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

요즘 예서제서 무더운 여름을 잘 보내기 위한 이야기가 난무한다. 신문이나 티브이 뉴스에서도 늘 그렇듯이 바다이야기가 연일 분분하다. 청춘들의 열정으로 뜨겁게 달구던 그 바다도, 높은 파도를 가로지르는 시원한 서핑도, 그 옛날 친구들과 함께 남겨두었던 백사장의 발자국도 이젠 가만히 바라볼 느긋함으로 지금에 이르렀다.

뉴스를 뒤적이다가 영화기사가 얼른 내 눈에 들어온다.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 -あの夏, いちばん靜かな海, A Scene At The Sea

필자가 십여 년 전에 보았던 일본 영화였는데 요즘 다시 상영한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하필 지방도시의 딱 한 군데서 한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독특한 연출력을 보여주는 상영 관련 프로그램도 이미 있었다. 마침 내게 DVD가 있다.

그 바다에 우두커니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던 청년이 있었다.

말하지도 듣지도 못하는 '시게루'는 쓰레기를 수거하는 일을 하면서 버려진 서핑보드를 집어 든다. 그리고 손질한 그 보드를 매일 바다로 들고나가 혼자서 파도와 씨름을 한다. 그의 곁에는 늘 한결같은 여자 친구가 그림자처럼 따른다.

소란함이나 발랄함도 화려함도, 청춘들의 요란한 사랑타령도 찾아볼 수 없는 화면, 아니 그런 것들이라면 이 영화에서는 거추장스럽다. 시게루가 말하지도 듣지도 못해서, 그리고 여자 친구 역시 청각장애이기 때문에 굳이 조용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작은 바닷가 마을에 바람이 불면 파도가 높아지고 같이 걷는 두 남녀의 침묵은 더 많은 것들을 말해주고 있다. 서정적인 그 풍경들이 아릿하고, 미더운 그들의 사랑이 마음을 뜨겁게 또 담담하게 감수성을 조절해 준다.

시종일관 멀리 바라다 보이는 바다는 말하지 못하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파도에 한껏 실어다 준다. 그들의 침묵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고독했던 청년의 진지했던 파도타기를 보여준다. 무표정하고 조용하지만 이들이 바다와 교감하는 화면은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다. 혹시라도 조용해서 지루하고 따분할 수도 있다면 전 편에 흐르는 음악이 있다. 대사가 거의 없는 영화의 스토리가 읽히는 듯한 음악이 중요한 역할을 해준다.

그러던 어느 날 보드를 타고 바다로 간 시게루가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슬픔 속에서 담담히 회상하는 타차코는 둘이 함께 찍은 사진을 시게루가 남긴 낡은 보드에 붙여 바다로 떠나보낸다.

코믹하거나 폭력적이고 이념적이고자 하는 영화들 사이에서 조용한 정서가 키워드가 되어 처음부터 끝까지 담담히 흐르던 화면이었다. 말하지도 듣지도 못하는 남녀이건만 그 흔한 수화조차 보이지 않는다. 가만히 바라보는 눈빛과 간단한 손짓과 몸짓이 그들의 애정 어림이다. 화면마다 긴 호흡의 움직임과 과장 없는 스토리로 영화를 이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데 가슴으로 밀려드는 먹먹함에 타차코처럼 그 바다의 모래밭에 나조차 우두커니 앉아있는 듯한 기분이다. 소음 속의 세상을 잠깐 벗어나 수채화처럼 잔잔한 바다를 실컷 바라볼 수 있는 이 영화는 시처럼 여운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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