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카 신고 에어팟 끼는 중장년’ 비즈니스 시장 흔드는 시니어

기사입력 2024-08-02 08:25 기사수정 2024-08-02 08:25

확대되는 고령자 라이프스타일 다양성에 업계 주목

(어도비 스톡)
(어도비 스톡)

2025년, 앞으로 5개월이 지나면 우리나라는 초고령사회에 들어선다. 다섯 명 중 한 명이 65세 이상이라는 의미다. 노인 인구 1000만 시대를 앞두고 시니어 비즈니스 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지금까지 시니어 비즈니스 시장(이하 시니어 시장)에는 시니어에게 유용한 것이어도 실제로 고령자가 잘 안 쓰거나 불편해하는 제품・서비스가 많았다. 이에 업계에서는 그동안 시장이 ‘공급자 시선’으로 이뤄졌음을 반성하며, 소비자인 고령자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른 다양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58년생 개띠의 등장

‘고령자용’이라고 말할 수 없는 산업, 시니어 비즈니스의 특징이다. ‘시니어’라는 말이 어떤 소비자를 아우르는지도 모호하다. 세계에서 고령화가 가장 빠른 한국이기에 관련 시장도 빠르게 클 거라는 기대와 달리 여전히 성장이 더딘 이유다. 하지만 ‘액티브 시니어’라 불리는 우리나라 베이비부머(1955~1974년생)가 65세로 들어서면서 새로운 시장에 대한 요구가 나타났다. 시니어 비즈니스 시장에 뛰어들어 고군분투하고 있는 스타트업 대표들은 최근 본격적인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1958년생이 65세가 된 지난해부터 변화가 두드러지는 추세다.

이준호 그레이스케일 대표는 “시니어 시장 규모가 점점 커지는 것은 확실하지만, 시니어 스스로 주체적인 소비자로서 권리를 찾고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점검했다. 현준엽 로쉬코리아 대표도 “시니어 시장의 메가트렌드가 간병과 요양에서 최근 주거로 흐름이 전환되고 있지만 소비자의 욕구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진 않다”면서 “여가 시간과 가처분 소득이 늘었음에도 소비는 위축된 고령 소비자들이 은퇴 후의 삶에 즉각적이고 실질적인 도움이 될 서비스를 찾기 시작했다”고 짚었다. 이진열 한국시니어연구소 대표는 “소비자와 시장에 대한 정의가 세분화되고 있지만 더욱 명확해지지 않으면 시니어 시장에 혁신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업계에서는 ‘시니어’라고 통칭되던 고령 소비자를 다시 분석하기 시작했다. 김민지 시놀 대표는 “노인이라고 인식하는 연령대가 75세로 10년 늘어났다”면서 “활동적인 시니어가 등장하면서 여가・패션・레저 등으로 시장 범위가 확대되고 있음을 체감한다”고 말했다. 신준영 캐어유 대표도 “최근 공공 영역에서 충족되지 않았던 다양한 욕구가 드러나면서 민간 영역에서 이전과 다른 형태의 서비스가 등장하고 있다”고 봤다.

▲호카는 2009년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이들을 위해 척박한 자연환경에서도 편하게 기능하는 신발을 만들면서 시작됐다.  ‘노인이 신는 등산화 같지 않은 예쁘고 편한 신발’로 고령자에게도 입소문이 났다. (사진=호카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호카는 2009년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이들을 위해 척박한 자연환경에서도 편하게 기능하는 신발을 만들면서 시작됐다. ‘노인이 신는 등산화 같지 않은 예쁘고 편한 신발’로 고령자에게도 입소문이 났다. (사진=호카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에이징’에 주목하라

그동안 ‘시니어’는 적게는 55세, 많게는 60세 이상의 연령대를 지칭하는 말로 쓰였다. 하지만 이제 나이로 고령 소비자를 구분해서는 시니어 시장에서 성공할 수 없다. 이의훈 카이스트 기술경영학부 명예교수는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에이징’(Aging, 노령화)이라는 현상”이라고 강조했다. 노령화를 기준으로 보면 이미 10대부터 노화가 진행되며, 노령화 시장의 실수요자는 30대 후반부터 해당된다. 나이가 아닌 생활양식에 기반한 소비자 분석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 교수는 “마케팅에서 소비자를 분석할 때 ‘사이코그래픽스’(Psychopraphics), 즉 소비자의 심리를 파악해 개인차를 확인하고 생활양식을 알아내는 것이 핵심”이라며 “사람들은 자신의 나이를 많게는 10~15세까지 더 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65세 소비자여도 ‘시니어용’이라고 하면 ‘내가 쓸 제품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이에 최근에는 고령자의 불편함을 해소해주는 기능이 있는 제품이지만, 누구나 사용해도 괜찮고 디자인도 예쁜 제품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수요가 반영된 대표 사례로 애플과 호카를 들 수 있다.

최근 애플은 무선 이어폰인 에어팟에 보청기 기능을 추가하겠다고 발표했다. 귀가 잘 안 들려도 보청기를 착용하면 ‘청력이 안 좋은 노인’이라는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볼까 봐 거부하는 경우가 많은데, 젊은이들도 즐겨 착용하는 이어폰이라면 보청기처럼 보이지 않으면서 디자인도 ‘노인스럽지’ 않으니 고령자도 이용하게 될 테다.

러닝화 시장에서 나이키를 제치고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브랜드 호카는 2009년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이들을 위해 척박한 자연환경에서도 편하게 기능하는 신발을 만들면서 시작됐다. 2014년 미국 패션 기업 데커스 그룹에 인수되면서 편리한 기능에 디자인까지 더했다. 이후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는데, ‘노인이 신는 등산화 같지 않은 예쁘고 편한 신발’로 고령자에게도 입소문이 났다.

이처럼 노화가 진행된다는 측면에서 느끼는 불편함은 분명 시니어 시장의 독특한 수요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면서도 나이가 드러나지 않는 제품을 사용하고 싶어 하는 것 또한 그들의 욕구다.

▲Gerontographics 모델에 따른 에이징 소비자 분류는 위와 같다.(브라보마이라이프DB)
▲Gerontographics 모델에 따른 에이징 소비자 분류는 위와 같다.(브라보마이라이프DB)

노인은 전 세계에 있다

젊다고 모두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지는 않는 것처럼 고령자 역시 다양한 생활양식에 따른 가치 소비를 한다. 이의훈 교수는 고령 소비자도 ‘개별화’ 측면으로 보는 것이 가장 좋지만, 그럼에도 그들을 나눠본다면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건강한 호사가, 건강한 은둔자, 병든 외출자, 병약한 은둔자다.

건강한 호사가는 장년층에 가까운 사람들이다. 소득이나 사회적 지위 면에서 더 나은 위치에 있고, 인생을 즐기려는 단계에 있다. 정반대에는 병약한 은둔자가 있다. 만성적으로 질병에 시달리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집단으로, 스스로도 ‘노인’이라 여긴다. 건강한 호사가가 건강한 은둔자나 병든 외출자 단계를 거쳐 병약한 은둔자가 될 수도 있다. 건강한 은둔자 그룹은 사회에서 물러나 있지만 건강한 삶을 살며, 병든 외출자는 몸 상태는 좋지 않지만 여전히 활동적인 집단을 말한다. 건강한 은둔자 집단은 일상에서 여러 과업을 수행하기에 ‘늙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병든 외출자 집단은 병약하지만 육체적・재정적 독립과 풍요로움을 여전히 추구한다. 이 교수는 “이를테면 프리미엄 실버타운은 건강한 은둔자를, 요양시설은 병약한 은둔자를, 스마트홈이나 자율주행 기술은 병든 외출자를, 실버 커뮤니티나 보험은 건강한 호사가를 타깃으로 볼 수 있다”면서 “일반적인 시장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고령자의 욕구를 더해 파악해야 한다. 기회는 정말 많지만 그만큼 어려운 것이 시니어 시장”이라고 덧붙였다.

시니어 비즈니스 시장은 여전히 블루오션이다. 이의훈 교수는 특히 미국의 ‘선시티’나 ‘더 빌리지’처럼 국내에도 ‘은퇴 커뮤니티’가 필요하다고 봤다. 더 빌리지는 가족 중 55세 이상인 사람이 있으면 입주할 수 있는 마을이다. 50개가 넘는 골프코스, 수십 개의 수영장과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2500개가 넘는 소셜 클럽이 운영된다. 다만 은퇴 커뮤니티는 자본이 많이 필요하기에 대기업이 관심을 많이 가지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그는 “단순히 고령 친화 주택을 짓는다고 고령자의 삶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라며 “돌봄이 아니라 재미를 추구하며 살 수 있는 주거 환경이 곳곳에 자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움말 이의훈 카이스트 기술경영학부 명예교수

(브라보마이라이프DB)
(브라보마이라이프DB)

시니어 비즈니스 플레이어 위한 TIP

앞으로 시니어 비즈니스 시장 규모가 더 커질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준비 없는 창업은 곧 실패로 이어진다. 수익 실현까지 오래 걸리는 분야인지라 버티지 못하고 사라지는 기업도 많다. 성공적인 시니어 비즈니스를 위해 시장에 먼저 뛰어든 업계 대표들의 경험이 담긴 조언을 전한다.

◇신준영 캐어유 대표 시장에 진입하기 전 고령자들을 현장에서 많이 만나보면 좋겠습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실질적인 욕구에 대한 깊이 있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이진열 한국시니어연구소 대표 내가 뛰어들고 싶은 분야를 명확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요양 분야는 비즈니스 모델 수립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이준호 그레이스케일 대표 향후 시니어 시장은 발전하겠지만, 분야에 따라 성장 추세는 다를 수 있습니다. 아주 디테일한 접근으로 차별화된 강점과 경쟁력이 필요합니다.

◇김민지 시놀 대표 ‘성공적인 노화’를 위한 기능에 더 큰 잠재시장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떤 제품・서비스도 모든 시니어를 품을 수는 없기에, 정확한 타깃 설정을 해야 합니다.

◇현준엽 로쉬코리아 대표 대표・직원 모두가 업에 대한 뚜렷한 사명감을 가져야 합니다. 시니어 관점에서 필요한 것을 계속해서 찾고 제안한다면 큰 성취감을 느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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