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0. 23 (토)

부끄럽지 않은 완성을 위하여

기사입력 2021-06-02 08:00:00기사수정 2021-06-02 10:26

[명사와 함께하는 북人북] 시인 안도현의 고백

‘한국의 어린 왕자’로 불리는 ‘연어’부터 연탄재 시인이라는 별명을 얻게 해준 ‘너에게 묻는다’까지 동심과 자연을 오가며 아름다운 언어의 세계를 보여줬던 안도현 시인(61). 올해 그는 환갑을 맞이했고, 1981년 시 ‘낙동강’으로 등단하여 시인으로 산 세월은 어언 40년이다. 여전히 시를 쓸 때면 떨린다는 시인은 지난 40년간의 세월을 정리하며 신간 ‘고백’으로 돌아왔다.

▲안도현 시인(브라보 마이 라이프)
▲안도현 시인(브라보 마이 라이프)

신간 ‘고백’의 서두에서 그는 이 책은 스무 살의 안도현에게 건네는 책이라고 말한다. 그는 스무 살의 자신에게 어떤 말을 전하고 싶었던 걸까? 40년의 세월을 정리하며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썼는지 그에게 물었다.

“책을 통해 위로와 고백을 전하고 싶었다. 일단 스무 살의 나에게 위로를 건네고 싶었다. 젊을 때는 떨림과 설렘, 불안과 두려움이 공존하지 않나? 나 역시도 그랬다. 특히 시인의 꿈이 쉽지 않은 길임에도 묵묵히 정진했던 스무 살의 안도현을 늦게라도 위로하고 싶었다. 나이를 먹으면 설렘과 같은 감정에 무뎌지기 마련이다. 나 역시 그렇지만, 오직 시 앞에선 여전히 떨리고 설렌다. 이 책을 통해 스무 살의 내게 건네는 위로와 동시에 여전히 시 앞에서 떨리는 마음을 고백하고 싶었다.”

이번 책은 산문집이지만 시가 연상될 만큼 짧고 강렬하다. 특이한 건 자연의 멋스러운 풍광을 담은 사진 위에 얹어진 글에 모두 제목이 없었다.

“이번 책은 독자들에게 ‘숨구멍’이 됐으면 좋겠다. 코로나19가 2년 차로 접어들면서 모두 심신이 지친 상태다. 그래서 진지하거나 마음을 무겁게 하는 책은 쓰고 싶지 않았다. 읽으면서 숨을 한번 크게 내쉴 수 있도록 가볍고 짧은 글과 더불어 사진을 시원하게 배치했다. 제목을 달지 않은 건, 독자들이 스스로 제목을 붙여보면 좋을 것 같아서 그랬다.”

▲신간 '고백'의 표지와 안도현 시인이 적은 글귀
▲신간 '고백'의 표지와 안도현 시인이 적은 글귀

안식년과 같은 해직과 절필

40년의 세월을 정리하면서 묶은 이 책처럼, 그는 오랫동안 터전을 잡았던 전주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현재는 고향인 예천으로 돌아왔다.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더 늦기 전에 와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고향으로 돌아왔다. 일 년 좀 넘었는데 정말 좋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고 새소리를 듣는 재미가 있다. 마당의 풀을 뽑거나, 비닐하우스의 채소에 물을 주고, 때때로 동네 산책을 다닌다. 지금이 삶에서 제일 행복하다.”

그는 고향에 터전을 잡는 동시에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계간지 ‘예천산천’을 만들고 있었다.

“예천산천은 현재 5호까지 나왔다. 잡지를 통해 예천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싶다.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의 현재와 과거, 예천의 역사적 인물, 태평양전쟁과 한국전쟁을 거쳤던 할머니의 얘기 등과 같이 숨겨진 얘기를 통해 예천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고 싶다. 다양한 행사를 해보고 싶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요새는 우편 발송만 열심히 하고 있다.(웃음)”

떨리는 마음으로 시를 쓰고, 소박한 시골 생활을 즐기는 그에게도 매번 좋은 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교사 시절 해직과 복직을 반복했고, 최근에는 약 4년 동안 절필을 하기도 했다.

“내가 쓰는 시는 책상 위에서 시작해 광장으로 나갔다. 개인의 정서를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향해 있었다. 개인적으로 문학은 개인과 사회를 연결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높은 곳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낮은 곳을 바라보고, 공동체를 위한 일은 무엇일까 늘 고민했다. 해직과 절필도 나의 이러한 마음가짐에서 비롯된 일이다.”

덧붙여 그는 이 시간을 “시련이 아니라 헤치고 나갈 과제였다”라고 정의했다.

“돌이켜 보면 해직과 절필은 일종의 안식년이자 성찰의 시간이었다. 많은 이로부터 사랑받았던 ‘연어’도 교사 해직 시절에 쓴 것이다. 아이들과 소통할 수 없는 것이 너무나 아쉬워서 책을 통해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은 것이 바로 ‘연어’였다. 절필하면서 쓰는 대신 부지런히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또한 지나간 삶과 써온 시에 대해 돌아볼 수 있었다. 영영 시를 쓰지 못할까 봐 불안하기도 했지만, 감사하게도 또 쓰니까 써지더라. 그 결과가 절필을 마친 후 처음으로 지난해에 출간한 시집인지도 모르겠다.”

▲안도현 시인(브라보 마이 라이프)
▲안도현 시인(브라보 마이 라이프)

삶의 원동력

40년간 독자의 심금을 울리는 시를 써온 시인에게 가장 잊을 수 없는 시는 무엇일까? 더불어 시인의 삶에서 시는 어떤 의미인지 물어봤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시를 아직 쓰지 못했다. 내 시를 아껴주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지만, 지금까지 써온 시를 다시 보면 부끄럽다. 다만 시를 쓰면서 여러 가지를 배웠다. 시를 쓰면서 삶을 반성했고, 높은 곳이 아니라 낮은 곳을 볼 줄 알게 됐으며, ‘나는 나다’가 아닌 ‘나는 너다’와 같은 역지사지 자세로 살려고 노력했다. 아마 내 삶의 원동력은 ‘시’인지도 모른다.”

끝으로 시인으로서의 목표와 좋은 시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을 밝혔다.

“돌이 쌓여 있네. 돌탑이구나. 이게 시가 아니다. 저 돌탑 안에서 바깥을 보면 어떨까? 저 돌은 어떤 할머니가 어떤 상황에서 지나다 올려놓은 걸까? 이렇게 다른 관점으로 볼 줄 알아야 한다. 영감은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생각하고, 관찰하고, 그 너머를 상상할 때 좋은 시를 쓸 수 있다. 남다른 생각, 자기만의 언어, 새로운 발견. 이 삼박자가 골고루 갖춰진 게 좋은 시다. 앞으로 살면서 그런 시를 한번 써보고 싶다.”

이날 우리는 바람 부는 윤동주 시인의 언덕 아래 벤치에 앉아 오랫동안 얘기를 나눴다. 코로나19가 끝나면 제자들과 막걸리를 마시고 싶다는 바람을 말할 때의 그는 정겨운 선생님이었지만, 시 앞에서 떨림을 고백할 때는 스무 살의 안도현이었고, 자신의 시를 말할 때는 부끄러움을 고백하는 시인이었다. 다만 그 부끄러움은 겸손의 표현이 아니라, 그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사랑의 고백이 미완의 관계를 완성하듯, 시를 향한 떨리고 부끄러운 마음은 부끄럽지 않은 시를 완성시킬지도 모른다. 삶의 부끄러움을 고백했으나 시는 전혀 부끄럽지 않았던 윤동주 시인처럼. 앞으로 그가 쓸 시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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