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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주 병법 PART5] 미국 할아버지·할머니의 ‘손주 병법’
- 미국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인구는 6500만 명. 이 가운데 10%가 좀 넘는 700만 명의 조부모가 손주와 함께 산다. 1992년에는 7% 정도였던 것이 경제여건 악화 등으로 함께 사는 비율이 높아졌다. 하지만 절대 다수인 90%의 조부모는 손주와 떨어져 지내고 있다. 우리나라(남한)의 거의 100배나 되는 넓은 나라이다 보니 멀리 떨어져 사는 경우가 많을
- 2016-07-14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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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공간]권진규미술관
- 천재 조각가 권진규(1922∼1973)는 ‘나의 자식들’이라 부르던 작품들만 덩그러니 남기고 52세의 젊은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떠난 지 42년, ‘자식들’을 품은 곳이 강원도 춘천시 동면 월곡리에 문을 열었다. 권진규는 박수근, 이중섭과 함께 한국 근대미술의 3대 거장으로 불리던 조각가다. 1922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나 춘천고
- 2016-07-14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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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즈엄마의 미국 이민 이야기] (10) 중고차 이야기
- 땅덩어리가 넓은 미국에서 차는 발이나 다름없다. 차가 없으면 누구나 꼼짝도 할 수가 없다. 이민 가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운전 면허증을 따는 일이었다. 그리고 차를 구입해야 하는데 그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낯선 땅에 천지가 어리둥절하고, 가난한 이민살림에 비싼 새 차를 산다는 것은 엄청난 사치였다. 필자는 두 번에 걸쳐서야 겨우 캘리포니아
- 2016-07-13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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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커 페이스(표정 없는 얼굴)
- 얼굴은 마음의 창이다. 나이를 먹고 세월이 지날수록 사람의 얼굴 표정에서 흐르는 느낌은 어쩌면 그 사람 인격을 말해준다. ‘불혹의 나이 40이 지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옛말도 그런 의미를 가져다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굳어버린 얼굴 표정은 상대방을 당혹하게도 한다. 거의 20년 세월이 지나 한국에 와보니 변한 것이 참으로 많았다. 그
- 2016-07-13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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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업과 정부지원 자금 활용하기
- ‘취업절벽, 창업절벽’으로 표현되는 오늘의 경제상황은 심각한 ‘국가적 문제’가 되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창업지원을 확충하고 있으며, 그중 대표적인 것이 ‘정책자금’으로 통칭하는 정부자금 지원제도이다. 그러나 이를 이해하고 제대로 활용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SBA 서울산업진흥원은 교육과 홍보를 하면서 이를 적극 활용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연초
- 2016-07-13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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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을 준 한마디
- 언젠가 필자의 아내가 막 싹을 틔운 가는 잎줄기 하나를 물컵에 담아 식탁 위에 두고 애지중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도 특별한 것도 아닌데 식탁위에 까지 올려놓을 필요가 뭐 있느냐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내는 특별하다는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소중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세탁기 속에는 옷에 묻은 먼지 등을 거르는 거름망이 있는데 그게
- 2016-07-12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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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콕 여행기 (1)자유여행 ‘방콕’에서 방콕으로!
- 애초에 엄두를 낼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일찌감치 올 여름 행선지는 ‘방콕’으로 정하고 서울에서 버틸 작정이었다. 그런데 딸애가 이미 자유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여행에 필자를 끼워준다니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이다. 그런데 자유여행은 돈이 많이 든다는 고정관념으로 살짝 걱정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리저리 절약할 구석을 찾아본다면 길이 없는 것은 아
- 2016-07-12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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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조사 공지를 없애자
- 새로운 단체를 만들면 반드시 거론되는 것이 경조사 문제이다. 경조사를 중시하는 사람도 있고, 임박한 경조사에 대비해서 일부러 모임에 나오는 사람도 있다. 반면에 경조사 때문에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도 많다. 필자의 경우에도 많을 때는 한 달에 경조사 비용으로 연금 수입의 절반이 날아가는 경우도 있다. 결혼식 성수기인 봄 가을철이면 예외 없이 청첩장이 날아든
- 2016-07-12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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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집 제사 변천사
- 어렸을 적 제사는 꽤 부산했다. 필자 집이 장손으로 친척들이 다 모였었기 때문이다. 제사는 하필이면 한밤중에 지냈으므로 그냥 안 자고 기다리거나 자다가 깨우면 일어나서 제사에 참여해야 했다. 대부분 잠들었다가 한 밤중에 일어났다. 온수도 없을 때였으므로 찬 물에 세수하는 것이 싫었다. 다만, 내가 좋아하는 쇠고기 산적을 먹을 수 있어 좋았다. 그런데 쇠고기
- 2016-07-12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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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다시 파트너를 잃고
- 올해 첫 장애인댄스스포츠 대회에 선수로 참가하지 못하고 행정요원 역할만 했다. 오전엔 휠체어댄스 위주의 경기가 있었고 오후에는 일반인 대회가 열렸다. 익숙한 음악소리가 들릴 때마다 몸은 들썩이는데 그냥 앉아서 남들 춤추는 거나 구경하자니 못 할 일이었다. 작년 11월까지만 해도 전국체전에서 동메달을 땄으니 그런대로 선수 생활을 유지는 한 셈이다. 그러나
- 2016-07-12 15: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