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년 만에 수여된 국가유공자 증서

기사입력 2018-10-02 08:41:37기사수정 2018-10-02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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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어릴 때 가지고 놀던 물건이었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는 잘 몰라도 그 물건은 장롱 서랍에 보관되어 있었다. 나는 가끔 그 물건을 꺼내 만져보고 소꿉놀이를 하며 가지고 놀기도 했다. 그 후 수십 년이 흘렀다. 살던 집에서 이사했고 오래된 장롱과 함께 그 물건은 기억 속에서 잊혀 버렸다. 간혹 아버지는 살아 계실 때 어쩌다 전쟁 이야기를 하셨다. 강원도 인제 원통에서 군 복무를 하셨는데 ‘한 달 동안 밤에도 전투화를 벗지 못하고 지내기도 하셨다’고도 했다. 전쟁에 투입되어 산으로 올라가면 옆에는 총에 맞아 절규하는 군인들. 다리가 잘린 채 나뒹굴고 차마 현장은 눈 뜨고 볼 수 없는 아비규환의 현장이었다고. ‘그런 광경을 지켜보며 국군은 고지 탈환을 위해 또 올라가고 내려오고 밀고 밀리기를 반복하며 전쟁을 했다’고 당시를 회상하셨다. 아무 생각이 없었던 우린 그저 전쟁통이니까 누구든 겪었던 평범한 일상이려니 듣고 잊어버렸다. 또 아버지도 다 지난 옛날이야기로만 가끔 하셨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에게는 토끼 같은 여섯 명의 처 자녀를 먹여 살려야 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그렇게 사시다 1990년 향년 64세의 나이에 돌아가셨다. 그로부터 벌써 30년 가까이나 세월이 흘렀다.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뀐 것이다. 그때 어린 자녀들이 다시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 흰머리가 되었다.

(박종섭 동년기자)
(박종섭 동년기자)

가지고 놀던 물건의 정체

얼마 전 문득 아버지의 일이 생각났다. 우리가 어릴 때 갖고 놀다 잊어버렸던 그 장난감 같은 물건은 아버지가 받은 훈장이었다. 아버지가 하셨던 이야기를 모아 퍼즐 맞추기를 해보면 전쟁에 참여했음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잃어버린 훈장에 대한 기록을 찾고 명예라도 우리 자녀들에게 전해드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병무청에 전화를 걸었다. 병무청에서는 군번을 요구했다. ‘군번도 아는 게 없고 아무것도 없지만 잃어버린 훈장에 대한 기억은 있으니 혹시 명예나 찾아드릴까 한다’하니, 제적등본을 떼어 보내 달라고 했다. 서류를 떼어 제출하니 한참 만에 답변이 왔다. 훈장에 대한 기록은 오래되어 없고 전쟁에 참여한 기록은 맞으니 국가유공자로 등록할 수 있다는 답변이었다. 단지 본인이 살아계시지 않아 다른 특혜는 없고 유족이 원할 시 본인과 배우자가 호국원에 안장될 수는 있고 했다. 어릴 때 갖고 놀던 훈장과 전쟁에 참여했다는 막연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아버지의 기록을 추적해보니 퍼즐 조각이 완성되었다. 1927년 6월에 출생하시어 1952년 7월 4일 입대를 하셨다. 6·25 전쟁이 1950년 6월 25일 발생하여 1953년 휴전협정이 성립되었다. 전쟁 중에 군에 입대한 것과 일치했다. 제반 서류를 갖추고 신청한 끝에 국가 유공자 증서가 전쟁참여 66년만인 2018년 9월 10일 주어졌다.

나라를 위해 전쟁터에 가셨던 아버지

올 추석에 아버지의 묘소를 찾아 손자들과 우리 형제들은 아버지 영전에 국가가 주는 국가 유공자 증서를 올려드릴 수 있게 되었다. 묘지를 찾은 90세 어머니께 여쭈어 보았다. 어머니는 기억을 더듬으며 놀라운 이야기를 하셨다. 우리 6남매 중 위로 셋을 낳고 26세에 군에 입대한 것이었다. 셋째인 누나가 52년생이니 셋째를 낳자마자 핏덩이 어린 자녀를 두고 죽을지 살지도 모르는 전쟁터로 투입된 것이다. 만약 전장에서 총에 맞아 돌아가셨으면 55년생인 필자는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어린 자녀 셋을 데리고 어머니는 고된 일생을 사셨을 게다. 생각만 해도 간담이 서늘하다. 그 어린 자녀들을 두고 전쟁터로 떠나는 본인과 아내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뒤늦게나마 국가에서 내린 국가유공자 증서가 아버지의 마음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기를 빌어 드렸다.

‘참 수고하셨습니다. 아버지! 이 유공자 증서를 받을 만 하시군요!’

이제 90이 되신 어머니에게도 위로의 말씀을 전해 드리고 싶다.

‘두 분 다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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