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0. 23 (토)

[송유재(松由齋)의 미술품수집 이야기] 맺힌 그리움, 꽃으로 피고

기사입력 2015-12-29 17:54:13기사수정 2015-12-29 17:54

▲또 하나의 열정. 김경희 145.5 x112 캔버스에 유채. 1993.
▲또 하나의 열정. 김경희 145.5 x112 캔버스에 유채. 1993.
꽃은 환희의 절정이며, 새로운 생명을 이어가는 자연의 축복이다. 인간 세상에 꽃이 없다면 단 며칠도 생명을 유지할 식량을 구할 수조차 없다. 꽃은 지극히 소중하고 귀하면서도, 너무 흔하게 널려 있다. 아기가 연필을 잡으면서 제일 먼저 그리는 것도 꽃이며, 출생의 축하 꽃다발에서 생일, 입학, 졸업, 결혼, 그리고 이 세상을 하직할 때에도 꽃송이로 추모한다.

모든 화가들이 꽃을 그리는 데는 어떤 감정이 이입되기 때문일까? 갓 피어오르는 꽃봉오리에서 마른 꽃묶음까지 다양한 형태의 꽃그림을 보며 우리는 화가들의 속내를 엿보려 한다.

여러 해 전 미술품 경매회사에서, 국내 은행 합병에 따른 소장 미술품을 경매에 올린 일이 있었다. 대부분의 은행들은 화가들의 전시회를 통해 그림을 구입하거나, 유수한 화랑에서 구입하므로 출처, 진위 등은 염려할 필요가 없고 다만 작가와 가격에 유의하면 된다.

평소 전시회를 관람하며 눈에 담아 두었던 김경희(1948~ )화가의 꽃그림 ‘또 하나의 열정’을 그 경매에서 만나 운 좋게 낙찰 받았다. 80호 크기의 대형 그림은 보는 이를 압도한다. 이 작가는 건축학을 전공하였지만, 일찍이 박고석(1917~2002) 화백과 전상수(1929~ ) 화백을 사사하여 화업을 닦고 미국 유학 중 서양화를 전공한 사람이다.

여느 화가들이 원색 쓰기를 저어하는 데 반하여, 과감한 원색을 자유자재로 풀어낸다. 거칠 것 없는 대담한 붓질로 빚어낸 색채의 흩어짐과 모임이 스케일 큰 구도 속에 ‘정물화’를 생동감 있게 변화시킨다. 그믐밤 즈음의 화원에는 붉은 맨드라미가 꽃대를 뽑아 올리며 꽃무리를 이끌고 있다. 무당벌레가 은밀히 속삭이고, 고추잠자리 한 쌍도 꽃 위에 앉으려는 찰나가 설화처럼 고즈넉하다.

붉은색과 초록의 대비도 좋고, 왼쪽 위로 열린 하늘에 이우는 달빛과 흩뿌려진 별들의 점묘도 화려하다. 꽃의 환희이며, 도도한 생명의 예찬이다. 이 작가의 수채화들 또한 속기를 벗어난 명징하고 고아한 정신세계로 이끌기에 충분하다. 작품 입수가 어렵긴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어떤 그림을 수집해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모란. 서병기 45.5 x38 하드보드 종이에 유채. 1980.
▲모란. 서병기 45.5 x38 하드보드 종이에 유채. 1980.
미술잡지 ‘월간미술’ 1996년 3월호는 서병기(1919~1993) 화가의 ‘작가발굴’ 기사로 독자의 관심을 끌었다. 서병기는 1930년대 서양화의 메카라는 대구 지방을 중심으로 이인성(1912~1950), 서진달(1908~1947), 주 경(1906~1985) 등과 함께 미술활동을 했다. 그는 동경제국미술학교에 유학하였으나, 가정사정으로 중도에 귀국하였다가 다시 출국, 소미야 이치넨(曾宮一念· 1893~1994) 화백 화실에서 그림 공부를 하며, ‘광풍회’와 ‘춘양회’를 통해 작품 활동을 하였다고 전한다. 일제 강점기 대구에서 첫 국내전을 열었고, 1963년 대구 공보관화랑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연 것이 국내전의 전부다.

그 해 일본에서 2인전을 열어 일본 화단의 큰 호평을 받았고, 1979년에 세 번째 개인전도 일본에서만 열렸다. 저간 십여 년의 열정이 녹아든 이 전시에 35점의 작품이 소개되었다고 전한다. 대구의 대저택에서 1964년 서울로 이주하였고, 1973년에는 부인과 사별했다. 유난히 금실이 도타웠던 그는 거의 매일, 경기도 송추 인근의 부인의 묘원을 찾곤 했다고 유족들이 전한다. 그곳의 풍광을 눈에 가득 담아 와서 찬찬히 화폭에 옮겼다. 아내에 대한 곡진한 그리움이 화필에 녹아 한 송이 두 송이 눈물어린 꽃이 되었다.

몇 해 전 인사동 어느 화랑에 서병기 화가의 작품이 입수되었다기에 즉시 달려가 아홉 점의 그림을 일괄 구입하였다. 모두가 두터운 종이에 유채로 그린 10호 안팎의 보관상태 만점인 그림에서 한동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돌아와 그림 한 겹 한 겹 고급한지를 풀어 놓은 탁자 앞에 우선 침향(沈香)을 사르고, 죽로차 한 잔을 올리며 경외의 배관(拜觀)을 하였다.

공교롭게도 꽃그림이 여섯 점이고, 풍경화가 석 점이었다. 장미, 모란, 산나리, 아네모네들의 향내가 은은히 어리는 듯하였다. 짙붉은 모란 앞에서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마당에 서너 포기 모란이 필 때면 묵객과 더불어 김영랑 시인의 절창 같은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염송해 왔기에 그 감회가 더하였다. 꽃병에 세 송이 만개한 모란이 잎 사이로 붉은 해 같은 광채를 발하고, 소용돌이처럼 오른 방향의 붓질과 달리 잎새들은 왼쪽으로 원을 그려 율동감을 주고 있다. 꽃병에도 꽃과 잎의 그림자가 어려 운치를 자아낸다. 저 세상 아내에 대한 피맺힌 사모의 헌화이리라.

이태 전 이른 봄 남도 여행 중, 담양의 소쇄원(瀟灑園) 제월당(霽月堂) 오백 년 된 마루에 반백년 친구와 나란히 앉아, 바람에 흩어지는 매화꽃을 바라본 적이 있다. 아련히 이어지는 먼 꽃길 사이로 가물가물 아련한 솔바람 길에서부터 한참의 세월을 담연한 눈빛만으로 되짚어 보았다. 설핏 대 그림자 사이로 꽃잎은 날아가는데 얼룩진 눈을 닦으며 빨리 그곳을 떠나고 싶었다.

>>글 이재준 미술품 수집가 joonlee@empas.com

1950년 경기 화성 출생. 아호 송유재(松由齋). 미술품 수집가, 클래식 음반리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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