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봉투 안의 비밀”

기사입력 2016-07-05 11:13 기사수정 2016-07-05 11:13

▲친구는 하얀봉투 안에 마음을 담아주었다. (양복희 동년기자)
▲친구는 하얀봉투 안에 마음을 담아주었다. (양복희 동년기자)
그가 사라졌다. 어느 날 갑자기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었다고 난리가 났다. 사람들은 만나서 비상 대책을 세우자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12명의 피해자가 모여서 그를 감옥에 넣어야 한다며 흥분된 마음을 들썩거렸다. 사람들은 가장 친한 친구였던 필자에게 총대를 메고 앞장을 서라고 난리 법석을 떨었다. 어쩔 수 없어 사인은 했지만 도망치듯 그 자리를 몰래 빠져나오고 말았다.

사회에서 만나게 된 그 친구는 피부 관리실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재미로 한 번씩 만나서 밥이나 먹자고 시작한 모임이었다. 6명으로 시작한 모임이었는데 늘 주변에 아는 사람이 많았던 그녀의 사람들 하나둘 인원이 늘어났다. 작은 모임이 즐거움을 더해가더니 간이 커지기를 시작했다. 급기야 돈놀이가 시작되었고 금액도 시간이 갈수록 불어만 갔다. 3년 동안 그런대로 재미가 붙으며 차곡차곡 목돈도 만들어 갔다. 세월만큼이나 부풀어진 마음도 액수를 더해갔다. 필자도 3000 만 원짜리를 두 몫이나 갖게 되며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언제나 다정다감하며 마음이 따뜻한 친구였다. 필자에게는 유독하게 사랑을 베풀어 주며 가정사를 비롯하여 마음속까지도 의논하는 절친이었다. 그녀의 주변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들끓었고 그녀는 어디서나 베풀기를 서슴지 않았다. 성실하며 열심히 살았던 그녀가 도대체 돈맛을 알았던 것이지, 어느 날부터인가 욕심으로 가득 차 잘못된 길로 들어선 것이다. 이 사람 저 사람 소개도 해주면서 특별히, 필자의 생일날이면 새끼손가락에 예쁜 반지도 끼워주면서 우정을 다짐하기도 했다. 그녀는 언제나 사랑스러움과 애교가 흠뻑 넘쳤다.

사람들은 그가 최고라며 언제나 엄지손가락을 보이더니 이제는 교묘한 악녀가 따로 없다며 마냥 헐뜯어 내리기를 서슴지 않았다. 무조건 소송을 해야 하고 실컷 혼을 내 주어야 한다기에 마음이 아파졌다. 피해자인 필자도 어이가 없었고 눈앞이 캄캄했으나 무슨 방법이 없었다. 언제나 바쁘게 일을 하는 친구였기에 필자가 먼저 하루 전날에 꼬박꼬박 갖다 바쳤다. 그리고 필자가 타는 달 바로 전달에 일이 터진 것이다. 한몫도 받지 못했으니 거의 반 이상이 약 4000만 원 정도가 날아간 것이었다. 어찌 막막하지 않았을까.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땅이 꺼지는 줄만 알았다.

한 일원이었던 또 다른 친구 남편에게서 만나자는 전화가 왔다. 어쩐 일인가 싶어 서둘러 나가보니 더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 그 친구는 젊은 나이에 당뇨병을 앓고 있었는데 이 일로 쓰러져 결국 다리를 절단했다고 청천 벽력같은 소식을 토해냈다. 그 친구는 네 몫이나 들었었다며 친구 남편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무어라 위로의 할 말이 없었고 그 친구는 그 이후로는 영영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만나 주지조차 않았고,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얼마 후 잘 아는 선배가 연락을 해와 병원으로 달려갔다. 선배의 막내딸이 중환자실에 있다고 했다. 이제 겨우 19살에 백혈병이 걸려 골수이식을 해야만 한다고 필자를 끌어안고 목놓아 울어댔다.

몰아닥친 비운에 슬픔들이 필자를 감당치 못하도록 흔들어댔다.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운전을 하며 눈물 범벅이 되어 이리저리 드라이브로 마음을 달랬다. 차라리 모든 것 내려놓을 테니 아이들이라도 잘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그 날아간 큰돈들을 하늘에 묻어 두기로 하면서 마음을 잡아갔다.

가라앉은 마음과 무거운 발걸음으로 다시 선배 병문안을 찾아갔다.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온갖 고통스러운 모습의 사람들을 보면서 욕심의 마음은 하늘과 땅을 넘나들었다. 그 어떤 아픔이 죽음을 기다리는 초라하고 서글픈 사람보다 더 아프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로부터 1년쯤 되었을까? 불쑥 사라졌던 절친의 목소리가 전화 속에 있었다. 필자는 어디냐고 물었고 그 친구는 만나자며 주소를 가르쳐주었다. 단숨에 달려가 자초지종을 물었다. 8개월을 감옥에서 있다가 왔다며 발가락엔 온통 동상이 들어 단단하고 빨개져 있었다. 어느 찜질 방 피부관리실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죽을죄를 졌다며 평생을 두고 갚겠다며 용서를 빌어왔다. 무어라 할 말이 없었고 그저 세상에 나오자마자 연락을 해 준 것만도, 살아있는 것만도 감사할 뿐이었다. 어찌나 대접을 잘해주는지 몸 둘 바를 몰랐다. 그 후로 3개월, 그는 또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어찌어찌 알고 찾아오는 사람들 등쌀에 견딜 수가 없어 도망을 쳤다고 주인이 말했다. 돈을 벌어야 갚을 수가 있건만 사람들은 그녀를 그대로, 돈을 벌도록 내버려 두지를 않았다. 그 후로는 그 친구를 만나지 못한 채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5년쯤 지나 한국으로 잠깐 왔을 때, 한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고 그녀가 필자를 몹시 만나고 싶어 한다며 연락처를 주었다. 어찌나 반가운지 그날로 만났다. 그녀는 필자를 와락 끌어안으며 그리움을 쏟아부었고, 필자가 좋아하는 일식 집으로 데려가 주며 2차로 노래방까지 그리고 그녀의 집으로까지 하룻밤 동침을 하자고 했다.

68평의 넓고 화려한 그녀의 빌라에 깜짝 놀라 집안을 한 바퀴를 돌았다. 그녀는 아파트 분양사무실에서 일을 했고 그 집은 모델 홈이었던 것을 분양받은 것이라고 했다. 어딘가 믿음이 가지는 않았지만 대단한 수완 꾼임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온밤을 세워가며 지나간 아픔의 기억들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한밤중에 필자가 좋아하는 얼큰한 북엇국도 기막히게 끓여주었다. 그때 그 친구가 만들어준 사랑의 맛은 잊을 수가 없다. 필자는 아침 일찍 그녀의 집을 나오며 집안 한 바퀴를 더 돌았으나 돈 얘기는 차마 꺼내지도 못 했다. 그녀가 필자의 등 뒤로 하얀 봉투 하나를 건네주었다.

여비로 보태라며 작지만 마음이라며 가방에 넣어주었다. 어찌나 떨리고 궁금한지 차마 열어 볼 수가 없었다. 그대로 하얀 봉투 안에 비밀은 비행기 안에서도 심지어 수개월 동안 지속되었다. 이미 날아갔다고, 어차피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하늘에 남겨 놓은 것이었기에 기대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예전 그대로 소중한 우정,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싶어서 그 후로도 오랫동안 책 갈피 속에 덮어두었다. 다시 소식이 끊어졌지만 그저 잘 살라는 마음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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