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노예

기사입력 2019-02-27 17:19 기사수정 2019-02-27 17:19

2019년 달력을 받아들고 남은 날들을 선물처럼 소중하게 생각할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2월도 다 가버렸다. 요즘은 시간이 너무 빨리 사라진다. 마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버리는 모래 같다.

사방에서 볼 것들이 쏟아진다. 아침이면 현관 앞에 놓여 있는 두툼한 신문, 광고성 잡지, 텔레비전, 유튜브, 페이스북 등등 모두 내 시간을 탐낸다. 안 봐도 상관없지만 뒤처질까 불안하다. 알아도 별 쓸모없는 것들이라 해도 언젠가는 도움이 될 것 같아 손에서 놓지 못할 때도 있다.

나름 시간을 아껴보려고 전철에 앉으면 손가락 두 개로 다양한 세계를 넘나들며 지식을 모으곤 한다. 그러나 스마트폰에서 손가락을 떼는 순간 그것들은 모두 허공으로 놓쳐버린 풍선처럼 멀어진다.

부의 양극화가 심하다고 난리다. 그런데도 가난한 자들은 여전히 자발적으로 자기 시간을 헌납하면서 돈까지 지불하며 산다. 반면 구글, 네이버, 페이스북 운영자들은 사람들이 스스로 제공한 시간을 돈으로 거둬들인다. 클릭 한 번으로 모르는 이들의 시간을 헐값으로 사들인다.

텔레비전도 마찬가지다. 가끔은 유익한 정보를 접하기도 하지만 먹방 프로그램이 너무 많다. 전 국민을 비만하게 만들겠다는 사명감이라도 지닌 양 신나게 먹는 사람을 보여준다. 시청자들은 대리만족을 하는 대신 돈과 시간을 제공한다.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 동참하기 위해,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기 위해, 즉 사회적 동물로 살아가기 위해 소통을 하는데 살면서 그렇게 많은 것과 소통할 필요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느 날 문득 오가는 말들이 불필요한 소음처럼 느껴진다. 자신의 존재가 잊히고 그래서 침묵이라는 어둠에 묻힐까봐 두려운 나머지 저마다 부풀리고 소란을 떠는 것이다. 그러나 침묵에 온전히 자신을 맡길 때 아름다운 대자연 같은 언어가 다가온다. 소란을 떨 때보다 오히려 더 큰 존재감을 느끼고 헛된 자유가 아닌 진정한 자유를 맛본다. 내 앞에 놓인 시간을 노예가 아닌 주인으로서 맞이할 때 그렇다.

소란 속에서의 존재는 공허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끼어들 수 없는 세계에 사는 사람들을 떠나고 잊는다. 거기 머물러 있을 이유가 없다. 그러면 시간은 온전히 내 것이 되고 나는 조용히 나를 들여다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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