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8. 13 (목)

능소화 흐드러진 양천 향교를 걷다

기사입력 2020-07-22 09:04:26기사수정 2020-07-22 09:04
  • 인쇄하기

사람들은 꽃철이 되면 아랫녘으로 떠나고 수목원을 찾지만 나는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양천 향교에 간다. 서울시 강서구에 위치한 이곳에 가면 조용한 향교 담장 위로 피어난 능소화를 볼 수 있다. 옛 교육기관에서 꽃과 함께 고즈넉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시간이다.

(사진 이현숙 시니어기자 )
(사진 이현숙 시니어기자 )

도심 속에서 옛 시간과 소통하는 양천 향교는 마을 골목길을 따라 잠깐 걸어 들어가 사찰 홍원사 뒤편으로 가면 있다. 산을 등지고 안정감 있게 들어앉은 모양새다. 향교는 옛 성현들의 덕을 기리고 제를 모시며 지방 향리들을 교육하던 기관이다. 현대적 교육기관이 생겨나면서 대부분 해체되었지만 아직도 전국적으로 230여 개의 향교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서울에서는 유일하게 양천 향교만 남아 있어 그 의미가 크다.

(사진 이현숙 시니어기자 )
(사진 이현숙 시니어기자 )

조선 태종 연간(서기 1411년경)에 설립된 양천 향교는 옛 선비정신을 잊지 않기 위해 지금도 성인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맞춤형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또 미디어 시대에 맞는 생활예절 교육과 함께 다양한 소통 창구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그러나 현재는 코로나19 여파로 휴관 중이다. 그래서 더 조용해진 향교다.

(사진 이현숙 시니어기자)
(사진 이현숙 시니어기자)

담장을 둘러쌓았던 능소화도 예년에 비해 많이 줄어든 모습이다. 그래도 잊지 않고 피어나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에 귀 기울이려는 듯 꽃잎을 활짝 열었다. 능소화의 전설 속에는 그 옛날 구중궁궐에 살던 소화라는 궁녀 이야기가 있다. 어여뻤던 소화는 임금의 사랑을 얻었으나 어찌된 일인지 어느 날부터 임금이 자신을 찾지 않자 그리움에 점점 병이 들어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담장 밑을 서성이고 내다보며 오매불망 임금만을 기다리다가 안타깝게 세상을 뜬 소화. 그녀는 “담장 가에 묻혀 내일이라도 오실 임금님을 기다리겠노라”고 했고 그 영혼이 깃들었는지 소화가 지냈던 처소의 담장을 덮으며 꽃이 주렁주렁 피어났는데 그 꽃이 바로 능소화다.

(사진 이현숙 시니어기자)
(사진 이현숙 시니어기자)

능소화는 오래전 사신들이 중국을 드나들며 가져온 꽃으로 화사한 색상과 모습이 기품 있어 양반꽃으로 불리기도 한다. 주로 사대부 뜰에서만 볼 수 있었고 민가에서는 함부로 심지 못했다. 사람들은 능소화가 다 피고 질 때 미련 없이 꽃송이를 톡 하고 떨어트리는 모습이 마치 소화의 지조를 닮은듯하다고 풀이한다. 능소화의 꽃말은 '영광', '기다림', '명예'다.

예전에는 능소화가 흔치 않았다. 그래서 이맘때면 멀리 경상도까지 내려가 운치 있는 한옥 담장을 뒤덮으며 피어난 능소화를 촬영한 적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한강변 산책길에서 굵은 나무 기둥을 칭칭 감으며 피어난 능소화를 볼 수 있고 고속도로변의 높은 벽을 뒤덮으며 피어난 모습을 보기도 한다. 그뿐 아니라 능소화 터널을 이룬 신식풍 조경의 공원도 생겨났다. 어느덧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꽃이 되었다.

(사진 이현숙 시니어기자 )
(사진 이현숙 시니어기자 )

능소화는 역시 담장을 타고 피는 게 제일 어울린다. 마침 향교 관리인이 굳게 잠긴 문을 잠깐 열어주어 동재와 서재, 그리고 강학 공간이 있는 마당까지 들여다봤다. 향교 옆길로 한 걸음 옮기면 궁산 근린공원으로 이어진다. 울창한 숲길은 여름인데도 서늘하다. 길을 따라 나지막한 산책로를 걷는 즐거움이 있다. 아울러 겸재정선미술관과 궁산땅굴, 구암공원, 허준박물관으로 연결되는 강서 역사문화 둘레길을 알차게 돌아볼 수 있지만 생활 속 거리두기 때문에 실내 관람은 어렵다.

바이러스로 조심스러운 세상이다. 지금은 향교를 속속들이 들여다보지는 못하지만 주변 뜰을 거닐며 유생들의 선비정신과 능소화의 전설을 떠올리는 시간도 제법 괜찮다. 게다가 한적한 분위기가 유유자적 생활 속 거리 두기에 적당하다.

향교를 고리타분한 구시대의 유물처럼 생각하기 전에 한 번쯤 옛 성현들의 흔적을 통해 차분한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지. 유생들의 글 읽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뜰에서의 담백한 어느 하루, 여름 햇살을 받은 능소화가 향교 담장 위에서 눈부시다.

주소: 서울특별시 강서구 가양동 234

△ 주변 볼거리

(사진 이현숙 시니어기자)
(사진 이현숙 시니어기자)

△서울식물원을 비롯해 겸재정선기념관, 구암공원, 허준박물관, 궁산땅굴이 이어져 있다. 향교 입구 부근에 위치한 사찰 홍원사와 전통 방식으로 면을 만들어 국수를 주렁주렁 널어놓은 ‘옛날국수’ 집 구경은 덤이다.

(사진 이현숙 시니어기자)
(사진 이현숙 시니어기자)

△이타제면소의 잔치국수(5000원)와 굴림만두(4000원)로 맛난 한 끼가 가능한 곳이 근처에 있다.

저작권자 ⓒ 브라보마이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