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佛千塔 이야기④ 순천 선암사(仙巖寺)

기사입력 2018-09-12 17:49:14기사수정 2018-09-12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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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열세 번째 세계유산, ‘한국의 산사 7곳’ 네 번째

우리나라의 열세 번째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산사 7곳’ 네 번째는 순천 선암사이다. 선암사는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조계산 동쪽에 위치하며, 숲으로 둘러싸인 넓은 터에 가람을 배치하였다. 많은 대중이 생활하는 대규모 산사였기 때문에 사방으로 둘러싸인 ‘ㅁ’자 형태인 건물이 많이 건립되었다.

절 서쪽에 신선이 바둑을 두던 평평한 바위가 있어 ‘선암사’라 이름 붙였다는 전설이 있는데, 백제 성왕 5년(527)에 아도화상(阿度和尙)이 현재의 비로암지에 창건하였고 청량산(淸凉山) 해천사(海川寺)라 하였다.

이창주 도선국사는 현 위치로 절을 옮겨 중창하였으며 1철불 2보탑 3승탑을 세웠다. 삼창주 의천 대각국사는 대각암에 주석하면서 선암사를 중창하여 호남의 중심 사찰로 키웠는데 정유재란 때 큰 피해를 당한 이후 여러 차례 중창 복원과 화재 등이 반복되면서 절 이름도 조계산 선암사로 다시 청량산 해천사로 개칭, 복칭을 반복하다가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선암사는 (승려들이 결혼할 수 있는) 태고종의 총본산이며 유일한 태고총림(太古叢林)이다. 총림(叢林)이란 승려들이 참선 수행하는 선원(禪院)과 교육기관인 강원(講院), 계율 전문교육기관인 율원(律院)을 모두 갖춘 사찰을 말하는데 조계종에 5대 총림(조계, 영축, 가야, 덕숭, 고불총림)이 있고, 태고종 유일 태고총림이 있다.

정조 13년(1789), 임금이 후사가 없자 눌암이 원통전에서, 해붕이 대각암에서 100일 기도를 하여 1790년 순조 임금 출생하였으며, 순조는 즉위 후 선암사에 인천대복전(人天大福田) 편액과 은향로, 쌍용문가사, 금병풍, 가마 등을 하사하였다.

선암사 일원은 사적 제07호로 지정되었으며 보유 문화재에 국보는 없으나 보물 제395호 삼층석탑과 400호 승선교 등 14점의 보물 및 다수의 유무형 지방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선암매(천연기념물 제88호)로 부르는 400년 이상 된 우리 토종 고매화(古梅花)가 유명하다.


조계산(曹溪山) 선암사(仙巖寺)

선암사는 순천시 서북쪽 상사호 상류 계곡에 자리 잡고 있는데 조계산의 동쪽이며 반대쪽 조계산 서쪽에는 송광사가 위치하고 있다. 트래킹 코스로 선암사-송광사 구간을 찾는 사람도 많다. 절 아래 식당가를 지나 매표소부터 절집까지 이십 분 남짓 숲길을 걸어 올라간다.

특히 계곡을 따라 올라가다 만나는 승선교(昇仙橋)는 선녀들이 목욕을 하고 하늘로 오른다는 다리인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지개다리로 손꼽힌다. 숙종 24년(1698) 호암 대사가 백일기도에도 관음보살을 뵙지 못하자 벼랑에서 몸을 던졌는데 이때 관음보살이 나타나 받아주시니 감동하여 원통전과 승선교를 세웠다고 한다.

▲선암사 승선교(昇仙橋, 보물 제400호)와 아래로 보이는 강선루(降仙樓). 자연암반 위에 곡선형 반원 홍예(虹預)를 세워 물에 비치면 완전한 원형이 되며 그 원형의 뒤쪽에 강선루가 보이는 장면이 가장 아름답고 우아하다는 평(評)이다. 다리 아래에는 용두(龍頭)가 박혀있어 신비로운데 절을 지키는 아홉 번째 용이라고 한다. (김신묵 동년기자)
▲선암사 승선교(昇仙橋, 보물 제400호)와 아래로 보이는 강선루(降仙樓). 자연암반 위에 곡선형 반원 홍예(虹預)를 세워 물에 비치면 완전한 원형이 되며 그 원형의 뒤쪽에 강선루가 보이는 장면이 가장 아름답고 우아하다는 평(評)이다. 다리 아래에는 용두(龍頭)가 박혀있어 신비로운데 절을 지키는 아홉 번째 용이라고 한다. (김신묵 동년기자)

예전에는 승선교를 지나 계곡을 건너야 절에 갈 수 있었는지 모르나 지금은 계곡을 건널 일 없이 절까지 큰길을 따라가므로 무심코 지나칠 수 있다. 승선교를 지나려면 그 아래 작은 무지개다리를 건너갔다가 승선교로 다시 건너와야 한다.

승선교 뒤에 있는 강선루 역시 오른쪽에서 흘러와 큰 개울과 합쳐지는 작은 시냇물 위의 선원교(仙源橋)라는 작은 다리 위에 세워진 2층 누각으로, 예전에는 누각 아래로 다리를 건너다녔겠지만 지금은 그 옆으로 넓은 길이 나 있어 옛 맛을 잃어 아쉽다.

승선교에 못미처 2개의 승탑군(부도전)이 있는데 먼저 만나는 곳이 숲속의 비석거리이고 두 번째가 선암사 동승탑군(東僧塔群)인데 이곳에 눈길을 끄는 탑비가 있어 발길을 멈추게 한다.

▲먼저 만나는 비석거리에는 8기의 승탑과 3기의 탑비가 있고 좌우에 석등이 있다. 두 번째 만나는 선암사 동승탑군(東僧塔群, 위 사진)에는 승탑 11기와 탑비 8기가 있는데 사자 4마리가 바치고 있는 화산 대사 승탑(아래 왼쪽)과 혼자 비뚤어지게 세워진 상월 스님의 탑비(아래 오른쪽)가 특이해서 눈길을 끈다.(김신묵 동년기자)
▲먼저 만나는 비석거리에는 8기의 승탑과 3기의 탑비가 있고 좌우에 석등이 있다. 두 번째 만나는 선암사 동승탑군(東僧塔群, 위 사진)에는 승탑 11기와 탑비 8기가 있는데 사자 4마리가 바치고 있는 화산 대사 승탑(아래 왼쪽)과 혼자 비뚤어지게 세워진 상월 스님의 탑비(아래 오른쪽)가 특이해서 눈길을 끈다.(김신묵 동년기자)

19세기 큰 스님으로 추앙을 받던 상월 스님의 탑비는 후학들을 사랑했던 스님을 기려 제자를 가르치던 강원(講院)을 향해 비석을 세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게 승탑군을 지나 승선교를 건너 강선루 아래로 숲길을 걸어 올라가면 선암사에 도착한다. 방문객을 처음 맞이하는 건 일주문이 아니라 삼인당이라는 멋스러운 원형 연못이다. 대개 절집은 앞마당쯤에 연지(蓮池)를 꾸며놓고 있지만 선암사 삼인당은 조금 다르다.

▲삼인당(三印塘, 전남기념물 제46호).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 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 열반적정인(涅槃寂精印)의 삼법인으로 불교의 중심사상을 나타낸 것이며 이렇게 독특한 이름과 모양을 가진 연못은 선암사에서만 볼 수 있다. (김신묵 동년기자)
▲삼인당(三印塘, 전남기념물 제46호).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 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 열반적정인(涅槃寂精印)의 삼법인으로 불교의 중심사상을 나타낸 것이며 이렇게 독특한 이름과 모양을 가진 연못은 선암사에서만 볼 수 있다. (김신묵 동년기자)

삼인당 앞에는 전통찻집이 조용히 자리 잡고 있다. 창 넓은 찻집에서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듯 전통찻집에 앉아서 삼인당 연못을 바라보는 멋스러움이 나름 괜찮은 곳이다.

선암사 숲길 내내 이어지는 순탄한 오르막 지형은 삼인당 연못을 지나도 계속 이어지는데 아직 일주문은 보이지 않고 한번 휘돌아 꺾어진 길 오른쪽으로는 계곡물이 흐른다. 그 너머에는 차밭이 늘 푸르게 깔려 있으며 왼쪽 높은 언덕 위에는 주목받지 못하는 하마비(下馬碑) 하나가 서 있다.

조금은 급격해지는 오르막 경사로가 한 번 더 굽어지면 비로소 일주문이 나타난다. 몇 개의 계단 위에 화려한 지붕을 이고 선 일주문은 좌우로 담장이 이어진 특이한 형태로 여느 사찰의 일주문과 달리 특정한 영역이나 큰 건물로 들어서는 대문의 느낌이다.

▲사찰의 경내로 들어서는 일주문. 단층 맞배지붕의 다포식 건축물인데 앞면에는 조계산 선암사(曹溪山 仙巖寺), 뒷면에는 고청량산해천사(古淸凉山海川寺) 현판을 달았다.  (김신묵 동년기자)
▲사찰의 경내로 들어서는 일주문. 단층 맞배지붕의 다포식 건축물인데 앞면에는 조계산 선암사(曹溪山 仙巖寺), 뒷면에는 고청량산해천사(古淸凉山海川寺) 현판을 달았다. (김신묵 동년기자)

일주문을 들어서면 오르막 계단 위에 범종루가 있고 범종루 아래로 누하진입(樓下進入)을 하면 만세루가 나온다. 만세루는 누하(樓下) 없이 좌우로 돌아 들어가니 바로 대웅전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일주문을 지난 후 천왕문, 금강문, 인왕문 등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선암사의 3무(無)에 기인하는데 조계산의 주봉이 장군봉인지라 불교의 호법신인 사천왕상을 세우지 않았다는 것이며, 두 번째는 대웅전에 부처님을 혼자 모셨으니 좌우 협시불이 없다는 것이다. 대웅전 가운데에 큰스님이 드나드는 전용문을 어간문(御間門)이라고 하여 신도들은 못 드나들게 하는데 선암사에서는 부처님처럼 깨달은 분만 드나든다고 하여 가운데에 사람 출입을 위한 문은 없다는 것이다.

▲범종루(梵鐘樓). 일주문을 지나 오르막 계단을 오르면 1층 중앙을 통로로 하여 누하진입(樓下進入)하는 구조이다. 1층은 간단한 판매시설이며 2층은 범종, 법고, 운판, 목어 등 불구(佛具) 4물(四物)이 있다. 범종루 현판 아래 태고총림조계산선암사(太古叢林曹溪山仙巖寺)라고 쓴 대형 현판이 달려있다.(김신묵 동년기자)
▲범종루(梵鐘樓). 일주문을 지나 오르막 계단을 오르면 1층 중앙을 통로로 하여 누하진입(樓下進入)하는 구조이다. 1층은 간단한 판매시설이며 2층은 범종, 법고, 운판, 목어 등 불구(佛具) 4물(四物)이 있다. 범종루 현판 아래 태고총림조계산선암사(太古叢林曹溪山仙巖寺)라고 쓴 대형 현판이 달려있다.(김신묵 동년기자)
▲범종루를 지나 계단을 오르면 만세루가 정면을 가로막는다. 만세루는 대웅전과 마주 보고 있어 들어서는 방향은 뒷면이며 누하진입 없이 좌우로 돌아 들어가면 대웅전 앞마당이다. 만세루에는 ‘六朝古寺’(육조고사)라고 쓴 대형 현판이 있는데 초조 달마대사 이후 6조 혜능스님을 모신 오래된 절이라는 뜻으로 서포 김만중의 부친 김익겸의 글씨이다.(김신묵 동년기자)
▲범종루를 지나 계단을 오르면 만세루가 정면을 가로막는다. 만세루는 대웅전과 마주 보고 있어 들어서는 방향은 뒷면이며 누하진입 없이 좌우로 돌아 들어가면 대웅전 앞마당이다. 만세루에는 ‘六朝古寺’(육조고사)라고 쓴 대형 현판이 있는데 초조 달마대사 이후 6조 혜능스님을 모신 오래된 절이라는 뜻으로 서포 김만중의 부친 김익겸의 글씨이다.(김신묵 동년기자)

만세루는 원래 강당으로 총림에서 많은 학승에게 강학을 하는 곳이다. 원래 강당은 금당의 뒤쪽에 있어야 하나 조선시대에 들어와 대웅전 앞에 위치하게 되었다. 예불 시 큰 스님 몇 분만 대웅전에 들어가고 나머지 스님들과 재가불자들은 강당에서 예불에 동참하는 형태로 진행되다가 지금은 모두 대웅전에 들어가서 올린다고 한다.

▲만세루를 좌우로 돌아 들어가면 대웅전(보물 제1311호)과 동서 삼층석탑(보물 제395호)이 있는 중정(中庭)이 나온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팔작지붕 건물로 안에는 석가모니불 한 분만 모셨으며 영산회상도를 후불탱화로 걸었다. (김신묵 동년기자)
▲만세루를 좌우로 돌아 들어가면 대웅전(보물 제1311호)과 동서 삼층석탑(보물 제395호)이 있는 중정(中庭)이 나온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팔작지붕 건물로 안에는 석가모니불 한 분만 모셨으며 영산회상도를 후불탱화로 걸었다. (김신묵 동년기자)
▲대웅전 정면 3칸 중 가운데 칸은 머름으로 막아놓아(왼쪽) 드나드는 용도가 아니니 어간문(御間門)이 없다는 것을 알겠다. 대웅전 현판(오른쪽)은 순조의 장인 김조순의 글씨인데 임금만이 할 수 있는 두인(頭印, 글씨 앞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는 것)을 한 것은 당시 김조순의 세도가 어떠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김신묵 동년기자)
▲대웅전 정면 3칸 중 가운데 칸은 머름으로 막아놓아(왼쪽) 드나드는 용도가 아니니 어간문(御間門)이 없다는 것을 알겠다. 대웅전 현판(오른쪽)은 순조의 장인 김조순의 글씨인데 임금만이 할 수 있는 두인(頭印, 글씨 앞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는 것)을 한 것은 당시 김조순의 세도가 어떠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김신묵 동년기자)

대웅전 영역은 이렇게 만세루와 대웅전이 마주 보며 가운데 마당에 석탑 2기가 세워져 있고 왼쪽에는 설선당, 오른쪽에는 심검당이 있는 ‘ㅁ’자형 네모꼴 구조이다. 대웅전의 왼쪽에는 음향각이 오른쪽에는 지장전이 있으며 심검당 아래 만세루 옆으로는 범종각이 있다.

범종각에는 종을 치는 나무, 즉 당목(撞木)이 있는데 종을 매다는 용뉴(龍鈕)가 사실은 용의 셋째 아들 포뢰(蒲牢)이다. 이 포뢰는 고래를 무서워하여 당목을 고래 모양으로 만들어서 두드리면 종이 더 크게 운다는 것이고 그래서 선운사의 당목이 고래 모양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답사 결과 고래 모양이라던 선운사 당목은 머리 부분을 잘라낸 모양이어서 충격적이었다. 원래 이런 모양이었는지 아니면 용 이야기를 모르는 채 무심코 잘라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너무 아쉬웠다. 생각 없이 자른 결과가 아니기 바란다.

▲현재의 선암사 범종각 당목(왼쪽), 머리 부분을 잘라낸 흔적이 뚜렷하다. 과거의 선암사 범종각 당목 사진(중간)을 보면 머리 부분도 온전한 모습이다. 참고로 수덕사 당목 모습이다(오른쪽). (김신묵 동년기자)
▲현재의 선암사 범종각 당목(왼쪽), 머리 부분을 잘라낸 흔적이 뚜렷하다. 과거의 선암사 범종각 당목 사진(중간)을 보면 머리 부분도 온전한 모습이다. 참고로 수덕사 당목 모습이다(오른쪽). (김신묵 동년기자)

대웅전 영역 뒤로는 조사전, 불조전, 팔상전이 나란히 있고 그 뒤로 순조 임금 출생을 기도한 원통전이다. 원통전은 주원융통(周圓融通)한 자비를 구한다는 뜻인데 관세음보살을 모신 전각으로 관음전이라고도 한다. 많은 사람이 찾아와 간절한 기도를 올리는 곳이다.

▲선암사 원통전(전남 지정문화재 제169호), 정면 3칸 측면 3칸의 아담한 건물인데 정면에 2개의 기둥과 활주가 밖으로 나와 정(丁) 자형으로 돌출된 모습을 보인다. 건물 안에 다시 작은 건물이 하나 더 있는 구조이다. (김신묵 동년기자)
▲선암사 원통전(전남 지정문화재 제169호), 정면 3칸 측면 3칸의 아담한 건물인데 정면에 2개의 기둥과 활주가 밖으로 나와 정(丁) 자형으로 돌출된 모습을 보인다. 건물 안에 다시 작은 건물이 하나 더 있는 구조이다. (김신묵 동년기자)
▲원통전의 안쪽 건물은 뒷면을 막아서 관음보살을 모셨고, 좌우는 반개방형 구조이며 정면은 완전 개방하여 내부가 들여다보이도록 하였다. 상단에는 순조가 내린 어필(御筆) ‘大福田’(대복전) 현판이 걸려있고 人(인), 天(천) 편액은 별도 보관 중이다.(김신묵 동년기자)
▲원통전의 안쪽 건물은 뒷면을 막아서 관음보살을 모셨고, 좌우는 반개방형 구조이며 정면은 완전 개방하여 내부가 들여다보이도록 하였다. 상단에는 순조가 내린 어필(御筆) ‘大福田’(대복전) 현판이 걸려있고 人(인), 天(천) 편액은 별도 보관 중이다.(김신묵 동년기자)

원통전의 뒤쪽은 응진당 영역이며 그 오른쪽은 무우전 영역인데 그 사잇길이 유명한 선암매가 피는 공간이다. 응진당 출입문에는 ‘湖南第一禪院’(호남제일선원) 현판이 달려 있다. 응진당을 중심으로 몇 개의 당우가 있으며 응진당 뒤에는 작은 산신각이 다소 옹색하게 자리 잡고 있다.

선암매 공간을 건너 오른쪽 무우전은 태고종정이 머무는 공간으로 비공개지역이다. 그런데 그 뒤에는 각황전이며 여기에 철불이 모셔져 있어 답사객들은 자꾸만 들여다보고 싶은 것이다.

더 뒤로 나가면 숲속에 숙종 때 세운 중수비(전남 유형문화재 제92호)와 1929년 세운 선암사 사적비가 서 있고 일반인 출입을 금지한 선원 뒤쪽으로 동부도(보물 제1185호)와 북부도(보물 제1184호)가 있다. 답사꾼들에게는 필수 지역이지만 금지구역이라 아쉽다.

또 하나 선암사의 명물은 ‘뒷간’이다. ‘깐뒤’라고 우스개 소리하는 선암사 뒷간은 전라남도 지정 문화재자료 제214호로 영월 보덕사 해우소와 함께 도지정 문화재 화장실로 지정된 곳이다.

▲목조건물로서는 동양 최고 규모라는 선암사의 뒷간. 용변을 보고 승선교쯤 내려와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그 깊이와 크기가 대단하다는 그곳을 선암사 답사의 마지막 순서쯤으로 추천한다.(김신묵 동년기자)
▲목조건물로서는 동양 최고 규모라는 선암사의 뒷간. 용변을 보고 승선교쯤 내려와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그 깊이와 크기가 대단하다는 그곳을 선암사 답사의 마지막 순서쯤으로 추천한다.(김신묵 동년기자)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에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정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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