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1. 26 (화)

열하나를 하나같이 사랑해

기사입력 2020-12-14 14:05:48기사수정 2020-12-14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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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조왕래 시니어기자 )
(사진 조왕래 시니어기자 )
아주 특별한 외손자가 태어났다. 첫째가 태어날 때 정상적인 분만으로 고통을 느낀 딸이 이번에는 제왕절개수술로 출산하기를 원했다. 제왕절개는 독일어 ‘카이저슈니트’(Kaiserschnitt)를 직역한 말이다. 즉 ’황제‘의 의미를 갖는 ’카이저‘와 ’자르다‘의 뜻을 지닌 ’슈니트‘가 합해진 합성어라고 한다. 로마 황제 카이사르가 수술로 태어난 데서 유래된 말이라고 하는데 외손자가 이런 수술로 태어나다니 우리 집안에서는 처음 있는 일로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동양철학에서는 사람이 태어나는 때를 중요하게 여긴다. 나는 사주팔자(四柱八字)에 호기심을 느껴 공부를 해본 적이 있다. 생년, 생월, 생일, 생시의 네 간지(干支), 곧 사주(四柱)에 근거해 그 사람 인생의 길흉화복을 알아보는 방법이다. 중국에서 전래됐고, 그 역사가 아주 오래된 학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사주학의 깊이는 전문가들이 보면 아주 보잘것없어도 가족들은 내 실력을 어느 정도는 믿어준다.

사람이 태어나는 것은 하늘의 뜻으로 알고 살았는데 이제는 제왕절개로 생년, 생월까지는 불가능하지만 생일, 생시는 산부인과 의사의 손에 달렸다. 딸은 유명하다는 명리학(命理學) 전문가로부터 태어날 손자의 좋은 사주를 받고서 의사와 제왕절개 시간을 상의했다. 의사는 그 시간에는 긴급한 용무가 있어 불가능하다면서 다른 시간대를 제안했고 딸은 따를 수밖에 없었다.

실망한 눈치의 딸을 위로하기 위해 지금 출생한 시간이 오히려 좋다고 장황하게 설명했다. 가장 높은 봉우리에 우뚝 솟은 나무는 강한 바람을 홀로 이겨내다가 죽기도 한다. 운명적으로 가장 좋은 시간대에 태어나 여러 사람의 추앙을 받으면 물론 좋겠지만 그만큼 세상 사람의 질투도 받아야 한다. 한 단계 낮은 시간대에 태어나 겸손하게 살면서 운이 아닌 본인이 노력으로 열심히 살아가며 차근차근 성공하는 것이 더 행복한 삶이라는 요지로 딸을 설득했다. 예쁘게 보면 다 예쁘다. 세상사를 좋게 보고 그렇게 믿으면 결과도 좋은 법이다.

한 사람의 생명이 탄생하기까지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다. 과학의 발달로 생명의 신비가 밝혀지고 있다. 수많은 정자 중에서 하나가 선택되어 난자와 결합해 생명이 탄생되는 것도 신비스럽지만 어머니 뱃속에서 수만 배로 자라면서 사람의 형태로 점차 발전되는 모습은 신의 영역이라 볼 만큼 경이롭기까지 하다. 식구들이 하나씩 태어날 때마다, 생명의 소중함을 경건하게 받아들이고 언제나 기뻐하고 있다.

나는 시골의 농사짓는 부모의 슬하를 떠나 고등학교부터는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군대를 다녀오고 취직을 했다. 혼자였다.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한 후 아들과 딸을 얻었다. 식구가 네 명으로 불어났다. 아들을 품에 안고 산부인과 병원을 나설 때 세상을 모두 얻은 것처럼 기뻤다. 둘째인 딸을 안고 나올 때는 아빠에게 재잘거리며 앙증맞은 손으로 어깨를 두드려줄 것이라는 기대감에 마냥 행복했다.

이렇게 키운 자식들이 부모 품을 떠나 제 짝을 찾아가더니 이제는 손자, 손녀들이 하나둘 태어나기 시작했다. 친손자 하나에 친손녀가 둘, 그리고 외손자도 둘이나 태어났다. 손주들만 다섯이다. 명절날 집에 다 모이면 나를 정점으로 식구가 열한 명이다. 축구 한 팀의 숫자와 같다. 하나에서 출발해 세월이 열한 명을 만들어주었다. 성이 다른 친손주, 외손주 구분 없이 하나같이 사랑스럽다. 이번에 태어난 외손자를 보고 주위 사람들이 눈매는 아빠 닮고 입꼬리는 엄마 닮았다고 하다가 나를 슬쩍 보고는 외할아버지인 나를 꼭 빼닮았다고 수다를 떤다. 나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인지 알면서도 듣기 싫지가 않다.

아이들을 키우고 돌보기가 힘들다고 푸념하는 며느리에게도 딸에게도 인생 선배로서 한마디해줬다. “그래도 인생에서 품 안에 자식을 품고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봐가며 뭘 먹일까 생각하던 시절이 제일 행복한 시절이다. 지나보면 다 알게 된다”라고 말해줬다. 자식이 자라면서 부모를 향해 방긋 웃어주고 예쁜 짓 하는 것만으로도 효도의 제 몫을 다하는 거라고 했다.

초등학교 3학년인 큰손녀는 직장에 나가는 엄마를 돕겠다고 어설픈 설거지를 해주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며느리는 감동을 받는다고 한다. “아! 우리 딸이 제법 컸구나! 고맙다”라는 생각이 든다며 며느리의 눈망울이 촉촉해진다.

“아이들은 가정을 건강하게 해주는 비타민이다. 아이들 잘 키워라.”

자식들에게 자주 이런 말을 한다. 이런 말 해줄 자식이 있다는 것, 또 그 자식의 자식이 있어서 대물림의 정점에 내가 있는 오늘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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