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치라도 좋아~

기사입력 2017-07-19 13:46 기사수정 2017-07-19 13:46

버스정류장에 섰다. 필자가 가야 할 목적지를 가려면 이번에 오는 버스를 타고 어느 정류장에서 내려야 하는지, 스마트폰으로 아들이 적어준 메모를 확인한다. 그리고 이어 환승할 버스는 몇 번인지 다시 한 번 숙지했다.

다른 것들은 그럭저럭 잘해나가는데 유독 교통 관련 사항이나 길 찾기가 쉽지 않은 게 필자의 아킬레스건이다. 그래서 익숙지 않은 곳을 외출할 때마다 남편이나 아들이 미리 꼼꼼하게 체크해준다. 그것도 못 미더워 아들은 스마트폰에 저장해주고 남편은 잘 도착했는지 전화로 확인하곤 한다.

언젠가는 지하철을 반대 방향으로 타고, 또 어느 때는 엉뚱한 곳에서 하차를 해서 고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때론 목적지를 못 찾아 길거리를 헤맨 적도 있다. 그래서 남편은 필자가 타야 할 교통노선을 아주 쉬운 코스로 설정해준다.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환승이 적거나 복잡하지 않은 편을 택하느라 신경 쓴다. 그런데 문제는 유독 서울 시내에서만 그런 현상이 잦다는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가능하면 자동차 운전도 자주 하지 않는 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해야 할 일에 지장을 주거나 하지는 않는다. 미리미리 준비하고 충분한 시간을 확보한 뒤 움직이니까 누군가에게 민폐를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러기까지 필자의 긴장감과 조바심 때문에 생겨난 하루 이야기가 가족들이 모이는 저녁이면 화젯거리가 된다. 남편은 혀를 찬다.

“어이구, 왜 그게 안 될까??”

아들도 한마디 거든다.

“아이쿠, 그러기에 엄마는 들고 다니는 내비게이션을 익히시라니까요.” 그러나 걱정 마시라. 그렇다고 가고 싶은 곳, 가야 할 곳을 못 가본 적은 없으니까. 움직이는 것 자체가 모험이 된다면 일상이 얼마나 짜릿할까. 그들은 모를 일이다.

얼마 전에는 서울에서 한 시간여 거리에 있는 화성의 ‘수섬’이라는 곳엘 다녀왔다. 광활한 들판에 피어난 삘기꽃이 장관인 풍경을 구경하러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그런데 올해부터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그곳이 출입금지가 된다고 했다. 그래서 지난해에 마지막으로 다녀왔는데 올해도 가능한 모양이었다. 친구들과 별궤적 촬영을 위해 한밤중에 거길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문제가 생겼다.

깜깜한 밤이었기에 조심조심 걸어 나오다가 광활한 들판에서 그만 길을 잃은 것이다. 우린 서로 겁을 먹은 채 ‘이쪽으로 가는 게 맞을 거야. 아니, 저쪽 같아’ 하면서 더듬더듬 앞으로 걸어가는데 점점 심각한 상황임이 직감되는 것이다. 낮에 없었던 가시덤불을 헤치고 돌부리에 걸리고 진흙탕에 텀벙거리며 급기야 가장 막내인 친구는 울먹이기 시작했다. 공포감 속에서 간신히 올라서니 맙소사! 길이 끝난 절벽 같은 담벼락이 딱 막아서고 있는 것이었다. 막막함에 땀을 닦으며 한숨 쉬다가 마침 그 섬을 나가는 또 다른 팀의 불빛에 도움을 요청했다. 다행히 그들이 우리 소리를 들었고 잘 찾아 나오도록 멀리서 불빛을 비추어주며 길을 인도해서 겨우 섬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두려움에 떨었던 그 시간들이 이제는 길치들의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되어 “으이구, 우리 왜 그랬지? 하하하” 하며 즐겁게 기억한다. 누군가는 바보 같다거나 주책이었다고 할지 몰라도 우리에겐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그리고 칠흑 같던 어둠속의 그 섬을 탈출해 서울을 향해 씽씽 달리던 그 길이 마치 델마와 루이스처럼 한밤의 통쾌한 로드무비를 연상케 했다. 우리들만의 유쾌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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