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는 지난달 미국의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2060년까지 2배가량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며, 이에 따라 노인 돌봄을 위한 VR(가상현실) 요법의 필요성이 대두될 것으로 내다봤다. 보도에 따르면, 많은 회사가 요양시설 노인들에게 비약물 치매치료의 일환인 VR 회상요법을 제공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처럼 치매를 비롯한 다양한 의료 분야에서 VR 요법을 통해 외상 및 만성 통증 환자를 치료하려는 움직임이 전 세계적으로 활발해지는 추세다.
VR 회상요법, 노인에게 적합할까?
대표적인 메타버스 전문기업 ‘렌데버’(Rendever)는 미국, 캐나다, 호주 등 450여 개 시설과 협력해 노인 돌봄 및 치료 분야에 해당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특히, 치매를 비롯한 기억력 감퇴와 우울증, 고립감 등을 호소하는 노년층에게도 이러한 VR 요법이 효과를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연구팀은 VR 회상요법이 노인의 정신 활동을 자극해 우울감과 고립감을 해소하고, 불안 장애 및 인지 능력 등을 향상시킨다고 보고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1~2개월에 걸쳐 여러 세션을 거친 후 효과를 보기 시작했는데, 항정신병 약을 복용하던 노인들의 경우 그 사용량이 70%까지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VR 회상요법이란 VR 기술을 통해 노인의 기억 속 과거 환경을 조성, 젊은 시절을 회상하고 경험함으로써 행복감 증진 및 우울감 개선에 도움을 주는 비약물 치료법이다. 이러한 과정이 뇌의 기억력과 인지력을 자극해 치매 예방 및 치료에 주로 쓰인다. 이러한 VR 장치를 통해 노인들은 과거 여행했던 나라를 다시 가보기도 하고, 젊은 시절 추억의 장소로 순간 이동하기도 한다. 옷이나 스타일링도 그 당시 스타일을 재현한다. VR을 통해 고령자들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 경험을 회기하며 외로움을 해소하고 즐거움을 공유하기도 한다. 이러한 서비스는 단순히 과거 경험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친척이나 친구의 결혼식, 장례식 등에서 녹화된 3D 비디오로 구현한 가상 행사에 참석하는 등 새로운 기억을 생성·강화하기도 한다.
이렇듯 VR 치료가 노인들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주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치매환자 등 일부 노인에게는 부적합할 수도 있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치매에 걸린 이들의 경우 VR 요법을 위해 헤드셋을 착용하고 눈을 가리는 등의 과정에서 신체에 불편을 호소하거나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업체는 VR 회상 세션을 45분 정도로 제한하는데, 그 사이에도 개인에 따라 현기증이나 두통을 유발할 수 있다. 또, 무엇보다 당사자들이 해당 요법의 활용이나 목적 등에 대해 이해하기 어려워 그 효과가 예상보다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자칫 이러한 서비스가 확대됨에 따라 대면 서비스 등이 줄어 오히려 노인을 사회적으로 고립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국내 VR 회상요법, 대중화되려면?
국내에서도 삼성서울병원 디지털치료연구센터를 비롯한 대학병원, 요양원 등에서 VR 요법을 시도하고 있다. 또 이러한 기술을 연구하고 서비스를 보급하는 업체들도 속속 등장하는 추세다. 대면 치매 선별 기술 스타트업 ‘세븐포인트원’도 그중 한 사례로, 가상현실과 의료기술을 융합한 스마트 케어 솔루션 ‘센텐츠’ 서비스를 개발·운영하고 있다.
현재 센텐츠는 9단계로 조정된 인지 자극 콘텐츠를 35주 과정으로 선보이고 있다. 주로 요양원이나 데이케어 센터 등에서 5~10명씩 그룹으로 프로그램에 참여하거나, (가정으로)방문 요양 서비스 패키지의 일부로 포함된다. 세븐포인트원 이현준 대표는 “센텐츠 VR 회상요법을 통해 환자의 기억 회상 단어 개수가 기존 1.2개에서 4.6개로 4배가량 상승했고, 폐 질환 관련 호흡량도 약 16% 상승하는 결과를 보였다”며 “특히 현장에서 VR요법 시행 후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효과는 어르신들의 ‘행복감’이다. 주로 아프기 전 젊은 시절 행복했던 기억을 회상하기 때문에 기분이 좋아지고 사용하는 말도 긍정적으로 변화한다”고 설명했다.
서비스를 운영한 지는 만 3년 정도로, 보다 정밀한 결과를 도출하려면 계속해서 데이터를 축적해나가야 한다고.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은 셈. 앞서 해외 사례에서 단점으로 지적된 부분들에 대해 이 대표는 “실제 이용자(노년층) 수준에 맞춰 개발했기 때문에 서비스 이용을 어려워하는 경우는 의외로 많지 않다. 대부분 행복해하고 즐거워하신다”며 “그럼에도 VR 회상 요법의 경우 관련 장비를 마련해야 하는 등 비용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개인이나 소규모 기관 등에서는 이용을 부담스러워한다. 현재는 대부분 프리미엄급 대형 기관 등에서 시도하고 상황이다. 유의미한 효과를 보이는 만큼, 정부나 지차제 등에서도 관심을 갖고 관련 지원책 등이 나온다면 보다 대중적인 서비스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소상공인 1500명에게 스마트기술 도입을 지원한다. 코로나19로 어려워진데다 가격 부담을 느끼고 스마트기기 설치를 꺼렸던 소상공인들이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
중기부는 ‘소상공인 스마트상점(지능형상점) 기술보급사업’에 참여할 소상공인 1500명을 오늘(8일)부터 5월 13일까지 모집한다고 7일 밝혔다.
소상공인 스마트상점 기술보급사업은 소상공인이 사업장에 사물인터넷(IoT), 증강현실(AR)·가상현실(VR), 인공지능(AI) 등과 같은 지능형(스마트)기술을 도입함으로써 소비·유통 환경의 디지털화에 대응하고 경영혁신을 달성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상점가와 업종별 협·단체를 통해 1만 7000여 개의 소상공인 점포를 대상으로 키오스크, 스마트미러, 서빙로봇 등 스마트기술이 적용된 기기를 2020년부터 지원해왔다.
스마트미러, 키오스크 등이 대표적인 도입 사례다. 스마트미러를 활용한 미용실에서는 가상현실 및 인공지능 기술이 적용된 스마트미러를 통해 고객이 다양한 헤어스타일을 가상 체험한 후 원하는 스타일을 선택하는 식이다.
이번 사업은 그간 상점과 협·단체를 통해서만 신청하는 구조로 지원받을 수 없었던 개별 소상공인도 직접 신청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선정된 소상공인은 최대 500만 원(일반형)에서 1500만 원(선도형)까지, 기술 도입비용의 70%를 지원받는다.
해당 사업에 참여하기를 희망하는 소상공인은 5월 13일까지 스마트상점 기술보급사업 전용 홈페이지 또는 이메일로 신청서를 접수하면 된다. 지난 2월 상점가와 협·단체 소속으로 신청한 경우 중복 참여는 제한된다.
박치형 중소벤처기업부 소상공인정책관은 “소상공인이 디지털 전환에 따른 소비패턴과 경영환경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기술 활용은 필수다”라며 “역량 있는 소상공인의 점포가 스마트상점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 IT(가전제품·정보기기) 전시회인 ‘CES 2022’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됐다. 전 세계 159개 국가의 2200여 개 기업이 참여했다. 전년에는 코로나19 유행으로 홈코노미(홈+이코노미, 재택경제활동)에 초점을 맞췄다면 올해는 로봇 등 위드코로나 속 신기술을 바탕으로 한 돌파구 마련에 집중했다. 이 중 고령자의 전반적인 생활에 도움이 될 만한 기술들이 속속 소개돼 눈길을 끈다.
현대차그룹은 전시 기간 소형 모빌리티 플랫폼인 ‘모베드(MobED)’를 공개했다. 모베드는 직육면체 모양의 차체에 기능성 바퀴 네 개가 달려 기울어진 도로나 요철에서도 수평을 유지할 수 있다. 고속 주행 등 필요에 따라 전륜과 후륜 간격을 65㎝까지 넓혀 안정적인 주행이 가능하며, 저속 주행이 필요한 복잡한 환경에서는 간격을 45㎝까지 줄여 좁은 길도 쉽게 빠져나갈 수 있다. 모베드의 크기를 사람이 탑승 가능한 수준까지 확장하면 노인과 장애인의 이동성을 개선할 수 있으며 유모차·레저용차량(RV) 등 1인용 모빌리티로도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다.
CES 2022에는 헬스케어 기업이 대거 참여했다. 미 플로리다의 케어프레딕트는 노인 맞춤형 건강 추적 서비스를 선보였다. 손목시계가 노인들의 식사와 요리, 수면, 목욕 등 일상생활 패턴을 모니터링하고 평소와 다른 행동이 감지되면 가족들에게 알림 메시지를 보낸다. 예컨대 노인이 평소보다 침대에 오래 누워있는 것을 감지하면 가족들에게 이를 알려 사고를 예방하는 식이다.
한국 스타트업 룩시드랩스는 사람의 뇌파와 동공 움직임 등 생체 신호를 활용해 경도인지장애 위험에 노출된 노인들을 조기에 발견하고 인지 건강관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VR(가상현실) 인지 기능 평가·훈련 시스템을 개발했다. VR 기기를 착용하고 기기에서 나오는 VR 게임을 즐기는 동안 기기가 사용자의 뇌파와 눈 움직임 등을 분석해 작업 기억력, 주의력, 공간지각력 등을 평가한다.
한국 기업 아이메디신은 무선 건식 뇌파 측정기 ‘아이싱크웨이브’를 공개했다. 머리에 모자처럼 써서 사용하는 이 기기는 4분 만에 뇌파를 측정하고 10분 만에 검진 결과를 알려준다. 뇌파를 측정하면 전두엽·측두엽·후두엽 등 뇌 부위의 활성화 정도를 파악할 수 있다. 나의 뇌가 동일한 연령대와 비교했을 때 어느 정도인지도 확인이 가능하다. 이 기업은 뇌파 측정 결과를 요약해 클라우드에 띄워 보여 주면서 뇌의 각 부위를 빨간색 또는 파란색으로 표시한다. 빨간색은 같은 나이대보다 뇌의 기능이 떨어지는 것을 뜻하고, 파란색은 뇌가 제 기능을 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메디신은 최근 서울 서초구치매안심센터와 아이싱크웨이브 공급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회사 관계자는 “향후 ADHD 검진 또는 치매 예측 등으로까지 서비스를 뻗어 나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바디프렌드는 안마의자 ‘다빈치’를 발표했다. 이는 생체 전기저항을 통해 체성분을 측정하는 BIA 기술을 적용해 사용자의 근육량, 체지방률, BMI(체질량지수), 체수분 등 7가지를 분석한다. 측정한 체성분 정보는 안마의자 태블릿에 저장되며, 체성분 정보에 맞는 안마 프로그램 추천 기능도 탑재했다. 특히 팔 안마부에는 LED 손 지압 기능을 적용했다. 더불어 손과 팔목의 관절 부위에 특정 파장대의 LED를 조사하는 LED 테라피를 제공하며, LED 가이드 플레이트 상단에는 발열부를 추가해 손바닥에 열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했다.
한국 스타트업 룩시드랩은 사람의 뇌파와 동공 움직임 등 생체 신호를 활용해 경도인지장애 위험에 노출된 노인들을 조기에 발견하고 인지 건강관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VR(가상현실) 인지 기능 평가·훈련 시스템을 개발했다. VR 기기를 착용하고 게임을 즐기는 동안 기기가 사용자의 뇌파와 눈 움직임 등을 분석해 작업 기억력, 주의력, 공간지각력 등을 평가한다.
한편, 웨어러블(착용형) 헬스케어 기기들도 등장했다. 착용하면 수면 상태와 심박수, 체온, 혈중산소농도 등을 실시간 추적하는 반지, 사람이 올라서면 체성분과 자세 등을 체크해주는 욕실 매트, 잠을 자는 자세를 분석하고 자동으로 높이를 조절해 코골이를 예방하는 베개도 출시돼 많은 주목을 받았다.
‘미술 대중화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양정무(55) 교수는 서양미술사 연구자인 동시에 친절한 미술 안내자로서 출판과 강연, 방송 등을 통해 대중과 미술의 거리를 좁히고 있다. 신간 ‘벌거벗은 미술관’을 통해서 서양미술사의 민낯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그를 만나 미술의 가치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신간이 나올 때까지 8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이 책은 비평가로서 소임을 다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책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이하 난처한) 시리즈와 같은 장기 프로젝트를 하면서 잠시 보류하다가 이제야 출간했다. 긴 레이스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의미도 있지만, 비평가로서의 근육을 굳지 않게 하려고 썼다. ‘난처한’ 시리즈가 서양미술사의 길잡이라면, 이 책은 서양미술사의 민낯을 다룬다. 미술사로 본 미술의 가치, 박물관과 미술관의 역할, 초상화 속 무표정의 의미 등 늘 고민했던 질문에 대해 스스로 찾은 답을 책으로 풀어냈다. ‘난처한’ 시리즈에서 못 했던 얘기를 쿠키 영상처럼 이 책을 통해 전하고 싶었다.”
미술사를 다룰 때 사상, 시대, 공간 등으로 분류하여 설명하는 책이 많다. 하지만 이 책은 고전 미술, 표정, 박물관과 미술관, 팬데믹 같은 키워드를 통해 미술사를 조명한다.
“이 책이 미술을 이해하는 중요한 퍼즐 조각이 됐으면 좋겠다. 결정적인 조각을 맞출수록 퍼즐이 완성에 가까워지듯, 이 책이 미술에 다가서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그래서 미술관에서 볼 수 없는 흥미로운 미술사를 조명하되, 미술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예를 들어 근엄한 표정의 초상화는 당시 지배 세력의 엄중한 권위를 세우기 위한 수단이었고, 박물관은 해외에서 약탈한 보물을 보관한 수장고였다. 결국 미술은 화가의 고유한 개성으로 읽을 수 있지만, 더 넓은 시야로 보면 시대를 담는 그릇이다. 미술을 본다는 것은 시대를 읽는 동시에 줄기처럼 뻗어가는 역사를 읽는 일이다.”
일상을 깨는 상상력의 세계
그는 스스로 성덕(성공한 덕후)이라 불렀다. 그가 미술의 세계에 빠진 것은 어린 시절 우연히 본 백과사전의 삽화 때문이었다.
“우리 맘속엔 누구나 하나의 예술가가 살고 있다. 아이들을 보면 자신이 가진 날것의 느낌을 낙서로 보여준다. 나 역시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백과사전의 삽화에 우연히 마음을 빼앗긴 이래 미술 덕후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왔다. 한마디로 하면 성덕이다. 미술과 역사를 좋아해서 미술사학자의 길을 가게 된 것도 있지만, 미술은 일상을 깨는 새로운 세계였다. 달나라를 동경하는 우주비행사의 느낌이라고 할까? 지금까지 내게 미술이란 우주는 새로운 지적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공간이었다.”
서양미술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영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유학을 위해 갔지만, 그에게 그곳은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영국에서 유학할 때 학교 근처의 대영박물관(The British Museum)에 매일 등교 전에 한 번, 하교 후에 한 번은 무조건 들렀다. 집 가는 길에 있던 내셔널갤러리(The National Gallery)는 집에 들어가기 전에 들르는 필수 코스였다. 당시 주재원, 교수, 기자, 유학생 등을 대상으로 공부방을 운영했다. 같이 수업 겸 토론도 하고 박물관이나 소규모 미술관을 다니면서 다각도의 해설을 들려주는 역할을 맡았다. 인기가 나름 좋아서 한국에 못 돌아올 뻔했다.(웃음) 그 경험이 수업이나 강연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그의 삶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미술이듯,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감염병’이란 키워드다. 팬데믹 이후 미술은 어떻게 변할까?
“중세 유럽에서 흑사병으로 대규모 인원이 죽자, 다양한 계층에서 미술을 통한 추모를 기획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현상은 미술의 대중화에 영향을 미쳤다. 팬데믹도 비슷하다. 코로나19 이후 미술에 대한 갈증이 더 커지면서, 미술관을 찾는 수요가 늘었다. 미술을 통한 심리적 위안과 치유의 힘이 다시 평가받고 있다. 이는 예술을 하는 사람의 태도를 더욱 진지하게 만들고, VR을 활용한 비대면 관람이 주된 체험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미술은 비주얼의 언어
또한 비주얼 리터러시(Visual Literacy)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미술은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그리는 장르다. 워낙 직관적인 영역이라, 그것을 언어로 풀면 어렵게 느껴진다. 가령 외국어는 알파벳, 맞춤법, 띄어쓰기 등 여러 가지를 익혀야 비로소 통달할 수 있다. 하나의 언어를 배우는 것은 하나의 세계에 더 다가가는 일이다. 미술도 그 과정은 어렵지만 보는 훈련을 잘한다면 이전과 전혀 다른 세계가 열린다. 잘 체득하면 시각적인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다. 결국 비주얼 리터러시를 통해 우리는 이미지를 읽을 수 있는 또 다른 눈이 하나 더 생기는 것이다.”
끝으로 그는 미술 입문자를 위한 조언과 더불어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전통과 역사에 관심 있는 시니어들이 미술사에도 관심이 많은데, 입문자가 미술을 즐기려면 한 발짝 떨어져 볼 줄 아는 여유도 필요하다. 특히 미술관의 이미지를 무겁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실 미술관만큼 카페나 문화시설이 잘 갖춰진 곳도 드물다. 미술을 감상하지 않아도 좋으니 미술관을 친숙하게 여기는 것이 중요하다. 개인적으론 이제껏 배우고 익힌 바를 토대로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난처한’ 시리즈 번역본을 통해 이제껏 구축해온 관점을 서양인들에게도 들려주고 싶다.”
미술사학자로서 “미술을 통해 삶과 인간에 대해 조금씩 알아간다”라고 했다. 그는 명작의 위대함보다 미술에 담긴 고뇌와 고민, 좌절을 읽으면서 인간과 삶에 대해 배웠다. 결국 미술은 시대의 그늘을 읽는 일인지도 모른다. 좌절은 원동력이 되고, 어두운 그늘은 때론 위안의 공간이 된다. 미술 안내자인 그가 구축하는 미술의 그늘 속에서 더 많은 이들이 쉴 수 있기를 기대하며 마친다.
슬픈 일일수록 알리고 나눠야 한다는 핑계로 허례허식만 늘어난 우리나라 장례·추모 문화가 코로나19와 맞물리면서 변화하고 있다. 감염 우려로 인해 접객이 어려운 상황에서 기존의 불필요한 절차를 줄이고 추모에 집중하자는 취지다.
실제로 적지 않은 사람이 우리나라의 장례 문화가 과도하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이크로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에서 전국 19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인식 조사를 한 결과, 80.9%가 ‘우리나라의 장례문화는 소모적인 경향이 있다’고 평가했다. 장례 준비 및 절차에 따른 경제적 부담, 추모보다 접객에 치우친 문화 등 관례에 얽매여 피로감이 쌓인 데 따른 응답으로 해석된다.
한겨레두레협동조합연합회는 복합장례 공간 ‘채비’를 마련해 조합원을 대상으로 삼일장을 간소화한 ‘1일 가족장’과 빈소 임대료·식대를 없앤 ‘무빈소 가족장’ 서비스를 제공한다. 1일 가족장은 채비에 빈소를 차려 하루 동안 직계존비속을 비롯한 친인척을 초대해 고인을 기리고 추억을 나눈다. 무빈소 가족장은 일회성 추모식을 진행한 후 장례를 마무리한다.
고인이 운명한 직후부터 부고하고 빈소가 차려지면 정신없이 조문받기에 치우친 장례식 대신 오롯이 가족들끼리 진심으로 지나간 이를 기억하고 추모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김기혁 채비 홍보팀장은 “코로나19와 시기가 맞물리면서 의식은 간소하게 하고 추모와 애도가 중심이 되는 고인 중심의 장례식이 더욱 성행하고 있다”며 “국내 상조 회사가 이익을 독식하는 불합리한 구조의 개선을 위해 장례용품의 원가를 공개하고 공동 구매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고 말했다. 이어 “대형 상조 회사와는 달리 불필요한 품목을 제외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도록 한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비대면 추모·성묘에 관한 관심도 높아지는 모양새다. 한국장례문화진흥원에 따르면 623개의 국내 장사시설에선 코로나19에 따라 성묘객의 안전을 위해 온라인 성묘·추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진흥원이 위탁 운영하는 ‘e하늘 장사정보시스템’ 누리집을 통해 제공되는 이 서비스는 유족들이 직접 고인에 대한 온라인 추모관을 만들고, 차례상·분향·헌화·사진첩 등 기능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가상현실(VR) 조문·추모관 서비스 업체 별다락은 3D 모델링으로 만든 샘플 조문·추모관을 자체 누리집에서 선보였다. 별다락은 코로나19로 인해 조문조차 꺼려진 상황에서 누구나 빈소를 방문할 수 있도록 무빈소 온라인 장례식을 기획했다. 박수인 별다락 대표이사는 “장례 이후에도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납골당 예약과 방문이 어려운 상황을 개선하고자 서비스를 만들었다”며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전했다.
이어 “현재 부고장 서비스와 함께 메타버스 추모관 제작을 진행하고 있다”며 “우선 안정적인 3D 화면으로 추모관을 볼 수 있게 구축하고, 이후 가상공간 안에서 아바타가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과 소통이 가능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덜커덩’ 캐리어 끄는 소리와 활주로에서 대기 중인 비행기, 어딘가 바삐 움직이는 승무원의 발걸음. 그리고 손에 쥔 비행기 표까지. 공항이란 장소는 여행이 시작되기도 전 가슴을 한껏 웅장하게 만드는 마법 같은 공간이다. 그 설렘을 잊고 지낸 지 어느덧 2년째다. 여행이 멈춘 세상이 익숙해질 법도 한데, 여전히 휴가철이 되면 하늘 위로 훌쩍 떠나고 싶어진다. 그런 이들이 주목할 만한 곳이 있다. 국립항공박물관이다.
서울 강서구 하늘길 177. 내비게이션에 적힌 주소에 도착하자 드넓은 평지 아래 자리 잡은 거대한 원통형 건축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다가가 살펴보니 빗살무늬 구조물이 건물을 둘러싸고 반복되는 패턴을 그려낸다. 그 모습이 비행기의 동력 장치인 ‘터빈’을 연상케 한다.
비행기의 심장을 닮은 역동적인 외관에서부터 항공의 모든 것을 담아내겠다는 의지가 돋보이는 이곳은 지난해 7월 개관한 국립항공박물관이다. 연면적 1만8593㎡, 지하 1층부터 지상 4층에 이르는 규모로, 그 이름처럼 하늘에서 펼쳐지는 거의 모든 이야기를 아우른다. 새의 날개에서 영감을 받아 글라이더를 띄우던 시대의 역사부터 우리나라를 오늘날 항공 강국으로 만든 각종 산업과 에어택시 가 날아다닐 공항의 미래상까지, 항공 분야의 면면을 다양한 전시물과 체험 시설로 소개한다. ‘하늘길’이라는 도로명 주소와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는 공간이다.
상공에서 만난 민족의 얼
박물관의 정체성을 나타내던 외관의 구조물이 내부에서는 또 다른 각도로 존재감을 뽐낸다. 안으로 입장해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면, 둥그런 천장이 빗살무늬로 퍼지는 채광과 만나 제트 엔진의 형상을 그대로 재현한다. 본격적인 여행은 지금부터라는 듯, 천장 주변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거대한 항공기가 관람객을 반긴다.
전시는 국내외 비행의 기원과 발전을 살펴볼 수 있는 1층 ‘항공역사관’부터 시작된다. ‘인간에게 하늘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에서 출발해 미지의 세계를 두려워하면서도 갈망했던 옛 조상의 염원을 각종 유물과 문헌으로 소개한다.
다양한 전시물 가운데 라이트 형제보다 300여 년 앞서 우리나라에 이미 ‘하늘을 나는 수레’가 존재했다는 역사적 기록물은 가히 인상 깊다. 임진왜란 당시 무관 정평구가 발명한 유인 비행체 ‘비거’(飛車)다.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 등 조선 후기 실학자들의 저작에 따르면, 왜군에 의해 진주성이 고립되었을 때 정평구가 오늘날의 글라이더와 유사한 비행체를 날려 적의 포위망을 뚫었다고 전해진다. 비거의 진위 여부에 대해서는 학계의 논란이 분분하지만, 우리 항공 역사에 새로운 연구 과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의의를 지닌다.
그러나 우리 국민에게 비행은 하늘을 난다는 일차원적 의미, 그 이상의 가치를 갖는다. 위기에 처한 나라를 되찾는 ‘구국’의 수단이자 전쟁 중 ‘호국’을 위한 무기였고, 첨단 기술을 활용한 각종 산업으로 ‘부국’을 이루는 계기였다. 그리고 그 출발점에는 한인비행학교가 있다.
1920년 7월 5일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항일 운동을 목적으로 설립한 한인비행학교는 독립을 향한 우리 민족의 염원이 담긴 곳이자 오늘날 공군의 뿌리가 된 역사적인 활동이다. 국립항공박물관이 코로나19라는 악조건을 무릅쓰고 개관 날짜를 지난해 7월 5일로 고집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때 당시 훈련기로 사용했던 2인승 복엽기 ‘스탠더드 J-1’은 박물관을 대표하는 전시물 중 하나다. 스탠더드 항공사가 개발한 이 훈련기는 우리나라가 소유한 최초의 비행기로, 수직 날개에 태극 문양이 진하게 새겨 있다.
그로부터 2년 뒤 한국인을 태우고 우리나라 상공을 최초로 비행했던 ‘금강호’도 박물관의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전시물이다. 조선 최초 비행사 안창남 선생이 몰았던 복엽기로, 당시 서울 여의도와 창덕궁 일대를 자유롭게 날던 금강호의 모습은 조국을 빼앗긴 우리 민족에게 긍지를 일깨웠다. 박물관에 설치된 금강호는 복원 모형이지만, 실물 크기를 그대로 재현해 그 압도적 규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이외에도 나라가 어려웠던 시절 국민의 성금을 모아 사들인 최초의 공군 전투기 ‘T-6 건국기’부터 영화 ‘빨간 마후라’에 등장한 한국전쟁의 영웅 ‘F-86 세이버’, 우리 자체 기술로 만든 초음속고등훈련기 ‘T-50 골든이글’ 등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항공기를 실물로 만나볼 수 있다.
하늘 위로 꿈을 펼치다
한 층 위로 올라가 볼까. 2층으로 향하는 길목에 설치된 ‘에어워크’는 나선형 경사로로 관람객을 부드럽게 안내하며, 걸어 올라가면서도 실물 비행기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해 이동 과정에서 생겨나는 시간의 공백까지 촘촘히 메운다. 보딩 브리지(Boarding Bridge)를 통해 비행기에 오르는 느낌과 비슷해 여행 전의 설렘도 선사한다.
아이를 데리고 방문한 관람객은 2층에 다다르는 순간 아이의 눈이 휘둥그레 커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짐 찾는 곳부터 입국 심사대, 세관 신고장 등 공항의 각종 시설이 재현돼 있다. 항공 운송 및 항공기 제작, 정비 등 오늘날 항공산업 전반을 다루는 ‘항공산업관’이다. 이곳에서는 수화물 이동 과정, 비행기 이착륙 원리 등 공항과 기내에서 느꼈던 크고 작은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다.
2층을 둘러보다 보면 한 가지 의문이 머릿속을 떠다닌다. 더 먼 미래, 인류는 무엇을 타고 이동할까? 비행기 그 이상의 것이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이에 대한 해답이 3층 ‘항공생활관’에서 펼쳐진다. 이곳에서는 자율비행 드론과 자율비행 개인항공기(OPPAV), 수직 이착륙과 고속비행이 가능한 스마트 무인기 ‘TR-100’ 등 현재 개발 단계에 있거나 완료된 최첨단 교통수단을 전시하고, 미래 인류의 생활상을 예견한다. 이로써 항공의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아우르는 공간이 완성된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박물관의 하이라이트가 남아 있다. 최첨단 항공 시설로 생생한 비행 경험을 제공하는 체험형 교육·문화 공간이다. 관람객은 기내 방송으로만 듣던 안전교육을 전·현직 승무원에게 배워보고, 가상현실(VR)과 360도 회전 장비를 활용한 기기로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의 부조종석에 탑승하는 경험을 해볼 수 있다.
5곳의 체험관 중 단연 인기인 것은 ‘조종·관제 체험’이다. 인천공항의 관제탑과 보잉 747기 조종실을 재현한 시뮬레이터에서 비행기 이착륙을 관장하며 관제사와 조종사가 되어보는 시간이다. ‘체험’일지언정 생생함은 실제와 견줄 만하다. 조종실 부기장석에서 이륙을 알리는 기장의 사인과 귓가를 멍멍하게 만드는 엔진 소리, 눈앞에 펼쳐지는 광활한 하늘을 온몸으로 느끼다 보면 앉아 있는 곳이 지상이라는 사실을 깜박 잊게 된다.
체험관을 비롯해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 ‘항공다빈치클럽’ 등 박물관 곳곳에 아이들을 위한 콘텐츠가 눈에 띈다. 이는 어린이에게 항공인의 꿈을 키워주고자 한 최정호 국립항공박물관장의 소망이 반영된 결과다. 최정호 국립항공박물관장은 “박물관을 찾는 어린이들은 앞으로 항공 기술의 주역이 될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며 “아이들이 이곳을 통해 꿈을 꾸고, 이루어가고, 먼 훗날 항공인이 되어 돌아와 꿈을 확인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매시 30분마다 조종사 또는 승무원 출신 도슨트가 전시 해설을 진행한다. 더욱 흥미롭게 관람하고 싶다면 시간을 맞춰 방문하는 것이 좋다.
국립항공박물관
관람 시간 매일 오전 10시~오후 6시, 월요일 휴무
입장료 무료(체험 비용 별도)
가는 길 지하철 5호선, 9호선, 공항철도를 이용해 김포공항역 하차. 김포공항 국내선 1층 국립항공박물관 안내표지를 따라 제2주차장 방면 게이트로 나와서 직진, 박물관까지 약 400m. 또는 국내선 1층 4번 게이트에서 공항순환버스 이용.
※블랙이글스 탑승 체험을 제외한 전 체험은 홈페이지(aviation.or.kr)에서 사전 예약을 해야 한다.
메타버스 관련 소식이 쏟아지고 있다. 메타버스는 현실같이 구현된 가상 세계를 뜻하는 말이다. 1992년 출간된 닐 스티븐슨의 공상과학 소설 ‘스노 크래시’ 속 가상 세계 명칭인 ‘메타버스’에서 유래했다.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되는가. 메타버스는 이미 추억 속 인물을 재현하는 기술, 건강을 책임지는 의료 기술 등으로 우리 생활에 파고들고 있다.
희망과 긍정을 노래했던 혼성 그룹 ‘거북이’가 오랜만에 무대에서 뭉쳤다. 드라마 ‘이태원클라쓰’의 OST인 가호의 ‘시작’을 편곡했다. 신나는 노래인데도 무대를 지켜보는 관객들은 눈물을 훔치고 있다. 심지어 함께 무대를 꾸미는 멤버들도 터질 것 같은 울음을 꾹 참은 채 노래를 부른다. 가족들도 지켜보며 눈물을 훔치는 가운데 웃고 있는 이는 단 한 사람, ‘터틀맨’뿐이다.
지난해 말 CJ ENM 음악 채널 엠넷의 특집방송 ‘AI음악프로젝트 다시 한번’에 방영된 풍경이다. 이 프로그램의 다른 에피소드에선 전설적인 가수 김현식이 박진영의 ‘너의 뒤에서’를 불렀다.
2008년경 터틀맨은 사망했다. 김현식은 1990년에 사망했고, ‘너의 뒤에서’는 1994년 발매됐다. 어떻게 이런 무대가 가능한 것일까. 답은 메타버스 기술에 있다. 엠넷은 음성 복원 기술을 활용했다. AI가 터틀맨과 김현식의 목소리를 학습하고 분석한 뒤 각각의 목소리로 새롭게 노래를 불렀다. 또 터틀맨과 김현식의 생전 영상도 학습하고 분석해 몸짓과 표정까지 자연스럽게 구현해냈다.
메타버스가 시니어에게 미치는 영역
메타버스는 가상 세계이기에 어떤 방식으로든 구현될 수 있다. 한 명의 가상 인물일 수도 있고, 새로운 세계일 수도 있다. 그래서 아직 통일되고 명확하게 정의돼 있지는 못하다. 그래도 지금까지 나온 내용을 바탕으로 메타버스를 정리하면, 메타버스에는 실제와 비슷한 세계인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 실제 공간에 가상현실을 겹쳐 영상으로 만드는 증강현실(AR, Augmented Reality) 기술이 있다. 여기에 두 기술을 결합한 혼합현실(MR, Mixed Reality)과 확장현실(XR, eXtended Reality)까지 모두 포함해 실제와 구분하기 어렵도록 사실적으로 구현한 가상 세계가 메타버스다.
AI로 구현된 터틀맨과 김현식 무대의 청중에는 가족들도 있었다. 가족들은 눈물을 훔치며 지켜봤다. 비록 만질 순 없지만 사랑했던 이를 다시 한 번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이들에게는 치유의 시간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살다 보면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게 된다. 이별 후 오랜 시간이 흘러서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도, 누군가가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순간이 있다. 메타버스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면서 그리움을 덜어낼 수 있는 시기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현실 세계에서 다양한 일이 일어나는 것처럼 메타버스에서 일어나는 일도 다양하다. 메타버스는 공간 제약이 없어 오히려 현실보다 더 풍부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쉽게 외출할 수 없는 요즘, 스마트 기기를 이용해 손쉽게 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제페토’ 같은 메타버스 플랫폼을 이용하면 지금은 갈 수 없는 유럽으로 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단순 체험뿐 아니라 교육과 훈련에 적용해 차원 높은 체험 프로그램도 제공할 수 있다. 이를테면 초보 파일럿이 가상 세계에서 비행 훈련을 할 수 있게 도와 사고 위험 없이 비행 숙련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 2019년 SK텔레콤은 5세대 이동통신(5G) 기술을 이용해 부천에 있는 축구 꿈나무가 런던에 있는 손흥민으로부터 직접 축구 코칭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처럼 메타버스는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다. 다른 산업과 연계할 수 있는 가능성도 무궁무진하다.
메타버스 타고 헬스케어 진입
정치, 경제, 과학, 예술 등 실제 세계를 구성하는 분야는 셀 수 없이 많다. 실제 세계가 다양하다면 메타버스도 마찬가지다. 시니어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메타버스 분야는 바로 의료다. 메타버스를 이용한 헬스케어 서비스들이 개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메타버스 헬스케어는 뇌파와 시선 분석을 통한 치매 진단부터, 가상 공간에서 치매 예방 훈련 프로그램과 재활 치료까지 도우며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엠넷 방송이 디지털 휴먼을 소환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해소해줬다면, 메타버스 헬스케어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현실의 시간을 늘리고, 시니어의 젊음을 되찾는 데 도움을 준다.
AI 기반 헬스케어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는 ‘룩시드랩스’가 대표적이다. 룩시드랩스는 가상현실 기기를 이용해 가상현실 콘텐츠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정신질환 여부를 판단하고, 노년층의 치매 위험 정도를 파악해 이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한다. 4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사람의 뇌파 관련 데이터를 모았다. 뇌파 변화, 동공 크기 변화, 시선 처리 속도 등의 데이터베이스로 인지 기능이 떨어지는 사람을 판별한다.
룩시드랩스는 축적된 데이터를 토대로 인지 건강을 관리해주는 개인 트레이너 ‘루시’를 선보였다. 루시 사용자는 매일 가상현실 헤드셋을 쓰고 인지 능력을 테스트한다. 뇌파 센서 6개와 시선 추적 카메라를 활용해 전문적인 두뇌훈련시스템을 제공받는다. 사용자는 가상 공간에서 박스를 이용해 공간을 구성하거나, 컨트롤러로 드래곤을 처치하는 등 다양한 게임을 할 수 있다. 사용자가 가상현실 게임을 하는 동안 클라우드 서비스가 뇌파와 안구 운동을 분석한다. 분석된 내용은 이해하기 쉬운 보고서 형태로 제공되며, 태블릿이나 모바일 기기로 가족, 의사와 공유할 수 있다.
메타버스로 기분도 up 몸도 up
KT도 두뇌 개발 및 건강 관리를 할 수 있는 체험 공간 서비스를 출시했다. 바로 ‘리얼큐브’다. 놀이를 위한 공간과 평평한 벽면이 있다면 집에서도 메타버스에 빠져들 수 있다. 리얼큐브 이용자는 콘텐츠 체험용 매트 위에서 벽면에 투사된 가상 공간을 바라보고 노화 방지를 위한 콘텐츠들을 체험할 수 있다. 동작인식 센서가 어르신들의 손짓이나 몸동작을 인식해 특별한 기기 없이도 게임을 조작할 수 있다. 비눗방울 맞혀서 터뜨리는 게임, 몸짓으로 리듬에 맞춰 분리수거하는 게임, 숫자 연산 게임 등이 있다. 공이나 막대기 같은 부자재를 이용할 수 있어 두뇌와 신체를 동시에 활성화할 수 있다.
리얼큐브는 전국 시니어 기관과 복지시설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일부 치매안심센터에서는 치매 예방과 증상 완화에 이미 리얼큐브를 활용하고 있다. 강남구 시니어플라자, 대구 중구 노인복지관, 용산구 치매안심센터, 동대문구 치매안심센터에서 리얼큐브 콘텐츠를 활용해 체육대회도 열었다. 대구 중구 노인복지관에서 리얼큐브 프로그램을 체험한 어르신은 “생각이 밝아지는 것 같다. 숫자를 계산하지 못했는데 프로그램 체험 뒤 분별력이 생겼다”며 “기분이 좋아지고 운동도 된다”는 체험 소감을 밝혔다.
KT 관계자는 “리얼큐브를 비롯한 메타버스 콘텐츠를 계속 확대하고, 서비스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진행 중”이라며 “이미 협업한 복지기관 외에도 다른 기관에서 요청하면 KT 메타버스 기술을 활용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처음 만나는 메타버스가 시니어들에게는 낯설고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메타버스는 몸을 제대로 움직이기 어려운 시니어들에게 매력적인 도구다. 오랜 삶과 연륜을 바탕으로 메타버스를 더 풍부하게 만들 가능성도 높다. 엄청난 영향력과 파급력을 몰고 올 메타버스에 올라탄 시니어들에게 메타버스는 어떤 공간으로 어떤 기회를 열어줄까.
제페토로 메타버스 맛보기
구글 플레이스토어나 아이폰 앱스토어에서 ‘제페토’ 앱을 검색한다. 설치 후 앱을 실행한다. 그리고 ‘캐릭터 만들기’ 버튼을 눌러 가상 세계에서 나를 닮은 사람을 만든다. 먼저 생년월일을 입력하는데, 생년월일은 자신이 먼저 밝히지 않는 한 제페토 세계에서 다른 이에게 공개되지 않는다. 전화번호나 이메일로 가입하거나 페이스북과 카카오톡, 트위터 같은 SNS와 연동해 가입할 수도 있다. 아이폰 사용자는 애플 계정으로 가입할 수 있다.
셀카를 직접 찍거나 스마트폰 사진첩에서 사진을 선택하면 사진 속 모습을 비슷하게 본뜬 캐릭터를 만들 수 있다. 마땅한 사진이 없거나 사진 찍는 게 번거롭다면 표준화된 캐릭터를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런 다음 닉네임을 짓는다. 닉네임은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
제페토 내에서는 ‘코인’과 ‘젬’이 화폐처럼 통용된다. 코인과 젬으로 내 캐릭터에게 입히는 옷과 액세서리를 구입할 수 있다. 처음 시작할 때 주는 8500 코인으로 옷을 살 수 있다. 코인을 다 썼을 때는 출석 후 미션 수행을 통해 코인을 추가로 받으면 된다. 제페토에 푹 빠져 이렇게 받는 코인으로는 부족할 경우 현금결제로 코인과 젬을 얻는 방법도 있다.
코인과 젬으로 마음에 드는 옷을 골라 입었다면 제페토 월드로 놀러 가보자. 유령의 집이나 벚꽃공원처럼 테마가 있는 맵이 있고, 경복궁과 독도, 한강공원처럼 랜드마크를 본뜬 곳도 있다. 제페토 월드에서는 뉴욕과 몰디브, 베네치아 등 세계적인 관광 명소도 방문할 수 있다.
치매나 우울증으로 고통 받는 시니어 환자들이 약 대신 스마트폰 앱과 전기 자극으로 병을 치료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기업들이 전자약과 디지털 치료제로 대표되는 3세대 치료제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아직 임상 중이며 상용화를 앞둔 상황이지만 치매와 당뇨 등으로 치료 범위를 넓히면서 업계 전문가들은 미래먹거리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3세대 치료제인 전자약은 미세한 전기 자극으로 뇌신경을 자극해 치료 효과를 낸다. 역시 3세대 치료제에 속한 디지털 치료제는 게임과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챗봇, 인공지능(AI) 같은 소프트웨어를 사용한다. 이를 이용해 우울증과 치매, 뇌전증, 강박장애나 과잉행동장애(ADHD) 등을 예방하거나 치료한다. 아직까지 국내에서 상용화된 사례는 없다.
3세대 치료제 개발은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데, 최근 국내 기업 와이브레인이 우울증을 치료하는 전자약 마인드의 국내 출시를 앞두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4월 우울증 치료에 단독 요법으로 쓰는 전자약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았고, 임상에서는 전자약 사용 6주 후 환자군 57.4%가 우울증이 정상으로 회복되는 성과를 얻었다.
이 외에도 다양한 국내 기업이 3세대 치료제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뇌졸중으로 인한 시야 장애를 게임처럼 구성된 VR 소프트웨어로 치료하는 뉴냅비전은 2019년 국내 첫 임상 승인을 받았다. KT는 신경정신질환 치료 전자약으로 FDA 승인을 받은 미국 뉴로시그마와 협약을 맺었다. 라이프시맨틱스의 호흡재활용 디지털 치료제인 ‘레드필숨튼’, 빅씽크테라퓨틱스의 강박장애 치료제 ‘오씨프리’ 등이 임상을 시작했거나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정부는 전자약 기술개발사업에 내년부터 2026년까지 406억 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치매와 파킨슨병, 당뇨, 희귀질환 분야에서 전자약을 주로 지원한다. 디지털 치료제에선 정서 장애와 자폐 치료에 350억 원, 자폐성 장애 치료에 300억 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코로나 블루’(코로나19로 인한 우울감) 디지털 치료제 플랫폼 개발에 나섰다. 학계와 병원, IT 기업이 함께하는 이 사업에는 올해부터 2024년까지 4년간 총 289억 원이 투자된다. 개발되는 플랫폼은 우울증 환자뿐 아니라 우울증을 예방하려는 일반인에게도 제공할 예정이다.
용홍택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차관은 “3세대 치료제는 신개념 치료제로 연구과정에서 겪는 제도적 애로사항이 많다”며 “이를 보건복지부와 식약처 같은 관계부처와 함께 풀어나가겠다”고 말했다.
27일 ‘디지털 치료제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온라인 세미나를 주최한 현대원 서강대학교 교수이자 한국헬스ICT학회 회장은 “아직 걸음마 단계인 디지털 치료제가 미래성장동력으로 성장하려면 선진화된 패스트트랙 제도 같은 정부 지원과 학계 R&D 지원 등 체계적이고 전폭적인 지원이 반드시 함께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나 지금이나 결혼 준비는 수고스럽다. 예식장부터 드레스까지 챙겨야 할 것도 많은 데다 정보가 폐쇄적이고 가격이 불투명한 업계의 관행상 일일이 발품을 팔아야 한다. 마음 같아서는 고생하는 자녀를 위해 같이 공부하며 고민해주고 싶지만, 매번 따라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결혼 준비의 모든 과정을 한 번에 압축해 살펴볼 수 있는 이색 ‘웨딩 체험장’이 있다. 자녀 결혼 준비에 진땀을 빼고 있는 예비 혼주가 솔깃할 만한 곳이다.
결혼 준비의 전 과정을 부모가 전담 마크하던 시절이 있었다. 웨딩 플래너란 직업조차 없던 때다. 1980년대 서울 강남구 태극당 예식장에서 고객 관리를 맡았던 김은영(58) 씨는 “그때는 예식장에 부부만 오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신부 측 어머니가 주로 동행했다”며 “지금처럼 업체가 많지 않아 예식장에서 결혼 준비 대부분을 해결했고, 그 전 과정에 어머니가 관여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그 당시 부모는 일생에 단 한 번, 오직 한 쌍의 고객을 위한 웨딩 플래너였던 셈이다.
반면 오늘날 결혼 준비에서 혼주의 역할은 크지 않다. 정보를 얻는 경로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바뀌고, 그 과정이 복잡해지면서 대부분의 결정권이 자녀의 몫으로 돌아가고 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동분서주 뛰어다니는 자녀를 지켜보며 응원하는 것이 전부. 어쩔 수 없는 흐름인 걸 알면서도, 도와주지 못해 미안한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
결혼 준비 플랫폼 ‘웨딩북’은 이 같은 고충을 겪는 이들을 위해 결혼의 전 과정을 휴대폰 하나로 마무리할 수 있는 앱 ‘웨딩북’과 오프라인 웨딩 체험 공간 ‘웨딩북 청담’을 운영하고 있다. 웨딩북 앱은 웨딩 사업자와 고객을 중개하는 플랫폼으로, 웨딩홀·스드메·예물 등 제휴 업체의 정보를 제공하고 전속 플래너를 통해 결혼 준비를 돕는 서비스다. 방문하지 않는 이상 비용을 공개하지 않는 관행을 깨고 업계 최초 가격정찰제를 시행해 휴대폰 하나만으로도 대략적인 결혼 비용을 점쳐볼 수 있다.
이 앱을 오프라인 형태로 구현한 공간이 바로 ‘웨딩북 청담’이다. 앱에서 얻은 각종 정보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상담도 받을 수 있다. 오프라인으로는 1년에 몇 번 열리는 결혼박람회를 제외하고 얻을 수 있는 결혼 정보가 많지 않은 만큼, 예비부부에게 필수 방문 코스로 꼽힌다. 한 바퀴 돌고 나면 요즘 결혼 트렌드가 낯선 예비혼주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나간다는 이곳, 웨딩북 청담을 방문했다.
부담은 줄이고, 재미는 더하고
문을 열고 들어선 곳은 VIP 고객을 위한 공항 라운지를 연상케 했다. 블랙과 실버 톤으로 시크하게 꾸민 카운터 상단에는 ‘터미널’, ‘체크인’ 등의 단어가 적혀 있었다. QR코드로 체크인을 하자 결혼 준비 팁이 담긴 미니북과 비행기 탑승권 모양의 입장권, 웰컴 드링크 한 잔이 제공되었다. 최우성 웨딩북 실장은 “신혼부부가 가장 설레는 순간이 신혼여행을 떠나기 위해 공항에 도착했을 때다. 그 두근거림을 재현하고자 했다”라며 공간의 의도를 설명했다.
지하 1층부터 2층까지 총 3층 규모로 구성된 ‘웨딩북 청담’은 각 층별로 다양한 콘셉트를 표방한다. 1층이 공항을 떠올리게 한다면, 각종 웨딩 정보가 보기 좋게 진열돼 있는 지하 1층은 ‘결혼박물관’에 온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매주 토요일에 열리는 2층 ‘혼수마켓’에서는 예물·예복·가전 등 혼수 관련 상담이 이뤄진다.
언뜻 보면 결혼박람회와 유사하게 느껴지지만, 그와 정반대 노선을 추구한다. 박재훈 웨딩북 한국사업총괄본부장은 “결혼박람회는 그 특성상 업체 간에 경쟁이 있을 수밖에 없어 방문객이 편히 정보를 얻기 어렵다. 입장부터 잡혀서 상담을 강요당하는 경우가 많다”라며 “웨딩북 청담은 이런 불편을 해소해 부담보다는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준비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곳을 방문하면 직원의 관여 없이 내부를 구경할 수 있다. 앱을 다운받은 뒤 ‘마이웨딩’ 탭에서 ‘웨딩북 청담’을 누르고 ‘간편 예약’을 선택해 날짜와 시간을 예약하면 된다. 입장료는 무료이며 이용 시간은 1시간이다. 방문 당일 만난 예비 신부 최현혜(28) 씨는 “박람회에 갔을 때는 플래너분에게 좌지우지되고 웨딩 앨범 하나조차 선택해서 보기가 어려웠다. 여기도 플래너분이 따라다닐 줄 알았는데, 혼자서 마음껏 볼 수 있는 분위기라 편했다”며 “상담을 받을 때도 계약을 강요하지 않아 부담스럽지 않았다”고 후기를 전했다.
골치 아픈 ‘스드메’를 한자리에서
지하 1층으로 내려가면 공간을 둘러싼 거대한 책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책장 안에는 이른바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라 불리는 웨딩 앨범 1000여 권이 섹션별로 분류돼 있다. 이 중 원하는 업체의 앨범을 꺼내 보면 된다. 결혼을 준비해본 이라면 낯설게 느낄 풍경이다. 여러 업체의 앨범을 한곳에서 비교하기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사전 조사 없이 방문했다면 테이블에 설치된 큐레이션 패드를 활용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웨딩북과 제휴한 업체 정보를 정리해둔 기기로, 마음에 드는 사진을 누르면 앨범이 위치한 구역을 안내해준다. ‘머메이드’, ‘채플’, ‘심플하고 깔끔한’ 등 해시태그별로 정리돼 있어 원하는 취향만 간추려 보기도 쉽다.
앨범을 둘러보고 나면 공간 중앙을 크게 차지하고 있는 드레스룸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일반 드레스 숍에서는 디자인 유출 등의 문제로 드레스 공개를 최소화하고 사진 촬영을 금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에서는 옷가게에서 쇼핑하듯 둘러볼 수 있다. 2만 원을 지불하면 50여 벌의 드레스 중 원하는 세 벌을 피팅하고, 예비 신랑 및 부모와 함께 사진을 남길 수 있다.
이곳의 목적은 드레스의 브랜드를 정하는 것이 아닌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는 데 있다. 이를테면 디자인이나 원단, 기장 등 숍에서 살피기 어려운 디테일을 보는 것이다. 이후 드레스 투어에 갔을 때 직원에게 원하는 스타일로만 피팅을 요청하면 실패 확률을 줄일 수 있다.
스마트한 앱으로 결혼 준비도 스마트하게
공간을 보다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모자이크 모양의 정사각형 아이콘, QR코드다. 1층의 웨딩홀 섹션과 지하 1층의 ‘스드메’ 앨범, 웨딩드레스 섹션에는 각 업체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QR코드가 부착돼 있다. QR코드에 카메라를 가져다 대면 웨딩북 앱과 자동 연결되며 업체 정보 페이지가 나타나 비용과 실제 이용자의 후기를 볼 수 있다. 직원의 부담스러운 간섭과 상담 없이도 웬만한 정보를 얻어갈 수 있는 이유다.
‘세상 좋아졌다’고 말하긴 아직 이르다. 1층 카운터 뒤편에는 가상현실(VR)을 활용한 버진로드 체험존이 있다. VR 기기를 착용하면 사전에 촬영된 영상을 바탕으로 인기 웨딩홀의 규모와 분위기를 360도로 느껴볼 수 있다. 직원의 안내를 받고 머리에 기기를 쓰자 눈앞이 버진로드로 바뀌었다. “우와” 소리가 절로 나왔다.
하지만 단순히 재미 목적으로 마련된 공간은 아니다. 웨딩홀 투어의 애로사항 중 하나는 본식 당일의 분위기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대부분 평일에 상담이 이뤄져 조명, 장식 등이 갖춰져 있지 않아 머릿속으로 상상을 해야 한다. VR 버진로드 체험은 이 같은 문제를 보완해 예식이 있는 날 촬영을 진행하고, 그 현장을 기기 안에 생생하게 담아낸 서비스다. 가상이지만 발품 팔지 않고 선 자리에서 수십 곳의 결혼식 현장을 방문해볼 수 있다. 자녀와 함께 웨딩홀 투어를 다니고 싶어도 체력이 받쳐주지 않는 시니어에게 반가운 소식이다.
지하 1층에 작게 마련된 ‘젠틀맨 온리’ 존도 정보기술(IT)을 접목해 재미 요소를 더한 공간이다. 영화 ‘킹스맨’이 떠오르는 이곳에서는 방문자의 키와 몸무게를 본뜬 3D 아바타를 통해 남성 예복을 입혀볼 수 있다. 라펠, 칼라, 타이 등 세부 항목을 선택해 체형에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으면 된다. 예복 용어가 낯선 시니어도 놀이 삼아 눌러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서비스 특성상 제휴 업체 이외의 정보는 얻을 수 없다는 한계가 있지만, 결혼 준비 과정에서 겪는 불편을 여러 콘텐츠로 해소한 점이 눈길을 끄는 공간이었다. 플래너 혼자 결혼 준비를 도맡는 다른 서비스와 달리 앱과 공간, 사람 세 가지 유틸리티를 모두 활용할 수 있다는 특징도 돋보였다. 실제로 한 사람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보다 부담이 덜하다는 것이 대다수 고객의 반응이다. 박 본부장은 “IT 시대인 만큼 이제는 결혼 준비도 스마트해질 필요가 있다”며 “이 공간을 통해 결혼 준비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수고스러움과 기회비용은 줄이고, 정보의 불균형을 해소해 지식 레벨을 높여 가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연말부터 올해 초까지 금융기관에서 줄줄이 대규모 희망퇴직이 발생했다. 비대면 금융이 늘어나면서 필요한 영업점의 인원이 줄어든 탓이다. 은퇴한 전문직 종사자들은 근로 의욕이 상당히 높아서, 퇴직 이후에도 쉬지 않고 재취업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이러한 전문직 출신 은퇴자는 창업이나 창직에 관심이 많다.
참고 한국고용정보원, 신사업창업사관학교
적성을 고려한, 창업
박 씨는 대기업에서 30년 가까이 근무한 선박 전문가였다. 선박 기술 서비스 분야에서 임원까지 올랐다. 오랫동안 일한 회사를 떠나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원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예전부터 사업에 대한 동경이 있었고, 실제로 적성검사를 하면 사업가 체질로 나왔다. 그래서 잘할 수 있고 자신 있는 분야인 선박 기술 서비스와 선박 엔지니어링 전문기업을 설립했다. 다른 일도 생각했지만, 이제껏 축적한 경험과 전문성은 포기할 수 없는 큰 자산이었다.
실제로 시니어 창업이 늘고 있다. 지난해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3분기 창업 기업은 34만여 개로 2019년과 비교해 13.3% 늘어났다. 특히 연령별로 규모를 파악했을 때 60세 이상의 전체 창업은 2019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15.8% 올랐고, 기술창업은 28% 상승했다.
이들이 창업을 선호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은퇴 후 재취업이 쉽지 않고, 창업의 진입 장벽이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전경련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가 중장년 구직자를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10명 중 6명 이상은 6개월 이상의 장기 실업 상태에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또한 100년행복연구센터의 자료에 따르면 퇴직자 3명 중 1명은 자영업을 선택했다. 선호하는 이유는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고,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뛰어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실업의 장기화와 손쉬운 접근성이 창업의 주요한 원인이었다.
하지만 창업의 길도 어렵다. 국민의힘 소속 양금희 의원이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제출받은 ‘창업 기업 생존률 현황’ 자료에 따르면, 국내 창업 기업의 5년 차 생존율은 29.2%로 집계됐다. OECD 주요국 창업 기업 5년 생존율 41.7%와 비교하면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한편 코로나19도 창업 시장에 영향을 미쳤다. 중장년 취업 컨설팅 관계자는 “창업 문의는 많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창업을 미루는 사례가 생기고 있다. 만약 창업을 준비한다면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창업을 위해서는 4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창업자, 아이템, 상권, 창업자금이다. 어느 하나도 부족함 없이 유기적으로 작용해야 한다. 창업자의 역량을 스스로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아이템을 찾아야 한다. 아이템을 찾았다면 적합한 상권을 알아보고, 그 상권에 입점하기 위한 창업자금을 비축해야 한다. 다음은 한국고용정보원의 자료를 바탕으로 예비 창업자를 위한 4계명을 살펴보고, 최근 부상 중인 유망 창업 아이템을 소개한다.
예비 창업자를 위한 4계명
#1 적성이 최우선
창업은 만만치 않다. 남들이 한다고 덩달아 휩쓸려 창업을 시도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우선은 ‘자신이 할 수 있는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할 것인지?’를 명확히 정하는 것이 좋다. 퇴직한 중장년 세대는 성격이나 장단점 같은 본인의 정확한 특성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중장년 취업 컨설팅 관계자는 “평소에 즐기는 취미나 흥미, 그리고 자신이 쌓아온 역량을 종합적으로 분석해서 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 유망 아이템은 적합성을 고려
유망 아이템을 정하라고 하면 모두 장사가 잘되는 일을 선택한다. 물론 수익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창업자와의 적합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직접 자료 조사도 하고, 발품을 팔면서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업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황윤정 한국열린사이버대학 디지털비즈니스학과 교수는 “시니어인 만큼 동년배의 니즈와 트렌드를 파악하고,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아이템을 정하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3 상권의 분위기와 유동 인구
점포 창업에서 상권은 중요하다. A급 상권에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무조건 A급 상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A급 상권의 점포는 임대비용도 비싸고 권리금도 장난이 아니다. 상권이 좋다고 해서 모든 상품이 잘 팔린다는 보장은 없다. 상권 내에서도 입지에 따라 등급이 매겨지고, 입지에 맞는 업종이 다 다르다. 황 교수는 “상권의 분위기가 업종과 어울리고, 유동 인구가 많은지 살펴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4 비용과 매출
이제까지 조금 이상적이었다면 지금은 현실적인 얘기를 할 필요가 있다. 창업에는 반드시 돈이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창업자금은 총투자비용의 70%를 자기 자본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자기 자본이란 그 돈이 없어도 당장 사는 데 문제없는 자산을 말한다. 만약 자금이 부족하면 선택한 업종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창업 규모를 줄이는 것이 낫다. 중장년 창업 컨설팅 관계자는 “예상 비용이나 예상 매출액을 꼼꼼히 따져보고, 관련 분야의 비용 지원 제도를 알아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2021 뜨는 창업 아이템
맞춤형 향기 서비스 ▶ 최근 향초와 디퓨저 같은 향기 산업이 급성장 중이다. 영국 시장 분석 업체 ‘IAL컨설턴트’에 따르면 글로벌 향기 산업 규모는 2022년까지 약 40조 원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쾌적한 실내 환경 유지 및 스트레스 해소로 향기 제품이 많이 애용된다.
공유 주방 ▶ 공유 경제를 활용한 공유 주방 사업이 뜨고 있다. 점포 창업을 하는 대신 공유형 주방을 이용해 배달음식만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것이다. 점포 창업보다 초기 비용이 저렴하다. 공유 주방은 4평 정도의 공간에 1000만 원 내외의 보증금과 월 160만 원 정도의 이용료만 지불하면 된다. 배달을 이용하는 1인 가구가 계속 늘어나는 추세라 더욱 주목받고 있다.
창문농장 ▶ 반려식물이 하나의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창문농장(Windowfarm)이 뜨고 있다. 창문농장은 아파트 거실이나 베란다 창문에 수직으로 설치하는 수경 재배 시스템이다. 계절과 상관없이 친환경 채소를 직접 재배해서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홈가드닝과 플랜테리어에 대한 수요가 많아 앞으로 새로운 먹거리가 될 것이다.
새로운 대안, 창직
A씨는 호텔리어로 20년 동안 일하다 은퇴했다. 은퇴 후 여가를 즐기려고 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못했다. 아내의 잔소리와 더불어 계속해서 비는 통장 잔고를 메워야만 했다. 얼떨결에 대리운전을 시작했지만 만만치 않았다. 취객의 난동과 폭언 및 욕설로 괴로운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그러다 우연히 아들의 결혼식에서 신랑 신부 이동 서비스에 영감을 받아 결혼식 당일 웨딩카로 신랑 신부를 이동시켜주는 웨딩쇼퍼 사업을 시작했다. 호텔리어와 대리운전 경험을 발휘해서 창직을 시도한 것이다.
위는 대표적인 창직 사례다. 저성장이 계속되면서 일자리가 충분하지 않다. 이러한 탓에 중장년의 재취업도 쉽지 않다. 음식점, 숙박업, 카페 등 이미 포화 상태인 시장에서는 창업으로 살아남기 힘들다. 이러한 현상과 맞물려 고학력 베이비붐 세대가 재취업 시장에 뛰어들면서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창직’이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 관계자는 “생계유지와 함께 일로써 보람을 얻기를 원하는 중장년층이 많아지면서 창직을 원하는 수요가 생기고 있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서울시50플러스재단은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원하는 진로 유형을 파악했는데, 창직 추구형이 64.27%로 가장 높았다. 이 유형은 자신의 경력을 활용해 지속해서 경제적 소득을 얻기를 희망했다. 주로 장기 근속한 도시의 화이트칼라 남성 노동자가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다양한 사회관계망을 통해 구직하고 있었으며, 정부의 창업과 자영업 지원 정책을 선호했다.
창직은 쉽게 말해서 새로운 직무를 만드는 일이다. 그 직무를 하기 위한 내용과 지식, 기술 등이 포함된다. 창업의 비즈니스 모델은 주로 제품이나 기술이다. 반면에 창직은 직무를 분석하고 교육 훈련 프로그램을 개발해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목표다. 이렇게 다름에도 불구하고 창업과 창직을 자주 혼동하는데, 이는 창직을 통해 구현되는 방법이 대부분 창업이기 때문이다.
창직을 위해서는 참신성, 수익성, 실현 가능성, 전문성이 필요하다. 이 일은 새로운 직업을 만드는 것인 만큼 참신해야 하고, 새 직업의 직무 수행은 기존의 일과는 확실히 다른 특성을 가져야 한다. ‘직업’이기에 경제적 이득을 취할 수 있어야 하고,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법적 및 제도적 여건을 살펴야 한다. 창직 관련 전문가는 “창직은 새로운 업을 만드는 일이기에 업으로서 지속할 수 있고, 경제적 소득이 있어야 한다. 윤리적으로나 법적으로도 이상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창직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과 미래에 전망이 밝은 창직 업종을 소개한다.
예비 창직자가 알아두면 좋은 Tip
#1 다방면으로 탐색하자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사회의 전반적인 현상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예를 들면 웰빙에 대한 관심과 주 5일 근무 확산으로 여가 생활이 늘어나면서 다이어트 프로그래머나 파티 플래너가 생겨났다. 또한 빅데이터의 발달로 빅데이터 분석가도 유망한 직업으로 부상했다. 이처럼 새로운 직업을 발굴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 변화, 수요자의 욕구, 과학기술의 발전 등 다방면으로 탐색할 필요가 있다.
#2 해외로 눈을 돌려보자
해외 직업 중에 우리나라의 상황을 고려해 적용 가능한 직업을 찾을 수 있다면 새로운 직업을 만들 수 있다. 맥주 주조사나 VJ 같은 직업도 해외에 있던 직업이 우리나라에 도입된 경우다. 다만 각 나라의 문화, 제도, 시장에 따라 현실이 다르기 때문에 직업을 그대로 수용하기는 쉽지 않다. 적용 가능성을 충분히 검토한 뒤 조정해야 한다.
#3 융합을 고려하자
기존 학문, 직업 간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직업을 만들 수 있다. 대표적으로 음악치료사나 미술치료사가 있다. 기존 노동 시장에 전혀 없던 직무보다 기존 직업 간의 결합 또는 융합으로 발생한 직업이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다. 따라서 직업 간의 결합과 융합 가능성을 찾아보자. 특히 반려동물과 관련된 시장을 주의 깊게 보면 좋다.
#4 분화를 검토하자
새로운 수요에 따라 기존 직업에서 분화되거나 전문화하여 직업이 나타나기도 한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증가하면서 애견 옷만 전문적으로 만드는 애견 옷 디자이너가 나타났다. 이 직업은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핵가족 및 독신 인구 증가로 애완동물 시장이 성장하면서 패션 디자이너에서 분화된 것이다. 기존의 직업과 사회 전반적인 현상을 살피면서 분화할 수 있는 직업을 눈여겨보자.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창직
로봇 컨설턴트 ▶ 일반 기업의 로봇 사업 도입 및 전환에 대한 컨설팅을 제공하기 위해 콘셉트 디자인, 타당성 연구, 품질 관리 등 다양한 테스트를 실시한다. 고령화와 자동화 추세에 따라 생활 전반에 로봇 사용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도심 RPG개발자 ▶ 도시를 게임판 삼아 참여자가 직접 역할을 수행하면서 도시의 문화나 역사를 체험하는 일종의 놀이마당을 기획하고 운영한다. 게임을 문화 체험, 도시 체험 등 다양한 영역에 접목하여 사업을 진행할 수도 있다. VR이나 AR 체험이 늘어나면서 유망한 직종으로 뜨고 있다.
스마트팜 전문가 ▶ 시설 원예 및 축산 농가를 대상으로 사물인터넷 등 ICT를 활용해 농가 시설을 현대화하고, 이를 통한 지속적인 성장 및 수익 창출을 지원하기 위해 스마트팜 설계, 구축, 운영 등에 관해 조언한다. 스마트팜은 한국고용정보원이 정한 8대 혁신성장 산업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