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멀위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 요즘 ‘청산별곡’을 부르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꿈꾸는 사람이 많아진 것이다. 지난해 귀농·귀촌한 사람도 50만 명에 달한다. 자연과 농촌, 어촌, 산촌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높아진 관심이 TV 화면 속으로 옮겨졌다. 자연·자연인 열풍이 TV를 강타하고 있다.
최근 들어 자연과 농촌·어촌·산촌·오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일상을 담은 교양 프로그램과 예능 프로그램들이 급증하고 있다. 시청자의 반응도 높아 자연과 자연인의 삶을 다룬 프로그램들은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자연과 자연인을 전면에 내세운 프로그램으로는 오지, 산골 등 자연 속에서 사는 사람들을 찾아 그들의 사연과 일상, 자연에 대한 생각들을 들어보는 MBN의 , 전국 방방곡곡 산간 오지를 찾아 그곳의 생활을 경험하는 TV조선의 , 오지를 찾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꾸미지 않은 삶과 생활을 보여주는 SBS의 등이 있다. 또한 도시생활에 지친 연예인들이 자연으로 떠나 그곳에서 만난 젊은 자연인(30~40대)과 함께 생활하며 행복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보는 O tvN의 , 강호동·김희선·정용화 등 도시에서 사는 연예인들이 섬에 일정 기간 머물면서 섬사람들의 생활과 일상을 경험하고 도시인이 생각하는 자연과 자연인에 대한 단상을 보여주는 올리브TV의 , 농촌이나 어촌에서 생활하며 먹거리를 직접 구해 식사를 해결하는 tvN의 등이 자연과 자연인을 소재로 한 예능 프로그램으로 재미를 주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자연과 자연인을 여행이나 체험 등 다양한 소재·형식과 결합해 만든 프로그램들도 양산되고 있다.
외국의 오지 사람들을 만나 용기, 지혜, 위로를 얻는 MBC의 ,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제주에서 생활하는 이효리·이상순 부부 집에 일정 기간 민박을 하며 바다와 자연을 접해보는 JTBC의 , 김병만·이상민 등 연예인들이 어촌과 바다를 찾아 혹독한 미션을 수행하며 어촌 생활과 먹거리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보는 SBS의 등도 자연·자연인의 모습과 의미를 엿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밖에 귀농·귀촌인이 많기로 소문난 충남 홍성군 홍동면 사람들의 일상을 방송한 KBS의 (6월 25일 방송분) 등 다큐멘터리 프로그램들도 최근 들어 자연인과 귀농·귀어·귀촌하는 사람들을 소재로 하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 전국 각지를 돌며 농촌·어촌·산촌의 사람들과 그들의 모습을 전달해주는 KBS의 은 근래 들어 코너도 다양해졌고 시청자의 관심도 높아졌다.
왜 이처럼 자연과 자연인, 귀농과 귀촌 등을 다룬 TV 프로그램들이 급증하는 것일까. 의 박상혁 PD는 “많은 사람, 특히 도시 주민이 일, 건강(힐링), 가치관의 변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농촌·산·숲·바다·섬으로 대변되는 자연에 대해 관심이 많이 늘었다. 이러한 사람들의 욕구와 관심이 자연과 자연인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 증가 원인이 됐다”라고 분석했다. 치열한 경쟁이 일상화하고 돈과 물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도시의 삶에 염증을 느끼거나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진정한 행복을 꿈꾸며 자연 속의 삶을 동경하기 시작한 것도 자연과 자연인 관련 프로그램의 증가를 초래했다. 또 환경 변화와 의학 발달로 인간의 수명은 연장됐지만, 은퇴시기가 빨라져 인생 2막을 열어야 하는 장·노년과 산업화로 고향을 떠나 서울 등 도시에서 살던 사람들 중 여생을 농촌이나 어촌에서 일하면서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구가 자연·자연인 프로그램 제작으로 이어졌다.
일자리가 감소하고 높은 주거비와 생활비로 어려움을 겪는 도시에 비해,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나고 주거비와 생활비도 저렴해 생활환경이 크게 개선된 농어촌을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현상도 눈에 띄게 많아졌다. 부부가 결혼관계를 유지하면서 생활은 따로 하는 졸혼 등 새로운 가족 형태가 등장하면서 그동안 가족 때문에 선택하지 못했던 자연인의 삶을 사는 사람도 증가했다. 이러한 사회적·문화적 현상을 프로그램에 수용하는 방송 제작진의 움직임이 자연과 자연인을 다루는 프로그램의 양산으로 연결된 것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귀농어·귀촌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귀농·귀촌을 선택한 사람은 49만 6100명에 달했다. 도시에서 읍·면으로 이주한 사람 중 농·축산업에 종사하는 귀농인은 2만 600명, 읍·면으로 거주지를 옮겼지만 농업에 종사하지 않는 귀촌인은 47만 5500명이었다. 자연과 자연인을 다룬 프로그램은 대중, 특히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함께 힐링과 위로의 시간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귀농과 귀촌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유익한 정보를 주는 등 긍정적 효과가 적지 않다. 서울에서 사업하는 박문수(57)씨는 “자연과 자연인의 삶을 다룬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도시의 피곤한 일상에서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받는다. 노년에 서울을 떠나 농촌으로 내려가 생활하고 싶은데 이에 대한 다양한 정보도 얻어 좋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자연과 자연인, 농어촌과 농어민의 삶을 다룬 프로그램의 폐해도 적지 않다. 이들 내용이 농어촌, 농어민의 현실과 실상이 거세된 것들이 주류여서 시청자에게 자연과 자연인에 대한 왜곡된 환상을 심어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미디어 비평가 레이먼드 윌리엄스가 에서 미디어가 농촌 현실과 농민의 노동을 도외시한 채 농촌을 목가적 이상향으로 그리거나 촌스러운 곳으로 취급한다고 비판했듯 자연과 자연인의 삶을 다룬 TV 프로그램의 상당수가 자연과 자연인의 삶을 이상적인 삶의 전형으로만 현시하는 데만 열을 올린다. TV 프로그램에서의 농어촌과 자연은 각박한 생활에 지친 도시인들의 휴식 공간이자 도시에서 실패한 사람들의 재기 무대인 경우가 허다하다. TV 속 농어촌에는 심화하고 있는 도시와 농어촌의 양극화 문제, 1년 365일 일해도 빚만 느는 현실, 악화하는 가족 해체의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조용필(67), 안성기(65), 전영록(64), 윤석화(61), 김창완(63), 하춘화(62), 김해숙(62), 배철수(64), 송승환(60), 손석희(61), 장사익(68), 임성훈(67), 강석우(60), 혜은이(61), 태진아(64), 최백호(67), 양희은(65), 윤여정(69), 이수만(65)….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유행하는 코드와 아이콘이 급변하는 영화, 방송, 드라마, 대중음악, 공연, 연예기획사 등 대중문화와 엔터테인먼트 산업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며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는 연예인과 방송인, 사업가라는 점이다. 그리고 60대라는 공통점도 있다.
60대 관련한 새로운 문화와 산업이 뜨고 있다. 과거의 60대와 전혀 다른 사고방식, 라이프스타일과 소비패턴, 활동 양태를 보이는 뉴식스티(New Sixty)를 겨냥한 다양한 문화와 산업들이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중년도 노년도 아닌 나이를 잊고 사는 ‘논 에이지(Non Age)’ 대표적인 세대가 요즘 60대다. 뉴식스티로 불리는 60대는 베이비붐 세대로 1970~1980년대 산업화 시대의 주역이자 1990~2000년 아파트 호황기를 누리며 민주화의 정치적 격변을 온몸으로 겪은 세대다. 이들은 패션에서부터 대중문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와 상품을 본격적으로 소비한 세대이기도 하다.
일부 전문가들은 “요즘 60대는 가장 오랫동안 일했고 가장 많은 돈을 벌었으며 소비욕망이 강한 세대로 은퇴를 본격화하며 100세 수명시대에 인생 2막을 열고 있는 주역이다”라고 분석한다.
2013년 기준 우리의 기대수명은 81.8세로 요즘 60대는 평균 20년의 삶을 더 산다. 그동안 60대 하면 인생이 끝났다고 보고 퇴직 이후 새로운 시작을 하지 않았지만, 기대수명 82세 시대에선 60대가 “내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새로운 인생을 살겠다”며 다양한 취미와 문화생활을 시작하고 새로운 사업이나 일에 도전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한국은행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세대별 가구당 평균 자산 규모는 50대가 4억2229만원으로 가장 많고 60대가 3억642만원으로 그 뒤를 이었다. 다음은 40대(3억3175만원), 30대(2억4007만원), 30세 미만(8998만원)의 순이었다. 이처럼 자산이 많은 60대는 이전과 다른 왕성한 소비 스타일을 보인다.
서울문화재단이 최근 발표한 ‘서울시민 문화향유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60대 연평균 문화예술 관람 횟수가 38.6회로 30대(37.3회), 40대(30.1회), 50대(31.6회)를 압도했고 문화예술 동호회 참여(66.2%)와 창작적 취미활동(44.6%)도 활발하게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트렌드 분석가 김용섭은 ‘라이프 트렌드 2017’에서 “오늘날의 60대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나이다. 중년도 노년도 아닌 특별 지대인 셈이다. 세상에 없던 새로운 60대가 등장했다. 나이를 잊은 60대의 변신, 멋쟁이로 거듭나는 ‘뉴식스티’를 주목하라. 60대에 대한 기존의 선입견을 과감히 내려놓아야 소비 주체로 급부상한 새로운 60대의 실체가 보일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60대는 인생을 즐기고 치열하게 살아가야 한다며 노인이기를 당당하게 거부하고 왕성한 소비활동과 여가생활을 하는 뉴식스티를 겨냥한 다양한 문화와 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동안 젊은 주인공과 식사하는 장면에만 모습을 보여 ‘식탁용 캐릭터’로 전락한 60대 조연 캐릭터를 등장시켰던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영화, 뮤지컬, 연극 등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들이 최근 들어 큰 변화를 보이고 있다. 60대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나 영화 등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60대 남녀 주인공의 사랑을 그린 작품에서 새로운 60대의 변화된 생활과 심리를 소재로 한 작품에 이르기까지 60대 주인공 캐릭터를 내세운 다양한 내용과 소재의 영화,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연극, 뮤지컬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요즘 중년 남녀의 애절한 사랑을 그린 로버트 제임스 월러의 소설 를 원작으로 한 동명의 뮤지컬과 연극, 자식 세대의 결혼 인턴제, 부모 세대의 졸혼 등 변화된 가족 풍속도를 담은 KBS2 주말극 , 60대 부부가 자식을 다 결혼시킨 후 황혼 이혼 대신 한집에 살되 간섭 없이 독립적으로 사는 해혼(解婚) 생활을 다룬 SBS 주말극 , 60대인 윤여정이 요리사로 나오는 tvN 예능 프로그램 , 김윤진이 40대와 60대 엄마를 오가며 연기하는 영화 등 60대 주인공을 내세운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60대를 겨냥한 대중문화 작품이 붐을 이루면서 이전에는 ‘퇴물’ 취급을 받았던 60대 연예인과 방송인들이 전면에 나서고 있다. 안성기, 윤여정, 김해숙, 강석우, 송승환 등은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에서 주연으로 활동하고 있고 윤석화, 예수정은 젊은 연극배우들도 소화하기 힘든 모노드라마 등에서 주연으로 나서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배철수, 임성훈은 음악 프로그램과 교양 프로그램 메인 MC로 맹활약하고 있으며 손석희는 JTBC 앵커로 나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조용필, 김창완, 하춘화, 장사익, 태진아, 전영록 등 60대 가수들은 신곡을 발표하며 정기적으로 콘서트를 갖는 등 전성기 못지않은 현재진행형 가수로 활약하고 있다. 경쟁이 가장 치열한 대중문화 산업의 선두주자인 SM엔터테인먼트를 이끄는 수장은 60대 이수만이다.
60대에도 주연을 맡으며 한국 영화계를 선도하는 안성기는 “나의 최고 작품은 언제나 다음 작품이라는 마음가짐을 갖고 있다. 60대 배우만이 연기할 수 있는 캐릭터나 내용, 소재의 영화들이 많아졌다”라고 말했다. 대중문화뿐만이 아니다. 이전의 60대와 전혀 다른 소비 스타일과 여가생활을 보여주는 뉴식스티를 겨냥한 패션, 화장품, 여행, 통신 상품 등도 본격적으로 출시되며 성업 중이다.
대학교수로 재직하다 올해 초 정년퇴임한 정영재(65)씨는 “평소 관심이 많았던 스킨스쿠버를 배우기 위한 여행상품을 자주 이용하고 있다. 레저와 결합한 여행상품은 젊은 층만 이용할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됐다. 나 같은 60대도 많이 이용한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뉴 식스티는 이제 새로운 대중문화와 산업의 트렌드의 진원지이자 새로운 문화의 핵심 키워드로 확고하게 자리 잡아가고 있다.
70세의 중견 배우 윤여정이 인기 고공비행을 하고 있다. 바로 젊은 연예인과 신세대 스타들의 전쟁터로 변한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예능 프로그램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윤여정은 인도네시아 발리 인근 섬에서 작은 한식당을 열고 운영하는 과정을 관찰 예능으로 담아낸 tvN 에서 사장 겸 요리사로 나섰다. 윤여정은 에서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젊은이들에게 꼰대 짓을 하지 않는 바람직한 어른 이미지를 보여주며 시청자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상승한 인기를 바탕으로 영화와 드라마에서도 맹활약하고 있다.
에서 특유의 소탈함과 함께 현명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 81세의 신구 역시 에서 아르바이트 점원으로 열심히 일하면서도 젊은 사람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고 KBS 에 출연해 기상천외한 입담을 과시하며 장·노년 연예인 예능 스타 붐의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
70세의 여배우, 81세의 원로 남자 연기자. 한국 대중문화와 연예계에서 이들은 어떤 의미일까. 이 나이쯤 되면 일반적으로 드라마나 영화에서 주인공은커녕 비중 있는 조연 맡기도 힘들다. 가족이 밥 먹는 장면에만 출연하는 ‘식탁용 배우’로의 전락을 감수해야만 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중견 연예인들의 의미 있는 반란과 도전이 시작됐다. 그 반란과 도전의 진원지는 바로 젊은 연예인의 전유물이자 10~30대 젊은 시청자들이 주로 시청하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중장년 연예인들이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와 끼, 면모를 보여주고 친근감을 배가시키며 시청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을 통한 이미지의 확장과 인기 상승을 바탕으로 드라마와 영화의 주연으로 나서는 선순환이 이뤄지면서 중장년 연예인의 재스타화가 속속 이뤄지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을 중장년 연예인의 재발견 창구로 부상시킨 것은 바로 2013년 방송된 tvN 다. 황혼의 해외 배낭여행 포맷으로 진행된 는 파격적으로 노년(老年) 예능을 표방하며 당시 78세였던 이순재, 77세 신구, 73세 박근형, 69세 백일섭을 출연시켰다.
를 연출한 나영석 PD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많은 우려를 했다. 중장년 예능 프로그램이 전무한데다 예능 프로그램의 시청자는 주로 젊은 층이었기 때문이다. 촬영하면서 전혀 예상치 못한 원로 연기자 이순재·신구·박근형·백일섭씨의 모습을 보면서 성공을 예감했다”고 말했다.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은 에서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볼 수 없었던 신선하고 의외의 재미있는 모습을 드러낸데다 연륜이 주는 현명함까지 전달돼 할배 신드롬이 일었고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장·노년 출연자가 인기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의 성공 이후 방송사들은 경쟁적으로 중장년 연예인이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쏟아냈다. 또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젊은 연예인들과 함께 고정 멤버로 출연하는 중장년 연예인도 많아졌다.
결혼을 졸업했다는 고백으로 우리 사회에 ‘졸혼(卒婚)’을 화두로 던지며 공론화했던 백일섭(73)과 이혼 이후 혼자 살며 다양한 취미생활과 여행을 하며 활기차게 장년의 삶을 사는 김용건(71)은 각각 KBS 과 MBC 를 통해 살림살이에서 여가생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들은 혼자 사는 장·노년 사람들의 생활 트렌드를 이끌 뿐만 아니라 유익한 삶의 정보까지 제공해 사랑을 받고 있다.
김국진(52), 강수지(50) 등이 출연하는 SBS 과 김건모(50)가 나오는 SBS 는 중년 연예인의 이미지 확장과 인기 부활 예능 프로그램 역할을 하고 있다. 혼자 사는 중년 연예인들이 여행을 하거나 미션, 놀이를 하면서 싱글 중년의 삶과 문화, 그리고 사랑에 대한 실태와 인식을 보여주는 에서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로맨틱한 김국진의 모습, 소탈한 김완선의 이미지 등을 엿보면서 많은 사람이 중년 연예인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의 출연을 통해 천진무구한 모습과 충격적인 행태를 보인 김건모에게 대중은 더욱더 친근감을 느끼고 있다.
에서 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이순재·윤여정, 백일섭·신구·김용건·이한위·김구라를 비롯한 중년 및 장·노년 연예인들이 이미지를 확장하고 새로운 모습과 끼를 선보이며 예능 스타 반열에 오르고 있다.
김용건은 “를 통해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여줄 수 없는 사적인 부분을 편하게 보여줄 수 있었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새롭게 이해하는 부분이 많았다고 하더라. 예능 프로그램의 출연이 드라마나 영화의 캐릭터 확장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며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중년, 장·노년 연예인의 재발견과 인기 부활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는 예능 프로그램은 젊은 시청자들에게 중장년, 노년층에 대한 이해의 접점을 확장하는 계기도 마련해준다. 에서 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노년 예능 프로그램을 선보인 나영석 PD는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장·노년 연예인의 모습을 보면서 젊은 시청자들이 이들 세대에 대해 더 많은 부분을 알게 되고 이해의 범위도 넓어져 세대갈등 해소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백일섭은 “드라마와 영화를 할 때는 중장년 사람들이 나에게 많은 관심을 보였는데 와 등 예능 프로그램을 하면서 10~30대 젊은 팬이 많이 생겼다. 거리에서 젊은이들이 사인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70세의 중견 배우 윤여정이 인기 고공비행을 하고 있다. 바로 젊은 연예인과 신세대 스타들의 전쟁터로 변한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예능 프로그램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윤여정은 인도네시아 발리 인근 섬에서 작은 한식당을 열고 운영하는 과정을 관찰 예능으로 담아낸 tvN 에서 사장 겸 요리사로 나섰다. 윤여정은 에서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젊은이들에게 꼰대 짓을 하지 않는 바람직한 어른 이미지를 보여주며 시청자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상승한 인기를 바탕으로 영화와 드라마에서도 맹활약하고 있다. 에서 특유의 소탈함과 함께 현명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 81세의 신구 역시 에서 아르바이트 점원으로 열심히 일하면서도 젊은 사람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고 KBS 에 출연해 기상천외한 입담을 과시하며 장·노년 연예인 예능 스타 붐의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
70세의 여배우, 81세의 원로 남자 연기자. 한국 대중문화와 연예계에서 이들은 어떤 의미일까. 이 나이쯤 되면 일반적으로 드라마나 영화에서 주인공은커녕 비중 있는 조연 맡기도 힘들다. 가족이 밥 먹는 장면에만 출연하는 ‘식탁용 배우’로의 전락을 감수해야만 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중견 연예인들의 의미 있는 반란과 도전이 시작됐다. 그 반란과 도전의 진원지는 바로 젊은 연예인의 전유물이자 10~30대 젊은 시청자들이 주로 시청하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중장년 연예인들이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와 끼, 면모를 보여주고 친근감을 배가시키며 시청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을 통한 이미지의 확장과 인기 상승을 바탕으로 드라마와 영화의 주연으로 나서는 선순환이 이뤄지면서 중장년 연예인의 재스타화가 속속 이뤄지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을 중장년 연예인의 재발견 창구로 부상시킨 것은 바로 2013년 방송된 tvN 다. 황혼의 해외 배낭여행 포맷으로 진행된 는 파격적으로 노년(老年) 예능을 표방하며 당시 78세였던 이순재, 77세 신구, 73세 박근형, 69세 백일섭을 출연시켰다.
를 연출한 나영석 PD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많은 우려를 했다. 중장년 예능 프로그램이 전무한데다 예능 프로그램의 시청자는 주로 젊은 층이었기 때문이다. 촬영하면서 전혀 예상치 못한 원로 연기자 이순재·신구·박근형·백일섭씨의 모습을 보면서 성공을 예감했다”고 말했다.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은 에서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볼 수 없었던 신선하고 의외의 재미있는 모습을 드러낸데다 연륜이 주는 현명함까지 전달돼 할배 신드롬이 일었고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장·노년 출연자가 인기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의 성공 이후 방송사들은 경쟁적으로 중장년 연예인이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쏟아냈다. 또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젊은 연예인들과 함께 고정 멤버로 출연하는 중장년 연예인도 많아졌다. 결혼을 졸업했다는 고백으로 우리 사회에 ‘졸혼(卒婚)’을 화두로 던지며 공론화했던 백일섭(73)과 이혼 이후 혼자 살며 다양한 취미생활과 여행을 하며 활기차게 장년의 삶을 사는 김용건(71)은 각각 KBS 과 MBC 를 통해 살림살이에서 여가생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들은 혼자 사는 장·노년 사람들의 생활 트렌드를 이끌 뿐만 아니라 유익한 삶의 정보까지 제공해 사랑을 받고 있다. 김국진(52), 강수지(50) 등이 출연하는 SBS 과 김건모(50)가 나오는 SBS 는 중년 연예인의 이미지 확장과 인기 부활 예능 프로그램 역할을 하고 있다.
혼자 사는 중년 연예인들이 여행을 하거나 미션, 놀이를 하면서 싱글 중년의 삶과 문화, 그리고 사랑에 대한 실태와 인식을 보여주는 에서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로맨틱한 김국진의 모습, 소탈한 김완선의 이미지 등을 엿보면서 많은 사람이 중년 연예인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의 출연을 통해 천진무구한 모습과 충격적인 행태를 보인 김건모에게 대중은 더욱더 친근감을 느끼고 있다. 에서 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이순재·윤여정, 백일섭·신구·김용건·이한위·김구라를 비롯한 중년 및 장·노년 연예인들이 이미지를 확장하고 새로운 모습과 끼를 선보이며 예능 스타 반열에 오르고 있다. 김용건은 “를 통해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여줄 수 없는 사적인 부분을 편하게 보여줄 수 있었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새롭게 이해하는 부분이 많았다고 하더라. 예능 프로그램의 출연이 드라마나 영화의 캐릭터 확장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며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중년, 장·노년 연예인의 재발견과 인기 부활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는 예능 프로그램은 젊은 시청자들에게 중장년, 노년층에 대한 이해의 접점을 확장하는 계기도 마련해준다.
에서 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노년 예능 프로그램을 선보인 나영석 PD는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장·노년 연예인의 모습을 보면서 젊은 시청자들이 이들 세대에 대해 더 많은 부분을 알게 되고 이해의 범위도 넓어져 세대갈등 해소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백일섭은 “드라마와 영화를 할 때는 중장년 사람들이 나에게 많은 관심을 보였는데 와 등 예능 프로그램을 하면서 10~30대 젊은 팬이 많이 생겼다. 거리에서 젊은이들이 사인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영화 에서 실비아 크리스텔처럼 순진했던 여인도 서서히 본능에 눈을 뜨게 된다. 급기야 남편과 서로 각자의 다른 사랑을 인정하고 즐기는 수준까지 도달한다. 이 점을 파고들어 졸혼을 했다면 또 다른 사랑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도발적인 질문을 해봤다. 개그우먼 박미선은 “푸하하!” 하고 웃었다.
보통 여자 연예인들은 포털사이트 프로필에서 나이를 알 수 없다. 밝히길 꺼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미선은 버젓이 1967년 3월 10일이라고 생년월일을 모조리 밝히고 있다. 그만큼 꾸밈이 없고 솔직한 사람이다. 그래서일까? 다른 어떤 게스트와 인터뷰할 때보다 훨씬 설레었다. 솔직하게 막 털어놓을 것 같은 기대감 때문이었다. 박미선과는 2014년 TV조선의 라는 프로그램에서 6개월 정도 같이 방송한 경험이 있다. 그때 메인 MC가 박미선이었고 이봉규는 여우팀을 공격하기 위한 늑대팀의 최전방 공격수였다. 제작진의 이 같은 의도와는 달리 보통 여우들이 아닌 구미호들(금보라, 이경실, 현영 등)을 상대하기에 한량 이봉규는 역부족이었음을 회상한다. 여우들의 화풀이, 분풀이, 속풀이 대상으로 그저 얻어터지기만 했다. 최전방 공격수로서 역할을 못한 정도가 아니라 늑대팀의 자살골을 어시스트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으로까지도 몰렸다. 그때 여우들과 늑대들을 적절히 어루만지며 긴장감과 소통의 고난도 플레이를 능수능란하게 펼쳤던 메인 MC가 바로 박미선이다. 이봉규도 자칭타칭(自稱他稱) 한량이기에 어느 정도 내공이 있다고 자부해왔건만 박미선의 사람 다루는 내공에는 손을 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27세에 결혼해 모범 전과 같은 삶을 살다
방송 MC로서의 내공은 상당하지만 사랑이나 섹스에 관해서는 왠지 솔직한 선무당 같은 느낌이 들어서 훅~ 들어갔다. “남편 이봉원과의 결혼생활 만족하나? 이봉원을 아직 사랑하나? 잘생긴 다른 남자를 보면 설레는 마음이 들지 않나?” 등 집중 포화했다.
솔직한 그녀이기에 쇼킹한 답변을 기대하고서다. 박미선은 역시 기대에 부응했다. “평생 한 남자랑 사는 것은 벌칙이다. 봉원과는 친구 같은 감정이다.” 그러면서 개그우먼의 센스도 곁들인다. “남편과 사랑의 감정 대신 인류간의 사랑이나, 동물을 사랑하거나 무엇인가 대상을 찾고 있다.” 상대의 무기를 공격할 바에는 때린 데 또 때리는 전술도 효과적이다.
“결혼 25년 차 아줌마지만 아직 충분히 매력적이고 섹시하다. 바람피운 적 있나?”라고 도발적으로 물었다. 그녀는 “푸하하!” 하고 크게 웃더니 한참 후에 입을 뗐다. 그래도 은근 기대했는데 “맛을 모르면 그 맛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금단의 열매를 안 먹어봐서 바람피우는 게 어떤 것인지 상상조차 못해봤다. 스물일곱 살에 결혼해서 모범 전과 같은 삶을 살았다”는 쓸쓸한 고백만이 돌아왔다. 방송이 아무리 늦게 끝나도 새벽에 일어나는 습관에다 시간만 나면 책 보기를 좋아해서 음악 카페에서 책을 읽노라면 남편이 채워주지 못하는 빈자리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박미선은 늘 재밌게 살고 있다.
어지간해서는 흔들리지 않는 여자
모범생일지라도 발칙한 상상은 하는 법. 그리고 EBS의 에서 졸혼(혼인관계는 유지하지만, 부부가 서로의 삶에 간섭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개념)에 대해 “각자의 삶을 존중하는 것이 졸혼이라고 생각한다”며 의견을 밝힌 적이 있고 “현재 이봉원과는 설레는 감정이 없다”라고 대답한 적도 있기에 치정 전문가 이봉규가 또 깊숙하게 들어갔다.
프랑스 영화 에서 실비아 크리스텔처럼 순진했던 여인도 서서히 본능에 눈을 뜨게 되고 급기야는 남편과 서로 각자의 다른 사랑을 인정하고 그걸 오히려 즐기는 수준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을 파고들면서 “졸혼을 했다면 각자 서로 다른 사랑을 찾을 수 있지 않나?”라고 도발적으로 물었더니 박미선은 “이봉원이 상남자라서 내가 실비아 크리스텔이 되긴 어렵다”고 말한다. “이봉원은 박미선이 바람을 피우면 즉시 이혼 도장을 찍는다”는 부연 설명도 한다. 워낙 사슴보다 큰 눈을 가진 사람으로 겁이 많기 때문에 그러고 살았으리라! 게다가 박미선은 완벽주의자에 가까운 성품이라 결혼을 깰 정도로 흐트러지기가 매우 어려운 사람이다. 인터뷰 도중에도 다음 녹화 준비에 대해 매니저에게 시시콜콜 체크하며 철저히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눈치 챘다. 이 여인은 어지간해서 무너지지 않겠구나! 이봉원이 전생에 나라를 여러 번 구했나보다. 처복(妻福)이 넘쳐난다. 내가 진행했던 방송 에서 부인 덕을 본 남자 순위를 매긴 적이 있는데 이봉원이 상위에 랭크됐었다. 완벽주의자 박미선이 결혼한 지 25년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남편을 상남자로 대접해주는 걸 보면 이봉원에게 뭔가 필살기가 있다고 봐야 한다. “이봉원이 빚을 많이 져서 박미선이 그걸 갚느라고 방송을 많이 한다” 등의 얘기가 방송가에 떠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봉원은 자기가 버는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해 쓴다. 내가 번 돈을 축내지는 않는다”고 해명한다. 이봉원도 한 방송에서 아내 박미선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라는 별명에 발끈했다. 이봉원은 SBS의 에 출연해 빚에 대해 밝힌 적이 있다. “박미선에게 돈을 빌린 적은 없다. 갚는 것은 내가 다 갚았다. 다만 생활비를 안 줬을 뿐. 돈이 없으니까, 있으면 줬다”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정말 요즘 보기 드문 간 큰 상남자다.
박미선은 이봉원의 이 같은 배짱을 좋아하고 존경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봉원과 끝낸다고 생각조차 안 해봤다”는 그녀의 말 속에는 남편에 대한 존경심이 묻어난다. 그렇다면? 25년 같이 살아온 부인으로부터 상남자로 인정받고 있는 이봉원은 멋진 남자 아닌가? 이 대목에서 한량 이봉규도 슬쩍 위축된다. 재혼한 지 1년이 조금 넘었으니까 아직은 마누라에게 인정받고 있지만 만약 25년 후 늙었을 때도 나를 존경해줄까? 왠지 어깨가 오그라드는 느낌이다.
여든 살이 넘어도 흰머리로 방송하고 싶다
완벽주의자로 준비성 많은 박미선은 버킷리스트를 작성해놓았단다. 몸짱 실천/ 아프리카봉사/ 아무 생각 없이 친구들과 떠나기/ 배낭 메고 세계 유명 미술관 다녀오기/ 마지막 불꽃 태워보기/ 올해 30주년 기념 디너쇼 등이 그녀의 버킷리스트다. 크게 어렵지 않아 보인다. 버킷리스트를 봐도 역시 그녀는 허황함이 없다.
‘마지막 불꽃 태워보기’에 귀가 솔깃해서 “아직 몸매도 예쁘고 매력이 있으니까 더 늙기 전에 빨리 마지막 불꽃을 태울 상대를 찾아라!” 하며 부추겼다. 중년 여성들에게 몰매 맞을 각오하고 조언한다면? 여성의 섹시함은 수명이 그리 길지 않기 때문에 박미선이 지금처럼 섹시함을 유지할 수 있는 기간은 앞으로 10년을 넘지 않으리라는 판단이다. 물론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여자는 남자에 비해 육체적인 섹시함이 빨리 사라진다. 예를 들어 남자 60세는 잘만 관리했다면 상당히 섹시할 수 있다. 숀 코네리는 1930년생으로 88세이지만 아직도 섹시하다. 그의 60대 시절은 섹시함의 전성기였다. 숀 코네리보다 두 살 아래인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아름다움의 대명사였지만 2011년 사망하기 한참 전인 60대에 이미 섹시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오드리 헵번도 마찬가지다. 물론 58년 개띠 마돈나는 60세에도 여전히 섹시하지만 대체로 여자는 남자에 비해 섹시함을 빨리 상실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나의 이 같은 분석이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면? 박미선이 지금의 섹시함을 유지할 수 있는 기간은 10년도 채 남지 않았을지 모른다. 이 점을 용감하게 지적했더니 그녀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인정하면서도 마지막 불꽃을 태울 엄두를 내지 못한다. 상남자 이봉원이 겁이 나서일까? 아니면 대중의 시선이 무서워서일까? 아니면 새로운 사랑의 위험이 무거워서일까? 이것도 저것도 아닐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박미선은 버킷리스트에는 그렇게 적었어도 이생에서는 이봉원을 떠날 용기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지 않을까? 그만큼 만족스런 생활을 해왔던 것은 아닐까? 이봉원과의 결혼생활도 그럭저럭 만족스럽고 지금의 방송활동이나 책을 읽고 영화 보는 취미생활까지 더 이상 바랄 게 없는지도 모른다.
“여든 살이 넘어도 흰머리를 하고 방송하고 싶다. 나이 들수록 일하는 게 즐겁다”고 말하는 박미선의 큰 눈이 더 커진다. 박미선의 버킷리스트는 전부 다 이루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심지어 그녀의 버킷리스트 중에 가장 어려워 보이는 ‘마지막 불꽃 태워보기’도 이뤄질 것 같다. 그런데 혹시 그 상대가 이봉원이 아닐까? 완벽주의자 박미선이 결혼한 지 25년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남편을 상남자로 대접해주는 걸 보면 이봉원에게 뭔가 필살기가 있다고 봐야 한다. “봉원과 끝낸다고 생각조차 안 해봤다”는 그녀의 말 속에는 남편에 대한 존경심이 묻어난다.
“연기는 내게 산소이자 숨구멍 같은 의미예요. 배우가 아닌 나를 생각할 수가 없어요. 배우인 게 정말 좋습니다. 가능만 하다면 다음 생에 태어나도 다시 배우를 하고 싶습니다.” 췌장암으로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오는데도 연기에 방해가 된다며 진통제도 거부한 채 드라마 촬영을 마친 뒤 숨을 거둔 연기자 김영애의 말이다. 그녀는 KBS2 주말극 50회 촬영을 끝낸 지 얼마 안 된 4월 9일 66년간 치열하게 수놓았던 지상의 무대를 떠났다. 동시에 46년간의 연기자 삶도 마감했다. 에 함께 출연했던 차인표가 “김영애 선생님은 촬영을 시작할 때 분장실에서 50회 끝날 때까지 살아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어요. 목숨 걸고 연기했습니다. 직업을 떠나 사회인의 한 사람으로서 맡은 바 책임을 끝까지 다하신 것에 고개가 숙여집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신이 존재한다면 그분이 자신을 연기자의 길로 인도했을 것이라고 말했던 김영애는 스무 살에 연기를 시작해 에서부터 , , , , , , 그리고 까지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정교한 연기력과 빼어난 캐릭터 창출력으로 시청자와 관객에게 진정성과 감동을 선사했다. 지난 2012년 사극 에 출연할 당시 췌장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수술한 뒤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 , 등에 출연해 김영애의 대체 불가 연기를 선보이며 관객과 시청자에게 큰 울림을 줬다. 김영애는 몸이 아파 소리 지르는 연기가 제대로 되지 않아 허리에 끈을 조여 매고 촬영에 임했다. 그리고 죽더라도 연기하며 죽을 것이라는 평소의 다짐을 실천으로 옮겼다. “연기할 때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낀다. 연기는 내 삶의 원동력이다. 그래서 항암치료를 받으며 생명을 연장하기보다 연기하다 죽는 것이 더 행복한 일이다.”
김영애가 생전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또 한 명의 중견 연기자가 폐암의 고통 속에서도 연기 열정을 불사르다 생의 마지막을 맞이했다. 2월 19일 79세를 일기로 숨을 거둔 김지영이다. 그녀는 1960년 영화 로 데뷔한 뒤 수많은 연극, 영화, 드라마에 출연하며 뛰어난 조연 연기를 펼쳤다. 죽기 직전까지 드라마 , 등에 출연했고 병세가 악화한 상황에서도 차기작을 준비했을 정도로 연기 열정이 남달랐다. 김지영은 57년 동안 무대에서, 스크린에서 그리고 TV 화면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는 주연은 단 한 번도 하지 못했다. 비록 식모, 주모, 첩 등 시청자나 관객의 눈길을 끌 만한 멋진 배역은 아니었지만, 김지영만이 소화해낼 수 있는 캐릭터로 승화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특히 그녀는 시대극, 사극, 현대극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 ‘조연 연기의 지존’으로 평가받았고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함경도, 강원도 등 지역 사투리를 완벽하게 구사해 ‘사투리 대사의 달인’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김지영은 생전의 인터뷰에서 “나는 연기가 너무 좋아. 나에게 다가온 고통과 불행도 연기할 때는 다 잊을 수 있어. 김지영 인생에 연기를 빼놓으면 아무것도 없지”라고 말했다. “사망하기 두 달 전 병세가 악화해 호스피스 병원으로 거처를 옮겼지만 새로운 작품을 해야 한다며 운동을 하는 등 연기 의지를 드러내셨다. 5월에 새로운 작품을 할 예정이었다. 새 작품 준비를 하다 숨을 거두셨다.” 김지영 가족들의 전언이다.
“어머니 여운계는 사람들에게 끝까지 연기하는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좋겠다. 어머니는 ‘나는 죽을 각오로 무대 위에서 연기하고 죽는 그 순간까지도 죽음이라는 연기를 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배우 여운계를 기억해줘 감사하다. 배우 여운계를 사랑해줘 감사하다.” 2009년 5월 22일 폐암으로 숨을 거둔 연기자 여운계의 딸, 차가현씨가 한 말이다. 암세포가 온몸을 덮는 순간에도 연기에 임한 연기자가 바로 여운계다. 한 번도 아닌 두 번의 암도 여운계의 뜨겁고 끝없는 연기 열정을 꺾지는 못했다. 2007년 신장암 판정을 받고 SBS 사극 에 출연한 데 이어 수술 후 곧바로 드라마 에 복귀했고 2008년에는 폐암 진단을 받고도 일일극 에 출연했다. 여운계는 그녀의 삶 69년 중 48년을 연기자로 살아왔다. 고려대 국문학과 재학 시절 연극반 활동을 하다 1962년 KBS 탤런트로 본격적인 연기자의 길로 들어선 여운계는 수많은 연극과 영화, 드라마를 통해 관객과 시청자를 만나왔다.
여운계는 출연 당시 진행된 인터뷰에서 “연기자는 정년이 없어요. 죽는 순간이 정년이지요. 연기자는 연기를 펼치는 마당에서 죽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여운계는 그녀의 말처럼 연기를 하다 생을 마감한 천생 배우였다. “대장암 다 치료됐어요. 드라마 다시 하니까 살 것 같아요. 드라마를 하면 정말 내가 살아있는 것을 느껴요”라고 밝게 웃으며 말했던 여배우는 김자옥이다. 대장암 수술 후 작품에 출연했던 김자옥은 얼마 안 돼 암이 폐로 전이된 상황을 알게 됐다.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작품에 출연한 그녀는 2014년 6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970년 MBC 탤런트 공채 2기로 연기를 시작해 등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멜로 연기를 펼쳐 만인의 연인으로 사랑을 받았던 김자옥은 2008년 대장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했다. 수술 직후 만났던 그녀는 “투병생활 잘하고 기도 열심히 하고 있으니 금방 나을 거예요. 드라마 출연하면 좋은 글 많이 써줘요”라며 밝게 웃었다. 그리고 암이 폐로 전이된 이후에도 드라마뿐만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 라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 시청자들에게 많은 웃음을 선사했다. 출연 당시 쾌유를 비는 말을 하자 김자옥은 “걱정하지 하지 말아요. 빨리 나아 활동 열심히 할 거예요”라고 씩씩하게 말했다. 비록 실천하지 못하고 삶을 마감했지만, 김자옥은 죽는 순간까지 연기자로서 치열한 삶을 살았다. 암의 고통 속에서도 그리고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 공포에 굴하지 않고 연기자로서 삶을 선택했던 김영애, 김지영, 여운계, 김자옥으로 인해 한국 드라마와 영화, 연극 연기의 지평은 확장됐고 연기자에 대한 인식은 긍정적으로 변했다. 비록 그녀들은 떠났지만, 자신이 남긴 작품들을 통해 연기자로서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
글 배국남 대중문화 평론가
김혜자(76), 나문희(76), 고두심(66).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다양한 성격과 문양의 한국적 어머니를 연기해 ‘국민 엄마’라는 타이틀을 얻은 명배우라는 점이다. 그리고 45~56년 동안 시청자와 관객을 만나온 ‘우리 시대 최고의 연기파 여배우’라는 것도 이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최고의 연기력을 인증하는 연기대상 수상자라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그래서 대중과 전문가는 이들에게 ‘연기의 신’, ‘연기 9단’, ‘연기 거장’, ‘연기의 달인’이라는 수식어를 거침없이 부여하고, 후배 연기자들은 이들을 닮고 싶은 롤모델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김혜자, 나문희, 고두심은 ‘최고의 배우’라는 상징적 신화에 머물지 않고 여전히 드라마와 영화, 연극을 통해 대중과 왕성하게 만나는 현재진행형의 최고 연기자다. 이들에게 연기는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삶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일까.
프랑스 사회학자 에드가 모랭은 저서 에서 “신인은 몸을, 스타는 영혼을 보여준다”고 했다. 영혼을 보여주는 스타가 바로 김혜자다. 그녀의 연기에 혼이 담겨 있기에 그렇다. 드라마 의 일상성이 짙게 배어 있는 어머니에서부터 영화 에서의 강렬한 엄마에 이르기까지 일상성과 강렬함이 깃든 다양한 캐릭터를 오가며 시청자에게 영혼이 깃든 연기를 보여준 배우가 김혜자다. 이 때문에 작가 김정수는 김혜자를 가리켜 “연기 9단의 입신 경지”라고 표현했고 봉준호 감독은 “김혜자 연기는 접신 수준”이라는 찬사를 했다.
1962년 KBS 1기 탤런트로 연기생활을 시작한 김혜자는 드라마 , , , 영화 , , 연극 등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 연극을 통해 대중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선사했다. 천부적인 재능과 끼 그리고 후천적인 성실함과 노력으로 입신의 경지에 이르는 연기력을 보이는 스타로 우뚝 선 김혜자는 “연기는 직업이 아니라 삶이며 모든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녀의 삶도 연기만큼 아름답고 치열하다. 스타로서의 명성과 영향력을 기부와 봉사 등 소외된 사회적 약자를 위해 활용하며 의미 있는 삶을 일구고 있기 때문이다. “제가 한 것은 없어요. 힘든 사람들의 손을 잡으면서 내 삶이 더 행복해지고 더 많은 것을 배웠으니 제가 은혜를 받은 것이지요.” 연기자로 살면서 엄마 노릇을 제대로 못해 자녀들에게 늘 미안하지만, 자녀들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항상 기도한다는 김혜자는 작품에서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긍정적인 희망과 밝은 꿈을 선사하는 아름다운 어머니다.
“누가 배우 나문희를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저는 세상에서 가장 욕심 많은 배우라고 말할 겁니다. 그리고 또 누가 인간 나문희를 말하라면 이렇게 말할 겁니다. 화면에 단 한 컷도 거짓이었던 적이 없었던 인간이라고요.”
에서부터 까지 수많은 드라마에서 나문희와 함께 작업한 드라마 작가 노희경의 말이다. 그렇다. 화면의 단 한 컷도 거짓이었던 적이 없고 드라마와 영화, 연극 속에서 진정으로 소생하는 배우가 바로 나문희다. 그래서 ‘70대의 나이에도 영화와 드라마에 주연으로 나서는 유일한 연기자’, ‘영화감독과 드라마 PD, 작가들이 가장 캐스팅하고 싶은 배우’, ‘믿고 감동하는 배우’라는 수식어가 나문희에게 헌사된다.
라디오가 인기 매체였던 1961년 MBC 성우 공채 1기로 연예계 생활을 시작한 나문희는 드라마와 영화, 연극으로 활동무대를 넓히면서 대중과 만나왔다. 나문희가 우리 시대 최고의 연기력을 가진 배우로 부상한 가장 큰 원동력은 바로 주어진 배역이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온 힘을 다해 개연성과 진정성을 부여하는 연기자의 자세다. 노역, 비중이 작은 캐릭터 등 온갖 배역을 맡으면서 다양한 연기의 문양을 체득해 최고의 연기자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작은 배역은 있어도 작은 배우는 없다’는 말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연기자가 바로 나문희다.
화장실에 가는 순간에도 대본을 놓지 않는 엄청난 노력과 연습도 오늘의 나문희를 만든 또 다른 힘이다. 영화 에서 나문희와 함께 작업한 후배 연기자 설경구는 “나문희 선생님의 대본이 너덜너덜한 것을 보고 얼마나 연습하고 노력했는지를 알 수 있었지요. 후배들에게 연기자로서의 방향을 제시하는 최고의 선배 연기자입니다”라고 말한다. 나문희는 “연기는 내가 하는 전부이자 전부를 거는 분야입니다. 전부를 거는 것에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시청자와 관객은 돌아서지요. 그래서 대본을 받는 순간에서 녹화를 끝낼 때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어요. 저는 연기가 너무 좋아요. 그리고 연기가 이전보다 좋아졌다는 말을 듣기 위해 노력해요. 저에게는 지금도 연기 늘었다는 말이 가장 큰 찬사예요”라고 말하며 웃는다.
“엄마(나문희)의 삶은 가족들에게 헌신적이고 생활은 담백해요. 연기밖에 모르는 분이지요.” 연극과 뮤지컬 공연장에서 가끔 만나는 나문희 딸들의 말 속에서 나문희의 삶의 문양을 엿볼 수 있다.
연기대상은 평생 한 번 받기도 힘든 상이다. 최고의 연기력과 인기, 드라마 시청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수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1972년 MBC 공채 탤런트로 연기를 시작한 고두심은 45년 연기생활 동안 KBS 연기대상 세 번(1989년 , 2004년 , 2015년 ), MBC 연기대상 두 번(1990년 , 2004년 ), SBS 연기대상 한 번(2000년 ) 등 총 여섯 번이라는,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연기대상 수상기록을 세웠다.
“처녀 때도 늘 아줌마, 할머니 역을 해 근사한 멜로드라마 주인공 한번 하지 못했다”는 고두심은 탤런트가 된 후 한동안 가정부, 술집 종업원 등 단역에 머물거나 그나마 배역도 없이 녹화장 주변을 서성거리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러나 무역회사 근무와 탤런트 생활을 병행해야만 했던 신인 시절을 지나 다양한 작품과 캐릭터를 맡으면서 연기력의 스펙트럼을 꾸준히 확장하며 최고의 연기자로 부상했다. 로 고두심에게 연기대상을 안겨준 장수봉 PD는 “고두심은 천부적인 연기자다. 고두심이 연기하면 캐릭터가 진정한 생명력을 얻는다”고 찬사를 보냈다.
고두심은 드라마 촬영장에선 놀라울 정도로 캐릭터에 몰입하는 집중력을 보인다. 그리고 촬영장 밖에서는 드라마 캐릭터에 관련한 인물을 지속해서 연구한다. “작품이 주어지면 항상 그 인물의 형상을 그린다. 양치질하다가도 거울을 보면서도 캐릭터를 생각한다.” 이처럼 철저한 고두심이기에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어떤 배역에도 자신을 맞출 수 있고, 모든 행동을 믿을 만하고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배우로 꼽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고두심은 인생의 두 가지를 아름답게 피워낸 보기 드문 사람이다. 하나는 연기에 대한 열정이고, 하나는 삶에 대한 진지함이다”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고두심은 “엄마로서, 아내로서 삶은 아쉬움이 있지만 지난 46년 동안 제 꿈이었던 배우로 살아서 행복했어요. 앞으로도 열심히 하는 배우로 살아갈 겁니다. 인생이 그러하듯 배우로서 오르막길을 올라왔으니 내려가는 일도 지금처럼 잘했으면 합니다”라며 특유의 환한 웃음을 짓는다.
중견 배우 백일섭은 30여 년의 결혼생활 끝에 졸혼(卒婚)을 선언한 뒤 독립해 직접 청소도 하고 요리도 하며 혼자 생활한다(KBS ). 마라토너 출신 방송인 이봉주는 강원 삼척시 처가에서 장인과 함께 옥신각신하며 시간을 보낸다(SBS ). 지난해 결혼한 배우 구혜선과 안재현은 강원 인제에서 달콤한 신혼생활과 신세대 부부의 문화를 보여준다(tvN ). 예능인 김구라는 이혼 뒤 함께 사는 아들 동현이와 때로는 격의 없는 친구처럼 때로는 근엄한 아버지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채널A ). 가수 황혜영, 정치인 김경록 부부의 부모들은 함께 식사하며 나들이도 하고 요즘 사돈 관계의 문양을 드러낸다(MBN ).
요즘 눈길을 끄는 예능 프로그램들이다. 최근 주요한 트렌드 중 하나가 바로 이전과 달라진 가족 형태를 보여주는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의 증가다. 미혼, 비혼, 졸혼 등으로 혼자 사는 1인 가구를 전면에 내세운 예능 프로그램에서부터 실제 결혼한 부부와 가상 부부, 이혼 가족, 처가와 함께 사는 사위, 혈연 가족은 아니지만 함께 살며 정을 나누는 유사 가족 등 다양한 가족 형태를 드러내는 예능 프로그램이 속속 시청자와 만나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또한 살림과 육아를 전담하는 남편, 생계를 책임지는 아내 등 가족 구성원의 역할 변화를 보여주는 예능 프로그램도 봇물 터지듯 쏟아지며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연예인과 일반인이 출연해 다양한 가족 형태와 변모한 가족 구성원의 역할을 드러내는 예능 프로그램이 주요한 트렌드이자 인기 예능 키워드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가족 형태가 등장하는 예능 프로그램은 현실을 반영하기도 하고 현실 속의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쳐 변화와 트렌드를 선도해나가기도 한다. 최근 사회와 산업구조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가족의 형태에서부터 가족 구성원의 역할 역시 크게 변했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자신의 책 에서 밝혔듯 가족은 능동적으로 변화한다. 가족 형태, 가족 구성원의 역할, 가족생활 스타일 등은 사회·경제적 상황 변화에 따라 크게 변모한다.
근래 들어 우리 사회는 취업난, 100세 시대, 빨라진 은퇴 나이, 고령 인구 급증 등으로 미혼, 이혼, 비혼, 졸혼이 크게 늘면서 1인 가구가 증가했고 가족 구성원의 역할도 이전과 다른 양태를 보이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은 이 같은 가족과 관련된 실태와 변화, 그리고 트렌드를 수용해 다양한 포맷으로 보여주고 있다.
급증하는 1인 가구의 생활, 문화 등을 보여주는 예능 프로그램은 최근 38세의 토니 안부터 47세의 박수홍, 50세의 김건모까지 혼자 사는 30~50대 남자 연예인들의 생활과 문화를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SBS ). 김국진·강수지·김완선·김광규 등 이혼, 미혼 등의 이유로 혼자 사는 40~50대 연예인들이 여행하며 연애와 결혼,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SBS), 중견 연기자 김용건부터 개그우먼 박나래까지 혼자 사는 연예인의 일상을 담은 (MBC), 최근 졸혼을 선언한 뒤 혼자 살며 요리와 빨래 등 살림살이를 배우고 있는 백일섭 등이 출연하는 (KBS)도 1인 가구의 생활과 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혼자 밥 먹는 혼밥족들의 다양한 모습과 실태를 보여주는 (올리브TV), 혼자 술을 먹고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올리브TV), 혼자 여행하는 모습을 담은 (스카이 트래블),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한 편의점 활용법과 편의점 음식을 활용한 요리 만들기 등을 알려주는 (tvN) 등도 1인 가구를 다루고 있거나 다룬 대표적인 예능 프로그램이다.
이전과 다른 신세대 신혼부부의 변화된 결혼생활과 문화 그리고 연애 트렌드를 보여주는 프로그램도 크게 늘었다. 지난해 결혼한 구혜선·안재현 부부가 출연해 요리하는 남편, 가구 등을 만드는 아내 등 기성세대 부부와 사뭇 다른 신세대 부부의 생활과 문화를 보여준 (tvN), 가상 신혼부부와 재혼 부부를 통해 요즘 부부의 결혼 풍속도를 드러내는 (MBC), (JTBC) 그리고 미혼 남녀 연예인의 전화 통화 데이트를 통해 요즘 신세대의 연애 트렌드를 살펴보는 (tvN) 등이 이전과 다른 부부 생활과 연애, 결혼 풍속도를 보여주는 예능 프로그램으로 인기가 높다.
또한 부모와 자식이 출연해 변화된 부모-자식 관계를 드러내는 예능 프로그램도 크게 늘었다. 김종국, 허경환 등 미혼 남자 연예인과 어머니가 함께 여행하며 어머니와 아들 관계를 살펴보는 (TV조선), 김구라·이한위·이수근 등이 출연해 자녀들과 함께 생활하는 모습을 통해 변화한 부자 관계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채널A), 이승연 등 여자 연예인과 자녀와의 생활을 통해 변모한 모녀·모자 관계를 생각하게 해주는 (TV조선) 등이 전통적 관계와 다른 오늘날의 부모 자식 간 관계를 조명하는 예능 프로그램들이다.
이밖에 사위가 장인, 장모가 함께 생활하는 모습을 통해 달라진 사위와 처가와의 관계 또는 장인, 장모에 대한 사위의 생각을 전달하는 (SBS), 부부의 부모들이 함께 여행하거나 생활하는 모습을 통해 변화된 사돈 관계를 보여주는 (MBN) 등은 과거 어렵게만 여겨졌던 처가와 사돈 관계가 요즘에는 어떻게 변했는지를 엿볼 수 있게 해주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이처럼 예능 프로그램들은 현실 속 변화된 가족의 형태와 가족 구성원의 역할, 부부생활, 결혼과 연애 풍속도, 자녀에 대한 인식을 재미로 잘 포장해 보여주고 있다. 이들 예능 프로그램은 많은 사람에게 가족과 가족 구성원의 변화한 트렌드와 정보를 제공해줄 뿐만 아니라 바람직한 가족으로의 변화를 유도하는 긍정적인 영향도 미치고 있다. 하지만 남성 우월주의, 가부장주의, 1인 가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심화 등 일부 예능 프로그램은 현실과 동떨어진 모습을 보여주거나 가족에 대한 왜곡된 시선과 편견을 조장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다행히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다양한 가족 형태와 가족 구성원 역할 변화를 보여주는 예능 프로그램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이다. 새로운 가족 형태와 구성원 역할 변화에 대해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짙푸른 동해 바다. 저 멀고 깊은 곳으로 눈길이 따라가면 하늘이 시작된다. 바람과 파도소리도 경계가 흐려져 귓가에는 하나의 소리로 들릴 뿐이다. 구름 아래 뻗은 손가락 사이로 눈부신 햇살이, 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주황색 빛이 몸을 감싸 내린다. 그곳에 서 있는 기분? 이게 바로 축복 아닐까.
산과 바다, 하늘이 이어진 예술가의 놀이터
멀리 바다에서 시야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면 청록색 소나무 숲길과 다양한 형상을 한 조각상이 자유로이 서 있다. 한적한 해안도로 옆, 예술가의 숨길과 손길이 쉼 없이 스쳐지나가는 하슬라아트월드(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발길이 머무는 순간 관람객이 아닌 설치된 미술작품의 한 소재로서 존중받는 곳이다. ‘하슬라’는 고구려·신라시대에 사용됐던 강릉의 옛 지명으로 ‘해와 밝음’이라는 의미의 순수한 우리말이다. 여기에 ‘아트월드’를 붙여 ‘강릉에 세워진 예술가의 공간’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강릉 출신 미술가 박신정·최옥영 부부의 예술가적 기질이 이 공간을 채웠다. 박신정 대표는 하슬라아트월드 홈페이지를 통해 “외국에 작품 전시를 다니면서 예술품뿐만 아니라 전시 장소와 사람들에게 더 많은 감동을 받아왔다”며 “모든 것이 조화롭게 화합하는 곳을 꿈꿨다”고 공간 건립 배경을 설명했다. 2003년 조각공원을 시작으로 2009년 뮤지엄 호텔(24개 객실), 2010년 현대미술관, 2011년 피노키오 박물관과 마리오네트 미술관을 순차 개관했다. 하슬라아트월드는 연간 약 15만 명이 찾는 강릉의 관광 명소다. 최근 SBS 드라마 와 영화 촬영 장소로 이용됐고, MBC 드라마 의 주요 무대가 됐다.
하슬라아트월드의 크고 작은 모든 공간이 예술가들의 작업 현장이자 방문객의 관람 장소다. 이곳은 뭐든 다중적인 감각과 의미가 부여돼 있다. 호텔일 수도, 전시실일 수도 혹은 그 반대일 수도 있는 것이 이곳의 특징. 보는 사람에 따라 자유로이 생각하고 상상을 즐기는 곳이다. 작가들은 이곳에 상주하면서 작품 활동도 한다. 취재를 갔던 4월 초에는 마침 최옥영 대표가 전시에 필요한 작품을 손보고 있었다. 작업복 차림의 최 대표는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온몸에 먼지가 잔뜩’이라고 멋쩍게 웃었다. 최 대표는 “자연 자체로도 아름다운 곳과 인연이 된 것에 고마움을 느낀다”면서 “예술가라 타협도 잘 못하고 부족하지만 생긴 대로 오랫동안 이곳을 지킬 것”이라고 말하고는 다시 작업에 집중했다.
고래 뱃속을 걷는 피노키오처럼
하슬라아트월드는 정해진 방식은 아니지만 현대미술관, 피노키오 박물관, 마리오네트 미술관 순으로 관람한다. 현대미술관은 호텔 건물 로비에서부터 미로처럼 연결돼 있다. 지상에서 지하로, 다시 지상으로 오르내리며 작품 감상을 하는 구조다. 동해의 파란빛과 자연광, 목조 마루, 겉치레 없는 시멘트벽을 배경으로 작품들이 자연스럽게 건물 곳곳에 녹아들어 있다. 마치 어딘가 ‘툭’ 하고 놓아둔 느낌에 시선이 간다. 감각적이고 기발함이 돋보이는 회화와 조각 작품 200여 점도 전시되고 있다.
손자·손녀의 감성자극 미술 공간이 현대미술관 다음에 이어지는 피노키오 박물관이다. 특히 박물관으로 향하는 통로가 매우 인상적이다. 피노키오가 고래 뱃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형상화한 공간으로 어린이들에게 사랑받는 공간이다. 큰 원형 통로 내부를 플라스틱 비닐로 촘촘하게 감싸놓았고, 형형색색 움직이는 조명을 설치했다. 마치 고래 뱃속을 여행하는 피노키오가 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사각거리는 비닐 소리와 사람의 말소리, 웃음소리 그리고 조명이 마블링되듯 섞여 완벽한 예술작품으로 거듭나는 곳이다.
피노키오 박물관에는 피노키오 관련 작품 500여 점이 있다. 3개월에 한 번씩 작품과 전시 성격을 바꾸고 있다고. 이곳에는 꽃으로 만들어진 피노키오와 유럽에서 들여온 각양각색의 피노키오를 만날 수 있다. 디즈니 만화영화 피노키오 관람은 덤이다.
마리오네트 미술관에서는 센서로 움직이는 하슬라아트월드의 특허품 ‘마리봇’을 만날 수 있다. 사람이 가까이 오면 팔과 다리를 흔들어 몸을 움직인다. 체코,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에서 가지고 온 특별한 마리오네트가 관람객을 맞는다.
편견 없이 예술작품을 감상할 것
실내 관람을 마치면 조각공원 산책을 한다. 호텔 안 매표소 쪽으로 다시 돌아가 실내 계단을 이용해 조각공원 입구로 간다. 반드시 편한 신발을 준비하라. 빨리 다녀도 최소 30분이고 나지막한 언덕을 걸어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솔향 가득한 소나무 정원을 지나 무심히 서 있는 조각들을 보며 걷다 잠시 뒤를 돌아보시라. 자연이 내려준 예술작품(?)을 벅찬 마음으로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외에도 동해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바다카페와 전망대, 아이들의 체험학습장과 소똥박물관 등이 있다. 자연 속 나 자신이 작품의 하나라는 것을 인식하게 해주는 소중한 공간이 하슬라아트월드 안에 있다.
하슬라아트월드에서 찾아볼 수 없는 몇 가지가 있다. 작품의 제목, 작가 이름 그리고 거울이다. 심지어 거울은 화장실에도 없다. 시멘트벽도 골조 외에 별다른 장치가 없다. 이 모든 것에는 편견 없이 작품을 바라보고 집중해달라는 대표의 철학이 담겨 있다. 단, 예약제로 진행되는 도슨트 시간에는 작품과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작품에 관한 설명이 듣고 싶다면 도슨트 설명을 들어보시라.
‘상실의 시대, 판타지와 정치·현실 직시 콘텐츠에 위안받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017년 콘텐츠 산업 10대 트렌드의 하나로 전망한 것이다.
그렇다. 최근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와 흥행에 성공한 영화는 판타지물과 현실을 소재로 한 것들이 주류를 이룬다. 현실을 소재로 했다 하더라도 상당수의 작품이 판타지를 가미한 것이다. 판타지는 요즘 드라마와 영화 등 대중문화 콘텐츠를 강타하는 인기 키워드로 강력하게 부상하고 있다.
“가 끝나 허전해요. 재방송이나 다시보기를 통해 를 또 봅니다. 몇 번이나 봐도 좋아요.”
“광고에 의 주연 공유만 나와도 가슴이 설레네요.”
1월 21일 막을 내린 공유, 이동욱, 김고은 주연의 tvN 드라마 신드롬의 여진은 강력하다. 시대와 운명, 죽음마저 뛰어넘으며 사랑을 일구는 판타지 멜로드라마 는 16회 마지막 방송에서 20.6%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1995년 개국한 이후 케이블 TV가 20%대를 처음 돌파하는 기적을 연출한 것이다. “너와 함께한 모든 시간이 눈부셨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등 극중 대사가 유행어가 되는 것을 비롯해 특히 여성 시청자의 절대적 지지 속에 신드롬을 일으켰다.
1월 25일 끝난 이민호, 전지현 주연의 SBS 드라마 역시 시대와 운명을 초월한 사랑과 행복을 그린 판타지 로맨스물로 21%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시청자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판타지물 드라마 강세는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들과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는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고 나와 내 가족, 강 선생과 강 선생 가족, 그 가족의 소중한 사람들, 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땅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는 일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드라마 의 유시진 대위(송중기 분)는 죽음을 감수하며 전쟁터에 나가 평화를 지키고, 재난 현장에서 사람의 생명을 구한다. “보이지 않으니 더 화가 나 미칠 것 같았거든. 그러니 내 곁에 있어라.” 의 왕세자 이영(박보검 분)과 역적 홍경래의 딸이 운명과 신분의 벽을 뛰어넘는 절절한 사랑을 한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들은 정의와 자유를 위해 죽음을 불사하거나 모든 조건을 뛰어넘는 순수한 사랑을 그렸다. 요즘 대한민국 현실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판타지다.
판타지가 부상하는 이유
올해 들어서도 판타지물 드라마의 열기는 뜨겁다. 인간의 생명보다 이윤 추구에 열을 올리는 병원에서 생명을 가장 중하게 여기며 최선의 인술을 펼친 , 근로자의 생존권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본의 탐욕에 사로잡힌 재벌과 경영진에 맞서 싸우는 과장의 고군분투를 담은 등 올해 들어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들 역시 현실을 소재로 했지만, 결론은 판타지물에 가깝다.
최근 관객의 눈길을 끈 영화는 , , 등이다. 검사 출신 국회의원, 불법자금 지원으로 담보 받은 정치권과 언론의 비호로 기업을 키우는 재벌, 그리고 부패한 권력과 부정한 재벌을 옹호하는 논설주간 등 우리 현실에서 볼 수 있는 군상과 권력, 자본의 폐해를 드러낸
에서부터 각자도생해야 하는 대한민국 사회를 좀비물로 담아낸 에 이르기까지 흥행에 성공한 영화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우리 정치나 현실의 민낯을 전면에 내세웠다. 하지만 이 영화들 역시 결론은 부패 권력과 부조리한 금력에 대한 철저한 단죄와 정의 구현 등으로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판타지적 성격을 보인다.
최근 들어 많은 사람이 열광한 영화와 드라마는 무능한 정부, 비리로 얼룩진 정치인과 권력층, 탐욕스러운 재벌의 불편한 진실과 이들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고통 받는 현실의 민낯을 포착하거나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환상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텍스트의 결은 다르지만, 작품을 관통하는 본질은 판타지라는 공통점이 있다.
왜 요즘 대중문화의 인기 트렌드로 판타지가 부상할까. 판타지는 허구적인 구성물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소망들이 성취되는 장소이자 양식을 말한다. 영화 이론가 수잔 헤이워드가 강조하듯 판타지는 무의식의 표현으로 우리가 억압하는 영역, 즉 무의식의 영역과 꿈의 세계를 반영한다. 다시 말하면 판타지란 실재하지 않지만, 우리의 꿈과 무의식 속에 그럴듯하게 자리 잡고 있는 세계다.
고단한 현실 위로
영화와 드라마는 현실의 거울이다. 영화와 드라마는 정치, 경제, 사회적 상황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물론 대중의 욕망도 강하게 투영돼 있다. 이 때문에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한 시대의 상황과 사람들의 가치관, 삶의 방식, 취향 등을 엿볼 수 있다.
사람들은 판타지물 영화와 드라마를 보면서 부조리한 현실을 개선하고 싶은 의지를 투영하거나, 정의가 부정을 압도하고 진실이 거짓을 이기는 세상에 대한 열망을 드러낸다. 물론 카타르시스도 느낀다. 또한 사랑과 결혼이 재산과 학벌, 외모 등 외형적 조건의 교환 이상도 이하도 아닌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판타지물에서 힘든 상황과 운명, 계급의 차이를 뛰어넘는 진정한 사랑과 행복에 대한 대리만족을 구하기도 한다.
판타지물에 대한 열광의 이면에는 무엇보다 고단한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현실도피 욕구가 강력하게 자리한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로 3312만 마리 가금류가 살처분된 데 이어 구제역까지 발생해 축산농가가 초토화돼 농민들이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조선업 구조조정으로 수많은 노동자가 차가운 길거리를 배회하고 있다. 젊은이들은 취업난으로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하며 살아가고 있다. 2017년 대한민국의 이런 척박한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 등 판타지물을 보면서 잠시나마 현실의 고통을 잊을 기회를 얻는다. 부조리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이 수많은 사람을 판타지물에 대한 열광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