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화 ‘어부 아내의 꿈’은 남자의 성적 판타지

기사입력 2021-03-11 09:01 기사수정 2021-04-22 19:11

[배정원의 性인문학]

최근 인문학이 대세다. ◯◯인문학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따라서 유행이다. 그런데 성만 한 인문학이 또 있을까? 사람이 태어나 살아가고, 사랑을 나누고, 종족을 남기고, 늙고 죽어가는 이야기는 다 성에 있다. 성을 한자로는 ‘性’이라 표기하는데 어찌 이렇게 적확한 표현을 찾았는지 놀랍기까지 하다. 성은 그 사람의 본성을 뜻한다. ‘배정원의 성 인문학’은 역사, 예술, 사회 등 사람이 만들어가는 문화 속에서 성을 재미있게 풀어볼 것이다.

<행복한성문화센터 대표, 대한성학회장, 보건학 박사, 배정원TV 유튜버>


▲‘어부 아내의 꿈’, 가츠시카 호쿠사이
▲‘어부 아내의 꿈’, 가츠시카 호쿠사이

다시 춘화! 이번엔 일본 춘화다. 일본의 춘화는 유교적 영향으로 성을 은밀하고 숨겨야 할 것으로 대하던 한국이나 중국과 달리, 성을 자연스럽고, 재미있는 것으로 마주하는 성 문화가 반영되어 만화처럼 가볍고 웃음 나오게 하는 것이 많다. 또한 채색이 매우 화려하고, 섬세한 인물 묘사, 성기 페티시즘이라 할 만큼 과장해서 그린 커다란 성기, 화려한 의상과 가구 등이 특색이다.

서구에서 ‘슝가’(Shunga)라는 단어가 생길 정도로 일본 춘화는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파리박람회에 출품한 일본 도자기를 싼 포장지에 그려져 있던 춘화는 19세기의 모네, 마네, 고흐 등 인상파 화가들에게 강한 예술적 충격을 주었고, 이들은 일본 춘화를 보며 동양의 신비한 성 문화를 동경했다.

이 그림은 일본을 대표하는 화가 가츠시카 호쿠사이(葛飾北齋, 1760~1849)의 작품으로, 그가 그린 춘화(春畵) 중 가장 유명한 ‘어부 아내의 꿈’이다. 가츠시카는 일본의 일러스트 효시라고 일컬어지는 ‘붉은 후지산’, ‘번개를 동반한 뇌우 속의 후지산’,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등으로 세계에서도 이름이 널리 알려진 일본 풍속화 작가다.

‘어부 아내의 꿈’의 에로틱함과 음란함은 세계적으로 이미 인정받았다. 미국 뉴스 매체 허핑턴포스트는 ‘에로틱한 고전미술품’으로 선정했으며, 파리의 루브르박물관은 이 그림을 특별 전시한 바 있다. 이 그림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다. 어부 남편이 바다에 일을 나간 지 오래되자 성적인 허기를 느끼던 어부 아내가 하루 일과에 지쳐 잠을 자다 꿈에서 문어에게 강간당하는 상황을 표현한 것이라는 단순한 논평부터, 어부 아내에게 가장 공포의 대상인 바다(문어)에게 강간을 당하는 듯하지만 결국은 황홀의 경지로 들어가 화합한다는 메시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자못 성 심리적인 해석도 있다. 또한 이 그림은 수간(동물과의 섹스)을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면서, 일본에서 유독 인기를 끌고 있는 ‘촉수성애물’(Tentacle Erotica)의 시초라는 설도 있다. 촉수성애물은 특히 남자의 성기를 상징한, 그러나 하나뿐인 인간 남자의 성기로는 불가능한 행위를 여러 개의 촉수를 이용해 여체를 감싸거나 애무하고, 심지어 여체의 항문과 질과 입을 통해 관통하기도 하는 사드마조히즘(SM)의 가학적인 면을 강조해 차용한 음란물이다.

그림 속에서 거대한 왕문어는 굵고 긴 다리로 여인을 삼킬 듯이 온통 감싸고 있다. 문어의 여덟 개 촉수는 여인의 하얗고 풍만한 몸을 끌어안듯 칭칭 감은 채 끈적하게 천천히 움직인다. 문어의 습격(?)이라지만, 그림을 조금만 더 자세하게 살펴보면 문어 다리의 위치가 심상치 않다. 문어 다리는 여자의 동그란 어깨와 양팔, 다리를 감싸 잡고, 예민한 성기 부분을 애무하면서 입으로는 여자의 외음부를 애무하고 있다. 문어가 여자를 곧 잡아먹을 것 같지는 않고 희롱을 실컷 한 후에나 생각해보려는가?

그런데 그림의 분위기는 불안하고 공포스럽다기보다 오히려 눈을 꼭 감은 여자의 벌린 입에서 황홀한 신음소리가 감미롭게 나오고 있는 것만 같다. 게다가 문어는 한 마리가 아니다. 작은 녀석 한 마리가 여자의 머리와 목을 스멀스멀 감싸 안고, 다리 하나로는 여자의 하얀 젖가슴 위 유두를 애무하면서 다른 다리를 여자의 입안에 넣고 있다. 수간에 스리섬?! 여자의 자세 또한 강간을 당하는 자세라기보다는 다리를 벌리고 문어의 오럴섹스를 즐기는 것만 같은데 그녀가 분명하게 성적 황홀경을 느끼고 있다는 증표는 하얀 가슴 위에 딱딱하게 봉긋 선 젖꼭지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녀를 감싸고 있는 문어의 굵고 가는 다리들은 살아 있는 것이니, 계속 꿈틀대며 하얗고 부드러운 살갗을 애무하듯 쓰다듬을 것이다. 문어의 동그란 두 눈은 위협적이라기보다 애교를 부리는 듯하다. “나 잘하고 있지?”라고 묻는 것일까?

‘어부 아내의 꿈’은 꿈속 장면이지만 폭력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황홀한 정사를 즐기고 있다. 바닷가의 바위틈에서 거대 문어에게 포획되어 섹스의 대상이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인은 분명 즐기고 있다. 성기를 얼굴 크기만 하게 그리는 게 일본 춘화의 특색인데, 커다란 그녀의 성기를 애무하는 문어의 오럴섹스는 그래서 더욱 자극적이다. 여자는 눈을 감고 머리를 늘어뜨린 채 몸의 모든 예민한 부분에 끈적한 애무를 받고 나른하게 늘어져 절정에 오른 모습이라 그야말로 에로틱하다.

실제로 이 춘화의 배경에 쓰인 글(가키이레)은 문어 머리에서 윗부분에 걸쳐 거의 의태어와 섹스 중에 나는 신음소리로 채워져 있고, 그 안에서 심지어 여자는 문어를 ‘얄미운 분’이라고 부르고 있다니, 여자는 분명 ‘작은 죽음’(Petite Mort, 프랑스에서는 오르가슴을 ‘작은 죽음’이라 표현하기도 한다)을 겪는 중이겠다.

성 전문가의 시점에서 본 이 그림은 여자의 끈적한 성몽이라기보다는, 여자를 만족시키는 섹스에서 더한 오르가슴과 능력을 확인하는 남자의 성적 판타지를 간절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여덟 개의 굵고 가는 촉수로 여체를 휘감아 성감대를 모조리 자극하면서 여자를 그야말로 실신 상태의 오르가슴으로 몰아가는, 환상적이고 주도적인 섹스를 상상하는 그 남자, 가츠시카는 분명 여자의 섹스를 아주 잘 아는 경험 많은 남자다.

여자의 오르가슴은 동시다발적인 애무가 필요하다. 아마 남자들은 파트너를 열심히 애무하다 거친 신음소리에 성기를 삽입하려고 상대의 몸에서 손이나 입을 떼는 찰나 식어버리는 냉정한 오르가슴을 마주할 때의 무력함을 기억할 것이다. 터치와 입맞춤에서 잠시 놓여나는, 결정적인 순간에 사라지는 여자의 오르가슴! 남자들은 그야말로 문어처럼 여러 개의 손, 그것도 빨판이 붙은 촉수의 다리가 아쉬울지도 모르겠다. 팔이 모자라 슬픈 동물, 섹스에서 권력을 확인하고 싶은 약한 그대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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