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음식 이야기만 나오면 필자에게는 오랜 인고의 시간과 이를 극복한 이야기를 잊을 수가 없다. 아내는 8남매를 둔 처가의 셋째 딸로 고생 모르고 살다가 장남인 필자에게 시집온 이후 맏며느리 역할을 제대로 해내느라 힘들게 살았다.
요즘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는 아내를 보고 있으면 보물처럼 사랑스럽기 짝이 없다. 달덩이같이 아름다운 나이에 월세 방에 사는 필자에게 시집을 와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두 시동생과 시누이 모두 넷을 대학까지 공부시키고 우리 집안을 화목하게 꾸려왔다.
결혼하고 10년 정도는 설날이나 추석날을 위한 음식 준비는 장남의 아내로서 당연히 자신이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두 동서가 서울서 뒤늦게 내려와도 반갑게 맞으며 잘 지내왔다. 하지만 아내는 철인이 아니었다. 한창때는 젊음으로 버텨냈으나 명절 증후군이 해가 거듭될수록 심해져 허리에서부터 온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설날이 되면 다른 가족들도 하루 전에 도착해 함께 음식을 준비하기로 했으나 서울서 필자가 사는 울산까지 오다 보면 차가 밀려 명절날 새벽에 도착하기 일쑤였다. 게다가 하루 전에 와도 별도로 식솔들의 음식까지 준비하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두 동생네 식구들이 가고 나면 이번에는 시집간 두 여동생의 식솔들을 맞이하느라 또 분주했다. 반갑기는 했지만 힘이 든 건 어쩔 수 없었다.
미련한 남편은 그제야 아내의 고단함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시집온 이후 하루도 쉬지 않고 가사를 꾸려온 아내였다. 이 정도 세월이면 기계에도 문제가 생기는데 아내는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아내의 건강 문제를 너무 늦게 깨달았던 것이다.
형제가 돌아가면서 차례와 제사를 모시자고 아우들에게 제안하면 어떨까 하고 아내와 상의했더니 동서들이 먼저 그런 제의를 해오면 모를까 절대 그런 이야기는 입 밖에 내지도 말라고 펄쩍 뛰었다. 난감했다. 유산 한 푼 물려받지 못한 장남도 장남이고 장손의 아내이기에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인가?
어려운 숙제는 뒤늦게나마 아우와 두 제수씨의 배려로 해결되었다. 정년퇴직 후 필자가 서울에 직장을 잡아 임시 살림을 오피스텔에서 꾸리면서부터다. 좁은 곳에서 혼자 음식 준비할 여건이 안 되어 두 동서들과 분담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문화가 형성된 것이다.
인간의 관습이란 정말 무서운 것 같다. 그 간단한 일을 해결하는 데 이렇게 오래 걸리다니. 인고의 세월 속에서 온갖 난관을 극복한 아내를 보니 향기로운 한 송이 국화꽃 같다. 아내가 너무 고맙고 필자 곁에 오늘도 있어줘서 행복하다.
찬바람 부는 겨울이면 뜨끈뜨끈한 국물이 떠오른다. 특히 모임이 잦은 연말에는 함께 즐기기 좋은 샤브샤브가 제격이다. 고기와 함께 채소와 버섯 등을 풍부하게 먹을 수 있어 부담 없이 즐긴다는 것도 매력. 여기에 우리 몸에 좋은 산약초까지 곁들인다면 어떨까? 산약초 샤브샤브 맛집 ‘솔내음’을 소개한다.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서대산 기운을 가득 담은 자연 한 상
충청남도 최고봉인 서대산(西臺山) 아래 자리 잡은 ‘솔내음’ 입구에는 그 이름처럼 커다란 소나무가 우거져 솔향기가 솔솔 번지는 듯하다. 도심과 떨어져 있어 한적하고 여유로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금산군에서 지정한 제1호 금산약초명품전문음식점으로 몸에 좋고 맛도 좋은 산약초 요리를 다양하게 즐길 수 있어 멀리서 찾아오는 단골도 많다.
매일 사용하는 식재료는 그 전날 서대산 고산지대(700m)에서 직접 재배한 친환경 약초들을 주인장이 직접 채집해 마련한다. 산마늘, 부지깽이, 두메부추, 오가피 순, 당귀, 곰취, 삼채 등 다양한 산약초가 계절마다 조금씩 다르게 올라온다. 싱싱한 재료와 함께 직접 담근 매실 효소와 간장, 된장, 고추장 등은 요리의 맛을 더해준다.
산약초샤브샤브(1인분 2만원)는 8가지 내외의 산약초와 질 좋은 한우, 백만송이·황금송이 등 다양한 버섯을 즐길 수 있다. 약초로 맛을 낸 육수에 갖가지 재료를 취향에 맞게 넣어가며 천천히 음미한다. 날것으로 먹으면 쌉쌀한 약초들이 육수에 살짝 데워지면 한결 부드럽고 달큰한 맛을 낸다. 육수 또한 각각의 재료가 내뿜는 맛을 고루 품어 시간이 지날수록 뒷맛이 깊고 진해진다.
데친 산약초와 버섯, 고기 등은 특제 소스에 찍어 먹거나 산약초 장아찌와 곁들여 맛볼 것을 추천한다. 두메부추·명이·오가피 장아찌와 제철 약초와 나물로 만든 기본 반찬이 입맛을 돋운다. 샤브샤브 재료를 다 먹고 나면 산부추칼국수 사리를 넣어 끓인다. 일반 면과 다르게 산부추즙을 넣어 반죽해 진한 녹색을 띤다. 샤브샤브만으로 부족하다면 가죽전(1만원)이나 가죽비빔밥(1만원)을 곁들여보자. ‘웬 가죽인가?’라는 생각에 의아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사용하는 가죽은 우리가 떠올리는 동물의 껍질인 아닌, 참죽나무의 잎이다. 솔내음이 있는 금산군의 제사상에 빠지지 않고 올라간다는 가죽은 독을 제거하고 염증을 없애는 효과가 있다. 가죽을 우린 물로 밥을 짓고, 가죽 튀김과 가죽 가루를 넣어 만든 고추장이 올라간 가죽비빔밥은 금산약초 명품음식 중 하나다.
가죽과 더불어 이곳의 주요 산약초로 꼽히는 두메부추는 일반 부추보다 잎이 두껍고 끝이 둥그스름한 것이 특징이다. 날것 그대로의 맛은 알싸하고 달달한데, 두툼한 부분을 잘라 잡아당기면 미끌미끌한 진액이 늘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로 뮤신 성분이 다량 함유돼 있기 때문인데, 이외에도 사포닌과 비타민 등이 풍부해 위와 신장기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아울러 어혈을 없애고 몸을 따뜻하게 하는 성질이 있어 겨울철에 즐겨 먹으면 좋은 산약초다.
솔내음에 가면 꼭 찾아봐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서대산 일부를 돌아볼 수 있는 ‘모노레일’이다. 가게에서 5분 남짓 거리에 있는 모노레일은 주인장이 전문가와 함께 직접 고안한 것으로 약초를 채집하러 갈 때 이용한다. 손님에게도 개방한다고 하니 원한다면 모노레일을 타고 산약초를 구경할 수 있다(1인 1만원). 안전하면서도 볼거리가 있는 코스로 짜여 있어 식사 후 재미 삼아 휴식 삼아 즐기기 좋다. 주인장은 “직접 모노레일을 타고 돌아본 자연산 약초를 식탁 위에서 만나는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한 서비스”라고 설명했다. 모노레일을 타고 나면 인근 서대산 약용자연휴양림을 둘러보는 것도 좋다.
가는 길 충청남도 금산군 추부면 홍골1길 142
직장과 가정을 함께 꾸려나가는 맞벌이 주부는 슈퍼우먼이 아닌 한 힘이 든다. 게다가 명절날 시댁 가서 이런저런 일을 거들고 집에 오면 녹초가 다 되니 무슨 핑계 거리라도 만들어 시댁에 안 가거나 음식 장만에 열외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만도 하다. 일도 해본 사람이 한다고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곱게만 자라 시집 온 대부분 며느리들이 명절증후군을 느낄 만도 하다. 명절음식은 가짓수도 많고 양도 많다. 잘못했다고 야단맞을 까봐 겁도난다. 심지어 명절 후유증으로 이혼하는 사례도 있다하니 그냥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지난 추석때 힘든 시댁 일을 피하기 위해 가짜로 아픈 척 깁스를 하는 며느리가 늘었다고 한다. 방송에서도 가짜깁스 판매업체에서 나와서 하는 말이 “(매출이) 한 100%정도 올랐다고 보시면 돼요. 명절 앞두고 가사노동이나 개인적인 핑계거리가 없어서 필요하신 분들”이라고 한다. 물론 연출용 깁스가 며느리만 애용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나 연극에 소품으로도 쓰이고 결근(결석)이나 조퇴용으로도 사용하니 전부 명절 때문에 늘어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차례나 제사음식을 간소화하는 음식문화 혁명이 필요하다. 조상에 대한 정성이라고 하여 한 상 그득 그득 쌍아 올리고 겨울에 수박을 다 올린다. 주부들의 말을 빌리면 ‘그래도 명절인데’ 초라한 음식상은 친척들 눈치가 보이고 ‘그래도 조상님 제사상인데’ 정성스럽게 최고급품을 준비해야지, 하는 유교적 효의 문화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어 간단히 하기도 어렵다. 예절과 관련한 음식문하는 주부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림이나 국가에서도 물꼬를 터주고 각 가정에서도 열린 마음으로 가족회의를 열어 원만하게 해결하였으면 한다.
명절 때 남은 음식처치에 집집마다 골머리를 앓고 있고 명절 후에는 각 방송사에서 남은 음식 조리법이 어김없이 방영된다. 음식물 쓰레기로 쓰레기 하치장이 몸살을 앓을 정도로 넘쳐난다. 사회 지도층 인사부터 명문가에서부터 달라진 시대상을 반영하여 차례상, 제사상을 간소화 하는데 앞장서고 각종 언론에서도 이를 널리 홍보하면 차츰차츰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된다.
연출용 깁스를 사용하는 일이 비록 일부의 일이라고는 하나 이런 세태까지 등장한 것은 집안일을 분담하지 않는 낡은 가부장적 문화와 어떻게든 과중한 책임에서 벗어나보려는 ‘이기주의’의 ‘잘못된 만남’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가족회의를 통해 음식준비를 줄이고 음식 장만에 가족 모두 역할분담을 새롭게 만들어 즐거운 명절, 진심으로 조상을 섬기는 제사상 차림이 되었으면 한다.
토란을 먹을 수 있는 계절이 왔다. 추석 무렵 시장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토란이지만 사계절 늘 맛볼 수는 없는 귀한 맛의 전령사다. 올 추석 명절에도 어김없이 토란국을 끓였다. 미끈거리고 감촉이 좋지 않아 먹기 싫다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매끈하고 부드러운 맛에 토란을 매우 좋아한다.
친정아버지의 고향은 충청도 대전이다. 충청도 사람이라 토란을 더 좋아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서울 토박이인 엄마의 입맛까지 사로잡아 우리 가족은 토란국을 즐겨 먹었다. 좋아한다고 매일 먹은 건 아니고 추석 즈음 많이 먹었다. 감자나 고구마는 저장이 잘 되어 일 년 내내 맛볼 수 있지만 토란은 저장이 안 되는 것 같아 무척 아쉽다.
남편은 이북이 고향이다. 시댁에서는 추석 차례 상에 토란국을 끓이지 않고 양지머리 고기를 푹 삶아낸 국물로 맑은 무국을 끓였다. 남편은 처가에서 토란 탕을 처음 맛보았다고 했다. 처음 먹을 때는 좀 이상했는데 자꾸 먹다 보니 정말 맛있다며 좋아하게 되었다.
시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맏며느리인 내가 제사를 물려받았다. 이후 추석 차례 상에는 토란국을 올렸다. 차례 지내러 온 시동생과 친척들은 토란국을 처음 먹어본다며 호기심을 보였고 매년 추석 때면 “형수님 토란국 먹으러 갈게요.” 할 정도로 맛을 들였다.
토란은 흙 속의 알이라는 뜻이다. 추석 전후에 나오기 시작하는데 이때가 가장 영양이 많고 맛이 좋다. “알토란같다.”는 말은 부실한 데가 없이 옹골차고 단단하다는 뜻으로 쓰는 말인데 토란의 효능이 알차기 때문에 생겨난 말이 아닐까 한다.
토란의 주성분은 녹말이지만 다른 감자류에 비해 특히 칼륨의 햠량이 많다고 한다. 토란의 칼륨은 일단 혈액으로 흡수된 나트륨이 신장에서 흡수되는 걸 막고 소변으로 배출하게 해서 혈압을 낮추는 작용도 하고 토란에 함유된 ‘가라쿠탄’이라는 성분은 면역력을 높여주기도 한단다. 수분이 많아서 다른 감자류에 비해 에너지가 낮고 칼로리도 낮으니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좋을 것이다.
필자는 토란국에 정성을 들이는 편이다. 장에 가면 껍질을 벗긴 토란과 흙토란을 함께 파는데 반드시 흙토란을 사와 껍질을 벗겨 쓴다. 예전에 친정아버지와 함께 시장에 나가 토란을 사왔던 기억이 난다. 엄마대신 토란국을 끓여보겠다며 멋모르고 맨손으로 껍질을 벗겼는데 손끝이 아려왔다. 아버지는 “괜히 너를 고생시키는구나.” 하시며 안타까운 눈길로 약을 발라주셨다. 가끔 그날이 떠오르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오늘도 토란 껍질을 벗겨 끓는 물에 소금을 약간 넣고 데쳐내어 양지머리 쇠고기 국물로 국을 끓였다. 토란국을 끓이니 토란국을 맛있게 드시며 웃으시던 아버지가 그립다.
토란은 맨손으로 다루면 독성 때문에 가렵거나 알레르기가 생기기도 하니 반드시 장갑을 끼고 껍질을 벗겨야 한다. 이것도 친정아버지가 해주신 말씀이다. 요즘이 싱싱한 토란을 맛볼 수 있는 철이니 열심히 만들어 먹을 생각이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늙은 당나귀가 발을 헛디뎌 깊은 구덩이 속에 빠져버렸습니다. 주인은 이미 늙어 쓸모가 없어진 당나귀를 구하기 위해 사람들을 부르고 밧줄을 내리고 하는 것이 번거로워 보고는 그냥 가버렸습니다. 당나귀는 주인이 나를 버리고 간 것에 분개하고 절망했습니다. 그런데 누가 웅덩이에 쓰레기를 던져 넣어 옴팡 쓰레기를 덮어쓴 당나귀는 더욱 화가 났습니다. 오물에서 악취가 진동했습니다. 하지만 당나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우선은 배가 고팠습니다. 다행히 쓰레기 더미 속에 반쯤 썩은 사과와 배추 겉잎이 몇 장 있었습니다. 배가 고파 허겁지검 굶주린 배를 채웠습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쓰레기를 던져주는 사람이 이제는 고맙기까지 했습니다. 바닥을 자세히 보니 쌓이는 쓰레기로 차츰차츰 웅덩이가 메워지고 있었습니다. 살아갈 희망이 생기자 악취도 더 이상 악취가 아닙니다. 살아날 희망이보이자 즐겁지는 않아도 견딜 만 하다는 생각까지 합니다.
우리는 자기가 웅덩이에 빠져놓고 남이 나를 구해주지 않는다고 세상을 원망합니다. 웅덩이에 빠진 당나귀처럼 처음에는 주인을 원망했지만 곧 부질없음을 깨닫고 희망이 생기자 참고 견디어 웅덩이에서 탈출이라는 기쁨을 얻었습니다. 아버지가 형제간에 재산을 분배하는데 문제가 있다고 아버지는 물론 형제간에도 원수처럼 지내는 이웃을 많이 봅니다. 아버지가 형제간에 재산을 차등분배 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아버지는 덜 배운 자식, 병신인 자식, 좋은 직장에 못다는 자식, 앞으로 제사를 지내고 조상을 떠받들 자식에게 좀 더 주려고 합니다. 아버지의 분배원칙이 법에는 안 맞아도 사리와 이치에는 맞습니다. 사리와 이치에 다소 맞지 않아도 그것은 원래 아버지 재산이지 내 자신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면 아버지를 원망할 일도 형제간에 싸울 일도 없습니다. 마음이 편해집니다. 부모 재산이 없는 자식들이 우애는 더 좋습니다. 남들은 한 푼도 나는 1억이라도 받았으면 부모님께 고마워해야 할 텐데 다른 형제가 받은 것과 비교해서 싸움을 합니다.
세상이 모든 사람에게 공정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운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원망은 자신의 운명을 바꾸지도 못하고 오히려 의기소침하게 만들어 살 의욕이 없어집니다.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을 봐라보고 좋은 직장이 안다. 월급이 적다. 특별한 기술이 없다. 남들이 나를 알아봐주지 않는다고 원망해봐야 달라질 것이 없습니다. 그럴수록 원망보다는 도전의식을 갖고 앞으로 전진 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정상에 올라서면 과거의 고통은 아름다운 추억일 뿐입니다. 아무도 당신의 과거에 귀 기우리지 않고 지금의 성공에 박수를 보냅니다. 물고기 잡으러가는 데 장총을 가져가지 말고 준비된 고기 그물을 가져가야 합니다. 호랑이 잡으러 가는데 낚싯대는 필요 없습니다. 남을 원망할 시간에 미래를 내다보고 철저히 준비를 해야 합니다. 느린 사람은 오래 가면 더 멀리 갑니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고 뽕나무 밭이 변해 바다가 되기도 하고 사람팔자 알 수 없습니다.
어릴 적에는 설·추석 명절이 행복했었다. 근심 걱정 없이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고 새 옷도 입을 수 있었다. 하지만 명절 증후군, 명절 이혼, 고부 갈등이란 이름의 ‘명절 스트레스’는 점점 커지고 있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명절준비가 제일 큰 문제였다. 이제 명절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리는 큰 결단을 하였다.
◇명절 스트레스의 원인
손수 준비하던 결혼과 장례문화는 세월이 흐르면서 많이 변하여 결혼·장례식장이 모든 것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명절과 제사는 아직도 ‘정성들인 음식‘이 필요하다.
대가족 맏이인 아내는 시골에 계신 부모님을 대신하여 40년 넘게 6남매 맏며느리 역할을 묵묵히 잘하였다.
부모님 모시고 형제자매끼리 모이던 명절은 조카들이 결혼하고 손자까지 태어나니 훌쩍 30명이 넘어섰다. 아내는 며칠을 준비하기에 바빴다. 모든 일이 잘 되는 줄 알았으나 눈치 없는 필자만의 착각이었다. 한 해에 몇 차례 모임에 녹초가 된다는 사실을 사화은퇴 후에야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아들과 딸이 먼저 문제를 제기하였다. “아빠, 엄마의 건강과 변화하는 세상을 생각하여 가족모임을 바꿨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그래 깊이 생각해보자!”고 대답하였으나 문제가 쉽게 풀리지 않았다.
◇대가족 분가 작전
두 달 전 어머님께서 소천하셨다. 부모님을 하늘나라로 모시고 나니, 필자가 우리가족의 ‘대권’을 이어받았다. 개혁은 집권초기에 번개처럼 하라고 하였다. 장례를 마치고 마무리 가족모임을 가졌다. “부모님 추모회는모두 참가하고, 명절모임은 직계가족끼리 갖도록 하자.”고 어려운 이야기를 꺼냈다. 너무 허전하다는 등 반대의견도 있었으나, 과감하게 ‘분가’를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올 추석부터 대가족 모임이 사라졌다. 아들·딸 가족과 손주까지 9식구만 모였다.
“음식준비를 하지 않으니 다른 세상에 사는 것 같다.”는 아내의 이야기였다. 멀지 않는 곳으로 소가족 여행을 갔다. 아이들과 어울려서 추석을 즐겁게 지냈다. 가족밴드에 사진을 올려서 가족끼리 재미있게 지내는 동생들과도 대화를 나누었다.
◇과거를 떨치고 미래로
부모님이 계실 때에도 차례나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장로봉직 중인 큰 동생의 ‘예배’가 모든 행사를 대신하였다. 비신도가 필자를 비롯하여 절반이 넘었지만 예배는 30년 넘도록 엄숙하게 진행되었다. 큰 동생은 올 추석에도 가족과 함께 ‘믿지 않는 형제들을 구해주소서!“ 간절히 기도하였을 것이다. 40년 넘게 진행되었던 가족모임이 없어져 조금 허전하였다. 북적거리는 추석도 이제 한시절의 추억이 되었다.
가족모임 때마다 손자들에게 족보를 펼치시고 조상님 설명에 애쓰셨던 아버님 생각이 났다. 부모님 추모일에는 ‘메모리얼 파크’에서 온 형제자매가족이 꼭 모일 예정이다. 지난 한해의 이야기를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제작하여 ‘가족밴드’에 올려서 공유하기로 하였다. 과거회상만이 아니라 재미있는 내일을 찾는 노력을 하기로 하였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가정은 전통의례를 존중하는 경우도 많다. 위에서 밝힌 이야기는 필자의 조그만 경험이다. 추석이란 명절이 온 가족이 모여 감사절의 의미를 더 되새기는 날이 되면 좋겠다.
추석 전날이다
가족이 있는 제주도 도민이라면 이런 날은 제사준비다 음식 장만이다 집 떠난 가족들이 올 것이니 그 준비다 하여 바쁠 것을 예상 할 수 있다. 그래서 필자는 조용하리라 생각하고 이 날을 택하여 목욕탕을 이용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목욕탕이 평소보다 사람들이 더 많다 많은 사람들 중에 특히 나이 드신 분들이 많아보였다. 자식들에게 잘 보이려는 어르신들 미용일거다. 추석이 가까워 오면 시골의 미용실은 엄마들 파마하는 손님으로 언제나 성시를 이루곤 했다
필자와는 좀 떨어진 곳에서 자신의 몸 겨누기도 힘 드는 연세가 지긋이 드신 분이 스르르 탕의 바닥으로 쓰러지는 모습이 보였다. 엇~ 하면서 일어서려고 하는데 그 옆의 중년의 부인이 얼른 할머니를 안았다 워낙 부축한 중년여인의 동작이 재빨라 할머니에게는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봉사가 몸에 배였는지 할머니를 잘 가누어 잠시 쉬게 했다. 쉰 후에는 우유도 드리고 전신 맛사지를 하여 정신이 금방 드셨다. 그리고는 친절한 부인은 할머니를 깨끗하게 씻겨 드렸다 다른 친절한 부인도 거들어 머리를 감겨 드리고……. 사고 뒤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었다.
필자가 목욕을 마치고 옷장이 있는 방으로 나오니 그 할머니도 나오셨는데 옷장을 찾을 수 없는지 우왕좌왕했다. 옷장의 키도 잃어버렸고 어디쯤인지도 모르고 난감한 사태다. 누군가 먼저 탕에서 나와 준비가 된 아주머니 한 분이 친절하게 집전화 번호를 묻고 집이 어니냐고 물어보아도 아는 것은 전무…….
다행이라면 춥지 않은 기온이다. 목욕탕의 손님들 중 친절한 마음씨의 손님들이 이리저리 뛰면서 할머니를 도우려는 동안 카운터의 주인을 대표하는 사람은 남의 불 보듯 구경만 한다. 친절한 손님이 탕에 까지 들어가 목욕하고 있는 사람 중에 이 할머니를 아는 사람이 있느냐고 큰소리로 도움을 구한다. 할머니에게는 목욕탕에 달린 미용실에서 가운을 얻어다가 입혀드리고 난리 통이 한동안 지속되었건만 여전히 주인 쪽에서는 아무 조치가 없다.
아직은 제주도 특유의 인정사회가 완전히 메말라 버리지 않았다 추리력이 있는 사람들이 머리 합하여 이 궁리 저 궁리 끝에 할머니 옷은 찾았다 옷을 입고 나니 그 때 들어온 손님이 할머니 집이 어디라고 일러준다. 목욕탕에서 일어난 일은 손님들의 손에서 종결이다.
단순한 이웃의 일일까?
필자는 이런 상황을 이번까지 세 번 보았다.
재미있는 것은 세 번 모두 상황의 마무리가 주인의 손이 아닌 손님들의 협동이란 것이다.
그 가게에서 일어난 사고인데 1차 해결의 책임자가 가게주인이니 가게 주인이 부재라면 주인을 대행할 종업원이어야 한다. 책임의 주체는 남의 일처럼 소극적인 협조정도이고 할머니를 직접 적극적으로 도운 사람들은 같은 손님이다. 가게 측에서는 도와준 손님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말도 없다 이웃에서 일어 난 불상사이니 이웃끼리 도우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인가? 대중목욕탕에는 노약자에 대한 어떤 경고문도 없고 제한도 없다 뜨거운 찜질방에는 경고문이 붙었으나 일반 탕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경고문도 없고 사고 후의 처리도 오로지 손님들의 호의로만 이루어지는 사고대처다. 지금은 글로벌 시대다. 이 태도가 미풍양속이라고 안일하게만 생각 할 수 있는 것인가.
키아누 리브스가 나오는 영화라서 봤다. 이 영화에서는 혼혈 사무라이로 나오는데 원작보다는 흥행의 목적으로 시나리오를 수정해서 출연시킨 것 같다.
미국의 칼린 쉬 감독이 만들었고 사무라이 대장 역에 사나다 히로유키, 영주의 딸 역에 시바사키 코우가 나온다.
여우에 홀려 재판관으로 방문한 사람을 공격했다는 이유로 영주는 쇼군으로부터 할복을 강요당해 죽는다. 영주를 모시던 사무라이들은 즉각 반격을 자제하고 훗날을 기약하며 숨어 지낸다. 드디어 반격의 준비가 갖춰지고 기습 공격으로 적들을 물리친다. 쇼군은 이들의 행위를 용서하면서 할복의 기회를 준다. 47인의 사무라이들은 사무라이 대장의 아들을 제이하고 장렬하게 자결한다.
여우가 둔갑하고 칼 싸움이 볼만한 영화로 타임 킬링 용이지만, 일본에서는 이 일화가 영웅담으로 남아 일본 정신을 심는데 좋은 작품으로 본다는 것이다. 주군을 향한 충성심, 그리고 자결행위가 당연한 영광으로 치는 것이다. 실화인지 만들어진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매년 12월에 이들을 위한 제사를 지낸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카이로 나오는 키아누 리브스와 영주의 딸의 사랑 이야기는 아무래도 무리가 있어 보인다. 칙칙한 남자들만 나오는 영화보다는 여자도 출연시켜 사랑 이야기를 넣어야 그림이 되기 때문이다. 카이도 47인의 사무라이 일원으로 영광스러운 자결에 참여한다. 할복자살을 영광이라고 대우하는 일본의 정신이 섬뜩하다.
일본의 정서는 문(文)의 정서인 우리와 비교할 때 무(武)의 정서이다. 사무라이를 영웅으로 치는 정서 속에 일본은 일찍부터 우리나라를 침략했다. 일제 식민지 시기에는 중국, 러시아를 상대로 싸웠고 미국까지 건드렸다가 패망한 나라이다. 일본의 우익은 아직도 그 향수를 못 잊어 재무장 하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가미가제 정신도 충성심을 강요하며 애꿎은 젊은 군인들을 자살 공격으로 내몬 정신적 기초가 되어 있으며 지금도 이들을 우상화하고 있다.
왕이 있던 우리 역사에서도 충신은 있었지만, 무관으로 그만한 충성심을 보인 예는 거의 없는 것 같다. 무관이 득세했던 고려시대에도 이렇다 할 스토리가 없다. 무관들의 집권투쟁에 초점을 맞춘 드라마가 있을 뿐이다. 무관인 이순신 장군의 예를 봐도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과는 다르다.
우리 역사에서 사약을 받고 죽은 관리는 많지만, 할복자살을 한 역사는 없다. 할복자살이란 얼마나 끔찍한 행위인가. 그런 정서가 우리 독립군들을 처형할 때 그대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일본에 대해서는 경계를 늦추면 안 된다. 호시탐탐 남의 나라를 침략할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나라이다.
증조할아버님 때부터 우리 집은 장남 집안이 되었다. 증조할아버님은 본래 차남인데, 형님이 큰댁에 양자로 가는 바람에 졸지에 장남이 되었다. 그런데, 할아버님도 증조할아버님과 똑같이 형님이 큰댁에 양자로 가게 되어 장남이 되고 말았다. 시아버님은 5형제의 장남이고, 남편도 5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거기다가 아들은 외아들이다. 이렇게 해서 5대째 장남인 집안이 되었다.
종부의 자리
시아버님의 형제들과 그분들에게서 태어난 자손들까지 모두들 우리 집으로 다 모인다. 시집와보니 처음에는, 기본이 27명이었다. 사촌 시동생들이 차츰 결혼들을 하고 아이들을 낳으니 숫자가 늘기 시작했다. 증조할아버님이 장남이 되어서 부모님의 제사를 지내다가 할아버님이 물려받고, 또 시아버님이 물려받았는데, 일찍 돌아가셔서 남편이 물려받고 내리내리 하다보니까 우리는 8분의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처음에는, 제사와 명절이 돌아 올 때면 두 달 전부터 걱정되고, 끝나고 나면 한 달씩 앓아누웠다. 막내로 자라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있다가 얼떨결에 종부가 되어버린 필자는 종부의 자리가 겁이 났다. 종부의 자리는 아무나 앉는 자리가 아닌데, 자격도 없이 덜컥 앉아버렸으니, 몸 고생과 마음고생이 자심하다. 작은 종부자리도 이렇게 어려운데, 대종가집의 종부는 얼마나 어려울까! 가늠조차 안 된다.
2대에 걸친 개혁 단행
새 할머님도 어머님도 모두, 2대에 걸쳐서 집안을 위해 획기적인 개혁을 단행하셨다.
새할머님은 제사를 하나로 통합 하셨고, 어머님은 제사를 아예 없애고, 시아버님의 묘를 ‘아내의 권한’으로 폐장 하셨다.
할머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할아버님이 재혼을 하는 바람에 새 할머님이 계시는데, 그 제사를 평생 모두 받들었다. 돌아가실 때는, 후손들을 위해서 ‘바쁜 세상에 젊은 사람들이 일해야지, 어떻게 제삿날 일일이 다 모일 수 있겠느냐, 시대에 맞게 고쳐가면서 살아야 한다’시며 제사를 모두 모아 합쳐서 할아버님 제삿날에 합동으로, 일 년에 딱 한번만 제사 받들라고 유언하셨다. 당시로서는 매우 획기적인 개혁이었다. 그 덕분에 손부인 필자가 좀 편해졌다.
어머님도 돌아가시기 몇 년 전, 윤달을 택해서 남편의 묘를 ‘폐장’ 하셨다. 그리고는 ‘내가 죽으면 화장을 해서 성당에 납골을 하라’고 하셨다. 어머님은 천주교 신자이시다. 시누이들도 모두 천주교 신자인데, 어머님의 납골 관리는 딸들에게 맡기셨고, 고향에 있는 산소들은 맏아들인 우리에게 맡겨졌다. 전부터 우리가 관리해 오던 것이니 당연한 일이다.
또, 몇 년 전 어머님이 돌아가실 때쯤에는, 제사를 아예 없앴다. 작은 아버님이 돌아가신 분도 있고 하니까, 각각들 개인적으로 집에서 제사를 따로 지내고, 우리 집에서 모두 모이는 건 이제 그만 하자고 하셨다. 우리에게도 윗대 조부모님들 제사는 집에서 지내지 말고, 그 대신 성묘 가서 간단하게 지내라고 평소에 늘 말씀하셨다. 그래서 어머님이 돌아가신 후로는 제사도 폐하고, 조상 묘가 있는 남편 고향에, 일 년에 두 번, 한식 때와 추석 때에 성묘만 다녀온다.
개혁에 대한 갈등
이제는 우리 차례다. 새 할머님이나 어머님처럼, 세상 떠나기 전에 집안의 마지막 남은 폐단을, 개혁하고 떠나야 할 사명이 남편과 내게 있다. 그것은 남은 조상들의 묘를 윤달마다 하나씩 폐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부부가 요즘 갈등하는 문제가 바로 ‘조상의 산소 폐장’이다.
조상의 묘를 폐장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집안의 어른들이 동의해 주어야 하고, 형제들과 사촌들의 동의도 있어야 한다. 동의라는 것이 본시 한 사람의 동의도 얻어내기가 어려운 것인데, 여러 사람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일이니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풍수지리를 공부한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 하는 것 중에 하나가 ‘동기감응’이라는 말이다. 조상과의 동기감응으로 인한 ‘후손 발복’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화장’을 하면 ‘동기감응’은 없다.‘무해무득’ 즉,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뜻이니 ‘후손 발복’ 자체를 바랄 수가 없다. 그러므로 납골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흙으로 돌아가도록 놔 주어야 한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을 붙잡고, 후손에게 물려줄 산천을 훼손하는 일은 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어머님도 조상들의 산소 폐장을 유언하셨고, 필자도 어머님과 같은 생각이다. 그런데, 2017년에 윤달이 온다. 어떻게 해야 하나? 다만, 지금은 시기적으로 너무 이른 것 같아서 남편과 필자가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폐장은 언제고간에 꼭 해야 할 일이다. 산은 가까이서 보면 잘 모른다. 멀리서 바라봐야 그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다. 고속도로를 지나다 보면, 아름다운 산천이 군데군데 후벼 파헤쳐져 흉측하기 이루 말 할 수가 없다. 무분별한 개발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산을 깎아서 모두 산소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이 땅이 자꾸만 훼손되고 자원이 고갈되어가고 있다. 이러다가는 산천이 모두 산소로 뒤덮이고 말 것만 같다. 후손에게 물려 줄 것이 없다는 건 후손의 미래가 어려워진다는 것과 같다. 이 땅은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남겨져야 한다. 죽은 사람은 깨끗이 퇴장하는 것이 아름답지 않을까 생각한다. 후손들은 조상의 훌륭한 일들을 기억하고, 배워서 훌륭한 조상들의 행실을 본받고, 또 다음세대에 알리고 가르치고 하는 일들을 이어가면서 한 집안의 전통과 문화를 만들어 가면 족하다고 본다.
친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재혼하셨다. 벌써 30년 전 일이다. 아버지가 유난히 주사가 심하고 권위주의적이라 우리 형제들은 멀리 하고 있었다. 그러던 참에 아버지가 재혼하셨으니 큰 짐을 던 셈이다. 20년을 같이 사시다가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셨다. 새 어미니가 혼자가 되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는 당연히 집안 행사 때마다 찾아 갔었지만 보통 때 일부러 찾아 가자니 마땅치 않았다. 우리가 가면 이것저것 먹을 것을 만들어야 하니 움직여야 하는데 폐를 끼치는 것 같고 막상 만나봐야 서먹하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본 것도 아니고 해서 기른 정도 없다. 아버지가 재혼할 무렵 우리도 바로 결혼해서 나왔기 때문에 같이 지낸 기간도 없다. 그래서 얼굴 뵙자고 일부러 간 일은 없다.
어쩌다 전화를 해도 바로 연락이 안 되었다. 집 전화는 부재중인 경우가 많고 미사 중에는 전화를 받기 곤란하기 때문이다. 성당에 다니시느라 늘 바쁘다지만, 자주 찾아뵙지 못했다. 우리도 바쁘고 사실 친어머니처럼 정이 든 것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명절이나 제사 때 같이 보기는 하지만, 안부나 묻는 정도였다. 무소식이 희소식이고 적당히 거리를 두고 지내는 것이 편하기도 했다.
“어머니!”라고 불러야 마땅한데도 막상 친어머니 생각에 그런 호칭이 나오지 않았다. 그냥 “할머니!”라고 불렀다. 내 입장이 아닌 애들 입장으로 본 촌수이다.
새 어머니가 이번에 고령으로 서울대 병원에서 무릎 관절 수술을 받았다. 가족 밴드로 연락은 받았지만, 바쁘다 보니 병문안도 못 갔다. 보름 간이나 입원했다는데 못 간 것이다. 사실 친어머니 같았으면 당연히 갔다. 새 어머니이다 보니 등한 시 된 것이다. 그것이 못내 걸렸었는데 마침 조카 손주 돌잔치를 한다고 해서 모였다가 생각나서 새 어머니 병문안을 제의한 것이다. 서울대 병원에서 동네 병원으로 옮겨 거리도 가깝고 면회 시간제한도 없어 편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마침 운동 삼아 복도를 왔다갔다 하시다가 우리와 마주 친 것이다. 회복 단계라서 통증도 별로 없고 3~4개월 지나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수술비도 좀 드리고 했어야 한다. 그러나 처지가 나보다 훨씬 나으니 그런 부담까지 안을 필요는 없다.
무릎 외에는 건강한 편이다. 고령이지만 우리보다 더 오래 살지도 모르니 같이 늙어가는 처지이다.
친어머니는 아니지만, 특별한 인연이 되었으니 잘 모셔야 한다는 생각은 한다. 그러나 잘 모실 뾰족한 방법이 마땅치 않다. 내가 차라도 있으면 여기저기 모시고 다닐 수 있겠지만, 여건이 안 되니 마음만 있다.
어쨌든 병문안을 못가서 찜찜하던 일이 이번 일로 덜게 되니 홀가분했다. 몸은 아픈데 찾아 줄 사람이 없을 때 외로웠을 것이다. 자식들이라고 멀쩡하게 있는데 오지 않으니 원망도 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다.
더위가 좀 식으면 남한산성 불당리 계곡의 닭죽집에라도 모실 생각이다. 생전에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갔던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