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싱홈그린힐 조혜숙 원장 “임종까지 지키는 것이 내 임무”

기사입력 2018-10-19 14:29:04기사수정 2018-10-19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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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싱홈그린힐 조혜숙 원장(이준호 기자 jhlee@)
▲너싱홈그린힐 조혜숙 원장(이준호 기자 jhlee@)
조혜숙(趙惠淑·65) 원장의 이력은 다소 특별하다. 전공이나 학위만 보면 남보다 더 공부에 매진한 간호사로 이해되는 정도다. 하지만 앞에 학교 이름을 붙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조 원장은 이화여자대학교 간호학과에 입학하면서 간호사로서 첫발을 내딛는다. 석사과정은 부산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은 고려대학교에서 졸업했다. 전문간호사 과정인 가정간호교육과정이나 상처전문관리과정은 연세대학교에서, 호스피스 전문교육과정은 가톨릭대학교에서 이수했다.

그런데 정작 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1년 남짓 대학 강사로 활동하다 전업주부가 됐다. 그렇게 15년 동안 아내로, 엄마로 지내다가 영국에서 우연히 접한 너싱홈을 보고 내 손으로 꼭 해보겠다는 각오를 한다. 결심이 서고 난 뒤에는 거침이 없었다. 박사과정을 밟은 것도 전문간호사 교육을 받은 것도 모두 아이들이 대학에 간 이후의 일이다.

“계속 노인 인구가 증가하고 있었고, 핵가족화하고 있었으니까요. 여성의 사회 진출도 눈에 띄게 증가했죠. 모든 지표들이 너싱홈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사회적 보호 시스템의 요구가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마음을 먹었습니다.”

간호사라고는 하지만 자격취득 이후 가정주부로서의 삶이 대부분이었던, 실무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쉽게 시설을 설립하고 운영할 수는 없었다. 그 사실은 조 원장 스스로도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일단 병원에서 간호사의 경험을 쌓아야겠다 생각했다. 그때부터 가정전문간호사 교육을 받고 40세가 되어서 한림대의료원 가정간호과에서 일을 시작했다. 이화여자대학교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18년 만에 병원 문턱을 넘은 것. 그렇게 7년간의 준비를 거쳐 너싱홈그린힐을 설립했다. 당시엔 20병상의 작은 규모였다.

“처음엔 아무것도 몰랐죠. 무작정 어르신들을 최고로 모시고 싶다는 욕심만 가득했고, 비용 책정도 참고할 만한 사례가 전무했어요. 그렇게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장한 것이 지금의 너싱홈그린힐이 됐어요.”

시설을 차려놓고 보니 홍보도 문제였다. 그때부터 큰 병원들을 다니며 간호사 모임을 유치했다. 병원이 있는 수도권에서 멀지도 않고 주변 경관도 좋아 유리했다. 자연스럽게 간호사들이 너싱홈그린힐의 운영 방식을 경험하면서 입소자들에게 소개하기 시작했다. 시설이 정상화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의료인을 접하는 기회가 늘면서 의사나 간호사 부모님을 모시게 되는 경우도 많아요. 초창기엔 전체 20명 어르신 중 7명이 간호사 부모님이었답니다. 간호사들의 도움을 받은 만큼 학생들 실습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있습니다.”

조 원장이 너싱홈그린힐에서 모셨던 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누구였을까? 바로 알츠하이머병을 앓았던 부친이다. 조 원장은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모실 수 있어서 보람이 있었다”면서 “어머니도 우리 딸이 책임져줄 거라 든든하다고 말씀하신다”고 말했다.

지금도 그녀는 매일 빠짐없이 너싱홈그린힐을 지킨다. 쉬는 날이 없다. 200명이 넘는 입소자의 임종도 거의 놓친 적이 없다. 조 원장은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해드리는 것이 내 임무”라며 “고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에서의 시작을 생각하면 임종은 그분에게 축복의 과정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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