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한복판 바이칼(Baikal)호수를 다녀오다

▲시베리아 한복판 바이칼(Baikal)호수를 다녀오다(김종범 동년기자)
▲시베리아 한복판 바이칼(Baikal)호수를 다녀오다(김종범 동년기자)
바이칼호수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깊은 호수임은 독자들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의 관심과 호기심을 끄는 호수들 중에 하나 일 것이다. 필자는 지난여름 연해주 고려인 중앙아시아로의 강제이주 80주년을 맞아 국제한민족재단에서 주관한 ‘극동시베리아 실크로드 오디세이 회상열차’의 일원으로 희망 대장정을 다녀왔다. 극동 블라디보스톡 기차역을 출발하여 카자흐스탄 알마티까지 6,500여 km를 열차로 이어가는 긴 여정 이었다.

▲시베리아 한복판 바이칼(Baikal)호수를 다녀오다(김종범 동년기자)
▲시베리아 한복판 바이칼(Baikal)호수를 다녀오다(김종범 동년기자)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블라디보스톡을 출발했다. 아나콘다 구렁이 같은 커다란 몸체가 서쪽으로 서쪽으로 고개를 치켜들고 달려 나간다. 잠시 후 부터 하늘과 벌판만이 펼쳐져 있는 시베리아벌판에 가르마를 내며간다. 가슴은 열차 지붕 위에 올라앉았고 시선은 막힐 것 없는 지평선 위를 나른다. 저토록 청맑은 하늘과 이토록 넓은 벌판은 희뿌연 미세먼지가 아닌 해 저문 어둠만이 덮어 가릴 수 있을 것이다. 4인실 2층 침대 열차안의 일행 네 명이 준비해온 보드카로 궁색하지 않은 술상이 차려진다. 시베리아 벌판이 어둠에 진하게 물들 듯 우리들도, 열차도 보드카에 취한 듯 흔들리며 간다. 어릴 적 시골집 어두운 종이천장 안에서 타닥대며 뛰어 다니던 생쥐들의 달그락거림이 열차 바퀴 덜컹거림으로 울려져 온다.

밤새 쉬지 않고 달려온 열차 차창에 아침이 밝는다. 어둠을 벗어 던진 대륙의 한 기차역에 내려 선선한 공기를 마셔본다. 경쾌하다, 시원하다. 인공양념 섞이지 않은 담백한 초두부 맛이라 할까 삼삼하게 우러난 맑은 동치미 국물 맛이라 할까. 벌판의 풋내 담겨오는 아침공기를 허파꽈리 잔뜩 끌어들이니 허기가 느껴져 온다. 갑자기 오염되지 않은 공기를 마시고 놀란 내장을 매콤한 국물로 중화시켜주고 싶다. 컵라면을 뜯어 뜨거운 물을 채워온다. 밤새 흔들리며 선잠에 웅크렸던 육신을 매콤한 노크로 잠 깨워 본다. 서서히 한반도 토종의 몸 말초신경에 맥박이 뛰기 시작한다.

이틀을 달려온 열차는 아직도 갈길 먼 나그네 이다. 뉘엿뉘엿 햇살이 낮게 지평선위에 걸터앉는다. 차창을 바삐 스치는 늘씬한 소나무 줄기 불그레한 넓적다리가 황홀하다. 취하지 않고는 잠들 수 없어 너 댓 잔 들이키는 보드카 술기운에 젖은 시선이 여전히 흔들거린다. 저녁노을 문지른 적송 줄기의 쭉쭉빵빵 각선미가 몽롱하게 다가왔다가 멀어져 간다.

▲시베리아 한복판 바이칼(Baikal)호수를 다녀오다(김종범 동년기자)
▲시베리아 한복판 바이칼(Baikal)호수를 다녀오다(김종범 동년기자)

내 어릴 적 엄마의 흔들리는 무릎위에서 새근새근 잠들던 때처럼 침대열차도 쉼 없이 덜컹거리며 달린다. 내 코고는 소리를 감추어 주며 달린다. 어디쯤 가고 있는지가 중요치 않다. 몇 시 인지도 알 필요 없다. 열차 복도 창에 햇살이 들면 아침이고 침대칸 차창에 석양이 깔리면 저녁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자작나무의 새하얀 피부를 닮아 들안개도 뽀얗게 물들어 깔린 벌판에 아침햇살이 눈부시다. 차창 밖 저 멀리 녹색 벌판이 끝나는 선에 파란 하늘이 이어져 있다. 다만 내 시력이 초록에서 하늘공간으로 건너지 못할 뿐이다. 수십km 밖 아니 수백km 밖까지 펼쳐지는 대지에 내 시선이 이르지 못할 뿐이다.

밤새 흔들던 몸을 진정시키기 위해 열차 중간의 샤워장에 갔다. 우리 돈 3천 원 쯤을 내고 생전 처음 달리는 열차 안에서 샤워를 해봤다. 비눗물은 곧 바로 철길 위로 빠져 나갔다. 내 육신의 비늘 조각과 머리카락 몇 오라기를 시베리아 벌판에 뿌려 놓고 가는 것이다. 3일 전 부터 열차는 쉼 없이 서쪽으로 달려왔다. 기울어가는 해를 따라 꿈틀대며 간다.

사흘 반나절을 옆에서 같이 달려온 벌판과 소나무와 자작나무와 언덕과 야생화가 일시에 사라졌다. 검푸른 바다 같은 물결이 차창 옆까지 들이 닥친다. 우와! 바이칼 호수! 그림으로만 보던 말로만 듣던 바이칼! 자작나무의 희멀건 가랑이 사이로 바이칼의 푸른 영혼이 가득 차 쏟아져 들어온다. 어찌할꼬? 저 푸른 호수에 풀쩍 안기고픈 충동은? 내 어릴 적 북한강변에서 첨벙대며 멱 감던 시절아. 열차야 잠시 멈추어 다오. 걸쳤던 옷 훌러덩 벗어 던지고 맨몸으로 알몸으로 부둥켜안고 으스러지고 싶소. 저 호수 건너편 까마득한 수평선까지 물수제비 던져보고 싶소. 바이칼호수도 반갑다고 물결 잠재우고 수 백 수 천 개의 물수제비 받아들고 품에 안고 있는 2600여 종의 동식물들에게 나눠 줄 것이요.

▲시베리아 한복판 바이칼(Baikal)호수를 다녀오다(김종범 동년기자)
▲시베리아 한복판 바이칼(Baikal)호수를 다녀오다(김종범 동년기자)

광활한 대자연. 인류가 20년 동안 마셔도 마르지 않는다는 바이칼. 3,000만 년을 얼고, 녹은 바다 같은 호수. 천지의 어머니 바이칼. 우주 밖에서도 보인다는 바이칼. 나는 잠시 두 발을 적시고 갈 뿐이요. 나는 H2O가 70%인 작은 물방울일 뿐이요. 나의 머릿속에서 평생 출렁이고 있을 것이요. 나는 먼지처럼 작아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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