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 시간 ‘덩케르크’에 있었다

기사입력 2017-07-27 15:02 기사수정 2017-07-27 15:02

▲우리는 그 시간 ‘덩케르크’에 있었다(박미령 동년기자)
▲우리는 그 시간 ‘덩케르크’에 있었다(박미령 동년기자)
문학작품을 고를 때 작가가 누군지 반드시 확인하면서 영화를 볼 때는 대부분 제목만 보고 선택해왔음을 고백해야겠다. 그러니까 그렇게 많은 영화를 봐왔으면서도 필자에게 영화는 감독의 메시지나 예술적 성취보다는 그저 한 시간 반 정도 즐기는 가벼운 문화적 소비재에 불과했던 것이다. 적어도 무더위가 절정에 오른 지난 주말까지는.

더위에 지친 날 영화를 보자는 제의는 반가웠다. 적어도 영화관은 시원한 곳이니. 게다가 모처럼 남편의 제의라 제목도 묻지 않고 따라나섰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덩케르크>. 전쟁영화란다. 남편은 감독의 전작들을 언급하면서 그의 예술적 성취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으나 생소한 이야기였고 더욱이 전쟁영화는 필자가 선호하는 장르도 아니었다. 그러나 아무려면 어떠랴. 이 더위를 피할 수만 있다면.

상영시간이 임박해서인지 좌석이 첫 줄밖에 없었다. 아이맥스에서 보고 싶어 했던 남편은 오히려 앞줄이라 좋단다. 우리는 그렇게 그날의 <덩케르크> 현장으로 휩쓸려 들어갔다.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에 포위되어 프랑스 북부 덩케르크 해변에 고립된 연합군 40만 명을 도버해협 건너 영국으로 철수시키는, 실제 있었던 기적 같은 작전을 영화로 재현한 것이다.

그런데 도무지 스토리다운 스토리가 없었다. 영웅 같은 주인공도 없었다. 곳곳에서 살아남으려는 아우성만 가득했다. 그렇다고 처절한 살육 장면도 없었다. 독일군에 포위되어 있다는 설정만 있을 뿐 독일군도 보이지 않았고 본격적인 접전도 없었다. 보통 전쟁영화에서 흔히 보여주는 익숙한 장면들이 보이지 않았다. 배경만 전쟁영화일 뿐 실제로는 재난영화라고 분류해야 할 지경이었다.

감독은 이 영화를 배에 오르는 잔교에서의 일주일, 바다에서의 1일, 하늘에서의 1시간 등 세 가지 시퀀스로 나누어 각기 다른 서술자의 시각으로 교차해가면서 보여준다. 영화 전반부는 서로 소통되지 않는 각각의 상황에서 처절한 사투만이 이어진다. 잔교에서 하염없이 배를 기다리다 적기의 사격으로 속절없이 죽어가는 병사들. 징발된 작은 배를 몰고 전장으로 가는 이름 없는 어선들. 연료가 떨어져가는데 적기로부터 아군을 지켜야 하는 조종사. 거대한 전장을 교직하는 이름 없는 사람들.

이런 아수라장 속에 감독은 세 개의 작은 이야기를 배치한다. 수많은 병사 중 카메라는 토미(핀 화이트헤드)와 남의 이름을 도용한 깁슨(아뉴린 바나드)의 동선을 따라간다. 그들은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 행동하지만, 서로 돕는 인간애를 지니고 있다. 징발된 요트를 몰고 나가는 도슨 부자는 따라나선 소년 조지가 바다에서 구해준 병사의 우발적 폭력으로 죽게 되지만 임무를 완수한다.

이 모든 흐름이 하나로 합일되는 시점은 조종사 콜린스가 적기에 격추되어 바다에 추락하고 도슨 부자가 그를 구하는 장면일 것이다. 이들은 각자 자신의 전쟁을 치르고 있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한다. 또 이들은 서로 돕고 피해를 주기도 하지만, 감독의 시선은 선악을 판정하지 않는다. 그들 모두는 살아남으려는 평범한 인간들일 뿐이다.

이 영화는 전쟁을 정의하려 하지도 않고 선악으로 재단하지도 않는다. 아마 감독의 보여주려고 한 메시지는 살아 돌아온 병사들을 환영하면서 한 시각장애인이 “살아서 돌아온 것으로 충분해”라고 한 말일 것이다. 우리를 한 시간 반 넘게 이 품격 있는 전쟁터에 몰입시킨 것은 단연코 음악이다. 시계 초침소리 등 다양한 소리들을 변주하며 줄곧 내장을 울렸던 음악이 시간과 더위를 잊게 해준 공신이었다.

이 영화는 단언컨대 감독의 영화다. 마지막 파리어(톰 하디)의 비행기가 연료가 떨어져 무동력으로 하늘을 비행하는 장면은 압권이다. 이 순간 일주일, 하루, 한 시간이라는 서로 다른 시간의 부조화가 하나로 합일하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천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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