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및 공간 콘텐츠기획 전문기업 엘와이디 디지털스페이스(LYD DIGITALSPACE)가 전시 개최를 확정 지었다.
은 호주에 본사를 둔 전시 전문기업 그랜드 엑시비션(Grand Exhibitions)이 개발한 ‘다빈치 얼라이브-더 익스피리언스(Da Vinci Alive-The Experience)’를 서울에서 재구성해 처음으로 선보이는 전시다.
전시는 ‘르네상스, 다빈치의 세계’, ‘살아있는 다빈치를 만나다’, ‘신비한 미소, 모나리자의 비밀이 열린다’ 등 총 3개의 섹션으로 구성된다. 철저한 고증으로 재현한 다빈치의 발명품과 실제 다빈치의 수기노트인 코덱스, 3000개의 걸작들로 이루어진 미디어 파사드, 모나리자의 비밀을 파헤지는 공간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발휘된 다빈치의 천재성을 한 공간에서 만나볼 수 있다. 특히 ‘신비한 미소, 모나리자의 비밀이 열린다’ 섹션에서는 천경자의 를 감정하며 유명해진 프랑스 예술작품 분석가 파스칼 코테가 루브르 박물관의 의뢰로 10년간 모나리자 원화를 심층 분석해 밝혀낸 모나리자의 비밀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한 엘와이디 디지털스페이스의 이준희 대표는 “최첨단 전시기술을 통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진정한 천재성을 다방면으로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은 오는 11월 4일부터 다음 해 3월 4일까지 용산전쟁기념관 기획전시실에서 진행되며 입장료는 성인 15000원, 청소년 13000원, 아동/어린이 11000원으로 유아는 무료 입장이 가능하다.
전시 개막에 앞서 오는 9월 8일 오후 2시부터 1차 얼리버드 티켓 판매를 진행한다.
장소 용산전쟁기념관 기획전시실
기간 2017년 11월 4일(토) ~2018년 3월 4일(일)
한 학기가 끝나고 또 한 학기가 시작되면 학생들에게 받는 것이 있다.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잘하는 것은 무엇이고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지? 앞으로 5년 뒤 10년 뒤 나의 모습은 어떠한지를 쓰는 ‘이력서 및 자기소개서’다. 집에서 통학 거리는 얼마나 되며 어려움이나 건의 사항은 무엇인지도 쓰고, 장래 희망이 무엇인지도 쓰게 한다. 이력서나 자기소개서는 학생의 현재 상황이나 장래 진로를 상담할 때 꼭 필요한 자료다. 또 학생들을 빨리 알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학생의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면 그만큼 학생과의 소통이 원활해진다. 사실 대부분의 교수들이 겪는 일이지만 한 학기에 만나는 아이들만 줄잡아 100명에서 150명 정도가 되니 이름을 다 외운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강의 과목에 따라 반이 바뀌는 경우도 있어 매 학기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그래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보고 그 학생만의 특징을 생각하고 얼굴을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받아 읽다가 의외로 놀란 부분이 있다. 이력서 양식에서 필수 항목으로 들어가는 것이 있는데 바로 보호자가 누구인지 쓰는 칸이다. 처음엔 별 의미 없이 몇 장을 넘기며 읽었는데, 읽을수록 보호자를 ‘어머니’라고 쓴 학생들이 많았다. 그래서 대략 통계를 내어보니 약 절반 정도가 보호자를 어머니라고 썼다. 처음에는 ‘아빠가 없는 학생인가?’ 했다. 그런데 거의 절반이나 그러해서 개별 상담을 하면서 물어봤다. 놀랍게도 아빠가 없어서 그렇게 쓴 것이 아니라, 아무 생각 없이 어머니라고 쓰는 학생들이 많았다.
자연스럽게 보호자를 ‘어머니’로 쓰고 있다는 사실이 필자를 놀라게 했다. 필자도 과거에 많은 이력서를 써봤지만 보호자는 늘 ‘아버지’였다. 어머니라고 쓸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그런데 요즘 학생들은 어머니를 보호자로 쓰는 데 전혀 어색함이 없어 보였다. 전통적인 가족 구조에서는 아버지가 늘 집안의 기둥이었고 가정을 대표하는 분이었다. 한 가정에서 아버지라는 존재는 권위적이었고 집안을 책임지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랬던 아버지에 대한 위상이 지금은 바뀌어버린 것이다.
물론 보호자가 아버지이든 어머니이든 상관이 없다. 꼭 아버지만 보호자가 되어야 한다는 법도 없다. 하지만 그 흔들림 없던 위상이 달라진 이유는 뭘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이러한 현상은 아버지에 대한 권위가 옛날 같지 않다는 의미다. 농업을 하며 살던 시대에서 산업화가 이루어지고 정보통신 시대가 되면서 대가족이 무너지고 핵가족으로 변하는 사회 현상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농사를 짓던 시절에는 온 가족의 손이 필요했고 생산과 소비에 대한 절대 권한을 아버지가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농업에 의지하는 시대도 아니고 자녀들도 도시로 나가 더 많은 수입을 올리는 것이 가능해졌다. 당연히 아버지라는 절대적인 권한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양성평등의 사회 현상이 남녀에 대한 위상을 동등하게 만드는 원인도 있다. 남존여비 사상은 박물관으로 들어간 지 오래다. 이제는 재산상속도 아들딸이 동등하다. 맏이가 더 많은 재산을 물려받는 시대는 지났다. 또한 호주도 아버지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이제는 어머니도 될 수 있다. 아버지의 성이 아닌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 있는 것이다.
아버지와 자녀 간의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다.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와 많은 대화를 하고 옛날처럼 아버지의 권위도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보호자 칸에서 힘의 균형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누구를 쓰느냐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편으로 아버지들의 위상이 떨어진 것은 아닌지 씁쓸하기도 하다. 자식들과의 소통이 필요한 시절이다. 필자도 궁금해졌다. 과연 필자의 아들딸들은 학교에서 이력서를 쓸 때 보호자로 누구를 쓰는지.
휴가를 바닷가나 계곡으로만 가는 것은 아니다. 가치 있는 일을 해도 좋다. 그중 ‘댄스 여름 캠프’라는 것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한 번도 열린 적 없지만, 외국에서는 해마다 열리며 해가 갈수록 성황이다.
이탈리아의 댄스 여름 캠프는 베니스에서 열린다. 세계 각국에서 왕년의 챔피언, 선수들이 모인다. 캠프 기간 동안 스케줄이 잘 짜여 있다. 한국에서 가려면 비행기 값이 비싸서 그렇지 캠프 참가비용은 숙소를 포함해 그리 비싸지 않다. 이 캠프에서 댄스를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로 얼굴을 익혀놓는 게 큰 도움이 된다.
몇 해 전 호주에서도 댄스 캠프가 열려 참여 계획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호주의 댄스 강사 수준이 그리 매력을 끌지 못했는지, 또 며칠씩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직장인들도 있었고 경비도 꽤 드는 편이라 부담이 됐는지 성사되지 못했다.
이런 행사는 그야말로 부가가치가 높은 문화 사업이고, 관광 사업이기도 하다. 영국은 댄스스포츠를 체계화해 지금도 수많은 관계자들을 먹여 살린다. 국가적으로도 도움이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댄스 캠프를 기획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국가대표 선수들의 단체 합숙 훈련은 있지만,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댄스스포츠 10종목을 전문 선수나 강사들이 가르치고 그 외에 아르헨티나 탱고, 살사, 지터버그, 블루스까지 포함해 그야말로 댄스로 날을 지새우도록 하는 것이다.
동호인들은 누구나 이런 꿈을 꿔봤을 것이다. 댄스 캠프를 열려면 좋은 지도자들이 많이 호응해줘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기획을 할 수 있는 댄스 단체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학원별로 보유한 선수 몇 명만으로는 프로그램이 빈약할 수밖에 없다. 큰 단체가 기획해 추진하든지 작은 단체끼리 연합해서 추진하는 방법도 있다. 여건도 만만치 않다. 평소 유대 관계 및 일정 인원의 회원들을 동원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초창기에 댄스스포츠를 보급한 공로가 있는 동아문화센터나 중앙문화센터 같은 언론기관, 그리고 참신한 기획력이 있는 잡지사 등이 나서는 방법도 있겠다.
장소도 만만치 않다. 우선 춤출 수 있는 마루가 깔린 큰 방이 있어야 한다.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움직여야 하므로 숙소 문제, 식사 문제 등도 잘 기획되어야 한다. 콘도가 좋기는 한데 성수기에는 방 구하기가 어렵다. 마을회관이나 지방 공공건물, 문화센터, 방학한 학교나 폐교된 학교를 빌리는 방법도 생각해봄직하다.
이런 행사가 우리나라에서도 열리면 동호인들에게는 평생의 추억이 될 것이고, 지도자로 참여한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회원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후회할 때가 있다. 대학입학 때는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할걸”, 대학졸업을 할 때는 “스펙 좀 쌓아둘걸”, 결혼을 할 때는 “돈 좀 모아둘걸”, 직장을 다닐 때는 “좀 더 성공했으면” 하고 아쉬워하는 것처럼 말이다. 2013년에 출간된 의 저자 브로니 웨어는 10여 년간 은행원으로 일하던 중 문득 자신의 삶이 너무 단조롭고 무의미하다고 느껴 모든 생활을 접고 호주에서 호스피스 간병인으로 생활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시한부 인생을 사는 수많은 이가 죽음의 순간에 후회하는 것들에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는 그 경험으로 쓴 책이다.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이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것 5가지는 ① “내 뜻대로 살걸” ② “일 좀 덜 할걸” ③ “친구들과 연락하며 살걸” ④ “내 감정에 좀 더 충실할걸” ⑤ “도전하며 살걸”이다. 5070세대도 이런 후회를 해본 적 있을 것이다.
5070세대가 젊었을 때 자신의 뜻대로 살아본 적이 있을까? 일에 치여 야근이 일상이었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 사이 아이들은 다 커버렸고, 아내와도 너무 멀어진 것 같다. 현역에 있을 때는 나름 네트워크가 탄탄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은퇴하고 나니 연락은커녕 전화를 받지 않는 친구도 많다. ‘정승 집 개가 죽으면 문전성시를 이루고 정승이 죽으면 개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다’는 말처럼 “세상 이치가 다 그렇지!”라고 스스로를 달래보지만 서운함을 감출 수는 없다. 과거 직장생활할 때 눈치 보느라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 속병만 키우던 시간들, 하고 싶은 것 하나 제대로 해본 적 없이 살아온 세대가 지금의 5070세대인 듯싶어 씁쓸하다.
지금까지 후회스러운 삶을 살았다면 이제부터라도 달라지면 된다. 5070세대가 앞으로의 삶을 보다 행복하고 가치 있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돈·연금·봉사·기부 등 사람마다 가치를 두는 대상이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가족을 생각할 것이다. 이에 이번 호에서는 가족관계 측면에서 가치 있는 노후의 삶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알아보고자 한다.
‘가족관계’ 회복을 위한 시간을 충전하라
영원한 청년작가 최인호(1945~2013) 선생은 1975년부터 2010년까지 25년간 월간 에 자전적 수필 ‘가족’을 연재했다. 가족에 대한 그의 애틋한 사랑은 사후에 로 발간되었다. 그가 부인과 나눈 마지막 말은 “사랑해요”, “여보, 나도 사랑해”였다고 한다. 황혼이혼과 졸혼이 회자되는 세상이지만, 그의 마지막 말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준다. 최인호 선생이 세상에 던지고 간 마지막 선물이다. 가족을 의미하는 영어 ‘FAMILY’는 ‘Father and Mother, I love You!’의 첫 글자를 딴 것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가족은 사랑의 다른 표현이다.
중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소홀하기 쉬운 ‘가족관계’에 대해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지난달 고등학교 선후배 모임에 참석했을 때 퇴직한 한 선배가 해준 이야기다. 그동안 일밖에 모르고 살았던 선배는 퇴직한 지 6개월째에 접어들었다. 해 뜨기 전 눈뜨고, 해 지면 집으로 돌아오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해 뜨면 눈뜨고, 해 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오는 신세가 됐다며 우스갯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동안 가족을 위해 고생했다고 격려하며 지원하던 아내도 이제는 은근히 불편해하는 눈치 같아서 걱정이란다. 선배가 조심스레 아내에게 “여보! 우리 여행이나 같이 다닐까?” 하자, 동네 스포츠센터 언니, 동생들과 함께 여행 가기로 했으니 혼자 가란다며 푸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또 퇴직 전에는 늘 가족과 함께 여행 가자고 하던 아내가 이제는 자기보다 더 바쁜 사람이 되었다며 걱정한다. TV나 신문에서 퇴직 후에는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니 아내와 취미생활을 함께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라고 했을 때 무시하고 지나친 게 지금의 서먹함으로 이어진 것 아닌지 후회가 된다고 했다.
[표1]에서 보는 것처럼 5070세대가 배우자와 나누는 대화시간은 하루 1시간 미만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50대의 70%, 60대의 60%, 70대의 50%가 그 정도밖에 대화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공무원 인생이모작 교육에서 만난 어느 수강생의 이야기도 씁쓸하기는 마찬가지다. 주말에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는데 학원에서 돌아온 막내아들이 인사를 하고 자기 방으로 휙 들어가버렸다는 것이다. 한 시간 정도 지나 아들이 방에서 뭘 하는지 궁금해졌고 대화를 나누고 싶어 불러볼까 하다가 나올 때까지 그냥 기다렸다. 하지만 자신이 거실에 있는 동안 나오지 않아 포기했단다. 부모가 언제부터 이렇게 자녀들과 서먹해진 걸까? 자녀교육을 시킬 때 무관심이 최고라는 말도 안 되는 개똥철학으로 그동안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한 건 아닌지, 흘러간 시간이 너무 아쉽다며 속내를 털어놓는다.
5070세대는 특히 은퇴한 뒤에 배우자는 물론 자녀와의 관계에서 뜻밖의 위기에 봉착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가족들에게 휘둘리거나 조급해하면 가족 파탄의 불씨가 될 수 있다. 배터리를 충전하려면 시간이 걸리고, 김치가 맛있어지려면 오랜 시간 익어야 하는 것처럼, 가족관계 회복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자신이 지향하는 삶의 가치는 무엇인지 숙고하다 보면 이 기다림의 시간도 잘 여물어갈 것이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 늘리자
건강검진 후 “검진결과가 생각보다 좋지 않게 나왔습니다. 이런 말씀 드리기 좀 그렇지만 앞으로 살 날이 9개월 정도 남으신 것 같습니다”라는 말을 듣는다면 어떤 느낌일까? 당황스럽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을 것이다.
몇 년 전 ‘당신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될까요?’라는 카피로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 광고가 있었다. ‘가족시간계산기’로 앞으로 가족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을 계산해주는 내용이었다. 평균수명을 기준으로 자신의 나이와 앞으로 일할 수 있는 시간, 잠자는 시간, TV 보는 시간, 스마트폰 보는 시간, 친구 만나는 시간, 혼자 보내는 시간 등을 빼보니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나왔다. 결과는 너무 충격적이었다. 9개월! 참고로 필자의 경우는 약 11개월이었다.
‘가족시간계산기’는 누구나 쉽게 계산할 수 있다. [참고1]의 ②번 기대여명은 통계청 홈페이지를 방문해 연령별 기대여명을 확인하면 알 수 있다. 귀찮다면 우리나라 사람의 평균수명인 82세에서 자신의 나이를 빼고 계산하면 된다. ‘가족시간계산기’를 작성하다 보면 그동안 삶의 우선순위가 무엇이었는지 점검해볼 수 있다.
가치소비를 통해 가족관계 강화해보자
‘가족시간계산’을 통해 그동안 삶의 우선순위에 대한 점검이 이루어졌다면 앞으로 어떤 배우자, 부모가 될 것인지 액션플랜(action plan)을 작성해보는 것은 어떨까? 특히 가족과 함께하는 가치 있는 소비야말로 소통과 공감의 시간을 풍부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가령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반드시 가족과 함께 식사하기’, ‘배우자와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데이트하기’, ‘배우자와 마주앉아 한 시간 이상 대화하기’, ‘배우자 또는 자녀와 함께 여행하기‘ 등 소소하지만 의미 있는 시간을 마련해본다. 가족과 함께하는 가치 있는 소비와 삶을 위한 징검다리를 하나씩 옮겨놓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몇십 년을 같이 살아왔어도 배우자와 자녀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며 살아왔다면 반성해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가치 있는 소비와 실천으로 꽉 막힌 대화의 문을 열어보자. 처음에는 ‘언 발에 오줌 누기’밖에 안 되더라도 인내심과 배려심을 갖고 접근하면 봄눈 녹듯 그동안의 소통 단절은 스르르 사라질 것이다. 필자도 당장 실천하겠다.
매달 첫 휴일 산행하는 고교동창 산악모임 서등회(박찬선 회장) 회원들은 4호선 대공원역에서 모였다. 더위를 피하여 숲이 우거진 서울대공원 삼림욕장을 탐방하기로 했다.
이곳에 산림욕장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공원 산림욕장은 경기 과천시의 대공원 외곽을 빙 둘러서 조성되었다. 지하철 4호선 대공원역에서 정문까지는 걷거나 코끼리열차를 이용한다. 산림욕장 출입구는 동물원 안에 있기 때문에 입장료를 지불해야 하므로 동식물원 관람과 산림욕을 함께 할 수 있는 계획을 세우는 것이 좋다.
가뭄 끝에 밤새 쏟아진 단비 덕분에 산천초목이 깨끗하게 목욕하였다. 전철역에서 공원 정문까지 친구끼리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면서 걸었다. 신분증을 들고 줄을 서서 무료입장권을 받았다. 꼼짝 없이 ‘어르신’이다. 이곳은 숲이 우거져 여름철에도 걷기 좋지만 붐비지 않고 시골길처럼 한적하다.
정문을 통과하여 삼림욕장 안내판을 따라 산행을 시작하였다. 대공원 산림욕장은 일반적인 산책보다는 등산에 가깝다. 오르막 내리막이 연달아 이어지기 때문에 간편한 옷차림과 등산화를 꼭 착용해야 한다. 출발점은 서울동물원 호주관 옆으로 나 있는 출입구를 이용하였다.
부채꼴 모양을 따라 산림욕장 전체를 여럿이 도는 데는 4시간 이상 소요된다. 흙산길 탐방로는 비에 젖어 먼지가 나지 않아서 좋았다. 이 산림욕장은 1994년 서울대공원 외곽 청계산 능선에 8km의 길을 정비해 조성됐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연결되는 주길 6.92km, 서울대공원으로 다시 빠져나올 수 있는 샛길 1.08km 구간이다. 등산을 하다 지칠 만하면 벤치와 쉼터가 등장해 한숨 돌려가는 여유를 준다.
산림욕 코스가 동물원 안에 출입구가 있는 데다 청계산 등산로와는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이용객이 적은 편이다. 그래서 봄ㆍ여름ㆍ가을ㆍ겨울 어느 때나 울창한 숲을 독점한 듯 여유롭게 산을 즐길 수 있는 것도 서울대공원 산림욕장의 매력 중 하나다.
산책로 중간 쯤 이르렀을 때, 한 줄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울창한 대숲이 바스락 소리를 내어 속삭인다. ‘소나기는 지나기를 기다리며 피하라’던가. 전망대에서 우산을 들고 빙 둘러서서 임시 뷔페식당을 차렸다. 오이ㆍ토마토ㆍ참외 과일전을 벌이고, 막걸리ㆍ과일주 한 잔으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소나기가 그쳤다. 지나는 사람조차 별로 없는 한적한 산림욕장! 최근 들어 몇 차례나 탐방한 '신대륙‘이다.
미국산 백색 샤도네이(Chardonnay) 와인의 대표 브랜드로 웬티가 꼽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프랑스에서 샤도네이 포도 묘목을 들여와 와인주조학으로 정평이 나 있는 데이비스 소재 캘리포니아주립대학 팀과 협력해 미국 토양에 맞게 개량하는 데 성공하고, 이를 미국 곳곳의 포도밭에 전수한 본거지가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한 가족이 꾸준히 운영해온 웬티 빈야드의 4대째 주인 에릭 웬티(Eric Wente·67)를 수년 만에 다시 만났다. 일본을 들러 말레이시아로 가는 길이었다.
차를 타고 동쪽으로 한 시간 반 정도 거리에 있는 리버모어 계곡에 자리 잡은 지 134년째. 한 번도 주인 바뀐 적 없이 웬티 창업자 가족의 4대와 5대째 후손들이 만들어가는 전형적인 가족 경영 포도밭이다. 미국 서부 와이너리들이 몰려 있는 샌프란시스코 북동쪽 나파 밸리 지역의 파 니엔테(Far Niente) 와이너리가 아기자기한 맛의 아름다운 포도밭이라면, 웬티 빈야드는 영지 내 호주의 프로골퍼 그렉 노먼이 설계한 골프장도 갖고 있는 호방한 느낌의 포도밭이다.
작년 미국 와인 작황은 어떠했나.
2015년이 어려운 해였다면 작년 작황은 2013~ 2014년도 평균치로 회복되었다. 날씨 변화가 상대적으로 심했던 유럽에 비하면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의 와인 작황은 좋은 편이다.
웬티 와이너리의 해외 사업은 어떤가.
현재 50여 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적, 종교적 이유로 와인을 판매하는 데 걸림돌이 있는 지역도 적지 않다. 아무래도 와인을 가장 많이 마시는 나라는 미국이다. 대략 미국인 20% 정도가 통상적으로 와인을 마신다고 보면 된다. 외국 가운데 웬티 와인을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는 캐나다이고 한국 역시 빠르게 성장하는 와인시장이다. 오바마 정부에서 시도하던 TPP(환태평양파트너십 협정)나 유럽과 미국 간에 논의 중인 TTIP(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 협정) 등을 통해 해외 시장이 확대되길 기대하고 있는데 트럼프 대통령의 TPP 파기 결정은 너무 안타깝다.
비행기 안에서도 웬티 와인을 만난 기억이 있는데.
마케팅 덕분인지, 품질에 비해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덕분인지 많은 항공사에서 우리 와인을 찾고 있다. 캐세이퍼시픽, 유나이티드, 노스웨스트, 한국의 아시아나항공 등에 납품하고 있다.
4대째 가족 경영을 하고 있는데 특별히 좋은 점이 있나.
아들과 딸이 와인 만드는 작업에 직접 참여하고 있으니 이미 5대째 경영인 셈이다. 손자가 대학에 들어갔는데 전공에 따라 머지않아 6대째 경영이 가능해질 것을 기대하고 있다. 미국의 가족들은 대부분 떨어져 살고 있는데 우리는 3대가 이래저래 사업으로 얽혀 있어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다. 감사할 따름이다.
포도 수확과 와인 제조에 새로운 기술을 많이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포도밭 한가운데에서 바로 포도압축 공정을 하는 것이 그중 하나다. 포도를 수확해 처리공장까지 가는 데 걸리는 두 시간을 단축해 15분 만에 현장에서 처리한다. 신선도와 온도 유지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공정이다. 다른 하나는 야간에 포도를 수확하는 과정이다. 캘리포니아 날씨는 저녁에는 매우 선선해 밤 10시경 기온이 섭씨 15도 정도 되었을 때 작업을 시작하기도 하는데 지역에 따라 야간작업 시간을 조정한다. 온도의 영향을 많이 받는 포도의 품질관리에도 큰 도움이 된다.
포도 재배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햇볕과 물인데, 물 관리에도 새로운 기술력을 동원했다고 들었다.
물 관리는 매우 중요하다. 새크라멘토 강에서 수로를 따라 물을 공급하는데 마침 우리 포도밭에는 골프장도 있어 물 사용을 최소화하는 효율적 방안을 늘 강구하고 있다. 일례로 적외선 공중촬영을 통해 포도밭과 골프장의 모든 블록에 균등하게 물이 공급되도록 조절한다. 이를 위해 곳곳에 센서 장치를 설치하고 연중 온도와 수분공급량을 측정하여 축적된 빅데이터를 활용, 운용의 최적화를 도모한다.
웬티 빈야드의 샤도네이는 미국뿐 아니라 유렵 지역에서도 정평이 나 있는데, 풍미는 조금씩 다르게 느껴진다.
그렇다. 우리 샤도네이는 미국식, 유럽식이라고 말하기보다는 그저 웬티식 고유한 맛으로 평가받고 싶다. 그만큼 대대로 품질 관리에 신경 써왔다고 자부한다.
곧 여름이 오는데 포도밭에서 열리는 음악콘서트 자랑 좀 해보시라.
벌써 30여 년째 운영하고 있다. 매년 7월 중순부터 두 달 동안 10여 차례 콘서트가 열린다. 주로 재즈나 대중음악인데 야외에 무대를 만들고 저녁식사를 겸해서 개최한다. 제임스 테일러, 쉐릴 크로, 링고 스타, 윌리엄 넬슨 등 유명 연주가들이 참여한 바 있다. 얘기 나온 김에 ‘더 레스토랑’을 소개하고 싶다. 우리 포도밭 안에 상주하는 전문가의 감독 아래 유기농 채소밭이 운영되고 있는데 이곳에서 생산한 야채들을 식탁에 바로 올리고 있다.
‘더 레스토랑’의 명성은 한국에도 알려져 있다. 2016년 JTBC 예능 프로그램 샌프란시스코 원정 편에 소개된 바 있다. 에릭은 스탠포드대학을 졸업했다. 아들과 딸도 각각 스탠포드, 프린스턴대학을 졸업하고 부모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온 가족이 명문대를 졸업했지만 와이너리 운영은 영락없이 농부의 일이다. 오랜만에 마주잡은 농부 에릭의 두툼한 손이 믿음직했다.
TV뉴스를 보던 중 그래피티(graffiti)에 관한 기사가 나왔다.
어떤 호주인이 우리 지하철에 들어가 전동차에 낙서를 하고는 사라졌다는 소식이다.
그래피티는 건물 벽이나 교각에 스프레이 페인트를 뿌려서 그리는 그림과 낙서를 말한다.
우리 동네 산책길의 다리 밑 한쪽 벽면에도 알록달록 예쁜 그림이 그려져 있다.
필자는 몰랐는데 손녀와의 산책길에서 아기가 그 벽면의 그림을 보더니 “할머니 원더 볼즈에요!” 라고 해서 그 그림이 어린이용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이라는 걸 알았다.
그림이 있기 전보다 화사해진 다리 밑은 보기에 좋아서 이런 벽화라면 많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아들의 미대 시절, 같은 과 친구들과 함께 회사 담장에 그림을 그려주는 아르바이트를 했다며 보여준 사진이 그래피티의 한 종류였을 것이다.
필자 눈에도 수준 높아 보이고 멋져서 그래피티를 예술의 한 장르라 생각해도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래피티는 함부로 하면 안 되는 일이라고 한다.
밋밋한 담장에 예쁜 그림을 그리면 보기에도 좋을 것 같은데 아무 곳에나 그려놓으면 일종의 범죄라는 말이다.
그래피티를 하는 사람들은 번개처럼 스프레이로 그림이나 메시지를 쓰고는 재빨리 도망을 간다고 한다.
담장이나 평범한 벽면이 아닌 공공장소인 지하철이나 기차역 건물 벽에 낙서해 놓으니 범죄율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과거 뉴욕 지하철은 탈 게 못됐다고 한다. 강력 범죄가 발생하는 대표적인 우범지대로 역무원들이 부스 밖으로 나갈 엄두를 못 낼 정도였다는데 1980년대 뉴욕시 교통국장이 지하철을 가득 채운 낙서에 주목하고 계속 청소를 했더니 지하철 범죄가 75%나 줄었다고 한다.
아마 낙서가 그렇게 아름답거나 깨끗한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래피티는 60년대 뉴욕 빈민가에서 시작해 세계로 퍼져나갔고 갱들이 자신들의 영역을 표시하는 수단으로 이용했다는데 그 후로 차츰 사회, 정치적 비판메시지를 담기 시작했다.
낙서 예술가도 생겼다. 스물여덟 살에 타계한 뉴욕 바스키야의 작품은 경매에서 164억 원이나 호가했다니 그냥 낙서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피티는 원래 그리는 장면을 들키면 안 되는 작업이어서 그 세계에서는 무엇을 그리는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어디에 낙서를 하는지도 중요하고 접근하기 힘든 곳일수록 가치를 높게 쳐준다고 하니 재미있다.
낙서꾼들이 가장 선호하는 곳은 지하철이라는데 한밤중에 몰래 숨어 들어가 객차 전체를 통째 낙서로 채운다는 영화도 나왔단다.
외국에서만 일어나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서울에서도 그래피티로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몇 년 전부터 습격 받은 지하철이 17군데나 되었고 전담 수사관까지 생겼다고 하니 좀 걱정이다.
언젠가는 지하철역 세 군데에 그래피티 습격이 있었는데 이들은 힙합 모자와 후드 티셔츠 차림의 백인 4인조였다고 한다.
쇠톱과 절단기로 환풍구를 잘라내고 차고지에 들어가 낙서를 하고는 경찰이 손쓰기도 전에 유유히 호주로 돌아갔다는데 아마 우리나라 지하철이 깨끗하다는 소문이 나서 원정낙서까지 왔을 거라는 분석이 나왔다니 좋아해야 할 일인지 어떨지 모르겠다.
어떤 낙서를 하고 갔는지는 보도되지 않았으나 전담 수사관까지 동원되었다면 좋은 내용은 아니었나 보다.
그런데 그래피티가 우리 눈에 멋지고 예쁘게 보인다면 굳이 막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다.
낙서한 내용이 반사회적이거나 공포를 조장한다면 당연히 막아야 하겠지만 우리 동네 산책길의 벽화처럼 즐겁게 바라볼 수 있다면 괜찮을 것 같다.
언젠가 지하철을 타려고 기다리던 중 들어오는 객차에 예쁜 그림이 그려있어 보기에 즐거웠던 생각이 난다.
그렇게 그래피티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메시지나 아름다운 그림으로 승화시킨다면 범죄라 하지 않고 예술의 한 장르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동네 곳곳에 나쁜 그래피티가 아닌, 보면서 즐길 수 있는 벽 그림이 많아지면 좋겠다.
캐나다, 프랑스 영화로 테리 마일즈 감독 작품이다. 주연에 늘씬한 금발 미녀들인 커스틴 프라우트(슬론 역), 티에라 스코브예(케이티 역) 등이 나온다.
원제가 ‘어린 양도 이빨이 있다’인 것처럼 생쥐도 구석에 몰리면 이빨을 드러내며 덤벼든다는 뜻이다. 작품성은 얘기할 것이 없지만 오락성은 풍부한 영화이다.
한창 미모를 자랑할 때인 슬론과 케이티는 금발의 미녀들이다. 둘이 친구 사이로 한주일간의 뉴욕 여행을 위하여 한 달 간 시골마을의 유기농 농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떠난다. 동네근처 카페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픽업트럭을 운전하는 두 청년이 태워다 주겠다는 제의를 한다. 두 여인은 차에 탔다가 두 청년의 집까지 가게 된다. 나이든 어머니가 들어 와 차라도 마시라고 권하고 둘은 약이 든 생크림 파이를 먹고 기절한다. 깨고 보니 숲속의 컨테이너 박스이고 각각 손목에 수갑과 쇠줄이 채워져 있다. 둘은 이집 형제와 동네 남자들에게 강간당하고 죽을 날만 기다린다. 한편 이 둘의 안전을 염려한 삼촌은 FBI요원으로 문자 말미에 쓰는 암호가 약속과 다르자 찾아 나선다. 그러나 그 동네 보안관도 한 통속이었다. 오히려 삼촌도 보안관에게 묶이는 신세가 된다.
두 여인은 살해 직전에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하지만 그대로 돌아오지 않는다. 자신들을 피의 복수를 하자는 것이다. 사이코 패스 가족을 상대로 하나 하나 복수한다. 철물점에 들러 도끼, 망치, 대못, 로프 등을 사서 복수에 나선다. 최초로 약을 먹여 납치한 어머니와 형제들은 같은 방법으로 약을 먹여 실신 시킨 후 로프로 묶어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한 명 한 명 죽인다. 뒷마무리는 그 중 한명이 권총으로 집단 자살 한 것처럼 꾸미고 돌아온다. 그리고 태연히 일상으로 돌아간다.
복수는 대리 만족을 준다. 마땅히 죽어야 할 사이코 패스들을 통쾌하게 죽이면서 그런 생각을 갖게 한다. 참혹하게 죽일수록 대리만족이 커진다. 로프에 묶여 꼼짝 못하게 되자 반응은 돈으로 흥정해 온다. 돈을 줄 테니 용서해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돈은 돈이고 복수는 복수이다. 풀려나면 반드시 복수하겠다는 저주를 퍼붓지만, 거기서 막 바로 응징을 받으면서 끝난다.
우리말에도 ‘말만한 처녀들’이라는 말이 있다. 짧은 반바지 차림의 두 젊은 여성이 한적한 시골마을에 일하러 간다는 것부터가 위험한 일이다. 집을 떠나면 일탈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도 위험한 일이다. 픽업트럭을 태워주겠다는 남자들을 따라 덥석 차에 올라타는 행위도 위험하다. 도발적인 옷차림부터가 위험을 부른다.
그러나 ‘호랑이에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거나 ‘하늘이 무너져도 살 길이 있다’는 말은 가슴에 새겨둘 필요가 있다. 연약하게 자란 우리 여성들은 이런 일을 당하면 스스로 자지러질 소지가 많지만, 독립심 강하게 자란 미국 여성들은 종종 남자들을 상대로 한 몫 제대로 한다. 땅이 넓고 인구밀도가 낮은 미국이나 호주 등지에서는 이런 일이 종종 발생한다. 비슷한 영화도 많다.
가끔 영화라는 물건이 어떤 존재인지 궁금할 때가 있다. 종합예술의 ‘끝판왕’이며 표현되지 못하는 게 무엇일까 할 정도로 종횡무진인 데다가 최신 테크놀로지의 도움으로 이제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영역까지 다 들추어낸다. 게다가 영화적 상상력이 과학 발전을 앞장서 이끌어 갈 정도이니 족히 이 시대의 주인공이라 할 만하다.
그렇지만 이 시대의 영역 대부분이 그렇듯이 과학 발전을 인간 정신이 따라가지 못해 문화 지체 현상(아노미)을 보이는데 영화도 예외는 아니다. 발전하는 표현양식을 스토리가 따라가지 못해 허접한 이야기에 끝없이 치고받는 자극적인 장면만으로 이루어진 영화들이 수두룩하다. 그런 와중에 영화 는 색다르다. 아니 심심하고 답답하다고 해야 하나?
겉으로는 기러기아빠로 표상되는 이산가족 문제를 소재로 했지만, 사회 문제를 다루는 영화는 아니다. 영화의 주제는 좀 더 먼 곳에 있다. 아내와 아들을 호주로 보낸 채 기러기 생활을 하던 증권회사 지점장 강재훈(이병헌)은 어느 날 부실채권 사건으로 모든 걸 잃고 최악의 상황에 부닥친다. 혼자만의 생활에 지친 그는 가족이 있는 호주로 날아간다.
하지만 그곳에서 본 아내(공효진)의 모습이 이전과 너무 다른 데 놀란다. 그녀는 자신만의 새로운 삶을 준비하며 옆에는 이미 다른 남자들의 흔적만이 가득하다. 그는 아내와 아들 주위를 맴돌 뿐 변해 버린 현실 속으로 다가가지 못한다. 그의 자리는 아무 곳에도 없다. 영화는 줄곧 이런 상황을 일인칭 시점으로 강재훈의 감정선을 지루하지만, 집요하게 추적한다.
사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서 범람했다. 기러기 가장이 밤낮없이 열심히 벌어 돈을 보내 주었더니 아내가 현지에서 바람이 났다더라. 혹은 오래 떨어져 있다 보니 마음마저 멀어져 끝내 이혼하고 말았다더라 하는 사연들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런 극적인 장치들을 외면한다. 그저 주변을 맴돌며 안타깝고 가슴 아파할 뿐이다.
물론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강재훈은 이미 현실을 바꿀 능력을 상실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런 마지막 반전은 영화 곳곳에 매설해 놓은 이상한 설정들의 아귀가 비로소 맞아가는 피드백의 재미를 준다. 지나간 장면들을 되새기며 하나하나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샤말란 감독의 에서 이미 경험했던 방식이어서 그런지 신선한 느낌은 덜 했다.
그러나 영화를 관통하는 ‘사랑’과 ‘믿음’이라는 주제는 여전히 묵직하다. 이는 배우 이병헌에 힘입은 바 크다. 스산한 삶의 외로움과 안타까움과 공허함을 말없이 눈빛으로 표현한다. 최근 다양한 장르에 출연하고 있지만, 그의 초기작인 이후 이룩한 내면 연기의 근사한 성과다. 시나리오를 읽고 직접 제작비를 투자한 이유를 알겠다.
이야기 중간의 흥미로운 에피소드로 워킹홀리데이 문제가 등장한다. 기러기 아빠만이 아니라 삶의 무게로 지친 아픈 청춘들의 모습이다. 힘들게 새벽부터 일하며 돈을 모아 귀국을 기다리던 유진아(안소희)의 모습을 통해 젊은 청춘들의 삶도 그리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어쩌면 인생은 영원한 ‘싱글 라이더’인지 모른다. 마지막의 열린 결말이 그래서 더욱 마음에 남는다.
가르치는 재미를 몽골국제대학교에 와서 배우고 있다. 학생들과 만나는 강의명은 ‘Liberal arts through Photography-사진으로 만나는 인문학’이다. 국제대학교라 학생들뿐 아니라 교수들도 여러 나라에서 왔기에 모든 행정절차와 강의는 영어로 진행된다. 여러 나라란 몽골을 비롯한 러시아, 중국, 우즈베키스탄, 아프가니스탄, 한국, 인도,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영국, 홍콩 등 다양하다.
그래서 우리 학교에는 다른 대학과 다른 독특한 분위기와 문화가 스며 있다. 나와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서로 배운다는 태도이다. 서로 호감을 갖되 존중하고 이해해야 하는 현대 국제사회에서 요구되는 자세이다. 그렇다고 이 지역 정서가 옅어지는 것은 아니다. 몽골이라는 지정학적 특징과 역사에서 우러나는 유목민적인 성격은 언제나 바닥에 녹아 있다.
지난 호에 내보낸 ‘낯선 이국에서 새 시대와 새 세대를 본다’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이러한 환경에서 알게 된 시간적인 내용이었다면 이번에는 새 시대에 공간적인 새 지역을 얘기하고 싶다.
4년 전까지만 해도 난 한 번도 몽골에 들어와 살아보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다만 사진가로 몽골을 촬영할 일이 여러 번 있었을 뿐이다. 먼저 1990년대 초 세브란스병원에서 몽골에 연세친선병원을 세우는 과정에 우연히 참여하게 되는 행운으로 첫발을 딛게 되었다. 그리고 몽골 대통령으로부터 초청을 받은 한 기업 총수의 국빈 초청 응답 선물로 몽골의 아름다움을 사진첩(Land of Lands Mongolia)으로 만들기 위해 아내와 방문하게 되었다. 그 사진첩은 국가원수의 격에 맞는 의전을 갖추어야 해서 작품 하나하나가 모두 원본 사진으로 만들어진 수제 책이다.
그리고 2005년에는 연세대학교 120주년 기념사업회로부터 ‘희석된 학교의 건학정신을 사진으로 되살려 달라’는 요청을 받게 되었다. 거기에 부합하는 기획을 준비하다가 세브란스 2회 졸업생인 이태준 열사를 찾게 되었는데 그의 활동무대가 몽골임을 어쩌랴! 그렇게 ‘이태준 선배는 왜 몽골로 갔는가’를 위해 다시 제자들과 몽골을 촬영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미국 비정부기구유엔총회라 불리는 인터랙션대회에서 대상을 받게 되었는데 그 내용이 몽골 양로원에서 촬영한 사진 ‘Such wealth and such freedom’이다. 그리고 사람뿐 아니라 가축의 생명을 귀히 여기는 몽골인들에게 전해 내려오는 ‘낙타의 눈물’ 스틸을 촬영하게 되었으며, 미국 캘리포니아 어바인시 파인 아트 홀과 우리나라 안양시의 알바로 시자 홀에서 연 휴먼다큐 를 준비하기 위해 몽골과 또 인연이 생겼다. 이렇게 되짚어보면 몽골에 대한 인연이 특별히 많게 보이지만, 사실 몽골만 많이 다닌 건 아니다. 따져보면 어느 나란들 그렇게 안 다녔으랴! 사진가라는 직업이 그렇게 세상을 많이 다니는 게 일이다.
몽골이 중앙아시아의 시작 지역이란 얘기를 꺼내기 위한 얘기가 길어졌다.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나라는 중앙아시아 지역의 나라들이다. 그래서 그동안 나는 몽골보단 ‘스탄’으로 끝나는 실크로드 천산북로로 이어진 중앙아시아 나라들을 몽골만큼이나 많이 다녔다.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으로 연결되어 유럽과 닿는 아시아의 서쪽 끝 보스포루스 해협이 관통하는 이스탄불까지.
또 다른 길도 다녔다. 천산 아래 중국 시안(西安), 신장 위구르 자치지역 북서쪽 파미르 고원에서 파키스탄으로 넘어가 카라코람 하이웨이, 훈자왕국을 지나 라호르와 이슬라마바드, 그리고 인도 중동 나라들과 만나는 옛 동로마제국 터키에 닿는 길에 만나게 되는 나라들. 그 중앙아시아 나라들을 생각하면 어렸을 때부터 왠지 가슴이 뛰었고 지금도 맥박이 빨라진다.
이 나라들을 꿈꾸고 가까이 보기 위해 난 몽골로 왔다. 대한민국 우리나라에서 보면 이 나라들이 시작되는 곳 중 하나가 몽골인 것이다. 오늘의 몽골은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그리고 내몽골의 중국과 맞닿아 있다. 러시아를 부를 때는 시베리아라는 러시아 지역 이름이 난 더 좋다. 거기엔 몽골의 홉스굴 호수와 연결된 바이칼이 있고, 우리와 얼굴과 정서가 많이 닮은 민족들이 살고 있다.
길은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고 그 관심으로 퍼지며 피어난다. 앞에서 얘기한 중앙아시아 나라들과 우리를 이어줬던 길들이 소위 실크로드란 이름으로 세상에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많고 어떤 길보다 큰 길이었던 실크로드는 근세 서양 문명의 휘황찬란한 빛에 오랫동안 가려졌었다. 근세 대서양과 태평양 길의 번성으로 사람들에게 잊혔다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여기 몽골에선 분명히 보인다. 그 길을 따라 큰 기운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나라를 떠나 있는 한국 사진가이기에 보이는 것이다.
새 시대는 공간도 시간과 함께 드러난다. 이제 가려졌던 길이 드러나면서 그 공간의 시간도 새롭게 조명될 것이다. 공간의 시간은 역사로 살아난다. 역사는 서로 다른 가치가 만나 각축하는 실질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덮였던 시간이 오랠수록, 드러나는 공간은 경이로울 수밖에 없다. 그 길과 연결된 나라들이 각자의 역사와 함께 깨어나고 있다. 그래서 우리 새 세대는 그 일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아직까지 너와 나를 가르는 남의 역사에서 이제 우리를 아우르는 중앙아시아의 새로운 역사가 일어나려고 꿈틀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혹여 잃어버린 것이 소리에 있나 하고 음악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연극을 하며, 각자 열심이듯 나도 잃은 것이 있나, 있다면 그것을 찾아보려고 여기에서 사진작업 중이다. 실크로드의 나라들이 깨어나듯이 나도 새롭게 깨어나고 있다.
함철훈(咸喆勳) 사진가·몽골국제대학교 교수
1995년 민사협 초청 ‘손1’ 전시를 시작으로, 2009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 2012년 이탈리아 밀란시와 총영사관 주최로 전을 FORMA에서 개최. 2006년 인터랙션대회(NGO의 유엔총회)에서 대상 수상. 저서로 ,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