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낙 그림 이야기] 탈춤의 가면에는 우리 문화의 속내가 있다

기사입력 2016-07-29 10:52 기사수정 2016-07-29 10:52

근래에는 ‘가면(假面, Mask)’ 하면 <오페라의 유령(Le Fantôme de l'Opéra)>이 떠오르지만 우리에겐 이것 말고도 상고(上古) 시대부터 전해오는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문화유산 중 하나인 탈(가면을 나타내는 우리말: 李杜鉉, <韓國의 탈춤>, 일지사, 1981)이 있다.

일반적으로 가면은 각 대륙, 각 나라, 각 민족마다 고유한 형태를 띠고 있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도 민속 전통의 가면이 간혹 특정 지역 행사의 상징물로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이 쇠퇴한 ‘유물’ 정도의 취급을 받는 게 현실이다.

반면 아프리카, 특히 사하라 사막 이남의 검은 대륙에서는 지금도 부족마다 다른 특유의 ‘아프리카 가면(African Mask)’을 만날 수 있다. 아울러 아프리카 가면의 조형미적 특성이 현대 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는 게 중론이다. 이는 1973년 현대 미술의 거장 피카소(Pablo Picasso,1881~1973)가 죽은 후 그의 아틀리에에서 아프리카 가면과 함께 많은 목각 예술품이 쏟아져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아프리카나 남태평양 군도에 널리 퍼져 있는 다양한 가면은 대부분 주술적(呪術的) 기능을 가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반면 중국의 경극(京劇), 일본의 노(能) 그리고 한국의 탈춤놀이는 예능 가면극 중에서도 무용 가면(Dance mask)보다는 연극 가면(Drama mask)에 속하는 공통점과 특성이 있어 흥미를 자아낸다.

특히 한국, 중국, 일본의 가면을 시각적 차원에서 살펴보면 실로 삼양삼색(三樣三色)이어서 3국 문화의 속내를 들여다보는 듯하다.

먼저, 경극에 등장하는 가면(자료1)은 중국의 오랜 역사와 얽혀 있는 전설적 스토리를 표현하는 것이어서 화려하지만 강압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마치 사찰 초입에 있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을 보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일본이 자랑하는 대표적인 가면(자료2)인 능면(能面)은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조금은 애매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일본인이 자기네들 속마음을 쉽게 보이지 않는 걸 일컫는 ‘혼네(ほんね)’를 그대로 보는 듯싶다.

그렇다면 한국 탈춤에 등장하는 가면은 어떠할까?

우리네 탈은 이름부터가 범상치 않다. ‘옴중탈’: 옴(疥癬, Scabies) 진드기에 걸린 중(僧), ‘문둥탈’: 한센병으로 고생하는 사람, 미얄할미탈: 안면에 주근깨(Freckle)가 쌀알처럼 가득한 할머니, 신할비탈: 백반병(白斑病) 증상을 보이는 할아버지 등 이름만 들어도 해학이 넘쳐난다.

그중 경기도 양주의 송파 별산대(別山臺)에 등장하는 ‘취발이탈’(자료 3)은 술에 만성적으로 취한 자(醉漢) 또는 몹시 취한 중(醉僧), 일괄해서 주정꾼을 표현한 탈이다. 그 가면에서는 만성 알코올중독자의 피부 증상을 쉽게 볼 수 있다. 1) 만성 주객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홍안(Red face), 2) 이마에 깊게 파인 주름살, 3) 안면에 있는 뾰루지(毛囊炎, folliculitis) 등이 그것이다.

만성 알코올중독으로 인한 면역력 저하 때문에 생기는 염증(濃), 홍안과 깊은 주름을 이처럼 교과서적으로 꾸밈없이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은 아마도 우리의 가면이 세계에서 유일할 것이다. 다시 한 번 우리의 문화 코드인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를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유산이 아닐 수 없다.



>> 이성낙(李成洛) 현대미술관회 회장

독일 뮌헨의대 졸업(1966), 연세대의대 피부과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가천의과대학교 총장, 가천의과학대학교 명예총장(현), 한국의약평론가회 회장(현), 간송미술재단 이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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