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낙 그림 이야기] 중국·일본 식탁에는 숟가락이 없다

근래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라는 새로운 시사용어가 회자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조장하는 표현으로 웃어넘기기보다 거북하게 다가오는 것은 ‘네오 계급론’의 냉소적 내음이 묻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같은 동양 문화권인 한중일 삼국의 식탁 중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왜 숟가락을 볼 수 없으며, 왜 우리는 숟가락 없는 식탁을 상상할 수 없을까 곰곰 생각해본다.

일본 나라(奈良) 현 도다이지(東大寺)에 자리한 일본 왕실 유물들의 보관 창고 쇼소인(正倉院)에는 “756년 쇼무 왕이 죽자 왕비는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숟가락을 비롯한 칼·거울·무기·목칠 공예품·악기 등 600여 종의 애장품을 49재(齋)에 맞춰 헌납하였다”(참고: <두산대백과사전>)는 기록이 있다. 즉, 옛 일본 왕가에서는 숟가락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1. 송나라시대의 문회도(文會圖), 184.4×123.9cm, 1100~1125
▲1. 송나라시대의 문회도(文會圖), 184.4×123.9cm, 1100~1125

필자는 수년 전 일본 나라 현 소재 덴리교(天理敎) 대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다. 안견(安堅, ?~?)의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1447)’를 비롯해 그곳에 소장된 조선 시대 귀인(貴人)들의 초상화를 연구하기 위해 덴리교 대학교 도서관을 찾은 것이다. 그때 대학 부속 세계민속박물관에서 일왕의 식탁을 찍은 영상 자료를 보았는데, ‘놀랍게도’ 우리의 잔치 밥상을 연상케 하는 그 식탁에 숟가락과 젓가락이 나란히 놓여 있던 기억이 생생하다.

요컨대 일본 식탁에서 숟가락을 볼 수 없는 것은 일본 왕실의 생활 문화와 평민의 생활 문화 간에 넘지 못할 장벽이 존재했음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중국에서는 숟가락을 사용하는 풍습이 왜 없을까? 필자는 오래전 대만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중국 송(宋)나라(960~1279) 휘종(徽宗, 1082~1135) 시대에 그려진 ‘문회도(文會圖, 184.4×123.9cm, 1100~1125?)’에서 숟가락을 본 적이 있다.(참고: 사진 자료 1,2) ‘문회도’는 당시 궁중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자료인데, 상 위에 숟가락과 젓가락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중국에서는 기원전 5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하는 숟가락이 출토되기도 했다. 이런 사실로 보아 중국인은 숟가락을 오랫동안 생활 용기로 사용해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명나라 이후 차츰 기름지고 뜨거운 음식에 숟가락보다 젓가락을 사용하는 게 보편화되면서 숟가락이 설 자리를 잃었다고 한다. 이와 달리 한국은 온갖 찌개류와 국물류가 주도하는 식탁에서 숟가락을 빈번하게 사용해온 것이다.

숟가락과 관련해 흥미롭게도 중국의 경우에는 ‘진화 의식’을, 일본의 경우에는 ‘순응 의식’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한국의 경우에는 예나 지금이나 사회를 지배하는 ‘평등 의식’을 엿볼 수 있다.

근래 우리 사회에서 회자되고 있는 ‘금수저’, ‘흙수저’ 논쟁을 보며 숟가락을 사용하지 않는 중국과 일본의 사회 계층 간 갈등은 어떤 양상을 띠고 있을지 사뭇 궁금해진다.

▲2. 부분 확대: 반상에 젓가락과 숟가락이 놓여 있다.
▲2. 부분 확대: 반상에 젓가락과 숟가락이 놓여 있다.

<편집자 주> ‘한중일 식탁 문화의 차이점을 찾아서’, 월간지 내용과 일부 겹침을 밝혀둔다.

>>>글 이성낙 현대미술관회 회장

독일 뮌헨의대 졸업(1966),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피부과 교수, 아주대학교 의무부총장, 가천의과대학교 총장, 가천의과학대학교 명예총장(現), 한국의약평론가회 회장(現), 간송미술재단 이사(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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