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기사입력 2016-11-29 14:39 기사수정 2016-11-29 14:39

▲지난 11월 26일 베란다 밖의 첫 눈 내리는 풍경(박혜경 동년기자)
▲지난 11월 26일 베란다 밖의 첫 눈 내리는 풍경(박혜경 동년기자)
토요일이기도 하고 날씨도 좀 어두컴컴한 것 같아 늦게까지 침대에 있었다.

그때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되게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려대기 시작했고 받아 보니 친구의 명랑한 목소리가 잠을 확 달아나게 했다. “눈 온다!”

친구는 벌써 다른 친구와 일산 어디의 멋진 카페에서 창밖의 눈을 감상하고 있다고 한다.

필자가 잠자리에서 게으름 피우는 동안 고마운 친구는 벌써 외출해 맛있는 커피를 마시면서 첫눈을 즐기며 필자에게 올 첫눈 소식을 전해주었다.

벌떡 일어나 거실 창문 밖을 내다보니 새하얀 눈이 펄펄 내리고 있다. 올겨울 첫눈이 아주 풍성하게 쏟아지는 중이다.

물론 뉴스에서 북쪽 지방이랑 산간에선 눈이 내렸다고 이미 보도되었었지만, 필자 눈으로 이렇게 가깝게 폭설처럼 쏟아지는 깨끗하고 예쁜 눈을 보는 건 올해로선 처음이어서 감동이다.

북한산 국립공원 근처인 우리 집은 서울 변두리 산 밑이라서 눈이 많이 내리면 보이는 곳곳이 멋진 동양화의 그림같이 변한다.

산등성이를 휘두르며 마른 겨울나무와 계곡을 채우는 흰 눈을 감상하는 건 너무나 장관이어서 그 장면을 볼 수 있는 게 필자의 행운이라고까지 생각이 든다.

 

하얀 눈이 너무나 깨끗해 보이고, 시원한 얼음 가루인 것 같아서 어릴 땐 마당 장독 위에 쌓인 눈을 집어 먹기도 했는데 요즘은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선뜻 그러지 못하는 현실이 좀 안타깝다.

환경 공해 때문에 언제부터인지 눈은 맛보면 안 되는 거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눈-하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건 첫사랑...아닐까?

지금은 아무리 생각해도 첫사랑이 언제였는지 누구였는지도 가물가물하기만 해 이렇게 그만 메말라버린 감정이 아쉽기도 하지만 펑펑 내리는 눈을 바라보니 그래도 소녀 같은 감상이 느껴져서 수줍은 미소가 지어진다.

첫사랑이 누구였는지 생각나지는 않아도 팔팔했던 젊은 날 남자친구와 흰 눈을 맞으며 무작정 걸었던 예쁜 추억은 있다.

그때 그 녀석이 누구였는지 도무지 얼굴이 떠오르진 않지만 송추 쯤이었던가 어느 넓은 눈밭에서 러브스토리 주인공 따라 한다며 털썩 눕기도 해 보았고 나무 밑의 눈을 한 움큼 입에 넣어보기도 했다.

그땐 모든 게 즐거워서 환경공해 때문에 눈을 먹으면 안 된다는 생각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젊었을 땐 그렇게 모든 게 아름답고 즐겁기만 했는데 시니어가 된 지금은 다른 생각도 하게 한다.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리면 한때 보기는 좋지만, 눈이 녹으면서 길은 질척해질 테고 교통도 막힐지 모른다. 그리고 날이 더 추워져 빙판이라도 되면 엉금엉금 조심해야 할 것이 걱정스럽다는 낭만적이지 못한 염려가 되니 서글프다.

그래도 펄펄 내리는 흰 눈은 기분 좋게 해준다.

이런저런 생각을 떨치고 아무리 날이 춥고 썰렁해도 옷 단단히 챙겨 입고 눈을 밟아보러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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