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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촌을 풍요롭게 만드는 새로운 힌트 ‘관계인구’
- “지방에 집 한 채 지어 텃밭 가꾸며 맑은 공기 마시는 삶 좋지. 문화생활도 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고. 그런데 이제 100살까지 산다는데 지역에서는 어떻게 먹고사나?” 지방 소멸이 코앞인 시대, 그럼에도 지역에서 살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 ‘지역에서 먹고사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관계인구’라는 말이 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때 자원봉사가 끝난 후에도 지역을 오가는 사람들을 관계인구라고 지칭했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2018년에 이 단어를 공식 채택했다. 지역 주민이나 뜨내기 관광객이 아니라, 관심 갖고 지역 상품을 계속 구매하고, 자주 방문하며, 기꺼이 자원봉사를 하거나, 아예 지역과 도시에 하나씩 두 개의 거점을 두고 생활하는(일본에서는 더블 로컬이라고 부른다) 등 지역에 도움 되는 활동을 하면서 여러 방면으로 ‘관계’하는 사람들이 관계인구다. 관계인구사업을 전개한 지 5년이 지난 지금, 일본 전체 지자체의 65%가 관계인구 늘리기 사업을 시행하여 전국의 관계인구는 총 1800만 명에 이른다. 지역 정부는 지역 생활과 사람들을 소개하며 지역의 매력을 끌어내어 ‘나도 한번 가보고 싶다. 오래 그 안에서 삶을 느끼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만드는, 일종의 ‘지역 매력 표출 대작전’을 전개한다. 일상을 보여주고 ‘여기에 오면 당신도 할 일이 있고 꽤 살 만하다’고 알리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2023년 1월 1일부터 정부가 ‘생활인구’라는 개념을 법으로 제시했다. 각종 혜택도 쏟아진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이렇게까지 준다고?’ 할 만큼 지원사업을 꽤 많이 찾을 수 있다. 조건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일정 기간 집도 주고 체류비도 준다. 위기를 관계로 극복하자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지역이 ‘위기’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적당히 많은 사람, 인프라, 밥벌이 그리고 괜찮은 문화가 있다면 굳이 위기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25년 전 IMF 위기, 15년 전 글로벌 경제위기로 휘청거리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3년간의 팬데믹 위기가 빙하기처럼 사회를 얼어붙게 했다. 그 안에서 갑질, 번아웃, 공황장애를 외치는 피곤하고 절망적인 목소리가 용광로처럼 끓고 있다. 비수도권 지역도 마찬가지다. 중앙정부가 막대한 지원금을 뿌린들 그 돈은 흉물스러운 거대한 건축물로 바뀐다. 석양이 물드는 지평선을 여유 있게 감상하며 오늘의 수확을 감사하고, 제철 음식으로 따뜻하게 차린 식탁에서 다정한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하며 행복하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은 꿈에 불과하다. 모두 바쁘고 모두 피곤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지역에는 오가는 사람들이 많다. 과거에는 대형버스를 타고 지역의 핫플을 방문하고, 소셜미디어에 올릴 사진을 적당히 찍고, 유명 식당에서 맛있는 것을 먹고 오는 관광이 대부분이었다면, 이제는 한달살기처럼 오래 머물기도 하고, 워케이션처럼 일하면서 쉬기도 하고, 창업도 한다. 하루하루 살아내기 바쁜 직장인들에게는 주말이나 휴가를 이용해도 언감생심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꽤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지역을 오가며 다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 지역이 무조건 끌렸어요”, “여기 사람들은 개방적이고 너무 좋아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관계인구가 많이 만들어질 것만 같은 희망적인 의견들이다. 얼마나 지역을 좋아하면 ‘리틀 포레스트’라는 영화까지 나왔겠는가. 사회적 거리가 관계로 변하려면 대부분의 도시인들은 여전히 지역과의 끈끈한 관계보다 적당한 ‘사회적 거리’를 원한다. 전국을 철도 중심으로 연결하다 보니 대부분 지역은 긴 시간 동안 자차 운전으로 가야 한다. 병원 없는 곳이 많아서 ‘이 지역에서 아프면 그냥 죽는 거라고 생각한다’는 무시무시한 말도 있다. 쇼핑몰, 갤러리를 가려면 차 타고 인근 도시로 가야만 한다. ‘문 닫는다’는 말이 상가뿐 아니라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도 들린다. 한달살기 하려고 호기롭게 시골에 왔는데 벌레 보고 기겁해서 ‘나는 간다’는 말을 톡으로만 툭 던지고 야반도주하듯 하루 만에 사라져 주최 측이 황당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여유 있는 전원생활이 그리워 전원주택을 지어도 지역 주민이 ‘어서 옵쇼’ 하고 환대하는 것은 아니므로 ‘시골 사람들은 배타적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각종 기회비용과 심리적 부담 때문에 관계 맺기 힘들다는 일본 정부의 조사 결과도 있다. 현실과 관계 형성 사이에는 큰 장애물이 강물처럼 흐르고 있다. 그러나 누군가는 재빠르게 더 나은 인생을 설계하며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도전한다. 삶의 여유와 질을 가늠해보고 그 기회가 지역에 있다고 ‘착안’한다. 도시에서보다 더 풍부한 경험을 하고 재미있는 사람도 많이 만난다며 부지런히 집을 나선다. 지역도 더 좋은 환경을 함께 만들자며 외지인에게 기꺼이 마음을 열고, 때로는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 지역의 좋은 공기를 사라”며 호기롭게 외치기도 한다. 언제나 변화 가능성은 있다. 결국 모든 것은 선택이다. 그 선택을 좀 더 확실하게 성공시키려면 기본적인 인프라와 교통 문제를 정부가 빨리 해결하는 일만 남았다.
- 2023-04-18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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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사회 청년기는 확장 중… ‘늙음’ 아니라 ‘성장’에 방점 찍어야
- 수치나 담론에 경험담이 붙으면 생생한 맥락이 생긴다. 그래서 맥락을 만들어줄 두 명의 ‘찐’ 후기청년을 초대해 대화를 나눴다. 후기청년이라는 공통분모 덕분인지 나이와 성별, 가구 형태가 전부 달랐음에도 대화가 수월하게 이어졌다. 대담 참여자 소개 유지은(45) 경북대 수의학과 4학년. 15년의 브랜드 컨설팅 경력을 뒤로하고 마흔에 새 공부를 시작해, 97학번에서 18학번이 되어 Z세대와 공부 중. 마케터로서 시니어의 욕망을 분석한 책 ‘뉴그레이’를 공동 집필했다. 미혼이다. 조성일(53)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 건강한 조직 문화를 조성하려면 각기 다른 세대의 구성원 사이 관계에 집중해야 한다고 믿는다. 연구 보고서 ‘낀 세대(X세대)의 자존감을 높이자’ 등을 집필했다. 결혼해 자녀가 있다. 진행자 신중년, 액티브 시니어, 낀 세대 등 새로운 중년을 하나의 용어로 아우르기 위한 시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당사자로서 각 용어들을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조성일(이하 조) 중장년이 제일 적절한 것 같습니다. 세대 갈등을 말할 때 종종 언급되는 낀 세대의 경우 인류 최초의 세대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내가 낀 세대’라고 주장했을 확률이 높아서, 딱 우리 세대를 정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유지은(이하 유) 제게 낀 세대라는 용어는 이중적이에요. 위로는 베이비부머, 아래로는 Z세대 사이에 낀 우리의 애환을 달래주는 의미가 담겨 있죠. 하지만 한편으론 ‘우리 세대는 다른 세대에 빗대야만 정의하고 설명할 수 있는 세대인가’ 생각하게 해요. 실버 세대나 액티브 시니어, 중장년에는 의도치 않게 노인이나 노화에 대한 기존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남아 있어서인지 조금 기피하게 되고요. 진행자 그렇다면 후기청년은 어떻게 평가하세요? 유 제일 적절하다고 생각해요. 아직 청년이라고 불릴 수 있다니 감사한데요. 조 동감입니다. 다만 청년이란 단어가 젊은 남성만을 의미할 때도 있기 때문에 조금 조심스럽네요. 진행자 아,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이에요. 조 성별을 구분하는 용어가 계속 쓰이면 ‘차별이나 소외감을 조장할 수도 있다’는 문제 제기가 가능하니까요. 어렵지만 언론이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죠. 진행자 그렇네요. 세대 구분이 다시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시나요? 유 네. 구체적으로는 청년기가 길어져야 한다고 봐요. 저만 해도 옷 입는 스타일, 친구들과 만나서 노는 방식이 97학번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기대수명이 길어지니 전반적으로 돈을 벌지 않고 공부하는 시기가 더 길어지고, 가정을 꾸리는 시기도 늦어졌죠. ‘청년’과 같은 건강 상태를 누리는 시기 역시 길어졌고요. 조 저도 청년기가 길어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세대’라는 단어는 어린아이가 성장해 부모 일을 계승할 때까지의 기간을 의미하죠. 이전에는 20대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는데, 이제 30대나 40대가 돼야 결혼하는 경우가 흔하잖아요. 유 그러네요. 조 오히려 세대가 짧아질 수도 있겠죠. 세대는 나이로만 나눌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니까요. IMF나 기술의 발전처럼 대대적인 사건이나 하나의 흐름을 같이 겪은 사람들은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 진행자 그런 의미에서 대학생 때 IMF를 겪었던 두 분은 같은 세대로 묶는 게 자연스럽겠네요. 유 그렇죠. 제가 대학교 1학년 때 IMF가 터졌는데, 저와 동기들만 해도 캠퍼스 생활에 대한 로망이 컸어요. 그런데 바로 한 살 밑의 후배들부터는 경제위기 속에서 대학을 입학해서인지 1학년 때부터 취업 준비를 하더라고요. 공통 경험에 따라 세대를 구분하는 것도 좋은 방식인 것 같습니다. 진행자 일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100세 시대를 넘어 120세 시대를 바라보는 요즘, 적정 정년 연령은 몇 세라고 생각하세요? 유 조 70세요. 조 일본에서는 이미 70세가 됐고, 미국이나 서유럽 등은 정년이 없어요. 원하면 죽을 때까지 일할 수 있는 전문직처럼요. 노동시장이 유연하기 때문인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죠. 그러니 생계를 걱정하는 근로자들이 정년을 연장해달라고 요구하는 거고요. 진행자 두 분은 몇 세까지 일하고 싶으세요? 유 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한 나이 상관없이 계속하고 싶어요. 조 전 60세나 65세? 사실 65세도 넘기고 싶지 않아요. 남이 주는 월급 받으며 해야 하는 일이라면요. 유 남이 시키는 일을 하는 월급쟁이 말고 개인사업자, 프리랜서로 내가 한 만큼 돈을 버는 일을 한다면 일단 마음가짐부터 다르겠죠. 저는 15년 정도 브랜드 컨설팅 일을 하다가 마흔에 회사를 그만뒀는데, 일은 재밌지만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저는 누군가를 돕는 데에서 보람을 느끼는 사람인데 그런 의미를 찾지 못한 거죠. 그러다 우연히 수의사라는 새로운 진로를 찾았고, 동물을 돕고 사람도 도울 수 있는 점이 좋아서 기꺼이 도전하게 됐어요. 수의사 일은 평생 하지 않을까요? 조 저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하는 만큼 돈을 버는 형태의 일에는 기한을 두지 않으려고요. 올해로 정년까지 7년 남았기 때문에 요즘은 회사를 나가면 뭘 하며 살지 고민하고 있어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기보다 연구 경력을 살려 책을 내고 강연하는 프리랜서로서의 삶이 좋지 않을까 싶네요. 진행자 하고 싶은 일을 오래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위한 재투자가 필수겠어요. 유 그렇죠. 직장 그만두고 대학 다니면서 시간을 쓰고 학비를 내는 것도 재투자의 한 방식이고요. 조 저는 최근에 30만 원짜리 만년필을 셀프로 선물했습니다. 수고한 내게 보상을 주고 싶을 때 좋아하는 만년필이나 펜 같은 문구류를 사거든요. 또 앞으로 책을 내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초고 작업을 끝내면 5년 쓴 휴대폰을 신형으로 바꿀 생각이에요. 동기부여를 위한 일종의 당근이죠.(웃음) 유 저도 비슷한 의미로 마음대로 커스텀이 가능한 아동용 청진기를 10만 원에 샀어요. 제가 존경하는 수의사가 사용하는 것을 보고 따라 산 건데, 그분의 마음가짐을 본받고 공부도 실습도 열심히 해보자는 다짐의 일환이랄까요.(웃음) 진행자 두 분은 바쁘게 사느라 나이 드는 걸 느낄 새도 없겠어요. 유 그럴 리가요. 이제는 공부하려고 오래 앉아 있으면 몸이 너무 힘들고, 아침에는 분명 잘 보였는데 밤이 되면 눈이 침침하고 글자가 잘 안 보이더라고요. 처음에는 우울해하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이제는 어쩔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영양제 한 통 더 사는 걸로 넘기고 있어요. 달리 어떻게 하겠어요.(웃음) 조 맞아요. 그래서 최대한 걸으려고 해요. 걸으니까 기분이 환기되고 아이디어도 잘 떠올라서 좋더라고요. 유 저는 운동 좀 해보려고 20대인 학교 친구들과 함께 ‘방송댄스 프로그램’ 한 달치를 끊은 적도 있어요. 그런데 제 몸이 너무 맘대로 안 따라주더라고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하는 생각에 우울해하다가 결국 남은 강습권을 날렸죠. 하지만 이건 나이 때문이 아니잖아요. 세상에 춤 잘 추는 나이 많은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 그냥 개인의 능력치나 성향이 달라서인데, 나이 탓하는 게 제일 쉬우니까 나도 모르게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나이 핑계를 대면서 안주하려 하더라고요. 이제는 의식적으로 안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나이가 들어도 ‘성장한다’는 감각을 유지하는 게 더욱 중요하니까요. 진행자 조 연구원님도 같은 생각이신가요? 조 전적으로 동의해요. 제 인생의 목표도 ‘성장’이에요. 성장에 끝이 있는 건 아니잖아요. 유 시간은 동일하게 흐르는데, 왜 젊은 사람은 ‘성장’하고 나이 든 사람은 ‘늙는다’고 말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10년 전보다 지금이 제 인생의 한창때 같아요. 진행자 왜요? 유 그때는 회사에 소속돼 있었으니 안정적이긴 해도 성장한다고 느끼진 못했거든요. 예전에는 수동적으로 일했지만 지금은 안 그래요. 하나를 배워도 나중에 개인 병원을 차리면 어떻게 써먹을지 고민하고 계획을 짜게 되더라고요. 지금의 경험이 나의 미래를 완성해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경험 하나하나가 소중하게 느껴져서 더욱 집중할 수 있고요. 조 매일 두 시간씩 바이올린을 연습하는 90세의 바이올리니스트에게 누군가 왜 매일 연습을 하냐고 물었더니 ‘지금도 연습하면 내가 조금 더 나아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라고 답했대요. 저는 이 이야기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이 바이올리니스트처럼 같은 일을 계속하고, 꾸준히 고민하고 노력하는 삶을 살려고 해요. 나 역시 조금씩, 더디더라도 성장할 테니까요. 매일을 충실히 사는 것이 앞으로의 목표입니다.
- 2023-04-07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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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세 시대, 소비력 크고 활동적인 새로운 중년 ‘후기청년’ 등장
- 영포티, 신중년, 낀 세대, 꽃중년, 디지로그 등으로 불리는 40·50세대는 곧 액티브 시니어, 뉴 그레이 대열에 들어간다. ‘시니어’라 불리길 거부하는 세대이자 새로운 50·60세대를 만들어갈 이들을 ‘후기청년’으로 새롭게 정의하고, 어떤 특징을 가지는지 알아봤다. 120세 시대,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청년기와 중장년기가 길어지고 있다. 인구 분포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40·50세대는 청년보다 성숙된 경험을 가지고 있으면서 중장년이라기에는 청년처럼 젊게 산다. 전문가들은 더 이상 나이가 생애주기를 결정하는 기준이 아니며, 과거의 중장년과 지금의 중장년은 다른 격동기를 보내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중장년 꼬리표 떼는 ‘후기청년’ 2022년 행정안전부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는 전체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연령대별로는 30대 이하 인구가 줄어드는 반면 40대 이상 인구는 늘어나고 있다. 허리를 담당하는 40대는 807만 명, 50대는 861만 명으로 가장 많은 인구수인 약 32%를 차지한다. 이 중에서도 일명 X세대라 불리던 1970년대생(만 44∼53세)이 중심에 있다. ‘4050 후기청년’을 쓴 정책학자 송은주 박사는 전 세계의 X세대가 중장년으로 편입되면서 ‘세대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고 분석한다. 과거에 ‘위기’라는 말로 수식되던 중년의 이미지에 머무르지 않고 ‘후기청년’으로 새로운 생애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 베이비붐 세대가 버티는 것을 답으로 여겼다면, 지금의 40·50세대인 X세대는 버티는 것으로 미래를 그릴 수 없다는 걸 안다. X세대는 처음으로 숫자를 벗어나 가치관으로 정의된 세대다. ‘기존의 관습이나 질서를 거부하는 세대’이자 신(新)인류이며 낀 세대라고 불렸다. 경제적 풍요 속에 성장해 ‘나’라는 개성을 표현하기 시작한 세대이기도 하다. 사춘기 시절 워크맨으로 음악을 즐긴 첫 세대이자 삐삐부터 스마트폰까지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모두 경험한 세대다. 그런가 하면 MZ세대의 문화를 이끄는 트렌드 리더 역할도 한다. 1990년대 흘러넘치던 문화를 향유했던 이들이 지금은 문화 생산자 역할을 한다. 보이그룹 BTS를 프로듀싱한 방시혁 하이브 의장, JYP 엔터테인먼트의 박진영 프로듀서,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 ‘더글로리’ 김은숙 작가, ‘킹덤’ 김은희 작가, 나영석·김태호 PD,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 신원호 감독 등 MZ세대가 열광하는 콘텐츠의 중심에는 X세대가 있다. 송은주 박사는 “(지금의 40·50세대는) 100세 시대를 맞이하는 첫 주자이면서 역사상 가장 많은 교육을 받은 세대로서 많은 경험과 변화를 만들어내는 역동적인 세대다. 평균수명이 60대이던 시절에 나온 ‘중년의 위기’라는 사회적 편견을 깨고, ‘성장’이라는 청년의 특성과 ‘성숙’이라는 중년의 특성을 조화롭게 버무린다. 그저 길어진 인생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확장된 청년기를 잘 후숙된 과일처럼 영양가 있게 보낸다”면서 이들을 중년이 아니라 ‘후기청년’이라는 새로운 범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념 파괴하는 X세대 이렇게 40·50세대가 중장년의 꼬리표를 떼는 동안, 120세 시대에 맞게 생애주기도 다시 설계되고 있다. 나이를 기준으로 보자면 120세 시대는 60세, 100세 시대는 50세가 중년일 것이다. 그렇다면 40대, 더 나아가 50대까지도 청년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고 60∼70대는 중장년으로 볼 수 있다. 이런 흐름을 반영하듯 세계 국가들은 노인의 법적 나이를 65세에서 70세로 올리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 더불어 청년기본법에서는 19세 이상 34세 이하를 청년이라 규정하고 있는데,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자체 법령을 마련해 40대까지도 청년이라 정의하고 있다. 기대수명에 맞춰 청년기, 중장년기, 노년기가 재편되고 있다는 뜻이다. 행정적·법적으로는 숫자를 기준으로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더 이상 나이로 생애주기를 나눌 수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송은주 박사는 “관련 정책을 연구하며 ‘4050 후기청년’ 책을 쓰던 2017년에 이미 세계에서는 ‘연령 파괴 시대’라는 개념이 나오고 있었다. 기존의 통념과 다르게 40대에 결혼하고, 50대에 대학을 다니고, 60대에 배낭여행을 가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결혼 적령기, 출산 적령기, 퇴직 적령기와 같은 인생의 통과의례가 특정 나이에 적용되지 않고 다양해지고 있으며, ‘어떤 나이에 무엇을 해야 한다’는 관념이 파괴되고 있다. 사람들이 자신을 얼마나 젊게 느끼는지를 결정하던 중요한 요인으로 더 이상 나이가 고려되지 않는 시대가 왔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기존의 관습을 거부하던 X세대의 특성과도 맞물린다. 캐나다 앨버타대학교에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의 행복도는 20대 초반부터 서서히 올라가 중년기에 만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행복도는 결혼할 때와 건강해졌을 때 높아졌고, 직장을 잃었을 때 낮아졌다. 삶의 행복도를 결정하는 요인이 나이가 아니라고 해석할 수 있다. 개인별로 노화의 정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송 박사는 “과거에는 유전자가 노화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근 많은 연구들이 라이프스타일과 환경이 노화에 영향을 준다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생각도 노화에 영향을 준다. ‘나는 나이 들었어’, ‘나이 먹는 게 죄야’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수명에 차이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나이는 심리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비슷한 연령대에 비슷한 이벤트를 겪었기 때문에 청년기, 중장년기, 노년기라는 생애주기를 나눌 때 나이를 기준으로 삼았지만, 라이프스타일이 다양해지면서 사람마다 이벤트를 겪는 시기가 달라졌다. 이의훈 카이스트 경영대학 기술경영학부 교수는 “40∼50대는 은퇴, 이혼, 사별, 자녀의 독립 등으로 인생에 이벤트가 많은 시기”라면서 “사람마다 에이징(나이 듦)이 개입되는 시기가 다르기 때문에 신체적·심리적·사회적 에이징은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이 시기에 앞으로의 삶을 고민하면서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균형을 잡고자 하는 시도를 시작하게 된다. 이때 변화의 핵심은 ‘삶의 주도권이 나에게 온다는 것’이다. 40·50세대는 ‘남들이 볼 때 내가 누구여야 하는가’라는 사회적 메시지에 얽매이지 않고 ‘내가 볼 때 나는 누구인가’를 재정의하고 있다. 마치 사춘기 시절 ‘X세대’라고 불리길 거부했던 것처럼 말이다. IMF 함께 겪은 다양한 삶 후기청년의 시작을 알리는 4050세대는 IMF,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라는 공통적인 경험을 기반으로 X세대라는 특징을 보이지만, 동시에 개인별로 삶의 양상은 매우 다른 모습을 보인다. 이의훈 교수는 “코호트(집단)는 시간과 함께 흘러간다. 각 집단의 현재는 과거의 경험이 반영된 결과다. 인구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면서 프리미엄 소비를 하는 40·50세대가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시니어가 되는 것이다. 10년 뒤 고령화 시대의 소비는 결국 이 집단의 성향을 따라간다. 지금 MZ세대가 시간이 흐르면 다음 후기청년 세대로 편입되는 것과 같다. 차세대 후기청년에 대해 이해하고 싶다면 지금의 MZ세대를 연구해야 하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살아온 경험, 사회·경제적 위치, 신체 건강 정도, 자녀와의 관계, 학력, 배우자 여부 등 상황이 다양하기 때문에 오히려 다양성이 풍부해진다”며 “후기청년은 단순히 청년의 연장이라기보다 많은 면에서 청년보다 성숙한(Mature) 특징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송은주 박사도 지금의 40·50세대가 ‘다른 세대보다 풍성하고 규정되지 않은 다양한 행태를 보인다는 점’을 특징으로 꼽았다. 그는 “지금의 40·50세대에게는 메소력(MESO Force)이라는 특별한 에너지가 있다. 후기청년의 삶은 의미 있고(Meaningful), 흥미진진하며(Exciting), 특별한(Special), 기회(Opportunity)로 만들어갈 시기다. 40∼50대는 뭘 좀 아는 나이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지만 그에 맞추며 유연하게 살아갈 경험과 통찰이 있다”고 분석했다. 생의 이벤트가 많아 변화를 겪어내는 시기에 문화를 향유할 줄 알고 나 자신을 들여다볼 줄 안다는 X세대로서의 특징은 각자의 후기청년기를 만들어가기에 좋은 소스가 된다는 의미다. 이의훈 교수도 “40∼60세 집단은 나이가 들어가고는 있지만 여전히 활동적이고 건강하며 젊은 층과 큰 차이점이 없는 소비 행동을 보인다. 사회적으로 볼 때 소득이나 지위가 최고의 위치로 안정되어 있고, 고급·고가 제품의 대표적 소비자들이며, 레저·여행 등의 웰빙 소비를 지향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들도 핵심 소비자인 40·50세대의 이런 성향을 반영해 120세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후기청년의 등장을 알아챈 듯, 유통업계는 연일 ‘소비시장의 큰손’으로 40·50세대를 조명하고 있다. 그동안 청년·노년층에 비해 부족했던 중장년 지원 정책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서울시는 올해부터 전환기 중장년 집중지원 프로젝트 ‘다시 뛰는 중장년 서울런 40·50’ 일자리 정책을 시작했다. 문화체육관광부도 2023년을 ‘40·50 중장년 책의 해’로 정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독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송 박사는 “100세 시대는 인생 피벗(Pivot, 농구 경기에서 쓰이는 용어로, 상황에 맞춰 방향을 바꿔 기회를 만들어내는 것을 비유하는 말)의 시대다. 30대가 오히려 40대가 되는 것을 겁내는데, 40대에는 40대의 찬란한 인생이 있다. 40·50세대를 위한 정책이 있고 피벗을 뒷받침해줄 수 있다면 메소력을 더욱 발휘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도 이들을 위한 정책 마련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2023-04-03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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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가오는 보릿고개, 절약의 도움 얻으려면?
- 한국은행 금융시장동향 조사에서 지난해 7월 은행에 유입된 정기예금액은 31조 7000억 원으로 20년 만에 최대치였다. 같은 시기 투자자 예탁금은 55조 3463억 원으로 6개월 만에 12조 원이 줄었고(금융투자협회), 일평균 거래 대금은 13조 3172억 원으로 1년 전 액수의 절반에 그쳤다(한국거래소). 경기 침체가 지속되며 부동산·투자 시장은 얼어붙었고, 기업들은 역성장하며 일자리를 줄여나갔다. 물가는 오르고 소득은 정체되는 악순환에 사람들은 ‘절약’을 최선의 재테크 방법으로 삼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월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이 작년 11월에 내놓은 전망치(1.7%)를 밑돌 것이라 밝혔다. 코로나19 거리두기 완화로 펜트업 효과(억눌렸던 수요가 급속히 살아나는 현상)를 기대했으나, 역으로 수요는 점차 둔화되고 있다. 여기에 올해 금리 상승 영향으로(기준금리 3.5%로 전년 대비 0.25%p 인상) 잠시 회복세를 보이던 민간 소비도 꺾일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경기 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들이 채용을 줄이거나 구조조정에 나서며 서민들의 경제고통지수(일정 기간 소비자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을 합하고 소득증가율을 뺀 수치)는 증가할 전망이다. 경제불황과 물가 상승이 동시에 일어나는 스태그플레이션까지 우려되는 상황. 가장 안전한 자산 관리 비법으로 ‘절약’이 주목받는 이유다. 스마트 시니어의 절약법 ‘비소비’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은 저서 ‘라이프 트렌드 2023’를 통해 “지금까지는 소비와 플렉스가 욕망의 대상이자 과시의 수단이었다. 하지만 경제위기와 인플레이션, 소비 양극화 등으로 관심도가 변화하고 있다. 이제 비소비와 무지출 트렌드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선택하는 새로운 소비 취향이자 과시 수단”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플렉스’(Flex)란 돈이나 귀중품을 과시하는 행위를 이르는 신조어다. 책에서는 플렉스의 반대 개념인 ‘비소비’와 ‘무지출’을 주요 트렌드로 제시하며 절약의 한 해가 되리라 예측했다. 트렌드 도서 베스트셀러 ‘트렌드 코리아 2023’에서도 알뜰하게 소비하는 전략적 소비자를 뜻하는 ‘체리슈머’(Cherry-sumers)를 핵심 키워드로 꼽았다. 책을 펴낸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경기 침체에 따른 소비자들의 대처라는 시각에서 보면 체리슈머의 등장을 일시적인 변화로 바라볼 수 있다. 그러나 1인 가구가 증가하는 추세에서 생겨난 현명한 소비 관리 전략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경기가 좋아져도 계속 발전해나갈 추세적 변화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더 높다”며 절약 소비 유행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신한카드 빅데이터연구소는 2023년 소비 트렌드 중 하나로 ‘소비 디톡스의 시대’(Era of Consumption Detox)를 선정했다. 허리띠 졸라매기 식의 무조건적인 절약법보다는 플랫폼과 SNS, 앱 서비스 등을 활용한 스마트 소비가 대세가 되리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연구소 측은 이를 ‘신(新)자린고비’라 일컬으며 공동구매, 중고 거래처럼 타인과 자원 및 비용을 나누는 등 새로운 형태의 절약 생활을 예고했다. 스마트 소비의 확장은 젊은 세대보다 중장년층에서 더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2021년과 2022년(각 연도 1~9월 기준) 신한카드 이용 건수를 분석한 결과 ‘모바일 쿠폰 거래 플랫폼’ 이용이 183% 증가했는데, 연령별로 살펴보면 2030세대보다 4060세대에서 이용 건수 비중 변화가 더 크게 나타났다. 대표적인 모바일 쿠폰 거래 플랫폼은 ‘니콘내콘’, ‘기프티스타’, ‘기프티윈’ 등이 있다. 선물받은 모바일 쿠폰을 해당 플랫폼에서 현금으로 교환하거나, 타인이 올려놓은 쿠폰을 원가 대비 저렴하게 구매 가능하다. 이다혜 신한카드 빅데이터연구소 과장은 “과거 대비 4060세대의 디지털 기기 및 채널에 대한 친숙도가 높아지며 플랫폼을 활용한 쇼핑과 거래에 대한 거부감이 많이 줄었다”며 “요즘 시니어들은 비대면 소비, 모바일 결제 등에 대한 이해가 높고 습득도 빠른 편이다. 이에 따라 새로운 절약 플랫폼 이용도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B급 상품의 반란, 중장년 소비자도 긍정적 신한카드 빅데이터연구소 결제 데이터 분석 자료에서는 ‘유통기한 임박 상품’, ‘리퍼브 상품’ 등 이른바 ‘B급 상품’에 대한 상승세도 엿볼 수 있다. 유통기한 임박 식품몰의 이용 건수는 전년 대비 22% 올랐고, 이용 회원 수는 17% 늘었다. 전시됐거나 반품된 정상 상품이나 미세한 흠집이 있는 제품을 판매하는 리퍼브(리퍼비시) 전문 매장 이용도 증가했는데, 이 중 4060세대 이용률은 약 20% 상승했다(40대 22%, 50대·60대 19% 증가). 이다혜 과장은 “올해 연구소가 주목한 ‘소비 디톡스’는 절대적인 절약보다는 각종 서비스와 플랫폼을 활용해 같은 상품을 구매하더라도 최대한 저렴하게 구매하거나, 최선이 어렵다면 차선(B급 상품)을 찾는 형태”라며 “요즘 시니어의 경우 경제력도 높지만 문화·여가생활에 대한 욕구도 높기 때문에 소비를 줄일 영역에서는 각종 플랫폼, 디지털 채널을 활용해 소비 디톡스를 적극 실천하는 한편 본인의 가치 영역에서는 최대한 소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공동구매, 중고 및 리퍼브 소비 등의 절약 소비 방법이 중장년에게 긍정적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커머스 기업 ‘위메프’도 지난해 판매 데이터(1~11월)를 분석한 5가지 결산 키워드 중 하나로 ‘절약’을 꼽았다. 작년 대비 리퍼브 상품 판매는 두 배 이상(107%) 증가했고, 유통기한 임박 상품(127%) 수요도 급상승한 점에 주목한 것이다. 편의점 ‘이마트24’는 지난해 3월 마감 할인 서비스인 ‘라스트 오더’를 론칭했는데, 이용 건수가 매달 두 배씩 성장했을 정도다. ‘롯데마트’에 따르면 2022년 1~7월 동안 판매한 못난이 과일의 누적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80% 증가했다. 고물가 시대에 저렴한 B급 농산물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맛난이 과일’, ‘상생 과일’ 등으로 불리며 긍정적 이미지로 변화하는 중이다. 불황 속 궁여지책 ‘무지출 챌린지’ 노후에는? B급 상품에 대한 인식 변화는 절약에 대한 이미지 또한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음을 시사한다. 짠내 나고 궁상맞게 돈을 아끼는 모습보다는 절약을 유행처럼 즐기고 과시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무지출 챌린지’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 등을 통해 일정 기간 무지출에 성공한 것을 사진이나 글을 통해 인증하는 방식이다. 주로 가계부나 카드 고지서, 통장 출금 내역 등 자신의 소비를 스스럼없이 공유한다. 새해에도 경제불황이 예고되면서 한 해 목표를 무지출 챌린지로 삼거나 사람을 모아 일종의 캠페인처럼 동참하는 이들도 생겼다. 무지출 챌린지에 도전하는 이들은 주로 MZ세대다. 고금리 상황 속 청년 고용 한파가 겹치며 목돈 마련이나 대출금 상환 부담이 커진 탓으로 읽힌다. 벌지 못하는 상황에서 쓰지 않는 것이 최선의 경제활동이 된 셈이다. 암울한 경제 상황 속 궁여지책 같지만 ‘챌린지’라는 성격 덕분인지 기발한 절약 아이디어들을 나누며 즐겁게 도전을 이어가는 분위기다. 절약 콘텐츠나 트렌드에 관심 있는 중장년이라면 ‘나도 무지출 챌린지에 도전해볼까’라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 김용섭 소장은 ‘라이프 트렌드 2023’에서 “무지출 챌린지는 소비 자체를 중단하는 것이다. 절약이 아닌 소비 단절”이라며 “절약은 일상적이지만, 무지출은 이벤트에 가깝다. 장기간 무지출만 하다가는 인간관계에 위기가 올 수 있다. 관계 중심인 기성세대로서는 어렵지만, 느슨한 연대로 관계하는 2030세대라면 무지출을 좀 더 길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동철 심리학 박사 또한 “무지출 챌린지는 노후의 관계 축소뿐 아니라 인지력 감소 및 건강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소비 행위가 줄면 자연스레 활동성이 감소한다. 지출을 줄이려 반복적인 일상을 감행하다 보면 뇌 활성화가 덜 되고, 면역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가령 매일 집에서 나물이나 김치 같은 반찬만 드시면 영양 불균형이 올 수도 있다. 가끔은 외식도 하고 고기도 구워 드시라 권한다. 대신 절약을 생각한다면 조금 저렴한 고깃집을 찾는 정도의 노력을 들이면 된다. 해외여행은 못 가도 국내 여행이라도 자주 다니시라는 얘기다. 즉 극단적으로 외식, 여행, 쇼핑 등 항목 자체를 없애지 않고, 각 항목의 예산을 줄여가는 방식이 노후에는 유익하다”고 조언했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경기 침체가 이어지며 절약이 강조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중장년들도 연금, 부동산, 생활비 등 노후 자금이나 자신의 소비 방식을 돌아보고 점검할 필요는 있다. 다만 현재 유행하는 무지출 챌린지 같은 극단적 방식을 따르라 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중장년은 현재 유행하는 절약 생활에 누구보다 잘 적응할 세대다. 이미 IMF 등을 겪으며 허리띠를 졸라맨 경험이 있고, 물과 전기가 귀하던 시절을 살아 아끼는 생활이 몸에 밴 이들도 많다. 소비를 줄이면서도 자신만의 일상을 향유할 만한 노하우를 겸비했으리라 본다. 생계가 어렵지 않다면 극단적으로 지출을 줄이는 방식을 택하지 마라. 이미 터득한 절약 생활과 삶의 지혜로 현재의 불황도 잘 이겨낼 세대”라고 설명했다.
- 2023-02-01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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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금리 시대 현명한 노후 자금 관리법은?
- 새해에도 금리 인상은 계속될 전망이다. 빚이 없고 예적금 위주로 노후자금을 관리하는 은퇴자들에게 고금리 기조는 놓칠 수 없는 기회다. 그렇다고 무작정 고금리만 좇다가 돈을 맡겨놓은 금융회사가 망하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낭패다. 1997년 IMF 외환위기와 2011년 저축은행 영업정지 사태를 경험했던 은퇴자 강 씨가 고금리 시대에 현명한 노후자금 관리 방법을 알아보고자 상담을 신청해왔다. 더 높은 금리를 찾아서, 금리노마드 2022년 6월 말 803조 원이었던 수시입출식 저축성 예금 잔고가 불과 넉 달 만에 84조 원이 빠져 2022년 10월에 719조 원이 되었다. 반면에 2년 만기 정기예금 잔고는 2021년 11월 말 1271조 원에서 출발해 1년 만에 약 267조 원이 늘어 1538조원이 되었다. 이런 자금 이동의 가장 큰 원인은 단연 금리다. 2021년 11월 1%였던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지속적으로 상승해 2022년 11월 말 현재 3.25%까지 인상되었다. 이로 인해 2021년 말까지 1.5% 내외였던 은행권의 정기예금 금리가 2022년 말에는 5~6%대 수준까지 올랐고, 한때 저축은행이나 신협 및 새마을금고 등 상호금융기관 중에서는 10%대 금리를 제시하는 곳도 있었다. 금융당국의 지도로 금리 경쟁 과열은 한풀 꺾였지만, 2023년에도 전 세계적 인플레이션의 영향으로 고금리 행진은 계속될 전망이다. 금리 인상이 계속되면서 ‘금리노마드족’의 움직임이 더욱 왕성해졌다. 금리와 유랑자라는 뜻의 노마드(Nomad)의 합성어인 ‘금리노마드’는 조금이라도 이자를 더 주는 예적금을 찾아 이동하는 행태를 말한다. 과거에 이들 금리노마드족은 일일이 금융회사를 방문하여 금리를 확인했지만, 이제는 금리를 비교하는 인터넷 사이트들을 통해 금융회사별 금리를 앉아서 한 번에 조회할 수 있다. 대표적인 금리 비교 사이트로는 금융감독원에서 운영하는 금융소비자 정보포털 ‘파인’(fine.fss.or.kr)이 있다. 파인에서는 은행과 저축은행에서 취급하는 예적금의 금리를 비교해볼 수 있다. 신협이나 새마을금고 등 기타 상호금융기관의 금리까지 비교해보고 싶다면 ‘모네타’(www.moneta.co.kr)나 ‘마이뱅’(www.mibank.me)에서 제공하는 금리 비교 사이트를 활용하면 된다. 금리 비교 사이트는 특판 상품 정보 반영이 늦을 수도 있다. 때문에 고금리 상품에 관심이 있다면 상품 정보를 수시로 업데이트해야 한다. 안전한 금융회사 찾아 재무건전성 확인 저금리에 목말라 있던 사람들에게 요즘의 고금리는 그야말로 가뭄의 단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무조건 고금리만 쫓을 일은 아니다. 돈을 맡긴 금융회사가 망하면 원금을 다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다. 우체국에 맡긴 돈은 국가가 전액 지급보장을 한다. 하지만 은행과 상호저축은행에 맡긴 돈은 예금자보호제도에 의해 예금보험공사가 예금과 이자를 합하여 5000만 원까지 책임진다. 새마을금고는 새마을금고중앙회, 농협·수협·신협·산림조합 등 각 지역 조합은 해당 조합 중앙회가 원금과 이자를 합해 5000만 원까지 예금자보호를 한다. 새마을금고 등 단위 조합에 돈을 맡길 때 주의할 점은 예적금이나 정기예탹금은 예금자보호 대상이 되지만 조합원이 되기 위해 납입한 출자금은 예금자보호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예적금 등에 저축을 하는 경우에는 금리만 확인할 것이 아니라 해당 금융회사의 안정성까지 따져봐야 한다. 금융회사의 재무건전성은 일반적으로 자본적정성, 자산건전성, 수익성, 유동성 등 4개 부문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판단한다. 각 부분을 나타내는 주요 재무지표로는 BIS자기자분비율(자본적정성), 자산건전성은 고정이하여신비율(자산건전성), 총자산수익률(ROA, 수익성), 유동성은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유동성) 등이 있다. 은행과 상호저축은행의 재무건전성을 확인하기 위한 재무지표들은 예금보험공사(www.kdic.or.kr)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다. 지역 새마을금고나 지역 조합 등의 재무건전성은 새마을금고중앙회나 해당 조합 중앙회 홈페이지에 접속한 후 ‘전자공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더 적은 세금을 찾아서, 절세 금융상품 활용 이렇게 노력을 기울여 확보한 이자에 절세 혜택까지 있다면 금상첨화다. 대표적 절세 상품은 다음과 같다. 비과세종합저축 조세특례제한법에 의해 금융회사가 취급하는 저축상품을 ‘비과세종합저축’으로 가입할 경우, 전 금융회사(은행, 보험, 증권, 상호저축은행 등)를 통틀어 5000만 원 범위 내의 해당 저축에서 발생한 이자와 배당소득에 대해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비과세 혜택을 받기 위해 특별히 정해진 의무 가입 기간은 없다. 비과세종합저축으로 가입할 수 있는 상품의 범위도 넓다. 제외되는 상품으로는 증서가 발행되고 유통될 수 있는 예금(CD, 표지어음 등), 당좌예금, 외화예금, 기존에 이미 비과세 혜택이 주어진 장기주택마련저축 등이다. 비과세종합저축에 가입할 수 있는 사람은 만 65세 이상, 장애인복지법에 의한 장애인, 독립유공자와 그 유족 또는 가족,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의한 상이자, 국민기초생활수급자, 5·18 민주화운동 부상자 등이다. 정기예탁금과 출자금 새마을금고나 신협 등 조합은 예적금 이외에 정기예탁금도 취급한다. 정기예탁금의 만기는 1년 이상이고 금리는 정기예금 수준이다. 3000만 원 범위 내의 정기예탁금에서 발생한 이자에 대한 이자소득세는 비과세하고 1.4%의 농어촌특별세만 부과한다. 정기예탁금은 조합원만 가입 가능하고, 조합원이 되기 위해서는 1좌 이상의 출자금을 납부해야 한다. 1좌당 출자금은 5만 원 정도 수준이다. 출자금에 대해서는 해당 조합의 이익을 배당하는데, 조합원 1인당 1000만 원 범위 내의 출자금에 대한 배당은 전액 비과세한다.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 만 15세 이상이면서 근로소득이 있거나 만 19세 이상의 대한민국 거주자이면서 직전 3개년 중 1회 이상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이 아닌 자가 가입할 수 있다. 연간 납입 금액 한도는 2000만 원이고 최대 5년간 합계 1억 원까지 가입할 수 있다. 3년 이상 가입하면 일반형일 경우 계좌에서 발생한 이자와 배당소득 중 200만 원까지 비과세하고, 총급여 5000만 원 이하 혹은 종합소득 3800만 원 이하의 서민형인 경우에는 이자와 배당소득 400만 원까지 비과세한다. 비과세를 초과하는 이자 및 배당은 9.9%로 분리과세하고 납세의무를 종결한다. ISA는 전 금융회사를 통틀어 1인 1계좌만 가입 가능하다.
- 2023-01-16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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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령자친화기업 KCA, “베테랑이라면 은퇴자도 대환영”
- 보통 회사는 젊은 세대 채용을 선호한다. 그들의 트렌디함과 통통 튀는 아이디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로 한 분야에서 베테랑인 고령자를 선호하는 회사도 있다. 그들의 경험과 노하우가 회사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정보시스템 감리 전문회사 ‘케이씨에이’(KCA)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베테랑이 많은 회사는 어떤 곳인지 궁금해 케이씨에이를 직접 찾아가 봤다.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중소기업 케이씨에이.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한눈에 봐도 재직자의 평균 연령이 높아 보인다. 전문가 분위기를 내뿜는 머리 희끗한 직원들은 각자의 일에 열중한 모습이다. 실제로 올해 기준 케이씨에이 전 직원 378명 중 만 60세 이상 근로자는 94명이라고 한다. 올해 케이씨에이는 보건복지부가 선정한 고령자친화기업 41곳 중 하나로 이름을 올렸다. 고령자친화기업은 만 60세 이상 고령 근로자를 5년간 의무 고용해야 한다. 대신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는다. 41개 회사 중 케이씨에이는 단연 눈길을 끈다. 대부분 생산직이나 단순노무직이지만 케이씨에이는 IT 전문가를 고용한다는 점에서 차별된다. 그런데 왜 IT 회사인 케이씨에이는 고령 인력을 활용하는 것일까. 이는 케이씨에이가 정보시스템 감리에 특화된 회사이기 때문이다. 감리란 정보시스템이 잘 구축되었는지 점검하고 개선이 필요한 사항을 조정·권고하는 업무다. 케이씨에이는 이외에도 IT 컨설팅, 정보 보호, PMO(사업위탁관리) 운영 지원 등의 사업을 한다. 사실 감리 업무는 아무나 할 수 없다. 정보시스템 감리사 자격증이 있어야 하는데, 정보처리 분야의 실무 경력이 있어야만 취득 요건을 갖춘다. 한 예로 대학교를 졸업하고 정보처리기사로 7년은 일해야 자격증 취득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감리사는 최소 30대는 되어야 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감리 업무는 IT 업계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안정된 노후를 위해 종사하는 경우가 많다. 케이씨에이도 60대가 주축이고 70대도 많이 재직 중이다. 국방과학연구소를 은퇴하고 20년째 감리 일을 하는 80세(1943년생) 베테랑도 있다고. 현재 감리사로 일하는 김영빈(52) 씨는 “개발자로 20년 넘게 일했는데, 여기에 들어오니 막내가 됐다”고 말했다. 특히 김영빈 씨는 아내와 함께 재직 중이다. 김 씨는 과거 IT 업계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아내에게 감리사 일을 권했다. 15년의 공백이 있던 터라 어려움은 많았지만 아내는 자격증을 취득해 먼저 일을 시작했고, 이후 김영빈 씨가 합류했다. 김 씨는 “우리 부부는 만족도가 매우 높다”고 말했다. 또 다른 베테랑은 어떤 사연이 있는지 들어보자. ◇“베테랑 노하우 사회에 보탬돼야” - 백형충 상무 백형충 상무는 오직 IT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1987년 일을 시작한 그는 금호아시아나의 IT 기업에서 임원까지 하고 은퇴했다. 현재 한국정보공학기술사회 회장이기도 하다. 백형충 상무는 2013년 10월 케이씨에이에 입사했다. 그는 자신의 업무에 대해 “초반에는 감리를 했다. 더불어 전략산업본부에 속해 사업 전체 기획부터 수주 등의 일을 했다. 최근에는 솔루션사업본부에서 ICT사업 부문장을 맡고 있다. 새로운 사업을 발굴, 추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백형충 상무는 2003년 기술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IT 경력이 있었기 때문에 교육만 받고 수석 감리원이 됐다. 백 상무는 일찌감치 기술사 자격증을 취득한 이유에 대해 “IT 업무가 무척 방대한데, 기술사는 전체 영역을 이해해야 한다. 그동안 했던 것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미래를 준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 1980, 1990년대에는 직급이 과장 이상 되면 일은 안 하고 결재만 했다. 내 미래의 모습이 저것일까 싶었다”면서 “자격증 취득으로 나 자신의 역량 개발과 함께 후배들에게 길라잡이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백형충 상무는 “제가 환갑 나이인데 주변에 보면 노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가 30년 넘도록 업계에서 쌓아온 지식과 노하우를 그냥 사장하면 안 된다. 국가 발전을 위해 크게 기여해야 한다. 일하면서 사는 것이 건강하게 오래 사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고 강조했다. ◇“비전공자라고 비전문가 아냐” - 김석범 수석 김석범 수석은 회사 내에서 ‘비전공자’로 유명하다. 다른 말로 풀이하면 비전공자인데 감리 일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대단하다는 뜻이다. 김 수석은 경제학과를 전공하고, SK텔레콤에서 1995년부터 20년 넘게 일했다. 특히 그는 SK네트웍스서비스의 게임 서비스를 주도한 대단한 인물이다. 김석범 수석은 개발자들과 일하면서 개발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궁금했고, 배우고자 하는 갈증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2018년 은퇴 후 자바(Java)를 시작으로 개발을 공부하며 개발자를 꿈꿨다. 비전공자로서 공부가 어렵지는 않았을까. 그는 고개를 저으며 “정말 재미있었다. 자존감이 회복되고 행복했다”고 말했다. 이어 “왜 진작 IT 쪽 공부를 안 했을까 많이 후회했다. 내 업무에 접목했다면 엄청난 시너지가 났을 것이다. 높은 자리까지 올라갔거나 사업을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개발자로 취업하기는 나이 때문에 현실적으로 힘들었다. 그럼에도 김석범 수석의 사전에 포기란 없었다. 그는 IT 업계에서 일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2020년 감리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케이씨에이에 입사했다. 김 수석은 “감리사는 기본적인 급여를 주고 업무도 안정적이다”라고 만족감을 표하면서도 “여기에 안주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김 수석은 현재도 공부를 지속하고 있다. 시장조사, 수요 예측 모델 경험을 가지고 그 연장선에서 빅데이터 공부를 하고 있다. 데이터 분야와 감리 직을 연결할 생각도 있고, 또 새롭게 꿈을 찾아갈 생각도 있다. 그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시니어 직원 없었으면 회사 문 닫았을 것” - ‘베테랑 중의 베테랑’ 문대원 대표 처음 케이씨에이에 취재 요청을 했을 때도,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도 직원들은 “문대원 대표를 만나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문대원(75) 대표야말로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고, 대한민국 정보화의 산 역사이기 때문이다. 문 대표는 세계적인 인명사전 ‘마르퀴즈 후즈후’(Marquis Who’s Who in the world) 2019∼2022년 판에 연속 등재되기도 했다. ‘마르퀴즈 후즈후’ 인명록은 전 세계적으로 뛰어난 업적을 달성한 전문가들의 전기 정보를 기록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에 문대원 대표를 만나 정보시스템 감리라는 황무지 분야를 개척하고 베테랑이 되기까지의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문대원 대표는 대학교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물리직 공무원이 되기 위해 과학기술처에 들어갔다. 그다음에 총무처로 옮겨갔는데,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행정 전산화를 하라’는 지시를 하면서 행정전산계획관실이 생겼다. 그곳에서 문대원 대표는 전산화 계획 업무를 맡았다. 우리나라 행정전산망의 기본 계획도 그가 세웠다. 이후 1980년대, 당시에는 정보화를 총괄·조정하는 부처가 없었다. 이에 정부에서는 대통령 비서실 산하에 전산망조정위원회를 만들었다. 각 부처와 공공기관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파견 나왔다. 그중에 물론 문 대표도 있었다. 그는 정보화담당관으로 활약을 펼쳤다. 문대원 대표는 1990년대에는 한국전산원이라는 정보통신부 산하기관에서 일했다. 현재는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문 대표는 감리본부장을 맡았다. 그러다가 1997년 대한민국은 외환위기 IMF를 맞았는데, 문대원 대표에게는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당시 정부는 공공기관 인원을 감축하고 민간기업으로 업무를 이관했다. 이에 문대원 대표는 마음 맞는 사람을 데리고 나와 감리회사를 차렸다. 그게 바로 케이씨에이다. 1999년 어려운 시기에 설립된 회사는 내실 성장을 이뤄 감리 대표회사로 자리 잡았다. “평생 공무원으로 살고 공공기관에서만 일한 사람인데 돈 버는 법을 알았겠어요? 그런데 벌써 23년이 지났네요. 처음에 감리본부 핵심 요원 10명으로 사업을 시작했는데 현재는 직원이 300명 넘고요. 감리, IT 컨설팅, PMO 등 각 분야 선두를 달리고 있으며, 매출도 300억이 넘습니다. 감회가 새롭습니다.” 문대원 대표는 회사가 성장한 것은 모두 직원들 덕분이라고 공을 돌렸다. 특히 문 대표는 “50·60대 시니어분들이 회사의 주축이다. 감리사는 IT 분야의 최고 자격증이고 경력이 중요한데, 그분들의 노하우가 회사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감리란 설계대로 잘 진행되고 있는지 보는 동시에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도 중요한 업무입니다. 시니어분들이 경력과 경험이 많기 때문에 그 부분을 잘하신다는 거죠. 잘못된 부분은 지적하고, 컨설팅이나 조언을 전문적으로 해주시죠. 저는 그래서 개발이나 코딩 분야에서 경력을 쌓고 40·50대부터 이 일을 하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건강하고 일에 대한 의지가 강한 분들은 70대까지도 거뜬하게 일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어 문대원 대표는 “시니어분들이 안 계셨으면 케이씨에이는 벌써 문 닫았을 것”이라고 말하며 고마움을 전했다. 그러면서 능력이라는 큰 자산을 가진 시니어들이 나이라는 현실의 장벽에 부딪혀 일하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를 안타까워했다. “50대 후반에서 60대가 되면 다들 은퇴하는 현실이 참 안타까워요. 국가나 사회적으로 낭비가 심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시니어분들에게 일할 기회를 드릴 수 있다는 게 저에게는 제일 큰 보람이에요. 무엇보다 그분들이 있어서 회사가 잘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의 정보화에 앞장선 문대원 대표. 그는 앞으로도 케이씨에이를 통해 자신의 목표를 이뤄나갈 예정이다. 문 대표는 “목표는 대한민국 정보화에 기여하는 좋은 회사가 되는 것이다. 글로벌 사업에도 진출했는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정보화 기업이 되고 싶다. 현재 목표대로 순항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면서 눈을 반짝였다.
- 2022-10-13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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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 쌓인 장인의 거리, 종로
- ‘유서 깊은 도시이면서 별나고 소박한 곳이자 서울의 심장과도 같은 곳’. 지난해 문화·엔터테인먼트 전문 온라인 매체 ‘타임아웃’이 ‘2021년 세계에서 가장 멋진 동네 29곳’에 종로3가를 3위로 올리며 남긴 한 줄 평이다. 별나고 소박한 서울의 심장에는 유서 깊은 솜씨로 몇 십 년 가까이 그곳을 지키는 베테랑들이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 한 사람의 고유한 성정이 도드라지듯, 지역에는 정체성이라는 나이테가 남는다. 대학로에는 스물의 젊음이 넘실대고, 여의도 빌딩숲엔 양복쟁이들이 평일만 되면 파도처럼 밀려들며, 홍대앞에는 예술인들의 아지트 같은 작업실이 빼곡히 들어찼다. 모든 과정이 지역을 대표하는 정체성이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종로는 다소 오묘한 곳이다. 탑골공원에서는 어르신들이 모여 바둑을 두고, 책가방 멘 청년들은 종로 학원가의 어학원을 들락이며, 그 옆 인사동에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바글거린다. 종로의 거리에는 SNS상에서 인증샷 장소로 인기인 카페와 빛바랜 노점상이 공존한다. 서울의 어제와 오늘, 젊음과 노련함이 뒤섞이는 지역을 한 단어로 정의 내리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종로의 정체성을 정의해야 한다면 모든 것을 끌어안을 줄 아는 중후함이라 하겠다. 그중에서도 나이테처럼 남아 종로 그 자체가 되어버린 베테랑을 찾아 나섰다. 예지동 시계골목, 귀금속거리와 광장시장, 낙원상가를 들러 네 가지 빛깔의 노련함을 담았다. 가게 문 손잡이에 손때가 묻고, 매일 두르는 앞치마의 색이 바랬을지언정 그들의 열정은 청춘 못지않게 빛나고 있었다. 권동희(85) 58년 경력, 진선미주단 “스물일곱 때 시작해 여기서만 60년 가까이 일했어요. 여기에선 내가 최연장자일걸.” 1904년 개장한 광장시장은 12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한국 최초의 상설시장이다. 권동희 사장은 광장시장 2층 주단한복부의 터줏대감이다. 곱게 빗어 올린 머리와 화사한 한복 차림으로 58년째 주단을 취급하고 있다. 그가 ‘출근 룩’으로 한복을 고집하는 데엔 이유가 있다. 사장의 옷차림이 보기 좋아야 손님에게 옷을 권할 수 있지 않겠냐는 논리다. 한 달에 딱 하루, 마지막 주 일요일만 제외하고 매일 한복을 입은 셈이다. 그 덕에 처음 보는 손님과 어울리는 색상의 주단을 뽑아 드는 것쯤은 예삿일이다. “일? 안 지겹고 항상 즐거워요. 여긴 행복한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이라 덩달아 즐거워지거든.” 결혼을 앞둔 신랑·신부와 혼주가 진선미주단의 주 고객이다. 알음알음 입소문 타던 ‘베테랑의 솜씨’가 인터넷에 알려지면서 개량 한복 찾는 젊은이들, 해외로 이민 갔던 사람들 발걸음까지 잡아 이끈다. 한복에 대한 어머니의 열정은 딸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큰딸은 강남에서 한복 사업을 하고, 막내딸은 한복대회 모델로 활동했다. 점차 예식 규모가 축소되고 결혼식 모습이 다양해지는 요즘, 불문율처럼 여겨졌던 한복 차림 혼주들도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됐다. 아쉽지만, 그는 끝까지 전통 한복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려 한다. “한국 사람이라면 제대로 된 전통 한복 한 벌쯤 간직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한국을 대표하고 빛내는 것이 한복이잖아. 요즘 같은 시대에 한복 입는 것이 나라 사랑이나 다름없죠.” 김득균(61) 40년 경력, 한일사 “시계 겉모습만 봐도 안에 무슨 부품이 들어갔는지 훤히 보여요. 이 동네에서 시계수리기능사 자격증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 한국산업인력공단은 2005년 시계수리기능사 자격증을 비롯한 40종목의 국가기술자격증 시험을 폐지했다. 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들었다고 판단해서다. 디지털 시계를 쓰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태엽 감는 기계식 시계에 대한 관심은 사그라들었다. 종묘 돌담길 옆 한일사의 김득균 대표는 시계수리기능사의 명맥을 잇고 있다. 열아홉 소년의 취미였고, 밑천 없어도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시계 수리 일은 40년 넘는 시간 동안 한 가정을 먹여 살리는 든든한 생업이 되었다. 경력을 인정받아 기능경기대회 심사위원장을 지냈고, 시계기술학원 강사로 후배들을 양성하는 데 힘을 쏟기도 했다. “신뢰를 주는 게 가장 중요해요. 손님들은 시계를 맡길 때도 인간성을 보거든. 이 일은 장사하고는 달라서 꾸밈이 없어야 하지.” 진품을 가품으로 바꿔치기 하지는 않을지, 쓸데없는 수리를 추가하는 건 아닐지. 몇 백만 원에서 몇 천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 시계를 맡기는 입장에선 ‘믿고 맡길 만한 사람인지’가 가장 중요하다. 그는 수리 전과 후 부품 사진을 찍어 고객이 확인할 수 있게 하고, 숙련된 솜씨를 바탕으로 저렴하게 수리한다. 한일사에 새로 온 손님은 단골이 되고, 단골은 새로운 손님을 소개해준다. 그렇게 그는 10년, 20년 뒤에도 종로 제일가는 시계 수리 장인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강규철(54) 31년 경력, 삼우주물 “낮에는 청소하면서 몰래몰래 훔쳐보고, 밤이나 새벽에 낮에 봤던 것을 한 번씩 만들어보고. 그렇게 배우느라 손일 익히는 데만 5년이 걸렸어요.” 반지 하나 잘 만들면 집 한 채도 거뜬히 사던 때가 있었다. 한 달 월급은 5000원, 그마저도 못 받고 기술 배우는 사람들이 훨씬 많던 시절이었다. 아는 형님 가게에 실습하러 나왔던 고등학교 시절의 강규철 대표가 주물 기술을 배우고자 마음먹었던 시기도 이때였다. 한쪽 눈이 안 보인다는 이유로 기술을 알려주겠다는 사람이 없었지만 굴하지 않았다. 결국 주물집에 ‘시다’로 취직한 그는 남들보다 천천히 스스로를 단련해나갔다. 요즘이야 캐드(CAD) 프로그램으로 제품 설계와 제작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3D 프린터로 직접 샘플을 뽑을 수도 있다지만, 강 대표가 처음 일을 시작하던 시절엔 고무 가다(몰드)조차 없었다. 그럴 땐 열 개고 스무 개고 손수 똑같은 모양으로 주물을 만들어내야 했다. 오래도록 벼린 기술은 IMF 외환위기 이후 금값이 치솟으면서 닥친 불황에도 굴하지 않을 수 있는 심지가 되었다. 아귀힘이 약해지기 전까지 마음만 먹으면 평생 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는 2, 3년만 더 할 생각이란다. 아들이 더 이상 아버지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면 산속에 들어가 살려고 일찍이 집도 마련해뒀다. 하지만 너털웃음 지으며 덧대는 마지막 말은 퍽 의미심장하다. “이 일 하다 다른 일 한다고 나갔던 사람들 있죠? 4, 5년 정도 지나면 다 돌아와요. 일하던 가락이 있어서 혼자 책상 앞에 앉아 작업할 거 하고, 자기 하고 싶을 때 일하는 게 편하거든.” 이세문(65) 40년 경력, 세영악기사 “아주 좋은데요. 소리도 괜찮고, 수리할 값어치가 있는 기타예요.” 세영악기사를 찾았을 때 이세문 대표는 30년 넘은 클래식 기타 줄을 튕기고 있었다. 아버지가 창고에 처박아뒀던 기타를 되살릴 수 있을까 싶어 찾아온 손님의 의뢰였다. 기타를 두드리고, 삐져나온 줄을 툭툭 잘라내는 손놀림이 경쾌하다. 관리 상태에 따라 100년 넘게도 사용할 수 있다보니 ‘기타 좀 안다’는 사람들은 멀리서도 믿고 맡길 수 있는 베테랑인 이 대표를 찾아온다. “학교 다닐 때부터 기타를 만들었어요. 아는 형님이 기타 공장을 해서 접할 일이 많았거든.” 1982년 상경해 1986년부터 이곳 낙원상가에서 일했다. 지갑 가벼운 학생, 이름만 들어도 아는 기타리스트, 작곡가 등 다양한 사람들이 기타를 들고 세영악기사를 찾았다. 특히 밴드 ‘부활’의 김태원은 기타에 대해 아는 바가 많고 소리에 민감해 상대하기 쉽지 않았다. “수리를 해줘도 맘에 드는 소리가 나오지 않으면 다음 날 다시 기타를 가져와 ‘이 부속 바꿔달라, 저 부속 바꿔달라’ 하는 통에 많이 시달렸죠. 덕분에 기타에 대해 더 배울 수 있었지만요.” 직접 수리한 기타로 녹음한 음반을 챙겨줄 때, 무대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볼 때의 보람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런데 정작 그는 기타를 칠 줄 모른다. 기타 생각을 어찌나 지겹도록 했는지, 배우려고 붙잡고 있는 것조차 싫증 나 금방 그만뒀다며 웃는다. 건강만 따라준다면 평생 기타 수리 일을 할 생각이라는 이세문 대표. 그의 손을 거쳐간 기타는 앞으로도 오래도록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해줄 것이다.
- 2022-10-06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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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례지도사, 최후의 봉사자라는 사명감으로 일해”
- 장례지도사이자 장례지도사교육원 원장을 맡고 있는 김종호 씨(67). 과거의 그는 죽음의 최전선에서 일할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건축 분양 사업을 했던 김종호 원장은 1997년 IMF 직격타를 맞아 사업을 접어야만 했다. 그 후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영업직밖에 없었다. 김 원장은 여러 회사를 전전하면서 영업 일을 했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간 곳이 상조회사였다. “장례라는 부분이 제게 참 생소했다. 장례를 치러본 적도 없었다. 영업을 하려면 장례 용어나 진행 순서를 알고 있어야 하는데 많이 힘들었다”고 그는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때 지인이 대학교에 장례학과가 있다고 추천해줬다. 이에 김 원장은 서라벌대학교 장례학과에 진학했다. 수업은 주말에 서울에서 진행됐고, 그는 2년간 공부에 매진했다. 2000년부터 장례지도사로 일하고 있는 김종호 원장. 20년이 넘는 세월을 보내며 젊은 장례지도사도 많아지고, 사회적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느낀다. 그도 죽음에 대해 막연히 무섭게 생각했는데 일을 하면서 깨우친 바가 많다. “예전에 친구 아버님 병문안을 간 적이 있어요. 그 병실에 어르신분들만 계셨는데 저를 기피하시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장례지도사라고 하니까 저승사자 같아 보이셨나 봐요. 웃기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했죠. 그런 일도 있었는데, 점점 인식이 좋아지는 것 같아요.” 김종호 원장은 장례지도사로 현장에 있다 보면 금세 고객과 친해진다고 했다. 3일 동안 유족과 얘기를 나누면서 함께 공감하고 슬픔을 나누는 것이다. “3일간 고생해도 마지막에 헤어질 때 유족분들이 손을 잡아주면서 고맙다고 말씀해주실 때 큰 보람을 느껴요. 특히 젊은 미망인이나 자식을 잃은 분들의 슬픔이 큰데, 제 덕분에 다시 살아갈 희망을 품게 됐다고 말씀해주시면 울컥하죠. 저도 마음이 많이 쓰이는 분들에게는 문자를 한 번씩 보내드리곤 합니다.” “수많은 죽음을 봤고, 수많은 고객을 만났다”는 김종호 원장. 그의 기억에 가장 남아 있는 장례 현장은 언제일까. 그는 단번에 한 가족의 이야기를 전했다. 6.25 참전용사였던 아버지는 수유리 국립묘지에 잠들어 계시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상황이었다. 생전에 어머니는 수유리에 묻힐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고, 자식들에게 화장해서 바다에 뿌려달라고 했다. 그러나 자식들은 어머니를 아버지 옆에 묻어주고 싶어 하는 상황이었다. “자녀분들이 유골을 반으로 나눠서 반은 묘지에, 반은 바다에 뿌리면 안 되냐고 하더라고요. 우리나라는 그게 안 되거든요. 그래서 제가 수유리에 가서 상의한 끝에 방법을 찾았습니다. 묘지 옆에 구덩이를 파고 거기다 어머니의 유골을 모셨고, 비석에는 두 분의 이름을 같이 적었습니다. 가족분들이 정말 고마워하셨고, 지금도 종종 연락을 하십니다.” 김종호 원장은 고령화 사회에 장례지도사의 전망은 밝다고 짚었다. 특히 “이 일을 시작하면 그만두지 않고 오랫동안 하는 사람이 많다”면서 정년이 보장된 직업이라고 강조했다. 김 원장은 “저도 하나님이 부르실 때까지 일하고 싶다”면서 각오를 다졌다. “태어날 때 누군가의 도움을 받듯이 세상을 떠날 때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인생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장례지도사는 최후의 봉사자라고 생각하고, 그 사명감으로 일하고 있어요. 장례지도사들이 이 일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장례지도사를 마주하실 때 ‘고생한다’고 말씀해주시면 그분이 크게 감동하실 겁니다.”
- 2022-09-28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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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출발기금'의 모델, 착한 ‘나쁜 은행’ 배드뱅크 아시나요?
- 코로나19로 많은 이들이 대출을 받으며 생계를유지했지만,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경기에 대출 연체자가 크게 늘었다. 이럴 때 정부는 ‘배드뱅크’(Bad Bank)를 만들어 돈을 빌려준 은행이 망하지 않도록 지원한다. 재정을 지원하는 은행인데, 왜 나쁜(Bad) 은행일까? 배드뱅크라고 하면 왠지 부정적인 느낌이지만, 부실 금융기관으로부터 부실자산이나 채권을 사들여 처리하는 구조조정 기관을 지칭하는 말이다. 부실채권전담은행, 가교운용사라고도 한다. 예를 들어 소상공인이 대출을 받고 오랜 시간 갚지 못해 부실채권이 됐다면, 배드뱅크는 대출을 해준 은행의 부실채권을 사들이고, 대출을 받은 소상공인의 상황에 맞춰 채무 조건을 조정해 채무자가 채무를 잘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해 늘어난 부실채권으로 재정 건전성이 나빠진 은행은 다시 재정 건전성이 좋은 은행이 되어 투자를 받는 등 굿뱅크(Good Bank)로 전환할 수 있다. 또한 돈을 빌린 사람이 연체를 거듭하다가 신용불량자가 되거나 파산하는 것도 막을 수 있다. 배드뱅크라는 이름 때문에 나쁜 은행인 것 같지만, 사실은 은행과 채무자의 재정 건전성을 돕는 착한 은행인 셈이다. 보통은 정부 주도로 공적 기금을 투입, 배드뱅크를 설립해 대출채권을 매입하고 상환 일정을 조정하거나 채무 감면을 지원한다. 금융위기마다 등장, 왜? 배드뱅크는 금융위기가 올 때 주로 등장한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2007~2010년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여러 국가에 배드뱅크가 설립됐다. 이를테면 미국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2008년 긴급 경제안정화법의 일부로 배드뱅크 설립이 제안됐다. 우리나라에서 배드뱅크가 처음 등장한 건 외환위기 때였다. 당시 과도한 부실채권이 많아 여러 은행이 파산 위기에 처하자, 은행의 줄도산을 막기 위한 배드뱅크 정책이 도입됐다.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 이후 발생한 기업 부실채권을 정리하기 위해, 노무현 정부는 신용카드 대란으로 인한 개인 신용회복을 지원하기 위해, 박근혜 정부는 1억 원 이하의 신용대출을 6개월 이상 갚지 못한 연체자 채무를 감면해주기 위해 배드뱅크를 추진한 바 있다. 우리나라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배드뱅크 역할을 하고 있으며, 민간 차원의 배드뱅크는 없었다. 하지만 2020년 라임자산운용 펀드 사태로 민간 차원의 배드뱅크 ‘웰브릿지자산운용’이 설립됐다. 배드뱅크 설립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배드뱅크는 보통 정부가 주도하기 때문에 국가 자산이 들어간다. 자칫 국가 재정에 과도한 부담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또한 사회적으로 ‘돈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어, 꼭 필요한 상황에 적절한 지원을 꼭 필요한 대상에게 해야 한다. 코로나 배드뱅크 ‘새출발기금’ 윤석열 정부는 코로나19로 인해 채무를 갚지 못하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지원하기 위한 배드뱅크를 설립한다. 가칭 ‘새출발기금’이다. 정부는 2020년 4월부터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대출 원금상환 만기연장 및 이자상환 유예’ 조치를 시행했다. 지금까지 네 차례 연장했는데, 오는 9월 말 종료된다. 올해 1월 말 기준 이 조치를 받고 있는 대출은 총 133조 4000억 원 규모로 70만 4000건에 이른다. 이에 정부는 새출발기금을 마련, 3조 6000억 원을 출자하고 최대 30조 원 규모의 채무조정을 지원할 예정이다. 이는 IMF 외환위기 이후 이뤄졌던 ‘한마음금융’(노무현 정부), ‘국민행복기금’(박근혜 정부) 등을 포함해 가장 큰 규모의 채무조정이다. 정부는 9월 말 관련 지원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번 배드뱅크는 ‘자영업자 지원’을 위한 목적으로 설립됐다.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개인사업자, 법인 소상공인 중 대출 원리금 상환을 90일 이상 연체했거나, 부실 발생 우려가 있는 차주를 대상으로 한다. 프로그램은 원리금을 장기간 나눠 갚을 수 있도록 거치 기간을 부여하거나, 장기 분할 상환 대출로 전환하거나, 금리 감면 혜택 등을 적용한다. 장기 연체자의 경우 신용채무 원금을 여력에 맞춰 60~90% 감면하는 조치도 포함된다. 은행이 자율적으로 추가 연장하는 ‘주거래 금융회사 책임관리제’도 도입한다. 추후에는 이미 폐업한 자영업자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최초의 배드뱅크 ‘멜론은행’ 멜론은행은 미국에서 15번째로 규모가 큰 은행이었다. 하지만 급격한 해외 시장 확장으로 1987년 최초로 손실이 발생한다. 재정 정상화가 어려워지자 멜론은행은 최초로 민간 배드뱅크를 설립한다. 공적 자금 없이 1988년 14억 달러의 불량 대출을 해결하기 위해 설립된 ‘그랜트스트리트 국제은행’(Grant Street National Bank)은 모든 채권을 상환하고 목적을 달성한 뒤 1995년에 해산됐다.
- 2022-08-26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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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퇴 세대 삶에 대한 연구, 금융의 의무”
- 6월 28일 본지가 진행한 헬스콘서트 현장에서 유난히 반짝이는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던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연신 사방을 관찰했다. 자리에 모인 시니어들이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모습이었다. 바로 신한은행 퇴직연금그룹장인 이영종 부행장 이야기다. 그는 형식적인 행사 참석에 그치지 않고, 진행되는 강의에 귀 기울이며 자리를 지켰다. “갈증이 많으셨던 것 같아요.” 이 부행장은 이날 참석한 독자들이 가지고 있었을 답답함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코로나19로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생활을 하면서 이런 좋은 행사에 대한 아쉬움을 느끼셨던 것 같아요. 훌륭한 강연이 중장년에게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다시금 깨달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희도 퇴직연금 사업을 하면서 이런 기회를 자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이날 참석한 독자들에게 많은 시간을 들여 여러 메시지를 전하려 노력했다. 퇴직연금그룹의 수장이지만, 그 역시 베이비붐 세대 당사자로서 객석에 모인 이들이 단지 ‘고객’으로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일 터다. “퇴직연금그룹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 분야에 대해 공부하면서 은퇴 후 삶의 질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신한이 책임지고 있는 재무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건강 등 은퇴 후 행복을 결정짓는 요소는 다양하니까요. 현장에서 브라보 마이 라이프 독자들을 만나고 나서, 은퇴 세대를 위해 좀 더 종합적인 컨설팅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다시 한번 생각했습니다.” 그가 현장에서 전한 메시지 중 하나는 코로나19로 지친 중장년들에 대한 위로였다. 현장을 찾은 독자들은 신체적·정신적인 노화를 경험하고 있고, 사회·경제적으로 지위에 올랐지만 은퇴를 고려하며 노후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있는 세대다. 이런 상황 속에 찾아온 코로나19라는 악재는 이들을 더욱 약하게 만들었다. “저희 어머니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여생을 낭비하기 어려운, 하루하루가 아까운 삶의 황혼기에 거리두기로 갇혀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 안타까웠죠. 아마 다른 어르신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셨을 겁니다. 인생을 멋지게 살아보고자 하는 욕구는 높은데 여건이 뒷받침해주지 못했으니까요. 이번 행사를 통해 다시금 활력을 되찾길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행복한 쏠드族을 위하여 멋진 인생을 살길 바라는 현재의 적극적인 시니어의 모습을 신한은행은 ‘쏠드’라고 정의 내리고 있다. 쏠드(Sold)는 스마트(Smart)와 올드(Old)의 합성어로, 말 그대로 현명하게 노후를 맞이하는 이들을 말한다. 일반적인 중장년과 어떻게 다를까? 이 부행장은 “자기 주도적인 삶과 기술 친화적인 부분이 기존과는 다른 쏠드族(족)의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은퇴 세대는 50~60년 인생을 살아왔지만, 최근 10년 동안 경험해보지 못했던 극적인 변화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기술혁신 속에서 젊은이들처럼 완벽하게 적응하기는 어렵더라도 디지털 기술을 일상화하는 이들이 늘고 있어요. 여기에 단지 디지털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우리가 ‘디지로그’라고 부르는 아날로그 감성을 바탕으로 한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가는 삶이 쏠드의 핵심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 그는 달라진 은퇴 세대의 모습 중 하나로 합리적인 태도를 들었다. 과거의 노인들은 가부장적 권위에 기대어 강압적인 의사 전달에 익숙했다면, 최근의 시니어들은 자신만의 이유와 논리를 바탕으로 자기주장을 펼친다는 것이다. 은퇴 세대 위한 금융의 책임 커져 신한은행은 매년 ‘신한미래설계보고서’를 발간한다. 베이비붐 세대의 삶을 관찰하고 분석한 결과물로 벌써 5년째 발행 중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보고서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달라지는 은퇴 세대의 삶만큼이나 그들을 바라보는 신한은행의 시선 변화도 느껴진다는 점이다. 신한은행은 시간이 갈수록 베이비붐 세대의 삶을 정밀하고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다. “영국 인구학자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2035년이 되면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와 경제활동 인구가 1대1로 같아진다고 합니다. 초고령화 사회를 훨씬 뛰어넘는 상황이 되는 셈이죠. 국가 차원에서 바라보면 생산 활동을 유지하는 것이 숙제가 되겠죠. 저희 같은 금융기관 입장에선 고령층 인구가 은퇴 이후에도 이전과 같은 소득과 수준의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컨설팅하는 것이 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은행 퇴직연금사업부문의 핵심 기능이죠. 이러한 준비를 위해 은퇴 세대의 삶을 연구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입니다.” 수백만의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를 앞둔 지금, 이들의 삶에서 금융기관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은퇴 세대는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신한은행은 이들에게 어떤 위치, 어떤 역할을 바라고 있을까? “저는 은퇴 후 삶을 준비하는 과정을 두 가지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먼저 내 소중한 돈이 적립되어 일정 수준의 수익률이 발생해야 합니다. 커다란 목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크지 않더라도 안정적인 수익률을 낼 수 있도록 금융이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죠. 또 금융은 고객이 가진 퇴직연금이 제대로 관리되고 있고, 적정 수준의 수익률이 나고 있는지 고객 관점에서 관리해야 합니다. 이러한 수익률과 고객 관리가 공신력 있는 은행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막연한 공포보다는 위험 줄여야 최근 은퇴자들은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빅 스텝’, ‘자이언트 스텝’과 같은 금리 인상과 함께 미국발 경제위기설이 힘을 얻으면서, 모아놓은 자산 가치가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 부행장은 “지나친 공포에 시달릴 필요는 없다”고 조언한다. “베이비붐 세대는 IMF 외환위기의 경험으로 경제위기에 공포감을 가질 수밖에 없죠. 하지만 역설적으로 ‘기다리면 회복된다’는 경험 역시 가지고 계시잖아요. 무조건 버티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좋아지는 부분도 있으니 공포에 시달리기보다는 현명하게 생각하고 판단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전하고 싶어요.” 또 그는 그 과정에서 위험을 줄이기 위해 분산을 고려할 것을 이야기했다. “기본적으로 자산을 분리해 관리할 필요는 있습니다. 자신의 성향이나 위기관리 능력을 고려해 그에 맞는 분산 방법을 선택해야 합니다. 또 적정 수준의 이익이 나거나 손해가 발생했다면, 그에 따른 리밸런싱(Re-balancing, 포트폴리오 안에 있는 자산의 비중을 조절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은행에서도 적극적으로 안내하고 있고요.” 여생은 아내를 위해 쓰고파 이 부행장은 1993년 신한은행에 입사했다. 서울대에서 경영학 중에서도 금융 관련 전공을 했기 때문에 금융의 핵심인 은행 입사는 자연스러운 선택이었고, 당시 신생 회사였던 신한은행은 타 은행과는 다른 차별성을 갖고 빠르게 성장하는 모습이 매력적이었다고. 이후 그는 신한금융그룹의 ‘전략통’으로 성장했다. 신한은행 대외협력실장 등을 거쳐 미래전략부장, 전략기획팀 부장, 전략기획팀 본부장을 거쳐 신한은행 강서본부장을 역임했다. 그는 관리자급으로 승진한 이후 전략·기획부문 업무를 주로 담당했다. 오렌지라이프와 아시아신탁 인수 등 굵직한 인수·합병(M&A) 실무를 진행했고, 이후 오렌지라이프 전무와 신한라이프 부사장을 지냈다. 그는 전략 업무에 대해 “회사의 각 파트에서 만들어내는 새로운 사업들을 유기적으로 결합시키고, 회사의 관점에 맞게 나아갈 방향을 정하는 과정이 매력적”이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그가 꿈꾸는 은퇴 생활을 물었다. 그는 “아내와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갖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저는 30년 넘게 직장을 위해, 아내는 그동안 아이 셋을 위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내의 고생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은퇴 후에는 아내를 위해 시간을 쓰고 싶어요. 요리학원에서 요리를 제대로 배워 아내에게 음식도 해주고 싶고, 평소에 배우고 싶어 하던 기타도 함께 익혀 연주해보고 싶습니다.”
- 2022-08-02 08: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