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의 미덕

기사입력 2017-04-17 10:14 기사수정 2017-04-17 10:14

▲할미꽃을 보며 경청은 재능기부라는 생각을 해본다(손웅익 동년기자)
▲할미꽃을 보며 경청은 재능기부라는 생각을 해본다(손웅익 동년기자)
언젠가 두 시간 과정의 강의를 들으면서 좀 황당했던 적이 있다. 그 강사의 나이는 오십대 후반이었다. 강사는 자신의 프로필을 화면에 띄워놓고 장장 30분 동안 자기를 소개했다. 강의시간 사분의 일을 자기소개에 할애한 것이다. 그리고 강의 후반에는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슬라이드를 건너뛰면서 강의를 진행했다. 물론 자신을 자랑할 이야기가 많은 강사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본말이 전도된 씁쓸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렇다고 강사 소개를 그만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자고 할 수도 없다.

‘나이 들어가면서 말이 많아진다’는 말은 만고의 진리다. 특히 젊은 사람들 앞에서 말을 많이 하는 어른은 환영받지 못한다. 말을 많이 하다보면 쓸데없는 말도 하게 되고 같은 말을 반복하기도하고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잔소리로 들릴 말도 많이 하게 된다. 시니어들의 모임에 가 보면 실제로 말들이 많다. 자기주장이 강해서 타협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 시니어도 많다. 서로 주고받는 대화라기보다는 각자 자기 이야기만을 반복한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지도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고령사회를 앞두고 있는 우리나라의 시니어들은 수많은 커뮤니티에 몰려다니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물론이고 오프라인 모임도 여러 군데 가입하여 활동하는 시니어가 많다. 어딘가 소속감을 갖지 않으면 불안해 지는 심리로 이해된다. 여기저기 무료 교육프로그램도 넘쳐난다. 필자도 시니어를 대상으로 노후 행복주거를 주제로 강의한다. 강의를 다니다 보면 강의 장마다 아는 얼굴이 몇 분씩 보인다. 다른 강의 장에서 몇 차례 안면이 있는 시니어들을 계속 만나게 된다.

이렇게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찾아다니고 여러 모임을 쫒아 다니다 보면 자기소개를 해야 하는 자리가 많아진다. 자기소개는 나를 알리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짧게나마 타인의 경력을 들을 수 있고 그들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계획으로 미래를 준비하는지 듣는 것만으로도 참 의미 있는 시간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렇게 의미 있는 자기소개 시간에 문제가 있다. 인원이 적은 모임에서는 어느 정도 집중이 된다. 그러나 인원이 좀 많은 경우는 계속 이어지는 소개에 집중이 잘 안되고 자칫 지루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인원이 많을 때는 각자 자기소개 시간을 제한 해 주지 않으면 너무 소개 시간이 길어져서 일정에 차질이 있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행사일정에서 아예 자기소개 시간을 없애버린 행사에 참석해 본 적이 있다. 그러나 그런 행사는 단발성에 그친다. 시니어들에게 있어서 서로 자기소개를 한다는 것은 관계망을 넓히는데 있어서 가장 기본이기 때문이다. 또한 소개 순서가 끝난 사람들이 잡담을 하거나 경청을 안 하는 경우도 생긴다. 심지어 일어서서 본인 소개를 하고 있는데 좀 짧게 하라던 지 그만 끝내라는 식의 야유성 멘트를 날리는 경우를 본 적이 있다.

강의를 하러 다니다 보면 어떤 날은 말이 좀 꼬이기도 한다. 반대로 술술 잘 나와서 아주 재미있고 유창하게 강의하고 나서 뿌듯한 경우도 있다. 당일 컨디션이 안 좋아서 강의가 잘 안될 때 수강생들이 눈치 채고 더 귀 기울여 주고 지지해 주는 눈빛을 보내주는 걸 느낄 때는 감동이 밀려온다. 강의 장에 앉아있는 수강생이나 강사나 누구랄 것도 없이 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사람들 아닌가. 조금 불편하고 나와 다르더라도 타인을 지켜보고 기다려 줄 수 마음의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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