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0. 27 (화)

한양도성 성곽에 취하다

기사입력 2020-04-28 08:00:37기사수정 2020-04-2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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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명애 시니어기자)
(사진 이명애 시니어기자)
2011년도에 방영됐던 ‘더 킹 투 하츠’라는 드라마를 간간이 보다가 눈에 확 띄는 장면이 있어 몰입하게 됐다. 근위대원인 조정석과 공주님인 이윤지가 성곽 돌담에 앉아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소원을 비는 장면이었다. 이때부터 한양도성 성곽은 내 맘속에 자리 잡게 됐다.

그러던 중, 최근 유튜브로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드라마를 보다가 또다시 한양성곽이 보였다. 아! 그래~ 성곽을 걸어야겠다. 한양도성 사이트를 찾아보니 정리가 잘 돼 있었다. 첫 도전은 난이도가 가장 낮은 낙산성곽. 대학교 2학년 때 시위를 하러 동대문에 나갔다가 길을 잃어 들어갔던 창신동 골목길에서 만났던 환상적인 일몰을 아직도 기억한다. 이번에 낙산성곽에 가면 창신동 일대를 돌아보고 일몰까지 보고 싶다는 생각에 젖었다.

(사진 이명애 시니어기자)
(사진 이명애 시니어기자)

봄치고는 쌀랑하고 햇살도 없었던 주말이었다. 후배와 단둘이 오붓하게 낙산성곽을 걷기 위해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성곽길을 올랐다. 쌀쌀한 날씨도 아랑곳없이 마음속엔 가벼운 설렘이 일었다. ‘드디어 성곽을 걸어보는구나.’

(사진 이명애 시니어기자)
(사진 이명애 시니어기자)

성곽으로 오르는 나무 계단을 오르자 곧장 기다란 성곽 담벼락이 나타났다. 그래~ 이거야. 한양도성 성곽 가운데 유일하게 성곽 밖으로 길이 나 있다는 홈페이지의 설명처럼 성곽 바깥 길을 걸으며 담벼락 아래 옹기종기 마을을 돌아볼 수 있었다. 산책로에 꽃길까지 길을 걷다 보니 참 행복하구나. 행복이 이렇게 작고 소소한 일상에서 오는 것이지, 아주 평범한 진리를 느끼며 편안해졌다.

성곽을 걷다 중간중간 장수마을이며 삼군부 총무당, 낙산공원과 이화마을까지 이어지는 산책 코스는 조선 500년사에 근대사, 현대사까지 어우러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산책 코스였다. 성곽을 따라 내려오는 길에 조성된 이화마을은 최근 드라마 ‘남자친구’에서 송혜교와 박보검이 데이트하던 장소라고 한다.

(사진 이명애 시니어기자)
(사진 이명애 시니어기자)

이화마을은 마을 전체를 벽화로 재생해 관광객들이 몰아닥친 벽화 마을로 유명하다. 지금은 거주민과 관광객과의 충돌로 벽화들도 많이 없어지고 색이 바래도 채색을 하지 않은 채 두고 있다고 하는데 그래도 이런 도시 재생으로 거주민들의 생활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바랄 뿐이다.

이화마을 곳곳에 있는 공방과 아기자기한 카페들을 보고 있자니 마치 대만의 지후펀 같은 골목길 관광지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도 지후펀 보다는 훨씬 상업화되지 않은 거주민들의 마을이라고 할까? 지역을 지키고 부흥하기 위한 시도로 보였다.

(사진 이명애 시니어기자)
(사진 이명애 시니어기자)

내용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이곳도 이미 외지인이 들어와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나타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경사 높은 동네 구석진 골목 한편에 말끔하게 리모델링 된 집들이 문을 높게 쌓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말이다.

예술가들이나 디자인 전공자들이 들어와 집단 거주를 하며 창작을 하고 있다면 모르지만 이렇게 지역에 붐을 일으켜 몸값을 올리고 재빠르게 팔고 나가 버린다면 또 한 번 지역 주민들은 낭패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아직은 종잡을 수 없다.

(사진 이명애 시니어기자)
(사진 이명애 시니어기자)

그래도 이런 시도 자체는 계속돼야 하지 않을까? 마을을 내려오다 보니 그 유명한 이화동대장간 최가 철물점이 보인다. 삶이 묻어나면서 아기자기하고 예쁜 철물점. 이렇게 유니크 하게 살고 싶다.

성곽을 따라 동대문으로 내려왔다. 여기까지 먼 길을 왔는데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것을 먹어줘야 한다. 이는 음식에 대한 예의다. 우즈베키스탄인들이 운영하는 양고기 전문점 사마르칸트로 향했다. 몽골타운 안에 있는 사마르칸트는 총 3개다. 맨 처음 20여 년 전에 문을 열었다는데 이곳이 잘 돼서 여동생이 한 곳을 더 오픈했고 아들까지 사마르칸트 시티란 이름으로 오픈을 해서 우즈베키스탄 한 가족이 운영하는 사마르칸트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이곳에서 만티(우즈베키스탄 만두)와 양꼬치를 시켰다. 여기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러시아 맥주 발티카. 넘버 7과 도수가 가장 높은 넘버 9를 시켜 목을 축였다. 유럽 스타일의 쌉싸름한 맛을 좋아하는 내 입맛엔 역시 넘버 9. 휴일 하루 낙산성곽을 걸어 온 짧지 않은 일정의 피곤함이 스르르 사라진다.

(사진 이명애 시니어기자)
(사진 이명애 시니어기자)

서울 한복판 이국적인 분위기를 느끼고 싶을 때 어김없이 갔던 이태원에서 한 곳이 더 추가됐다. 가끔 방문하는 동대문 몽골타운 이곳은 러시아, 중앙아시아의 분위기가 살아 있는 곳. 이런 이국적인 장소들이 자꾸 늘어나는 건 그만큼 서울이 글로벌 해지고 다문화에 개방되고 있다는 좋은 소식 아닐까?

낙산의 한양 도성길을 따라 조선 500년 역사에 취하고 서울 동대문 한복판에서 우즈베키스탄 양꼬치와 러시아 맥주 발티카에 살짝 달아오른 주말이 행복했다.

(사진 이명애 시니어기자)
(사진 이명애 시니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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