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동경은] ‘꽃중년’ 유미코의 제2 인생 ‘파도타기’

기사입력 2016-06-07 09:10 기사수정 2016-06-07 09:10

<글> 이태문 동경 통신원 gounsege@gmail.com

NHK방송문화연구 미디어연구부를 책임지고 있는 하라 유미코(原由美子, 1962년생)의 까무잡잡하고 야무진 얼굴에서 관리직의 연륜과 함께 충만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주위에서 엄격한 상사, 철저한 커리어우먼이라고 부를 만큼 한 마디로 일밖에 몰랐던 전형적인 ‘일벌레’로 해외 출장도 잦았다. 주로 미국과 유럽 등을 많이 다녔지만, 정년을 앞두고 10년 정도는 한국, 중국, 몽골 등 아시아 지역으로 출장을 많이 갔다. 특히 한국과 관련해서는 양국 방송에 대한 공동 연구, TV 방송 제작 심포지엄 등에 참가하기 위해 대구, 경주, 제주도 등 각지를 돌았다. 미디어연구부의 업무 때문에 한국의 일본 연구자들과 동아시아, 일본 드라마 등을 조사하고 분석하기 위해 자주 한국을 방문했으며, 사람들과의 교류도 활발했다. 그러다가 쉰 살 무렵 부장을 맡아 현장을 다니는 일보다는 자료 수집과 분석, 조사 등 주로 의자에 앉아 하는 일이 많아졌는데, 가끔 서서 일할 때 다리의 힘이 풀려 휘청하는 등 하반신 근육이 많이 약해진 자신을 발견하고 크게 깨달았다. “사실 20년쯤 전에 수면 부족, 스트레스 등으로 가벼운 안면 마비 증세가 생겼지만 꾸준한 운동 덕분에 많이 좋아졌어요. 앞으로 더 나이를 먹을 텐데, 제대로 서지도 못하거나 일상생활에 불편을 느끼는 일이 더 많아질 걸 생각하니 더 심각해지기 전에 무슨 수를 써야겠다고 다시 한번 마음을 굳게 먹었죠.”

파도와 호흡하는 서핑에 빠져

그래서 58세 때 도전한 것이 서핑이다. 처음에는 근력을 키우기 위해 노를 젓는 타입의 서핑으로 시작해, 현재는 자신의 다리 힘만으로 파도를 타고 방향을 바꾸는 본격적인 보드를 즐기고 있다.

“건강을 위해 스포츠클럽에서 요가와 스트레칭, 체조 등을 해 왔고, 아울러 스탠딩 서핑도 했는데 사실 말이 파도타기일 뿐 스탠딩 서핑은 노를 젓기 때문에 파도가 좀 있으면 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죠. 그래서 이왕 하는 거 어떤 파도든 그 속에서 파도와 호흡하는 본격 서핑으로 바꿨답니다.”

하라 유미코는 줄곧 살던 도쿄(東京)의 집과는 별도로 일본의 대표적인 서프 포인트이자 수많은 서퍼와 서핑 동호회가 즐겨 찾는 가나가와현(神奈川縣)의 치가사키(茅ヶ崎)시에 별장까지 마련할 정도로 서핑의 매력에 흠뻑 빠져 지내고 있다.

“예순 살때 정년 퇴직을 하고 현재는 계약사원으로 일주일에 세 번 출근해 근무 중인데, 도쿄의 집은 화, 수, 목 근무 때 사용하고 치가사키의 집은 금요일부터 월요일까지 이용해 몸과 마음에 휴식을 주면서 심신의 피로를 풀고 있어요.”

서핑을 위해 바닷가 입지를 충분히 살린 세컨드 하우스는 그야말로 그녀의 제2 인생이 꽃을 피우는 곳, 의외로 서핑을 시작하는 중장년들이 많아 서핑 이외에도 그들과의 교류도 삶의 원동력이 된다고. 아울러 스탠딩 서핑은 복근을 사용하고 노를 젓는 근력을 키우지만 본격 서핑의 전신 운동에는 미치지 못하며, 무엇보다 파도를 타면서 자연과 한몸이 됐다는 쾌감은 말로 형용하기 힘들 정도로 짜릿해 정말 배우길 잘했다고 덧붙였다.

모전여전, 다시 찾은 건강 만끽

하라 유미코에게는 어머니(1931년생)와 여동생(1959년생)이 있다.

어머니는 일흔 살 때 지금까지 꾸려오던 양품점을 접자 급격하게 체력이 쇠약해지고 각종 노인병으로 고생했다고 한다. 원인도 모른 채 살이 쭉쭉 빠져 체중이 35㎏밖에 되지 않은 적도 있었고, 급기야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유미코의 극진한 간호와 꾸준한 치료 덕분에 현재는 체중을 55㎏까지 회복했으며, 건강도 되찾아 무엇보다 기쁜 일이라고. 치가사키에서 누리고 있는 제2의 삶에 맞춰 어머니를 노인요양원으로 옮겼으며, 매주 주말 시설을 찾아 오붓한 시간을 즐기고 있다. 건강이 회복된 어머니는 평일에는 노인시설에만 있지 않고, 치가사키에 있는 대학의 공개 강좌를 듣거나 문화센터에서 캘리그라피까지 배우고 있어 지난 10년간 투병 생활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유미코는 혀를 내둘렀다. 뭐든지 열정적으로 그리고 철저하게 살아간다는 점에서 아마도 모전여전일지 싶다. 미술을 전공한 여동생은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현지 일본 요리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친구와 함께 리옹에서 레스토랑을 경영하고 있다. 화가에서 요리사로 변신해 자신이 만든 음식 맛을 보기 위해 찾아주는 손님들과 나누는 행복한 시간이 벌써 16년이 넘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했듯이 이렇게 세 모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와 삶을 놓치지 않고 알뜰하게 만끽하고 있다고 하겠다.

62세 홍일점 바다에 서다

서핑 동호회의 회원은 대개 50대 초반의 중년들이 많은데, 인생의 선배 하라 유미코는 바닷가에서 서핑을 즐기는 유일한 고령의 여자라는 점에서 홍일점. 평일의 바닷가에는 젊은 사람들이 드문 반면, 의외로 중장년층 서퍼들이 꽤 많다고 한다. 골프처럼 필드에 나갈 때마다 돈이 드는 운동과 달리 서핑은 바다와 파도, 그리고 바람을 느끼고 이용하는 공짜 운동이라는 점도 매력이다. 서핑은 매년 3~4월 봄에 시작해 11월 말까지가 시즌으로, 파도를 타지 않을 때에는 유연성과 근력을 키우기 위해 체조 등으로 몸을 만들어 둔다고 한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은 바닷가 구석구석을 청소하는 크린 캠페인에 참가하는 바다 사랑도 실천 중이다. 이어 유미코는 파도의 속성을 알고, 파도를 다스리는 게 아니라 파도에 몸을 맡긴 채 호흡할 수 있게 되면 먼저 일본 바다를 두루 섭렵한 뒤 세계 곳곳의 유명한 서프 포인트를 찾아가 서로 다른 색깔을 지닌 파도를 직접 맛보고 싶다며 눈을 반짝거렸다.

허벅지는 제2의 심장

끝으로 일에 매진하면서 건강을 잃었다가 어렵게 되찾은 경험이 있기에 유미코는 이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좀 더 빨리 했으면 생각하지만, 절대로 늦은 것이란 없습니다. 단지 안 할 뿐이죠. 생각이 있다면 행동에 옮길 것, 이걸 명심했으면 해요. 파도타기를 통해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의 섭리에 맞춰 산다는 가르침을 배웠는데, 일할 때 몰랐던 근육과 신경 등 여러 문제도 알게 되었고, 몸을 움직이면서 크고 작은 문제도 해소되고 몸도 부드러워지고 훨씬 가벼워졌어요. 친구들과 맛있는 것을 먹고 즐길 수 있기 위해서는 몸의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특히, 제2의 심장이라는 허벅지를 지금부터라도 단련해 두면 제2의 인생이 든든해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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