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8. 14 (금)

황혼육아, 할 수는 있지만 의무는 아냐

기사입력 2020-07-07 09:05:33기사수정 2020-07-0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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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말도 마. 지난번 네가 조언한 대로 했다가 딸하고 싸워서 요즘 말도 안 해."

오랜만에 전화한 친구가 작정한 듯 하소연을 시작했다. 어떤 상황인지 대충 짐작이 갔다. 지난 모임 때 황혼육아가 힘들다고 토로하는 그녀에게 딸이 심정을 모를 수도 있으니 솔직히 말해보라고 조언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던 해 열한 살 나이 차 나는 남편과 결혼했다. 중매나 마찬가지였는데 친정아버지가 평소에 눈여겨보다가 합격점을 준 사람이란다. 부모님이 생각하는 사윗감의 첫 번째 조건은 경제적으로 안정된 사람이었고 그녀의 남편은 당시 안정된 사업체의 대표였다. 스무 살이면 참 어린 나이이지만 그 시절에는 이런 일들이 심심찮게 있었다. 남동생만 둘 있던 그녀는 싫다는 말 한 번 해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결혼했다.

결혼 후에는 연년생으로 딸 둘을 낳았다. 그때부터 한 남자의 아내와 두 딸의 엄마로 살았다. 딸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이 다 자라 독립하면 그때부터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씩 하면서 살아야지 생각했다.

시간은 흘러 딸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은행과 대기업에 각각 취직했다. 일이 척척 풀려 무리 없이 둘 다 결혼도 했다. '이제는 자유다!' 그녀는 드디어 자신의 시간이 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곧 손자가 태어났다. 딸의 직장은 흔히 말하는 좋은 직장. 아기가 생겼다고 그만두기엔 너무 아까운 곳이었다. 딸은 당연히 '친정엄마가 봐주겠지' 기대를 했고, 결국 손자 돌보는 일은 그녀 차지가 되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첫손자가 어느 정도 자라 편해질 무렵 이번엔 손녀가 태어났다. 손녀도 그녀가 맡아 키웠다. 그토록 원하던 자유는 주말에야 겨우 주어졌다. 처음엔 그랬다고 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주말에도 아이들을 맡기는 상황이 잦아졌다. 그뿐만 아니라 평일에도 회식이 있거나 볼일이 있으면 밤늦도록 아이들을 돌봐줘야 했다. 친정엄마이니까 편해서 그러겠지. 한동안 이해도 했다. 그러나 두 딸은 차츰 육아를 그녀가 해야 할 당연한 일처럼 생각했다.

어쩌다 한 번씩 친구들 만나는 낙으로 살았는데 손자들 보느라 모임에 나갈 수도 없었다. 손자를 데리고 나가면 민폐란 걸 잘 알기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그녀는 점점 우울해졌다. 육아에 지치고 딸들을 향한 서운한 마음이 깊어져 결국 신경정신과 상담을 받을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모임에서 만난 그녀에게 딸과 솔직히 대화를 해보라고 했다. 그러면 딸도 엄마 마음을 이해할 거라고. 그녀는 딸에게 힘든 이야기를 했고 딸은 결국 휴직을 했다. 그러나 친정엄마를 이해하면서 내린 선택이 아니었다. 딸은 아이를 키우며 보내기엔 자기 인생이 너무 아깝다면서 엄마에게 섭섭함을 내비쳤다고 한다. 그 말이 그녀를 화나게 했다. "그럼 내 인생은?", "내 자식은 내가 키웠으니 네 자식은 네가 키워!" 했단다. 이후 그녀는 자유를 찾았지만 딸하고의 관계는 소원해졌다.

그녀는 두 시간 넘도록 하소연을 하더니 조만간 만나서 얘기하자며 전화를 끊었다. 마치 네 조언을 들어서 생긴 일이니 이 정도 하소연은 들어주라는 것 같았다. 어떤 선택을 하든 누군가는 불편할 수밖에 없는 육아. 시간이 흐르면 딸도 엄마 입장을 이해할 것이다. 당장은 서운하겠지만 혼자 속으로 곪느니 솔직하게 대화를 나누는 게 서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녀는 얼마 후 이런 말을 하지 않을까?

"네 말대로 하길 참 잘한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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