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마을 앞동산에 있는 12사도의 집 중 하나인 안드레아의 집은 안개에 휩싸여 어제와는 사뭇 다르다. 운치 있다. 그 앞으로는 섬과 섬 사이를 잇는 노두길이 안개 속에 푹 잠겨 입구 쪽 길만 조금씩 보여준다. 병풍도로 연결되는 노두길 양옆으로 보이는 물 빠진 갯벌 땅에는 작은 배가 붙박이처럼 찰싹 붙어 있다. 물이 차올라야만 떠오를 배다. 이처럼 자연의 변화에 따라 사는 어민들의 순한 삶에 나 같은 뭍사람들이 오가며 민폐를 끼친다.
신안은 아직 때가 묻지 않은 천혜의 섬이다. 특히 오염되지 않은 갯벌을 12사도 길을 걸으며 눈으로 확인했다. 12사도 순례길은 대기점도-기점도-소악도-진섬이 노두길로 이어진다. 물이 차면 사라졌다가 물이 빠지면 다시 보이는 신비한 길이다. '기적의 순례길'이라고도 불린다. 총 12Km의 길을 걷는 데는 대략 3~4시간이 걸린다. 이 길의 콘셉트는 자발적 가난, 즐거운 불편이다.
길 옆 꿈틀거리는 갯벌은 말 그대로 살아 숨 쉬는 땅이다. 구멍이 숭숭 뚫린 찰지고 축축한 갯벌 위로 농게와 칠게가 기어 다니고 짱뚱어가 구멍 속으로 재빠르게 숨어 들어간다. 지금껏 이 갯벌은 어민들의 삶을 책임지고 그 자식들까지 키워냈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의 생존과 함께할 위대한 땅이다. 어민들의 삶의 터전이기도 하지만 우리들의 자연이기도 하므로 오염되지 않도록 잘 보전해야 한다.
갯벌의 생태적 가치를 떠나 이렇게 드넓은 갯벌을 보며 오랜 시간 걸어본 건 처음이다. 아름다웠다. 산과 바다와 들판이 함께 어우러진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자연이었다. 부디 영원히 이대로 보존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청정의 섬에 만들어진 12사도 순례길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게 우려스러운 마음은 나만의 기우이기만을 바랄 뿐이다.
새벽 노두길 위로 자전거가 지나가는가 싶더니 안개 속으로 휙 들어가 버린다. 마치 마법의 나라 속 장면 같다. 12사도 순례길을 걷기 위해 신안 섬에 가면 몽환적인 새벽 노두길을 꼭 걸어봐야 한다. 굳이 무어라 그 이유를 다 말할 수는 없다. 지금도 잠깐 선계에 들어갔다가 나온 듯 기억이 아릿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