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은 왜 외로울까. 부와 명예를 쌓으며 인정받던 사회에서 물러나면서 오는 1차 충격. 그리고 위로해줄 이가 아무도 없다는 데서 오는 2차 충격이 있다. 대화가 단절된 지 오래된 가족마저 그들을 외면한다. 마음 둘 곳 없는 중년이 정신적인 고립에 빠져 있다. 극복 방법은 없는지 김찬호 성공회대학교 교양학부 초빙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배드민턴 운동을 좋아합니다. 30대 때 운동을 시작해서 10년 정도 치다가 쉬었어요. 그러다가 최근에 다시 운동을 하려고 하는데 무릎이 안 좋아져서 힘들더라고요. 몸이 예전 같지 않은 거죠. 그런데 그걸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1962년생인 김찬호 교수는 최근 자신이 겪었던 배드민턴 일화를 얘기했다. 당시 그는 “인생 후반기에 접어든 중년이 받아들이기 제일 어려운 일은 ‘상실’”이라는 점을 깨달았다고. 중년의 정신적 위기는 바로 ‘상실’에서 시작된다.
돈만 벌다 보니 어느새 고립
김찬호 교수는 중년의 고립에는 사회적인 원인이 있다고 봤다. 현재의 40~50대(1983~1964년생)는 어떤 성장의 시간을 보냈는가. 1997년 IMF 외환위기가 그들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자본주의 체계에서 일에 몰두하는 삶을 살다 보니 인간관계가 자연스럽게 단절됐다.
“IMF 이전에는 노동시장 바깥에서도 인간관계가 형성되어 있었어요. 이웃끼리 친하게 지냈고, 친척과의 왕래도 잦았죠. 그러니까 퇴직하고 나서도 외롭지 않았어요. 그런데 IMF 이후에는 삶이 생존이 됐어요. 주부들도 일터에 나가야만 했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에 전력투구했죠. 다른 사람에게 관심 갖기 어려워졌고요. 그나마 맺는 관계는 권력 관계나 이해관계였죠. 고립으로 가는 지름길이 만들어진 거예요.”
김 교수는 중년의 고립에 대해 “여유 없이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산 결과”라고 진단했다. 그들은 오직 ‘돈 잘 버는 것’이 목표인 삶을 살았다. 좋은 대학교, 좋은 직장에 가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이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노력해서 산 만큼 자녀 양육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자녀는 자신처럼 고생하지 않았으면 했고, 명문대나 대기업 등의 꿈을 이루지 못한 이들은 자녀가 대신 실현해주기를 바랐다.
“중년의 기러기 아빠(자녀의 교육을 목적으로 아내와 자녀를 외국으로 보내고 홀로 한국에 남아 뒷바라지하는 아버지)가 많은데, 그들을 단적인 예로 얘기해볼게요. 기러기 아빠는 가족으로부터 오는 정서적인 통로가 다 막힌 상태에서 돈을 벌겠다는 생각에 일에만 몰두합니다. 자기 내면도 가꾸지 못한 채로요. 그러다가 돈 버는 것을 못 하게 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거죠. 가족들은 이미 아버지를 돈 버는 사람으로만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돈 잘 버는 것이 중요한 사회에서 실직, 퇴직, 사업 실패 등 일자리 상실은 큰 충격을 안겨준다. 이제 남은 건 좌절감과 패배 의식뿐이다. 그래서 창피한 마음에 중년은 고립되기를 자처하는데, 그런 존재를 가족들도 환영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10~20대 자녀는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을 불편해한다. 사회적 고립이 가정 내 고립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중년에는 자기와 화해하는 게 정말 중요하거든요. 자기를 온전하게 수용하고,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방을 맞아들여요. 그런데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하니까 남한테 그 사랑을 요구하는 거죠. 그러다 보면 꼰대가 되고 권위주의자가 되는 거예요. 인정 결핍을 가진 굉장히 빈곤한 사람이 됐다고 할 수 있죠. 자녀한테 대접받고 싶으면 화를 낼 것이 아니라 자신이 먼저 변해야 합니다. 자녀의 이야기는 듣지도 않고 자신의 얘기만 하려고 하면 누가 좋아하나요? 다른 사람한테 짐이 되지 않으려면 스스로 자족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정신적 고립에서 벗어나는 방법
김찬호 교수는 저서 ‘대면 비대면 외면’에서 ‘고독’에 대해 흥미로운 표현을 했다. ‘고독’이라는 글자에 각각 ‘립’(立)을 붙이면, ‘고립’과 ‘독립’이 된다는 것. 사람들은 독립을 추구하지만, 타인과의 관계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흐를 때 고립에 이르고 만다. 그래서 스스로 독립을 훈련할 수 있다면 타인과의 만남도 한결 충실해진다.
중년이 스스로 독립하고자 한다면, 김 교수는 마음의 공간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마음의 공간이 작기 때문에 소통의 부재가 일어나고, 결국 고립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기 스스로를 점검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얘기를 정리해 보면, 퇴직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 상실감에 빠져 있을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조직에서 주어진 것을 시키는 대로 하는 삶을 살았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살지 못했어요. 그런데 퇴직을 하면 온전히 스스로 하루 24시간을 채워야 합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크게 나눠보면 건강, 일, 재정, 그다음에 인간관계라고 할 수 있어요. 이 네 가지를 하나하나 오랜 시간 동안 점검해봐야 합니다. 그러면 내가 지금 원하는 게 뭔지, 필요한 게 뭔지 알 수 있어요. 인간관계가 부족해서 개선하면 거기서 힘을 얻고, 그 힘으로 일을 하고, 그래서 건강도 회복하는 선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집니다.”
김찬호 교수는 “인생 점검이 끝나면 나만의 스토리가 만들어진다. 고립되는 데는 두 가지 경우가 있다. 자신의 스토리가 없거나, 또는 있어도 그 스토리를 들어줄 사람이 없을 때”라고 설명했다.
“저희 아버지가 올해 99세입니다. 요즘 아버지를 뵈러 일주일에 세 번은 가는데, 사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2주에 한 번 갈까 말까였어요. 아버지가 60년 동안 같은 얘기를 하셨기 때문에 정말 지겨웠거든요. 그러다가 최근 아버지가 말씀하시는 걸 즐거워하신다면 기꺼이 들어드리기로 마음을 바꿨죠. 아버지는 분명 스토리가 있는 분이에요. 여기서 스토리란 잘 살아온 삶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패한 스토리밖에 없다고 해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어요. 저는 아버지가 왕년에 잘나갔을 때 얘기보다 힘들었을 때 얘기를 해주시면 훨씬 더 와닿고 느끼는 바가 많습니다.”
그다음은 실전이다. 김찬호 교수는 자신의 취약함, 콤플렉스, 열등감 등을 내려놓고 사람들과 마주하라고 조언했다. 스토리는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서, 인문학적 소양을 쌓으면서 풍부해지기 때문. 김 교수는 모임 활동을 추천하면서, “익숙한 사람끼리 계속 모이는 것은 좋지 않다. 새로운 모임에 가서 새로운 것을 배워 자기 변신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새로운 자신이 만들어지면 안 쓰던 마음의 근육을 쓰게 돼 단단해진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인간은 시간의 노예다. 우리는 흐르는 시간에 매여 있지만 시간을 창조하는 힘을 가져야 한다”면서 “다음 세대에는 좋은 세상이 펼쳐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조금씩 달라지길 바란다. 저도 아버지와의 대화를 늘린 이유는 충만해진 제 마음이 퍼져나가길 바라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김찬호 교수. 현재 중년의 시기를 잘 보내야 외롭지 않은 노년을 맞고, 행복한 미래를 열 수 있다고 메시지를 남겼다.
“중년을 넘어 노년은 죽음을 향해 가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대학교 동아리 단체 채팅방에 50명 정도 있어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죠. 요즘 부친상, 모친상 비보가 많이 올라오는데, 20년 후에는 본인상이 올라오지 않을까 하는. 결국 마지막에는 한 사람이 남겠죠. 그 한 사람은 얼마나 고독하고 쓸쓸할까요? 디지털 세상에서 진짜 고립된 거죠. 이런 고립을 대비해 미리 예행연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은 ‘2023년 서울시 중장년 생애설계준비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서울시 중장년의 생애설계준비도는 100점 환산 기준 63.1점으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는 서울에 거주하는 만 40세 이상 65세 미만 중장년 1만 15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재단 리포트에 따르면, 지표가 된 ‘생애설계준비도’는 ‘과거 경험에 대한 성찰을 통해 현재와 앞으로의 자신과 환경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향후 목표 설정 및 계획을 수립하여 이를 이행하고 유지하기 위해 관리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생애설계준비도는 크게 ‘생애이해’와 ‘생애영역 설계관리’로 나눠 측정됐다.
조사 결과 서울시 중장년 생애설계준비도는 63.1점, 생애이해 영역은 65.6점, 생애영역 설계관리 영역은 61.8점으로 나타났다. 항목별 평균을 살펴보면 자신에 대한 이해가 67.9점으로 가장 높았고, 여가활동 설계관리가 59.1점으로 가장 낮았다. 성별로 보면, 남성의 생애설계준비도는 63.3점, 여성은 62.8점으로, 여가활동 설계관리와 신체적·정신적 건강 설계관리를 제외한 영역 및 항목에서 여성보다 남성이 약간 더 높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연령대별로는 생애설계준비도가 가장 높은 건 만 60~64세로 63.7점이었다. 반면 만 45~49세가 62.4점으로 가장 낮은 점수를 나타냈다. 또, 생애이해 영역은 만 55~59세(66.0점), 생애영역 설계관리 영역은 만 60~64세(62.6점)가 가장 높았으며, 연령이 낮아질수록 준비가 부족한 경향을 보였다. 가구 형태에 따른 세부 결과도 측정했는데, 기타를 제외했을 경우 2세대 가구가 모든 영역 및 항목에서 가장 점수가 높았고, 생애이해 영역(62.6점)과 자신에 대한 이해 항목(65.5점)은 1인 가구가 가장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
임소현 서울시50플러스재단 경영기획본부 정책연구팀 책임은 ‘50+정책동향리포트’(서울시 중장년 생애설계준비 실태와 지원 방향)를 통해 “인생 후반기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중장년은 편향되지 않은 균형적인 준비가 이뤄져야 하고 이를 위해 자신의 현재 준비 정도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며 “중장년 특성을 반영해 생애설계준비에 대한 정의를 구명하고 관련 이론 고찰, 선행 연구와 사례 분석을 기반으로 지표의 영역 및 항목을 구분하고 문항을 구성하여 타당성 검증을 통한 지표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평생현역시대, 생애설계에 빠질 수 없는 '일자리 지원'
생애영역 설계관리 영역의 세부 항목 중 ‘일(경제활동) 설계관리’ 점수(60.4점)는 타 영역의 평균보다 낮은 편으로 나타났다. 앞서 언급한 여가활동 설계관리를 제외하면 최하위다. 반면 최고점은 ‘재무설계관리’(64.8점) 항목. 지표의 정의를 토대로 풀이하자면, 경제적 관리(소득·부채·금융자산·부동산)을 위한 목표 및 계획(연금·투자·저축)을 실천하고 이를 점검·관리하는 것은 잘하는 편이지만, 일(경제활동)하는 것에 대한 목표 및 계획(자격증 취득·교육훈련 참여·교류 활동 등)을 실천하고 이를 유지·개선하려는 노력은 미흡한 것이다.
한편 수명 연장으로 길어진 노후, 전문가들은 줄곧 ‘평생직업’, ‘평생현역’을 강조하는 상황이다. 은퇴 전 축적한 자산만으로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적지 않고, 여생이 얼마나 될지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즉, 노후 경제적 관리를 고민한다면 일(경제활동)에 대해서도 염두에 둬야 할 테다. 그런 점에서 경제적관리 대비 일 설계관리가 부족한 것에 대해 다소 균형을 맞춰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볼 수 있겠다. 물론 스스로 상태를 점검하고 설계하기엔 어려울 수 있어 전문가의 도움이 더해지면 좋다.
송민혜 서울시50플러스재단 경영기획본부 정책연구팀 책임은 해당 리포트의 분석 자료(중장년 일자리지원 강화를 위한 경력설계상담의 현황과 시사점)를 통해 “생애설계는 직업 활동을 포함한 다양한 생활영역에서의 계획을 생애주기 단계에 걸쳐 수립하고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자리 관련 상담은 생애설계의 다양한 영역 중 직업, 경력 등 영역에 특화됐다. 해당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이 서비스 대상자가 가진 문제들을 해결하도록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도와주는 활동”이라며 “중장년의 일자리지원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상담 시 조언이나 공감보다는 취업·창업에 성공할 수 있도록 상담자의 역량을 키우고 방법을 논의·제시하는 역할이 더욱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서울시 중장년의 일자리지원 강화를 위해서는 현재 생애설계상담(4대 영역, 건강·재무·여가·대인관계)은 유지하면서 경력설계상담을 강화하여 중장년의 생애 전 영역에 대한 종합지원 방향으로 상담사업을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판단된다”며 “뉴딜 일자리로 운영되는 컨설턴트들이 생애설계상담을 제공하고 취업상담사 자격을 가진 인력은 경력설계를 담당하도록 함으로써 생애설계 다양한 영역에서의 상담과 지원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고 시사했다.
얼핏 글쓰기는 문턱이 낮아 보인다. 고가의 장비가 필요하지도, 대단한 조건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막상 책상에 앉아보면 다르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 초보자일수록 더욱 그렇다. 노후를 바꾸는 글쓰기·책쓰기, 도대체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안내자를 찾아 나섰다. 그리고 두 명의 길라잡이를 만났다.
글쓰기 편
2011년 10월, 조부의 친일 사실을 고백한 글이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일제강점기 고위 관료 경력으로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오른 할아버지를 대신해 친손자는 “민족과 역사 앞에 사죄”했고, 곧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 주인공 윤석윤 씨를 12년이 지나 마주했다. 가족의 치부를 드러내는 용기를 냈던 중년의 글쓰기 교실 수강생은 어느덧 시니어 글쓰기 강사가 되어 있었다.
윤석윤 강사는 12년 전 집을 나선 뒤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했다. “처음 수강한 글쓰기 교실에서 내준 첫 과제가 가족을 주제로 에세이 쓰기였습니다. 할아버지를 그제야 제대로 알게 됐습니다. 내 나이 쉰다섯에요. 그렇게 쓴 글이 터닝포인트가 됐습니다. 글쓰기가 막연하게 느껴지면, 저처럼 해보길 권합니다. 근처 도서관이나 문화센터에 가세요. 가서 글쓰기를 배우세요.”
그는 돈을 지불하고 배우는 길이 가장 빠르다고 말한다. 글 쓰고 받는 피드백 하나, 그리고 피드백을 대하는 태도 그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투자하면 달라집니다. ‘제대로 배우겠다’는 마음이 강해지죠. 결석하지도 않아요. 숙제도 다 제출합니다. 그게 돈을 지불하고 지불하지 않고의 차이예요.”
학교에는 교훈, 가정에는 가훈이 있듯, 윤석윤 강사의 강의에는 강훈이 있다. ‘숙제는 내는 것’이다. 그만큼 숙제를 강조하는 그다. “글쓰기는 글쓰기를 통해서만 좋아집니다. 제아무리 글쓰기 책을 본들 한계가 있습니다. 요지는 거의 비슷하거든요. 문제는 저자가 우리 글을 봐주지 않는다는 거지요. 혼자 쓰면 잘 쓰고 있는지 아닌지 알기 어렵습니다. 글쓰기 교육 프로그램에 들어가서 내 글을 전문가에게 보이고 피드백을 받아봐야 합니다.”
윤석윤 강사는 이 과정을 2년여 거쳤다. 글쓰기 대학원에 다닌다는 생각으로 돈과 시간을 투자하며 한 번에 두세 과정을 듣기도 했다. 숙제는 악착같이 냈다. 피드백은 가장 매운 버전으로 받았다. 원고는 시뻘건 줄이 죽죽 그어져 돌아오기 일쑤였다. “저는 빨간 펜을 지나 고추밭을 넘어 피바다를 헤맸습니다.(웃음)” 혹독한 트레이닝 속 방황하고 성장하기를 반복하며 그렇게 윤석윤 수강생은 윤석윤 강사가 됐다.
“저는 글쓰기 ‘입문’ 강사입니다. 여전히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수강생이었던 오랜 경험이 있지요. 좋은 글을 보는 눈도 가지고 있습니다. 오답 노트도 있고요.”
그는 입문 단계에서 좋은 글을 쓰려면 세 가지를 기억하라고 말한다. 쉬운 글, 재밌는 글, 짧은 글이다. 현학적이거나 추상적인 글을 지양하고, 독자의 흥미를 끝까지 끌고 가는 재밌는 글을 쓰라는 의미다. 이때 문장은 너무 길지 않게 단문 중심으로 쓰길 권했다. “글도 하나의 전달 수단입니다. 읽는 사람이 못 알아듣는 글은 좋은 글이 아니에요. 어려운 내용을 쓰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어려운 내용을 쓰더라도, 그 내용을 쉽게 풀어 써야 한다는 것이죠. 글에도 밀고 당기는 ‘밀당’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기억하세요. 그래야 뒤 내용이 궁금한 재밌는 글이 됩니다. 문장은 짧게 쓰는 것이 좋습니다. 입문 단계에서는 주술 호응이 틀리기 쉽기 때문입니다. 생각나는 대로 나열하듯이 쓰면 정리가 되지 않아요. 문장을 짧게 정돈하며 쓰면 훨씬 더 잘 읽힌다는 사실을 느끼게 될 겁니다.”
윤석윤 강사는 입문자를 상대로 방법론을 크게 강조하지 않는다. 정작 중요한 것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바로 동기다. 그가 첫 수업마다 수강생을 향해 던지는 첫 질문도 ‘왜 글을 쓰려고 하느냐’다. “다들 글을 쓰고 싶다는 막연한 열망으로 글쓰기 교실 문을 두드리지만, 실제 동력은 필요에서 옵니다. 끝까지 하는 힘은 구체적인 목표가 있을 때 배가됩니다. 욕망이 있는 사람과 필요가 있는 사람은 달라요.”
윤석윤 강사는 철저히 필요에 의해 움직였다. ‘책을 쓰겠다’는 버킷리스트가 그를 지치지 않게 했다. 저서가 필요했고, 그래서 글을 썼다. 조지 오웰이 ‘왜 나는 쓰는가’에서 말했듯, 순전한 이기심으로 시작한 일이다. 이름을 남기고 싶어서, 잘난 체하고 싶어서다.
기회가 오면 욕심을 부리고, 기회를 얻은 뒤엔 적극적으로 도움을 청하길 10여 년. 윤석윤 강사가 출간한 책은 벌써 공저 포함 다섯 권이 넘는다. 필요에 의해 시작된 글쓰기로 그는 화려한 노후 준비까지 마쳤다. 그는 더 이상 고독하지 않다고 말한다. “혼자 있어도 글이 있어 외롭지 않습니다. 글을 쓰며 놀면 되니까요.”
책쓰기 편
‘순이 삼촌’부터 ‘소설 동의보감’,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서른, 잔치는 끝났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까지. 한 시대를 풍미한 베스트셀러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인물이 있다. 바로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이다. 1982년 출판계에 입문한 그는 1983년 출판사 ‘창비’에 입사한 뒤 15년간 영업자로 일하며 ‘베스트셀러 제조기’로 불렸다.
1998년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를 설립해 25년째 운영하고 있는 한 소장의 관심은 이제 더 이상 판매에 있지 않다. 책에 관한 담론을 담은 책을 펴내는 출판사 ‘북바이북’, 국내 최초 시니어 전문 출판사 ‘어른의시간’, 4090세대 여성을 위한 그림책을 펴내는 출판사 ‘백화만발’ 등 양질의 단행본 출간을 지향하는 출판 브랜드를 운영하며 신인 저자들에게 손을 내미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윤석윤 강사에게 출간 제의를 한 이도 다름 아닌 한 소장이었다.
‘출판계 전설’ 한기호 소장은 시니어 작가들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독자들이 진정 원하는 건 삶을 살아낸 이들의 지혜이기 때문이다. “시대가 이제 지식을 원하지 않아요. 지혜를 원하지요. 어떻게 살아왔는가, 또 살아냈는가가 중요합니다. 살아낸 이들이 편안하게 들려주는 삶의 지혜를 담은 책이 이미 일본 출판 시장을 휩쓸었습니다.”
‘한국 문학의 어머니’ 박완서 작가는 말했다. “창작을 하는 데 가장 큰 자산은 습작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왔는가 하는 작가의 삶”이라고. 한 소장의 생각도 같다. 그는 고유한 삶의 지문을 가진 이를 발견할 때마다 따뜻한 말과 함께 손을 내민다. “책은 문장력으로 쓰는 것이 아닙니다. 축적된 삶으로 쓰는 것이지요. 책 써보지 않겠습니까?”
축적된 삶 중 어떤 부분을 보여줄지는 또 다른 문제다. 한기호 소장은 좋은 책을 쓰는 방법 중 단연 ‘트리밍’(불필요한 부분을 잘라내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내 인생에서 가장 강렬하거나 격렬했던 순간을 몇 개 꼽을 수 있을 거예요. 그게 바로 트리밍입니다. 그 시기를 이야기하다 보면 앞뒤가 연결됩니다. 전후 맥락이 있을 테니까요. 그때 만난 사람, 겪은 일, 느낀 감정을 쓰다 보면 결국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정리가 중요해요.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는 팩트가 확실한 주관화도 강조한다.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전달만 해서는 감동이 없기 때문이다. “감정이 느껴져야 해요. 어설프면 곤란하지만, 적당히 들어가야 합니다. 단, 팩트는 확실해야 합니다. 구체적인 팩트로 독자를 설득해야 하죠. 팩트는 사람, 사물, 사건의 형태로 드러납니다.”
한 소장은 책을 쓰고자 한다면 자신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편집하는 습관을 들이라고 말한다. 이른바 ‘편집자적 글쓰기’를 하다 보면 글은 자연스럽게 나아진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한 소장은 유홍준 교수를 예로 들었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자세히 보세요. 문화재청장 하기 전과 후의 글이 또 다릅니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늘고 접하는 지식이 달라지면 글도 진화합니다.”
한기호 소장은 책쓰기 연습을 서평 쓰기부터 시작하라고 권한다. 한 사람의 인사이트가 응축된 책을 읽고 압축하는 작업은 그 자체로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쓰고 싶은 주제에 대한 책을 읽는 것도 추천했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이 구체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소장이 권하는 좋은 책 쓰는 마지막 단계는 편집자와 같은 전문가를 만나 논의하는 과정이다. “책이 포트폴리오가 된다는 명분을 가지고 시쳇말로 ‘뜯어먹으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글을 제대로 읽고, 가치가 있는지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전문가를 만나 피드백받는 게 가장 좋습니다.”
한 소장은 앞으로도 유명 저자를 섭외할 생각이 없다. 혹 출간 제안을 받으면 주저하지 말라고 말한다. “책을 내면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연결되고 또 연결되고 하는 거죠. 책이 팔리고 안 팔리고는 중요하지 않아요. 책을 쓰는 자체로 인생이 바뀝니다.”
‘주식계의 개그맨’ 박민수(50) 씨는 순수한 광기를 지닌 유쾌한 인물로 보이지만 실은 그 반대에 가깝다. “돈 벌어야겠다고 생각하면 못 할 게 없다”고 대놓고 말하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이 땅의 아버지다. 쌍둥이 아들을 위해 은퇴도 미뤘다. 그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절실하게 하는 중이다.
여의도 증권 유관기관 24년 차 직장인이자 주식투자 1타 강사. 샌드타이거샤크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베스트셀러 작가. 그리고 구독자 225만 명을 자랑하는 이말년 작가의 유튜브 채널 ‘침착맨’에서 인지도까지 쌓아 올린 사나이. 박민수 씨와 마주하기 전에는 능력 있는 직장인의 흔한 성공 스토리로 보였다. 주식투자에 성공하면서 업계에 이름을 알린 뒤 실타래 풀리듯 각종 섭외 대상이 되는, 우리네에겐 무척 어렵지만 그 동네에서는 가능한 이야기의 주인공인 줄 알았다. 그래서 50대에도 해맑은 미소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만나보면 다르다는 말을 자주 들어요. 어쩌다 보니 재미를 주는 캐릭터가 됐는데, 사실 평소에 저는 굉장히 침착해요.”
차분한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더 의외였다. 그들만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운이라고 여겼던 영역마다 박민수 씨의 의도와 숨은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들을 위해서, 쓸모를 찾아서
직장인은 사표를 가슴속에 품고 다닌다는 말이 있다. 박민수 씨도 그렇다. ‘쓸모’라는 말을 유독 좋아하는 그에게 나이 들어 쓸모없어질 수 있다는 건 실체적 불안 그 이상이었다. “쉰 살이 되기 6~7년 전부터 회사에서의 내 쓸모가 줄어들겠다는 느낌이 왔어요. 회사 밖에서의 쓸모가 비자발적으로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고요. 쉽게 말해 나가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거죠. 언젠가 생길 일을 미리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가족을 어떻게 먹여살릴까’ 생각하면 엄청나게 절실해지는 거죠. 굶기면 안 되잖아요?”
박민수 씨는 고3처럼 살아가고 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주식투자 뉴스를 정리해서 네이버 카페에 올리고, 직장으로 가 오전 9시부터 오후 6~7시까지 업무를 본다. 운동 삼아 가급적 목동 집까지 1시간 30여 분 걸어서 퇴근하고, 오후 9시부터 새벽 2시까지 글쓰기 등 자기계발을 한다. 라디오나 유튜브 촬영이 있을 때면 꼬박 며칠을 준비에 매달리기도 한다. 체력의 한계를 느끼지만 루틴에 변함은 없다. “절실함이 원동력인 것 같아요. 가족이 있잖아요. 책임감인지 의무감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가족이라는 존재가 굉장히 에너지를 올려줘요.”
40대 초반까지 그는 쓸모를 회사 안에서만 찾았다. 밤샘 야근을 마다하지 않았고, 술은 마시지도 못하면서 회식 자리는 꼭 참석했다. 그렇게 ‘에이스’라 불리며 승진이 동기보다 2년 이상 빨랐지만, 몸은 정직했다. 버텨내지 못한 것이다. “2018년에 협심증으로 쓰러졌어요. 그때 또 한 번 이런 일이 있으면 큰일 난다는 의사 소견을 들었습니다. 당시 쌍둥이가 초등학생이었어요. 중환자실에 누워서 본 두 아이의 눈빛이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내가 이 아이들을 두고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해야 할 게 있더라고요.”
박민수 씨는 무작정 글을 쓰기 시작했다. 서른여섯에 “넌 뭘 잘하니?”라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불현듯 ‘주식을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그는 이후 점심도 굶어가며 주식 공부에 매달려 7년 만에 종잣돈 3000만 원을 8억 원으로 불렸다. 그 노하우를 아이들에게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내가 죽으면 아이들이 물려받을 텐데, 아직 어리잖아요. 쓸데없는 짓 해서 다 까먹을까 봐 걱정되는 거죠. 아빠만의 투자 방법과 원칙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렇게 하루에 3시간 자면서 3주 동안 쓰니 책 한 권 분량이 됐어요.”
2018년 9월 출간돼 현재까지 10만 부 이상 팔린 ‘주식 공부 5일 완성’은 이렇게 완성됐다. “인쇄소 가서 그럴듯하게 포장하려 했는데, 사장님이 그러더라고요. ‘내용이 좋으니까 책을 내보라’고요. 그래서 진짜 투고를 해봤어요. 당연히 안 되죠. 그런데 임프린트(한 출판사에 속한 별도의 하위 브랜드)에 원고가 흘러갔나 봐요. 마침 대표가 증권사 경험이 있는 분이라 가치를 알아봤고 출간이 이뤄졌어요.”
책은 2020년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대형 재테크 유튜브 채널 ‘신사임당’ 출연이 결정적이었다. 그 계기는 한 통의 메일에서 시작됐다. “제가 먼저 출연 요청을 했습니다. 답변은 2개월 후에 받았어요. 촬영 후 업로드까지 다시 2개월이 걸렸고요. 그리고 다음 날부터 소위 말해 빵 터졌죠. 인생 역전이었습니다.” 또 다른 유명 재테크 유튜브 채널 ‘김작가TV’ 출연도 마찬가지였다. 먼저 문의했고, 정중히 고사하자 재차 어필해 출연 기회를 얻었다. 그 6개월 사이 책 7만여 권이 팔렸다.
최고민수, 침착맨을 만나다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 애썼던 시간은 의외의 보상을 줬다. ‘침착맨’ 이말년 작가와의 인연이다. 박민수 씨는 2021년 초 MBC 웹예능 전문 유튜브 채널 ‘M드로메다 스튜디오’의 기획 시리즈 ‘말년을 행복하게’에 일일 주식투자 강사로 출연하며 ‘침착맨’과 안면을 텄다. ‘최고민수’라는 애칭도 그때 생겼다. ‘주식계 박찬호’라는 설명이 붙을 만큼 지치지 않는 열강에 ‘침착맨’이 “최고네요, 선생님. 닉네임도 바꾸세요, 최고민수”라고 하면서다.
인연은 ‘침착맨’ 채널까지 이어졌다. 7번 정도 출연했고, 그중 한 콘텐츠는 100만 뷰가 넘었다. “본인 채널에 와서 주식 강의를 1~2시간만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실수를 했어요. 주식 강사로 섭외된 자리에서 쓸데없는 이야기만 한 거예요. 군대 이야기, 축구 이야기, 군대에서 축구 한 이야기 등등 걷잡을 수 없이 말이 새버렸어요. 6시간 방송을 했는데 정작 주식 강의는 20~30분에 불과했죠. 집에 가면서 무지 걱정했어요. 욕먹을 각오를 했는데, 감사하게도 신선하게 봐주셨어요.”
콘텐츠에 대한 열의와 쉬지 않는 입은 이제 박민수 씨의 캐릭터가 됐다. 경제사 특강, 주식 종목 고르는 10단계 특강, 주식 ETF 투자법 7단계 특강 등 평균 6시간에 달하는 장시간 방송은 그 이미지를 굳혔다. 10시간 42분짜리 일본 기타큐슈 여행 브이로그는 그 정수로 꼽힌다. 박민수 씨는 한시도 말을 쉬지 않았고, 구독자는 그 모습을 오롯이 즐겼다. 영상은 90만 뷰를 기록 중이다.
“기타큐슈 여행 브이로그로 인지도가 굉장히 올라갔어요. 어쩌다 보니 재미를 주는 캐릭터가 됐는데, 사실 굉장히 열심히 준비해 가는 사람이에요. 말했잖아요, 저는 ‘쓸모’가 중요한 사람이라고요. 출연 전 일주일 정도 준비에 매달려요. 기타큐슈 여행도 정말 많이 준비했어요. 실은 항일 투어로 계획한 거라 일본 역사까지 속속들이 공부했죠. 내 밥값을 다하기 위해, 내 쓸모를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거예요.”
앞으로 3년, 은퇴 후는 내 마음대로
박민수 씨는 3년 뒤 은퇴를 꿈꾸고 있다. 그때가 되면 가장의 부담을 다소 내려놓아도 괜찮을 시점이기 때문이다. “3년 뒤면 아이들이 스무 살이 됩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는 직장인 신분을 유지할 생각이에요. 아빠 이야기가 나왔는데 제가 집에서 쉬고 있는 상황이면 아이들이 움츠러들지 않을까 해서요. 지금은 월급이 소중한 상황이기도 하고요. 은퇴하면 2년 정도 저도 질풍노도의 시기가 될 수 있다고 봐요. 또 다른 일을 할 텐데 그게 잘 될지 안 될지 모르는 거잖아요. 그래서 3년 정도 여유를 두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때까지 준비를 잘 해야죠.”
앞으로 3년, 그는 망가질 준비가 돼 있다. 내성적이지만 가장이라는 무게는 개인 성향을 뛰어넘는다고 말한다. 그는 아예 스스로를 ‘주식계 개그맨’으로 포지셔닝할 정도다. “다들 그래요. 얼굴 내놓고는 못 하겠다고요. 그런데 가장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고서 내가 하고 싶은 걸 해야 하는 거예요. 너무 직설적인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가족을 위해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하면 저는 어떤 것도 할 수 있어요. 카메라 앞에서 웃고 떠드는 일이 쉽지 않아요. 그런데 절실하면 부끄러운 거 없습니다. 일단 하는 거예요. 은퇴를 꿈꾼다면 더욱더요.”
은퇴 후 박민수 씨는 ‘침착맨’ 같은 삶을 꿈꾼다. 예능 PD를 꿈꾸며 방송국 최종 면접까지 본 경험이 있는 그다. 제2의 인생은 보다 즐겁고 자유로운 나날로 채워지길 바라고 있다. 그가 기획하는 프로그램은 ‘최고민수의 중2병’. 박민수 씨는 3년 뒤 유쾌한 방황을 예고했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은 여행 유튜버예요. 지난해 빠니보틀(구독자 190만 명의 여행 유튜버)님도 만났어요. 회사를 그만두면, 그때는 진짜 내 맘대로 막 삐뚤어져보고 싶어요.”
해를 거듭할수록 기대수명이 증가하는 가운데, 노후 준비는 더 이상 먼 훗날의 이야기가 아니게 됐다. 이미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부동산, 즉 아파트를 주거뿐 아니라 재테크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기왕 살 집, 자산으로서 교환가치가 높은 아파트를 선택하고 싶다면 무엇을 고려해야 할까? 이동현 하나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을 만나 여생을 위한 부동산 투자전략과 시세 변동성이 적은 '알짜' 아파트 고르는 방법을 알아봤다.
Q. 대한민국에서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는 언제부터 주요 자산으로 기능했나요?
A. 우리나라는 고속 성장을 이루면서 도시 주변으로 인프라가 형성됐고, 인구 집중 현상이 심화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보다 더 효율적이고 편리한 생활을 위해 아파트가 도입됐어요. 새로운 주거 형태에 수요가 몰리고 가격이 상승하면서 상품화가 이뤄진 겁니다. 특히 베이비부머 세대는 아파트 가격의 상승기를 경험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선호가 두드러지고, 남다른 애착이 있죠. 여전히 한국인에게 아파트는 삶의 공간이자 최후의 안전망이라는 인식이 남아있습니다.
Q. 하지만 자산이 부동산에 묶여있어 즉각 대응이 되지 않는 경우도 다반사입니다.
A. 보통 은퇴 전후로 자녀가 대학 진학이나 결혼 등의 이유로 분가하게 됩니다. 더 이상 자녀와 함께 살던 큰 규모의 주택이 필요 없어지게 돼요. 기존 부동산을 처분하고 중소형 주택을 마련하는 다운사이징(Downsizing)을 고려해볼 법합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차익은 노후 자금으로 사용할 수 있어요.
Q. 노후를 위해 아파트를 마련한다면, 어떤 요소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까요?
A. 당장 눈앞에 보이는 수익성보다는 안전성과 환금성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소위 ‘한방’을 노리는 투기적 접근을 시도했다가는 투자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어요. 이미 3저(저성장, 저금리, 저물가) 현상이 고착화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은퇴자가 큰 폭의 매각차익만을 노리고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은 다소 무모할 수 있죠.
Q. 신축 아파트와 구축 아파트, 둘 중 하나만 살 수 있다면 어느 쪽을 택하는 게 경제적인가요?
A. 신축 아파트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구축 아파트로 눈을 돌리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구축 아파트에 실제로 거주하면서 향후 시세차익을 기대하는 ‘몸테크’족도 있고요. 하지만 50대, 60대 은퇴자들이 동파 사고 등 낡은 건물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점을 견디기란 쉽지 않습니다. 사실상 재건축에 돌입해도 최소 5년은 기다려야 하니까요. 그래도 구축에 투자한다면 땅값이 비싼 곳일수록, 재건축 사업 기간은 짧을수록, 대지 지분은 클수록, 현재 용적률 혹은 개발 가능한 용적률이 높을수록 좋습니다. 앞서 반드시 아파트를 받을 수 있는 조합원인지 꼭 확인해야 합니다.
Q. 불안정한 부동산 시장에서 주거와 투자 가치가 높은 아파트는 어떻게 골라야 하나요?
A. 입지 및 교통 요건, 지형, 방향, 층, 조망권, 학군은 물론이고 최소 500세대 이상의 단지 규모에 브랜드 파워가 강한 아파트를 우선적으로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대형마트나 백화점, 아울렛이 근접해 있으면 좋지만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온라인 쇼핑이 발달해 과거보다 선호도가 떨어지는 추세입니다. 더불어 갈수록 인구는 줄어들지만 1인 가구, 2인 가구로 나뉘어 가구 수가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요. 앞으로는 소형 평수지만 수영장, 헬스장, 커뮤니티 시설 등 다양한 공간이 갖춰진 아파트가 주목받을 거라 예상합니다.
자녀에게 회사를 물려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가업 승계 과정에서는 막대한 조세가 발생한다. 우리나라의 상속세 최고 세율은 50%로, 기업 지분을 100% 보유한 창업 1세대가 2세대에게 경영권을 승계하면 그 지분율은 50%, 3세대까지 승계하면 25%만 남게 된다. 때문에 많은 중소기업이 가업 승계를 포기하고 지분을 매각하거나 폐업을 선택하는 상황이다.
세법은 국내 거주자인 피상속인이 생전에 10년 이상 운영한 중소기업 등을 상속인에게 정상적으로 승계한 경우 최대 600억 원까지 공제해 가업 승계에 따른 상속세 부담을 낮춰주고 있다. 이를 가업상속공제라 하는데, 기업의 기술 및 경영 노하우를 상속인이 효율적으로 전수받아 기업을 영속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도록 지원해 장수 기업을 육성하려는 목적이다. 그러나 그 요건과 사후관리가 까다로워, 이를 적용받기 위해서는 관련 규정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
가업상속공제 요건
먼저 가업 요건을 알아보자. 대상 가업은 피상속인이 10년 이상 계속하여 경영한 중소기업(자산총액 5000억 원 미만) 또는 중견기업(직전 3개년 평균 매출액 5000억 원 미만)에 해당해야 하며, 법령이 정하는 업종을 주된 사업으로 영위해야 한다. 여기서 경영이란 단순히 지분을 소유하는 것을 넘어 가업의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관리 및 운영을 위해 실제 가업 운영에 참여한 경우를 의미한다. 피상속인이 10년 이상 계속하여 영위한 사업인지 판정할 때 피상속인이 사업장을 이전하여 같은 업종의 사업을 계속 영위할 때는 종전 사업장에서의 사업 영위 기간을 포함해 계산한다. 그리고 개인사업자로서 영위하던 가업을 동일 업종의 법인으로 전환하여 피상속인이 법인 설립일 이후 계속하여 그 법인의 최대 주주 등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개인사업자로서 가업을 영위한 기간을 포함하여 계산한다. 법인이 인적 분할한 경우 분할 신설 법인의 사업 영위 기간은 분할 전 분할 법인의 가업 영위 기간 기산일부터 계산하여 가업상속공제를 적용한다.
중견기업의 경우 위 요건에 해당하더라도 가업을 상속받거나 받을 상속인의 가업상속재산 외 상속재산의 가액이 상속세로 납부할 금액 2배를 초과하면 가업상속공제를 적용받을 수 없다. 다른 상속재산이 없어 상속세 납부를 위해 가업상속재산을 매각해야 하는 등 가업상속공제를 받지 못하면 가업 승계가 어려운 경우에만 공제를 해주겠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피상속인 요건이다. 피상속인은 상속 개시일 현재 국내 거주자여야 하며, 10년 이상 발행주식 총수의 40% 이상(상장법인인 경우 20% 이상)을 계속 보유해야 한다(친족 등 특수관계인의 주식 포함). 또한 피상속인은 ① 가업의 영위 기간 중 50% 이상의 기간, ② 상속인이 피상속인의 대표이사 등의 직을 승계하여 승계한 날부터 상속 개시일까지 계속 재직한 경우에는 10년 이상의 기간, 또는 ③ 상속 개시일부터 소급하여 10년 중 5년 이상의 기간 동안 대표이사(개인사업자의 경우 대표자)로 재직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상속인은 ① 상속 개시일 현재 18세 이상이어야 하고, ② 상속 개시일 전에 가업의 영위 기간 중 2년 이상 직접 가업에 종사해야 한다. 다만, 피상속인이 65세 이전에 사망하거나 천재지변 및 인재 등 부득이한 사유로 사망한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 또한 상속 개시일 2년 전부터 가업에 종사한 경우로서 상속 개시일까지의 기간 사이에 병역의무 이행, 질병 요양 등의 사유로 가업에 종사하지 못한 기간이 있는 경우에는 그 기간은 가업에 종사한 기간으로 본다. 상속인이 가업에 종사하다가 중도에 퇴사한 후 다시 입사한 경우 재입사 전 가업에 종사한 기간을 포함하여 상속인의 가업 종사 기간을 계산한다. 그리고 ③ 상속인은 상속세 과세표준 신고기한까지 임원으로 취임하고, 상속세 신고기한부터 2년 이내에 대표이사 등으로 취임해야 한다.
상속인의 배우자가 이러한 요건을 모두 갖춘 경우에는 상속인이 그 요건을 갖춘 것으로 본다. 피상속인이 국내 거주자인 경우, 상속인이 위와 같은 요건을 갖추었다면 상속인은 상속 개시일 현재 비거주자인 경우에도 가업상속공제를 적용받을 수 있다. 추가로 기업의 준법 경영책임을 강화한다는 취지에서 탈세 및 회계부정 등 불성실 기업인에 대해서는 가업상속공제 혜택을 배제한다. 피상속인 또는 상속인이 가업의 경영과 관련하여 조세포탈 또는 회계부정 행위(상속 개시일 전 10년 이내 또는 상속 개시일부터 5년 이내의 기간 중의 행위로 한정)로 징역형 또는 벌금형을 선고받고 그 형이 확정되는 경우 가업상속공제를 적용받을 수 없다. 이미 가업상속공제를 적용받은 후 상속인에 대한 형이 확정된 경우에는 공제받았던 상속세 및 이자 상당액을 추가로 납부해야 한다.
가업상속재산의 범위와 공제한도
가업상속재산이란 소득세법을 적용받는 가업의 경우 상속재산 중 가업에 직접 사용되는 토지, 건축물, 기계장치 등 사업용 자산에서 해당 자산에 담보된 채무액을 뺀 가액을 말한다. 법인세법을 적용받는 가업의 경우 상속재산 중 가업에 해당하는 법인의 주식 등의 가액에 그 법인의 총자산가액에서 사업무관자산을 제외한 자산가액이 차지하는 비율을 곱한 금액에 해당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사업무관자산이란 법인세법상 비사업용 토지, 업무무관자산 및 타인에게 임대하고 있는 부동산, 대여금, 과다 보유 현금, 영업활동과 직접 관련 없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 채권 및 금융상품 등이다.
사업무관자산 중 법인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에 대한 판단이 자주 문제가 된다. 법원은 법인의 영업활동과 직접 관련하여 보유하고 있는 주식이란 법인이 제품의 생산활동, 상품ㆍ용역의 구매활동 및 판매활동 등과 직접 관련하여 보유하는 주식을 의미하고, 투자활동이나 재무활동과 관련하여 보유하는 주식은 제외된다고 해석하고 있다. 따라서 법인이 단순히 관계회사에 대한 지배권 내지 경영권을 보유할 목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주식은 법인의 영업활동과 직접 관련하여 보유하고 있는 주식에 포함되지 않는 반면, 법인의 영업활동을 위해 필요한 현지 생산공장에 해당하는 해외 현지법인 출자 주식은 국내 법인의 영업활동과 직접 관련이 있으므로 법인의 사업 관련 자산에 포함된다.
가업상속재산에 상당하는 금액을 전부 상속세 과세가액에서 공제하는데, 피상속인의 경영 기간에 따라 10년 이상 20년 미만 경영한 경우 300억 원, 20년 이상 30년 미만 경영한 경우 400억 원, 30년 이상 경영한 경우 600억 원을 한도로 공제한다.
사후관리는 필수
이게 끝이 아니다. 상속 개시일로부터 5년 동안 상속인이 지켜야 할 사후관리 요건이 있다. ① (가업 종사 요건) 상속인은 대표이사 등으로 가업에 종사해야 하고, 가업을 1년 이상 휴업하거나 폐업하지 않아야 한다. 가업의 주된 업종을 변경하면 안 되는데, 표준산업분류상 중분류 내 업종 변경은 허용한다. ② (자산 유지 요건) 가업용 자산의 40% 이상을 처분하지 않아야 하며, ③ (지분 유지 요건) 주식 등을 상속받은 상속인의 지분이 유지되어야 한다(상속세 물납에 따른 지분 감소는 제외하되 이 경우에도 최대주주 등에 해당해야 함). 마지막으로 ④ (고용 유지 요건) 상속 개시일부터 5년간 정규직 근로자 수 또는 총 급여액의 전체 평균이 직전 2개 사업연도 평균의 90%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 정당한 사유 없이 위 요건을 위반하는 경우 공제받은 상속세를 다시 납부해야 하며 이에 더해 이자 상당액까지 추가로 부과된다. 가업상속공제가 추징되지 않는 정당한 사유는 법령에서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다.
최근 기획재정부의 유권해석에 따르면, 가업상속공제 적용 시 상속받은 가업법인 주식 중 일부만 가업상속공제를 받는 것으로 선택하는 것이 가능한데, 이 경우 가업상속공제를 받지 않은 주식 일부를 사후관리 기간 내 처분하는 것은 사후관리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
가업 승계 장려를 위한 지원
가업상속공제는 가업 승계를 장려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지만 그 요건이 한정적이고 사후관리 의무 역시 엄격하여 그 활용이 저조하다. 2016~2022년 우리나라의 가업상속공제 제도 연평균 이용 건수는 103건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22년에 가업상속공제 적용 대상 및 공제한도액을 확대하고 사후관리 요건을 완화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7월 발표한 2023년 세법 개정안을 보면 사후관리 요건을 완화하는 내용(가업 종사 요건과 관련하여 표준산업분류상 대분류 내 업종 변경 허용)도 추가됐다.
이번 글에서 소개하지 못했지만 세법은 생전에 이루어지는 가업 승계를 지원할 목적으로 가업 승계에 대한 증여세 과세특례제도도 두고 있다. 가업의 승계를 목적으로 해당 가업의 주식 등을 증여하는 경우 낮은 세율로 증여세를 부과하는 제도다. 가업상속공제를 적용받는 대신 상속받은 가업상속재산을 양도·상속·증여하는 시점까지 상속세 납부를 유예받을 수 있는 제도를 활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가업 승계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과 활용을 통해 장수 기업들이 그 경쟁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100세 시대가 온 만큼 세대별 노후자산 관리 전략이 중요하다는데,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김진웅 소장의 얘기를 들어보자.
2030세대 - 종잣돈을 모으자
“이 시기엔 종잣돈 모으기를 소홀히 하지 마세요. 자산관리를 일찍 시작하고 경제활동을 하면서 경험을 쌓아야 은퇴할 때 적절한 대처가 가능합니다.”
4050세대 - 노후자금을 빼서 쓰지 말자
“생애주기를 봤을 때 추가 저축이 힘든 시기입니다. 그렇다고 노후자금을 당겨 쓰면 안 됩니다. 현재와 노후, 두 축의 균형을 맞추도록 하세요.”
6070세대 - 자산의 수명을 최대한 늘리자
“인출 전략을 잘 세워야 합니다. 가지고 있는 금융자산이나 부동산 등으로 현금이 계속해서 공급될 수 있도록 하세요.”
비교적 젊을 때부터 자산관리를 하자
“노후자산 관리의 필요성을 느꼈다면 그때부터는 현재의 나를 위한 축 하나, 노후를 위한 축 하나, 두 축을 가져가야 합니다.”
신탁을 처음 들어본 사람은 없지만, 개념·원리를 깨우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여전히 ‘부자들을 위한’ 서비스 정도로 여기곤 한다. 고령화와 함께 구원투수로 떠오른 신탁을 한눈에 볼 수 있게 정리했다. ‘보통 사람들을 위한’ 신탁 안내서를 시작한다.
Q 신탁이란 무엇인가?
신탁은 자산관리부터 증여·상속에 이르기까지 생애 전반을 종합적으로 다루는 ‘유연한’ 금융 서비스다. 통상적으로 Trust, 즉 신뢰·신임 관계를 바탕으로 ‘믿고 맡기는’ 상품으로 설명된다. 신관식 세무사의 설명은 좀 더 구체적이다. “신탁을 하면 소유권이 수탁자(신탁회사)로 바뀝니다. 부동산을 신탁하면 명의가 바뀌고, 주식을 신탁하면 주주명부의 이름이 바뀌는 식입니다. 즉, 소유권이 넘어갑니다. 굉장히 특이하죠? 이때 위탁자(고객)는 소유권을 넘기는 대신 관리, 처분, 운용, 개발 등의 임무를 수탁자에게 부여합니다. 스스로 할 수 없으니까요. 맡고 맡긴다기보다 대신 해주라고 임무를 주는 겁니다.”
Q 고령화와 함께 주목받는 이유는?
신탁은 자익신탁과 타익신탁으로 나뉜다. 위탁자와 수익자가 같으면 자익신탁, 다르면 타익신탁이다. 원래 신탁은 투자 목적인 자익신탁이 주를 이뤘다. 그런데 고령 인구가 늘면서 생전쪾사후 자산관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자익신탁과 함께 타익신탁도 주목받고 있다.
신 세무사가 종전 질문에 ‘스스로 할 수 없으니까’라고 한 부분에 집중해보면 이유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스스로 할 수 있다면 맡길 이유가 없죠. 그런데 나이 들면서 몸이나 정신 건강이 온전치 않아 자산관리를 못 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대표적으로 치매가 그렇죠. 내가 의사결정을 제대로 할 수 없더라도 생전에 나를 위해 자산이 쓰이도록 할 수 있고, 사망했을 때는 누구에게 남은 자산을 줄 것인지까지 설정할 수 있는 상품이 바로 신탁입니다.”
Q 신탁은 초고액 자산가들의 전유물 아닌가?
대표적인 오해다. 신 세무사는 “거의 대부분의 고객이 일반 서민”이라며 펄쩍 뛰었다. 서울 소재 30평형대 똘똘한 아파트 한 채만 소유해도 신탁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서울 시내 30평형대 아파트 한 채가 거의 10억 원이 넘습니다. 즉 상속세 대상이라는 뜻입니다. 상속세뿐만 아닙니다. 증여세, 종합부동산세 등 고려해야 할 게 많습니다. 그럼 자연히 상속 시점을 고민하게 됩니다. VIP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Q 유언대용신탁, 유언장과 무엇이 다른가?
가장 대표적인 신탁인 유언대용신탁은 유언장이 없더라도 신탁계약 형태로 재산 상속이 가능하도록 한 상품이다. 생전에는 본인을 수익자로 정하고 사후에는 생전에 정한 수익자에게 신탁재산을 안정적으로 승계하는 것이 목적이다. 상속은 위탁자 사망 사실과 수익자의 신분만 확인되면 바로 이뤄진다.
유언장으로 뜻을 전할 수도 있지만 그 한계는 분명하다. 신 세무사의 설명이다. “유언대용신탁은 상속자와 상속인 모두 아는 행위입니다. 유언장은 상속인이 모르지요. 유언공증을 받아도 상속인은 모릅니다. 또 유언공증은 가장 마지막에 한 것이 효력을 가집니다. 도난, 분실, 훼손 우려도 있고요. 상속인들끼리 분쟁이 잦은 이유입니다. 그러다 보니 유언장으로는 작성한 사람의 의도대로 상속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Q 유언대용신탁을 하면 유류분에서 제외되나?
유류분은 상속인이 법률상 반드시 취득하도록 보장되어 있는 상속재산의 가액을 의미한다. 최소한의 상속분을 법으로 정했다는 뜻이다. 2020년 1월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1심 판결에서 유언대용신탁을 유류분에서 제외한다고 판시한 적이 있긴 하나, 아직 그 관계를 속단하긴 이르다. 신 세무사는 판단 기준에 따라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 했다. “그 판결은 센세이션했습니다. 법조계는 물론 신탁업계에서도 신탁재산을 유류분에 포함한다는 의견이 다수이기 때문입니다. 유언대용신탁과 유류분의 관계는 법리적으로 매듭지어지지 않았습니다. 유류분에서 제외될 수 있다, 없다를 아무도 함부로 얘기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Q 고령화와 함께 주목받는 신탁 상품은?
대표적으로 상조신탁, 봉안신탁 등이 있다. 상조신탁은 자산관리를 맡긴 금액 중 일부를 사망했을 때 상조 비용으로 사용하도록 지정하는 상품이고, 봉안신탁은 사후를 대비해 스스로 장지를 준비하는 상품이다. 펫신탁도 있다. 반려동물 주인이 사망 등의 이유로 반려동물과 함께하지 못할 경우, 반려동물을 돌봐줄 새로운 주인에게 자금을 주는 상품이다.
Q 신탁, 어떤 사람에게 적합한가?
신 세무사는 먼저 독신을 꼽았다. 결혼하지 않았거나, 배우자가 먼저 세상을 떠난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상속을 본인 뜻대로 하고 싶은 사람에게도 추천했다. 쉽게 말해 ‘예쁜 자식에게 좀 더 주고 싶은 사람’에게 적합하다는 뜻이다. 자녀에게 장애가 있거나, 자산관리 능력이 부족해 동기부여가 필요한 경우도 신탁이 제격이라 했다. 끝으로 가업을 승계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추천했다. “일종의 리스크 헤지(위험회피) 차원입니다. 각각의 재산을, 누가, 소유권 100%로 가져가는지가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그래야 위탁자 사망 후에도 각 상속인이 문제없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습니다.”
40·50세대의 돈 걱정 없는 100세 시대 미래 설계를 위한 노후 자금 마련 지침서 ‘노후 생존 자금’이 발간됐다.
이 책은 시니어 매거진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40·50세대를 위해 기획한 콘텐츠 큐레이션 매거진 시리즈 ‘dice@11pm’의 두 번째 책이다.
2025년 우리나라의 초고령 사회 진입을 앞두고 긴 노후를 대비해야 하는 40·50 후기청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우리는 평균 30세에 입사해 50세에 은퇴하고 약 40년의 노후를 보내야 한다. 노후에 가장 큰 걱정은 자금 마련일 것이다.
‘dice@11pm’ 시리즈의 두 번째 책 ‘노후 생존 자금’은 40·50세대의 은퇴 후 삶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본지의 기획에 ‘신한은행’이 힘을 보탰다.
‘노후 생존 자금’ 편에는 40·50세대의 노후 자금 마련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정보를 빠짐없이 실었다. 노후 자산 관리 트렌드, 노후 대비 자산 준비 방법, 전문가들의 뼈와 살이 되는 조언들을 담았다.
파트1에서는 노후에 필요한 자산은 얼마일지, 나의 자산 현황은 어떤지 점검해볼 수 있다. 파트2에서 점검해보는 머니프로필은 신한은행의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와 은퇴설계 설문조사 등을 참고해 독자의 현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기준점을 제시했다.
자신의 자산이 얼마나 있는지 노후에 어떤 자금이 얼마나 있어야 하는지 계산했다면, 다음으로 목표를 세우고 자산을 불려 나가거나 절세 등으로 절약을 실천해야 한다. 파트3에서는 40·50세대에게 적합한 자산 관리 트렌드와 자산별 투자 방법을 소개한다. 파트4에는 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절약 노하우, 자산별 절세 노하우, 상속·증여 과정에서 알아야 할 절세 방법, 노후 파산 위험을 방지할 예방법 등을 담았다.
노후에 활용할 자산의 기초는 연금이다. 파트5에서는 국민연금뿐 아니라 농지연금, 주택연금, 퇴직연금 등 다양한 연금 활용법을 소개한다. 뿐만 아니라 길어진 수명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현금흐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파트6에서는 샘이 마르지 않는 우물과 같은 자산이 무엇인지, 자산을 어떻게 현금화할 것인지, 소득 흐름을 만드는 방법은 무엇인지 살펴봤다.
또한 40·50세대가 불안한 노후를 더욱 안정적으로 보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각 분야에서 저명한 전문가들이 총출동해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강창희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포럼 대표, 최문희 FLP컨설팅 대표,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 배정식 법무법인 가온 패밀리오피스센터 본부장, 오영환 시니어금융교육협의회 사무총장, 이관석 신한은행 은퇴솔루션 컨설턴트, 김동엽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상무 등이 다양한 관점에서 노후 대비 자산 관리 꿀팁을 대방출했다.
파트1부터 6까지 순서대로 따라간다면, 일하지 않고도 매달 받는 ‘노후 월급’을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자신에게 맞는 노후 자산 준비 방법을 먼저 보고 싶다면, 책의 앞부분에서 소개하는 ‘자산관리 성향 테스트’를 해보고 추천 페이지부터 읽어도 된다.
책을 보면서 곳곳에 자리한 QR코드를 활용하면 좀 더 구체적인 정보들을 볼 수 있다. 금융상품 정보나 연금 계산 등을 바로 볼 수 있도록 QR코드로 연결해두었다.
본지 편집인은 “은퇴 후 40여 년의 시간이 불안하지 않으려면 노후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자산 준비 과정이 필요하다. 이번 다이스앳 ‘노후 생존 자금’ 편에서는 40·50세대를 위한 노후 대비 자산 관리 방법을 다방면으로 소개한다”면서 “다가올 노후가 불안한 후기청년들에게 이 책이 노후 설계의 디딤돌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dice@11pm’ 시리즈를 통해 앞으로 40대 이상의 ‘후기청년’ 세대를 위한 다양한 은퇴·노후 정보를 다룰 예정이다. ‘dice@11pm’은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잠 못 드는 매일 밤 11시, 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주사위를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명명됐다. 6개의 면으로 이루어진 주사위처럼 ‘dice@11pm’도 여섯 개의 파트로 구성됐다. 책은 순서대로 보지 않아도 무방하다. 주사위를 던져 나오는 숫자처럼 어느 파트를 봐도 도움이 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구성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프리미엄 경제신문 ‘이투데이’가 발행하는 중장년 대상 월간지이다. 품격 있는 시니어들이 행복한 노후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건강, 금융·자산, 주거, 뷰티, 여행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심사하는 ‘우수콘텐츠 잡지’에 2017년부터 3년간 선정되어, 공공성과 유익함을 인정받았다.
인구구조에 관한 한 낙관론은 없다. 무너지고 있고, 앞으로도 무너질 것이다. 전문가들은 말한다. ‘붕괴’ 할 것이라고. 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은 지금이 우리에게 주어진 일종의 ‘챌린지’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때의 투자법은 달라야 한다고 했다.
가장 확실한 투자법, 1인 1기
영화 ‘첨밀밀’은 많은 사람들에게 애틋한 감성 로맨스물이지만 김경록 고문에겐 호러물에 가깝다. 주인공 장만옥이 주식 투자에 실패하고 잔고를 확인하며 한숨 쉬는 장면을 김 고문은 공포스럽게 기억하고 있다. “생애 자산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힘들게 모은 돈을 하루아침에 다 날렸으니 얼마나 안됐어요? 정말 남의 일이 아닙니다.” 김 고문이 더 안타깝게 생각하는 지점은 전 재산을 잃은 장만옥이 안마시술소에 취업하는 신이다. “본인에게 투자했더라면, 조금 더 나은 기술이나 전문성을 길렀더라면 더 나은 선택지가 있었을 겁니다. 돈은 잃을 수도 있고, 누가 훔쳐 갈 수도 있지만 전문성이나 기술은 그럴 수 없어요. 사회가 고령화될수록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입니다.”
김 고문은 1인 1기(1人1技)를 오래전부터 강조해왔다. 우리나라가 고령화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율 7% 이상)이던 2014년, ‘1인 1기’라는 책을 출간하며 “쓸모 있는 기술 하나가 답”이라고 주장했다. 그 후 9년여가 지났다. 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율 14% 이상)에 들어선 한국은 초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율 20% 이상)를 눈앞에 두고 있다. 여전히 그는 기술에 답이 있다고 말한다. “고령화는 사회와 국가의 위기를 초래합니다. 잘못 대응하면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질 겁니다. 단, 잘 대비해두면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저는 그 답을 기술, 즉 전문성으로 봅니다.”
김 고문이 제시하는 전문성 기르는 방법은 두 가지. 첫 번째는 자격증 취득이다. 자격증 중에서도 ‘좁은 문’을 통과하라고 조언한다. 손해사정인, 변호사, 세무사, 회계사, 감정평가사 등 취득하기 어려운 국가공인 자격증이 그 예다. 또 다른 방법은 오랜 시간 자신만의 노하우를 쌓는 것이다. 실제 그는 후자를 택해 지금도 열심이다. 노후 문제 전문가로 일하며 일본어 능력의 필요성을 느껴 지난해 방송통신대학교 일본학과에 입학했다고 한다.
불확실성의 시대, 김 고문은 기술이 스스로를 지켜줄 ‘최후의 보루’라고 강조했다. 노후 인생을 바꿀 기회에 다시 한번 고3처럼 진지하게 임하는 것이 어쩌면 진정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투자라고 말이다. “승부를 해야 할 때는 자기를 던질 정도로 해야 합니다. 한 단계 올라서겠다? 그럴 때는 사투리로 말하자면 ‘오지게’ 승부수를 던져야 합니다.”
‘데모테크’ 투자 3법칙
“베스트셀러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에서 치즈가 사라지자 한 쥐는 ‘어? 내 치즈, 어디 갔지?’ 하고만 있었고, 한 쥐는 쫄래쫄래 치즈를 찾아갔습니다. 치즈를 찾아간 쥐처럼 하면 됩니다.” 고령화 시대 자산 투자는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물음에 대한 김 고문의 답이다.
그는 투자에 앞서 모든 한계를 넘어서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법적 정년 60세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 맞추고 있는 고정관념부터 통화나 자산을 국내 기준으로 보는 관점까지 완전히 새롭게 재고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 근거는 인구구조의 붕괴다.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가는 데 독일은 30년 이상, 일본은 15년이 걸렸다. 2018년 고령사회에 들어선 한국은 7년 만인 2025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전망이다. “인구구조가 본격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하면 우리나라는 지탱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 큰일 났다. 붕괴되겠다… 어, 어, 붕괴된다’ 하면서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심하게 말하면 자폭하는 셈입니다. 우리 인구구조가 붕괴되면 인구구조가 튼튼한 다른 나라의 자본을 가지면 됩니다.”
김 고문이 최근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는 “자산의 서식지를 옮기라”는 말이다. 경쟁력 있는 기업이 어디에 많은지, 위험이 닥쳤을 때 어디가 충격을 적게 받을지, 충격을 받고서 어디가 회복탄력성이 좋을지 살펴보고 성장 가능성이 높은 곳에 글로벌 분산투자하라는 뜻이다. “인구구조의 변화와 기술 혁신이 만나는, 이른바 ‘데모테크’(DemoTech)라는 흐름에 올라타야 합니다. 이 위기 속에서 왜 한 곳에 올인을 합니까?”
1. 한국 혁신 기업에 투자하라
“우리나라에서 앞으로 글로벌 경쟁력이 있을 기업이나 섹터에 투자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아직 국내엔 자본 차익에 대한 과세가 없습니다. 그 점은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종합지수는 그렇지 않습니다.”
2. 미국 지수에 투자하라
“미국은 경쟁력 있는 기업도 많고, 위험에 충격도 덜 받고, 회복탄력성도 좋습니다. 개인이 개별 종목은 알기 어렵기 때문에 S&P500, 나스닥 등 지수에 투자하는 게 좋습니다.”
3. 인컴형 자산에 투자하라
“특히 배당주는 앞으로 중요해질 겁니다. 국내는 배당을 1년에 한 번 하는 연 배당이 대부분입니다. 그럼 1년 내내 들고 있을 이유가 없지요. 미국은 75% 이상 분기 배당을 하고 있습니다. 배당 주기는 투자자들의 성향을 가릅니다. 인컴형 자산에 주목하고, 이런 점들을 비교해보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