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서기는 인간이 사는 동안 꼭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다. 마치 나비가 되기 위해 애벌레가 번데기의 변태 과정을 거치는 것과 유사하다. 가장 안정적인 홀로서기는 오랜 기간 개체의 성장을 기반으로 이뤄지는데, 예를 들면 아이는 부모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20년 가까이 준비한다. 부모의 품 안에서 경험을 쌓고, 신체적·심리적·사회적으로 자신을 확장시켜 결국 부모로부터 독립을 이뤄낸다. 그러나 노년기의 홀로서기는 좀 다르다. 체력과 건강을 잃고, 퇴직 후 직업과 수입원을 잃거나, 언젠가는 배우자·친구들을 떠나보낸다. 노년의 홀로서기는 ‘성장’이 아닌 갑작스런 ‘상실’을 기반으로 하기에 액티브 시니어라는 역동적인 단어를 붙인다 할지라도, 근본적으로 마음을 짓누르는 무거움을 지우기 어렵다.
그렇기에 우리는 흔히 노년기의 홀로서기를 준비할 때 자신의 마음속에 바라는 ‘결과’를 먼저 떠올린다. 경제적으로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고, 신체적 건강을 통해 독립적인 생활을 유지하며, 주위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만드는 것 등을 말이다. 이를 위해 재정적으로 철저하게 은퇴 설계도 하고, 자신에게 맞는 취미 생활도 찾으며, 여러 질병이 보장되는 보험도 마련한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그런 것들을 철저히 준비했다 하더라도 마음은 여전히 괴롭고, 자식들 문제, 돈 문제, 주위 사람들과의 갈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오히려 건강에 더욱 집착하고, 경제적으로 부족한 자신을 한탄하거나 질투에 휩싸여 결핍을 경험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제2의 인생을 찾아가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내면의 상실과 결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런 괴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는 우리가 노년의 홀로서기에 앞서 어떤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지와 동일한 문제다. 잭 니콜슨 주연의 영화 ‘어바웃 슈미트’의 주인공도 바로 이런 상황을 맞닥뜨린다.
평생을 몸담았던 보험회사에서 66세에 정년퇴직을 맞이한 슈미트. 아내는 이제 주름 가득한 할머니가 되어 사사건건 자신을 간섭하고, 딸과의 관계는 냉랭하다. 하루에 77센트를 후원하는 탄자니아 꼬마 엔두구에게 편지 보내는 것 이외에는 일상의 공허함을 느끼던 슈미트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아내의 죽음과 이후 알게 된 그녀의 외도를 맞닥뜨린다. 설상가상 딸은 물침대 외판원인 ‘놈팡이 같은 녀석’과 결혼하겠다고 선언한다. 아내도, 딸도, 친구도, 직장도 어느 날 갑자기 모두 사라져버린 슈미트는 마지막 남은 희망인 딸의 결혼식을 방해하는 데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진다. 좌충우돌 부딪치는 그의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결국 딸은 놈팡이와 행복하게 결혼식을 올린다. 그동안 당연한 듯 슈미트의 삶에 자리 잡고 있던 결과물들이 은퇴 이후 노년기의 문 앞에서 모래성처럼 무너져내렸다. 어쩔 수 없이 결혼식 축사 후 화장실에서 홀로 터뜨리는 그의 울음은 그렇기에 더욱 애잔하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되돌릴 수 없는 노년의 상실이라는 단단한 벽 앞에 무릎 꿇고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눈물에는 좌절과 고통, 깊은 외로움만 담겨 있지 않다. 만약 이런 것들만 남았다면, 그는 축사는커녕 결혼식을 박차고 나가 딸의 비극적인 미래를 냉소적으로 곱씹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동안 살아왔던 슈미트의 방식대로 말이다. 그러나 그는 울고 있었다. 이는 자신의 삶에서 노년의 상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이요, 그렇기에 자신을 위한 애도의 눈물이기도 하다. 비록 스스로를 실패자라 생각하지만, 그는 상실에 대한 애도 과정을 거쳤기에 이제 홀로서기를 할 준비를 마쳤다. 그 증거로 슈미트는 엔두구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에서 자신의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난 무엇을 달라지게 한 거지? 나 때문에 이 세상이 무엇이 더 좋아진 거지?”
슈미트를 지켜보면서 우리는 노년의 홀로서기는 상실을 ‘무엇으로’ 채울지 고민하기 전에, 나이 듦에 따라 잃게 되는 것들을 ‘어떻게’ 떠나보낼지에 대한 애도(Breavement)에서 시작된다는 걸 알게 된다. 상실로 시작되는 노년기를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은 통합(Ego Integrity)을 이뤄내지 못하면 현상 유지도 아닌 절망(Despair)이 일어나는 시기라 설명했다. 그가 이야기한 통합이란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질문을 던지며, 자신의 생에 그래야만 했던 것들,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었던 일이나 실수했던 것들을 받아들이고 수용, 통합하려는 노력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스스로 잘 살아냈다는 느낌으로 다시 새로운 출발점에 서는 기회를 얻게 된다.
노년의 홀로서기는 과거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의해서만 결정되지 않는다. 물론 자기중심적으로 살거나 고독한 삶이었다면 슈미트처럼 좀 더 시행착오를 겪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노년의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누구나 마땅히 이 통과의례를 거치는 동안 떠나보내야 할 것들의 의미를 되새기며, 새로 맞이할 것들에 대한 채비를 할 것이다. 노년기가 삶의 종점이 아닌 또 다른 제2의 인생을 위한 홀로서기를 준비하는 과정임을 이해한다면, 상실의 고통을 겸허히 견뎌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이는 사춘기에서 경험하는 혼란과 방황처럼 또 다른 의미의 ‘늦깎이 성장통’인 셈이다. 이제 슈미트처럼 좌충우돌 부딪쳐갈 당신에게 격려와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공기를 통해 코로 전달되는 숱한 냄새는 우리 일상에 은근하면서도 강렬한 영향을 미친다. 보고, 듣고, 맛보는 것처럼 직접적인 확인이 어렵지만 감정의 변화는 물론 어떤 대상에 대한 긍정 혹은 부정 등의 인식을 심어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무형의 존재인 향기가 상상력을 자극하고 고급스러움과 품격을 높여주는 소재로 적극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생활과 점점 더 밀접해지고 있는 향기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한다.
도움말 최아름 ㈜아이센트 대표
언제부턴가 자주 가는 백화점 혹은 극장 등에 들어서면 익숙해진 향기에 이끌린다. 세련된 장식이 된 호텔, 전시관, 박물관을 비롯한 각종 서비스 시설은 마치 ‘패션의 완성은 향기’라는 말이 생각날 정도로 고유의 향을 간직하고 있다. 향기로 누군가를 기억하듯 공간 또한 인식하게 되는 것. 이를 일컬어 ‘향기 마케팅’이라고 부른다. 특정한 서비스 공간이나 상품에 가장 잘 어울리는 향기를 발산해 이용자가 향기와 함께 훗날에도 기억할 수 있게 하는 전략이다.
향기 마케팅이 각광받는 이유
1990년대를 전후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향기와 구매 욕구의 상관관계를 입증해왔다. 향기 마케팅 회사 ‘에어아로마(air-aroma.com)’ 웹사이트에는 향기가 미치는 영향과 중요성을 쉽게 설명해놓았다. 향기는 소비자의 지출을 늘리고 장기적인 상품가치를 높이는 데 효과적일 뿐만 아니라 소비자와 보다 깊은 감성 교류로 인해 이용 만족도 또한 높다고 한다. 미국의 후각연구소(Sense of Smell Institute)의 의견에 따르면, 인간의 오감 중 후각이 가장 민감하며 하루 중 감정의 75%가 후각의 의해 결정된다. 인간은 대략 1만 개 정도의 냄새를 인식하며, 인상이 강하게 남아 있는 냄새는 1년이 지난 후에도 65%는 정확하게 기억해낸다. 반면, 시각적 이미지는 50% 정도만 되살아나고 기억의 한계는 3개월 정도라 한다. 후각으로 기억되는 잔상이 길다는 연구 결과에 주목해 산업적 접근을 시도한 분야가 향기 마케팅이라는 설명이다.
‘빵 굽는 냄새’가 실제가 아닐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도 향기를 이용한 마케팅이 있지 않을까 하고 오래된 자료를 찾아봤더니 1997년 4월 ‘베이커리’라는 매거진에서 소개한 ‘빵 굽는 냄새를 향기로 구현한 사례’가 있었다. 당시 베이커리 프랜차이즈 업체가 국내 최초의 향기 관리 업체인 (주)에코미스트코리아(현 (주)바이오미스트테크놀로지)에 ‘빵 굽는 냄새’를 만들어 달라고 의뢰했던 것. 빵 굽는 냄새가 고객들에게 좋은 자극을 주는데 그렇다고 하루 종일 빵을 구울 수는 없기에 빵을 굽지 않는 시간에도 ‘빵 굽는 냄새’를 지속적으로 풍길 수 있도록 향기를 만들어 달라는 요구였다. 자료를 보니 (주)에코미스트코리아는 마늘빵 향을 개발했고, 소량으로도 25평 규모의 매장에서 하루 종일 고소한 빵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것을 기대한다며 기사가 마무리됐다. 실제 빵집에 마늘빵 향을 설치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주)에코미스트코리아 최영신 대표는 미니 인터뷰를 통해 “후각은 시각이나 청각에 비해 과거의 기억이나 추억을 되살리는 데 더 큰 효과가 있다”며 “이는 특정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연상 작용으로 이어져 구매 충동을 일으킨다”고 향기 마케팅에 관련한 의미 있는 말을 남겼다.
공간 센팅 (ambient scenting)
매일매일 변화를 맞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현대사회 속에서 향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는 뭘까. 이에 대해 글로벌 향기 마케팅 회사 (주)아이센트의 최아름 대표는 “우리 사회가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해보이지만 이면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가 연결되고 감정적인 자극을 받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풀이했다. 특히 요즘은 쇼핑이나 영화 관람을 온라인으로 해결하는 일이 많다 보니 소비자의 방문이 필수인 서비스 공간을 훨씬 더 기억에 남게 하려고 감정적 연결고리를 향기에서 찾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최 대표는 이러한 마케팅을, 공간에 향기를 머무르게 하는 ‘공간 센팅 (ambient scenting)’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소비자가 대상에 몰입하고 기억에 남을 수 있는 경험을 만들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물론 향기 마케팅은 소비자가 해당 공간에 머물면서 다양한 시설을 이용하고 소비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주목적이다. 그래서 다른 마케팅보다 따뜻한 감정과 신뢰를 주는 것을 더 우선시하고 있다.
환경 향수로 세상을 이롭게
하지만 향기 마케팅이 꼭 소비자의 지갑을 여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2016년,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와 그의 아내가 만든 ‘빌&멜린다 게이츠재단’은 세계 최대 향료 회사 중 하나인 피르메니히에 의뢰해 화장실 악취를 꽃향기로 바꿔주는 ‘화장실 향수’를 개발해 개발도상국 화장실 개선 사업에 힘쓴 바 있다. 또 화장실이 부족해 이로 인한 질병에 노출된 아이와 노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인도와 아프리카 등지에도 이 향수를 제공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향기 마케팅 회사 아이센트 또한 공기 중에 떠다니는 체취, 화장실 냄새 등과 같은 악취를 효과적으로 중화해주는 환경 향수를 개발했다. 이 향수는 특허받은 성분으로 만들어 상쾌하고 기분 좋은 환경으로 바꿔준다. 시니어가 많이 드나드는 공동 시설의 환경 개선에도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최 대표는 언급했다. “시니어가 활동할 때 좋은 향기는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며 “오렌지 향 같은 시트러스 노트 계열의 향은 우울증 감소에 도움이 되며 초콜릿, 바닐라처럼 달콤한 향은 식욕을 돋우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한 연구에 의해 밝혀졌다”고 덧붙여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