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64) 씨는 2019년 60세에 KT&G에서 정년퇴직했다. 본래 전매청(재무부에 속해 담배·인삼 등의 전매를 담당하던 기관) 공무원으로 입사한 그는 거의 40년 동안 회사에 몸담으며 열심히 일했다. 시설관리, 생산관리, 영업 업무 등을 맡아서 했다.
김병준 씨는 은퇴 후 기술을 갖고 싶었다. “이론은 많이 아는 편인데 실무적인 지식은 부족하다고 느꼈다”는 그는 한국폴리텍대학 익산캠퍼스를 다니면서 학업에 열중, 국가기술자격증을 연이어 취득했다.
2020년 상반기, 김병준 씨는 특수용접과 에너지설비 교육 4개월 과정을 들었다. 고등학생 때 배관기능사를 취득한 터라 연계해서 자격증을 취득하면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교육을 들은 후 에너지관리기능사 자격증을 바로 취득했다. 취득이 어렵지 않은 온수온돌기능사 자격증도 동시에 땄다.
이어 2020년 하반기에는 전기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2021년에는 용접 기술을 익히기 위해 산업설비 1년 교육과정을 들었다. 용접기능사 자격증과 함께 공조냉동기계기능사, 승강기기능사도 취득했다.
다수의 자격증을 취득한 김병준 씨는 2022년 1월 1일 취업에 성공했다. 현재 그는 한 초등학교에서 시설관리 업무를 맡고 있다. 그는 “공석이면 취업이 쉽지만 아닐 경우 어렵다”면서 “나중에 들으니 내가 자격증이 많아서 뽑았다고 하더라”고 설명했다.
“에너지관리기능사가 하는 일을 단순하게 보일러를 설치하고 열 관리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워요. 그런데 열을 경제적이고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일은 전문성을 필요로 합니다. 안전사고에 대해서도 컨트롤해야 하죠. 저는 학교에서 일하다 보니 안전사고 예방에 특히 신경 쓰고 있습니다.”
김병준 씨는 여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던 비결로 “필기와 실기시험이 서로 겹치는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공부하지 않으면 시험에 떨어지기 쉽다고 충고했다. 에너지관리 분야 필기시험은 그중에서도 어려운 편에 속하며, 계산 문제를 어려워하는 사람이 많다는 전언이다. 김병준 씨는 공부에 어려움을 겪을 시니어들을 위해 자신의 공부법을 전했다.
“저만의 공부법이 있어요. 자격증 시험 대비용 책을 사면 소설책 읽듯이 쭉 한 번 읽어봅니다. 그다음에 문제를 풀어보면서 내용을 확인해요. 그러면 머릿속에 내용이 각인되어 잊어버리지 않고, 시험 점수도 잘 나오더라고요.”
김병준 씨는 “기능사 자격증을 따면 산업기사, 그다음에 기사, 기능장 자격증을 따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면서 “기능사 자격증은 상위 자격증을 딸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는 점이 매력이다”고 말했다. 김병준 씨의 올해 목표는 에너지관리기능장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이다. 관련 경력을 인정받아 기능장 자격 조건을 갖췄다. 그는 동년배들에게 국가기술자격증 취득을 추천했다.
“은퇴 전에 여유를 갖고 제2의 인생을 준비하면 좋을 것 같아요. 국가기술자격증을 갖고 있으면 분명히 도움이 되는 부분이 많거든요. 자격증 공부를 하다 보니 재미를 느껴서 더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요. 좋은 국가기술자격증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에너지관리기능사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저처럼 시설관리나 설비 분야로 취업할 수도 있고, 경력을 쌓아 기계설비유지관리자 선임이 되면 수입도 안정적이기 때문이죠. 저와 동년배인 중장년층에 특히 유망한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2023년 키덜트의 시대가 오고 있다. 키덜트(Kidult)는 아이(Kid)와 어른(Adult)의 합성어로 아이와 같은 감성과 취향을 가진 어른을 뜻한다. 100세 시대가 도래하면서 중년의 키덜트가 늘어나고 있다. 사회와 문화 전반에서 주류로 떠오른 중년 키덜트의 파급력과 그 이유를 짚어봤다.
김난도 서울대학교 교수는 저서 ‘트렌드 코리아 2023’에서 ‘네버랜드 신드롬’을 언급했다. 네버랜드는 피터팬과 친구들이 늙지 않고 영원히 아이의 모습으로 사는 곳이다. 책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나이 들기를 거부하는 피터팬이 많아지는 트렌드를 ‘네버랜드 신드롬’이라고 표현했다. 쉽게 말하면 대한민국 전체가 더 이상 나이 들고 싶어 하지 않는 시대가 도래했다.
네버랜드 신드롬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첫 번째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리턴(Return) 유형이다. 배우 한소희가 착용해 3000원짜리 공주 세트가 돌풍을 일으킨 것, 포켓몬 빵 품절 대란 등을 이 유형의 예로 들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키덜트는 리턴 유형에 속한다.
네버랜드 신드롬의 두 번째 유형은 스테이(Stay)로, 나이 듦을 거부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 유형의 사람은 동안 외모를 유지하는 것을 넘어 승진을 마다하면서까지 현 상태에 머물고자 한다. 세 번째로는 아이들처럼 쉽고 재밌고 명랑하게 노는 것을 좋아하는 플레이(Play) 유형이 있다.
고령화 시대와 키덜트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키덜트 시장 규모는 2014년 5000억 원 수준에서 지난해 1조 6000억 원으로 확대됐다. 향후 최대 11조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키덜트는 비단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시장을 주름잡은 주력 세력이다.
키덜트가 급부상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 근본적인 이유는 전 세계가 빠르게 늙어간다는 데 있다. 인간의 수명이 길어지면서 사회가 유년화되고 있다. ‘이 나이 때는 무엇을 해야 한다’는 식의 사회적 나이 개념이 흐려지고 있다.
키덜트는 어린 시절 가지고 놀았던 추억의 장난감, 만화책, 만화영화 등을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소비하는 현상을 보인다. 그런 키덜트를 향한 시선은 몇 년 전만 해도 부정적이었다. 유치한 취향을 가진 철없는 어른으로 봤다.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스스로 어른임을 인정하지 않은 채 타인에게 의존하고 싶어 하는 ‘피터팬 증후군’으로 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키덜트를 향한 시선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어른은 이래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의 장막이 걷히자 개인의 취향을 존중해주는 시대가 됐다. 이로 인해 자신의 취향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키덜트가 늘어났고, 소비 시장 또한 커졌다. 자녀와 함께 취미 생활을 즐기는 키덜트 부모도 많아졌다. 드론, 무선조종 자동차, 레고 등을 가족이 함께 즐기며 유대감을 쌓는다.
키덜트가 급증한 두 번째 원인으로 미래 불안감이 거론된다. 키덜트는 불안한 미래와 힘든 현실로 인해 어린 시절 행복했던 추억에 젖으며 위안을 얻고자 하는 심리가 작용한 것이라고 본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실내 활동이 증가하면서 장난감 시장이 크게 성장했다.
트랜스포머 시리즈로 유명한 장난감 회사 해즈브로는 2019년 47억 2000만 달러에서 지난해 64억 2000만 달러로 순수입이 증가했다. 동기간 바비 인형 회사 마텔의 순매출은 45억 달러에서 54억 6000만 달러로 늘었다.
문화 발전과 중장년 키덜트의 성장
현재 시장을 주름잡는 키덜트의 중심에는 중장년층이 있다. 그 이유는 뭘까. 스타워즈, 포켓몬 등을 보유한 장난감 회사 재즈웨어스의 제러미 파다워 최고브랜드책임자는 CNBC에서 “1970~80년대에 영화와 TV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한 장난감이 크게 유행하면서 이 시기에 팬덤을 경험한 세대가 현재 30~40대에 접어들었다. 이 사람들이 키덜트의 시작이 됐다”라고 말했다.
현재 상영 중인 극장판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이노우에 다케히코 감독)가 흥행하는 것을 봐도 중장년층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개봉 2주 만에 누적 관객 100만 명을 돌파했다. 새해 첫 100만 영화다. 1990년대 만화 ‘슬램덩크’를 즐겨 본 중장년층이 오래 간직한 팬심을 드러냈다고 풀이할 수 있다.
유튜브 채널 ‘오덕사’(오리엔탈 덕후 사관학교)를 운영 중인 라이너는 게임에 주목해 말했다. 그는 “중장년층을 1980년대생이라고 생각한다. 1980년대생은 게임에 익숙한 세대다. 게임을 하기 위한 용도로 컴퓨터를 구매할 정도였다”면서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어도 게임을 취미로 이어가는 것이다. 중장년층은 나이를 아주 많이 먹어도 게임을 계속할 것이다”라고 생각을 전했다.
종합하면, 세상은 나이 들어가는데 사람들은 젊어지고 있다. 나이보다 젊게 사는 것이 미덕인 시대가 됐다. 앞으로 키덜트는 더욱 많아질 것이며, 개인과 사회에 순기능으로 작용할 것이다. 개인에게는 어린 시절의 향수로 심리적 안정감을 얻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창구가 된다. 시장 및 사회는 키덜트로 인해 활기와 역동성을 잃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오덕사’ 교장 선생님, 라이너
“중장년 키덜트여,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영화평론가로 유명한 유튜버 라이너는 채널 ‘오덕사’(오리엔탈 덕후 사관학교)에서 교장 선생님을 맡고 있다. 오덕사는 만화·애니메이션·게임을 심도 있게 분석해 소개하는 채널이다. 채널의 주요 연령층은 30·40대다.
“10·20대부터 40대 중반까지, 오덕사 구독자분들의 연령층은 다양합니다. 그중 30·40대가 제일 많은데요. 중장년층은 아무래도 추억의 만화, 애니메이션 콘텐츠를 좋아하시더라고요. ‘기생수’, ‘에반게리온’을 소개했을 때 반응이 특히 뜨거웠죠.”
스스로 키덜트라고 말하는 라이너.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공유하고 싶어서 만든 채널이 바로 오덕사다. 라이너는 어렸을 때부터 비범했다. 만화방, 비디오방을 전전하는 것을 넘어 해적판 비디오를 구하러 용산을 찾아가곤 했다고. “친구들은 전혀 모르는 세계를 알고 있었다”고 덧붙이며 웃었다.
“만화나 애니메이션뿐 아니라 게임도 좋아했고, 영화와 소설도 굉장히 많이 봤어요. 문화 전반에 관심이 많았죠. 김구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저는 문화의 힘이 되게 중요하다고 믿거든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물론 과학기술이겠지만, 그 이상으로 문화와 예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의 문화생활은 라이너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만화 또는 애니메이션 중 그의 인생작은 무엇일까. 라이너는 ‘초시공요새 마크로스’의 극장판 ‘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를 꼽았다. 마크로스는 거대한 우주선인데, 지구가 멸망하면서 마크로스에 탄 사람들이 마지막 인류가 된다. 그들은 외계인 젠크라디와 싸움을 벌인다.
“외계인 젠크라디에게는 한 가지 약점이 있었어요. 바로 문화를 가지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인류는 머리를 쓰죠. 마크로스 안에 당대의 아이돌 가수 린 민메이가 있었는데, 우주 콘서트를 펼치죠. 음악을 듣고 젠크라디들은 붕괴됩니다. 거기서 ‘컬처 쇼크’(문화 충격)라는 말이 처음 나왔어요. 제 영화 유튜브 채널 이름도 ‘라이너의 컬쳐 쇼크’죠. 1980년대에 그런 스토리가 나왔다니, 정말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덕사에서 다루는 콘텐츠 중 게임의 비중은 적지만, 라이너는 여전히 게임도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슬픈 이야기가 있다”고 털어놓았다. 어렸을 때는 수중에 돈이 없어서 게임을 즐기지 못했는데, 현재는 시간이 없어서 게임을 못 한다고. “게임을 하고 싶은 마음은 커서 게임 패키지를 삽니다. 그런데 시간이 없으니 상상으로만 게임을 하고 진열장에 넣어두죠. 그렇게 쌓인 게임이 한가득이에요.”
라이너는 키덜트인 자신의 취미 활동에 대한 장점을 늘어놓았다.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은 특별한 장비 없이도 할 수 있는 경제적인 취미 활동이다. 또 누구를 상처 입히거나 피해를 주지 않기 때문에 건전한 취미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키덜트로 살 것이라는 라이너는 동년배 중장년층에게 자신처럼 ‘덕후’가 될 것을 추천했다.
“중장년층에게 애니메이션을 즐겨 본다고 해서, 게임을 좋아한다고 해서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나쁜 짓 하는 게 아니잖아요. 어렸을 때나 하던 유치한 것을 즐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숨은 명작이 많다는 사실을 모르는 거죠.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취미 활동을 당당하게 즐기면서 ‘원더풀’한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서울시가 8년 만에 지하철과 버스 요금을 인상할 예정이다. 이번 요금 인상은 지방자치제(이하 지자체)의 교통약자 지하철 무임수송 제도와 연관 깊다. 노인과 장애인 등 노약자는 지하철을 무임승차 하는 혜택을 누리고 있는데, 지자체는 정부의 예산 지원이 이뤄지지 않아 적자를 겪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노인 인구가 늘어나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만큼 노인의 지하철 무임승차는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서울시, 대중교통 요금 인상되나
지난달 24일 서울시는 “시는 지하철·버스 요금을 올해 4월 올리는 것을 목표로 다음 달 중 공청회, 시의회 의견 청취, 물가대책심의위원회 심의 등 관련 절차를 진행할 방침이다”라고 밝혔다.
시는 300원과 400원 인상안을 각각 제시한다. 현재 서울 대중교통 일반 요금은 카드 기준으로 지하철이 1250원, 시내버스는 1200원이다. 이번에 요금이 인상되면 2015년 6월 이후 약 8년 만이다.
이번 요금 인상은 올해 정부 예산안에서 지방자치단체 도시철도 PSO(공익서비스에 따른 손실 보전 지원) 예산이 제외된 데 따른 것이다. PSO 예산은 노인과 장애인 등 노약자 무임수송에 따른 비용을 보전해주기 위해 책정된다.
정부는 그간 철도산업발전 기본법 제32조에 근거해 코레일에만 PSO 예산을 지원했다. 서울교통공사 등 각 지자체에서는 예산 지원을 줄곧 주장했으나, 지난해 정부는 코레일에만 3979억 원을 지원하는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11월 24일 지방자치단체 도시철도 손실 보전분 3585억 원을 추가로 반영해 총 7564억 원의 수정안을 의결했다. 이는 본회의에서 다시 뒤집혔다. 교통위의 수정안이 아닌, 코레일 손실 보전만 반영한 정부의 원안이 통과됐다.
이에 따라 오세훈 서울시장은 “정부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요금 인상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지자체가 적자를 겪고 있는 가운데, 무임수송제도를 이용하는 교통약자의 80%는 노인이다. 더욱이 올해부터 1958년생이 만 65세가 되고 노인이 많아짐에 따라 더 이상의 요금 유지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13개 광역·기초 지자체로 구성된 전국도시철도운영 지자체협의회에 따르면 전체 지하철 공기업들의 2017~2021년 연평균 당기순손실은 1조 3509억 원이다. 이 가운데 무임수송 손실은 5504억 원으로 40%를 차지한다.
서울 지하철 1~8호선을 운영하는 교통공사의 같은 기간 연평균 당기순손실은 7458억 원, 무임수송 손실은 43%인 3236억 원이다. 설상가상 코로나19로 승객이 줄면서 적자가 심해졌다. 2019년 5865억 원에서 2020년 1조 1137억 원, 2021년 9644억 원을 기록했다. 2021년 적자에서 무임수송이 차지하는 비중은 29%(2784억 원)다.
“절충안 마련되어야” 목소리도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지자체의 고민은 깊다. 노인 지하철 무임수송은 강행규정이 아니기 때문에 지자체에서 중단할 수 있다. 그러나 40년간 중앙정부 주도로 시행한 일종의 복지 제도를 지자체가 일방적으로 중단하거나 제도를 변경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노인 지하철 무임수송은 1984년 당시 전두환 대통령 지시로 도입됐다. 이후 국가유공자, 장애인, 독립유공자 등으로 확대됐다. 도입 당시만 해도 전국의 노인 인구 비율은 5.9%에 불과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 노인의 비율은 18%에 이른다.
노인 지하철 무임수송은 임의규정이다. 노인복지법 제26조에는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는 65세 이상인 자에 대해 공공시설을 무료 또는 할인해 이용하게 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반면 장애인 지하철 무임수송은 강행규정으로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러나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지자체가 노인 무임수송을 중단을 도입하기에는 현실적인 부담이 크다. 무엇보다 노인들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2018년 보건복지부가 전국 만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실태 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지하철 무임승차에 대해 67.6%(매우 동의 11.7%, 동의 55.9%)가 ‘유지를 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또한 노인의 지하철 무임승차가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교통연구원은 2015년 발표한 자료를 통해 “노인의 지하철 무임승차는 노인 활동을 증가시켜 자살 및 우울증 감소, 교통사고 감소, 의료비 절감 등 총 3361억 원의 편익을 발생시킨다”고 분석했다.
즉 이와 같은 상황에서 정부의 예산 지원이 힘들다면, 정부 차원에서 절충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령화 사회인 만큼 무임승차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노인의 연령을 만 65세에서 70세로 상향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2021년 서울연구원은 “노인 연령을 기존 만 65세에서 만 70세로 상향할 경우 무임손실을 최대 34%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이밖에 노인의 무임승차 이용을 복잡한 출퇴근 시간 이외에 가능하도록 지정하거나, 한 달에 일정 시간만 이용 가능할 수 있도록 한도제를 적용하자는 의견도 제시된다.
코로나19로 비대면이 확산되면서 셀프 계산대가 늘었다. 음식을 주문하는 키오스크뿐 아니라 마트처럼 물건을 사는 곳에서도 스스로 바코드를 찍고 계산하는 ‘셀프 계산대’가 많아진 것. 운영 측면에서는 효율적일지 모르지만, 이용법을 모르는 고령자에게는 무척 곤란한 시스템이기도 하다. 최근 일본에서는 셀프 계산대의 ‘빠름’과 반대로 ‘느림’을 강조하는 ‘슬로레지’(スローレジ)가 퍼지고 있다.
천천히 계산하는 ‘느린 계산대’
최근 일본에서는 ‘슬로 레지’(느린 계산대)가 주목받고 있다. 영어로 ‘느린’을 뜻하는 slow와 일본어로 ‘계산대’를 뜻하는 レジ의 합성어다. 슈퍼마다 부르는 이름과 운영 방법 등은 조금씩 다르지만 고령자나 장애인을 위해 ‘천천히 계산해도 되는’ 계산대를 따로 만들었다. 빠른 계산과 효율성을 강조하는 셀프 계산대와는 반대되는 행보다.
느린 계산대는 2019년 이와테현 타키자와시 슈퍼마켓에서 처음 시작됐다. 치매가 있는 고객을 위해 자원봉사자들이 계산을 도와주면서 ‘슬로우 쇼핑’이라는 개념이 소개됐다. 이후 후쿠오카 현(福岡県) 유쿠하시 시(行橋市)의 유메타운 미나미유쿠하시(南行橋) 지점에서 2020년 7월부터 시범적으로 ‘슬로 레지’라는 고령자 전용 라인을 설치해 운영했다. 이 지점 쇼핑객의 약 40%가 60대 이상인 것을 반영한 조치였다. 처음에는 월 2회 오후 2시간만 운영했는데, 이용자들의 호평이 이어지면서 2021년 1월부터는 상설 가동하고 있다.
느린 계산대에 있는 직원들은 ‘천천히 말하고, 고객의 이야기를 잘 들으며, 늦어도 괜찮다고 말해줄 것’을 교육받는다. 더 특별한 점은 이 계산대를 치매가 있는 고령자도 이용할 수 있도록 직원 중 40여 명이 ‘치매 서포터 양성 강좌’를 수료한 뒤 현장에서 활동한다는 점이다. 점원들의 배려가 입소문이 나면서 점포를 이용하는 사람이 더욱 늘었다. 유메타운은 해당 지점 외에 약 64개의 점포에도 느린 계산대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후쿠이(福井)현의 생활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식품매장 허츠(Hearts)는 2022년 ‘느긋하게 레인’(ゆっくりレーン)을 시범 운영했다가 반응이 좋아 4월부터 전 점포에 도입했다. 처음에는 주 1회로 운영했지만 11월부터는 매일 운영한다. 느긋하게 레인에는 ‘바쁘신 고객들은 별도의 계산대를 이용해 주세요’라는 안내 배너를 설치해 고령자가 초조해하지 않고 계산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또한 고령자 전용 계산대에 있는 직원들에게는 전용 매뉴얼을 만들어 교육한다. ‘큰 소리로 또박또박 발음할 것, 무거운 바구니는 옮겨줄 것, 영수증은 별도로 전달할 것’ 등을 특별히 강조한다. 지역 인구의 절반이 고령자가 되어가는 일본에서 고령화 시대에 발맞춰 느린 계산대의 도입 필요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바코드는 직원이, 계산은 고객이 ‘세미셀프 계산대’
느린 계산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긴 하지만, 아직 대중화된 건 아니다. 일본의 슈퍼마켓이나 마트에서 볼 수 있는 계산대는 보통 세 가지다. 바코드로 물건을 찍는 것부터 계산까지 모두 직원이 해주는 ‘일반 계산대’, 바코드는 직원이 찍어주지만 정산은 본인이 하는 ‘세미셀프 계산대’, 이 모든 과정을 스스로 하는 ‘셀프 계산대’다.
일본의 ‘2021년 슈퍼마켓 연차통계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279개 기업 중 셀프 레지(셀프 계산대)를 설치한 기업의 비율은 23.5%에 달한다. 51개 점포 이상을 보유한 대기업의 경우 70.6%의 설치율을 보였다. 그만큼 셀프 레지 이용자도 늘었다. 야후 뉴스와 IT미디어 비즈니스가 공동으로 진행한 온라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7.8%가 셀프 계산대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거나 ‘가끔 사용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셀프 레지라고 해서 인력이 전혀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항상 근처에 직원이 있어서 사용법을 알려주거나, 오류가 나면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일본에서는 ‘세미셀프 레지’(세미셀프 계산대) 설치율이 더 높다.
‘2021년 슈퍼마켓 연차통계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기업 중 세미셀프 계산대 설치율은 72.2%에 달한다. 대기업(51개 점포 이상 보유) 설치율은 94.1%로 대부분이며, 지역밀착형(4~10개 점포 보유) 슈퍼도 71.8% 설치율을 보였다. 1~3개 점포를 운영하는 지역 슈퍼에서도 58%에 달하는 곳이 세미셀프 계산대를 운영한다. 반면 지역밀착형이나 지역 슈퍼는 셀프 계산대 설치율(각 39.3%, 12.8%)이 낮은 편이다.
우리나라도 코로나 이후 대형마트나 편의점에서 셀프 계산대 도입이 크게 늘었다. 특히 편의점의 경우 주간에는 직원이 상주하고 야간에는 무인으로 운영하는 ‘하이브리드 점포’가 늘었다. 일본의 세미셀프 계산대는 무인점포와는 조금 다른 개념이다. 계산 방법에 있어서 직원의 개입이 얼마나 되느냐는 정도의 차이일 뿐 항상 직원이 있기 때문이다. 셀프 레지조차 근처에 1~4명의 직원이 대기하며 고객의 불편함을 주시하고 도와준다.
지역으로 갈수록 셀프 레지 설치율이 낮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형 슈퍼야 직원이 많기에 셀프 레지에 도움을 줄 직원을 둘 수 있지만, 인원이 적은 슈퍼일수록 오히려 셀프 레지가 할 일이 더 많아지는 셈이기 때문이다.
외로움과 고독 줄여주는 ‘커뮤니케이션 계산대’
느린 계산대는 일본 이전에 유럽에서부터 시작했다. 영국에서부터 시작된 ‘슬로우 쇼핑’은 프랑스, 네덜란드 등으로 퍼졌다.
유럽의 느린 계산대는 ‘대화를 한다’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네덜란드의 슈퍼마켓 윰보(Jumbo)는 2021년 ‘수다 전용 계산대’를 설치했다. 전체 점포의 약 30%에 해당하는 200개 점포에 도입했다. 이는 네덜란드의 75세 이상 고령자의 33%가 외로움을 느낀다는 조사에서 시작됐다. 외로움은 건강에 영향을 주기 때문. 혼자 살며 고독한 노인들이 계산할 때만이라도 누군가와 대화하며 외로움을 해소하기를 바라는 뜻으로 시작됐다.
프랑스의 까르푸 등 대기업이 운영하는 슈퍼에는 코로나19 유행으로 고독감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해 ‘수다 전용 계산대’를 만들었다. 생필품을 사기 위해 늘 들르는 슈퍼에서 잠시 계산원과 이야기를 나누어도 좋다는 취지다. 2022년 1월에 시작된 ‘수다 계산대’는 한 달 만에 150대로 늘었다. 뜻밖에 10대부터 고령층까지 매우 다양한 연령층이 이용한다고.
이미 세계에서 고령화율이 가장 높고, 2025년 단카이 세대(1947~1949년에 태어난 일본의 베이비 붐 세대)가 노인이 되는 시점에서는 고령 친화적인 장치들이 더욱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이 나온다. 이미 녹색 신호등 점등 시간을 늘리거나, 백화점의 에스컬레이터 속도를 느리게 하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시간을 연장하는 등 고령자가 편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고 있다.
일본의 주요 언론은 고령 친화 사회의 맥락에서 느린 계산대나 세미셀프 계산대의 장점으로 ‘커뮤니케이션’을 꼽는다. 뒷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계산대라는 점도 물론 좋지만, 이 과정에서 계산원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게 더 큰 효과가 있다는 것. 또한 치매 노인이 스스로 물건을 구매하고 갈 수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치매 전문의 칸노 토시아키(紺野敏昭)는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치매가 있는 사람도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하고 싶어한다”면서 “쇼핑을 스스로 하면서 주체성을 확인하고 사회와 접점도 생긴다”고 느린 계산대 도입 필요성을 설명했다.
세상은 늙음을 가리켜 ‘지루하고 멋지지 않다’고 말한다. 탄성을 자아내는 멋진 패션은 오롯이 젊음의 몫인 양 분리한다. 영어 문화권에서는 유행에 뒤떨어진, 구식의 무언가를 칭할 때 ‘Old-fashioned’라는 표현을 사용할 정도다. 여기에 젊은 작가가 반기를 들었다. 김동현(30) 사진작가는 노인 ‘스트리트 패션’을 필름 사진에 담았다. 그의 사진을 접하면 감탄하게 될 것이다. ‘참 멋있다.’
스트리트 패션(Street Fashion)이란 단어 뜻 그대로 길거리 사람들의 패션이다. 젊은 세대의 유행에서 시작되는 영역이라, 수많은 잡지를 장식한 스트리트 패션 사진에는 옷차림에 신경 쓴 청년들이 가득했다. 노인과 묶어 생각하는 경우는 없었다.
김동현 작가는 2019년 동묘에서 우연히 그럴 기회를 얻었다. 가볍게 카메라를 들고 나섰다가 멋진 할아버지를 찍게 된 것. 그는 젊은 멋쟁이 사진을 찍던 때와는 다른 종류의 떨림을 느꼈다고 했다. 그렇게 시니어의 스트리트 패션을 주구장창 찍는 전문 사진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국내에선 단발성 프로젝트를 제외하면 그가 최초다.
‘나만 찍을 수 있다’는 확신
작업 반경은 동묘에서 남대문 인근, 인사동까지다. 50대에서 80대 사이의 멋쟁이 어르신을 발견하면 슬금슬금 다가간다. 인사와 함께 명함을 건넨다. “저는 이런 사진을 찍는 사람인데, 선생님 사진을 멋지게 찍어드리고 싶습니다.”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려둔 사진 중 피사체로 점찍은 분이 좋아할 만한 사진을 골라 보여드린다. 운 좋게 허락이 떨어지면 신중히 촬영을 한다. 촬영 후에는 초상권 사용 허가와 출판에 대한 동의를 무조건 받는다. 혹 촬영한 다음이라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사진은 폐기한다.
그의 연장은 필름 카메라다. 필름 위에 사진 36장을 다 찍고 현상과 인화 과정을 거쳐야만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지만 계속해서 필름 카메라를 사용할 생각이다. 필름 카메라 사진의 투박함이 오랜 시간에 걸쳐 쌓인 멋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것 같아서다. 인화한 사진은 선물하거나, 사진 파일을 카카오톡 메시지로 보낸다. 이 모든 과정이 사진 촬영의 과정이자 소통이라고 생각하기에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 덕분에 카카오톡 친구 목록에는 촬영 날짜와 ‘디올 어머님’, ‘힙스터 아버님’, ‘부족장 아버님’ 같은 별칭으로 기록된 멋쟁이 노인들이 빼곡하다. 가끔은 ‘오늘 옷을 멋지게 입었는데 촬영하러 나오지 않느냐’는 연락을 받기도 한다.
“2021년에 유명 패션 잡지 ‘보그 코리아’에서 연락을 받고 작업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제 자신을 갈아 넣다시피 작업했어요. 걸어 다니는 그 잠깐 사이에 피사체를 놓칠까봐 자전거를 타고 다녔죠. 동묘앞역에서 시작해 남대문, 청계천, 신세계백화점 본점 앞 사거리를 매일같이 다녔어요. 마땅한 벌이가 없던 때라 개인적으로 많이 힘들었지만, ‘200번 거절당하면 10장은 건지겠지’라는 생각으로 매일 거리에 나갔어요. ‘이 일은 나만 할 수 있는 일이다’라고 속으로 되뇌면서 카메라 셔터를 눌렀죠.”
이렇다 할 경력이 없던 그가 시니어 스트리트 패션 전문 사진작가로 거듭나는 과정은 고난의 길 그 자체였다. 건설 현장에서 막일을 하고, 동대문 창고에서 짐을 날랐다. 그렇게 번 돈을 모두 촬영하는 데 썼다. 하지만 고생스러운 촬영을 거듭할수록 그에게는 확신이 생겼다. 이런 사진을 ‘나만큼 노력해서 찍을 수는 없을 것’이라는 확신, 인스타그램 피드를 채워가는 결과물에 자신감이 붙었기 때문이다.
유명인의 사진 몇 장으로 동묘가 한순간 ‘힙’의 성지로 재탄생하는 것을 지켜보며 다시금 확신을 얻었다. 2018년 세계적인 디자이너 키코 코스타디노브가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가 인스타그램에 직접 찍은 동묘의 어르신들 사진 몇 장과 ‘세계에서 가장 멋진 거리’(best street in the world)라고 적어 올리자 언론이 해당 소식을 일제히 퍼 날랐다. 그렇게 동묘는 새로운 패션의 성지로, 노인의 패션이 ‘힙’한 것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동묘는 ‘고루한 노인들만 모여 있는 동네’이고, 그곳의 패션은 ‘멋지지 않은 것’이었어요. 그런데 낯선 거리를 흥미롭게 여겼던 유명한 외국인의 게시글 하나로 인식이 한순간에 뒤집혔죠.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생각했어요. 이 사진을 계속 찍다 보면 나도, 내 작업물도 언젠가 빛을 보겠구나.”
3년이 넘어가는 요즘도 운이 좋아야 하루에 서너 명의 어르신을 찍는다. 주말 내내 사진 한 장 못 건질 때도 있다. 스트리트 패션 사진의 특성상 처음 보는 일반인을 붙들고 사진 촬영을 해야 하기 때문에 허탕 치는 날이 많다. 하지만 김동현 작가는 굴하지 않고 서울의 멋쟁이 노인들을 찾아 주말마다 거리로 나선다.
젊음은 따라 할 수 없는 ‘멋’
그가 피사체를 선정하는 기준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젊은 사람도 공감 가능한 스타일(왼쪽 사진)이거나 스타일에 신경 썼다는 것이 느껴질 때(중간 사진), 혹은 독특하고 뚜렷한 스타일이 있다면(오른쪽 사진) 섭외를 시도한다. 세 번째는 스타일만큼 성격이나 주관이 단단한 분들이 많다. 맷집과 시간을 무기로 내세우는, 수천 번 거절당해본 김 작가도 섭외하기 만만치 않다. 하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은 절대 시도하지 않을 천연색 정장, 과감한 단청 무늬 티셔츠 차림은 작가로서 가장 욕심나는 피사체다. 또 한 번 거절당할 각오를 하며 명함을 내밀 수밖에.
젊은 사람 눈에도 멋있어 보이고, 누가 봐도 신경 썼음이 느껴지는 옷차림도 마찬가지다. 거울 앞에서 고민했을 모습이 그려지면 셔터를 누르지 않을 수 없다. ‘오늘 어떤 양말을 신을지’, 혹은 ‘오늘 입은 옷에는 어떤 형태의 모자를 써야 좋을지’. 웬만한 20대보다 옷 잘 입는 어르신들을 수두룩하게 만난 그로서는 나이 듦으로 멋의 유무를 구분 짓는 사회가 잘못됐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그는 나이 듦에 관계없이 자신만의 태도를 유지하는 어른을 존경한다. 그래서인지 6000장이 넘는 사진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옷에 대한 태도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이 추한 건 아닐까. 나이가 들면 멋짐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아닐까. 당당한 자세를 취한 노인들의 사진은 공연한 걱정을 지운다. 멋짐은 나이가 아니라 당당한 태도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제 사진 속 어르신들은 지금보다 힘든 시절에도 옷차림에 대한 고민을 거듭한 분들이에요. 지금보다 패션을 등한시하던 시대, 남들과 다르면 눈총을 받던 시대를 살면서도 다양한 시도를 해왔던 거죠. 그건 노인만이 가질 수 있는 멋이에요. 젊은 사람은 옷을 똑같이 따라 입는다 해도 따라갈 수 없죠. 옷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거의 반평생 패션에 진심인 분들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어요.”
3년, 6000장의 멋, 그 이상을 위하여
그는 어릴 적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았다. 자신의 패션 세계를 개척해나갔던 친할머니 덕분이다. 김동현 작가의 친할머니는 ‘교통비를 아끼려 2km를 걸어 다니더라도 고급 모피 코트를 사서 입을 줄 아시는 분’이었다. 작은 돈은 아껴도 옷은 좋은 것을 입고 다녀야 한다고 이르던 멋진 할머니 덕분에 옷을 챙겨 입는 즐거움을 일찍이 깨달았다.
하지만 미디어는 노인을 지루하고 추한 존재로 그려내고 있었다. 사람들은 저항 없이 그 이미지를 받아들였다. 김동현 작가가 자라면서 보고 겪은 것과 달랐다. 그는 이해할 수 없었고, 반박하고 싶었다.
“사회에서 가장 젊다고 여겨지는 영역인 패션 산업을 이끄는 건 나이 든 사람들이에요. 실제로 명품 브랜드의 수장, 디자이너들 대다수가 40대 이상의 중장년이죠.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여든을 넘긴 나이에도 명품 컬렉션을 발표하고 있어요. 우리는 젊은 사람이 입는 옷을 멋지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옷은 나이 든 사람이 디자인한 결과물이에요. 그런데도 패션은 젊음의 것이라고 여기는 세상이 이상하지 않나요?”
그래서 누가 봐도 멋있다고 느낄 사진을 찍었다. ‘멋’(mut_jpg)이라는 직관적인 이름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짤막한 대화를 갈무리한 글과 함께 사진을 쌓았다. 전 세계 사람들이 우리나라 노인이 멋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도록. 그를 찾는 사람들, 사진의 좋아요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동조하는 이들이 많아지는 걸 보면서 그는 뿌듯함을 느낀다.
지난해 5월 그는 첫 사진집 ‘멋’(MUT : the fasion of Seoul)을 냈다. 2019년부터 3년간 촬영한 약 6000장의 사진 중 400여 장을 추려서 책으로 출판했다. 사진집에는 한국어와 영어가 함께 쓰였다. 한국의 시니어 패션을 세계에 알리고자 하는 김동현 작가의 목표가 반영된 것. 책을 제작하기 위해 한 달간 크라우드 펀딩을 열었는데, 목표액인 200만 원을 훌쩍 넘긴 2225만 원이 모였다. 책을 내고 나서는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이 물밀듯 밀려들었다. 영국 ‘가디언’지가 그의 이야기와 사진을 취재해 갔고, 지난 11월에는 영국 TV 방송사 채널5의 다큐멘터리에 소개돼 우리나라의 시니어 패션을 직접 알리기도 했다.
그의 꿈은 현대 패션사(史)에 이름 석 자를 남기는 것이다. 이제까지는 그의 사진과 ‘멋 작가’를 알리기 위해 모든 인터뷰에 응했지만, 앞으로는 보다 더 작업에 집중하려 한다. 지난해에는 해외 출판 에이전시와 출판 계약을 맺었다. 올해 안에 ‘멋’ 사진집을 전 세계에 선보이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시니어 헤어스타일 아카이빙 북 제작을 위한 촬영도 동시에 진행 중이다. 그가 프레임에 담는 ‘동묘 스타일’에 세계가 반할 날이 머지않았다.
권영태(52) 씨는 2019년 중국에서 하던 사업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무려 16년 만의 귀국이었지만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나이는 50대 진입을 앞뒀는데, 보유하고 있는 뚜렷한 기술이 없는 게 문제였다. 이에 권영태 씨는 뭔가를 배워야겠다고 생각, 국비지원이 되는 한국폴리텍대학의 문을 두드렸다.
대구에 거주하던 권영태 씨는 2020년 대구 캠퍼스를 찾았다. 승강기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한 그는 기술 자격증을 더 보유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그의 관심을 끈 분야가 공조냉동. 공조냉동 신중년특화과정 교육은 대전 캠퍼스에서 진행됐다. 그는 대구에서 멀리 대전까지 찾아가며 학구열을 불태웠다.
“지난해 3월부터 6월까지 4개월간 수업이 진행됐는데요. 신중년특화과정은 신중년 눈높이에서 교육을 해주고, 지원도 아낌없이 해줍니다. 기숙사도 지원해줘서 학업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죠. 한국폴리텍대학이 어떤 개인 학원보다 좋은 것 같아요.”
권영태 씨는 4개월 동안 공조냉동·에너지·가스 세 분야의 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는 “실기시험이 서로 겹치는 부분이 많다. 관심을 조금만 더 갖고 시간 투자를 하면 자격증을 병행 취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자격증이 많으면 취업할 때 이점이 된다.
“저는 문과, 경영학과를 졸업했어요. 필기시험은 크게 어렵지 않았는데, 실기시험은 처음 해보는 거라 힘들더라고요. 실기시험은 기능을 확인하는 것이니까 손에 익도록 연습을 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다행히 학교에서 실습을 많이 할 수 있게 지원해준 덕에 실기시험도 잘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권영태 씨는 한국폴리텍대학 교육 수료 후 곧바로 취업에 성공해 지난해 7월부터 충북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에서 일하고 있다. 선수촌 용역회사와 계약해서 근무하게 된 것. 그는 기계팀에 소속돼 냉난방기 관리 및 공조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권영태 씨는 이제 경력 1년 차로 많이 배우는 중이라고 했다. 자기 사업을 하던 사람인데 신입부터 시작하기는 쉽지 않았을 터. 이에 대해 묻자 그는 웃으며 “그런 생각이면 자격증 취득도 못 할 것 같다”고 답했다. 또한 “하나라도 더 배우고 내 기술을 발전시킨다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권영태 씨는 공조냉동기계기능사의 장점에 대해 “기술직이다 보니 정년이 보장된 점이 좋다”고 말했다. 그는 일을 하면서 공조냉동기계산업기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경영학과가 유사 관련 학과로 인정받아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다. 권영태 씨는 이후 기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도 있고, 창업도 생각하고 있다. 어쨌거나 기술을 갖고 있으니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의 선택지가 다양하다고 느낀다.
“요즘은 정년이 되기 전에 퇴직하는 분들이 많잖아요. 새로운 방향이나 길을 찾아야 될 텐데 조금만 노력해서 정보를 찾아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우리 주변에 국비지원 교육도 많거든요. 전 친구들한테 한국폴리텍대학 수업을 많이 추천합니다. 문과를 나왔다고 해서 포기하지 말고 자신한테 맞는 기술을 찾으라고 말해요. 국비 교육을 잘 활용해서 기술 자격증을 취득하면 앞으로 10년, 길게는 30년의 생활이 좀 더 나아지지 않겠습니까? 그런 희망을 갖고 새로운 길을 모색해보세요!”
‘뛰기 젊은 나이, 50+’ 캠페인
‘브라보 마이 라이프’와 ‘서울시50플러스재단’은 중장년 세대의 창업을 통한 도약을 지원하기 위해, ‘뛰기 젊은 나이, 50+’ 캠페인을 펼칩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와 서울시50플러스재단이 함께한 점프업5060 프로젝트를 통해 창업에 성공하고 새 인생을 펼치는 중장년들을 소개합니다.
나이 들면 무얼 하면서 살까? 어떻게 해야 일터와 삶터를 분리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김은주, 박유하 부부는 은퇴 전부터 이어진 오랜 고민에 대한 해답을 내놓았다. 살고 있는 주택 지하에 자리 잡은 모모책방으로 말이다.
서울시 도봉구 도봉동 사람들은 모모책방에 모여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공연을 관람한다. 늦은 시간까지 필사를 하거나, 외국 드라마 ‘빨간머리 앤’을 보며 영어 공부를 한다. 수업을 이끄는 강사는 물론 도봉동 이웃 주민이다.
모모책방에서는 번개모임이 잦다. 김은주 씨와 책방을 함께 운영하는 그의 동생이 문득 영화가 보고 싶어지면 모모책방 밴드나 카카오톡 오픈채팅에 소식을 올린다. 곧 관람을 희망하는 이웃들이 각자 간식을 챙겨 들고 삼삼오오 모여든다. 빔프로젝트를 내리고 책방이 어두워지면 모모책방은 영화관으로 변신한다. 흥미로운 마을공동체 사업에 응모하거나 새로운 활동을 기획할 때에도 주민들은 자연스레 모모책방을 찾는다.
문화 갈증 채우는 동네 책방
모모책방을 탄생시킨 김은주, 박유하 부부는 인생 후반부 계획을 세우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의 점프업5060 공고를 발견했다. 미래에 대한 여러 고민을 해결해줄 프로그램이라고 판단해 지원을 결정했다. 교육과정을 충실히 따라 수료할 때쯤에 맞춰 모모책방의 문을 열었으니 그야말로 모범생이었다.
“책방을 사업 아이템으로 결정한 이유는 여러 가지예요. 제 오랜 꿈이 서점을 여는 것이었고, 마을 문화공간에 대한 높은 수요를 해소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죠. 도봉구의 문화공간 인프라는 창동에만 몰려 있어요. 도봉동 주민들이 집 주변에서 문화생활을 즐길 만한 곳이 없죠. 책방을 비롯한 문화공간에 대한 갈망이 클 수밖에 없어요.”
걸림돌은 단 하나, 공간이었다. 책방을 열 공간이 마땅치 않아 고민하던 때에 이웃의 한마디가 해결책이 됐다. ‘지금 살고 있는 주택의 지하층을 이용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것. 일터와 삶터를 분리하지 않고도 마을 책방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묘수였다. 그렇게 모모책방은 2019년 12월 도봉동 주택단지 한가운데, 부부가 거주하는 주택 지하에 자리 잡았다.
꽃길만 펼쳐질 줄 알았지만 정작 마주한 건 코로나19 대유행이란 이름의 터널이었다. 부부는 넋 놓고 앉아 있는 대신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나섰다. 스마트 기기 조작이 서툴고, 부모가 퇴근할 때까지 집에 홀로 있어야 하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돌봤다. 적은 인원이라도 모여 책방에서 비대면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도왔다. 부모를 대신해 숙제나 준비물, 가정통신문 같은 학급 전달 사항을 읽어줬다. 김은주 씨와 그의 동생은 심리학을 전공한 지식을 살려 ‘점심 도시락’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점심을 함께하며 종일 붙어 지내야 했던 엄마와 아이들의 마음 건강을 살폈다.
위기 속에서 탄생한 고향
김은주 씨는 힘든 시기를 보냈기 때문에 모모책방이 어떤 공간이 되어야 하는지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감정적으로 위로가 필요한 날 불쑥 찾아갈 수 있고, 누구에게나 친구가 되어주는 문화공간. 그게 바로 김은주, 박유하 부부가 생각하는 모모책방의 지향점이다. 이는 사업을 구상할 때부터 막연하게 품고 있던 목표다. 어떻게 해야 실현할 수 있을지 막막하던 차에 되레 악재로부터 도움을 받았다고나 할까.
책방에는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책들이 가득하다. 모두 김은주 씨와 그의 동생이 전공을 살려 선정했다. 이외에도 필사나 컬러링 키트를 구비해뒀다. 흉흉한 세상에 쫓겨 책방으로 찾아든 사람들이 마음을 돌보게끔 하기 위해서다. 도봉동 주민들은 갑갑한 집을 벗어나 책방에서 글씨를 끄적이고 책을 뒤적이면서 한숨 돌릴 수 있게 됐다. 뛰어놀기 좋아할 나이에 집에만 있어야 했던 아이들에게는 더욱 답답한 시간이었을 터. 코로나19 시국에 유일한 놀이방이었던 책방은 아이들에게 ‘고향’을 만들어줬다.
“고향이란 단순히 과거에 살던 동네가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 공유하는 추억이나 문화가 있어야 충족되는 개념이라고 생각해요. 요즘 아이들에게는 고향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책방을 만든 이유 중 하나가 ‘아이들에게 고향을 돌려주자’였어요. 요즘 아이들은 태어난 동네, 살던 동네, 학교 다닐 때쯤 이사 간 동네가 다 다르잖아요. 이웃 간 왕래도 없죠. 개인적으로 그 점이 안쓰러웠는데, 책방에서 아이들이 행복한 추억을 만드는 것 같아 뿌듯합니다.”
모모책방과 마을 아이들은 절친한 친구 사이가 됐다. 하교하던 길에 신발 끈이 풀어졌으니 묶어달라며 불쑥 책방을 찾고, 학교에서 그렸다는 동네 지도에는 모모책방이 ‘우리 동네 명소’로 표시돼 있다.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책방에 찾아올 때, 책방에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볼 때 부부는 큰 보람을 느낀다.
모모책방의 사업 목표는 ‘적정 수준의 적자를 유지하기’다. 지금도 서적 판매로는 책방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익 모델만 운영하고 있다. 수익을 내는 데에만 급급하다 이웃들이 모모책방을 찾으려던 발걸음을 망설이게 될까 조심스럽기 때문. 책방의 공간을 활용해 유튜브를 시작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도 받았지만 역시 고개를 저었다. 하나의 영상을 기획하고 촬영한 뒤 편집하고 채널을 관리하는 동안 책방과 마을에 소홀해지기 싫어서다.
모모책방은 앞으로도 돈은 적게 벌더라도 다 같이 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선택해나갈 것이다. 큰길가 대신 주택가 안쪽에서, 누구든 들어올 수 있도록 언제나 문을 열어두고 있는 동네 책방. 모모책방은 아이들에게 고향이 무엇인지 가르쳐주고 있다.
한동안 잠잠했던 트로트 열풍이 2022년 연말부터 다시금 불고 있다. 트로트 열풍은 2019년 ‘미스트롯’, 2020년 ‘미스터트롯’이 방영되면서 정점을 찍은 바 있다. 송가인과 임영웅이라는 스타가 배출됐고,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팬덤 문화가 형성됐다.
그러나 이 트로트 열풍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오디션은 물론 트로트 관련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쏟아지며 시청자의 피로도가 쌓였기 때문이다. 트로트 열풍이 다시 뜨거워질 것이라는 예상 또한 많지 않았다. 지금의 열풍은 TV조선 ‘미스터트롯2-새로운 전설의 시작(이하 ‘미스터트롯2’)’와 MBN ‘불타는 트롯맨’에서 촉발됐다. 두 프로그램의 어떤 점이 시청자를 사로잡았을까.
‘미스터트롯2’ VS ‘불타는 트롯맨’
새로운 트로트 스타를 뽑는 오디션 프로그램인 ‘미스터트롯2’와 ‘불타는 트롯맨’이 현재 인기리에 방영 중이다. 비슷한 듯 다른 두 프로그램은 뜨거운 대결 구도를 펼치고 있다. 사실 이 대결 구도는 방영 전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그 중심에는 ‘불타는 트롯맨’의 서혜진 PD가 있다.
서혜진 PD는 TV조선에서 ‘미스트롯’, ‘미스터트롯’을 론칭해 송가인, 임영웅 등을 배출한 스타 PD다. 대한민국을 들썩인 트로트 열풍을 서 PD가 일으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그가 TV조선을 떠나 MBN으로 이직한 후 제작한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이 바로 ‘불타는 트롯맨’이다.
‘미스터트롯2’와 ‘불타는 트롯맨’은 방영 전부터 기 싸움을 벌였다. TV조선은 ‘미스터트롯’의 명성을 지켜야 했고, 서혜진 PD는 자신의 저력을 보여줘야 했다. 서로를 의식한 듯 두 프로그램은 방송 편성도 비슷한 시기에 했다. ‘불타는 트롯맨’은 지난 12월 20일, ‘미스터트롯2’는 12월 22일 각각 첫 방송 됐다.
‘미스터트롯2’와 ‘불타는 트롯맨’이 비슷한 시기 방영되는 것이 우려를 모은 까닭은 두 프로그램이 비슷할 것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비슷한 것은 물론 단체전과 1대1 데스 매치를 펼치는 경연 구성은 상당히 흡사하다.
반대로 두 프로그램에서 느껴지는 차이점이 있기는 하다. 바로 오디션 참가자의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미스터트롯2’에는 이미 실력을 인정받은 유명인들이 대거 참가자로 출연하고 있다. 현재 1위를 지키고 있는 ‘장구의 신’ 박서진을 비롯해 KBS2 ‘트롯 전국체전’ 우승자 진해성, MBC ‘트로트의 민족’ 우승자 안성준 등이 경연에 참여했다.
‘불타는 트롯맨’은 신예 발굴, 원석 찾기에 집중했다. 물론 ‘팬텀싱어’ 우승팀 포르테 디 콰트로 멤버 손태진, 뮤지컬 배우 에녹 등 유명인도 있지만, 예선 1위는 무명의 신예 황영웅이 차지했다. 또한 서혜진 PD는 오픈 상금제, 응원 투표 상금제를 도입하면서 기존의 프로그램과 차별화를 꾀했다고 강조했다.
‘불타는 트롯맨’ 제작진은 “우리 프로그램의 취지는 원석 발굴이고, 나아가 차세대 트롯계를 이끌어갈 뉴트롯맨의 육성이다”라며 “뜨겁게 밀려드는 팬들의 사랑을 트롯맨들이 보다 실질적이고 직접적으로 보상받을 수 있도록 했다”고 응원 투표 상금제를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미스터트롯2’와 ‘불타는 트롯맨’의 라이벌 구도는 다행히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두 프로그램은 쌍끌이 흥행 중이며,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트로트 열풍이 다시 불붙었다. ‘불타는 트롯맨’은 첫 방송에서 8.3%(닐슨코리아, 전국 기준)의 시청률을 기록, MBN 창사 이래 첫 방송 최고 시청률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최근 방송된 4회 시청률은 12.2%다. ‘미스터트롯2’의 4회 시청률은 20.9%이며, 4주 연속 전 채널 1위를 달성했다.
아무래도 ‘미스터트롯2’가 대중에게 익숙하고 ‘원조’ 오디션이라는 네임 벨류를 갖고 있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불타는 트롯맨’은 시청률이 10%대이지만 선방 중이라고 평가된다. 주요 시청층인 중장년층이 MBN에서 만드는 ‘미스터트롯’ 같은 프로그램으로 인식하고, 리모컨을 고정했을 가능성이 높다. 어쨌거나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제2의 송가인, 임영웅 누가 될까?
‘미스터트롯2’와 ‘불타는 트롯맨’의 쌍끌이 성공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넘어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트로트 경연의 홍수 속에서 중장년 팬들은 원조가 귀환하기를 기다린 듯 하다.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은 대한민국 문화사에 큰 획을 그었다. 2019년 ‘미스트롯’ 방영 전까지 트로트는 변방으로 밀려난 장르였다. 트로트는 나이 든 세대가 듣는 오래된 노래라는 인식이 강했다. 음악 시장은 K-POP 가수, 특히 아이돌 중심으로 돌아갔다.
이런 상황에서 방영된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은 새로운 바람을 불러왔다. 젊은이들이 트로트를 구성지게 부르는 모습은 중장년층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미스트롯’으로 시작된 열기는 ‘미스터트롯’에서 정점을 찍었다.
트로트 열풍이 뜨거워지면서 트로트 가수를 향한 팬층도 두꺼워졌다. 특히 ‘미스터트롯’ 톱7은 방송가를 장악했다. 이들은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임영웅은 현재 아이돌 차트 평점 랭킹에서 94주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2위에는 이찬원, 3위에는 김호중이 각각 이름을 올렸다.
한 문화 평론가는 “대형 소속사와 아이돌 구도로 인해 중장년층은 음악적으로 소외돼왔다.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이 나오면서 ‘전국 노래자랑’이나 성인가요 프로그램에서나 들을 수 있던 트로트를 소비할 수 있게 됐다. 중장년층은 과거의 음악 상태를 돌려받았다는 보상 심리를 느끼며, 팬심을 자유롭게 드러낸 것 같다”고 짚었다.
임영웅을 비롯한 TOP 7이라는 존재는 중장년층 시청자가 직접 뽑고 성장을 지켜본 가수다. 그래서 그들을 더욱 소중하게 느끼고 열렬히 응원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미스터트롯2’와 ‘불타는 트롯맨’이 인기를 끈 이유에 대해 새로운 대스타를 기다리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앞서 ‘미스트롯2’는 TV조선에서 2020년 12월부터 2021년 3월 사이 방영됐다. 최고 시청률 32.9%를 기록할 정도로 시청률은 잘 나온 편이었지만 화제성은 그에 비해 높지 않았다. 당시 워낙 오디션 프로그램이 많이 나오고 있던 상황에다가 송가인, 임영웅을 이을 대스타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 때문에 2022년 말부터 다시 분 트로트 열풍은 매우 유의미하다. ‘미스터트롯’이라면, ‘미스터트롯’을 만든 제작진이라면 그토록 기다린 트로트 대스타를 발견할 것이라는 생각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미스터트롯2’와 ‘불타는 트롯맨’의 격돌로 인해 트로트 열풍은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그리고 트로트 대스타를 배출해내는 프로가 최종 승자가 될 것이다. 다만 양측으로 팬심이 나눠진 것이 대스타 탄생에 플러스가 될지 마이너스가 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팬심이 송가인, 임영웅보다 낮을 수 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악조건을 뚫고 탄생한 대스타이기 때문에 대중의 인정을 더욱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과연 누가 될까.
돌아온 대면 명절에도 2030세대는 귀향을 거부하고 돈을 벌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러 뿔뿔이 흩어진다. 선물 들고 지인을 찾아가기보다 ‘집콕’하며 미리 찜해둔 물건을 ‘셀프 선물’한다. 회사에서 받은 선물을 ‘당근’하기도 한다. MZ세대를 중심으로 퍼져나가는 명절 문화의 새로운 인식을 들춰본다.
3년 만의 대면 설 연휴지만 젊은 세대는 각자의 이유를 대며 집을 찾지 않는다. 한국갤럽이 지난해 추석 연휴를 앞두고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 중 추석 연휴 동안 ‘집을 떠날 계획이 없다’고 답한 이가 60.0%에 달했다. 이제 누구도 강요하지 않지만 비대면은 하나의 트렌드로 남았다. 여기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으니, 이해를 돕기 위해 ‘요즘 것들’이 그리는 신(新)명절풍속도 네 가지를 준비했다.
시간
고향 방문보다 값진 ‘알바’
“굳이 고향을 가야 하나요? 그 시간에 알바를 하면 돈이 얼마인데!”
경기는 계속 악화되고, 물가는 끝을 모른 채 치솟는다. 경제적 부담을 느낀 젊은 세대는 연휴 기간 가족을 찾는 대신 조금이라도 더 돈을 벌기로 마음먹었다. 생활비에 보탬이 되고, 지역과 지역을 오가는 교통비나 선물 비용 등의 지출을 줄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지난해 추석 연휴를 기준, 서울에서 부산까지 비행기로 왕복하려면 20만 원은 족히 내야 한다. 비교적 저렴한 KTX 기차표를 구하려면 연휴 한 달 전부터 피 튀기는 예매 전쟁을 뚫어야 한다. 한 푼이 아쉬운 사회 초년생의 입장에서는 귀향을 망설일 수밖에 없다. 서울에서 자취하는 직장인 A(27) 씨는 “집에 가는 데 돈도 많이 들고 여러모로 부담이라 이번에도 명절 연휴를 피해 집에 미리 다녀오려 한다”고 말했다.
구인·구직 플랫폼 ‘알바천국’은 지난해 추석 연휴를 앞두고 성인 158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응답자의 51.1%가 “추석 연휴에 알바 계획이 있다”며, 아르바이트로 번 돈은 생활비(56.8%), 저축(42.2%)에 쓰겠다고 답했다. 명절 연휴 동안 반짝 모집하는 아르바이트는 직장이나 학교를 다니는 데 영향을 주지 않고도 용돈을 벌 수 있어 인기가 많다. 평소보다 시급을 높게 쳐주는 점도 선호도를 높인다. 지난해 12월 20일 기준 설맞이 단기 알바 시급은 현재 최저시급인 9180원보다 7~30%가량 높게 형성돼 있다.
명절 연휴를 앞두고 단기 아르바이트를 찾는 움직임이 많은 것은 여러 지표를 통해 확인 가능하다. 중고 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이 운영하는 ‘당근알바’에서는 지난해 설 연휴 직전 2주 동안(2022년 1월 11~24일) 구인 게시글과 구직 지원자 수가 전달 같은 기간 대비 각각 13.9%, 19.9% 증가했다. 아르바이트 구인·구직 플랫폼은 이러한 흐름에 기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알바몬’, ‘알바천국’ 등 대표적인 플랫폼은 명절마다 채용관을 따로 열고 연휴 시즌에 특화된 인기 업·직종 공고를 확인할 수 있게 한다.
명절 특수 아르바이트의 형태는 갈수록 다양해지는 모양새다. 일반적으로 꼽히는 명절 연휴 특화 업·직종은 백화점·마트, 도소매·전통시장, 매장 관리·판매, 포장·분류, 택배·배달 등이다. 최근에는 집을 비우는 동안 반려동물을 돌봐주는 펫시터, 전 대신 부치기 등 동네 소일거리에 가까운 알바를 구하는 이들도 많다. 지난 추석 연휴에는 맛집 ‘웨이팅 알바’(입장을 위해 대신 줄을 서주는 알바)를 구하는 사람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장소
다시 대면 명절, 고속도로만큼 붐비는 ‘명절 대피소’
“명절도 그저 연휴일 뿐, 쉬는 동안 토익 공부나 할래요”
국립국어원에서 만든 개방형 한국어 지식 대사전 ‘우리말샘’에 등재된 명절 대피소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명절에 모인 친척들의 잔소리를 피하여 쉬거나 공부 따위를 할 만한 곳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불편한 질문 공세에 시달리다 못해 스터디카페, 학원 등으로 피신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취업 준비생들이 대다수였으나 최근에는 미·비혼 직장인들도 합세하는 모양새다.
지난해 온라인 아르바이트 플랫폼 ‘알바천국’이 성인 1530명을 대상으로 명절에 고향 방문을 피하는 이유를 묻자 ‘취업 준비, 시험공부 등 자기계발에 집중’(24.1%, 복수 응답)하거나 ‘명절 잔소리,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22.6%) 등이 꼽혔다. 2019년 추석 연휴를 앞두고 온라인 취업 플랫폼 ‘잡코리아’가 성인 319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33.3%가 ‘결혼(자녀) 언제쯤?’을 가장 듣기 싫은 말로 꼽은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에 ‘명절 대목’을 맞아 명절 대피소를 운영하는 교육 업체가 등장하고 있다. 파고다어학원은 2015년부터 명절마다 전국 캠퍼스에서 피난처를 운영해왔다. 학원 내 스터디룸을 개방하고, 간식과 음료를 무료로 제공했다. 대면 모임이 어려울 때는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을 통해 온라인 명절 대피소를 운영했다. 가볍게 어학 공부를 할 수 있는 퀴즈를 풀거나, ‘임인년맞이 호랑이 그리기 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다른 교육 업체들 역시 명절 연휴에만 제공하는 한정 ‘프리패스’(자유이용권)를 통해 기간 내 무제한으로 인터넷 강의를 이용할 수 있게 했다.
한 업체는 스터디카페의 명절 정체 예상도를 발표했다. 스터디카페의 키오스크를 운영하는 전문 업체 ‘오래’가 지난 3년 설날과 추석 등 명절 연휴에 집계된 300만 건의 이용 건수를 분석한 결과로 만들어낸 것. 나흘의 연휴 기간에 전국 스터디카페를 대략 250만 명이 찾을 것이라는 예상치를 내놓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스터디카페 이용객의 연령대는 10대 30%, 20대 50%로 비교적 고른 분포를 보인다. 그러나 분석에 따르면 명절 연휴에는 20대 이용자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명절 연휴 마지막 날 10대와 20대 이용객 비율이 20%와 60%로 가장 큰 차이를 보였는데, 오래 측은 도피를 위한 스터디카페행의 영향일 것으로 풀이했다.
재테크
자취촌에 꽃피는 명절 선물 재테크
“되팔고 교환하고, 나는 아니라도 누군가는 필요하겠죠”
나를 위해서라면 돈을 아끼지 않는 플렉스(FLEX)·욜로(YOLO) 문화에 반기를 드는 이들이 있다. 불필요한 지출 활동을 줄이고 온라인 쇼핑 플랫폼의 적립금을 모으거나 할인 혜택을 꼼꼼히 챙기는 ‘짠테크’ 역시 2030세대의 소비 성향을 설명하는 단어 중 하나다. 일을 해서 얻는 수입만 가지고는 돈을 모으기 어려우니 허리띠를 최대한 졸라매는 것이다.
애당초 제품을 되파는 ‘리셀 문화’는 고가 명품 브랜드를 중심으로 시작됐다. 코로나19로 인해 틀어막힌 해외여행 수요가 명품 구매로 폭발한 것. 물건을 구하기 어려워 중고 거래까지 불사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중고 거래 플랫폼이 함께 성장했지만, 리셀 문화는 이제 생필품 영역까지 확장됐다.
실용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MZ세대는 ‘리셀’이라는 개념을 명품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내게 필요 없는 물건을 싼값에 되팔고, 필요한 물건 역시 저렴하게 사고 싶을 뿐이다. 전문가들은 실용성을 중시하는 성향에 고물가에 대한 부담이 맞물리면서 ‘명절 선물 재테크’ 현상이 나타났다고 분석한다. 이는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 등이 ‘트렌드 코리아 2023’에서 설명한 ‘체리슈머’에 부합하는 면모다. 체리슈머는 ‘한정된 자원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양한 알뜰 소비 전략을 펼치는 소비자’를 뜻하는 신조어다.
선물을 되파는 건 성의를 무시하는 게 아니냐며 눈살 찌푸리는 사람들이 물론 있다. 그러나 향후 몇 년은 경기가 좋지 않고 물가가 지속적으로 오를 것으로 점쳐지는 상황. 명절 전후로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햄, 참치, 홍삼, 샴푸·린스 등 흔한 명절 선물세트를 자주 접하게 될 전망이다.
선물
명절 선물, 대상은 좁되 돈은 많이
“내 월급만 빼고 다 오르는데, 친한 사람만 챙길래요”
명절 선물 구매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2021년 이베이코리아가 오픈마켓 G마켓과 옥션의 설 선물 판매 데이터 2년치를 비교 분석한 결과, 2030세대는 프리미엄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고 4050세대는 선물 구매량이 많았다. 김태수 이베이코리아 영업본부장은 분석 결과에 대해 “미혼이 많은 2030세대는 부모님과 직계 가족에 집중하고, 4050세대는 주변 친척까지 두루 챙기는 경향이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흐름에는 젊은 세대의 ‘미코노미’(Meconomy) 성향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미코노미란 자신을 위해 돈을 쓰는 소비 성향을 뜻한다. 그런데다 코로나19 장기화로 비대면 명절이 익숙해지면서, 돈이나 시간을 자기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는 것.
남에게 쓸 돈을 줄여 나에게 집중하는 소비 행태는 데이터 분석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추석 연휴, 사람들은 지인에게 건강식품(18%)이나 커피·음료(15%), 생필품(14%)을 주로 선물했다. 반면 스스로를 위한 선물로는 생활·미용가전(14%), 골프용품(12%), 노트북/PC(9%) 등을 구매했다.
지난해와 2021년 추석 선물의 판매 데이터를 비교해보면 피부관리기(130%), 명품 잡화(85%), 노트북(29%) 등의 제품 판매량이 크게 증가했다. 주로 남에게 선물하기보다 스스로를 위해 구매하는 프리미엄 제품이다. 특히 2030세대 구매가 가장 크게 증가한 상품군은 노트북과 컴퓨터였다. 반면 4050세대는 일반적으로 구매하던 명절 선물 제품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선택을 했다. 건강식품이 17% 증가해 구매신장률이 가장 높았고, 생필품 11%, 커피·음료 10% 순서로 이어졌다.
2060년에는 유럽 인구의 1/3이 65세 이상일 것이라는 전망치가 쏟아진다. 유럽 각국은 고령화 사태를 주시하며 대처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그 중 독일은 통상적인 ‘선진국’ 중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 문제에 대면한 국가다. 1932년에 이미 고령화사회에 진입했고, 1972년에 고령사회, 2008년에는 65세 이상 고령자가 전체 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사회가 되었기 때문.
[노인돌봄, 지역사회가 열쇠다]에서 두 번째로 소개할 국가는 독일이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고령화 문제를 떠안은 독일의 지역사회에서는 해결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자.
등받이 설치‧공중화장실 개방으로 고령자 챙긴다
독일연방노인문제연구소(Deutsches Zentrum für Altersfragen)는 고령화 관련 조사와 연구, 정책 컨설팅, 정보 제공 활동을 펼치는 연구 기관이다. 차수마다 보고서 작성을 위한 전문가위원회를 구성하며, 1993년 1차 보고서 이후 3~5년 간격으로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 독일 정부가 발간하는 노년보고서(Der Altenbericht) 작성을 담당하는 명예전문위원회는 이 연구소에서 운영되고 있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이 발간한 ‘50+해외동향리포트’에 따르면, 독일 정부가 2016년 발간한 노년보고서는 ‘공동체 내에서의 돌봄과 책임’을 주제로 하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집과 사는 동네 위주로 행동반경이 좁아지고, 사는 동네에 대한 애착과 안정감이 커져 지역사회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WHO는 ‘고령친화도시’ 프로젝트 홈페이지에 우수한 고령친화도시의 정책 사례들을 선정해 소개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라데보름발트시의 외부 시설이 소개됐다. 이는 2017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고령친화도시 프로젝트’ 팀이 만들어낸 결과물로, 도시 인구의 22%가 60세 이상인 라데보름발트시 역시 WHO의 8가지 요건을 근거로 고령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하고자 했다.
우선 고령자협의회의 주도로 도시의 모든 벤치에 등받이를 새로 설치해 노인들이 쉽게 앉아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했다. 길을 지날 때에는 불편하지 않도록 연석(도로경계석)의 높이를 낮췄다. 도로에 특수 포장 돌을 깔고, 독일 행정부가 설치한 특수 흰색 자갈을 이용한 횡단보도로 시력이 저하된 노인이나 시각 장애인의 접근성‧안전성을 높였다.
WHO가 ‘외부 환경 및 시설’ 영역에 대해 제시하고 있는 고령친화적 항목 중 하나는 ‘충분한 공중화장실’이다. 이에 라데보름발트시는 정부가 조성한 ‘Hürxthal 시민센터’(원문 Meeting House of Hürxthal)에 배리어프리 화장실을 추가로 설치했다. 대부분의 공중화장실에서 사용료를 내야 하는 독일이지만, 라데보름발트시의 모든 식당에서는 고령친화 환경 조성의 일환으로 화장실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또한 도심 내 동측 거리의 공중 화장실 개조 공사가 이뤄졌다. 이외에도 라데보름발트시에서는 고령층이 바깥 활동을 하는 데에 있어 장애물이 되는 요소를 찾아내기 위한 노인협의회의 정기점검이 이뤄지고 있다.
사회참여 위해서 정부‧지역사회‧민간 삼박자 맞아야
삶의 질을 보장하려면 거주 환경 뿐 아니라 사회적 참여 및 소통의 기회가 충분해야 한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의 이슈리포트에 실린 ‘독일 중‧고령자의 고용 및 사회참여’ 연구에 따르면, 독일은 연방정부 차원에서 자원봉사제도를 운영하며, 민간의 자원봉사 활동에 대해서도 세제 혜택을 지원하고 있다. 정부가 운영하는 봉사제도에는 나이 제한이 없어 의무교육을 받은 사람 모두가 참여 가능하고, 참여자는 활동기간 동안 용돈과 활동비를 지급받는다. 이외에도 독일의 고령자들은 ‘무보수 명예직’(Ehrenamt) 제도나 노인자체결성조직인 ‘노인사무국’(Altenbuero)을 이용해 자원봉사에 나선다.
‘시니어사무소’(Seniorenbüros) 역시 고령자의 사회참여를 돕는 기관 중 하나다. 50세 이상 시민이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봉사활동, 기업 연계 프로젝트 등 다양한 활동을 지원한다. 독일 내 약 450개의 노인 사무소가 있으며, 각 사무소는 동네에 거주하는 50세 이상 중장년을 위해 자원봉사활동이나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활동을 소개하고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의 ‘50+ 해외동향리포트 2018’에서는 시니어사무소의 우수 사례로 베를린의 ‘시니어컴퓨터클럽 베를린 미테’를 소개했다. 이곳은 전문적인 시니어 컴퓨터 기관으로, 휴가를 떠나기 위해 숙박이나 항공권을 인터넷으로 예약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등 초보자를 위한 일반 컴퓨터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컴퓨터에 대한 전문 지식이 있는 60세 이상 세대들이 참여하는 컴퓨터 게임 개발 프로젝트까지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폭이 넓다는 점이 특징이다. 또한 스타트업 회사와의 연계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를 이용하는 시니어를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세대 교류의 장을 마련하고 고령자가 능동적인 삶을 살 수 있게 지원하고 있다.
독일 연방가족부(BMFSFJ)가 실시하는 ‘독일자원봉사조사’(Deutscher Freiwilligensurvey)에 의하면 65세 이상 연령대의 자원봉사 참여율은 2019년 31.2%에 달했다. 이들 중 22.2%는 주당 6시간 이상을, 25.8%는 주당 3~5시간을 자원봉사활동에 사용하고 있어 다른 연령대에 비해 많은 시간을 자원봉사에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 중‧고령자의 고용 및 사회참여’ 연구의 저자는 “독일의 사례를 고려할 때, 고령자의 사회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