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형의 한문산책] 봄을 노래한 한시(漢詩)

기사입력 2015-04-23 05:55 기사수정 2015-04-23 05:55

바야흐로 봄이다. 봄을 나타내는 한자인 ‘춘(春)’은 원래 풀초(?)에 새싹이 돋아나는 모습을 나타내는 둔(屯)에다가 마지막으로 날일(日)을 합쳐서 만들어진 글자이다. 새봄을 맞아 그 감흥을 노래한 한시는 셀 수도 없을 만큼 많다.

그중 유명한 글들을 살펴보면, 우리나라에서는 가사문학으로 조선 초 정극인(丁克仁)이 <상춘곡(賞春曲)>에서 ‘엇그제 겨을 지나 새봄이 도라오니, 도화행화(桃花杏花)는 석양(夕陽)리예 퓌여 잇고, 녹양방초(綠楊芳草)는 세우(細雨) 중에 프르도다’라고 노래하고 있다.

역대 우리나라 한시 중 최고봉으로 손꼽히는 고려시대 정지상(鄭知常)의 <송인(送人)>에서는 ‘우헐장제초색다(雨歇長堤草色多) 송군남포동비가(送君南浦動悲歌), 비 갠 강둑엔 풀빛이 푸르고, 임 보내는 남포엔 슬픈 노래가 울리네’라고 노래하였다. 이 유명한 시는 1962년 이수복이란 시인에 의해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오것다.’란 구절의 <봄비>란 시로 재탄생된다.

중국에서는 도연명(陶淵明)이 <사시(四時)>에서 ‘춘수만사택(春水滿四澤) 봄 물은 연못에 가득하고’란 유명한 구절을 남겼고, 당(唐)나라 때 맹호연(孟浩然)은 <춘효(春曉: 봄날의 새벽)>에서 ‘야래풍우성(夜來風雨聲) 화락지다소(花落知多少) 지난 밤 세찬 비바람 소리에, 얼마나 많은 꽃잎이 떨어졌을까!’란 명구를 남겼다.

이백(李白)은 <산중문답(山中問答)>에서 ‘도화유수묘연거(桃花流水杳然去)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 복사꽃 흩날려, 흐르는 물에 고요히 떠내려가니, 또 다른 별천지, 인간세상이 아니로세’라고 봄날의 정경을 노래하였다. 두보(杜甫)는 <춘야희우(春夜喜雨)>에서 ‘好雨知時節(호우지시절) 當春乃發生(당춘내발생) 좋은 비는 때를 알고 내리나니, 봄이 되니 만물을 움트게 하네.’라고 봄비를 노래하였다.

고려 말의 충신 정몽주(鄭夢周)는 봄비를 ‘춘우세부적(春雨細不滴) 야중미유성(夜中微有聲) 봄비가 가늘어서 방울지지 않지만, 밤중이라 그런지 가는 소리가 나누나’라고 <춘흥(春興)>이란 시에서 노래하였다. 봄의 야경(夜景)을 노래한 글로는 이백의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란 천고의 명문(名文)이 있으며, 고려조 왕석(王錫)의 ‘춘강양안백화심(春江兩岸百花深) 호월비공설만림(晧月飛空雪滿林) 봄 강 양쪽 언덕에 온갖 꽃이 짙게 피니, 허공에 뜬 밝은 달에 숲이 온통 희도다’란 <춘강화월야(春江花月夜)>란 시가 있다.

이처럼 수도 없이 많은 시들 중, 어느 시 구절이 가장 유명하다 꼽을 수 있을까? 아마도 중국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시대 사령운(謝靈運)의 <등지상루(登池上樓)>중 ‘지당생춘초(池塘生春草) 원류변명금(園柳變鳴禽) 연못 가에 봄풀이 돋아나니, 동산의 버들에는 새 소리도 바뀌었네’란 구절이 아닐까 한다. 사령운 자신이 말하길, ‘일찍 영가(永嘉)가 서당(西堂)에서 시를 생각하다가 온종일 못 지었는데, 문득 세상을 떠난 종제(從弟)인 혜련을 꿈에 보고 지당생춘초(池塘生春草)라는 구를 얻었다. 그것은 신공(神功)이지, 내 말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로부터 더욱 유명해진 이 구절은 금(金)나라 원호문(元好問)이 ‘지당춘초사가춘(池塘春草謝家春) 만고천추오자신(萬古千秋五字新)’이라 극찬한 이래, 가장 유명한 봄의 구절이 되어 대대로 회자되어 오고 있다. 주자(朱子)의 <권학시(勸學詩)> 중 ‘미각지당춘초몽(未覺池塘春草夢)’이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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