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신채가 들어가지 않은 자연 채식의 수수하고 담박한 매력

기사입력 2017-05-02 08:36 기사수정 2017-05-02 08:36

[5월의 맛] 한국 전통 채식 맛집 '마지'

마늘, 파, 부추, 달래, 무릇(흥거) 등 우리 사찰에서 금하는 다섯 가지 채소를 ‘오신채(五辛菜)’라고 한다. 재료의 성질이 맵고 향이 강해 수행에 방해가 된다고 해서 먹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오신채를 사용하지 않고 만든 음식을 흔히 ‘사찰음식’이라 부른다. 이러한 사찰음식의 개념을 넘어 ‘한국 전통 채식’의 의미를 더한 무신채(無辛菜) 식단을 지향하는 맛집 ‘마지’를 찾아갔다.


▲'마지' 연밥올림 한상차림과 구절판(오병돈 프리랜서(Studio Pic) obdlife@gmail.com)
▲'마지' 연밥올림 한상차림과 구절판(오병돈 프리랜서(Studio Pic) obdlife@gmail.com)

순하게 즐기는 우리 전통 채식

서울 경복궁 인근 서촌마을에 위치한 ‘마지'는 아담한 한옥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2012년 사찰음식 도시락을 선보였던 마지는 이듬해 서울 방배동 매장을 마련했고, 올해 4월 지금의 서촌 분점을 열었다. 그 출발은 ‘사찰음식’이었지만, 오랜 연구와 고민을 거듭하며 현재는 ‘한국 전통 채식’이라는 의미로 확장해나가고 있다. 종교음식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마지의 김현진 대표는 “사찰음식점으로 유명해지긴 했지만,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한국 전통 채식’입니다. 식물은 저마다 독성이 있기 때문에, 짧게라도 열처리를 해서 독성을 제거해야 해요. 그게 한국 전통 채식의 조리법이라 할 수 있죠. 우리는 그 방법을 고수해 음식을 만들고 있습니다”라며 이곳 음식의 의미와 고집을 드러냈다.

▲'마지' 외부 전경(오병돈 프리랜서(Studio Pic) obdlife@gmail.com)
▲'마지' 외부 전경(오병돈 프리랜서(Studio Pic) obdlife@gmail.com)

▲'마지' 앞마당(오병돈 프리랜서(Studio Pic) obdlife@gmail.com)
▲'마지' 앞마당(오병돈 프리랜서(Studio Pic) obdlife@gmail.com)


목사님도 즐기는 부담 없는 사찰음식

마지를 찾아오는 손님들은 대개 스님이거나 불교 신도들 아닐까? 이에 김 대표는 선입견에 불과하다고 했다. “서촌점 개업 날도 스님보다 목사님이 더 많이 방문했어요. 단골을 봐도 스님, 목사님, 신부님 비율이 거의 비슷하죠.” 또 한 가지 반전은 김 대표는 한때 잘나가던 수학선생님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그녀가 사찰음식으로 전향하게 된 데에는 가족의 영향이 컸다. 암으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부쩍 건강에 신경을 쓰던 그녀의 몸에 이상증세가 나타났다. 병원에 가보니 항생제 알레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근력을 키우기 위해 즐겨 먹었던 (항생제 처리된) 닭고기가 화근이었던 것. 그길로 자신이 먹는 식재료들의 근원을 탐구하기 시작했고, 사찰음식에 눈을 뜨게 됐다. 그리고 마지가 문을 열기까지 그의 어머니인 백련성(본명 이춘필) 백련사찰음식 연구소 소장의 역할이 컸다.

▲'마지' 구절판(오병돈 프리랜서(Studio Pic) obdlife@gmail.com)
▲'마지' 구절판(오병돈 프리랜서(Studio Pic) obdlife@gmail.com)

▲'마지' 실내 전경(오병돈 프리랜서(Studio Pic) obdlife@gmail.com)
▲'마지' 실내 전경(오병돈 프리랜서(Studio Pic) obdlife@gmail.com)


재료 본연의 맛에 집중하다

선재 스님에게 사찰음식을 사사한 백련성 소장 역시 과거 고기를 먹다가 급체한 이후 채식만 먹게 됐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건강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식재료 하나하나에 더욱 신경을 쓰고 정성을 다할 수 있었다. 마지의 대표 메뉴는 연밥올림 한상차림(1만7000원)인데, 여기에 쓰이는 연잎 한 장도 직접 엄선해 사용한다. 5월에서 10월까지, 여름내 촉촉이 비를 맞고 가을에 제대로 영글어진 백련 잎만을 고집한다. 여러 연꽃 중에서도, 백련 잎은 향이 진하고 약용 성분이 풍부해 연밥을 지었을 때 맛이 좋고 건강에 도움이 된다. 이곳에서는 지름이 50cm 정도인 큰 연잎에 흰 찹쌀만 넣고 연밥을 만든다. 특별한 재료가 들어가지 않아도 건강한 자연의 향을 머금은 밥맛이 풍족하게 느껴진다. 밑반찬으로 나오는 깍두기는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기 위해 인공조미료나 액젓 대신 과일소스와 간장으로 양념한다. 흔히 식당에서 즐기는 새콤하게 무른 깍두기와 달리, 아삭아삭하면서도 기분 좋은 알싸함과 단맛이 느껴진다. 다른 반찬들 역시 천연 효소나 최소한의 양념만 넣어 담백하게 요리한다.

▲백련잎으로 만든 연밥(오병돈 프리랜서(Studio Pic) obdlife@gmail.com)
▲백련잎으로 만든 연밥(오병돈 프리랜서(Studio Pic) obdlife@gmail.com)

▲'마지' 실내 전경(오병돈 프리랜서(Studio Pic) obdlife@gmail.com)
▲'마지' 실내 전경(오병돈 프리랜서(Studio Pic) obdlife@gmail.com)


마지의 삼일(3·1) 캠페인

사찰음식의 맛에 눈뜬 사람이라도 가격이 부담스러워 자주 즐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이곳에서는 8000원부터 1만원까지, 비교적 부담 없는 가격으로 맛볼 수 있는 메뉴들을 선보이고 있다. 부담 없는 가격으로 부담 없는 한 끼를 즐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김 대표는 ‘삼일 캠페인’을 제안한다. 세끼에 한 번, 3일에 한 번, 또는 외식 세 번 중 한 번은 가벼운 음식을 먹어서 과한 영양 섭취에 지쳐 있는 우리 몸을 편안하게 해주자는 것. 그렇게 서서히 우리 몸과 영양의 균형을 찾는 식단을 마련하는 게 마지의 목표다.

▲'마지' 황매실 효소차(오병돈 프리랜서(Studio Pic) obdlife@gmail.com)
▲'마지' 황매실 효소차(오병돈 프리랜서(Studio Pic) obdlife@gmail.com)

▲'마지' 실내 전경(오병돈 프리랜서(Studio Pic) obdlife@gmail.com)
▲'마지' 실내 전경(오병돈 프리랜서(Studio Pic) obdlife@gmail.com)


마지에서는 주마다 종교학, 음식학, 철학 등을 아우르는 ‘인문학밥상’ 강의가 열린다. 단순히 밥을 먹는 식당을 넘어서 불교를 흥미롭게 접하고 종교 간 화합을 마련하는 소통의 장으로 발돋움하고 있다(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5길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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