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8. 15 (토)

적당한 관심이 예쁜 꽃을 피우다

기사입력 2020-04-22 08:00:00기사수정 2020-04-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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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초 보기를 좋아한다. 보는 것은 좋아하되 잘 키우지는 못한다는 뜻이다. 마음에 쏙 들어 구입한 화초를 애지중지 키운 적도 있다. 하지만 정성을 들인다고 결과가 좋은 것은 아니다. 실패는 대개 물을 많이 주어 뿌리가 썩는 것이 원인이다. 후유증으로 물주기를 주저하다가 수분이 부족해 말려 죽일 때도 있다. 한 마디로 화초에 대해선 흔히 말하는 똥 손이다.

▲지난겨울 소소한 행복을 주었던 베란다 미니정원(사진 정용자 시니어기자)
▲지난겨울 소소한 행복을 주었던 베란다 미니정원(사진 정용자 시니어기자)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또다시 일을 저질렀다. 꽃이 피는 모종 화분을 몇 개 구입한 것이다. 늘 그렇듯 5일의 적응 기간을 거쳐 분갈이했다. 이번엔 시간도 많아 볕 좋은 베란다에 두고 드나들 때마다 눈길을 주며 정성을 들였다. 숱한 실패 끝에 어디서 읽은 건 있어서 물주기는 가능한 자제하고 화분에 나무젓가락을 찔러본 후 물기가 없으면 듬뿍 주었다.

매일 목 빼고 들여다보는 게 부담스러웠는지 꽃이 필 거라던 화초는 영 자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간혹 잘 자란다 싶은 것도 잎만 무성한 채 축축 늘어졌다. 온도가 높아서였다. ‘꽃망울도 맺히지 않는데 진짜 꽃이 필까?’ 시간이 지나면서 꽃을 보고자 하는 마음이 줄어들었다. 행여 꽃망울이 맺혔나 작은 화분 속을 헤집으며 찾다가 지쳤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매일의 기다림 대신 일주일에 한두 번 확인해서 물을 주거나 직사광선이 들 때 그늘로 옮겨 쉬게 하거나 창을 열어두어 바람이 드나들게 해 주었다. 애초에 겨울 모종을 구입해서 성장이 더딘 것도 지친 이유 중 하나였다.

▲활짝 핀 이메리스. 눈꽃이라고도 불린다(사진 정용자 시니어기자)
▲활짝 핀 이메리스. 눈꽃이라고도 불린다(사진 정용자 시니어기자)

관심을 줄이자 꿈쩍 않던 화분에 꽃망울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며칠 전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이름도 가물가물한 작은 화분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흰색의 꽃잎이 조르르 매달린 형태로 피어있었다. 꽃 이름은 ‘이메리스’ ‘눈꽃’이라고도 불린다. 꽃을 보려고 그렇게 신경 쓸 때는 꼼짝 않더니 관심을 거두자 저 혼자 꽃을 피워낸 이메리스. 사진으로 본 것보다 훨씬 더 예쁜 꽃이었다. 초록의 잎을 타고 봉긋 솟은 작고 하얀 꽃잎을 보고 있으려니 세상 부러운 게 없다.

문득 난을 키우는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친구는 예쁜 꽃을 보려면 일부러 적당한 추위에 노출시키고 방치해야 한다고 했다. 화초들도 너무 편하면 굳이 열매를 맺으려고 하지 않는다고. 뭔가 불안하고 번식의 필요성을 느낄 때 비로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고 했다.

생각하면 어디 화초뿐이랴. 아이를 키울 때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너무 가까이에서 모든 것을 채워주면 아이는 저 혼자 세상에 뿌리내리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 화초든 사람이든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은 적당한 거리에서 관심을 두고 지켜볼 때 더 바르게 성장한다. 빠르거나 느리거나 속도의 차이가 있을 뿐 다 때가 되면 제 개성대로 활짝 피게 되어있는 것이다. 그게 꽃이든 사람이든 혹은 그 무엇이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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