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 터득한 생활 철학

기사입력 2019-02-22 14:45:28기사수정 2019-02-22 14:45
  • 인쇄하기
    글자 크기 작게
    글자 크기 크게

나에게는 조그만 여행용 가방이 있다. 벌써 몇 년째 충실한 동반자 역할을 하며 지구 반대편을 함께 다녔다. 서유럽, 북유럽 등 여러 나라를 다녔고 터키에도 10여 일이나 넘게 동행했다. 옛날에 가지고 다니던 가방은 좀 낡고 작아 새로 구매했는데 귀중품을 넣기에 적당한 크기여서 애용했다. 여행할 때는 어깨걸이 멜빵을 하고 허리띠에 끼워 덜렁거림을 방지하면서 도난의 위험을 막았다. 그렇게 몇 년을 함께했어도 위험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스페인 여행길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철옹성 같았던 가방 문이 열린 것이다. 여행 중 가이드에게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소지품 조심하라는 말이다. 가방 속에는 여권, 신분증, 신용카드, 현금 등 귀중품이 다 들어 있기 때문이다. 소지품을 잃어버리거나 도난당하면 어렵게 온 여행을 망치게 된다. 여권 없이는 꼼짝도 못한다. 유럽은 이러한 가방을 노리는 사람들의 천국이다. 떠돌이 집시들이 많다. 가난한 나라에서 넘어와 일자리 없이 방황하거나 쉽게 돈 버는 일에 빠져든다. 그래서 도난사고가 잦다.

어쨌거나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이런 일을 당한 적이 없다. 내 가방이 안전하다는 믿음이 지나쳤던 걸까? 스페인의 유명한 관광지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다. ‘꽃보다 할배’라는 모 TV 프로그램에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누에보다리’에서였다. 신구 시가지의 경계인 120m 협곡에 놓인 다리 길이는 얼마 안 되었는데 아래로는 완전 벼랑이었다. 내려다보니 아찔했다. 벼랑 위 양쪽에는 조그만 집들이 제비집처럼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었다. 카페도 있어 차를 한잔하는 스릴을 만끽할 수 있었다. 수많은 관광객이 이 기이한 장면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나도 사진을 찍기 위해 자리를 옮겨가며 열중했다.

이때 어디서 겁에 질린 목소리가 들렸다. “아 아저씨~” 마치 비명소리 같았다. “저 사람이 아저씨 가방에서 검은 지갑을 꺼냈어요~” 돌아보니 신혼부부처럼 보이는 젊은 남녀와 시어머니로 보이는 아줌마 한 분이 있었다. 그중 젊은 여자가 내 가방을 뒤졌다고 했다. 곧바로 외국인 3명의 신병을 확보한 뒤 뭘 가져갔느냐고 보디랭귀지로 따지니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았다고 딱 잡아뗐다. 하지만 철옹성 같았던 가방 문은 아무 저항도 못하고 무기력한 듯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가방 속을 살펴보니 다행히 지갑은 있었다. 일행 중 한 명의 외침을 듣는 순간 도로 집어넣은 것이 틀림없었다. 혼자 하지 않고 신혼부부나 가족처럼 여행객을 가장한 3인조 전문 털이범이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행운이었다. 만약 지갑이 털렸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사진을 찍기 위해 팔을 잠시 올렸을 뿐인데 그 틈새를 놓치지 않고 그들은 완벽하게 일을 처리했다. 주위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작전 성공이었을 것이다.

여행 관련 격언이 떠오른다. “등 뒤에 있는 물건은 공동의 것이고, 옆에 있는 것은 나눠 쓰는 것이며, 앞에 있는 것만이 내 것이다.” 여행하는 사람들이 명심해야 할 말이다.

저작권자 ⓒ 브라보마이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