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들의 ‘손주 사랑’은 세계 공용어다. 영화 의 할머니는
“이 나이에 기다리는 것은 손주와 죽음이다”라는 대사를 내뱉는다.
또 “난 죽으면 손주의 애완 고양이로 태어날 거야”라는 대사도 나온다.
이 영화 말고도 손주를 통해 ‘웬수’가 된 아들과 화해하는 장면은 부지기수다.
올 여름, 빈센트 반 고흐가 희망과 꿈을 갖고 떠난 ‘아를’로 손주와 함께 떠나보자.
손주와 ‘론’ 강변을 걸으며 ‘별 헤는 밤’의 그림 이야기를 꽃피우면서
그곳에 추억을 남겨놓자.
손주의 여행 경험은 향후 엄청난 학습효과를 갖게 될 것이다.
수많은 예술가가 사랑한 남부 프랑스
프랑스 남부지역의 프로방스는 세계 여행자들의 로망이다. 특히 프로방스는 많은 시인, 화가, 영화 예술가가 사랑한 도시다. 프로방스의 매력에 빠진 예술가들은 평생 그곳을 그리워하면서 소설, 시, 그림 등으로 남겼다. 엑상프로방스(Aix-en-Provence)가 고향인 폴 세잔, 코트다쥐르의 생폴 드 방스(Saint-Paul de Vence)는 샤갈, 피카소도 좋아했고 6개월간 안티베(Antibes)에 머물기도 했다. 르누아르가 노년을 보냈던 르누아르의 집, 레 콜레트(Renoir’s House, Les Collettes)는 카뉴 쉬르 메르(Cagnes Sur Mer)에 있다. 모딜리아니는 니스를 무척 사랑했다.
또 주옥같이 아름다운 소설인 , 의 저자인 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 1840~1897)는 아를과 가까운 님(Nimes)에서 태어났다. 그는 고향을 일찍 떠나 파리에 살면서도 프로방스에 대한 애정을 평생 안고 살았다. 그의 작품 속에는 고향 프로방스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프랑스의 극작가 겸 영화제작자 겸 영화감독인 마르셀 파뇰(Marcel Pagnol)의 작품에도 어김없이 프로방스가 등장한다. , 등 영화 속에 프로방스가 담겨 있다. 독일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 (Rainer Maria Rilke)는 “가장 아름다운 곳은 프로방스였다. 당신도 언젠가 꼭 한번 그리로 가봐야 한다”라는 편지를 썼고 그는 마지막 거처를 프로방스에 마련할 수 있기를 염원하면서 죽었다.
특히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는 프로방스의 아를(Arles)에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겼다. 그래서 아를은 ‘고흐의 마을’로 불린다. 많은 관광객이 아를로 몰려 드는 이유는 고흐를 만나기 위함이다.
로마 유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2000년 古都
아를은 테제베 고속열차가 멈추지 않는 작은 역이다. 역에서 1km 떨어져 있는 마을로 들어서면서 놀라게 되는 것은 부서진 로마의 유적 때문이다. 고흐의 그림 스타일을 아는 사람들은 이 생경한 문화 유적에 놀랄 수밖에 없다. 그때도 분명히 이 자리에 있었을 문화 유적이지만 그의 작품 속에는 건축물을 찾을 수는 없다. 그저 투우 장면을 그린 그림이 있을 뿐이다.
아를은 2000년의 역사를 지닌 고도(古都)다. 그리스의 식민지였다가 시저(Julius Caesar)에 의해 로마령이 되었다. 긴 세월동안 사람들의 발자국으로 반질거리고, 울퉁불퉁한 조약돌로 된 골목길과 부서진 성벽 등이 온 마을을 장식하고 있다. 마을 제일 높은 곳에는 거대한 원형 경기장인 아레나(Arenes)와 기둥만 남아 있는 원형 극장이 있다. 아레나에서는 매년 투우 축제(4, 9월)가 열린다. 또 이 마을은 초기 기독교 시기의 중요한 거점도시였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순례자의 길을 시작하는 곳 중 하나로 중세 건축물인 생 트로핌(Saint-Trophime) 대성당이 남아 있다. 11세기에 창건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에서는 ‘최후의 심판’ 장면을 새겨 놓은 부조와 조각을 볼 수 있다. 구시가지 한가운데 자리한 리퍼블릭 광장에 삼색기가 휘날리는 아를시청사가 있다. 그 앞에는 아를에서 제일 높은 시계탑과 2000년 전 로마 황제가 이집트에서 가져왔다는 오벨리스크(obelisk)가 솟아 있다. 이 도시의 로마 유적지는 198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아를 골목에서 고흐의 작품 현장 찾아내기
오래된 가옥과 골목을 헤집다 보면 포룸 광장에서 ‘고흐 카페’를 만나게 된다. 고흐가 즐겨 썼던 노란색으로 칠한 카페는 ‘고흐’란 화가의 이름을 파는 상술을 펼치고 있다. 그가 그린 ‘밤의 카페 테라스(The Night Cafe in Arles)’ 그림을 안내대처럼 세워 놓았다. 유독 그 카페만 관광객들로 북적댄다. 카페 주변에는 피카소, 장 콕토 등이 자주 묵었던 낡은 호텔이 있다.
고흐는 이 카페 근처에 일명 ‘노란집’을 얻어 놓고 이곳을 매일 밤 찾았다. 카페에 앉아 늘 ‘녹색요정 압생트’를 마시면서 얘기를 나누고 그림을 그렸다. 고흐는 친구 고갱이 오길 기다리면서, ‘아를의 여인-지누부인’(1888년)을 그렸다. ‘아를의 여인’이라는 제목은 고흐 이전에 알퐁스 도데가 첫 단편집에 쓴 ‘아를의 여인(L' Arlesienne, 1872년 작)’이 있다. 이 작품을 다시 각색해 3막 5장의 희곡을 발표했는데 당대 잘 나가던 프랑스의 작곡가 조르주 비제(Georges Bizet, 1838~1875)가 극장 상연에 쓰일 부수음악 27곡(관현악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같은 제목의 글, 그림, 음악이 만들어진 곳이 아를이다.
또 에스파스 반 고흐(Espace Van Gogh)에는 ‘아를 병원의 정원’이라는 그림이 있다. 고흐가 1888년 12월, 자신의 귀를 자르는 발작 이후 머물기를 반복했던 병원으로 현재는 문화센터로 바뀌었다.
어둠이 내릴 무렵엔 론 강으로 가서 ‘론 강의 별이 빛나는 밤’을 그려보자. 고흐가 생레미 드프로방스의 한 요양원으로 옮겨진 후에 그린 그림으로, 아름다웠던 아를의 기억을 되살렸을 것이다. 지금 고흐 그림처럼 아름답지 않은 론강의 어둠 속 끝에서 희미하게 불빛이 새어난다. 그 외에도 ‘열두송이의 해바라기’와 ‘아를의 다리(도개교로 링클루아 다리)’ 등도 모두 아를에서 그렸다.
현재 아를에는 ‘반 고흐 파운데이션’이 있다. 하지만 기대는 말아야 한다. 고흐의 작품은 거의 볼 수가 없고 밀짚모자를 쓴 자화상과 어릴 적 고흐와 동생 테오의 사진 등 몇 점만 볼 수 있다. 고흐의 고국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고흐 박물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하다.
예술촌을 꿈꾸던 화가는 고갱을 만나 미쳐 버리고
고흐는 1888년 2월, 아를에 예술촌을 만들겠다는 부푼 꿈을 꾸고 이곳에 방을 얻는다. 파리에서 뜻이 잘 통했던 고갱이 오기를 기다렸고 오기 전까지 방을 꾸미고 마음이 들뜬 채로 지냈다. 하지만 같이 살면서 극단적인 성격 차이로 싸우게 된다. 결정적으로 화를 돋구게 된 것은 고갱이 그린 자화상이었다. 고흐와 고갱은 서로 자화상을 그리기로 했는데 고갱이 그린 그림 속에는 고흐는 없고 고갱이 앉아 있었다. 그림 속 고갱의 콧수염은 고흐의 붉은 콧수염이었다. 고흐와 고갱은 크게 싸웠고 분에 겨운 고흐는 집으로 돌아가 한쪽 귀를 잘라 버린다. 자른 귀를 싸들고 술집 여자에게 갖다 주었고 그녀가 경찰에 신고를 해서 시립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고흐가 꿈꿨던 예술촌의 꿈은 그렇게 두 달 만에 끝났다. 고흐의 발작은 더 심해져 근처 생레미 정신병원(1889년 5월)에 입원하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발작이 없을 때면 그 동안의 공백을 메우기라도 하려는 듯 마구 그려댔다. 병원에서 약 15개월간 머물면서 187점에 이르는 그림을 남겼다. 분명히, 고흐가 아를을 사랑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가 아를을 얼마나 좋아했는지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도 나타난다. “예전에는 이런 행운을 누려 본 적이 없다. 하늘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파랗고 태양은 유황빛으로 반짝인다. 천상에서나 볼 수 있을 듯한 푸른색과 노란색의 조합은 얼마나 부드럽고 매혹적인지…”라고 보냈다.
고흐는 1890년 봄, 파리 근교의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 sur Oise)에서 자살한다. 고흐는 테오의 가족이 찾아온 이후 밀밭에 가서 총을 쏘고 집으로 겨우 기어 들어와 이틀 만에 동생 테오가 지켜보는 가운데 죽었다. 테오가 형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이 무엇이었을까? 테오는 “조카도 생기고 가정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더는 형의 생활비를 대어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동안 고흐는 그림들을 테오에게 보냈고 그 대신 생활비를 받았다. 살아생전 단 한 점밖에 못 판, 생활 능력 없는 그가 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었을까? 사랑을 주고 싶지만 줄 사람도 없고 정신병을 앓고 있는, 희망없는 삶.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죽음’ 밖에 없었을 수도 있다. 고흐 나이 37세였다. 오베르에 머문 지 두 달 되던 때였다. 이후 동생 테오도 6개월 뒤 매독에 걸려 죽는다. 두 사람의 묘지는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집 앞에 있다.
고흐의 삶은 그 어느 창작자가 일부러 만들어 내기도 어려울 만큼 드라마틱하다. 여행을 떠나기 전, 고흐에 대한 영화나 책 등을 미리 보고 가는 것도 도움이 된다.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열연한 영화 과 BBC 다큐인 폴 고갱의 이라는 작품을 추천한다. 아를에서의 고흐와 고갱의 생전의 삶을 알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이신화 여행작가
이립(而立)에 여행작가로 시작해 어언 지천명(知天命)에 다다랐다.
그동안 ‘걸어서 상쾌한 사계절 트레킹’, ‘대한민국 100배 즐기기’, ‘on the camino’ 등
여행서 총 14권을 출간했다. ‘인생이 짧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여 2014년 홀로 197일간 30개국의 유럽 배낭 여행을 했다. ‘살아 있을 때 떠나자’가 삶의 모토다.
생물학적 수명은 늘어나고 사회적 수명인 정년은 점점 짧아지면서, 제2 인생을 준비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두 번째 인생을 위해서는 경제적 자유, 즉 은퇴자금 준비가 중요한 문제이지만 제2 직업은 더 중요하다. 시니어들의 이러한 요구에 발맞춰 여러 민·관 기관에서 제2 직업에 관한 다양한 안내와 새로운 직업 소개를 하고 있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찾기보다 교육과 준비과정을 통해 새 인생에 어울리는 새로운 직업을 알아보는 것은 어떨까?
글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최근 제2 직업을 위해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시니어들과 이들을 대상으로 구인 활동을 펼치는 업체나 기업을 살펴보면 현실과 괴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중장년들의 일자리를 위해 노사발전재단이나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은퇴자협회 등 여러 기관에서 중장년 일자리 희망센터를 전국 단위로 운영하고 있다. 이 일자리 희망센터를 이용하면 구인구직 정보에서부터, 교육 프로그램, 관련 컨설팅 서비스까지 받을 수 있다.
시니어 구인구직 단순직종에 집중
문제는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되는 직업이나 일자리가 시니어들이 원하는 수준과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일자리가 경비직이나 청소, 택배와 같은 단순 노무직이고 그나마 이런 일자리의 대부분은 40대를 우선적으로 선호한다. 연령이 높은 시니어들에겐 순서조차 돌아오기 힘들다.
도심권50플러스센터의 정현주 대리는 센터가 최근 사회공헌형 일자리로 사업 방향을 옮긴 것도 이런 현상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경제적으로 자유롭거나 노후 자금이 해결된 시니어들은 단순직 일자리를 원치 않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대부분 그간의 경력을 살릴 수 있거나 새로운 일자리를 통해 경제적 소득보다는 보람을 찾으려는 분들이 많아요. 수고를 인정받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뜻이죠. 저희 센터에서는 이런 시니어들의 요구에 맞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현장에서 활동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 센터에서 준비하는 직업들은 경제적 소득보다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지원이나 참여 시니어들의 자부심 확보에 중점을 두고 있다.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 중에는 건강코디네이터 양성 과정이 있다. 지역 치매센터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도 인지장애(초기 치매) 노인들을 대상으로 상담과 인지학습 역할을 할 사회공헌 활동가를 양성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밖에 바른먹거리전문가 양성과정은 유치원 등 각 교육기관의 학생과 학부모에게 먹거리에 관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는 전문가를, 다문화가족 서포터스 양성과정은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요청을 받아 한국생활 정착의 멘토 역할을 할 지원자들을 교육하고 있다.
수익보다 보람과 자부심 얻을 수 있어야
지난해 도심권 50플러스센터를 통해 SNS전문가 양성과정을 수료하고 현재 종로지역자활센터 등에서 강사로 활동 중인 김희순씨(64)는 경험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시니어들에 대한 직업 교육은 지식 전달뿐만 아니라 삶의 활력을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어요. 재능기부를 통해 교육생들에게 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 줄 수도 있고, 사회에 기여한다는 자부심도 갖게 됐습니다. 예전엔 손주들이 와이파이 터진다고 하면 뭐가 터졌냐며 놀랄 정도였지만, 이제는 대화도 통하고 생활이 달라졌어요.”
물론 일자리나 전문가들을 양성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현장에선 이야기한다. 기본적으로 실업난을 겪고 있는 청년들의 일자리와 겹치게 되면 사업 자체의 정체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현장에서 원활하게 일할 수 있도록 활동 무대까지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사회적으로 자리 잡은 성공적인 직업에 정리수납전문가가 있다. 정리수납전문가는 여성발전센터, 여성인력 개발센터 등을 통해 민간에 알려졌다가 현재는 협회까지 설립됐다. 한국정리수납협회의 정경자 협회장은 이렇게 조언한다.
“정리수납은 보통 팀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혼자 활동하기 어려운 시니어, 특히 여성들에게 적합한 직업입니다. 평생 살림을 해온 분들은 원칙과 이론을 알려주면 금방 익숙해지거든요. 이렇게 새로운 직업을 만들거나 창업하려면 좋아하는 일보다는 잘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좋습니다.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있어야 하니까요. 준비하는 과정에서 일의 전문성, 문제를 해결할 창의성, 구성원과 소비자를 대할 인성을 갖추고 있는지 늘 끊임없이 점검해야 합니다.”
찾을 수 없다면 창직(創職)도 방법
새로운 직업에 대한 단서가 필요하다면 한국고용정보원(www.keis.or.kr)을 노크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곳에선 제2 직업을 필요로 하는 중년들을 위한 자료를 연구하고 개발해 보급하고 있다. 올해 3월에 발간된 자료집 이 대표적이다. 이 책은 인생 2막을 설계하는 베이비 부머들이 도전하기에 적합한 직업 30개를 선정해 하는 일을 소개하고 해당 직업을 가지려면 무슨 준비를 해야 하는지 등을 알려주고 있다. 또 지난 5월부터는 중장년층의 창직 활동을 돕기 위한 라는 지침서를 배포 중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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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TV 드라마 가 안방극장을 뜨겁게 달구더니 드라마가 끝난 지금도 여전히 그 열기는 식을 줄 모르고 있다. 몇 년 전 일본 여행을 갔을 때 2002년 방영된 드라마 의 인기가 여전히 높은 데 놀랐다. 드라마가 끝난 지 벌써 10여 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일본 여인들의 감성을 적시고 있다는 것이 놀라움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하였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이상향은 무엇일까? 단지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떠나 더 유명해지고 자신의 이름과 얼굴이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SNS(Social Network Service)가 점점 다양화한다는 것이다.
특정한 관심이나 활동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망을 구축해 주는 용도로 사용하던 온라인 서비스가 이제는 자신을 알리면서 스스로를 세상에 과감하게 노출시켜 많은 지지와 공감을 얻고 싶은 사람들의 욕구의 장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자신의 얼굴을 알리는 것이다. 자신의 얼굴을 알리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로 시선을 사로잡으려는 노력을 한다. 그런 노력이 빛을 발하면 그들은 ‘유명인’이라는 타이틀을 부여받아 어느 순간 자신의 얼굴이 천지허공을 가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행복해 하는 것이다.
그런 모습들이 우리의 행복을 가늠하는 가치 기준이 되고 있는 것 같아 심각한 고민에 휩싸인 적이 있다. 우리 본연의 모습 그대로 살아가면서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는 것일까라는 생각으로 잠을 설친 기억도 있다. 인상학자로 살면서 ‘사람 개개인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근본은 무엇이며 변화하는 삶과는 어떤 연관 관계를 맺고 있나?’는 평생을 풀어야 할 숙제로 안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옛 성인들은 가장 높은 것이 하늘이고 모든 생명은 천지에 근원하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였다. 인간의 몸은 형체(形體)와 기질(氣質)이 결합된 음양오행의 존재라고 할 수 있다. 형체는 몸을 이야기하며 몸 안에 기질이 흐르면서 우리는 삶의 희로애락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다. 천지가 없다면 우리의 생명이 어떻게 있을 수 있을까?
순자(荀子)는 “하늘이 사람에게 형체를 부여하면 그에 따라 정신이 생겨나니 이것이 하늘의 신기한 능력이다. 하늘은 사람을 낳음과 동시에 본성을 부여한다. 나면서부터 그러한 것이 본성이다”라고 말했다. 사람의 본성은 하늘이 부여해 준 생명과 함께 본래 갖추고 있는 우리 고유한 모습이라는 것이다.
사람의 본성과 욕구는 우리의 본연의 모습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욕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의 삶은 지속적으로 무엇인가를 요구하게 되어 있다. 눈을 뜨면서부터 느끼기 시작하는 배고픔은 먹고 싶은 욕구를 만들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본성을 충족하고 싶은 갈등을 겪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듣고 학습하였던 기억 하나를 끄집어 내어보자. 맹자(孟子)는 인간은 선하다는 ‘성선설’을, 순자는 인간은 본래 악하다는 ‘성악설’을 주장하였다고 시험지 답을 적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동양철학을 공부하고 있는 지금, 우리의 화두 역시 “인간의 근본은 과연 착한가?”라는 의문을 가지고 있다. 그것에 대해 필자는 “근본은 착하다 그러나 태어남과 동시에 이기심을 만나서 그 이기심과 타협하는 과정을 겪으며 변하는 것이다”라고 주장 한다.
그 이유인즉 탄생하는 순간의 아기의 얼굴을 보면 엄청난 고통을 감내하고 이 세상에 나왔지만 그 모습이 너무나 순수하고 맑고 투명하여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순수의 세계로 몰아간다. 한순간 자신의 마음에 담겨 있는 순수한 본성을 마주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드는 마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태어날 때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세상과 마주하는 순간부터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려 부단한 노력을 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탄생 순간의 얼굴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운명이라 할 수 있고. 지금의 모습은 시간이 만들어 준 후천적인 얼굴, 즉 운명을 만들고 다듬어서 가꾸어진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성선설’을 신봉하고 따른 사람의 얼굴은 편안하고 여유로우며 행복할 것이라는 것은 우리의 소망이겠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기를’ 바라는 삶을 저버릴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의 이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욕구가 있다. 욕구하는 것을 얻으려는 본성을 가지고 있기에 가지려 하고 구함에 법도와 분수가 없으면 싸우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러한 본성을 ‘예의’라는 것을 만들어 교육하고 익히게 하여 욕망을 누르고 올바른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순자의 생각이다.
옛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이 반영된 얼굴이 사람에게 호감을 주고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며, 그의 언사가 상대를 행복과 불행을 넘나들게 한다고 하였다. 지금의 얼굴을 만든 것은 자신의 생각과 습관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잘생기고 호감 가는 얼굴도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자신 있게 마주 할 수 있는 마음의 상태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얼굴을 가져야 하고 그 얼굴이 사람과 소통하면서 상대와 여유롭고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모습을 만드는 작업을 하여 보려고 한다. 삶이 여유롭고 풍요로워질 수 있기를 기원하는 간절한 소망을 담아 본다.
도사 되는 법?
무림의 비급은 인연 있는 자의 것이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누구나 가질 수 없어 비급이라 했던가
어언 나이 70을 넘었다
고령사회에서 평균연령 100세 이상을 산다고 하는데 우리도 피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하루가 다르게 빠르고, 계속해서, 새롭게 변하는 IT 세상에서 알파고 아이들과 어울려 살아가려면 앞장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뒤따라가기도 버겁고, 쳐지면 짐이 되어 걸림돌이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지난날에는 명절이다 하면 시끌벅적 건너 뛴 시간 이어주는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요즘은 “안녕 하세요” 인사만 끝나면 각자 스마트 폰 하나씩 들고 어느 구석 찾아 벽에 기대 카톡, 게임, 페북에 열중하며 혼자서 웃고 찡그리고 즐겨서 명절이어도 고향이 조용하다는 쓴웃음 소리도 있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귀엽고, 궁금한 게 많으신 조부모님께서 말을 붙여보지만 눈길 한번 없이 입으로만 단답식 대답에 부모가 꾸지람도 해 보지만 소용없다.
나 역시 다르지 않아 내 자신이 바뀌어보자 생각하고 IT를 배워보기로 했다.
우선 컴퓨터를 배워 메일이라도 보내봐야겠다는 소박한 생각에 시작한 컴퓨터.
시작은 켜고, 끄고, ID 만들고 독수리 타법이었다.
친구들에게 짧으나마 10행 미만의 글 하나 보내는데 한나절
그런데 격려의 답장이 오고
곧 이어 전화가 와 컴퓨터 배우길 참 잘 했다며 별 다섯짜리 도장을 찍어준다느니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신났다.
뭔가 하나 시작 했는데 주위에서 그게 잘 한 짓이라니 너무 신났다.
문장이 늘어나고 답장이 여러 곳에서 오는데도 글 쓰는 시간은 좀체 줄지 않는 것이 안타까웠지만 엉덩이 진물 날 정도로 앉아 보내고 또 보냈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조선일보와 유어스테이지 (주)시니어 파트너즈에서 강사과정 안내문을 컴퓨터로 받아보니 새삼 신기했고 그 위력을 알 것 같았다
강사과정을 공부하며 아쉬웠던 부분은 파워포인트 강의안을 만들어야하는데 그런 실력이 없어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 만들려니 그때마다 부탁하는 것이 너무 미안하고 나의 부족함이 싫어 새삼 컴퓨터를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는데 2015년 도심권 이모작센터에서 SNS기초반이 있다는 광고를 컴퓨터로 접하고 등록해 가보니 베이비부머 수강생이 많아 정말 놀랬다
시작이란 이제까지 해보질 않던 것을 하는 것이니 두근거리는 마음을 어쩔 수 없었다
나처럼 아랫사람에게 지시하면 척척 되던 시절을 겪은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한 울타리에 모아놓은 모습이었다.
켜고, 끄기부터 시작해 자판을 외우라는 숙제가 떨어졌고 독수리 타법을 생소한 10손가락 운지법으로 고치는데 집에 와서도 계속 연습하다보니 이젠 독수리 타법으로는 오히려 불편해지며 점차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애국가, 명시 등을 치며 어느 시점에서 행을 바꾸고, 여백의 아름다움을,
글자체의 종류와 적용 사례, 내용에 따라 한 장에 들어가는 글자 크기, 배열 그리고 속도를 익혀갔다
노트북을 하나 사 지참하고 교육을 받다보니 손에 익숙해져 슬슬 넘어가는 손놀림만으로도 신기했다
3개월 후 시험에서 1/2 합격선에 들어 심화반에 들어갔다
문제는 스마트폰이었다
컴퓨터와 함께 스마트 폰 교육이 병행되었는데 컴퓨터보다 어려운 게 스마트 폰이란 걸 처음 알았다
그러나
스마트 폰만 제대로 알면 컴퓨터를 대신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페이스 북, 트위터, 밴드로 영역을 넓히다보니 재미있어 하나하나 신기함에 시간가는 줄 몰랐다
블로그, 카페, 동영상을 배우며 숙제는 간단했다
단 한줄, 한 컷도 좋으니 매일 올리라는 것이었다.
남들은 매일이라는 이게 쉽질 않았나보다
나는 무슨 일이든 남보다 빠르질 못 해 오죽하면 별명이 “느림보”일까.
그렇지만 느리기는 해도 꾸준함은 있기에 하루도 빠짐없이 올리길 해
3개월 후 1/2 탈락자 명단에서 빠져 전문가반으로 올라갔다.
구글의 여러 기능, 스프레드시트, 모두, 마인드맵, 음악 동영상 시간과 분위기에 맞는 것 골라 넣기, 유튜브 옮겨 자르고, 붙여 필요 부분만 사용하는 법 등을 신나게 배웠다
무엇보다 강사로서 PPT 배우는 것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가장 백미는
누구나 팀을 이뤄, 새로 공부하시는 분들 기초반에서 선생님 보조강사 하는 것이었다.
그때 보조강사는 물론이고 누군가를 가르쳐봐야 가르치기 위해서도 자신이 배운 걸 제대로 익힐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수료를 위한 마지막 시험은
자신의 스프레드시트 만들어 자신의 전문분야 동영상 15분 이상 6개 만들어 그 주소를 넣을 것
SNS 관련 모임 6번 개최한 기록 만들어 넣을 것
타 SNS 관련 모임 6번 참석해 자신이 타 모임에서 기여, 보조한 기록 만들어 넣을 것 등을 스프레드시트 지정 란에 채우고 클릭 한 번으로 바로 열릴 수 있게 하는 것이니 거짓말도 못하는 것이었다.
강사다보니 내 강의 장면을 누군가 동영상 찍어주질 않으면 안 되는데 미리 알았으면 틈틈이 준비했으련만 발등에 불이 떨어져 약 한 달을 만사제치고 그 일에 매달려도 쉽지 않았는데 다행히 강의가 곳곳에 있어 첫 번째는 채울 수 있었다
SNS관련 모임 6번과 타 SNS관련 모임 참석은 동기생들과 짜고 서로 모임 주선하고 참여해 주는 것으로 하렸다가 선생님께 들켜 자신의 집 구역을 설정하고 그곳에서 모임 하라니 지역이 각각이라 동기들도 가고 오기가 버거워 잘 되질 않았고 나 자신도 멀리까지 찾아가 참석해 줄 형편이 되질 않아 애를 먹다 미완성인체 겨우 턱걸이로 수료증을 받고나니 어느새 1년이 지났다
평생 써먹을 걸 배웠는데 얼마나 큰 성과인가
스마트 폰이 내 손 안에 착 달라붙은 기분이다
바로 IT 비급은 내가 차지한 것이었다.
요즘 중학생 학습 방법은
한 반을 1팀 5~6명, 4~6팀에게 다음 시간 수업할 내용을 팀별로 나눠주고 각 팀별로 주제 만들어 PPT 만들어 발표하게 해 시험, 발표 각각 50%씩 반영 성적을 낸다고 한다.
효과는 팀웍의 중요성과 협동의 가치를 자연히 익히게 하며, 있을 수 있는 지진 한 친구를 어떻게, 각기 다른 능력의 조화여부, IT는 물론 회전식 역할분담까지 하다보면 자연히 인성을 익히고 학습을 놀이형태를 빌려 재미로 승화시키는 것이라 한다.
중학생들 IT 능력은 뛰어나다
노트북, 스마트 폰은 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장난감에 불과하다
우리와 실력인지도 모르고 일상에서 즐기며 놀이로 자유자재 다루는 그들과는 게임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
사실 버겁다
IT 도사되는 비급을 열어보니
“IT 지름길은 없다
꾸준히 만지며 실패하고 익히는 길만 있을 뿐이다“
라고 쓰여 있었다.
최성환 한화생명 은퇴연구소장·고려대 국제대학원 겸임교수
아니, 배우자가 둘이 필요하다니? 나이 든 부부에게 불 지를 일이 있나? 필자가 강의를 하다가 불쑥 “나이 들수록 배우자가 둘이 필요하다”라고 말하면 대다수 청중은 뜨악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이어지는 설명을 듣고 나면 “아하, 그렇구나!”라고 하면서 무릎을 친다. 나이가 들수록 필요한 배우자 둘 중 하나는 남편 또는 아내를 뜻하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뭔가를 배우자는 ‘배우자’이기 때문이다.
배우자는 가장 좋은 친구
다 아는 유머 한 토막. 나름 오순도순 살고 있는 나이 지긋한 부부가 있었다. 어느 날 부인이 여고 동기모임을 간다고 했다. 오랜만에 여고 친구들을 만나는 부인에게 남편이 멋진 옷도 한 벌 사고 머리도 예쁘게 하고 가라는 등 신경을 썼다. “그래, 다녀오든지~”하면서 시큰둥한 통상의 남편에 비하면 엄청 배려하는 편이었다. 문제는 모임에 다녀온 아내의 표정이었다. 불편한 심기를 알아챈 남편이 “식당이 마음에 안 들더냐, 몇 명 안 왔더냐, 마음에 안 드는 친구가 있더냐”라고 물었더니 다 아니란다. “아니 그럼 도대체 왜 그러냐?”고 했더니 “나만 남편이 살아 있잖아~”라고 대답하더란다. 다른 친구들은 다 이혼하거나 남편이 죽어서 마음대로 나다니는데 그 부인만 아직도 남편에 매여서 종살이(?)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유머는 어디까지나 유머일 뿐이다. 영화 를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요즘 TV에서 늘어나고 있는 장수관련 프로그램을 보면 팔순, 구순의 노부부가 아이들처럼, 신혼부부처럼 아웅다웅하면서 재미있게 노년을 보내고 있다. 이들은 둘이 한날한시에 먼 곳으로 가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다. 죽을 때까지 이마와 등을 맞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대화 상대, 밥을 함께 먹을 상대, 나들이를 함께 할 상대, 그 상대로 배우자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필자가 주장하는 ‘행복한 노후를 위한 5F’에서도 배우자는 필수 요건이다. 5F는 돈(Finance), 할 일(Field), 재미(Fun), 건강(Fitness), 친구(Friends)이다. 사실 젊어서는 학교 친구, 동아리 친구, 직장이나 사회 친구들을 주로 만나며 바쁘답시고 다닌다. 하지만 은퇴하고 나면 하나씩 둘씩 다 떨어져 나가고 남는 친구는 한 손도 다 못 채우기 십상이다. 그러다 마지막까지 함께 할 친구는 결국 가족, 즉 배우자와 자녀, 손자녀들이다. 가족을 뜻하는 영어 ‘FAMILY’가 ‘Father And Mother, I Love You’의 첫 알파벳인 것도 우연의 산물은 아닐 것이다. 그중에서도 배우자가 가장 좋은 친구라면 다른 것 다 제치고 성공한 인생이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특히 부모와 조부모가 정겹고 애틋한 부부애를 보여준다면 자녀와 손자녀들이 보기에도 얼마나 좋겠는가. 지금부터라도 나의 제1 배우자와 친구처럼 사는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 이유이다.
소일거리를 찾아라
두 번째 배우자 또한 첫 번째 배우자에 못지않게 중요한 친구가 되어야 한다. 기대수명이 이미 82세를 넘어서고 있고 지금의 40~50대는 적어도 90세를 넘어까지 살 것이다. 그렇다면 예전의 우리 부모님들과는 달리 우리는 은퇴한 후 ‘뭔가 할 일(Field)’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오래 살면 오래 일을 해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서울시 통계에 따르면 남성을 기준으로 주된 직장에서 물러나는 나이는 53~54세로 나타나고 있다. 올해부터 정년이 60세로 의무화된다고는 하지만 60세까지 근무할 수 있는 직장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설사 60세에 은퇴한다고 하더라도 30~40년을 살아갈 계획이 필요한 시대를 맞고 있는 것이다. 20~30년 이상을 열심히 일하다가 은퇴했으니 실업자는 아니지만 뭔가 할 일이 없다면 실업자 아닌 실업자로 전락하면서 집에서도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는 것이다.
죽치고 앉아서 TV나 보는 게 돈 안쓰고 가장 쉬운 일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좀 더 활기차고 의미있는 소일거리를 찾을 수는 없을까? 소일거리는 말 그대로 ‘소소한 할 일거리’로 꼭 상당한 소득을 얻거나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만 뜻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하는 일에서 내가 의미를 찾으면 그게 곧 좋은 소일거리가 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필자가 추천하는 것이 ‘뭔가를 배우자’이다. 나이를 들어 배운다는 것은 학창시절에 배우는 것과 크게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자발적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크게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배우는 일이라면 가급적 피하는 게 좋다. 그렇다고 스트레스가 전혀 없는 것만 배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느 정도의 적절한 스트레스는 오히려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다고 하지 않는가.
배우고, 익히고… 새출발을
취미활동도 배워야 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댄스와 악기 등과 같이 서로 맞대야 가능한 배움은 처음부터 친구들을 사귀어 나가야 할 것이다. 요즘엔 온라인으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또한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옮겨가는 모임도 늘어나고 있다. 온라인으로만 주고받던 정보와 모임이 오프라인에서 얼굴을 맞댈 경우 사람 사는 즐거움을 더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전국에 6만 곳이 넘는 노인 여가복지시설과 노인대학 등이 늘어나면서 내가 원하면 얼마든지 가까운 곳에서 배우고 익힐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고 있다. 오죽하면 평생학습이라는 말이 나오겠는가.
좀 더 체계적인 배움을 원한다면 방송통신대학이나 사이버대학에 정식으로 등록할 수도 있다. 2013년 상반기 기준으로 대학 학점인정과정에 등록한 60세 이상 학생 수가 2만3000여명에 달하고 있다. 특히 방송통신대학에만 60세 이상 학생이 3000명을 넘고 있다. 1972년 방송통신대학 개교 이후 240만 명의 입학생 중 최고령자는 2013년 2학기 일문과 3학년에 편입한 정한택씨로 당시 92세였다. 방송통신대학의 한 학기 등록금은 35만원 안팎으로 큰 부담이 없는데다 도서관 등 시설이 좋아 이를 이용하는 어르신 학생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필자가 아는 어떤 분은 중국어과와 일본어과를 찍고 프랑스어과에 다니고 있다. 졸업기념으로 부부가 중국과 일본 여행을 했으니 프랑스어과를 졸업하면 유럽 여행을 할 계획이란다. 학점을 따고 졸업을 하는 그 자체도 의미가 있지만 기념으로 해외여행까지 한다니 ‘행복한 노후를 위한 5F’를 완벽하게 갖춘 멋진 인생이 아닌가.
몇 년 전 화제가 됐던 가수 서유석의 노래 ‘너는 늙어 봤냐 나는 젊어봤다’의 가사로 끝을 맺자. “마누라가 말리고 자식들이 뭐라 해도 나는 할 거야. 컴퓨터를 배우고 인터넷을 할 거야. 서양 말도 배우고 중국 말도 배우고 아랍 말도 배워서 이 넓은 세상 구경 떠나 볼 거야. 너~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단다. 이제부터 이 순간부터 나는 새출발이다.”
요즘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의 힐튼 헤드 섬(Hilton Head Island)이 은퇴자의 천국으로 떠오르고 있다. 골프 애호가라면 PGA투어 RBC 헤리티지대회가 매년 열리는 아름다운 하버타운 링크스코스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힐튼 헤드 섬은 미국의 은퇴자들이 좋아할 요소를 거의 다 갖추고 있다. 겨울에도 영하로 떨어지지 않고 눈이 거의 오지 않는 온화한 기후는 한파에 시달리는 뉴욕, 보스턴 등 도회지의 은퇴자들에게는 큰 매력이다. 30도를 넘는 여름 더위가 9월까지 이어지기는 하지만 수온은 수상 스포츠에 최적이다. 저녁이면 선선해지니 휴식과 숙면을 취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고즈넉한 대서양 해변과 하얀 요트가 즐비하게 정박된 마리나와 야자수가 어우러진 항구의 전경은 숨 막히게 아름답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넓게 펼쳐진 바다, 하얀 모래와 맑고 깨끗한 습지 그리고 이끼로 뒤덮인 울창한 떡갈나무 숲은 대자연이 주는 은퇴기념 선물이며, 넉넉한 남부 인심은 은퇴자들에게 기를 불러 넣어주는 활력소다. 눈부신 햇살 아래 짭짤한 갯바람을 맞으며 160㎞에 달하는 자전거 도로를 달리고, 30여 개 골프 코스에서 라운딩을 하다보면 인생 후반기의 허무감은 어느새 충만감으로 바뀐다.
카약, 승마, 테니스, 낚시 등 갖가지 스포츠와 취미활동은 힐튼 헤드 섬의 주요 일과다. 19㎞에 걸쳐 펼쳐진 해안을 따라 무리지어 유영하는 돌고래를 유람선을 타고 관찰하며 달도 없는 깜깜한 밤에 붉은바다거북의 산란을 위해 해변의 조명을 모두 끌 때면 자연과의 일체감을 맛보게 된다. 저지대 늪지에서는 새우와 게를 쫓아다니는 푸른 왜가리와 큰 입을 딱 벌리고 햇볕을 쬐는 악어를 만나는 놀라움도 있다.
맨해튼(여의도의 30배)만한 넓이의 힐튼 헤드 섬에서는 4만여 주민이 오순도순 지내지만 해마다 250만 명의 외지인이 찾아와 한가하고 여유로운 기분이 전혀 들지 않는다. 쇼핑 환경도 맨해튼 수준이다.
특가 상품에서부터 디자이너 브랜드와 특별한 사람에게 선물할 독특한 기념품에 이르기까지 무엇이든 구할 수 있는 200여 개의 아웃렛과 상점, 그리고 6곳의 마리나 빌리지 상가는 주민뿐 아니라 관광객의 눈길과 발길을 끌고 있다.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자동차로 5시간, 사바나에서 45분(57㎞) 거리에 있는 힐튼 헤드 섬은 큰 다리로 내륙과 연결되어 있어 여객선이 다니지 않는 섬이다.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이나 사바나국제공항에서 항공편을 이용하면 이동시간을 줄일 수 있다. 미국 동부 연안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인 힐튼 헤드 섬은 원래 아메리칸 인디언들이 따뜻한 기후와 야자열매, 풍부한 해산물을 즐기던 곳으로 1663년 영국의 윌리엄 힐튼 선장이 처음 이 섬을 발견하고 자신의 이름을 따 ‘힐튼 헤드’라고 명명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섬의 73%가 은퇴자를 위한 주택단지
힐튼 헤드 섬의 73%는 10개의 대단위 리조트형 주택단지가 차지하고 있다. 이 주택단지 가운데 상당수는 매입 자격을 55세 이상의 신중년으로 제한하고 있다. 대부분 단지에는 관리사무소를 중심으로 실내외 수영장, 피트니스센터, 테니스장, 연회장, 식당 등이 갖추어져 있고 호수와 숲, 골프 코스와 마리나가 인접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섬에 정착한 은퇴자들은 평균 6차례 이상 방문하여 생활환경을 체험한 후 주택을 매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웃과 격이 없이 지내는 이 섬의 분위기를 느끼고 썰물 때면 90m나 밀려나 숨겼던 민낯을 드러내는 갯벌을 산책하면서 돌고래가 수영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저절로 들게 된다.
이 섬의 지난해 주택매매 가격은 단독주택의 경우 52만달러, 타운하우스와 아파트는 20만달러 수준. 침실과 화장실이 각 2개인 아파트는 20만~40만달러, 단독주택은 25만~45만달러, 그리고 침실과 화장실이 각 3개인 주택은 40만~70만달러를 호가한다. 바다 경치가 아주 좋은 주택은 150만달러를 훌쩍 넘고 700만달러를 호가하는 그림 같은 주택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6개월 정도만 빌려 살아볼 수 있는 아파트도 구하기 어렵지 않다. 스튜디오형은 월 평균 600달러, 침실 1개짜리는 800달러, 침실 2개짜리는 900달러 수준이다. 성수기인 여름철에는 며칠만 빌릴 경우에도 임대료가 치솟는다. 침실 1개인 주택이나 아파트도 전망이 좋으면 1주에 1200~1800달러, 해변을 걸어서 갈 수 있는 위치면 1000~1200달러 정도다. 봄과 가을에는 20% 정도 할인되고 겨울에는 50%나 싸진다. 2억달러 넘게 투입해 새 단장을 한 리조트의 하루 방 값은 일반형 기준으로 130~340달러 수준이다.
주거비가 웬만한 휴양지나 은퇴자 생활지보다 비싸지만 주거비를 포함한 생활비 총지출은 맨해튼의 50%, 워싱턴이나 보스턴의 75% 수준을 넘지 않는다. 재산세가 다른 지역의 25% 수준인 데다 소득세, 소비세 등 각종 세율이 낮고 85세 이상의 주민에게는 더 낮은 세율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자동차보험과 휘발유 값이 저렴한 것도 수월찮게 도움이 된다. 이 지역 주민들 가운데는 현역 시절 주택을 구입해 별장처럼 이용하다가 은퇴 후 눌러앉은 사람도 적지 않다. 세컨드 주택을 구입하면 세제 및 금융 혜택이 있는 데다 에어앤비를 비롯한 휴가용 주택 알선 사이트가 붐을 이루면서 목 좋은 곳의 별장은 재테크 수단이 되었다.
미국 남부 사람들이 테러보다 더 무서워하는 것이 허리케인이다. 힐튼 헤드 섬 주민들은 1850년 이후 섬 주변 반경 80㎞ 이내로 81차례의 허리케인이 지나갔지만 큰 피해를 입은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는 전설을 믿고 있다. 천혜의 지형 덕분인지 주민들의 후덕한 인심과 간절한 소망 덕분인지 알 수가 없다.
각양각색의 취미활동 그리고 평생교육도
힐튼 헤드 섬에서는 축제와 이벤트가 풍성하다. 해마다 열리는 다양한 뮤직 페스티벌, 해산물 축제, 고기잡이 경진대회, 카약과 보트 경주 등은 주민과 관광객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자리다.
멋을 살린 음악 카페, 길거리 밴드, 19세기와 20세기 초에 지어진 건물이 늘어선 메이 강변에 각종 포장마차와 공예품 전시판매점까지 어우러지면서 남부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16㎞ 떨어진 블러프턴의 소도심에서는 이국적인 정취를 느낄 수 있고 남북전쟁 때의 화재와 파괴를 견뎌낸 대농장주의 저택과 교회는 박물관과 관광안내소로 활용되고 있다. 수백 년 된 거대한 나무와 옛 건물은 그림엽서로도 간직되고 있다.
은퇴자들의 취향은 제각각이다. 요트, 카약, 낚시 등에 빠져 있는 ‘해양스포츠파’, 생태관찰 보존과 식물 재배에 몰입한 ‘에코파’, 골프, 사이클, 테니스와 달리기 등을 주로 하는 ‘육상스포츠파’, 공예품 만들기, 독서, 해변 일광욕, 흔들의자 등을 즐기는 ‘정중동파’ 등 각양각색이다. 하지만 봉사활동과 평생교육은 이곳 은퇴 생활자들의 공통된 일과다. 해안사구와 야생동물 서식지 보호에서부터 노약자 서비스, 도서관 운영 등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에서 자원봉사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과 협력관계를 맺은 오셔평생교육원은 1600명의 은퇴 생활자들을 대상으로 400여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1년 회비 40달러에, 수업료는 과목당 15달러. 모두 다 합쳐 연간 95달러를 넘지 않게 책정되어 있다. 선생과 학생이 따로 없다. 자신의 전공분야를 가르치고 관심 분야를 배운다. 학습을 하다가도 기분이 내키면 밖으로 나가 현장학습에 들어간다.
미국의 주요 언론과 관련 전문매체의 힐튼 헤드 섬 예찬도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2015년 최고의 은퇴 생활지’, ‘인생을 바꿀 건강한 봄철 휴가지’, ‘하계 모임을 위한 남부 최고의 장소’, ‘2016년 북미지역 최고의 골프 휴가지’, ‘캐롤라이나 남부 최고의 사이클 친화지역’, ‘미국 남부 5대 하계 가족휴가지’, ‘세계 50대 테니스 휴양지’, ‘미국 최고의 섬’, ‘인터넷 검색이 가장 많은 섬’, ‘사우스캐롤라이나 최고의 해변’, ‘2015년 세계 최고의 여행목적지’ 등등. 이런 찬사 덕분에 이 지역 은퇴 생활자들의 만족감은 더 커지고 있다.
뉴욕 맨해튼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볼링그린공원과 월스트리트의 상징인 돌진하는 황소 동상 바로 길 건너에 위치한 뉴욕시립대학교. 아침 10시 무렵이 되자 세련된 차림새의 신중년들이 삼삼오오 즐겁게 대화를 나누며 웅장한 대리석 건물 안으로 느긋하게 들어간다. 주변에 밀집해 있는 글로벌 금융기관의 고위직 인사들처럼 보이지만 평생교육원에 등교하는 학생이자 교수들이다. 배우, 심리학자, 엔지니어, 의사, 교수, 언론인, 관료, 금융전문가, 기업인, 음악가, 미술가 등 전문직업인으로 맹활약을 했던 은퇴자들이다. 틈틈이 일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여유로우면서도 열정적인 은퇴생활을 누리고 있는 신중년들이다.
스스로 가르치며 배우는 평생교육원 ‘퀘스트(Quest)’. 학교명처럼 진리 탐구를 갈망하는 신중년들이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배움터이자 아지트다. 취미활동과 문화 탐방 여행과 친밀한 교우관계가 함께 어우러지는 종합 커뮤니티 기능을 하고 있다. 안내서에 나열된 올해 봄 강좌가 얼른 봐도 30개를 넘었다. 고대 그리스, 마음과 뇌, 시 낭송, 클래식 록 앨범, 현대 오페라, 위대한 연극, 현대 단편소설 등 웬만한 대학 강좌보다 수준이 높지만 교수가 따로 없는 것이 특징이다.
여기에서는 ‘교수’와 ‘학생’의 구분이 없고 모두 ‘회원’으로 통한다. 내로라하는 전문가 출신 회원들이 직접 강의를 하고 관심 있는 회원은 강의를 신청해 수강을 하는 자급자족 방식이다. 현역 때는 배우고 싶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부득이 접어야 했던 학업과 취미와 봉사활동으로 호사를 누릴 수 있는 프로그램이 눈에 많이 띈다. 2주에 한 번은 외부 특별 강사를 초빙하여 지적 탐구심을 더 높이곤 한다. 1년 3학기제로 운영되며 가끔 숙제는 있지만 시험이나 출석 점검은 없다. 한 과목만 수강하나 전 과목을 다 수강하나(물리적으로 불가능) 1년 회비는 500달러. 등록금은 물론 없다.
강좌 개설을 포함한 퀘스트 운영의 거의 모든 사항은 협의회와 분과위원회에서 결정된다. 협의회는 회원들 중에서 선출된 임원 7명과 재정담당관 등 4명의 교직원으로 구성되고 2년 임기의 회원 대표가 회의를 주재한다. 산하 4개 위원회는 회원들로만 구성돼 강좌 개설, 교육자재 관리 및 섭외, 회원 관리, 각종 행사 기획 및 일정 조정 등을 나눠 담당하고 있다. 뉴욕시립대학은 장소와 행정적 도움만 줄 뿐이다.
오는 5월이면 개원 21돌을 맞는 퀘스트의 출범 내력을 알고 나면 이런 자율적인 운영 시스템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명성 있는 뉴욕의 은퇴자 교육기관이 은퇴자들의 생각과 입장을 배려하지 않고 입학 절차와 학사 관리를 매우 까다롭게 하면서 등록금까지 높이 책정하자 40명이 함께 탈퇴해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 것이 1995년.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함께할 수 있는 교육기관을 백방으로 물색하던 차에 뉴욕시립대학과 뜻이 맞아 새로운 터전을 마련할 수 있었다. 자유의 여신상이 바라다보이는 아름다운 배터리파크를 여유롭게 산책할 수 있는 맨해튼 최고의 위치에 자리한 퀘스트는 자율적인 평생교육을 갈망했던 40명의 결단과 노력으로 이루어진 산물이다.
새로운 이념으로 퀘스트의 설립을 기초한 40명 가운데 로버트 하트만 회장을 비롯한 10명은 지금도 퀘스트의 열렬 회원이자 지킴이로 활동하고 있다. 창립 회원인 샌디와 앨 고든 부부는 매년 발간하는 종합 문예지 20주년 기념 특별판 기고문에서 “퀘스트와 함께한 지난 20년은 결코 지루할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우리 은퇴자의 꿈은 따뜻한 햇볕을 쬐고 놀이와 내기나 하면서 소일하는 것이 아니라 열정적이고 모험적인 사람들과 함께 지식을 넓혀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캐롤 아브람스, 스텔라 체이스, 베버리 프란쿠스, 에버린과 러셀 굿 부부, 조 나탄 등 다른 창립 회원들도 퀘스트에 대한 자부심과 만족감이 대단하다.
멤버십 위원회의 에바 샤트킨 위원장은 퀘스트를 찾는 방문인을 일일이 안내하는 가이드 역할을 맡고 있다. 설립 때의 초심을 지키기 위해서다. 샤트킨 위원장은 한국인 학생을 수양딸로 맞이해 함께 살며 교육시켰을 정도로 한국과 깊은 인연이 있다. 수양딸은 훌륭히 성장해 지금은 뉴욕대학(NYU)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해외에서도 교직생활을 한 국제적인 영어 교육자인 샤트킨 위원장은 구순을 훨씬 넘겼는데도 거의 매일 배우고 봉사하고 있다. 구순을 넘긴 회원은 보통이고 백세를 넘긴 회원도 지하철로 등교하기도 해 배움이 회춘의 비결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무급으로 봉사하고 있는 마이클 웰르너 원장은 “퀘스트의 평생교육에 참여하고 싶은 은퇴(예정)자가 인터넷이나 전화로 방문신청을 하면 하루 일정으로 강의도 듣고 회원들과 자연스럽게 교류도 하면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한다”고 말했다. 웰르너 원장은 자택을 방문한 귀한 손님을 맞이하듯 시설과 운영방식을 친절하고 상세히 안내했다.
회원들이 가장 신나는 시간은 함께 창작활동을 할 때다. 한때 에미상 후보에까지 올랐던 유명배우인 도미니크 치아네스와 로이 클레어리 회원이 지도하는 연극 시간이면 모두 브로드웨이를 꿈꾸는 배우로 변신한다. 해마다 작품을 무대에 올릴 때면 온 가족과 친지들이 관객으로 참석하면서 흥겨운 잔치판이 벌어지고 회원은 현실에서도 주인공이 된다. 연극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도나 루벤스 회원이 건강 악화로 정기 공연을 놓쳐 몹시 안타까워하자 집을 방문해 즉석 공연을 했던 일화는 어떤 연극보다 더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날씨가 나쁘지 않은 금요일이면 이스트강변 89번가의 콩츠마켓(Conte’s Market)에서 퀘스트 회원들이 연주하는 포크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문예지 발간은 소설가와 시인을 꿈꾸었던 회원들이 주도하고 있다.
퀘스트에서는 수학여행과 현장학습이 수시로 있다. 뉴욕현대미술관(MoMA),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익스플로러클럽 등 주변에 즐비한 미술관과 박물관은 언제 들러도 즐겁고 배울 게 많은 현장학습장이다. 나이아가라폭포, 재즈와 ‘욕망의 이름이란 전차’와 프렌치 쿼터의 도시 뉴올리언스와 미국 전통의 여름철 문화교육타운인 이리호 남단의 쇼토쿼(Chautauqua)는 단골 수학여행지다.
여행전문가인 캐롤린 맥과이어 회원은 5월로 다가온 런던 수학여행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으면서도 8월 수학여행지를 어디로 할지 고심하고 있다. 다채로운 여름축제가 벌어지는 캐나다와 기네스맥주를 즐길 수 있는 아일랜드를 놓고 회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듣고 있다. 물론 회원들이 좋다면 두 곳 모두 갈 수도 있다. 여름 내내 여행 다니기를 좋아하는 회원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회원들은 학창 시절처럼 수학여행을 고대하면서 이야기꽃을 피운다. 수학여행에는 가족도 참가할 수 있어 더 신나고 추억거리도 넘친다.
뉴욕시립대학교와 교육이념에서부터 학사와 재정 관리에 이르기까지 호흡이 척척 맞아 이제는 회원이 230명을 넘어섰다. 평생교육의 새 장을 열고 있다. 요즘 퀘스트에는 성공비결을 배우기 위해 방문하는 해외 귀빈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 평생교육이 국가의 주요 이슈로 부각되면서 묘책과 대안을 찾으려는 것이다. 그저 어울려 배우고 교류하는 커뮤니티일 뿐인데 해외에서까지 관심이 쏟아지니 회원들은 어리둥절하면서도 신이 난다.
지난해 9월에는 태국 총리 부인인 나라폰 찬오차 교수를 단장으로 한 태국 사절단이 방문했고 은퇴를 앞둔 캐나다의 리차드 솔터 변호사는 4년째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어 평생교육에서도 글로벌화가 진행되고 있는 분위기다.
‘놀면서 배우는 것(Play and Learn)’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만 적용되는 교육이념이 아니다. 배움의 열정은 나이와 무관하고 호기심은 나이가 들수록 커진다는 진리를 퀘스트에서 깨닫게 된다. “배움이 없는 자유는 언제나 위험하고 자유가 없는 배움은 언제나 헛되다(Liberty without learning is always in peril and learning without liberty is always in vain)”라는 케네디 대통령이 미국인들에게 남긴 교훈을 퀘스트가 실천에 옮기고 있다.
김원곤(金元坤·63) 서울대 의대 흉부외과 교수는 독특한 이력들을 갖고 있다. 국내 굴지의 대학병원 교수라는 것도 충분히 화제가 될 수 있는 이력이지만, 동시에 열정적인 미니어처 술병 수집가이며 영화광이기도 하다. 얼마나 그 취미를 파고들었는지 미니어처 취미는 ‘닥터 미니어처의 아는 만큼 맛있는 술’, 영화 취미는 ‘영화 속의 흉부외과’라는 책으로 만들어졌다. 그는 또한 소위 말하는 ‘몸짱’으로도 유명하다. 환갑을 앞두고 1년 동안 몸 만들기에 매진한 그는 세미누드 사진집까지 펴낼 정도로 자신을 가꿨고, 중년을 위한 몸 만들기 책도 펴냈다. 쉬지 않고 스스로를 단련하고 있는 그가 다음으로 시도한 영역은 4개 외국어다.
그는 50세의 나이에 일본어, 중국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4개 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놀랍게도 4개 외국어능력시험의 고급 과정에 단 한 번에 합격했다. 이 정도면 사람이 좀 불공평하게, 그러니까 김 교수가 어떤 특출한 자질을 갖고 태어나서 그런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러나 김 교수는 그런 생각이 말도 안 된다고 말한다.
“저는 제가 언어력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고 살았어요. 우리 집에서는 그런 공부를 한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영어 알파벳 선행학습 한 거하고 서양 사람 얼굴을 AFKN에서 본 게 제 어린 시절 외국어와 접촉했던 전부예요. 그러니까 대학 졸업 전에는 어학 관련해서는 접한 게 없습니다.”
더구나 김 교수는 콤플렉스까지 있었다. 바로 자신의 사투리 발음에 대한 것이다.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 의욕적으로 한글 교육 정도는 내가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갈 때가 돼서 한글을 가르치고 받아쓰기 테스트를 했는데, 받아쓰기가 영 엉망인 거예요. 막 야단을 쳤죠. 그런데 아이가 ‘아빠가 발음하는 대로 썼다’ 하는 겁니다. 그 이후로는 뭐 아이에게 한글 교육 같은 거 안 했어요. 지금도 영어의 p 발음과 f 발음은 구분하기 힘들어요.(웃음)”
그가 50대가 넘어서 외국어 공부를 시작한 것 자체가 굉장히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그가 50세가 되었을 때 주5일제 제도가 시작되면서 전에 비해 여유 시간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나중을 생각해서 후회 없이 한 가지를 해보자고 다짐했다고 한다. 영어 외의 제2외국어를 찾다 보니 가장 만만한 게 일본어였다.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다.
인생에 후회가 없을 일을 한번 해보자
“운동이나 외국어, 다 어렵죠. 운동도 그렇고 외국어 공부도 그렇고 공통적인 특징은 자기가 아무리 열심히 해서 궤도에 올려놨다고 해도 잠깐 게을리하면 쭉 떨어진다는 거예요. 멈춘 상태로 그대로 가는 게 아니라는 게 무서운 거죠. 학원에 다니다 보면 그런 사람들을 수없이 봐요.”
그는 특히 전업으로서, 혹은 생활에 도움이 되는 수단으로서의 공부가 아닌 취미로서의 공부는 더욱 어렵다고 말한다.
“그건 한 번 시작하면 끝이 없는 걸 뜻하는 거예요. 올림픽을 목표로 하거나 대회가 있으면 그러한 구체적인 목표에 매진하면 되지만 취미 생활로 공부를 하면 목표가 있을 수 없죠. 그러니 평생 해야 한다는 건 어렵죠. 먹고살 일도 아니고. 열심히 하면 수입이 보장되는 일도 아니잖아요? 얻을 수 있는 건 자기만족과 자기발전이란 건데, 그 외에는 사실 동기 부여가 없는 셈이죠. 그게 힘든 거죠.”
하긴 그렇다. 취미로서의 공부란, 아무도 옆에서 강요하거나 격려하지 않는다. 공부하는 사람 본인은 그냥 안 하면 그만인 일이다. 하지만 김 교수는 결코 그만두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을 드러냈다.
“다 좋은 거잖아요. 공부나 운동이나.”
외국어에서 문법과 단어가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
김 교수가 자신의 외국어 정복기를 묶어 책으로 만든 ‘파란만장 중년의 4개 외국어 도전기’에서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문법과 단어를 뼈대와 근육으로 표현했다는 점이다. 일상 회화의 중요성이 계속 강조되는 근간의 외국어 공부 흐름과는 조금 달라 보였다.
“우리 시절에는 해외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어요. 외국인을 만날 기회도 이유도 없었죠. 그러니 오로지 가르치는 게 문법이었어요. 현실에서는 말 한마디 못하는 게 사실이었죠. 그런데 시대가 바뀌니 말하는 게 중요하다, 해서 일상 대화가 강조됐습니다. 사실 말하는 건 중요하죠. 그런데 한국 사람끼리를 생각해 보세요. ‘밥 먹었니.’ ‘날씨 좋다.’ 우리나라 사람들 일상 대화를 보면 늘 그런 식으로 얘기합니다. 그렇게 단순히 얘기해도 일상생활에선 불편이 없죠. 그런데 같은 사람을 계속해서 만난다고 생각해 보세요. 만날 식당에만 가는 것도 아니고, 할 줄 아는 말이란 게 밥 먹고 날씨 좋다고 말하는 것뿐이라면 문제가 있죠. 심층적인 얘기도 좀 하고 정치 사회 현안에 대해 얘기도 하려면, 단어를 모르면 할 수 없어요.”
외국인이 우리 문화권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을 설명하려면 그걸 표현할 수 있는 바탕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외국인에게 공자에 대해 설명해 주려면 공자를 표현할 수 있는 사회적, 철학적 단어들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김 교수는 문법이나 단어의 바탕이 좋은 사람은 외국어 능력 발전에 가속도가 붙지만 회화만 할 줄 아는 사람은 역으로 발전이 잘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한자를 많이 안다고 중국어를 잘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쉽게 배울 수 있는 언어는 누구나 알고 있듯이 일본어다. 그런데 시니어들 중에는 한자를 많이 알고 있다고 하여 중국어도 일본어만큼 배우기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한자를 많이 알고 있으면 중국어를 배우는 데 조금 도움은 될 수 있지만 잘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중국어에서 특히 어려운 건 성조예요. 우리나라는 억양이 달라도 성조가 없으니까 다 알아듣는데, 중국은 성조가 없으면 아예 못 알아들어요. 그리고 어순이 우리와 완전히 다르죠.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쓰는 한자 대부분이 중국계 한자와 다르다는 거예요.”
우리나라가 받아들인 현재 쓰고 있는 한자의 상당수는 일제 당시에 일본에서 만들어진 일본식 한자다. 애초에 중국과 다를 수밖에 없는 데다, 중국은 따로 간체자라고 하는 새로운 한자 체계를 조직하여 쓰고 있다. 아무리 한자 지식이 많다고 해도 현재의 중국에서 통용될 수 있을 리가 없다.
김 교수는 프랑스는 유럽 언어 중에서 우리나라 사람이 배우기에 가장 어려운 말이라고 소개했다. 특히 발음이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국어를 배우는 사람들 사이에선 중국어 성조가 더 어려우냐, 프랑스어의 발음이 더 어려우냐 하는 비교가 있을 정도라고 한다.
“사실 프랑스어의 문법은 크게 어렵지는 않아요. 그런데 우리는 영어로 자란 세대니까, 영어와 다르면 무조건 어려운 거죠. 그리고 스페인어는 발음은 우리나라 사람 입장에서 쉬운 편이긴 합니다.”
진짜 공부는 일상 속에서 한다
김 교수는 올해 우리 나이로 63세다. 그는 자신도 나이를 거스를 순 없으며 젊었을 때보다 기억력이 쇠퇴했을 것이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런데 학원을 가면 젊은 친구들이 많은데 단어 암기에서 제가 그들에게 뒤진다는 생각은 안 하거든요. 자기의 타고난 능력에 대해선,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변명하기가 좋아요. 그러나 그렇지 않아요. 암기는 가장 효과가 있는 시점에 반복하고 자주 반복하는 게 좋아요. 학원을 마치고 나오면 해방이다, 이러면서 핸드폰으로 게임하고 영화를 보고, 소주 한 잔을 하든지 그러면, 암기가 잘 안 될 수밖에 없어요. 저는 지하철을 이용하는데 타고 가면서 배운 걸 보고, 자기 전에 또 봅니다. 거리를 가면서도 공부할 것들이 많아요. 간판에 적힌 글자들만 봐도 뭔가 궁금해지면 바로 스마트폰으로 검색하여 공부하죠. 그래서 시간이 없다는 건 거짓말이라고 생각해요.”
공부를 마치고 나서 바로 짧은 시간에 반복해서 다시 복습을 하는 것, 그리고 자투리 시간을 내서 공부를 하는 그의 태도는 공부법에서 말하는 복습의 중요성을 일깨우게 만든다.
“나이 든 사람들과 공부를 해보면 그분들 나름대로 한계가 있긴 해요. 그러나 다 극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머리 중심 노익장의 시대가 올 것
김 교수는 ‘나이 많은 몸짱’이란 개념도 거의 10여 년 전부터 시작해서 이제는 꽤 보편화된 개념이 됐다고 진단했다. 아직도 스페셜하긴 하지만. 그 자체가 화젯거리가 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는 것이다.
“몸짱은 그렇다 칩시다. 사람들이 이제 다 그런 개념을 갖게 됐으니까. 그런데 머리를 쓰는 것은 어떤가요? 나이를 먹은 사람의 특성상 머리를 쓰는 게 몸을 쓰는 것보다 더 맞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우리가 노인이 돼서 머리가 안 돌아간다고 말하는 건 오래된 축적된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하는 것보다는 기억력과 관련된 문제예요.”
김 교수는 공부에 뜻이 있는 시니어들이 막상 해보려고 하면 자꾸 기억이 안 나게 되니 좌절감을 느끼고 ‘나는 안 된다’라고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지금 ‘몸짱’이 나이 많은 사람에게 정립이 된 것처럼 자연적으로 머리를 바탕으로 하는 노익장이 주목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생각해 보면, 먹고살기 위해서는 그걸 처절하게 견뎌야 하는 몸이 바탕이 되어야 했으니 몸이 먼저 주목받았던 게 당연합니다. 사실 머리는 당장 먹고사는 것과는 관계가 없죠. 그래서 머리와 관련된 기능은 쉽게 퇴화하고 유지하는 게 어려운 걸 수도 있어요.”
은퇴, 그 자체를 잘 모르겠는 마음
나이를 잊은 것처럼 에너지가 넘치는 김 교수에게 은퇴 후의 삶이란 어떻게 다가올까? 그는 그 질문에 대해 ‘잘 모르겠다’라고 대답했다. “세상이 너무 변했어요. 요즘은 나이가 들어도 너무도 건강하게 됐어요. 은퇴 생활이 60대에 적용된다고 보면, 남들은 일하는데 은퇴한 자신은 놀고 있으면 능력이 없어 보이는 자괴감이 들 수도 있는 그런 세상이 된 거죠. 그래서 저는 은퇴 후라는 게 ‘인생을 열심히 살아보자’인지, ‘유유자적하게 살자’는 것인지 모르게 됐어요. 사회적으로 정립이 안 된 걸 개인이 뭐라고 말하기가 어렵죠. 내년에는 양상이 또 바뀌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정말 어려운 문제예요.”
의학의 발달과 사회적 진화로 인해 기존의 정년 개념은 이제는 무의미하게 됐다. 이제 은퇴라는 말은 아직도 충분히 일할 수 있는 상당수의 시니어들에게 낯설게 다가오는 말일 수도 있다. 김 교수가 말하는 은퇴에 대한 개념을 들으며 느낀 것을 많은 시니어들도 동감하고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넓은 공부의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다
술, 영화, 운동, 외국어까지 섭렵했다. 이제 다른 영역으로 김 교수가 도전해보고 싶은 게 있을까?
“사실 지금까지 한 것들도 도전을 위해서 한 게 아니고 우연히 한 거죠. 우연히 시작한 걸 버려선 안 된다, 한때의 추억으로 남기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어요. 앞으로의 욕심이라면 현재 하고 있는 외국어, 운동들로 그 자체 내에서 내가 얼마나 발전할 수 있나를 시험해 보고 싶습니다. 운동은 가시적인 발전에 한계가 있습니다만 외국어는 끝이 없을 거라고 봐요. 커피도 그렇잖습니까? 다 맛있다 하다가도 원산지, 볶는 법 등등을 알게 되면 끝이 없잖아요. 언어도 그런 게 더 없겠습니까?”
그는 나이가 들어도 지금 꾸준히 하고 있는 것들을 잃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언제까지 할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이상 퇴보하는 건 없도록 하고 싶어요. 그 기간이 오랫동안 연장이 됐으면 싶고. 1차 목표는 70세로 하고, 더 좋은 기회가 주어지면 75세로 늘리려고요(웃음).”
“한 번 선택하면 18년을 좌우합니다.” 순간 그의 눈빛이 변했다. 만난 후 내내 온화한 의사선생님의 모습을 하고 있던 그였는데, 이야기 주제가 동물 입양으로 옮겨지자 갑작스레 진지해졌다. “사람을 입양하는 것과 같죠. 개와 고양이 모두 최근 수명이 길어져 평균 18년 정도 사는데, 함께 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굉장히 긴 기간입니다. 신중해져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죠.”
글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사진 이태인 기자 teinny@etoday.co.kr
박효철(朴孝哲·55) 대표는 국내 최대의 애견 프랜차이즈의 최고경영자이자 진료도 함께하는 대표원장 역할도 하고 있다. 그가 운영하는 동물병원 프랜차이즈 쿨펫(Cool Pet)은 전국에 150여 개 가맹점이 있고, 전국의 롯데마트나 이마트 등 대부분의 대형마트를 선점하고 있다. 이 밖에 호텔이나 놀이터 서비스를 제공하는 반려동물 서비스 전문의 프랜차이즈 위즈펫(Wizpet) 등 그가 론칭한 크고 작은 애완동물 브랜드는 모두 5개나 된다.
수명 얘기가 나오니, 돈벌이만 생각한다면 순환이 빠른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나쁜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지만, 그의 진중한 태도에 얄팍한 이야기는 입 밖에 내지도 못한다.
박효철 대표의 말에 따르면 애완동물, 반려동물 시장은 최근 급속도로 커지며,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고 한다.
“최근 혼자 사는 인구가 늘면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애견인(愛犬人), 애묘인(愛猫人)들이 늘었어요. 최근에는 자녀들과 떨어져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빈자리를 반려동물로 채우려는 시니어들이 늘어났습니다. 동물별 비중을 살펴보면 과거에는 개를 선택하는 인구가 90% 정도를 차지했지만, 최근에는 고양이의 인기가 늘어나면서 20% 이상을 차지합니다. 고양이를 키우는 애묘인들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어, 이 추세라면 30%를 넘는 것도 얼마 남지 않은 상태입니다.”
시니어 중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늘고 있는 것은 선진국의 사례에 비춰보면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했다. 특히 일본의 경우 반려동물을 키우는 독신인구 중 70% 정도가 시니어층이라고 한다. 시니어들이 개보다 고양이를 더 많이 선호하는 것도 한국과는 다른 특징이다. 시니어의 반려동물로 선택되는 개와 고양이의 비율은 4대 6 정도다.
생활공간 등의 문제로 망설였던 반려동물의 사육을 이제라도 시작하려는 시니어들에게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물었더니 의외의 답이 돌아온다. 그의 사업영역인 동물병원이나 관련 매장을 찾아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좋지만, 가까운 지인 중에서 이미 반려동물을 기르고 있는 사람을 찾아 살펴보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실제 기르고 있는 사람을 찾아 밥은 어떻게 주는지, 훈련은 어떻게 시키는지, 그 외의 관리상 주의사항은 무엇인지 미리 듣고 학습하는 것이 좋습니다. 실제 사육하는 과정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현실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그 이후에 본인이 기르고자 하는 동물의 특징을 공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입양은 맨 마지막 단계입니다. 천천히 해도 늦지 않습니다.”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턱대고 입양을 하다보니 유기견의 증가가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일각에선 유기견의 입양도 캠페인처럼 펼쳐지지만, 사육을 처음 시작하는 초보 시니어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유기견의 경우 몸과 마음을 모두 다친 상태에서 구조되는데, 관련 기관에서 육체적인 상처는 치료해도, 마음의 상처는 그대로 둔 채 입양을 보내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사람의 준비가 몇배 더 필요하다는 것. 실제로 입양된 유기견들이 파양(罷養)되어 돌아올 확률은 절반에 육박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시니어에게는 어떤 동물이 키우기 좋을까? 물론 개인의 취향이 우선시되어야겠지만, 개와 고양이 중에서 선택하라면 고양이가 편하다고 조언한다.
“개는 의존적이어서 항상 곁에서 돌봐줘야 하지만, 고양이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물과 음식만 준비된다면 며칠 동안 집을 비워도 문제없을 정도죠. 배변 훈련도 모래만 준비하면 됩니다. 가르칠 필요가 없죠. 그래서 키우기 편한 쪽은 당연히 고양이입니다. 만약 강아지 중에서 추천하자면 몰티즈나, 요크셔테리어, 푸들, 시추 같은 소형견이 적합하죠. 하지만 인위적으로 몸집을 줄인 아주 작은 견종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건강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최근 반려동물 관련 산업이 확대되면서 관리에 대한 다양한 상품이나 서비스 등이 늘어났지만, 지나치게 과잉보호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박 대표의 설명이다. 너무 병원을 자주 찾거나, 보호에 힘쓰는 것보다는 산책을 하는 등 같이 함께 보내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 더 중요 하다고 설명한다.
“사람처럼 반려동물도 병원을 가 버릇하면 계속 탈이 나게 되어 있어요. 병원은 큰 문제가 없으면 일년에 한 번 정도 예방접종하러 가면 되고, 먹는 것도 그냥 사람 먹는 것을 함께 먹어도 큰 문제는 없습니다. 인류는 그동안 그렇게 동물들을 키워왔고, 동물들은 그렇게 살아남았으니까요.”
입양할 동물이 결정되고 집에 들이게 되면 가장 중요한 것은 집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라고 조언했다.
“개든 고양이든 한 일주일 정도는 일부러 만지려 들지 말고, 먹이를 줄 때를 제외하고는 내버려 두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고 나서 적응이 되면 먼저 가까이 다가올 겁니다. 산책할 때도 목줄을 조금 여유 있는 길이로 맞춰, 가고 싶은 곳으로 따라가는 형태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 함께 지내다 보면 상대도 마음을 열게 되고 서로 가까워졌음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반려동물과 함께 지내는 것을 통해 얻는 장점을 박 대표는 ‘교감’으로 이야기했다. 사람과 사람은 말로 교감을 하지만, 사람과 동물은 원초적 감정을 통해 소통하기 때문에 좀 더 근원적인 교감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 마음의 안정과 위안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일부에선 동물이 수명을 다할 때의 상실감을 우려하기도 하지만, 죽기 전에 동물을 한 마리 더 입양해 충격을 최소화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추천했다. 나이 많은 동물에게도, 그를 잃는 사람에게도 새로운 식구가 힘이 되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는 신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니어가 동물을 키우게 되면, 동물이나 사람의 수명을 고려할 때 평생을 함께하는 셈이니까요. 그래서 반려동물이라는 말 그대로 남은 생을 함께 할 식구를 찾는다는 마음으로 입양에 임해주셨으면 합니다.”
나이 들수록 지식을 뽐내기보다는 지혜(智慧)를 나누고 덕(德)을 베풀었을 때 자연스레 교양이 묻어난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지혜와 덕은 하루아침에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닐뿐더러, 교과서나 시험도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인생의 큰 숙제와 같다. 해결하는 방법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그동안의 소양과 더불어 끊임없이 공부하며 그 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체력(體力)이다. 몸이 건강해야 정신과 마음이 건강한 상태로 오랫동안 인생 공부를 해나갈 수 있겠다. 교양 있는 중·장년의 삶을 위해 ‘지덕체(智德體)’를 향상할 수 있는 배움의 장을 살펴봤다.
◇ Chapter 2. 서울시민대학에서 德 학점 올리기
서울시는 시민에게 풍성한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서울시민대학’을 운영한다. 2013년 시작해 인문학적 성찰, 시민 민주주의, 삶의 터전, 예술적 감성 등 총 379개 강좌에 교육 인원 2만693명(연인원 8만6363명)이 수강하는 등 인문학 교육을 통해 성숙한 시민으로서 성장할 수 있는 배움의 장을 마련해왔다.
‘서울시민대학’은 시민청, 뚝섬 학습장(방송통신대 서울지역대학), 은평·중랑 학습장, 대학연계 시민대학(14개 대학 학교별 강의장)에서 2016년 상반기 114개 강좌를 3월에 개강하며, 하반기에는 230여 개 강좌로 확대할 예정이다. 서울 시민이라면 누구나 무료로 수강 신청할 수 있도록 서울시 평생학습포털 사이트(sll.seoul.go.kr)를 통해 온라인 선착순 모집한다. 세부강좌는 서울시평생학습포털에서 확인 가능하며, 수강 신청은 3월 8일 10시부터다. 3월 22일 시민청 시민대학부터 강좌별 순차적으로 개강한다.
서울시민대학의 시민청 시민대학은 유명 강사의 재미있는 대중 인문강좌를 들을 수 있고, 은평학습장은 평생교육사, 예술지도사 등 전문가로 성장하고 싶은 시민들에게 전문가 역량 강화 교육을 제공한다. 뚝섬· 중랑 학습장은 평생교육시설이 부족해 학습기회가 적은 일반시민들에게 시민공동체과정, 부모교육 등 생활 속 인문강좌를 진행한다. 또한 시민 누구나 더 가까이 인문 심화강좌를 들을 수 있도록 서울시와 협력을 맺은 대학교 내에서 대학연계 시민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대학연계 시민대학은 2013년 3개 대학이 서울시와 협력운영하여 11개 강좌 365명이 수강했고, 2015년에는 14개 대학 69개 강좌에 2885명이 참여하는 등 8배가량 학습자가 늘었다. 각 대학의 특성을 반영한 다양한 인문 전문강좌에 대해 학습자들의 만족도가 높았던 덕분이다. 이러한 학습자들의 요청에 힘입어 하반기에는 운영대학을 20개 대학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서울시민대학은 학습자에게 배움의 즐거움을 주는 한편, 학습매니저에게 평생교육 전문가로 성장의 기회를 주고, 대학 등 민간 평생교육기관과 협업하는 등 지역사회 환원활동도 해나가고 있다.
‘나를 위한 글쓰기’ 수강생들이 말하는 ‘서울시민대학’
나를 위한 배움을 통해 만난 ‘진짜 나’
경희대에서 ‘나를 위한 글쓰기’를 수강한 50대 김혜순씨는 “대학을 졸업한 지 20~30년이 넘은 중·장년에게 필요한 공부를 선택해 들을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 대학 캠퍼스를 다시 거닐어 보는 낭만도 만끽하고, 다시 배움으로써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만들어갈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한다”며 “중·장년이 30% 정도 되는데, 함께 배우는 분들의 의지는 매우 강했다. 처음엔 문단의 개념이나 글의 전개 방식 등에 대해 전혀 몰랐던 동료가 강의를 거듭하면서 눈에 띄게 발전했다. 칭찬을 많이 받고 글로 상을 받는 분들이 늘어났고, 80세에 가까운 어르신은 구술로 전환하는 방법을 제시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 메일링 서비스를 통해 서울시민대학을 알게 된 60대 김모씨는 “다양한 강좌들이 무료로 진행된다는 점이 정말 좋았다. 강사진과 커리큘럼도 마음에 들었다”며 “앞으로도 이러한 강좌를 지속하고, 많은 이들이 참여한다면 고령화사회를 맞이한 노후에도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말했다. 특히, 그녀는 ‘나를 위한 글쓰기’를 통해 진짜 자기 자신을 만날 수 있었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동안 잊고 지낸 시간을 되새김하며 치유하지 않고 묻어버린 상처와 아픔, 그리고 기쁨도 다시 찾게 됐다. 학기가 끝났지만, 수업 시간 내에 다 쓰지 못한 나의 이야기를 지속해서 써나갈 수 있도록 격려하는 벗이 생긴 점도 감사하다”며 글쓰기를 통해 건강한 삶을 살아가고 싶다고 바랐다.
학습매니저 이서연(52)씨가 말하는 ‘중·장년 학생들의 학구열’
노력·열정·배려 속에서 발견한 중·장년의 기품(氣品)과 기쁨
서울시민대학에서는 강사와 학습자가 더 잘 소통할 수 있도록 새로운 교육전문가인 학습매니저가 함께하고 있다. 이들은 학습자료 준비, 강의실 및 출석 관리뿐만 아니라 시민대학과 학습자, 교수와 학습자를 이어주는 소통창구 역할을 한다. 학습현장에서 수강생들의 건의사항이나 고충을 듣고 처리하기도 하지만, 수업에 대한 만족도와 반응도 가장 직접적으로 듣고 학습동아리나 커뮤니티 형성을 도와준다. 지난해 홍익대학교에서 학습매니저로 활동했던 이서연(52)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녀는 학습매니저와 담당 교수들이 가장 놀라워한 것은 중·장년 수강생들의 노력과 열정이라 말했다.
“교수님들은 학습자들의 진지한 수업 태도에 찬사를 보냅니다. 일반 대학생을 상대로 강의할 때는 정해진 커리큘럼이나 학점 이수를 목적으로 수업을 듣기 때문에 태도나 열정이 덜하다고 해요. 그런데 이분들은 정말 자기가 원해서 스스로 좋아하는 강의를 찾아오신 거잖아요. 수업 몰입도도 대단하고, 예습 복습도 철저하게 해오니 수업의 질도 높아졌죠.”
수업에는 중·장년뿐만 아니라 학생이나 청년들도 참여한다. 소모임을 만들거나 SNS를 통해 젊은이들과 배움을 나누는 등 세대 간 훈훈한 사례도 많다고. 나이가 적고 많고를 떠나 한 학기를 동기라는 이름으로 어우러지며 나아가 인생 선배들의 따뜻한 배려로 함께 한다.
“질문이 많아지면 진도가 더디게 나가는 경우가 생겨요. 중·장년 학습자들은 주로 쉬는 시간이나 수업이 끝나고 궁금했던 것들을 털어놓으시죠. 양보하고 배려하는 모습에서 교양과 기품이 묻어나더라고요.”
겉으로는 차분하지만 그 속에는 배움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다. 만족스러운 그들의 표정을 볼 때 가장 보람을 느끼는 이씨다. “거동이 불편하신 70대 남자 학습자분이 있었는데, 수업을 빠짐없이 들으셨어요. 같이 수강한 분들이 모두 격려의 박수를 쳐드렸어요. 학습자 자신도 굉장히 뿌듯해하고 기뻐하죠. 마지막 질문은 대개 ‘언제 또 하느냐’예요. 중·장년의 배움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