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런 것도 기회라 생각했다. 열심히 하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겼다. “한창 정육식당 바람이 불 때였어요. 생활정보지 회사가 500평 정도 잔디밭을 가지고 있었어요. 거기다 정육식당 하면 딱 좋겠다 생각하고 회사에 건의를 했더니 그럼 저더러 점장을 하라더군요. 마당 쓸다가 대형 식당 점장이 된 거죠. 처음엔 젊은 사람 시키라면서 못하겠다고 고사했는데 그동안 제 얘기를 들었는지 믿고 맡기더라고요.” 마음에 안 차도 열심히 덤벼들었더니 새로운 길이 열렸다. IMF 때는 드라마 엑스트라 출연도 해봤다. 정치인의 주례가 잠시 금지됐던 시절에는 예식장 전속 주례사도 했다. “여하튼 돈 되는 일이라면 다 했습니다. 지나고 보니 잘했든 못했든 이 모든 것들이 나중에 큰 자산이 되더라고요. 그러니까 지금 제가 사람들 앞에서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는 거예요. 어쨌든 기회가 되면 그냥 한번 도전해보자고요. 규모가 작건 소소하건 해보면 뭐든 얻는 것이 있습니다.” ‘중요한 한 가지, 하고 싶은 것을 한다 변용도 동년기자를 만나서 얘기하다 보니 ‘안 해본 일이 거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제대로 인정받을 때까지 파고드는 근성은 타고난 것 같다. 가족을 위해 살고 자신의 행복을 찾기 위해 쉬지 않고 문을 두드리고 찾아다니게 된 계기가 있다고 했다. “두 친구가 비슷한 시기에 죽었어요. 건강하던 친구들이 하루아침에 한 명은 산에 갔다가, 한 명은 차를 몰고 가다가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간 거야. 술도 안 먹고 건강관리도 잘했어요. 다른 친구는 100억대 자산가였고요.” 죽고 나니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어느 날 허망하게 갈 수도 있는 인생,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바람처럼 불었다. 그래서 시작한 게 사진이었다. “어렸을 때 친구 권유로 ‘촌놈의 세상보기’라는 문패를 달고 인터넷 사이트에 글을 쓰고 있을 때였습니다. 디지털 카메라가 마침 있어 글 쓸 때마다 사진과 같이 올렸어요. 좀 더 잘 찍고 싶고 배우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두 친구가 죽고 난 뒤에 사진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기 시작했죠.” 점점 사진에 취미가 붙으면서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사진을 찍을까 고민을 하게 됐다. 일산동구청에서 하는 무료 사진교실이 있다기에 찾아가 일주일에 두 번 사진도 배웠다. “때마침 첫째 아들이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온라인 쇼핑몰 사업을 하겠다며 사두었던 카메라가 있었어요. 아이가 그 사업을 접으면서 카메라를 저에게 줬습니다.” 2010년 7월에 사진 공부를 시작했고, 그해 10월에 공모전에 당선됐다. 스물여덟 번 도전 끝에 이뤄낸 결과였다. 시니어 기자로서 다양한 방면에서 두각을 보이고 블로그에서도 덤덤하게 인생 표현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방송 프로그램 출연 요청이 들어왔다. 케이블TV 출연 뒤 KBS ‘아침마당’에 은퇴준비 전문강사 중 사진 분야 강사로 출연하며 인생에 큰 계기를 맞이했다. 진짜 다른 사람들 삶에 귀감이 되는 전문강사가 된 것이다. “육십이 돼서 사진을 배우기 전까지는 먹고살기 위해 이 일 저 일 가리지 않고 살았습니다. 이제 여유가 좀 생겼어요. 요즘은 아침이 되면 사진기를 들고 나갑니다. 장애인 시설에 가서 사진 찍어주는 봉사도 하고요.” 물론 변용도 동년기자의 사진 실력은 ‘브라보 마이 라이프’에서도 빛을 발한다. 온라인에 게재하는 기사에 적절한 사진은 기본이고 다른 동년기자 취재에도 사진기자로 참여한다. “2017년 1월호 ‘브라보 마이 라이프’ 커버스토리에 장영희 동년기자가 취재했을 때 제가 사진을 찍어드렸습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물으니 사진을 가르치는 학교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변용도 동년기자의 집 3층은 개인 사진 전시 공간으로 쓰인다. 최근 ‘한 달 자서전 쓰기 프로그램’을 통해 써낸 자서전에서 자신을 청학빛그림학교 교장으로 소개한 바 있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죠. 영상도 배우고 싶고, 책도 3년에 한 권은 내고 싶어요. 무엇보다 사진을 더 잘 찍고 싶고 말이죠. 사진이 빛그림이잖아요. 사진은 카메라로 쓰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또는 카메라로 그리는 수채화이기도 하고요. 제 사진 전시회 제목도 ‘카메라로 그리는 수채화’였습니다. 저희 집 3층도 좋은 전시 공간이니 야외전시도 할 수 있겠죠. 두세 명은 이곳에서 충분히 합숙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아침에 주변을 돌변서 산책도 하고요.” 훗날 때가 되면 아내 이흥열 씨와 함께 이 지역 저 지역을 돌아다니며 살고 싶다고 했다. 집의 규모를 땅콩하우스로 줄인 것도 훗날 여행을 하면서 살 계획이 있기 때문이란다. “이곳저곳 다니면서 사진도 찍지만 사람들을 찾아가 봉사도 하니 찾아가는 사진교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사람하고도 오랫동안 얘기했습니다. 지금은 강아지 때문에 못 가요. 아직은 챙겨줘야 하니까.” 집 안 가장 따뜻한 자리에서 이불 깔고 사는 반려견 헨리 때문에 아직은 계획을 이행할 수 없다고 했다. 함께 산 지 19년, 앞도 잘 못 보고 귀가 나빠져 잘 듣지도 못해 재롱도 부리지 않지만 가족이기에 늘 마음이 쓰인다. ‘용도변경’ 그리고 ‘다쓰가’ 인터뷰를 마치고 변용도 동년기자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자신을 뒷받침하는 두 가지 용어인 ‘용도변경’과 ‘다쓰가’에 대한 설명이었다. “첫째 사자성어가 용도변경입니다. 후반생을 바쁘고 즐겁게 살자고 만든 말입니다. 60세에 제 삶을 용도변경했습니다. 사진이 그 출발점이었고요. 취미에 머물지 않고 영역을 확대해 강사로 방송인으로 사진강사로 저술로 활동하고 있죠. 현재 사진작가로 나름의 브랜드도 만들었고요. 포토스토리텔러, 제가 만든 세계 유일한 말이에요. 마지막으로 ‘다쓰가’는 ‘다 쓰고 가자!’를 세 글자로 줄인 말입니다. 은혜를 되갚고 경험과 지혜, 재물을 다 쓰고 가는 것을 후반생 삶의 철학으로 삼고 있습니다.” 인터뷰가 있던 날에도, 뭔가 물어보려 연락했던 오늘도, 여전히 바삐 살고 있는 변용도 동년기자. 그렇게 부지런히 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지만 이미 걸음을 옮겨 어디론가 떠나 걷고 있다. 너무도 이른 절망 속에서 희망의 빛을 찾고 행복한 삶을 사는 모습에 미소가 절로 스민다. 브라보 3기 동년기자 릴레이 인터뷰를 본지 에디터가 진행합니다.
- 2018-08-13 08:47
-
- 홀리스틱힐링요가, 삶의 활력을 발견하다
- 건강 100세를 사는 방법은 다양하다. 식이조절이나 운동, 취미생활을 통해 에너지를 충전하면서 자신의 건강을 유지한다. 그러나 과거 아날로그 시대를 지나 급변하는 미래 테크놀로지를 접하며 살아가는 시니어 세대에게 일상이 스트레스일 수 있다. 생활 속 스트레스를 건강하게 풀어주는 요가와 명상 프로그램을 개발한 ‘홀리스틱힐링협동조합’의 곽승현(51) 대표다. 급변하는 사회를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들어봤다. 삶의 균형을 되찾다 곽승현 대표가 개발·보급하는 홀리스틱 힐링 시스템은 인도 정통의학인 아유르베다를 통합적으로 적용한 프로그램이다. 고대로부터 전해져 오는 요가, 자연요법 등과 함께 균형이 깨진 몸과 마음을 동시에 돌보는 과정이다. 우리 몸을 정화하는 독소 제거 치유과정을 시작으로 올바른 식이요법, 올바른 운동과 호흡, 이완, 감정조절, 및 명상까지 체계적으로 접근한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쌓여 있는 스트레스와 질병을 완화하고 행복감과 긍정적인 자아를 되찾는다. 몸과 마음의 조화로운 움직임과 균형을 통해 고요해질 때 평온과 행복을 느끼는 것에 방점이 있다. 홀리스틱 힐링의 마지막 단계는 사랑과 봉사로 균형 잡히고 온전한 삶을 추구 한다. 인도에서는 홀리스틱 아쉬람(공동체)이 체계화되어 있다. 곽승현 대표는 홀리스틱요가힐링을 통해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삶의 주체자로서 본질을 찾게 도와주는 힐링 전도다. 이렇게 산지도 벌써 20여 년은 됐다. “요가는 20대 중반에 접하게 됐습니다. 생활고는 물론이고 미래에 대한 불안함에 학업을 지속해야 할지 갈등을 겪을 때였습니다. 스트레스의 근원을 찾고 해결하고 싶었는데 마침 한 단식원의 광고를 보게 됐죠. 호흡으로 마음을 안정시킨다는 문구가 마음에 들어서 바로 찾아갔어요. 그런데 잠시 배운 요가명상이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호흡을 통해 몸의 움직임, 조화 등을 느낄 수 있었어요. 요가의 길로 접어든 첫 단추였습니다.” 이후 명상과 수행을 위해 산으로 절로 돌아다니면서 공부를 하던 중, 부인 이선 박사를 만났다고 한다. 당시 부인도 깨달음을 찾아 수행하고 있었다. 부인과 함께하면서 삶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명상과 수행만이 행복한 삶으로 향하는 중요한 단서라는 점에 공감하고 체계적인 요가 수행을 위해 인도 유학길에 올랐다. “인도 하리다와(Haridwar)에 있는 구랑클 캉그리(Gurukul Kangri) 대학에서 요가를 배웠습니다. 유명한 수행센터란 곳도 다 찾아다녔어요. 네팔, 미얀마, 그리고 스리랑카 등에 있는 유명한 수행센터는 거의 다 찾아다니면서 요가수행에 관한 지식과 정보를 얻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요가의 본질과 다양한 수행 방법을 터득할 수 있었지요.” 곽승현 대표 부부는 오랜 공부와 요가수행을 하는 가운데 정신적·육체적으로 지쳤던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었다. 또한, 긍정적인 자아로 내면의 행복을 느낄 수 있었으며 삶의 균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수행이 함께 하는 삶, 인도에서 배우다 곽승현 대표는 특히 인도 공동 수양체인 아쉬람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다. 이를 통해 인도인의 삶이 요가수행과 함께 체계화돼 정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인도인은 일상생활과 요가수행이 어우러진 삶의 주기를 4단계로 나누고 있다. 태어나서부터 25살까지를 제1기 인생이라고 한다. 이때는 공부하는 학습기이다. 제2기를 칭하는 ‘그라스타’는 인생을 뜻하는데 결혼을 해서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는 결혼과 직업을 통해 가족을 부양하고 돈을 버는 생활이 계속된다. 제3기 인생은 은퇴기로 사회생활을 정리하고 고요한 숲속이나 아쉬람에서 요가와 명상으로 노후생활을 보낸다. 이처럼 인도의 요가 수행을 통해 균형 있고 건강한 삶을 살아간다. 곽승현 대표는 구랑클 캉그리 대학에서 요가철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2000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동안의 연구를 바탕으로 홀리스틱 요가 힐링 시스템을 개발하여 국내에 처음으로 보급하였다. 원광대학교 디지털대학의 요가학과 교수로 홀리스틱 요가 힐링 시스템 활용법을 가르쳤다. 온전한 인생을 찾아 살다 예측할 수 없는 빠른 사회 변화는 우리 삶을 점점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곽승현 대표는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육체적 움직임이 느려진 시니어의 활동을 위축시킬 뿐 아니라 심리적 압박도 느끼게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전인적이고 통합적인 홀리스틱 요가 힐링은 시니어뿐만 아니라 균형적인 삶을 추구하는 현대인에게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진정으로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많은 수행을 통해 배웠습니다. 균형 잡힌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죠. 특히 인도에서 수행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이것이 얼마나 긍정적이고 서로에게 엄청난 에너지를 불어 넣어 줄 수 있는 지도 체험했습니다. 제 건강한 삶이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좋은 것을 나누다 보면 모든 사람이 함께 누릴 수 있게 되겠죠.” 혼자서 건강한 삶을 찾아가기보다는 함께 찾아간다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그가 찾아낸 홀리스틱 힐링 시스템이 추구하는 가장 높은 단계가 사랑과 봉사라는 점을 되짚어본다. 인간의 궁극적인 행복이란? 사랑과 봉사로 세상과 함께 나누며 미덕을 실천할 때 비로소 느낄 수 있는 것 아닐까? 새삼 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 2018-06-08 16:08
-
- 전 세계 학생을 제자로, 한국어 강사 돼볼까?
- 요즘 TV 속은 한국말 잘하는 외국인의 전성시대다. 한국어를 잘하면 나라를 대표해 발언권을 얻거나 친구까지 초청해 한국을 소개하기도 한다. 한국어에 능숙한 외국인이 늘면서 달라진 풍속도다. 이렇게 시대가 변하면서 한국어 강사에 대한 수요도 늘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와 다문화가족의 증가도 이러한 수요 폭발을 유발했다. 한국어 강사는 언어와 함께 문화를 전한다는 면에서 시니어에게 적합한 직종 중 하나로 꼽힌다. 전 세계 학생들과의 교류에 관심이 있다면 한국어 강사의 문을 두드려보는 것은 어떨까.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한국어에 대한 관심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외국인의 한국어능력시험(TOPIK) 응시 추세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시험을 주관하는 교육부 산하 국립국제교육원은 지난 1월, TOPIK의 응시자가 1회부터 지난해 11월 제55회까지 212만168명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20년 만에 무려 108배나 늘어난 것이다. 한국어 강사에 대한 관심도 마찬가지다. 대표적 자격제도인 국립국어원 한국어교원 자격취득 현황을 보면 2007년 790명이었던 심사 신청자는 2016년 6304명을 기록했다. 10년 만에 698% 증가한 셈이다. 강사의 시작은 한국어교원 자격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한국어 강사로 활동하려면 한국어교원 자격은 필수로 꼽힌다. 문화체육부장관이 부여하는 한국어 교육에 관한 자격제도로 심사와 발급 등의 실무적인 부분은 국립국어원이 맡고 있다. 국립국어원에서는 한국어교원에 대해 “국어를 모어(母語)로 사용하지 않는 외국인, 재외동포를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사람을 말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한국어교원은 1, 2, 3급으로 나뉜다. 2급은 학위과정으로 한국어학을 전공하거나 관련 과목을 이수한 사람에게 부여되며, 3급은 양성과정으로 학위가 없어도 100시간의 이론과 20시간의 실습교육을 받은 사람이면 누구나 지원이 가능하다. 때문에 학위와 자격증이 동시에 필요하거나 학사학위 소지자의 경우는 비교적 쉽게 2급 지원이 가능하다. 대학이나 학점은행제 교육기관을 통해 16과목(48학점)을 이수해 학위를 받으면 별도의 한국어교육능력검정시험을 보지 않고 한국어교원 2급 신청이 가능하다. 이럴 경우 자격 취득까지 1년 6개월 정도의 기간이 걸린다. 학위가 없는 경우에도 사이버대학이나 학점은행제 교육기관을 통해 학위 취득과 함께 한국어교원에 도전할 수 있지만 3년 내외의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 단점이다. 사이버대학 한국어학과의 경우 시간과 비용 면에서 불리한 대신 졸업장, 학위와 함께 독서논술지도사나 다문화사회전문가 등 관련 자격에도 지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3급은 조금 더 간단하다. 학위가 없는 사람도 120시간의 교육을 받으면 된다. 하지만 한국어교육능력검정시험에 합격해야 하기 때문에 경험자들은 “난이도가 만만치 않다”고 말한다. 교육비에도 차이가 있다. 시중 교육기관에서 3급 과정을 위한 교육비는 총 50만~90만 원 선. 이에 반해 2급 획득을 위한 학점은행제 교육기관의 비용은 일반적으로 과목당 15만 원 이상이 필요하다. 기관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모든 과목을 수료하려면 250만~450만 원가량 든다. 3급은 자격 취득 5년 후 경력 1200시간이 지나면 2급으로 승급 가능하며, 2급은 다시 5년 후 경력 2000시간이 지나면 1급으로 승급할 수 있다. 교육기관을 고르는 가장 기본적인 과정은 자격 과정을 관장하는 국립국어원의 한국어교원 홈페이지(kteacher.korean.go.kr)에서 찾아보는 것이다. 대학부설기관이나 학점은행제, 양성과정 등 기관 성격에 따라, 지역에 따라 공인된 교육기관을 찾을 수 있다. 세계 각국에서도 수요 많아 한국어교원 자격을 획득하면 활동할 수 있는 교육기관이 생각보다 많다. 국내외에 설치된 대학 한국어학당 같은 부설기관이 대표적. 한국에 유학 온 외국인 학생을 위한 정부기관 한국유학종합시스템(www.studyinkorea.go.kr)에 등록된 대학부설 한국어 교육원 수는 192개에 달한다. 또 사설 한국어학원도 한국어 강사로 일할 수 있는 주요 기관으로 꼽힌다. 최근에는 인터넷을 통한 화상교육이 발달하면서 이를 전문으로 한 교육기관도 증가하는 추세다. 이외에도 최근 급증한 다문화가족을 위해 설치되고 있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있다. 각 지자체에서 운영 중인 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대부분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에 온 이주민이나 자녀를 위한 한국어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또 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 이민자통합센터, 사회통합프로그램 운영기관 등에서도 각각의 설립 목적에 따라 국내에서 거주 중인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어 교육을 실시하고 있어, 강사에 대한 수요가 있다. 한국어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주요 기관들은 강사를 선발할 때 경력을 우선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경험삼아 한국어 강사를 하고 싶거나 경력을 쌓고 싶다면 무료 한국어 교육을 실시하는 기관에 자원봉사를 신청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국내에 있는 대표적 무료 한국어 교육기관은 서울글로벌센터, 한국이주노동자복지회, 한국외국인력지원센터,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가 꼽힌다. 해외에서 일하고 싶을 때도 방법은 있다.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가 대표적이다. 코이카에서는 해외봉사단을 통해 한국어 강사를 세계 여러 곳에 파견하고 있다. 50세 이상의 시니어 단원의 파견도 진행 중이다. 코이카의 해외봉사단 중 한국어 강사 부문은 인기가 매우 높아 1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한 적도 있다. 한국어 강사 선발이 가장 많은 기관으로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세종학당재단이 꼽힌다. 세종학당재단은 한국어 교육기관인 세종학당을 지난해 8월 기준으로 전 세계 54개국에서 171개소를 운영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한국어 수요가 늘면서 세종학당도 매년 증가 추세에 있다. 지난해 국감에서 보고된 자료에 따르면, 세종학당재단의 한국어교원 파견 인원은 2013년 24명에서 2017년 110명으로 매년 증가해왔다. 이밖에도 일부 대학이 해외에 설립한 한국어 학당이나 해외에 설립된 사설 교육기관, 선교기관 등도 한국어 강사의 수요가 있는 곳으로 꼽힌다. 일부 국가의 경우 국가 차원에서 문화교류를 위해 한국어 강사를 선발하기도 한다. 일본의 JET프로그램(The Japan Exchange and Teaching Programme: 어학 지도 등을 행하는 외국 청년 유치 사업)이 대표적이다. 일본 정부는 매년 각 국가에서 국제 교류를 위한 인원을 선발하고 있는데, 선발된 한국어 강사는 각 학교의 외국어 수업 보조나 특별활동, 지역 교류활동 등을 돕게 된다. 한국어 강사로 활동하기 위해 갖춰야 할 또 하나의 덕목은 ‘외국어 능력’이다. 아무래도 교육 대상이 한국어가 서툰 학생이라 다른 언어로 소통이 가능해야 하기 때문. 그래서 일부 기관에서는 자격증 유무, 경력시간과 함께 영어, 중국어, 일본어 회화 능력을 선발기준으로 삼기도 한다. 국내외 한국어 강사 구인 정보를 알고 싶다면 국립국어원 한국어교원 홈페이지의 구인정보 게시판을 활용하면 된다. 청년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그렇다면 실제 시니어 한국어 강사의 취업 시장 상황은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면 만만치 않다. 수요는 계속 늘고 있지만 청년층의 유입도 점점 많아지면서 취업 시장이 좁은 문이 됐기 때문이다. 한국어교원 자격을 취득 후 활동 중인 중년의 한 한국어 강사는 “한국어 강사를 찾는 교육기관 중 나이제한을 두는 곳도 적지 않고, 학위 소지자나 경력자를 중심으로 뽑기 때문에 양질의 일자리는 시니어에게까지 차례가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수입 대신 보람을 우선시하고 눈높이를 낮추면 할 수 있는 일이 없진 않다”고 설명했다. 특히 해외에 있는 한국어 교육기관의 경우는 청년층 선호 현상이 뚜렷하다고 한다. 업계 관계자는 “시니어 세대는 자기주장이 강하고, 체력이나 질환 등에 대한 염려가 있어 장기간 해외에 체류해야 하는 교육기관은 상대적으로 건강하고 젊은 강사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한국어 강사에 대한 인적 수요는 해외에서의 한국어 인기, 온라인 교육 시스템의 대중화로 인해 계속 증가할 것이라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세이글로벌 조연정 대표는 “한국어에 대한 인기는 계속 높아질 것”이라고 단언한다. 세이글로벌은 2014년 용산노인복지관, 미국 프린스턴대학교와의 봉사활동 교류가 계기가 돼 설립된 스타트업 기업으로서 한국어 학습을 원하는 전 세계 외국인들과 한국어 강사를 온라인으로 매칭시키는 사업을 지난해 4월 부터 시작했다. 서울시 50플러스 서부캠퍼스와 함께 한국어튜터되기 과정 수업을 운영 중이며, 수료생 중 일부를 선발해 한국어 강사로 취업 기회를 제공한다. 조 대표는 “10대에서 60대까지 수업을 희망하는 학생층도 넓어지고, 한국 문화에 대한 단순한 애정에서 취업을 위한 것까지 배우고자 하는 목적도 다양해지고 있어 한국어 교육시장도 점차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하며 “삶에 대한 다양한 경험과 지식이 많고 은퇴 후 시간 활용이 쉬운 시니어에게 한국어 강사는 적합한 직업”이라고 설명했다.
- 2018-02-28 10:33
-
- 집에 대한 또 다른 상상 “공동체로 살아보니 좋구나!”
- 지금의 50+ 세대에게 가장 중요한 삶의 과제는 아마도 자녀교육과 내 집 마련이었을 겁니다. 집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자산증식 수단이었고, 한때 성공과 노후 대비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덧 세상은 변해 대다수 50+ 세대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달랑 ‘집’ 하나인 것이 현실입니다. 50+ 세대는 지금 걱정이 많습니다. 모아놓은 돈은 없고 소득은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서 더욱 길어진 인생 후반의 삶을 계획해야 합니다. 자산의 대부분이 부동산인 현실에서 50+ 세대 인생 재설계의 핵심은 바로 주거계획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집 문제는 생애설계 영역과 분리되어 부동산 자산운용 관점에서만 설명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집에 대한 생각도 바꾸고, 조금은 다른 상상을 해봐야 합니다. 넓은 평수의 아파트가 품위를 유지해주기보다는 오히려 우리의 삶을 퍽퍽하게 만드는 건 아닌지, 현재의 아파트 구조가 노년의 사회적 고립을 고착시키는 시스템은 아닌지, 청년주거 문제와 하우스푸어 위기에 놓인 장·노년층의 고민을 함께 해결하는 방안은 없는지, 필요한 최소한의 개인 공간 외 공동 공간을 만들어 어울리며 사회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건 어떨지…. 지금껏 우리가 가졌던 집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새로운 상상과 노력이 요구됩니다. ‘집이란 사는(buy) 것이 아닌 사는(live) 곳’이라는 인식의 전환과 함께, 재무설계 중심의 생애설계가 아닌 머물러 사는 집, 어울려 사는 집의 관점에서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합니다. 저비용 구조로 삶을 다운사이징하고 가치 중심의 관계 형성에 노력해 비록 소득은 줄어도 덜 쓰고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묘수를 찾아야 합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고령화와 장기 저성장 시대가 이들로 하여금 공동체 주거에 관심을 갖게 했습니다. 공동체 주택은 내 공간은 작지만 실용적으로 함께하는 공간은 합리적으로 구성해 주거비용의 절감이 가능합니다. 뿐만 아니라 아파트처럼 한 공간 안에서도 서로 담을 쌓고 사는 단절된 관계가 아니라, 이웃들과 주거 공동체로 사회적 가족을 이룸으로써 노력하기에 따라 이웃과 함께하는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행복하고 건강한 주거공간으로서 공동체 주택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쯤에서 필자가 살고 있는 공동체 주택 ‘여백’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여백은 30대에서 60대, 1인 가구와 부부 가구, 3대 가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세대가 모인 공동체 주택입니다. 여백은 힘들고 불안한 도시의 주거 문제를 함께 힘을 모아 해결하길 원했던 사람들이 모인 생활 공동체입니다. 전혀 서로를 알지 못했던 우리는 2015년 초 하우징쿱주택협동조합의 공동체 주택 입주 희망자 모집을 통해 만났으며, 이후 서로를 알아가며 조금씩 공동체를 이루어갔고, 집짓기를 병행한 끝에 2016년 8월 여백에 입주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지금의 집터(경기도 고양시)를 잡으면서부터 적극적으로 마을과 소통하며 같은 주민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 틈에 둘러싸여 사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잘 아는 이웃들과 더불어 살고 있는 것입니다. 서로 모르는 수많은 사람 속에서 익명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인식하는 공동체의 주민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공동체 주민으로서의 인식은 누가 학습시키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변화에서 스스로 인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도시에서와 같이 타인을 경계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 누군가 옆에 있다는 안정감이 정서적인 변화라면, 공동구매나 일상에서 수시로 이루어지는 소소한 나눔과 교환, 도움 주고받기 같은 활동은 경제적으로도 적지 않은 생활비 절감 효과가 있습니다. 또한 에너지 절감이나 쓰레기 분리수거와 같은 생활 문제에서 지역사회는 물론 좀 더 거시적인 사회 문제에 이르기까지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조금씩 친환경적이고 생태적인 삶을 지향해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구성원 각자가 “공동체로 살아보니 좋구나!” 하는 자각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공동체 주거는 매우 별난 사람들의 특별한 주거라고 여겨져 왔습니다. 하지만 우리 같은 보통 시민이 전혀 몰랐던 사람들과 만나 공동체 주택을 짓고 잘 사는 것을 보았을 때, 이제 더 이상 특별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증명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공동체 주택은 더 이상 집값에 연연해하는 사적 재산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소통하는, 지역에 열려 있는 사회적 자산입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주거 공유로 모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더 친해지고 각자가 가진 재능을 집단 지성으로 발휘하고 조직화할 때, 지역사회에 필요한 다양한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나이 들어가면서 주택을 중심으로 노년기 삶에 필요한 생활서비스 등을 전개하며 시설에 의지하지 않고도 스스로 공동체 복지를 이루어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복지 정책은 지금처럼 가족의 부재와 빈곤의 증명을 요구하며 노인을 복지센터 등 시설로 끌어내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가정과 소규모 공동체의 일원으로 복귀시키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지금의 복지제도는 청·장년이 가족의식으로 연대할 수 있도록 돕지 않는 데다 인간을 더욱 파편화하고 물화시켜 더 소외된 존재로 만들고 있습니다. 각종 시설 등 하드웨어에 쏟아 붓는 막대한 비용을 가정이나 가족의 회복, 공동체 육성을 위해 투입해야 합니다. 보통의 서민들이 생각하는 노년의 삶은 공공복지의 최저생활 보장도, 고급 실버타운의 비싼 서비스도 아닙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터전에서 이웃들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다가 인생을 마감하는 것입니다. 공동체 주거는 바로 이들에게 노년의 안정적 주거와 새로운 관계망 형성을 지원하는 훌륭한 주거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백만매택 천만매린(百萬買宅 千萬買隣)’이란 옛말이 있습니다. 좋은 이웃과 함께하고 같이 산다면 천만금이라도 아까울 것 없다는 의미입니다. 중국 남북조시대 송계아(宋季雅)라는 관리가 가격이 백만금밖에 안 되는 집을 천만금을 주고 산 뒤 여승진(呂僧珍)이라는 사람의 이웃집으로 이사했습니다. 사람들이 의아해 그 이유를 물었더니, 그는 백만금은 집값으로 지불했고[百萬買宅] 나머지는 여승진과 이웃이 되기 위한 값[千萬買隣]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누구나 언젠가는 홀로 남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과연 누가 나의 이웃이며, 나는 어떤 이웃일까요? 거필택린(居必擇隣). 좋은 이웃을 선택해 살 집을 정해야 한다는 옛사람들의 지혜를 우리는 지금 다시 배워야 합니다.
- 2018-02-21 16:36
-
- 일상을 편리하게 하는 똑똑한 주거 생활
- 전기밥솥에 맛있는 밥을 짓는다. 거실에 청소기를 돌리고 세탁기로 묵은 빨래를 한다. 커튼은 닫고 집안 온도를 따뜻하게 올린 뒤 공기 청정기를 켠다. 별것 아닌 집안일이지만 이 모든 것을 집 밖에서도 할 수 있다면 어떨까? 편리함은 물론 안정성까지 갖춘 스마트 주거 공간에서라면 가능한 일이다. 일상을 유익하게 해줄 스마트기기와 더불어 공간별 인테리어 아이디어까지 담아봤다. 사진 및 도움말 대림, 로얄컴바스, 삼성전자, 솜피, 에몬스, LG 유플러스, LG전자, 청호나이스, 한샘 Living Room 리모델링 제안 거실 한 쪽에는 한옥에서 툇마루 역할을 하는 공간을 재현했다. 발코니를 확장하고 단열공사 후 단을 높여 보일러를 시공하는 과정을 거친다. 창밖 경치가 한눈에 들어오는 아늑한 공간에서 편안한 휴식을 만끽할 수 있다. 인테리어 팁 ▶원목마루의 경우 고급스럽지만 유지관리가 쉽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UV코팅마감이나 특수시트가 부착돼 물걸레 청소가 용이하고 충격 완화 효과가 있는 소재를 사용할 것을 추천한다. ▶집이 넓다면 너무 밝은 마감재보다는 어두운 톤의 자재를 사용해 공간을 차분하게 구성해야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낼 수 있다. 1 솜피 IoT 커튼 거주자의 생활 패턴에 맞게 요일별로 시간을 예약하면 원하는 시간에 자동으로 커튼이 열리고 닫힌다. 직접 손을 대지 않고 스마트폰을 이용하기 때문에 복층이나 높은 천장에 설치된 커튼도 쉽게 움직일 수 있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 집 밖에서도 커튼을 닫을 수 있어 편리하다. 2 하니웰 온도조절기 언제 어디서나 집 안 온도를 조절하고 사용 이력을 살펴볼 수 있다. 취침 후 일정 시간 후에 꺼졌다가 아침에 다시 켜지도록 하는 등 예약 설정이 가능하다. 난방 사용량과 사용 패턴을 확인할 수 있고, 20시간 이상 보일러를 사용할 경우 알림을 보내준다. 3 LG 로보킹 밖에서 원격으로 청소를 시키고 집안을 실시간 모니터링 할 수 있다. 하단, 전방, 상단카메라 총 3개의 카메라로 주변 공간을 파악하고 충돌을 최소화한다. 집 안에서 움직임이 감지되면 휴대폰으로 사진이 자동 전송되어 집을 비운 날에도 안심할 수 있다. 4 삼성 QLED TV 어느 각도에서 봐도 색이 변하지 않도록 시야각 문제를 해결해 생생한 화질을 구현한다. 무선으로 휴대폰과 TV를 연결할 수 있으며 휴대폰 속의 동영상, 사진 등을 TV 화면으로 즐길 수 있다. 또 음성인식 기능을 통해 방송 중인 프로그램이나 영화, 광고 속의 음악을 바로 찾아볼 수 있다. 5 LG WHISEN 듀얼 에어컨 에어컨과 공기청정기를 합쳤다. 휘센 듀얼 에어컨은 극초미세먼지까지 감지하여 공기 상태가 나쁠 경우 자동으로 공기청정기능을 작동시킨다. 공간학습, 인체감지센서로 사람 수, 위치 정보를 수집해 실생활 공간 중심으로 냉방을 제공한다. 6 IoT 열림알리미 센서 외출 중에 창문과 문이 열리면 즉시 스마트폰으로 알림을 받고 실시간으로 대응할 수 있다. 갑자기 비나 눈이 왔을 때 창문이 열려 있는지 바로 확인 가능하다. 집안에 외부인의 침입이 감지될 경우, 사람이 있는 것처럼 조명이나 TV가 자동으로 켜진다. Kitchen 리모델링 제안 한국 전통 대청마루를 본뜬 좌식 아일랜드를 배치해 동서양을 넘나드는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은퇴 이후 여유로운 삶을 지향하는 이들을 위한 디자인으로 손주들과 둘러앉아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는 등 활용도가 높다. 인테리어 팁 ▶최근에는 ‘ㅡ’자나 ‘ㄱ’자 부엌보다 아일랜드를 두는 경우가 많은데, 식재료를 다듬고 조리하고 설거지를 하는 동선이 짧아 편리한 것이 장점이다. 특히 플로팅 아일랜드(상판 아래 공간이 비어 있는 형태)를 활용하면 의자에 앉아서도 요리할 수 있어 허리에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부엌 바닥 광택이 심하면 미끄러질 염려가 있고, 눈부심을 유발하므로 피하는 것이 좋다. ▶식탁 위에 조명등이 매달릴 경우 지나치게 밝은 식탁보나 광택이 있는 소재를 깔면 빛 반사로 눈이 쉽게 피로해지기 때문에 무광이나 어두운 톤으로 대체하는 것이 좋다. 1 LG DIOS 3구 인덕션 전기레인지 전기레인지를 껐는지 켰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휴대폰으로 체크하자. WiFi 기능으로 외부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2 IoT 가스잠그미 언제 어디서나 스마트폰을 통해 원격으로 가스밸브를 확인하고 잠글 수 있다. 또 가스밸브 주변이 위험온도에 도달하면 경보음과 함께 알림 메시지가 오고, 65℃까지 올라가면 자동으로 밸브가 차단된다. 3 LG DIOS 광파오븐 광파오븐에 내장된 WiFi 기능으로 원격세팅이 가능하다. 휴대폰을 통해 주방 밖에서도 오븐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고 조리 후엔 탈취, 스팀청소, 건조기능을 활성화해 오븐을 손쉽게 관리할 수 있다. 4 쿠쿠 IoT 밥솥 스마트폰을 이용해 원격으로 밥을 짓거나 요리 예약이 가능하다. 입맛에 따라 밥을 지을 수 있도록 가열 온도를 설정하고 찰진 밥, 부드러운 밥 등을 선택할 수 있다. 5 삼성 셰프컬렉션 패밀리허브 냉장고 모니터를 통해 TV시청은 물론 음악감상, 라디오 듣기가 가능하다. 요리법을 검색하면 냉장고가 요리 속도에 맞춰 음성으로 레시피를 알려준다. Bathroom 인테리어 팁 ▶습식 타일은 물기가 잘 마르지 않아 미끄러워 낙상의 위험이 크고 곰팡이가 잘 낀다. 특수코팅 엠보싱 처리가 된 바닥재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욕실 문은 밖으로 열려 있어야 한다. 안으로 여는 문은 사람이 쓰러졌을 경우 사람에 의해 출입구가 막히기 때문에 도움을 지연시킬 수 있다. 1 삼성 플렉스워시 삼성 스마트 홈 앱을 실행해 밖에서도 세탁을 시작하거나 종료 알람을 받을 수 있다. 2 대림 SMARTLET 800 물 내리는 것을 깜빡했어도 괜찮다. 비데에 추가된 인체감지센서가 사람의 움직임을 감지해 사용이 끝나면 자동으로 물을 내려준다. 이뿐만이 아니다. 자동으로 여닫히는 시트 커버로 편리함을 더했다. 3 로얄컴바스 R2 세면기 디지털 압력방식의 조작버튼으로 물의 온도와 양 조절이 편리하다. 자외선 칫솔 살균기가 내장되어 있다. Bedroom 인테리어 팁 ▶시니어의 경우 노화로 인해 청력이 약해지더라도 오히려 소음에는 더욱 민감하게 반응해 수면에 영향을 받곤 한다. 비경화성 방음 재료나 흡음 천장을 설치하면 효과적으로 소음을 차단할 수 있다. ▶암막 커튼이나 어두운 톤의 벽지를 골라 숙면에 도움이 되도록 한다. ▶바닥에 러그를 깔면 바닥에 조명 반사가 덜해 눈의 피로도가 감소하고 걸을 때 충격을 줄여주기 때문에 발도 편안하다. 1 에몬스 웰라이프 모션침대사용자의 수면습관이나 라이프 스타일에 맞춰 프레임 각도를 조절하는 모션 침대의 장점에 스마트 기술을 더했다. 스마트폰 앱으로 진동과 자세전환을 통한 알람 모드, 취침 타이머 등의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 2 한샘 팔렛 LED 방등 스마트폰으로 집 안에서 등을 켜고 끄는 것은 물론 외출 시에도 작동이 가능하다. 잠들기 전이나 아침에 일어났을 때 취침 타이머와 기상 알람 기능으로 원하는 시간에 조명을 조절할 수 있다. 학습, 활력, 휴식 등 상황별 테마를 설정해놓으면 그에 맞게 조명이 방 분위기를 연출한다. 3 청호나이스 휘바람IV IoT 공기청정기 스마트폰 앱을 통해 집 안의 실내 공기 상태 및 초미세먼지, 가스 오염도, 습도, 온도 등을 실시간으로 확인 가능하다. 풍량, 이온, 타이머 등을 장소에 상관없이 조절할 수 있고, 스마트 모드를 켜면 자동으로 사용자 환경에 맞는 공기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 2018-02-18 14:50
-
- 시니어 은퇴 후 직업으로 목공 분야에 관심 커져
- 나무는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소재 중 하나. 특히 산으로 둘러싸여 살아온 한국인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일까. 시니어가 은퇴 후 원하는 새로운 직업이나 취미를 꼽을 때 단골로 선택되는 분야가 바로 목공예다. 뚝딱뚝딱 제품을 만들며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완성된 제품을 보며 성취감도 느낄 수 있다. 배우자나 가족이 만들어진 가구를 반겨준다면 이보다 즐거울 순 없을 것. 또 솜씨가 좋다면 팔아 생활비에 보태는 것까지 기대할 수 있다. 목수는 역사적으로도 가장 오래된 직업 중 하나. 긴 역사로 인해 현대에 들어와서 목수가 담당하는 영역은 방대해지고 기능도 세분화됐다. 국내에는 건설현장에서 콘크리트 형틀을 담당하는 형틀목수와 목조주택을 짓는 목골조목수, 한국의 전통가옥을 만드는 한옥목수 등으로 구분하고, 인테리어를 담당하는 내장목수와 선박목수, 가구목수 등도 있다. 목공 혹은 목공예는 정의에 따라 나무로 공예품을 만드는 작업에서 건축까지 그 분야가 방대하다. 하지만 나무로 가구나 소품을 제작하는 분야나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교육기관, 시간, 비용 천차만별 목공예가 시니어에게 각광받는 이유는 다양한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먼저 자연이나 귀농, 귀촌의 대체제 역할도 한다. 나무를 직접 만들고 다듬으며 자연을 손으로 느끼기도 하고, 현실적으로는 귀촌 시 반드시 알아야 할 기술로도 꼽힌다. 당장 생활에 요긴하게 쓸 수 있는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도 매력 중 하나. 간단한 식기에서 쟁반, 식탁에 이르기까지 만들지 못하는 것을 세는 것이 빠를 정도다. 상품을 만들 수 있을 정도까지 숙련이 되면 직업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실제로 목공예 교육기관을 살펴보면 수업에 참여하는 시니어가 의외로 많다. 한 교육기관 관계자는 “시니어의 경우 당장 직업으로 연결짓기보다 노후생활을 위한 준비나 취미활동을 겸한 경우가 많다”고 설명하며 “절박함 대신 느긋함을 갖추고 있어, 오히려 젊은 수강생들보다 더 적극적이고 솜씨도 좋은 편”이라고 말한다. 목공예를 배울 수 있는 길은 다양하다. 목공예 학원부터, 지자체, 목공방, 기술교육원, 프랜차이즈까지 활동 중이다. 가장 쉬운 방법은 집 근처 목공방을 찾는 것. 상당수 목공방이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한 자체 교육과정을 운영 중에 있다. 또 일부 협회나 단체에 가입되어 있는 목공방의 경우 자격증반을 운영하기도 한다. 별도의 교육과정 없이 운영되는 목공방에서도 배울 수 있다. 상품 제작을 겸한 목공방에선 수업료 겸 시설 이용료를 합한 금액을 지불하면 간단한 가구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고, 일정 기간 동안 목공방 장비 등을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 기술교육원 교육과정은 일반 학원 프로그램과 동일하다. 교육시간은 기관에 따라 제각각이다. 간단한 소품이나 책꽂이를 만드는 과정은 하루나 이틀 안에 끝나기도 하지만 자격증 취득과정은 최소 이수 교육시간이 40시간정도다. 기간에 따른 교육비용도 천차만별이다. 하루짜리 체험학습은 1만원 내외이지만 창업반이나 자격증 과정은 수백만원 이상인 경우도 있다. 목공예 관련 자격증은 산업인력관리공단이 운영하는 국가자격증인 목공예기능사가 있고, 민간자격증으로는 목공지도사, 목공DIY교육사 등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목공소나 판매용 제품을 제작하는 목공방에 취업하려면 자격증 취득이 필수적이지만, 취미나 여가생활이 목적이라면 자격증이 큰 역할을 하진 않는다고 귀띔한다. 창업 쉽지만 제품 판로가 문제 목공예는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분야이다 보니 진입장벽이 매우 낮은 편. 그래서 목공예 시장에서는 구인보다는 구직 인력이 훨씬 많은 편이다. 한때는 목공방을 통해 좋은 디자인의 저렴한 가구를 구매하는 게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지만, 저가의 중국산 가구들이 밀려들어오면서 시장이 위축되어버렸다. 여기에 이케아 같은 다국적 기업까지 가구시장에 참여하면서 목공방들이 설 자리는 더욱 줄어들었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이런 분위기에서 당장 취업을 목적으로 목공예를 배우는 것은 무리가 될 수 있다. 특히 체력적으로 힘든 시니어의 경우 목공소나 목공방들이 채용을 기피하는 대상이다. 급여도 적은 편. 그래서 아예 목공방을 차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시니어는 사업의 의미보다는 작업실 개념으로 목공방을 만들기도 하고 몇몇 사람이 뭉쳐 공방을 내는 경우도 있다. 메리우드협동조합이 그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 이곳은 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목공예를 배운 동기 6명이 의기투합해 설립한 목공방으로 경력 단절 여성이나 시니어를 대상으로 목공예를 지도하고 있다. 나무사랑협동조합도 이와 비슷한 사례. 송파구 시니어복합문화공간 실벗뜨락에서 목공예 수업을 함께 들었던 수강생들이 모여 공방을 만들었다. 목공방 창업에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장비다. 목공용 장비를 기본적으로 갖추려면 2000만원 내외로도 충분하지만, 제대로 가구를 만들려면 7000만원 이상의 예산이 필요하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이 창업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는 것은 예산이 아닌 영업력이다. 만들어진 제품의 판로를 어떻게 확보하느냐에 따라 창업의 성공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시장 위축으로 한때 난립했던 목공방 프랜차이즈는 최근 확 줄었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목공방 프랜차이즈는 헤펠레목공방이 대표적이다. 전국에 70여 개 목공방을 가맹점으로 두고 있다. 요즘 목공예 분야에서 주목하는 분야는 업사이클링(up-cycling). 폐품을 재활용하는 리사이클링(re-cycling)과 업그레이드(upgrade)가 합쳐진 용어다. 재활용할 재료에 가치를 더해 더욱 쓸모 있는 제품으로 재탄생시킨다는 의미다. 목공 분야의 경우 상품적재용 깔판인 파렛트나 와인상자와 같은 폐목재를 생활용품으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이 많다. 폐목재는 단가가 낮아 수익성이 좋은 편이다. 최근 많은 목공방들이 폐목 리사이클링에 주목하고 있는 이유다. 자연친화적 나무라는 소재에 스토리와 공익성이 더해지면서 소비자 반응도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목공예를 하는 시니어들 사이에선 방과 후 학습이나 목공예 체험교육 강사활동도 인기가 높다. 제품 제작보다 체력적으로 부담이 덜하고, 보람까지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 2017-10-27 10:07
-
-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소비를 위한 행동 원칙
- 5070세대는 먹고살기 힘들었던 헝그리(hungry) 세대다. 악착같이 모으고 아끼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자신보다는 가족, 소비보다는 저축이 몸에 배어 있다. 자식과 가족을 위해서는 아까운 줄 모르지만 ‘나’를 위해 쓰는 것은 몇 번이나 고민하고 결정하는 것이 5070세대다. 필자의 부모님도 평생 자신을 위해 옷 한 벌 제대로 사 입은 적이 없는 분들이다. 어쩌다 자식들이 좋은 옷을 선물로 드리면 “이건 얼마짜리냐?”, “환불은 안 되냐?” 하며 자식들 눈치를 본다. 옷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다. ‘나’를 위해 소비하는 것에 인색하고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과거 5070세대가 모으고 아끼고 저축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꼈다면 이제는 ‘나’를 위해 투자하고 소비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누리면 어떨까? 이에 이번 호에서는 나를 행복하게 하는 소비(이하, 나·행·소)를 위한 구체적인 행동 원칙을 살펴보고자 한다. 소유가 아닌 경험을 위해 소비하라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호 교수는 “행복의 기준이 과거에는 돈을 어떻게 버느냐에서 이제는 돈을 어떻게 소비하느냐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즉 지금은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경험하고 나눌 수 있는 소비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소비는 크게 ‘소유를 위한 소비’와 ‘경험을 위한 소비’로 나눌 수 있다. 과거 5070세대는 소유하기 위한 소비가 대부분이었다. 가령 자동차, 집, 옷 등을 소유하고 사용하면서 행복을 느꼈다. 그러나 이런 소비의 행복감은 단발적이고 일시적이다. 그렇다면 경험을 위한 소비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가령 학습하며 강의를 듣는 것, 여가활동, 여행을 떠나는 것 등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직접 체험하며 생각하게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많은 학자들이 연구한 결과 소유보다는 경험을 위한 소비가 훨씬 행복감이 크다고 한다. 그 이유는 뭘까? 경험은 이야깃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여가활동으로 가장 선호하는 여행([자료1] 참조)을 예로 들어보자. 여행을 떠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해한다. 왜 그럴까? 일상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여행이라는 경험을 통해 나만의 이야기가 생기고 주변 사람들과 나누면서 행복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5070세대에게 ‘경험하고 체험하는 소비’는 익숙하지 않다. 경험을 위한 여가활동은 기껏해야 TV 시청 정도뿐이다. 5070세대가 성장해왔던 과거 1970년대에는 마땅한 여가 활동도 없었다. 화투 정도가 전부였고 1980년대에 와서야 도심에서 탁구, 당구, 볼링, 테니스 등을 즐겼다. 최근에는 골프와 캠핑 등도 여가활동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경험을 위한 소비’가 반드시 여가활동이나 여행일 필요는 없다. 은퇴 후 ‘제2의 인생’의 좌표를 배움에서 찾는 5070세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2013년 기준 60세 이상 학점은행제 등록자는 2만2915명(대학학점인정 과정 기준)이며, 55~64세의 평생교육 참여현황은 OECD 평균보다 높은 편이다(교육과학기술부 국가평생교육 통계조사). 또한 지난 2013년에는 1972년 방송통신대 개교 이래 최고령자인 정한택(입학 당시 91세)씨가 입학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5070세대의 ‘나를 행복하게 하는 소비’를 위해서는 ‘갖고 싶은 것’에서 ‘하고 싶은 것’으로 소비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일본에서도 여가활동의 주역이 10대에서 60대 이상으로 변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생산성본부에 따르면, 고수입의 활동적인 70대가 레저시장의 주도세력이다. 유병장수시대 행복하게 하는 소비 과거 학창 시절 무조건 외우기만 했던 ‘매슬로우 욕구 5단계 이론’을 기억할 것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에 따르면, 사람은 의식주와 안전의 욕구가 해결되면 상위 욕구로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나의 존재를 확인받고 더 나아가 자아실현을 궁극적으로 꿈꾸고 싶어 한다고 한다. 물론 모든 욕구가 단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경향을 가지고 있음을 지적한 이론이자 경험론이다. 나·행·소 관점에서 매슬로우의 욕구이론을 적용해보면 어떨까? 1단계 생리 욕구는 의식주 관련 소비로, 2단계 안전 욕구는 건강 예방을 위한 소비로, 3단계 소속감 욕구는 친구/동호회 활동을 위한 소비로, 4단계 존경 욕구는 학습/교육 활동을 위한 소비로, 5단계 자아실현 욕구는 여행을 위한 소비로 매칭할 수 있다([자료2] 참조). 앞서 필자는 ‘경험을 위한 소비’가 나·행·소 첫 번째 요소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매슬로우 욕구 이론에 따르면 모든 5070세대가 ‘경험을 위한 소비’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제아무리 빼어난 경치라도 당장의 배고픔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한다. 은퇴생활을 하는 5070세대의 소비 성향과 욕구도 동일하지 않다. 은퇴 후에 소득이 중단되어 의식주 관련 소비가 전체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 커지는 경우도 있다([자료3] 참조). 여기에 의료, 간병을 위한 소비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경험을 위한 소비’는 사치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5070세대가 나·행·소를 위한 소비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소비욕구 5단계에 따르면 1, 2단계처럼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노화와 건강과 관련된 소비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최근에는 은퇴재무설계 관점에서, 자산을 모으는 웰스(wealth)가 아닌 건강을 지키는 헬스(health)에 관심을 갖는 50대가 많아지고 있다. 건강이야말로 최선의 노후대책이라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 아닌가. 건강하지 못하면 노후생활의 질은 떨어지게 된다. 반대로 준비된 노후자산은 조금 부족해도 몸이 건강하면 긴 노후의 활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자산의 품질이 아닌 몸의 건강품질을 높이는 소비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어쩌면 건강은 목표가 아닌 수단이 될지 모른다. 건강을 통해 더 젊게 살고, 더 즐겁게 살며, 더 행복하게 사는 궁극적 가치에 한발 다가서는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잘 먹고, 건강을 예방하는 가장 기본적인 소비야말로 나를 지키고 행복하게 하는 소비가 아닐까? Clean & Dress up 소비에 인색하지 말라 몇 년 전 개봉한 라는 영화를 기억할 것이다. 퇴직 후 은퇴생활을 즐기다 시니어 인턴으로 일하는 70세 노신사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주인공(로버트 드 니로)은 다운타운에 방 여럿 딸린 자택을 소유한 나름 성공한 중산층이다. 비록 아내와 사별했지만 자녀도 별 탈 없이 잘 자라 독립했고, 취미로 요가나 화초 재배를 하며, 가끔 손자 재롱 보는 것을 삶의 낙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평범한 은퇴세대다. 주인공은 혼자 사는 은퇴세대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평소 옷매무새 하나도 빈틈이 없다. 그는 언제나 젊은 사람보다 더 깨끗하고 말끔한 시니어다. 옷차림새뿐만 아니다. 항상 주변을 깨끗이 한다(Clean up). 수십 년 직장생활에서 비롯된 노하우와 나이만큼 풍부한 인생 경험은 CEO뿐만 아니라 젊은 직장 동료들에게도 존경을 받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액티브시니어들도 나이가 들수록 옷차림에 더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옷은 비즈니스의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그 사람을 돋보이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편한 게 좋은 것이여!”라며 집에서도 외출할 때도 늘 입는 아웃도어 복장은 아닌지 살펴보라. 이왕이면 깔끔하게 잘 갖춰 입고(Dress Up) 다니자. 나이 들수록 깨끗하게 잘 차려 입어야 한다. 옷이 날개란 말이 있듯이 사람들은 반듯하게 차려 입은 상대에게 더 호감을 느낀다. 손주들도 좋은 향기가 나는 할아버지를 더 좋아한다. 무엇보다 잘 차려 입은 옷은 자신감을 더해준다. 그러므로 나를 행복하게 하는 ‘Clean & Dress Up 소비’에 절대 인색하지 말자.
- 2017-09-11 10:54
-
- 김재실 도산 안창호 선생 기념사업회 회장, 도산의 삶과 함께 살다
- ‘죽더라도 거짓이 없어라. 꿈에라도 거짓말을 했거든 깨어나서 반성하라’고 말한 도산 안창호는 그 모든 위업을 아우를 수 있기에 진실이 화두인 요즈음, 대한민국 역사 속에서 태산처럼 서 있는 거목이다. 대학 시절 처음 도산의 존재를 접한 후 평생 동안 그를 사숙했다. 일과 삶 모두에 도산의 정신을 새기기 위해 산 김재실(金在實) 도산 안창호 선생 기념사업회 회장은 지금 시대야말로 도산의 신념과 철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광복 72주년을 맞이한 올해 72세인 그가 평생을 바칠 정도였던, 도산에게서 발견한 거대한 화두란 무엇일까? 우리나라 역사에서 도산 안창호는 유독 커다란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그는 1878년에 평안남도에서 태어나 한학을 공부한 후 언더우드 학당에서 수학했다. 그야말로 조선 말기의 혼돈과 신문물의 합리주의를 동시에 겪으면서 자라난 세대였다. 그는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에 참여하여 탁월한 연설을 통해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일찌감치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활동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줬다. 지적이고 신중한 조직가였던 도산 안창호 이후 미국으로 건너간 안창호는 샌프란시스코에서 공립협회를 창립하여 재미동포들이 민족의식을 자각하는 데 일조했으며 일제가 나라를 빼앗으려 하자 바로 귀국하여 신민회를 조직, 대성학교와 태극서관을 설립해 민족운동을 펼쳐나갔다. 안창호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가 무력으로 세상을 바꾸려 했다기보다는 지적인 조직가로서 신중한 행보를 거듭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신중함은 머뭇거림이 아니다. 그가 그 누구보다도 확고한 민족의식과 미래에 대한 굳은 의지를 바탕으로 이뤄진 커다란 그림을 그리고 있었음은 일제강점기 동안 세계 이곳저곳을 오가며 벌인 그의 행적을 보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정신은 도산 안창호 선생 기념사업회를 통해 오늘날에도 표표히 흐르고 있다. “참배나무에는 참배가 돌배나무에는 돌배가 열린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일제강점기가 시작되자 미국으로 망명하여 1913년에 흥사단을 창립했어요. 흥사단은 민족운동에 매진할 인재를 모으고 양성하기 위해 조직됐죠. 흥사단 일을 하느라 대학교를 휴학했던 게 기억나네요. 그때는 도산 선생의 이념을 어떻게 실천하느냐, 흥사단을 어떻게 전파하느냐만 생각하며 살았죠.” 김재실 도산 안창호 선생 기념사업회 회장은 자신의 젊은 시절을 오롯이 도산에게 바친 것으로도 모자라 그 후 기업 경영을 하면서도 50여 년에 가까운 세월을 도산의 정신을 실천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아왔다고 말한다. 그는 충남 천안이 고향이며 병천중학교를 거쳐 서울대에서 수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마침내 도산 안창호와 만나게 된다. “1963년 대학 1학년 때였습니다. 도산 서거 25주년 추모식장에 걸린 ‘참배나무에는 참배가 돌배나무에는 돌배가 열린다’는 글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죠. 이를 계기로 흥사단 대학생 아카데미 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흥사단은 유력한 사회인사들이 청년 시절 거치는 대표적인 모임이기도 했다. 전남도지사를 지낸 박준영, 순천향대학교 부총장을 지낸 이윤배, 교육부장관을 지낸 황우여가 그 면면이다. 흥사단에 바친 청춘 흥사단 활동은 김 회장의 젊은 시절 꿈이 신문기자가 되게 하는 데도 영향을 줬다. “흥사단에서 라는 잡지가 나와요. 왜 인가 하면 도산 선생의 말씀 중에 ‘기러기는 항상 줄을 맞춰 다닌다’는 말에서 따온 거예요. 그래서 흥사단의 상징이 기러기이기도 하죠. 이걸 제가 3년 동안 편집하고 책을 냈어요. 그래서 언론계와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꿈을 포기해야 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동생 여섯을 책임지는 가장이 됐기 때문이다. 가장이 되자 그는 생활인으로서 충실한 선택을 했다. 한국산업은행에 입사한 그는 핵심 요직을 두루 거쳤고 2000년부터는 산은캐피탈 사장으로 활동했다. “산은캐피탈 CEO가 된 뒤 180여 명의 직원들을 책임져야 했죠. 그 고민이 매우 컸습니다. 굉장히 열심히 일했어요. 그 와중에도 도산 선생의 정신을 경영에 도입하고자 노력했죠.” 도산의 삶에서 배운 교육자의 삶 산은을 나온 김 회장은 중앙일보 시사미디어 상임고문과 대통령 자문 동북아경제추진위원회 자문위원을 지내며 잠시 동안 공직에서의 모험을 하고, 다시 기업계로 돌아왔다. 대아건설 감사와 경남기업 관리총괄 사장, 성신양회 대표이사 사장, 태강코퍼레이션 고문을 거쳐 현재는 동양시멘트(삼표시멘트) 상임감사로 있다. 다양한 조직의 요직을 거치면서도, 그는 도산이라는 자신의 롤모델을 놓치지 않았다. 숭실대와 성균관대, 성신여대에서 ‘경제통계학’, ‘경제수학’, ‘경영정책’ 등을 강의하고 대학 재학 중 도시 빈민 미취학 아동을 위해 청영고등공민학교(야학)를 설립·운영했으며, 흥사단 이외 ‘나라발전연구회’ 총무를 맡는 등 교육이라는 도산의 삶의 중요한 부분을 자신의 삶에 심는 데도 주저하지 않았다. “흥사단은 나이 제한이 없어요. 흥사단 후배들을 제가 많이 만났죠. 대학생활 아카데미 회장, 고등학생 아카데미 지도교사도 했으니. 그때 가르친 고등학생들이 지금 칠십이 다 됐어요(웃음).” 도산 사상의 중심은 ‘진실’ 그렇다면 도산 사상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도산 사상의 중심은 진실입니다. 그는 나라가 망한 것도 이완용 때문이 아니라 거짓 때문이라고 하실 정도였죠. ‘죽더라도 거짓이 없어야 한다’, ‘농담으로라도 거짓말을 말아라. 꿈에라도 성실을 잃었거든 통회하라’고 했습니다.” 김 회장은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도층이 진실하지 못한 것을 지적했다. “다른 문제는 아무것도 없어요. 지도층이 거짓말을 하는 게 가장 큰 문제예요.” 도산은 진실을 위해서라면 자신에게 다가온 커다란 유혹도 매몰차게 거절하는 이였다. “1907년에 이토 히로부미가 도산을 중심으로 청년내각을 만들려고 했어요. 그때 도산이 그 제안을 거절했죠. 그리고 상해 임시정부는 도산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고 봐야 해요. 상해 임시정부는 1919년 4월에 설립됐는데 도산이 5월 25일에 미국에서 상해로 와서 임시정부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 서리로 취임해 독립운동에 매진했죠. 또 미국과 상해를 오가며 대독립당 결성 운동을 전개하고 임시정부 경제후원회를 조직했어요. 당시 미국에 있는 교포들이 돈을 모아서 상해에 지원금을 보낸 것도 도산의 공이라 할 수 있죠.” ‘도산의 희망편지’로 청년들에게 희망을 김 회장은 도산을 가리켜 ‘사람을 만드는 사람’이었다고 설명했다. “도산 선생이 다른 독립운동가와 다른 것은 그가 인격 훈련을 중시한 사람이었다는 겁니다. 도산 선생은 항상 교육을 강조했고 ‘사람을 키워야 한다’고 말하곤 했어요. 그래서 다른 어떤 독립운동가들보다도 더 우리가 생활 속에서 닮을 수 있는 사람으로 남게 됐죠.” 그는 도산의 사상이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한다. 그는 그 근거를 도산의 말들에서 찾는다. “도산 선생은 힘을 길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힘이란 신용의 힘, 그리고 지식의 자본, 마지막으로 금전 자본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진실을 통한 관계를 중요시했고, 한 사람이 한 가지 이상의 기술을 갖게끔 공부를 하라고 했으며 돈을 벌어서 저축하여 돈의 힘을 가지라고 말씀하셨죠. 이건 현재에도 그대로 통용될 수 있는 얘기입니다.” 김 회장은 도산이 말한 ‘힘’을 믿고 ‘도산의 희망편지’ 보내기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SNS를 활용하자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일이죠. 2016년 3월 10일 선생 서거 78주년이 되는 날부터 시작한 일입니다. 요즘 희망을 잃어가는 청년들에게 도산의 말씀 중 한 구절씩을 선정해 매주 목요일에 이메일로 보내고 있습니다. 지금 대략 2만여 명에게 보내고 있고, 받고 싶은 사람들은 언제라도 연락하면 보내드립니다. 그리고 기회가 되는 대로 그 글귀들을 모아서 책자로 발간할 계획입니다.” 여생은 도산 안창호 기념사업에 도산 안창호 선생 기념사업회가 하는 일은 다양하다. 1973년, 사업회는 도산의 묘소를 서울 망우리 산꼭대기에서 도산공원으로 이장했다. 1998년에는 도산기념관 건립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리고 해마다 3월 10일이 되면 도산의 추모식을 거행한다. “1937년 수양동우회(修養同友會) 사건 때 도산 선생은 일제에 붙잡혀 취조를 받게 됐어요. 그 사건에 도산의 제자 60여 명이 잡혔기 때문이죠. 고문을 당하면서도 도산은 초인간적인 면모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12월에 병보석을 나와서 다음 해 3월 10일에 사망하시고 말았죠.” 또한 도산학회를 조직해 도산 사상에 대한 논문집도 내고 있고, 연설문이나 서신 등도 책자로 발간했다. 청소년들 대상으로는 도산 정신을 2세들에게 널리 알리자는 취지로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전개하고 있는데 매년 2000명이 넘게 참여한다고 한다. 글짓기 공모도 매년 실시하여 도산의 탄신일인 11월 3일에 시상식을 하고 있으며 미국에서 국제학술대회도 열고 있다. 그야말로 도산 안창호와 관련한 모든 것을 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멈추지 않고 살아야 멋지게 나이 든다 사업회가 하고 있는 다양한 사업들은 ‘멋지게 나이 들어가는 방법’에 대한 김 회장의 정의와 묘하게 부합되는 면이 있다. 어쩌면 그 많은 사업들을 추진하는 에너지가 바로 거기에서부터 비롯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김 회장이 말하는 ‘멋지게 나이 들어가는 방법’이란 바로 ‘뭔가를 쉬지 않고 계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멈추면 안 되죠. 생각으로 하든 몸으로 하든, 쉬지 말아야 멋지게 나이 드는 겁니다.” 그가 말하는 멋지게 나이 드는 또 하나의 방법은 ‘사람을 많이 만나는 것’이다. “도산은 사람을 좋아했어요. 그는 사람을 만나면 성의를 갖고 만나는 사람이었죠. 그렇게 나이 들어서도 사람을 많이 만나는 게 좋습니다. 그런데 사람을 만나는 데 돈이 많이 든다고 안 만나는 사람들이 있어요. 돈이 많이 드는 걸 피하려면 공동체에 속하는 게 좋습니다.” 점점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적어질 수밖에 없는 시니어에게 커뮤니티는 삶의 중요한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김 회장은 사람 대하는 법을 간략하게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라고 요약했다. “요즘은 이메일도 있고 전화도 있고 문자도 있잖아요. 그런 도구들로 관심을 가져주고 표현하다 보면 함께 식사를 할 수도 있는 거죠.” 도산 정신이 뿌리 내리도록 전파 “도산 선생은 정말 성실하고 매사를 철저히 챙기면서도 크게 생각하신 분이었습니다. 조금이라도 그런 도산의 생활 태도를 닮아보려고 노력한 결과가 아닐까 합니다.” 자신의 일과 삶에 대해 정의하면서 김 회장은 다시 한 번 도산을 불러왔다. 사람을 키우는 일을 그 무엇보다도 중시했던 도산의 마음은 김 회장을 통해서 그대로 실천되고 있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대한 김 회장의 대답은 단호하면서도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 자체를 응축하고 있었다. “날 기억할 게 뭐가 있어요? 저는 앞으로도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묵묵하게 도산 사상 전파 운동을 할 것입니다.” 김재실 회장은 “1947년 사업회 출범 이래 신익희 선생이나 강영훈 전 국무총리처럼 사회적 지위와 덕망이 높으신 분들이 이끌어왔는데 부족한 제가 회장이 돼 송구스럽고, 두려움이 앞선다”고 밝혔다.
- 2017-09-11 08: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