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송시월과 나누다] 정동골

기사입력 2017-06-19 16:22 기사수정 2017-06-19 16:23

가문 땅을 적시는 단비가 내린 다음날 아침, 서울시가 주최하고 국제 펜클럽 한국 본부가 주관하는 서울 詩 기행을 나섰다. 미세먼지도 말끔히 걷히고 길가의 초여름 나무들은 상큼하고 싱그러워 내 삼십대를 떠올리면서 정동골로 향했다.

정동은 근대사가 곳곳에 살아 쉼 쉬는 곳이요 덕수궁 돌담길은 내 데이트 코스이기도 했기에 감회가 새로웠다. 덕수궁의 동문인 대한 문을 들어서자 비운의 역사가 되살아나는 듯 마음이 침울했다. 고종이 야심차게 자주적으로 선포한 <대한제국>이란 국호와 <광무>란 년호의 맥이 끊긴 곳이기도 하다. 고종황제가 러시아 공사관으로 아관파천 했던 곳도 다시 돌아온 곳도 이 곳 경희궁(덕수궁)이었다. 1918년 경술국치로 완전히 국권을 일제에 빼앗겼으며물론 외교권도 빼앗겼다 얼마 후 이곳에서 강제 퇴임 당하는 치욕의 장소이기도 했다. 비운의 왕 고종의 승하는 3.1운동의 기폭제가 되기도 했다. 주인 잃은 석조전은 유일한 서양식 건축물인데 고종이 귀빈을 만나거나 외국 손님을 만날 때의 장소였다. 지금 봐도 품위 있고 멋이 있었다. 그 앞 느티나무 한 그루가 옛 주인을 생각한 듯 푸른 잎을 떨어뜨려 날리고 있었다.

배재학당 박물관에 가니 보수중이어서 들어가지 못했으나 부활절 아펜젤라의 기도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조선 백성을 얽어맨 결박을 끊고 자유와 빛을 주옵소서”라는 간절함을 담은, 그는 한양 정동에 한옥을 구입하여 4명의 학생으로 교육을 시작하고 고종으로부터 배재학당이란 학교명을 부여 받고 배재학당을 세웠다고 한다. 이곳에서 서재필과 이승만이 나왔고 시인 김소월이 나왔다. 그리고 후에 카프문학의 발상지가 되기도 했다. 카프문학의 주 멤버인 박세영 박팔양 나도향 이런 시인들이 배재학당 출신들이다. 박세영의 그 유명한 시 <산제비>는 노래로도 불려져 북한에서는 성악가 조청미가 불렀다 한다.

<산제비>

1 임진강 맑은 물은 흘러흘러 내리고

뭇새들 자유로이 넘나들며 날건만

내 고향 남쪽 땅 가고파도 못가니

임진강 흐름아 원한 싣고 흐르냐

2,3 단원 중략

남극에서 왔나

북극에서 왔나

산상에도 상상봉

더 오를 수 없는 곳에 깃들인 제비.

너희야말로 자유의 화신 같구나,

너희 몸을 붙들자 누구냐

너희야말로 하늘이 네 것이요 대지가 네 것 같구나

녹두만한 눈알로 천하를 내려다보고,

주먹만한 네 몸으로 화살 같이 하늘을 꿰어

마술사의 째찍 같이 가로 세로 휘도는 산꼭대기 제비야

중략

나는 차라리 너희들 같이 나래라도 펴 보고 싶구나

생략

<진달래>

나더러 진달래꽃을 노래하라 하십니까

이 가난한 시인더러 그 적막하고도

가냘픈 꽃을

이른 봄 산골짜기에 소문도 없이 피었다가

하루 아침 비바람에 속절없이 떨어지는 꽃을

무슨 말로 노래하라 하십니까?

노래하기에는 너무도 슬픈 사실이외다

백일홍처럼 붉게붉게 피지도 못하는 꽃을

노래하느니 차라리 붙들고 울 것이외다

친구께서도 이미 그 꽃을 보셨으리라

이분들의 시를 읖조리다보니 역사의 숨결이 아프게 다가오는듯 하다.

시인 송시월은

전남 고흥 출생, 1997년 월간 <시문학>으로 등단, 계간 <시향> 책임 편집.

저서로는 시집 시문학사 <12시간의 성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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