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하기 쉬운 친구사이여야

기사입력 2017-08-11 14:51 기사수정 2017-08-11 14:51

얼마 전에도 우리는 ‘잠깐 다녀올까?’ 하면서 한 마디씩 나누고 강원도로 냅다 달려 북쪽의 끝머리 고성의 통일전망대를 향해 치달았지요. 거진항에서 찝찔한 갯내음을 맡으며 싱싱한 생선회를 먹고 일상에서 묻힌 마음의 먼지를 바닷바람에 훌훌 날리고 새벽을 달려서 돌아왔습니다. 언제나 가보아도 동해의 푸른빛은 변함이 없는데 우리네 삶은 왜 그리도 잘 변하는 빛깔을 가지고 있는지요.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쉽게 달려갈 수 있는 바다를 스무 살이 조금 넘었을 무렵 땀냄새가 가득한 밤기차를 타고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날 떠났던 적이 있었습니다. 피곤에 찌들어 겨우겨우 강원도에 도착해서도 털털거리는 버스를 몇 번씩이나 갈아타면서 도착한 어느 해변을 보면서 우리는 환호를 했었지요. 이십 대의 환호는 바다 위에서 너울거리고 한참의 세월을 더 보낸 지금의 바다는 차분하고 평화로움이었으며 일상의 갈등도 납죽 받아서 바닷속으로 침잠시키고 있더군요.

그 해 여름 바다에서 놀다 지쳐 해안가의 마을을 어슬렁거리던 필자는 아주 낯익은 군부대의 표지판을 보았지요. 어딜 가도 강원도는 군부대의 방향표시를 지금도 쉽게 볼 수 있었는데 내 눈에 들어온 그 숫자의 부대는 필자가 자주 위문편지를 보냈던 울 오빠의 군부대 번호 숫자였답니다.

'가자, 가는 거야' 친구들과 즉석에서 의견 일치를 보았고 겁 없이 나선 우리는 물어물어 산길을 돌아 걸었지요. 한여름의 쨍쨍한 뙤약볕을 받으며 가도 가도 끝없는 오빠 찾아 수 십리의 고행을 했답니다. '부모님들이 면회 갈 때는 인절미랑 통닭이랑 한 보따리씩 싸들고 가던데 이렇게 빈손으로 가면 인사가 아닐 텐데?" 하하호호 떠들면서 그 먼 길을 걷고 또 걸었습니다.

그렇게 찾아간 곳에 하필 오빠는 부대 업무차 시내에 나갔다는 말을 전해 들었지요. 우리는 오빠의 방에 안내되어 쉬면서 기다리며 이것저것 구경을 하면서 기다렸는데 제대를 앞둔 대위 계급의 군의관이어서인지 여러 권의 의학 관련 전공서적도 눈에 띕니다. 사실 필자는 내심 함께 갔던 한 친구를 소개해 줄 마음이 있었는데 책상 위에는 위문편지를 가장한 연애편지 비슷한 것도 있어서 생각이 복잡해지기도 했지요. 어쨌든 저녁 무렵 돌아온 오빠의 황당한 표정에 재미있어하며 우리는 그 날 저녁 박봉의 군인 아저씨 오빠의 환대를 톡톡히 받은 건 두말할 필요도 없었지요.

지금도 가끔 친구에게 '널 우리 오빠에게 소개하려고 했었어" 하면 그 친구는 '내가 그때 적극적이어야 했었는데...'하면서 가슴을 치는 시늉을 하며 히히거립니다.

이 나이가 되도록 서로를 존중하고 보고 싶어 하는 그런 친구가 있어서 행복합니다. 이런 마음인 걸 생각하면서 친구가 오빠와 결혼하고 우리가 한 가족이 되었다면 그게 가능키나 했을까요. 때때로 나는 친구사이로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흔히들 고정관념의 틀 속에 가족을 가두기 일쑤잖아요. 꼭 이래야 되는데... 하는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에서 탈피하기 어려운 것이 가까워진 사이의 어려움이거늘 내 맘 같지 안 다해서 조급해하거나 너무 가까워지려고 애쓸 일 없이 살아가는 것, 그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한 발짝 정도 사이가 떨어진 친구사이,

다양한 시선으로 사람을 볼 수 있어서 너무나 좋고 끊임없는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이, 이제는 그것이 더 좋은 사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조병화님의 시처럼 ‘작별이 오면 잊어버릴 수 있을 정도의 만남’.

글쎄, 이조차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우리들은 너무나 잘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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