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잊었던 어머니의 음성

기사입력 2017-04-17 16:34 기사수정 2017-04-17 16:34

▲총괄대표님이 기자들 한분 한분을 친절하게 맞이하는 모습(양복희 동년기자)
▲총괄대표님이 기자들 한분 한분을 친절하게 맞이하는 모습(양복희 동년기자)
지난 4월 14일 이투데이 신문사에서 자매지 <브라보 마이 라이프> 제2기 동년기자단 발단식이 있었다. 1기 때보다 더 체계적이고 철저한 준비로 보다 성숙된 모습을 보여준 이 자리에는 지난해 4월 선발되어 활동해온 1기 기자들과 2기로 선발된 40여 명의 기자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이투데이 총괄 대표 및 이투데이PNC 대표, 브라보 편집국과 임직원 모두는 따뜻하고 친절하게 동년기자들을 맞이해주어 분위기가 훈훈했다. 지난해와 달리 의자 배열도 회의식으로 배치해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인사를 나눌 수 있도록 배려해 화기애애한 시간을 만들어줬다.

총괄 대표님께서는 축사를 시작으로 글쓰기에 관해 조언을 해주셨다. 글쓰기는 특별히 잘 쓰려고 애쓰는 것보다는 일상의 이야기를 평범하게 쓰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하시는 말씀에 많은 공감이 됐다. 특히 대표님이 하신 말씀 중에 인상적인 내용이 있었는데 그것은 요즈음 나이 드신 어머님을 만날 때마다 녹음을 하신다는 말씀이었다. 순간 필자의 귀가 쫑끗 서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대표님이 어머님을 만날 때마다 녹음을 하는 첫 번째 이유는 어머님의 삶을 알아가기 위함이고, 두 번째 이유는 어머님의 음성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서라고 하셨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지며 필자의 어머니가 생각났다. 애써 어머니의 음성을 기억해보았지만, 들려오기는커녕 아득히 먼 이야기처럼 아스라한 느낌만 몰려왔다.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고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었다.

필자는 미국에서 지내는 동안 정신없이 바쁜 삶을 살았다. 가게를 비울 수 없어 아침 새벽에서부터 저녁까지 일만 했다. 그러던 중에 한국에 계신 어머니가 운명하셨다는 통보를 받았다. 때마침 비자 문제로 한국을 드나들 수도 없을 때였다. 딸이 비보를 전해줬다. "엄마! 놀라지 말아요. 진짜 놀라지 말고 차분하게 들어요. 외할머니, 그러니까 할머니가 오늘 아침에 돌아가셨어요."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두 다리의 힘이 풀렸고,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그저 멍하니 앉아 달려갈 수 없는 처지를 한탄할 수밖에 없었다. 장례식이 치러지는 4일 내내 필자는 전화통만 붙잡고 있었다. 국제전화로 생중계 듣듯 어머니 마지막 가시는 길을 전해 들어야 했다. 이제 영영 헤어져 뵙지 못할 어머니께 인사도 못 드린 불효자가 되어 몇 날 며칠을 눈물 속에서 보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은 저 혼자 무례하게도 흘러갔다.

▲손녀 딸들과 어머니(양복희 동년기자)
▲손녀 딸들과 어머니(양복희 동년기자)

필자의 어머니는 팔십 평생을 병원에서 사셨다. 아버지로부터 받은 지독한 정신적 충격으로 사시는 내내 고달픔의 연속이셨을 것이다. 우리 집 다섯 자식, 작은집 네 자식을 어머니는 자신의 호적에 올려야만 하셨다. 돌아가시기 몇 년 전부터는 요양원에서 생활하셨고 우리 집 5남매는 그곳에서만 엄마를 만나야 했다.

돌아가시기 5년 전, 한국에 잠깐 방문했던 필자는 엄마에게 거의 매일 찾아갔다. 어머니는 실내에서만 생활을 하셔서 그런지 얼굴은 하얬고 약물에 중독되어 퉁퉁 부어 계셨다. 몸은 날로 여위어갔지만 만날 때마다 둘째 딸인 필자의 두 손을 꼭 잡고 자식들 걱정에 여념이 없으셨다. 그러고는 마지막에는 꼭 " 나 좀 살려다오! 나 좀 데려가줘!" 하셨다. 그 말씀은 가슴에 꽂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하필이면 기억하는 게 어머님의 슬픈 음성뿐이다.

필자는 마음이 아팠지만 고개를 숙인 채 엄마를 자리로 조용히 안내하고는 살금살금 도망치듯 요양원을 빠져나왔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창문 너머로 엄마의 모습을 훔쳐봤다. 어머니는 어느 날 필자가 사다 드린 새 옷을 갈아입고 챙 달린 흰 모자를 쓰신 채 자리에 누워계셨다. 몸이 불편하신지 얼굴을 찡그리신 채 인상을 쓰고 두 눈만 껌뻑거리고 계셨던 어머니. 필자는 무거운 마음으로 독하게 돌아섰는데 그때 그 모습이 영영 마지막이 되고 만 것이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죄책감을 안고 필자의 고향인 충남 부여, 엄마를 모신 곳으로 달려갔다. 엄마의 다정했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아버지와 함께 나란히 누워 계셔서 외롭지는 않을 것이라고 애써 위로하며 눈물만 남기고 그 자리를 떠나왔다. 그때만 해도 엄마의 여린 음성이 어렴풋이 들려오는 듯했다. "괜찮다. 나는 이제 편안해. 걱정 말아라. 아버지가 영원히 내 곁에 있으니까."

대표님의 말씀을 듣다가 왜 필자는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 어머님의 음성을 녹음해둘걸 후회가 되었다. 늘 바쁘다는 핑계로 엄마를 잊고 산 세월이 죄인처럼 느껴졌다. 이제라도 가끔씩은 어머니와의 추억을 되새기며, 하늘 어딘가에서 필자에게 건넬 착한 우리 어머니의 음성을 어렴풋이나마 느끼며 살아야겠다.

바람이 불고 비까지 내리는 날이었지만 동년기자단 발단식에 참석하기를 참으로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2기 기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지난 1년 동안 서로의 글을 보며 삶을 공유하고 정을 쌓아온 1기 기자들과도 얼굴을 마주하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더불어 필자의 감성을 일깨워주신 총괄 대표님의 감동적인 말씀에 감사드린다. 임직원분들의 친절함에도 고맙다는 말을 전해드리고 싶다.

저 하늘에서도 영원히 내 삶의 주춧돌이 되어주실 우리 엄마를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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