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외진 산골에 마녀들이 산다. 오순도순 친자매들처럼 정겹게 지낸다. 산골짝 여기저기, 멀거나 가까이에 떨어져서들 살지만 여차하면 만나고 모이고 뭉친다. 모임 전갈이 떨어지면 빗자루를 타고 나는 마녀처럼 모두들 득달같이 달려와 자리를 함께한다. ‘마녀들’이라지만 위험하거나 수상할 게 없는 아줌마들이다. ‘마음씨 예쁜 여자들’, 그걸 줄인 게 ‘마녀들’
숲으로 들어서자 솔 그늘이 짙다. 부소(扶蘇)란 ‘솔뫼’, 즉 소나무가 많은 산을 일컫는 백제 말이란다. 부소에 산성을 쌓았으니 부소산성이다. 백제 당시에는 사비성이라 불렀다. 산의 높이는 겨우 106m. 낮고 평평하나, 이 야산에 서린 역사가 애달파 수수롭다. 부소산성은 나당연합군에게 패망한 백제의 도성(都城). 백제 최후의 비운과 아비규환이 화인(火
우리나라의 열세 번째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산사 7곳’ 네 번째는 순천 선암사이다. 선암사는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조계산 동쪽에 위치하며, 숲으로 둘러싸인 넓은 터에 가람을 배치하였다. 많은 대중이 생활하는 대규모 산사였기 때문에 사방으로 둘러싸인 ‘ㅁ’자 형태인 건물이 많이 건립되었다.
절 서쪽에 신선이 바둑을 두던 평평한 바위가 있어 ‘
평안북도 정주가 고향이신 아버지는 젊은 시절 경의선 철도 기관사였다. 집안 식구들이 전부 철도 쪽 일을 했다. 광복 후 남북으로 국토가 나뉘어졌어도 처음에는 어느 정도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했다고 한다. 그러다 점점 통제가 심해지자, 금강산 여행 간다고 하고는 원산에서 경원선 기관차를 타고 남하하셨다고 한다.
그때 금강산 여행 증거품으로 아버지는 기념품
뒷동산 산책로는 참나무, 소나무, 아카시아가 적당히 섞여 있는 숲길이다. 푸른 잎에 붙은 도토리가 바람개비처럼 빙그르르 돌면서 발아래로 떨어진다. 오솔길에 그 잔해가 수북하게 쌓였다. 하지만 하늘을 나는 다람쥐나 나무에서 재주를 부리는 청설모는 보이지 않는다.
왜 도토리가 땅에 떨어질까
바람개비 모양 도토리를 살폈다. 거센 바람에 꺾인 게 아니다.
처음에는 귀촌 목적이 아니었다. 꽃향기, 흙냄새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텃밭 하나 장만할 생각이었다. 부부는 사랑에 빠지듯 덜컥 첫눈에 반해버린 땅과 마주했다. 부부는 신이 나서 매일 밤낮없이 찾아가 땅에 온기를 불어넣었다. 응답이라도 하듯 땅은 씨앗을 감싸 안았고, 뿌리 깊은 나무는 온몸으로 품었다. 텃밭은 꽤 큰 대지가 됐고, 이후 정자와 살 만한 집도
토박이는 여러 세대를 내려오면서 한 곳에 살아온 사람을 말한다. 요즘에는 도시에서 인생의 절반 이상을 살면 도시 토박이로 인정하자는 주장도 있다. 무작정 한 곳에서 오래 살기는 어렵다. 토박이가 되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관악구에서 산 지 35년이 훌쩍 넘었다. 인생의 절반이다. 이웃과 정을 나누며 고향처럼 느껴지는 아담한 곳이다. 뒷동산 체육공원
초간정(草澗亭) 원림(園林)을 찾아 길을 나선다. 경북 예천군 용문면 죽림리에 있다. 햇살이 따갑다. 매서운 폭염이다. 그러나 땡볕을 먹고 여름 꽃이 피고 과일이 실팍하게 여무니 해를 향해 눈총만 쏠 일 아니다. 접때엔 물 폭탄처럼 장대비 내렸다. 장자 말하길, 자연은 자애롭지 않아 만물을 하찮게 여긴다 했던가. 폭우도 폭염도 무심한 자연의 순행(順行)
조선왕실의 뿌리 '전주'를 떠나다
전주(全州)는 전주 이씨의 시조(始祖)와 조상들이 태어나고 자란 조선왕실의 뿌리라 할 수 있는데, 대대로 살아오던 이곳에서 이성계의 4대 조상 이안사에 이르러 전주를 떠나게 된다.
훗날 이성계에 의하여 목조대왕으로 추존된 이안사는 시조 이한의 18세가 되며 전주에서 태어나 자랐으니 지금의 이목대(梨木臺)가 그곳인
어머니, 대추꽃이 여물고 원추리꽃이 피었어요.
그간 잘 계셨는지요.
지난해 추석 지나 애들이 집을 장만했다고 해서 보고도 할 겸 찾아뵙고는 꽤 여러 달이 지났어요. 그때 선산에는 검불이 내렸고 큰 소나무 가지에서 부엉이가 귀를 쫑긋거리며 내려다보고 있었지요.
두 분이 생전 그렇게 불화했는데 나란히 누워 산천을 바라보고 계시는 걸 보면 많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