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책들 중에서 특히 소설류에 빠져드는 이유

기사입력 2019-06-24 11:22 기사수정 2019-06-24 11:22

(사진= 박미령 동년기자 )
(사진= 박미령 동년기자 )
딸애가 오래된 책들을 내놓으며 버려달라고 한다. 표지가 누렇게 바랜 무슨 무슨 개론 따위의 이론서 사이로 얼핏 얼핏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4대 비극’, 희랍 비극‘, 브레히트 연구’ 등 낯익은 책들이 보인다. 보관해 보았자 읽지 않을 것이 분명하지만 왠지 버리기는 아까워 며칠을 그대로 뒀다. 책을 못 버리는 습성은 왜일까? 이사할 때에도 책은 애물단지였다. 짐을 줄여야 하니 어차피 버려야 하지만 이별할 책을 선별하기가 옷 고르기보다 어렵다.

물론 내가 모든 책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계발서나 경영 관련 책은 큰 관심이 없다. 역사서나 시, 소설들을 선호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것은 단연 소설이다. 다른 장르의 글들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고 효용성이 있겠지만, 소설만큼 끌리는 장르는 없다. 어쩌면 그 이유가 소설에는 의미도 효용성도 없기 때문인지 모른다. 소설은 독자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으려 하기에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진정한 자아를 찾게 해주는 게 아닌가 한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이야기를 향한 인간들의 집념을 잘 드러낸다. 주변 사람들은 돈키호테가 지나치게 기사 소설을 많이 읽어 머리가 이상해졌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를 비웃은 인물들도 모두 기사 소설에 심취해 있다는 아이러니를 보여주어 웃음을 자아낸다. 엉뚱한 이야기처럼 보이는 <돈키호테>가 고전의 반열에 오른 것도 인간과 이야기에 관한 이런 놀라운 통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소설가 김영하는 이야기야말로 인간의 DNA라고 했다. 예컨대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 오경’이 이끄는대로 살아가고 자녀를 교육하고 지금도 그 이야기를 따라 살고 있으니 가히 모세 오경이 사회적 유전자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유발 하라리도 그의 역작 <사피엔스>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여러 면에서 우월했던 네안데르탈인을 이기고 지구의 지배자가 된 것이 바로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오늘날 소설 말고도 우리를 즐겁게 하는 것들이 세상에 널려 있다. 하지만 아이들이 몰입하는 게임도 스토리가 없으면 팔리지 않는 세상이다. 이제는 마케팅에도 스토리가 도입되고 있다. 그러니 드라마에 열광하는 여성들이 남자보다 우월한 인간적인 존재라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나는 슬그머니 방구석에 쌓인 책더미에서 ‘희랍비극’과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집어들고 방으로 들어와 책장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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