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카에서 일하며 빚을 참 많이 졌어요. 개인적으로는 큰돈이지만 이렇게라도 빚을 갚고 후배들에게도 도움이 되고 싶어요”
정부 무상원조 전담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KOICA)의 임원이 회사를 떠나며 받는 퇴직금에다 사재까지 털어 1억원을 사내에 기부하기로 해 화제다.
‘아름다운 기부’의 주인공은 장현식(58) 코이카 선임이사.
장 이사는 23년간 코이카에서 근무하며 과거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한국의 공적 개발원조(ODA) 사업을 크게 향상시켰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는 코이카에서 개발전문가로서 능력을 발휘하며 한국의 무상원조 현장에 서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거둔 성과를 내세우기보다는 코이카에서 묵묵히 일했던 시간이 인생에서 가장 많은 것을 배운 시기라며 23년간의 회사 일을 되돌아봤다.
장 이사는 21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직장에 대한 고마움, 코이카에 진 빚을 꼭 돌려주고 싶다며 회사를 떠나기 전 기부금을 내고 싶다는 얘기를 꺼냈다.
“코이카에 재직하는 동안 과분하게도 좋은 일을 할 시간, 좋은 사람들을 만날 기회를 얻었습니다. 참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코이카를 떠날 때는 반드시 무언가 되돌려주고픈 생각이 들어 기부를 결정하게 됐습니다.”언젠가 코이카 후배들이 뜻을 모아 값진 일을 하고자 할 때 밑천이 될 만한 돈을 미리 남겨두고 싶었고, ODA 사업을 하며 만났던 지구촌 빈곤 아동들을 조금이라도 도와주고 싶었던 마음이 기부를 선택한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올해 창립 23주년을 맞는 코이카에서 퇴임하며 ‘사내 기부’라는 의외의 선물을 선사하고 떠난 임직원은 없다.
그는 이번 일로 ‘코이카 퇴임 기부 1호’라는 기록을 쓰게 됐지만 오히려 동료 임원과 후배 직원들이 자신의 기부에 부담을 느낄까 봐 솔직히 걱정이 된다고 했다.
이런 걱정에 더해 기부를 결정하기까지는 ‘정말 할까, 말까’라는 고민이 적지 않았다고 했다.
자신 또한 월급날이면 통장을 들여다봐야 하는 ‘월급쟁이’였기 때문이다.
장 이사가 내기로 한 기부금은 그가 작년 한 해 코이카에서 받은 임원 연봉(8천200여만원)을 크게 웃돈다. 그런 탓에 기부금 1억원을 마련하기 위해 회사를 떠나며받을 퇴직금에다 노후 대비용으로 들어뒀던 개인 펀드까지 해지해 돈을 보태기로 했다.
그는 무엇보다 집에서 기부 의사를 밝혔을 때 자신의 생각을 선뜻 받아준 아내가 무척 고맙다고 했다.
“(후배) 직원들을 위해 뭐라도 해 줬으면 한다는 말을 아내에게 꺼냈더니 비용이 허락되는 대로 하라며 흔쾌히 동의를 하더군요. 이번 기부를 계기로 돈이 조금씩모여 코이카 후배들, 어려운 세계 빈곤 아동들이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한국외대 영어과를 졸업한 뒤 고려대와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에서 각각 행정학과 정치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은 장 이사는 1991년 정부가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변신을 시도하며 만든 코이카 창립 멤버로 합류했다.
그가 코이카에 입사했을 당시는 정부 내 ODA에 대한 전략도, 방향도 없던 시절.
동료 직원들과 함께 미국 국제개발청(USAID), 일본국제협력기구(JICA) 등 선진 원조기관들의 사업과 수행방식을 비교·분석해가며 ODA 업무의 문을 열었다.
이후 코이카 ODA 업무에 관한 정책 수립을 주도했고, 2007년에는 국제 개발과 원조 분야에 관심 있는 학자들과 함께 ‘국제개발협력학회(KAIDEC)’를 발족했다.
장 이사로부터 뜻밖의 선물을 받게 된 코이카는 장 이사 기부금을 토대로 코이카 전·현직 직원들이 참여하는 복지재단을 사외에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장 이사가 낸 종잣돈에다 직원들이 십시일반으로 팔을 걷어붙인다면 ‘코이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복지사업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코이카는 31일 오후 창립 23주년 기념식과 함께 이달 말 회사를 떠나는 장 이사의 정년 퇴임식을 열 예정이다.
인도네시아에서 기술 교육을 하던 60대 코이카(KOICA·한국국제협력단) 봉사단원이 불의의 사고로 한쪽 팔다리를 잃은 제자가 한국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 주위를 훈훈하게 하고 있다.
7일 코이카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중부 스마랑의 한 기술학교에서 자동차 기술을가르치던 정익재(66) 씨가 제자인 아리스만(20)의 사고 소식을 접한 건 2013년 3월.
아리스만은 부친의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하다 고압선에 감전됐지만 어려운 경제사정 탓에 병원조차 가지 못한 채 민간요법에만 의존하고 있었다.
정씨는 아리스만 집을 찾아 오른쪽 손발이 오그라들고 피부가 녹아 뼈만 앙상해있던 제자를 보고 난 뒤로 어떻게든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무엇보다 사고로 절망에 빠져 있던 아리스만이 무척이나 걱정됐다고 했다.
정씨는 코이카 인도네시아 사무소에 도움을 요청하는 한편 아리스만의 가족을 설득해 그해 11월 제자가 현지 병원에서 첫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사고가 난 지 9개월째가 돼서야 첫 치료가 이뤄진 터라 아리스만의 오른쪽 손발은 이미 썩어가고 있었고, 수족을 자르는 절단 수술로 이어졌다.
정씨는 실의에 빠진 아리스만에게 희망을 되찾아주고 싶었고, 이때 코이카 본사와 협력병원인 한강성심병원이 아리스만의 치료를 돕겠다고 나섰다.
작년 12월 인도네시아를 떠나 한국에 온 아리스만은 서울 영등포의 한강성심병원에 입원했고, 신경치료와 함께 의족과 의수를 제공받아 재활치료에도 나섰다.
관심과 사랑 속에 집중 치료를 받은 뒤로 아리스만에게도 변화가 일어났다. 사고 이후 어둡기만 했던 아리스만의 얼굴에 웃음이 돌아온 것.
이달 3일 2년간의 코이카 봉사활동을 마치고 귀국한 정씨는 병원에서 활짝 웃던아리스만과 재회했고, 사제의 얼굴에 온통 미소가 번졌다.
정씨는 연합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사고를 당했던 아리스만은 미래를 전혀 생각하지 못했지만 의족과 의수 덕분에 기본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뒤로 코이카와 병원에 무척 고마워하고 있다”며 “개인적으로도 보람된 일이었다”고 겸손해했다.
국내 대기업에서 자동차 기술 관련 일을 했던 정씨는 퇴직 뒤로 의미 있는 일을찾다 2012년 코이카 해외봉사단원이 돼 인도네시아 봉사 길에 올랐다.
1948년생인 그는 당시 코이카 봉사단원 중에서도 나이가 가장 많은 축에 속하는‘실버 봉사단원’으로 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