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커다란 인생의 실패를 겪으며 술독에 빠져 죽으려고 했던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 극단적인 순간, 거짓말처럼 시와 그림이 구원의 길을 보여줬다. 시인이자 화가인 김주대의 이야기다. 시와 그림 둘을 합친 문인화 작가로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는 그가 이번에 봄을 맞이하여 여섯 번째 전시회를 열었다. 그의 작품 80점으로 장식된 인사동의 전시회장에서 작지만 커다랗게 다가오는 것들을 포착했다고 말하는 그의 문인화 세계를 들여다봤다.
화폭을 시원하게 가로지르는 주제로서의 그림과 그 한 켠에 섬세하게 새겨지듯 쓰여지는 시, 그것이 문인화의 세계다. 문인화에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명상적인 호흡을 통해 숙고의 즐거움을 만들어내는 힘이 있다. 김주대 작가는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로 대표되는 한국 문인화 전통 위에서 현대적 문인화를 그리는 대표적인 작가다. 오는 5월 6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인사아트프라자에서 문인화전 ‘꽃이 져도 오시라’를 여는 그는 사실 문인화가로서보다는 시인으로서 먼저 이름을 알렸다.
죽음의 순간에 찾아온 삶의 재생
1989년 ‘민중시’와 1991년 ‘창작과비평’을 통해 등단하여 여섯 권의 시집을 낸 중견 시인이었던 그는 원래 그림을 정식으로 배운 사람이 아니었다. 그랬던 그가 문인화로 자신의 인생 후반기를 결정짓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7년여 전인 2012년의 일이다. 무려 20년 가까이 강사로 시작하여 운영까지 하게 된 학원 사업이 완전히 실패하면서 그야말로 ‘길에 나앉게 된’ 것이다. 마흔 중반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거친 삶의 질곡이었다. 이때 그는 두 달 동안 술만 마시며 그대로 죽을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위기는 기회를 줬다. 그가 SNS에 시를 쓰면서 농담처럼 ‘시를 팔겠다’라고 했더니 사겠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문자로만 된 시를 어떻게 해야 팔 수 있을까’ 고민했고 시에 어울리는 그림을 곁들이자는 게 그 문제의 답이 되었다. 문인화가 김주대의 탄생이었다. 처음에는 서투르기만 했던 그는 자신에게 맞는 붓과 종이, 먹을 고르고 친구들로부터 동양화를 배우면서 화가 김주대를 발전시켰다.
“고양이 그림 같은 경우는 제가 틀을 그리지 않았습니다. 문경한지, 전주제지, 단구제지 등의 한지마다 다른 먹의 번짐 효과를 이용해서 그려냈죠.”
이처럼 그는 한지의 종류에 따라 다른 특징을 이용하여 그림의 리드미컬한 양태를 표현하는 단계로까지 발전했다. 또한 현재의 그의 화풍은 전반적으로 은은한 느낌을 준다. 최대한 색을 쓰지 않으려 하는 기준 때문이다. 이러한 작가적 절치부심의 결과, 그는 지난 6년여 동안 한겨레신문, 머니투데이 등 다양한 언론 매체에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고 수 차례의 전시회를 가지며 시대와 소통하는 깊이 있는 작가로 성장했다.
우리가 놓친 인물들, 문인화로 되살아나다
페이스북 팔로워 숫자가 1만4000여 명. 김주대의 작품 활동을 호시탐탐 눈 여겨 보는 사람들의 숫자기도 하다. 아마도 21세기는 그의 취향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생각해 보면 주제의식을 압축적으로 담아내는 그림과 시의 결합인 문인화는 ‘짤방 문화’로 대변되는 SNS 세계에 적합한 틀을 갖고 있는 게 아닐까. “문인화는 글이 함께 하기 때문에 그림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인문학적 소양이 있으면 된다”고 말하는 그는 그야말로 생활과 삶의 순간순간을 문인화에 쏟아내고 있다. “고통스러울 때는 술을 마시게 되는데, 그 감정으로 그림을 그리게 되면 그동안은 술을 마시지 않기 때문”이란다. 또한 일 년에 2000만 원어치만 작품이 팔릴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한다. 심지어 그러한 기준에 맞춰서 작품 가격을 정하기도 한다. 그의 생활과 그림이 문인화라는 풍류와 어우러져 솔직하고도 옹골찬 색을 발휘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었다.
80점의 문인화가 걸리는 이번 ‘꽃이 져도 오시라’ 전시회에서 눈에 띄는 것은 굵직한 인물화들이었다. 김주대 작가 본인의 자화상과, 그가 생각하기에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 세상을 받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인물들에 대한 문인화들이 이번 전시회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이번에 나온 작품들 중 그가 작업하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한 작품들은 바로 독립운동가들의 서정과 아픔을 그린 문인화들이다. 독립운동가들의 눈빛과의 교감이 그대로 삶의 한 자락을 걸친 듯하다.
소소하지만 위대한 것들에 대한 찬가
그가 그린 무명의 독립운동가들은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이들이어서 남아있는 자료들이 우표 사이즈만 한 사진들밖에 없었다. 그래서 사진을 확대하여 그를 바탕으로 밑그림을 그리고, 작가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인물의 생명력을 부여하는 작업을 해야 했다. 특히 이 그림들에서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인물의 눈빛인데, 그 세밀한 눈동자를 구현하기 위해 김주대 작가는 조선시대 임금들의 초상인 어진의 작법을 참고하였다고 한다. 그 결과 피폐한 표정에서도 저항의 빛을 놓지 않는 소녀 함귀래, 앙다문 입에서 굳은 의지가 돋보이는 소년 이범재 등 백 년 전 자신의 젊은 날을 바쳐 막막하기만 했던 우리나라의 독립을 꿈꾸고 실행했던 이들의 모습을 오늘날에 생생히 살릴 수 있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 그리고 이름 없는 사람들, 소소하지만 위대한 것들에 대한 압도감을 보여주는 이번 전시회에서의 그의 작품 세계에는 자연스럽게 인본주의의 향취가 담겨 있다. 전시회를 열기 전 이미 열 점 정도 판매가 이뤄졌다는 것은 그만큼 그의 세계를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제 완연하게 피어난 따스한 봄에, 사람의 따스함이 머무르는 문인화의 세계 속을 거닐어 보는 것은 어떨까?
5월 가정의 달이다. 수도권 안에 가족들과 가볼 만한 가까운 곳이 있다. 문화와 예술, 역사 등을 두루 느껴볼 수 있는 파주, 아주 매력적인 곳이다.
북녘과 인접해있어 생태탐험과 최북단의 DMZ를 통해 평화안보여행도 할 수 있다.
파주 출판단지
출판단지에서 유명한 은 출판 복합 문화공간이다. 책만으로도 볼거리가 넘친다. 벽면을 가득 메운 책꽂이는 보기만 해도 뿌듯하다. 쾌적하고 넓은 북카페에서 책을 읽는 모습들이 편안해 보인다. 2층으로 올라가면 책의 기원이나 출판의 역사를 알기 쉽게 볼 수 있도록 전시해놨다. 책 만들기 체험도 할 수 있다. 그 옆으로 문 열고 나가면 헌책방 '보물섬'에서 저렴하게 중고책을 마음껏 구입할 수도 있다.
이곳에서 책과 함께 하루쯤 묵고 싶다면 게스트하우스 ‘지지향’이 있다. 와이파이가 없다. TV도 없다. 오직 책 속에 푹 파묻힐 수 있는 방이다 사색과 휴식의 시간을 위한 북스테이다.
-파주 출판단지 : 경기도 파주시 회동길 145
-지혜의 숲 : 경기도 파주시 회동길 145
벽초지(碧草池) 수목원
봄꽃들이 이미 다 지고 있는데 이곳은 기온이 낮은 지역이라 아직은 늦게 피어난 꽃구경을 할 수 있다. 수양버들이 늘어진 연못, 그리고 꽃길과 조형물들 사이를 걸으며 군데군데 야외 테이블에 앉아 쉬는 사람들이 보인다. 언젠가 무릎이 아픈 어르신을 모시고 왔더니 수목원 관리소에서 휠체어를 대여해 주어 편안히 다닐 수 있었다.
-파주시 광탄면 창만리 166-1
마장 호수 출렁 다리
근래들어 액티비티를 즐기려는 현대인들이 늘어났다. 그래서 짚라인이나 출렁다리, 스카이워크 등을 각 지자체마다 경쟁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추세다. 요즘 여행 중에 빠질 수 없는 새로운 아이템이다. 마장 호수공원은 20만㎡ 넓이의 테마파크다. 이곳의 길이 220m의 출렁다리는 무료입장이다. 호수를 중심으로 둘레길 총 4.5km 중 3.3km 구간의 산책로를 걸을 수 있다.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기산로 365
헤이리 마을과 프로방스
예술인 380여 명이 모여 만든 마을이 헤이리 마을이다. 총면적이 15만 평. 많은 갤러리와 박물관, 공연장 등을 천천히 구경하고 즐기려면 한나절도 모자란다. 3층 이상의 건물은 짓지 못하게 되어있고 자연과 인간이 함께 어우러지는 생태친화적 마을에 예술인들이 직접 작업하며 살고 있다.
-경기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헤이리 마을 길 건너편에 파스텔풍의 알록달록한 마을이 보인다. 남프랑스 전원의 감성을 느끼게 하는 프로방스 마을이다. 허브 정원, 이쁜 카페와 공예품들, 그리고 리빙 웨어, 플리마켓 등의 눈요기 거리가 도처에 있고 맛집들이 기다린다.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84
헤이리 근처에 파주 영어마을도 있다. 아이들이 있으면 들러서 뮤지컬 관람이나 베이킹 체험 등을 해볼 만하다. 지금은 체인지업 캠퍼스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파주 영어마을:경기 파주시 탄현면 얼음실로 40
맛집&빵집>
교황님이 방한했을 때 간식빵으로 유명해진 교황빵 외에도 맛난 빵집이 몇 군데 있다.
-파주시 파주읍 우계로 51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평화누리공원에는 다양한 조형물들이 있어서 밤중에 별궤적 찍으러 몇 번 왔었다. 별이 쏟아지고 은하수가 흐르는 고요한 밤의 분위기도 좋았던 곳이다. 한낮에는 바람개비가 돌아가고 피크닉 나온 사람들로 늘 북적인다. 드넓은 공간 덕분에 아이들이 연 날리며 놀기도 좋고 해마다 파주 장단콩 축제나 인삼 축제가 열린다.
통일을 기원하는 노란 리본이 철조망에 가득하고 달리지 못하는 녹슨 철마도 있다. 망원경을 통해 DMZ의 때 묻지 않은 생태자연경관을 보면서 분단국가의 역사를 체험하는 순간이 될 것이다.
-경기 파주시 문산읍 마정리 618-13
이외에도 제3땅굴과 도라산 전망대, 감악산 출렁다리, 보광사, 파주 이이 유적, 장단콩 마을, 적성 한우마을 등 가볼 곳이 많다. 수도권이라면 언제라도 당일로 다녀올 수 있는 파주다. 자가용 이용이 아닐 경우 대중교통도 편리하다. 합정역 앞의 2200번 버스와 경의선을 이용해서 가는 방법이 있다. 광화문이나 서울역에서 버스를 탈 수도 있다. 서울에서 가깝기 때문에 드라이브 삼아 떠나볼 만하다.
교통 및 작은 정보
▲합정역 2번 출구에서 좌석버스 2200번 / 파주 시내버스 900번
▲파주시에서 지원하는 파주 시티투어버스가 있다. 합정역 아침 9시 30분부터 출발. 요일별 당일코스가 다양하다.(17000~38000원). 주말엔 1박 2일 코스도 있다. 파주시 문화관광해설사가 동행 탑승해서 관광지에 대한 스토리텔링으로 즐거운 도움을 준다.
문화체육관광부, 한국관광공사가 하계에 집중된 여행 수요를 분산하기 위해 4월 27일부터 5월 12일까지 국내여행 특별 주간으로 정해 특별한 여행 프로그램들을 마련했다.
그 중 명인과 함께 하는 김치 수업 프로그램이 있어 얼른 신청했다. 김치 명인 이하연 선생은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58호다. 남양주에 있는 김치문화원에 드니 정갈한 실내에 마늘이 들어간 김치양념 냄새가 확 느껴진다. 김치를 하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몇 번 본 적이 있어서 낯설지가 않다.
먼저 이하연 명인의 시연이 있었다. 명인의 김치 비법은 의외로 어렵지 않다. '이것저것 무수히 좋은 재료들을 다 때려 넣어 만든 육수와 양념'이 아니다. 알맞은 양의 재료가 서로 잘 어우러지게 하는 것이 맛내기 포인트다.
신선하고 좋은 재료 선택이 우선이다. 그리고 우려낸 다시마 물을 이용한다. 다진 생새우와 멸치액젓, 약간의 멸치가루 외에는 우리가 평소에 준비하는 재료들이다. 물론 오랜 연구와 경험 끝에 이루어 낸 그 분만의 특별한 손맛과 내공이 있을 것이다.
바로 이어지는 참가자들의 체험시간이다. 이미 다 준비된 재료들이지만 직접 양념 속을 넣고 둥근 병에 담아가지고 가지고 가는 것이다. 이런 즐거움도 흔치 않은 일. 직접 속재료를 넣은 김치를 담아서 오늘 저녁 밥상에 올릴 생각에 즐겁다.
이어서 장독이 가득한 산 아래 하얀집 뜰에서 쑥국이 오른 점심식사를 했다. 봄 하늘은 푸르고 날씨는 적당히 따사롭다. 많은 장독들이 봄햇살을 받아 장맛을 익히고 있던 봄날 하루였다.
가족과 함께하는 싱그러운 5월, 이달의 추천 문화행사를 소개한다.
(공연) 나빌레라
일정 5월 1~12일 장소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출연 강상준, 이찬동, 진선규, 최정수 등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 ‘나빌레라’는 ‘다음(Daum)’ 웹툰 연재 순위·독자 평점 1위에 오른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발레를 소재로 청년과 노인의 교감과 성장을 그려낸 이 작품은 ‘세대 간 소통’이라는 화두를 던진다.
(축제) 제45회 보성다향대축제
일정 5월 2~6일 장소 한국차문화공원 (보성차밭 일원)
보성다향대축제는 영화 및 CF 촬영지로 유명한 보성차밭 일원에서 열린다. 이번 축제에는 전국사진촬영대회, 녹차요정 퍼포먼스, 녹차 스탬프 투어, 화관 상상 무도회 등의 프로그램이 신설됐다. 이외 녹차비누·녹차향초 만들기, 한지공예 등 다채로운 체험도 할 수 있다. 잔디공원에는 관광객이 차를 마시며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그린티 쉼터’도 마련돼 있다.
(콘서트) 2019 조수미 콘서트 ‘Mother Dear’
일정 5월 8일 장소 롯데콘서트홀
늘 재미있고 즐거운 감동을 주는 성악가 조수미가 ‘사랑하는 어머니’를 주제로 한 공연을 선보인다. ‘맘마미아’, 이탈리아의 어머니 노래, 한국의 창작가곡 등 서정성이 돋보이는 곡들을 중심으로 따뜻한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이탈리아 출신의 테너 겸 기타리스트인 ‘페데리코 파치오티’도 함께한다.
(오페라) 오페라가 들리는 48시간 이탈리아 여행
일정 5월 12일 장소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출연 소프라노 홍혜란, 테너 최원휘, 해설 김문경
휴양의 도시이자 오페라의 본고장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공연이다. 이탈리아 작곡가 베르디와 푸치니의 작품 위주로 구성되며 해설자 김문경이 음악 중심의 이탈리아 5개 지역 명소를 소개하며 숨은 이야기도 들려줄 예정이다. 따스한 봄, 낭만적인 음악 여행을 떠나보자.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
일정 5월 17일~7월 14일 장소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구 삼성전자홀) 출연 김소현, 김우형 등
톨스토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작품. 주인공 ‘안나’를 통해 보편적인 삶의 가치에 관해 질문을 던진다. 실제 스케이트장 같은 무대 연출, 원작 공연에 출연한 러시아 스케이터도 참여해 풍부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오페라) 가족과 함께하는 금난새의 오페라 이야기
일정 5월 26일 장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출연 금난새, 김순영, 김성현, 유동직 등
베르디의 걸작 ‘라 트라비아타’를 ‘콘서트오페라’로 특별 구성했다. 콘서트오페라는 무대 장치와 의상 없이 콘서트 무대에서 하는 공연이다. 이번 공연은 지휘자 금난새가 지휘와 해설을 맡아 보다 쉽고 재미있게 오페라를 감상할 수 있다. 줄거리를 따라 작품 속 숨은 이야기를 들으며 아름다운 아리아의 선율에 빠져보자.
‘제5회 궁중문화축전’이 오는 4월 26일 경복궁 경회루에서 펼쳐지는 개막제를 시작으로 9일간의 축제의 막을 연다. 이번 궁중문화축전은 문화재청이(청장 정재숙) 주최하고 한국문화재재단(이사장 진옥섭), (사)대한황실문화원(이사장 이원)이 주관한다. 5대 궁과 종묘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문화유산 축제로 각 궁과 종묘의 이야기를 담아 4월 27일부터 5월 5일까지 9일간 다채로운 공연, 전시, 체험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26일 오후 7시 30분부터 개최되는 개막제 ‘2019 오늘, 궁을 만나다’에선 축전에서 펼쳐질 다양한 프로그램을 옴니버스식으로 선보인다. 궁중 문화를 바탕으로 미디어 퍼포먼스도 감상할 수 있다. 개막제는 경복궁 야간개장 입장권을 따로 구매하지 않아도 인원 제한 없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개막제가 열린 다음 날 4월 27일부터는 경복궁을 포함한 5대 궁에서 본격적으로 축전이 열린다. 특히 28일에는 궁중문화축전의 백미로 꼽히는 ‘광화문 新산대놀이’와 ‘경회루 판타지-화룡지몽’을 만나볼 수 있다. ‘광화문 新산대놀이’는 28일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광화문 광장과 세종대로에서 시민이 함께 즐기는 놀이판이다. 산대놀이, 나례의식, 다양한 전통 연희를 재해석한 흥겨운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경회루 판타지-화룡지몽’은 개막제에서도 미리 엿볼 수 있지만, 28일 오후 8시에 공식적으로 막을 올린다. 이 공연은 노비 출신 ‘박자청’이 경복궁의 꽃이라 불리는 경회루의 건설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어둠이 내려앉은 경회루를 배경으로 3D 맵핑, 조명 연출 그리고 화려한 춤과 연기가 더해진 미디어 퍼포먼스를 펼칠 예정이다. 또한 경회루 연못에 350석의 수상객석이 배치되어 무대를 더 가까이 감상할 수 있다. ‘경회루 판타지–화룡지몽’은 5월 4일까지 공연된다.
이 외에도 우리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진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이번 주말에는 따뜻한 날씨를 즐기며 가까운 궁으로 도심 나들이를 떠나보자.
개막제 ‘2019 오늘, 궁을 만나다’
장소 경복궁 경회루
일시 4월 26일 19:30
‘경회루 판타지-화룡지몽’
장소 경복궁 경회루
일시 4월 28일~5월 4일 20:00, 21:00
광화문 新산대놀이
장소 광화문광장
일시 4월 28일 15:00, 17:00
고궁사진전 ‘꽃피는 궁궐의 추억’
장소 경복궁 흥례문 광장
일시 4월 30일~5월 5일 11:00, 15:00
조선왕조 500년의 ‘예악(禮樂)’
장소 창덕궁 인정전
일시 5월 2~4일 15:00~16:00
달빛기행 in 축전
장소 창덕궁 일대
일시 5월 2~4일 19:00~21:00, 20:00~22:00
AR 체험 ‘창덕궁의 보물’
장소 창덕궁 일대
일시 4월 27일~5월 5일 9:00~18:00
웃는 봄날의 연희 ‘소춘대유희(笑春臺遊戱)’
장소 덕수궁 석조전 뒤 협률사
일시 4월 27일~5월 5일 13:00~14:00, 19:00~20:00
시간여행 그날 ‘영조, 백성을 만나다’
장소 창경궁 일대
일시 5월 3~5일 15:00~16:00
창경궁 양로연 ‘가무별감’
장소 창경궁 문정전
일시 4월 29일~5월 1일 13:00~15:00
대한제국 외국공사 접견례
장소 덕수궁 정관헌
일시 4월 27일~5월 5일 14:30~16:30
조선 마술사 마술 공연
장소 경희궁 숭정문 앞 특설무대
일시 5월 4~5일 13:30~14:00
종묘제례악 야간공연
장소 종묘 정전
일시 4월 30일~5월 3일 20:00~21:00
종묘대제
장소 종묘 영녕전, 정전
일시 5월 5일 10:00~16:00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전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 마음만 동동 구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문을 두드려주세요. 이번 호에는 신아연 소설가가 전 남편에게 편지를 써주셨습니다.
고즈넉한 봄날 5월의 주말 아침, 처음으로 당신에게 편지를 씁니다. 당신과 헤어진 지 어느 덧 7년째, 언제나처럼 나는 혼자 눈을 뜨고, 혼자 아침을 먹고, 혼자의 하루를 시작합니다. 내가 없는 당신의 하루는 어떤지 궁금합니다. 당신은 밥보다 빵을 좋아하니 오늘 아침도 빵을 먹었겠군요. 그러고는 산책을 나가고 오후에는 책을 읽고 간간이 글도 쓰면서 나처럼 단조롭고 쓸쓸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지요?
호주는 가을로 접어들고 있겠군요. 이 무렵의 기온은 두 나라가 비슷하지요. 하지만 한국은 여름으로, 호주는 겨울을 향해 서로를 등지며 가고 있지요. 북반구와 남반구는 계절이 반대이니까요. 한때는 생을 함께 꾸려왔지만 이제는 각자의 길을 가는 당신과 나처럼 말이죠.
당신, 환상지 증후군이란 말 들어봤어요? 손이나 발이 절단된 후에도 그 부위의 감각이 여전히 느껴지는 증상, 가령 손목 아래가 잘려 나간 사람이라면 손 전체나 손가락이 아직도 존재하는 것처럼 감각되는, 그래서 ‘유령사지’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증상 말이에요. 그걸 다른 말로는 환상지 증후군(phantom limb syndrome)이라고 한다네요.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한동안 나는 그 증상에 시달렸어요. 어떤 상황에 처하거나 무슨 일이 닥쳤을 때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 우리 이렇게 할까?” 하며 마치 당신이 옆에 있기라도 하듯이 자동으로 고개를 돌려 말하곤 했죠. 늘 옆에서 걷던 당신의 기척이 느껴져 몸을 쓸어내리던 적도 있었고요.
당신과 내가 살았던 보라매공원 옆, 방 두 칸짜리 신혼집 부근(지금은 다른 건물이 들어섰지만)도 서성거려보고, 아이들을 낳았던 난곡 입구 박산부인과 앞도 일 없이 지나가봤습니다. 무엇보다 꼬박꼬박 닥치는 주말이면 서러움이 더해서 하릴없이 거리를 헤매곤 했는데, 이것도 모두 환상지 증후군 탓이었지 싶어요. 그랬던 것이 이제는 주말이라는 개념조차 흐려져 삶은 온통 무덤덤, 무감각의 잿빛입니다. 온 나라를 뒤덮은 뿌연 미세먼지처럼.
“당신은 돈만 있으면 될지 몰라도 나는 돈 빼고 다 잃었다”던 당신의 고함이 아직도 귓바퀴를 울립니다. 21년간 당신과 함께 살았던 호주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온 후, 당장 내 입 하나를 먹일 수단이 없어 밥벌이에 전전긍긍하며 제발 돈 좀 보내 달라고 하자 전화로 당신이 내게 내지른 소리였지요. 아마도 당신은 이혼을 전제로 한 법적 별거기간 1년 동안 생활비를 주지 않으면 내가 다시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던 게지요. 그때 내 수입은 신문 기고로 받는 월 30만 원이 전부였던 터라 라면 하나로 하루를 버틴 적도 있지만, 굶어 죽으면 죽었지, 먹고살 길이 없어 다시 당신에게 돌아가는 일은 결코 없으리라고 마음을 다지고 다졌지요. 그 정도로 나의 이혼 결심은 확고했고, 그럴수록 당신의 분노와 원망은 커졌고 급기야 절망과 체념에 이르러 이혼에 합의할 수밖에 없었지요.
우리는 한때 서로 살을 ‘베어 먹일’ 듯 사랑했지만, 이혼을 앞두고는 서로의 살을 ‘베어 먹을’ 듯 으르렁거렸지요. 하지만 돌이켜보니 그 모든 일들이 한바탕 꿈인 것만 같아요. 독 서린 감정의 날카롭던 칼날들도 시나브로 무뎌져 품속 어딘가의 칼집 속으로 슬며시 자취를 감추었지요. 그런데도 나는 이따금 당신을 꿈에서 만납니다. 꿈에서 당신은 대부분 슬픈 표정이지만 어떤 땐 무서운 얼굴을 하고 나를 다시 호주로 데려가려 하지요. 악몽이라도 꾼 듯 소스라치게 놀라 깨고는 꿈이라며 안도합니다.
당신에 대한 연민과 염려의 마음과는 별개로 당신의 폭력을 지금껏 용서할 수 없습니다. 용서는커녕 세월이 흐를수록 25년 결혼생활 내내 당신이 내게 가한 폭언과 폭력에 대한 기억은 더욱 또렷하고 선명해지고 있습니다. 당신은 형식적으로라도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고, 자신의 분노조절장애와 폭력 성향을 고쳐보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지요. 아니, 그 심각성을 인정조차 하지 않았지요. 폭력을 견디다 못해 아내가 집을 나가겠다는데도, 가정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데도 남편이라는 그 알량한 자존심이 더 중했던가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이혼 과정에서 가장 가슴 아팠던 일은 둘째가 우리의 이혼 수속을 맡게 된 거였어요. 변호사가 되자마자 한 일이 제 손으로 제 부모를 법적 이혼시킨 거였으니…. 그 애가 하필 가정법원에서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이 우연이 아니었기를 바라며 위로할 수밖에 없지만 우리는 이래저래 미숙하고 부끄러운 부모입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돌아가신 우리의 어머니들, 그리고 뿔뿔이 흩어져 사는 우리 두 아이들, 완전히 남남이 되어버린 나와 당신에게 가정의 달 5월은 황폐하고 무참합니다. 당신과 나, 그리고 작은 아이까지 세 식구의 생일이 들었던 지난 4월도 잔인했지만, 우리에겐 5월도 여전히 잔인한 달입니다.
신아연 소설가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21년간 호주에서 지내다 2013년에 한국으로 돌아와 인문예술문화공간 블루더스트를 운영하며 소설을 쓰고 있다. 생명소설 ‘강치의 바다’, 심리치유소설 ‘사임당의 비밀편지’,인문에세이 ‘내 안에 개있다’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올봄 여행주간(4.27~5.12)을 맞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전국 지자체와 여행 업계와 함께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여행주간’이란 여름에만 유독 붐비는 여행 수요를 다른 계절로 분산하고 국내 여행을 활성화하기 위해 2014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여행주간 누리집(travelweek.visitkorea.or.kr)에서는 테마별, 지역별 여행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세대별, 취향별 맞춤 여행지 등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열린관광지에서 다시 만난 봄’은 65세 이상 시니어를 대상으로 한 여행 프로그램이다. 참가자는 총 20명으로 식사나 입장료 등 여행경비가 제공된다. 단, 출발지까지 왕복교통비는 참가자가 부담한다. 오는 4월 30일 강원도 강릉시와 동해시 일대를 여행하며 2018년 열린관광지 12곳 중 하나인 망상해수욕장에도 방문한다. ‘열린관광지’란 장애물 없는 관광 환경을 만들기 위해 2015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가 시행하는 사업이다. 매년 여행지를 선정해 장애인과 거동이 불편한 시니어, 어린아이를 동반한 가족이 자유롭게 여행을 할 수 있도록 편의 시설을 확충하고 있다. 망상해수욕장의 경우 열린관광지 사업을 통해 단차 없는 통행로와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과 화장실, 기저귀 교환대를 마련했다. ‘열린관광지에서 다시 만난 봄’ 참가를 원하는 시니어는 4월 10일부터 21일까지 여행주간 누리집의 퀴즈이벤트를 통해 응모하면 된다.
이 외에 시니어가 참여할만한 프로그램으로는 ‘취향저격 마을여행단’이 있다. 국내 1호 로케이션 매니저(Location Manager, 현지촬영 감독)가 20개 마을을 엄선해 여행주간 누리집에 소개해 놓았는데 이 중 5곳을 선정해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4월 29일은 60대 가족 여행자들을 위한 여행지인 강원도 고성의 왕곡 마을을 여행한다. 반드시 여행의 대표자가 60대이어야 하며 가족관계를 증명하는 서류를 준비해야 한다. 5월 7일에는 40~50대 여행자들과 제천 산야초마을에서 건강한 먹거리로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할 예정이다. 취향저격 마을여행단에 참가하고 싶다면 4월 2일부터 15일까지 여행주간 누리집에서 사연과 함께 신청하면 된다. 당첨자에 한하여 1인당 만원의 참가비를 내면 된다.
취향저격 마을로 선정된 곳 중 충북 제천 산야초마을, 경기 양평 소나기마을, 강원 삼척 나릿골감성마을, 경북 경주 교촌마을은 40~50대를 위한 여행지로, 강원 고성 왕곡마을, 인천 동구 배다리 마을, 충북 청주 수암골벽화마을, 전북 진안 원연장꽃잔디 마을을 60대를 위한 여행지로 선정해 선정 이유와 여행 정보를 소개해 놓았다.
기분 좋은 봄바람이 불어오는 4월, 이달의 추천 문화행사를 소개한다.
(클래식) 2019 교향악축제
일정 4월 2~21일 장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출연 17개 국내 교향악단, 중국 국가대극원 오케스트라
이번 공연의 부제는 ‘제너레이션(Generation)’으로 우리 클래식 음악을 세계에 알릴 젊은 협연자들이 교향악단과 동행한다. 또한 국내에서 초연되는 블로흐의 교향곡 ‘C#단조’도 감상할 수 있다.
(연극) 패왕별희
일정 4월 5~14일 장소 국립극장 달오름 출연 국립창극단
국립창극단과 대만 배우이자 연출가로 활동하고 있는 우싱궈(吳興國)가 중국의 대표 경극 희곡 ‘패왕별희’를 창극화했다. 동명의 영화로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패왕별희’는 초나라의 패왕 항우와 그의 연인 우희의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별 이야기를 담고 있다. 판소리와 다양한 음악의 결합으로 재탄생한 ‘패왕별희’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를 모은다.
(공연) 이사오 사사키 벚꽃 낭만
일정 4월 6일 장소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출연 이사오 사사키, 마사츠구 시노자키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이사오 사사키가 내한 20주년 기념 콘서트를 연다. 이번 공연에서는 지브리 영화 OST 등 다방면으로 활약하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마사츠구 시노자키와 함께 따뜻한 봄에 어울리는 연주를 들려줄 예정이다.
(전시) 그림책NOW
일정 4월 12일~7월 7일 장소 서울숲 갤러리아포레 더 서울라이티움 5관
그림책 작가들의 일러스트레이션 작품과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상, 미디어아트, 조형물을 감상할 수 있다. 현대 그림책 일러스트레이션의 다양한 표현과 특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2018년 안데르센상 수상자 이고르 올레니코프의 원화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공개되며, 98개국 1844개 작품이 응모한 2019 나미콩쿠르의 수상작도 처음으로 선보인다.
(축제) 태안 세계튤립축제
일정 4월 13일~5월 12일 장소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읍 꽃지해안로 400 코리아플라워파크
태안 세계튤립축제에서는 튤립뿐만 아니라 수선화, 히아신스, 겹벚꽃 등 다양한 봄꽃을 만나볼 수 있다. 곳곳에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어 3만5000평을 가득 채운 형형색색의 꽃을 배경으로 사진도 남길 수 있다. LED 빛이 반짝이는
야간 축제장은 낮과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축제) 고양국제꽃박람회 2019
일정 4월 26일~5월 12일 장소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호수로 595
고양국제꽃박람회는 국내 최대 규모의 꽃 축제이자 국내 유일의 화훼 전문 박람회다. 실내정원과 야외 테마정원, 문화 공연 프로그램, 화훼 직판장 등이 운영된다. 특히 올해는 ‘원당화훼단지’와 이원 개최된다. 박람회장에서 화훼 단지까지는 무료 셔틀버스를 이용할 수 있으며 농가 견학, 체험 프로그램 등에 참여할 수 있다.
(권)정생 형, 이렇게 이름을 부르니 사무치는 그리움이 온몸으로 밀려옵니다. 그리고 윤동주가 자주 쓰던 부끄러움이라는 어휘도 호출됩니다. 부끄럽다는 것은 치기 어린 나의 문학청년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문학청년의 객기만 있었지 형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형은 천방지축인 나와 우리 패거리들을 너그러이 대하셨지요. 그때는 형이 그냥 맘씨 좋은 동네 형인 줄만 알았습니다. 돌이켜보니 5월이면 형이 가신 지 12주기가 되네요. 형은 살아서 하느님과 가장 많이 닮은 사람이셨으니 지금은 하느님 곁에 계시겠지요. 형을 처음 만난 것이 20대 초반이었는데 저도 지금은 머리가 허연 할배가 되었습니다. 문학청년 시절 육사백일장에서 장원을 했다는 이유로 대학생 신분으로 안동문학회 막내 회원이 되었습니다. 문화회관 다방에서 모임이 있어서 기다리는데 검정 고무신에 밀짚모자를 쓴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다방의 깔끔한 장식과는 어울리지 않는 차림이었지요. 돌이켜보니 형은 평생 그런 모습으로 사셨습니다.
작가나 시인이라면 예술가의 풍모가 있어야 한다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는데 형은 들에서 일하다가 잠시 장 보러 나온 사람 같았습니다. 현란한 말솜씨도 없고 작가다운 면이라고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동네 형이었습니다. 게다가 시골 교회에 종지기로 있다고 하니 실망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외양으로만 사람을 보는 덜떨어진 자가 바로 저였습니다. 살아 계실 때는 부끄러워서 이런 고백도 차마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편지를 씁니다.
첫 동화집 ‘강아지 똥’의 출판기념회가 시내 큰 교회에서 열렸습니다. 우리 패거리는 낮술에 취해서 교회에 갔습니다. 문학을 한다는 것이 무슨 대단한 특권이나 되는 것처럼 기행을 일삼던 시절이었습니다. 축가를 부르는 순서에 우리 패거리 가운데 군에서 갓 제대한 친구가 자청해서 앞으로 나가 군에서 배운 노래를 불렀습니다. “입술만은 돼도 가슴만은 안 돼요.” 이런 민망스런 가사가 있는 노래였습니다. 형은 그런 우리에게 이렇다저렇다 말 한마디 없었습니다.
안동을 떠난 뒤 오래 형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형을 다시 알게 된 것은 ‘녹색평론’에서 나온 산문집 ‘우리들의 하느님’을 읽고 나서였습니다. 담담하게 군더더기 없이 전개되는 문장을 읽으며 성자라는 어휘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가장 낮은 곳에 임하여 행하는, 이웃과 타자에 대한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사랑을 느꼈습니다. 그 뒤로 ‘강아지 똥’, ‘몽실 언니’, ‘한티재 하늘’ 등의 동화를 읽으며 나는 형이 지구상에서 하느님을 가장 많이 닮은 사람이라 생각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지어준 방 한 칸 부엌 한 칸 오두막에 김 서방이란 이름의 강아지와 사실 때 오두막을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소면 한 줌 삶아 그릇에 담고 까만 간장 한 종지 내놓고 “밥 먹시더” 하시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따뜻한 밥 한 그릇 같이하고 싶었습니다. 형은 집에 먹을 게 있는데 왜 식당에 가느냐면서 그냥 집에서 먹자고 했습니다. 나는 “식당에 안 가면 식당 하는 사람은 뭐 먹고 사니껴?”라고 협박을 했고 마지못해 따라나선 형과 근처 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은 적이 있지요.
누구에게도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단 한 번 화를 내신 적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습니다. 늘 취해 사는 병호 형이 오두막에 찾아가서 밤새 술을 마시고 술이 떨어지면 술도 마시지 않는 형을 보고 술 사오라고 못살게 굴었다지요. 밤새 한숨도 못 주무신 형이 한마디하신 것이 지인들 사이에 전설처럼 남아 있습니다. “귀신은 병호 안 잡아가고 뭐하노?”
그때까지 나는 형이 가난한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형이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안 것은 갑자기 하늘로 가신 뒤였습니다. 적지 않은 인세가 들어왔지만 모두 필요한 곳에 기부하고 자신은 겨우 의식주만 해결하신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한국작가회의 경북지회장 일을 할 때라서 상주 노릇을 한 것은 형도 아실 것입니다. 장례식에서 유언장을 읽을 때 각 지역에서 먼길 마다하지 않고 오신 손님들이 모두 울었습니다.
“죽거든 화장해서 빌뱅이 언덕에 뿌려 달라. 앞으로 나올 인세는 어린이들을 위해 써 달라.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25살 때 22살이나 23살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젊은 시절에 병을 얻어 결혼하지 않고 병과 더불어 사신 것을 알았기에 우리들의 슬픔이 더 컸습니다.
장례식 준비로 모인 우리들은 유언대로 할지 무덤을 만들지에 대해 오랜 논의를 하다가 유언을 어기기로 했습니다. 사시던 집도 교육용으로 남겨두고 집 뒤 빌뱅이 언덕에 소박한 무덤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다른 유언은 모두 지켰지만 형의 정신을 길이 남기기 위해 그리했으니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장례 후에 형의 방을 정리하던 윤환이 10억 원이 든 보통예금 통장을 찾았습니다. 통장을 들고 농협에 가서 왜 보통예금으로 했느냐고 따지자 농협 직원이 형이 그리하라고 해서 그리했다고 했습니다. 이자로 돈을 늘리는 것이 죄악이라고 여긴 형의 뜻을 알고 다시 숙연해졌습니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가까이 있는 이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가장 멀리 있는 원수까지를 사랑하라는 불가사의한 사랑의 폭을 말씀하셨습니다. 형도 그러합니다. 자신보다 남을 더 사랑하셨지요. 그래서 하느님을 가장 많이 닮았습니다. 하늘나라에서는 아프지 마시고 새 옷도 사 입으시고 연애도 하시기 바랍니다.
권서각 시인
197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으로 ‘눈물반응’, ‘쥐뿔의 노래’, 산문집으로 ‘그르이 우에니껴?’, 논저로 ‘이육사 문학과 저항정신’ 등이 있다. 본명 권석창. 환갑 이후에 쥐뿔도 모른다는 의미로 서각(鼠角)이라는 필명을 쓰고 있다.
따뜻한 봄 내음이 물씬 풍기는 3월, 이달의 추천 문화행사를 소개한다.
(뮤지컬) 윤동주, 달을 쏘다.
일시 3월 5~17일 장소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출연 박영수, 신상언, 김도빈 등
서울예술단의 대표작 ‘윤동주, 달을 쏘다.’가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며 완성도 높은 무대로 돌아온다. 시인 윤동주의 치열했던 삶과 예술을 담아낸 뮤지컬로 비극의 시대에 써내려간 그의 시(詩)들이 노래와 춤으로 어우러져 감동을 선사한다.
(행사) 2019 광양매화축제
일시 3월 8~17일 장소 전남 광양시 다압면 섬진강 매화마을 일원
전라남도 섬진강변 매화마을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광양매화축제는 전국에서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꽃축제다. 새하얀 눈처럼 만발한 매화와 아름다운 섬진강이 함께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산책로를 걸으며 백(白)매화뿐만 아니라 홍(紅)색, 청(靑)색 다양한 매화의 색과 향기에 취해보자. 인근 청매실농원에서 광양의 특산품인 새콤달콤한 매실도 맛볼 수 있다.
(클래식) 송영훈의 클래식 큐레이터, 낭만에 대하여
일시 3월 10일 장소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출연 해설가 및 첼리스트 송영훈, 비올리스트 이신규 등
클래식 음악이 어렵게만 느껴지는 사람들에게 안성맞춤인 공연이다. 음악과 미술사의 숨은 이야기들을 대한민국 대표 첼리스트 송영훈이 이해하기 쉬운 해설과 수준 높은 연주로 풀어낸다. 차세대 클래식 아티스트들의 연주로 낭만시대와 인상주의 음악뿐만 아니라 미술작품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연극) 앙리할아버지와 나
일시 3월 15일~5월 12일 장소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 출연 이순재, 신구, 권유리, 채수빈 등
까칠한 성격의 고집불통 할아버지 ‘앙리’와 꿈을 찾아 방황하는 대학생 ‘콘스탄스’가 특별한 우정을 쌓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연극이다. 세대 간의 갈등을 소통으로 풀어가는 주인공들은 보는 이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2017년 초연에 이어 이번에도 내공을 자랑하는 배우 이순재와 신구가 ‘앙리’ 역을 맡았다. ‘콘스탄스’ 역에는 권유리, 채수빈이 더블 캐스팅되어 색다른 분위기가 기대된다.
(행사) 제20회 구례산수유꽃축제
일시 3월 16~24일 장소 전남 구례군 산동면 지리산온천관광지 일원
산수유꽃이 만발하는 지리산에서 봄의 정취와 시원한 고로쇠 약수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꽃축제다. 행사장에서 산수유꽃으로 만든 먹거리를 맛볼 수 있으며, 산수유떡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 행사와 공연도 펼쳐진다.
(오케스트라) 노다메 칸타빌레 인 클래식
일시 3월 24일 장소 롯데콘서트홀
일본과 한국에서 클래식 음악 열풍을 일으킨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 이 드라마 속 정통 클래식이 오케스트라로 찾아온다. ‘한국판 노다메 칸타빌레’인 KBS ‘내일도 칸타빌레’의 연주 대역을 맡은 피아니스트 이현진과 풀 오케스트라의 라이브 연주로 클래식 음악을 새롭게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