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는 모든 관계의 시작입니다"

기사입력 2020-08-12 08:00 기사수정 2020-08-12 08:00

[시니어기자가 만난 新YEAR] 작품을 통해 평화를 꿈꾸는 유영호 작가

파주시 광탄면 야트막한 산 앞, 3305㎡(약 1000평) 규모의 야외 스튜디오에 푸른색의 인사하는 조각품들이 서 있다. ‘그리팅맨’(Greeting Man, 인사하는 사람)과 ‘월드미러’(World Mirror, 세계의 거울)의 조각가 유영호(55) 씨가 작업 중인 작품들이다. 유 작가는 국내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 자신의 작품을 설치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오병돈 프리랜서 obdlife@gmail.com)
(오병돈 프리랜서 obdlife@gmail.com)


서울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한 유영호 작가는 독일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공부했고,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해 여러 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작년에는 ‘김종영미술관 오늘의 작가’에 선정되는 등 다수의 수상 경력도 있다. 코로나19로 모든 행사와 교류가 중단된 초여름 날 만난 유영호 작가는 여전히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올해가 제일 바빠야 하는 해였어요. 연초부터 해외에 작품 설치가 계획돼 있었는데 다 연기됐죠. 베트남에도 3월에 보내려고 포장까지 해놨는데 미뤄졌어요. 멕시코 메리다에서는 아직 코로나19가 심각한 상황인데도 8월 말까지 작품을 보내달라고 해서 다음 주 중 컨테이너 작업을 할 예정이에요.”

6월에 프랑스 노르망디 쿠탕스에 설치할 예정이었던 작품은 1월 말에 자리만 잡아놓은 상태다.



자비로 해외에 ‘그리팅맨’ 설치

유영호 작가가 그리팅맨 해외 설치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뭘까.

“미술계에서 작가가 성장해가는 데는 몇 가지 길이 있어요. 일반적으로는 뮤지엄에서 작품 발표를 해서 이름을 알리고 경력을 쌓는 것이죠. 선진국들은 그런 루트가 확실합니다. 다른 하나는 시장에서 거래가 활발하게 되는 경우입니다. 작가, 갤러리, 컬렉터가 어우러져 작품의 가치가 책정되는 케이스죠.”

그런데 한국은 대부분 국공립 뮤지엄이어서 작가들이 외국에서 먼저 인정받은 다음 국내에서 전시하는 방법을 선호한단다.

“국내의 조각작품 시장은 협소해요. 해외 극소수 작가의 작품만 거래되는 정도죠. 한국에서 조각가로서 성장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 그래서 제 작품을 해외로 보내는 방식을 선택한 거죠.”

그가 자비를 들여 해외에 작품을 설치하는 이유는 기증 프로젝트가 아니면 힘들어서다. 어느 한 장소에 영구적으로 외국 작가의 작품을 설치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 작가가 그리팅맨을 제작하게 된 동기도 궁금했다. 그는 독일에서 유학할 당시 정체성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한국인으로서 존재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도 깊이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의 전통문화 중 하나인 큰절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만들어 전시하자 그것을 본 네덜란드의 유명 작가 헨크 비스가 “그 행위가 인사가 맞느냐”며 관심을 보였다.

“길거리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면, 유럽 사람들은 인사를 잘하잖아요. 그러고 나서 서로 대화를 나누다가 관계가 시작되고,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죠. 문화적 배경이 전혀 다른 사람들도 관계의 출발은 인사로부터 시작된다고 봤어요. 우리의 큰절 문화가 유럽인들에게는 낯설었겠지만 인사에는 어떤 보편성이 있다고 확신했어요.”

그는 헨크 비스의 질문에서 영감을 받았고 인사에 대해 재인식을 하게 됐다. 그리팅맨이 탄생한 배경이다.

“자존감을 지키면서 상대방도 존중하는 자세는 고개를 15° 숙인 각도예요. 너무 낮추는 건 가식적으로 느껴지거나 비굴해 보일 수 있거든요. 정치적 행위로도 인식되죠. 그리팅맨의 15° 각도 인사는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서 나온 결과예요.”

이 작품의 푸른색은 인종을 초월한 중립적인 색으로 전 인류를 의미하며, 고려청자의 빛깔을 띤 색은 작품 배경인 하늘과 조화를 이룬다.



해외의 폭발적 반응

2012년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 그리팅맨을 처음 세운 후, 지금까지 국내외 10여 곳에 작품을 설치했다. 당시 우루과이에서는 라디오 생방송에서 찬반토론을 할 정도로 반대가 극심했다.

“어느 곳이든 이질적인 것들에는 반감이 있기 마련이죠. 그러나 그리팅맨이 설치된 후에는 시민들 반응이 긍정적으로 변했어요. 다음 해에 우루과이 관광청에서 만든 책자 앞 페이지에 그리팅맨이 소개될 정도였어요. 도시를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된 거죠. 작품이 설치된 자리는 우루과이에 입국하는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곳인데 현재 ‘대한민국 광장’으로 이름까지 바뀌었어요. 해외의 폭발적인 반응을 보면 힘이 나요. 모두 자비로 설치하지만 문화 전파를 통해 더 큰 가치를 얻고 있죠.”

설치비보다 문화적 가치를 더 소중하게 여긴다는 의미일 게다. 해외 다른 지역에서도 같은 현상이 반복됐고, 유 작가는 그리팅맨이 전 세계 소통의 상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작품이 설치되는 도시들은 나름의 기준으로 선정합니다. 천재지변을 당한 지역, 분쟁으로 고통을 겪었던 곳, 그리고 문화적으로 의미가 있는 도시들입니다.”

조만간 작품이 들어설 멕시코 메리다는 한국과도 관계가 있는 도시다. 1905년 ‘지상낙원’이라는 말만 믿고 멕시코 이민선을 탔던 조선인들이 애니깽(선인장의 일종)이라는 농장에서 노예처럼 지낸 땅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5~6세대들이 자리를 잡고 있어요. 수만 명이 그곳에서 중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작년에는 5월 4일을 ‘한국의 날’로 지정했고요. ‘대한민국로’로 이름이 바뀐 거리의 원형 광장에 그리팅맨을 세울 겁니다.”


(오병돈 프리랜서 obdlife@gmail.com)
(오병돈 프리랜서 obdlife@gmail.com)


연천 옥녀봉의 화해 메시지

국내에서는 2007년 파주 헤이리에 처음 그리팅맨을 세운 후 분단의 현장에도 작품을 설치했다. 유 작가에게 제일 의미 있는 장소는 어디일까?

“2016년에 10m짜리 그리팅맨을 세운 연천 옥녀봉이에요. 북한을 바로 코앞에 두고 있는 곳이죠. 남북 화해의 메시지를 담았어요.”

북녘을 향한 그리팅맨은 현재 연천의 랜드마크로 불리고 있다. 그는 언젠가는 북한에도 그리팅맨이 설치되어 남과 북이 서로 마주 보고 인사하기를 바란다.

“옥녀봉은 민간인이 갈 수 있는 최북단 지역으로, 남북 간 DMZ에서 6km 정도 거리에 있어요. 그리팅맨을 남과 북에 설치한다는 것은, 70년간의 분단을 극복하기 위해 예술이 작은 힘을 보탠다는 걸 의미하죠.”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그를 ‘평화의 작가’라고 부르는데 그는 아니라며 겸손해한다. 단지 분단 시대를 사는 예술가로서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했다.



2014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 앞 광장에 세운 월드미러는 영화 ‘어벤져스2’에서 소개돼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일명 ‘미러맨’(Mirror Man)으로 불리는 이 작품은, 두 사람이 붉은 사각 틀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모습을 하고 있다. 실제로는 거울이 없지만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은 착시가 일어난다. 우리는 결국 타인을 통해 자기 자신을 만난다는 메시지가 들어 있다.

“재작년에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에 월드미러를 설치했어요. ‘세상의 거울’이자,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이중적인 의미도 있죠. 에콰도르는 적도에 위치한 나라여서 남반부와 북반부가 만난다는 의미도 됩니다.”

현재 터키 북서부의 항구도시 차낙칼레에서는 한국 기업들이 세계 최장 길이의 다리를 만들고 있다. 내년에 다리가 완공되면 동양과 서양 두 세계의 만남을 상징하기 위해 그의 작품을 세울 예정이다. 그리팅맨은 형태가 둥글둥글한 반면 월드미러는 각과 면으로 이루어졌다. 누드를 부담스러워하는 나라에서는 각이나 면으로 그런 느낌을 순화한단다. 그래서인지 월드미러를 원하는 나라들이 꽤 있다. 현재 추진 중인 이슬람 국가들을 위해 옷을 입힌 작품도 만들고 있다.



5년 안에 20개국에 그리팅맨 세우겠다

그는 서울, 경기도, 강원도 등 여러 지역에 공공미술 작품을 설치했다.

“공공미술은 보기에 편안하고, 내용도 쉽게 공감할 수 있어야 해요. 젊은 시절 실험적이고 난해한 작품들도 많이 만들었는데 그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만족스러워요.”

공공미술로 선정된 작품들의 수익금은 해외 프로젝트에 사용한다. 이러한 뜻에 공감하는 지인들이나 친목 단체가 후원도 한단다. 앞으로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냐고 물었더니 역시 그리팅맨에 관한 이야기다.

“5년 안에 20개 나라에 그리팅맨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 일은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작업이에요. 지금의 시공간에서 선택한 특별한 일이기도 하죠.”

그는 사람들과의 교류가 많지 않다. 몇 년 전까지 대학에서 강의도 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뒀다. 말년에는 은둔자로 살고 싶어 한다. 사람들과의 관계, 소통, 공감 등을 추구하는 그가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니 아이러니하다. 젊은 시절에는 늘 스케치북을 가지고 다니면서 그림을 그렸는데, 요즘엔 글을 쓴다. 최근에는 그리팅맨 프로젝트 취지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그리팅맨 친구들’이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회원 중 한 명이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서 그가 직접 낭송한 자작시 ‘프란체스코’, ‘형과 누나’ 등은 미세한 울림을 준다.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가는 길, 기자가 출발할 때까지 배웅하며 그는 그리팅맨처럼 15°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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