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의 날’로 변질된 스승의 날

기사입력 2019-05-17 15:53 기사수정 2019-05-17 15:53

교사직에서 은퇴한 지 오래됐지만 동네 복지관에서 '할머니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어 여전히 5월 15일 스승의 날과는 연이 이어진다. 가르치는 할머니들보다 나이는 어려도 스승은 스승인지라 할머니들이 다양하게 고마움을 표시하신다. 떡을 싸다 주시는 분, 참기름병을 꼭 쥐여주시는 분, 자양강장제 한 병을 교탁에 올려놓는 분 등 참으로 정이 넘치는 현장이다.

카네이션을 선생님께 달아드리던 학창시절, 카네이션을 받던 교사 생활 시절 모두 가슴 뿌듯한 스승의 날 기억이다. 그러던 스승의 날이 요즘은 이상하게 변질됐다. 김영란법에 교사 직종까지 포함되면서 카네이션도 주면 불법이 되어버린 것이다. 전통적인 스승과 제자라는 관계가 아닌 교사와 학생이라는 점수를 주고받는 관계로 봤기 때문이다. 당연히 학교 현장에서 스승의 날이 실종되었다.

그런데 최근 웃지 못할 현상이 나타났다. 학교에서 스승의 날이 사라진 반면 학원의 스승의 날은 매우 번창하고 있단다. 아이들이 학교에선 자고 학원에서 모든 입시 공부를 하고 있으니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게다가 학원 강사들은 김영란법에 적용받지 않으므로 선물 액수도 장난이 아니라고 들린다. 과목별로 담당 강사에게 모두 선물을 건네려면 20만원은 족히 든다고 한다.

이렇듯 스승의 날이 강사의 날로 변질된 세태는 우리 사회의 왜곡된 가치관과 문화가 그대로 반영됐다고 봐서 크게 틀리지 않다. 스승의 가치는 참된 권위에 있는데 온 나라에 우러러 볼 만한 참 권위가 사라지니 ‘스승’도 없어지는 게 당연한 현상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할머니 학생'들은 다행히 주먹도 휘두르지 않으시고 SNS도 할 줄 모르시니 이만하면 말년에 행복한 교사 생활을 하는 셈이다. 할머니가 짜 주신 참기름은 시중의 어떤 제품보다 고소하기 이를 데 없다. 아차, 참기름은 김영란법에 저촉되지 않는지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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