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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국남 뉴컬처 키워드] 가수들의 콜라보
- 글 배국남 대중문화 평론가 knbae24@hanmail.net “제가 어린데 (노래가)좋네요. 저도 나이 곧 들겠지요.”(박혜인) “올해 29세인데 이 노래가 심금을 울려요.”(lemon77) “나이 들어 들으니 정말 와 닿는 가사네요.”(강경숙) “중학교 때 눈물 흘리며 듣던 곡인데 50 가까운 지금 들어도 눈물이 나요.”(원석정)… 한 노래에 대한 네티즌의 반응이다.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달 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 내 젊은 연가가 구슬퍼…’ 올해 초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에 OST로 삽입된 출신 가수 김필과 김창완의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을 통해 재탄생한 ‘청춘’이다. 신세대 가수 김필과 중견 가수 김창완의 콜라보레이션곡 ‘청춘’은 원곡이 발표된 지 35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중·장년층에게는 추억을 되살리는 음악으로, 신세대에게 요즘 대중음악에서 접할 수 없는 정서와 의미가 담보된 노래로 다가간다. 최백호와 후배 가수 린이 5월 14일 방송된 KBS 에서 1982년 발표해 대중의 폭발적 사랑을 받은 김수희의 ‘멍에’를 새로운 감각으로 편곡해 신선한 콜라보 무대를 선보여 관객과 시청자의 큰 박수를 받았다. 요즘 대중음악의 가장 큰 트렌드이자 키워드는 콜라보다. 콜라보레이션은 마케팅에서 각기 다른 분야에서 지명도가 높은 둘 이상의 브랜드가 손잡고 새로운 브랜드나 소비자를 공략하는 기법으로, 주로 패션계에서 디자이너 간의 공동 작업을 일컫는 용어로 사용됐다. 최근 들어 콜라보는 대중음악에서 가수와 가수 등 음악가끼리, 혹은 다른 분야의 아티스트 등과 일시적으로 팀을 이뤄 작업하는 것을 의미하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2014년 남자 가수 정기고와 걸그룹 씨스타 멤버 소유의 콜라보곡 ‘썸’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가수들의 콜라보가 하나의 인기 트렌드로 강력하게 부상했다. JYP엔터테인먼트 소속의 미쓰에이 수지와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엑소 백현을 비롯한 소속사가 다른 가수들, 록그룹 국카스텐의 하현우와 트로트 가수 주현미 등 장르가 다른 가수 등 다양한 형태의 가수들의 콜라보를 통해 탄생한 노래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특히 김창환-아이유의 ‘너의 의미’, 비와 태진아의 ‘라송’등 세대가 다른 가수들의 콜라보는 큰 관심을 끌고 있다. 1980~1990년대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낸 독특한 음색의 이광조와 인디 가수 요조의 ‘케이팝 클래식(K-POP CLASSIC)’을 비롯해 아이유와 양희은, 이문세와 슈퍼주니어의 규현 등 40~60대 가수와 10~20대 가수 및 아이돌 그룹의 콜라보 음반에서부터 공연까지 신구 세대 가수의 콜라보 작업이 왕성하게 전개되고 있다. 음반 기획자들은 “대중음악계에서 요즘 전개되는 가수들의 콜라보는 다양한 형태로 진행돼 앞으로 더 영향력이 커질 것이다. 아이돌 가수의 경우 한 시대를 풍미했던 레전드 가수와 호흡을 맞출 수 있고, 중견 가수의 경우 젊고 역량 있는 후배와 신선한 조합으로 색다른 감성을 전달할 수 있다”며 대중음악계에서의 가수들의 콜라보 전망을 긍정적으로 진단했다. 이처럼 신구 세대 가수의 콜라보를 비롯한 가수들의 콜라보가 성행하는 이유는 뭘까. 성격이 다른 가수들의 콜라보는 기존 활동했던 모습이나 음악에서 벗어나 대중에게 새로운 음악 스타일을 전달할 수 있고, 음악의 스펙트럼을 확장할 수 있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양희은, 김창완, 이문세 등 선배 가수들과 콜라보를 자주한 아이유는 “선배들과의 콜라보는 또래 뮤지션들에게서 느낄 수 없는 음악적 정서와 감성, 스타일을 배울 소중한 기회다. 선배 가수들과의 콜라보를 통해 내 음악의 스펙트럼도 확장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또한, 음원과 디지털 싱글 등 대중음악 시장이 디지털 온라인 중심으로 전환한 것도 가수들의 콜라보가 급증한 이유의 하나로 꼽힌다. 디지털 중심의 대중음악 환경에서는 적은 제작비로 쉽게 디지털 싱글을 제작할 수 있어 다양한 콜라보 작업을 진행할 수 있다. KBS , SBS , MBC , JTBC 등 음악 예능 프로그램이 많이 늘어난 것도 다양한 가수들의 콜라보 등장을 낳게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음악과 게임, 경연 등 다양한 예능 장치를 음악과 혼합한 음악 예능이 늘어나면서 가수들의 콜라보 무대 수요가 급증했다. 여기에 드라마와 영화, 예능 프로그램에서 1970~1990년대 복고 바람이 강타한 것도 가수들의 콜라보를 대중음악의 인기 트렌드로 부상시킨 원동력이다. 최근 드라마 , 예능 프로그램 등 대중문화 전반에 복고 바람이 불며 1970~1990년대를 소환하는 경우가 부쩍 많아졌다. 드라마, 영화, 예능 프로그램의 복고 신드롬은 자연스럽게 1970~1990년대의 노래와 가수들의 소환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과거 전성기를 누린 가수들의 원곡 그대로가 아닌 원곡 가수와 신세대 가수들의 콜라보를 통해 새롭게 재탄생한 노래들이 큰 사랑을 받았다. 이 때문에 대중문화 전반에 복고 코드 득세와 함께 가수들의 콜라보 특히 신구 세대 가수의 콜라보가 성행하게 됐다. 대중음악에 강력한 트렌드이자 키워드로 떠오른 콜라보는 긍정적인 부분이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다른 장르 간, 신구 세대 간, 다른 소속사 간 가수들의 콜라보를 통해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하면서 대중음악의 지평을 확장할 수 있고 가수들 역시 자신들의 음악적 스펙트럼을 확대할 수 있다. 록밴드 국카스텐과 콜라보 무대를 가졌던 트로트 가수 주현미는 “국카스텐과 콜라보하면서 내 노래가 색다르게 다가왔다. 국카스텐과의 콜라보를 통해 내가 하는 트로트도 얼마든지 젊은 감각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또한, 콜라보를 통해 대중음악 수용자를 확장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대중음악 평론가들은 가수들의 다양한 형태의 콜라보가 진행되면서 작업에 참여한 가수들의 팬덤이 합쳐지며 시너지를 내고 이것이 팬층의 확장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특히 신구 세대 가수의 콜라보의 경우, 선배 가수들이 인기가 높은 신세대 가수와의 콜라보를 통해 신선한 감각과 신곡에 민감한 젊은 층을 공략할 수 있고 신세대 가수들은 전설적인 선배 가수들과의 콜라보를 통해 음악 완성도를 높이고 기성세대에게도 존재감을 알리는 효과가 크다. 신구 세대 가수의 콜라보는 음악 시장의 주요 소비층인 10∼20대에게 부모 세대의 음악을 이해하게 하고, 기성세대에게는 젊은 스타의 최신 음악에 관심을 끌게 해 10~20대 젊은 층 위주의 국내 음악 시장 한계를 극복하는 돌파구 역할도 한다. 회사원 장동수(48) 씨는 “의 OST ‘청춘’을 통해 김창완과 콜라보한 김필이라는 가수를 처음으로 알게 됐고 그의 음악에 관심을 두게 됐다. 고교생 딸은 반대로 ‘청춘’을 통해 김창완의 노래를 좋아하게 되고 음반까지 구입했다”고 말했다. 가수들의 다양한 형태의 콜라보는 무엇보다 취향 간, 세대 간, 스타 팬덤 간의 벽과 단절을 허물고 이해와 교류, 소통의 접점을 확장하는 의미 있는 결과도 낳고 있다. 아이돌과 7080 가수와의 콜라보는 신세대는 부모 세대의 문화를, 부모 세대는 젊은이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아이유, 장기하와 얼굴들, 김필 등 젊은 가수들과의 왕성한 콜라보를 진행하고 있는 김창완은 “가수들의 콜라보는 상이한 연령, 취미 등을 가진 사람들 상호 간의 이해의 장을 마련해줘 대중음악 소비층의 확장뿐만 아니라 세대 갈등 등 사회적 문제 해소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측면이 있다”고 강조했다.
- 2016-07-08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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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부는 주고 받음이다 Part 2] TV 속 스타, 나눔의 별로 반짝이다
- 기부나 봉사활동을 하는 연예인의 모습을 달갑지 않게 보는 이들이 있다.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하는 행동이라는 게 그 이유다. 그러나 아무리 이미지를 좋게 하려는 목적이라 해도 수억 원의 금액을 기부하고, 장기를 기증하고, 머나먼 아프리카에 봉사활동을 가는 것은 일반인에게도 쉽지 않은 선택이다. 최근에는 팬클럽 회원들과 봉사활동을 하거나, 목소리 재능기부, 온라인 도네이션을 통해 네티즌과 함께 기부금액을 모으는 등 대중과 함께하는 형태의 선행도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처음에는 재단이나 기관의 홍보대사, 친선대사 등으로 나눔을 시작했지만 세월이 지나 더욱 성숙한 자세로 선행을 이어오고 있는 연예인들의 모습도 보인다. 1980년대부터 유니세프에서 봉사활동을 해온 배우 안성기(63), 1986년부터 초록우산 어린이 재단과 인연을 맺고 있는 개그맨 이홍렬(61), 그리고 1991년 월드비전 친선대사로 임명된 후 전 세계 아이들을 돕고 있는 배우 김혜자(74) 등. 그들은 이미지 차원을 넘어서 삶의 철학이 담긴 진중한 나눔 활동으로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대중에게 받은 사랑을 어려운 이웃과 사회에 보답하며 훈훈한 에너지를 선순환하고 있는 스타들을 살펴봤다. 이문세X프렌즈 아트 컬래버레이션 가수 이문세(56)는 젊은 일러스트레이터, 캘리그래퍼들과 함께 ‘이문세X프렌즈 아트 컬래버레이션’ 재능기부 프로젝트에 참여해 크리스마스카드를 직접 제작했다. 수익금은 위안부 할머니 후원시설인 ‘나눔의 집’으로 전달돼 할머니들의 생활, 복지, 증언 활동을 위해 사용될 예정이다. 카드는 10월 30일 ‘네이버 해피빈’과 ‘2015 씨어터 이문세’ 수원 공연장에서 시작해, 강남 교보타워 내 하임, 서울역 디트랙스 등에서 판매하고 있다. 네이버 해피빈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300만 원을 목표로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11월 11일 기준) 685만여 원을 넘기며 목표액의 2배가 넘는 수익을 냈다. 이문세는 2009년 MBC FM 라디오 의 청취자 461명의 사연을 담아 만든 노래 ‘이 겨울 날 지나간다’의 저작권 기부를 통해 나눔을 실천하기도 했다. 크리스마스캐럴 느낌이 나는 발라드 곡으로, 청취자의 참여로 만들어진 곡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저작권법에 따라 이문세 사후 50년까지 노래에 대한 저작권과 음원수익금은 서울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갖게 되며, 모두 불우한 이웃을 위해 쓰일 예정이다. ‘해밀학교’의 이사장 인순이 ‘거위의 꿈’이라는 노래로 많은 이에게 꿈과 희망을 선사한 가수 인순이(59).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 사회복지공동모금회 1억 원 이상 고액기부자 모임)의 명단에도 이름을 올린 인순이는 각종 봉사활동은 물론 대학생 오케스트라 팀과 재능기부 형태의 ‘지하철 게릴라 콘서트’를 하는 등 다양한 자선 공연도 꾸준히 하고 있다. 대중에게 받은 사랑에 보답하고자 선행을 한다는 그녀는 오랜 고민 끝에 2013년 4월 강원도 홍천의 작은 마을 명동리에 다문화 대안학교 ‘해밀학교’를 설립했다. 2011년부터 3년여간의 준비과정을 통해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위한 배움터를 완성했다. 내년부터는 그동안 시행해온 수업료 면제에 이어 입학금, 급식비, 기숙사비까지 학교에서 부담하는 무상교육을 실시한다. 해밀학교의 이사장 인순이는 “학교를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찾고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찾아 할 수 있는 꿈의 터전을 만들고 싶다. 내가 대한민국에서 겪었던 어려움, 외로움, 고통뿐만 아니라 사랑, 격려, 위로를 나와 같은 다문화 아이들이 알아갔으면 좋겠다”며 많은 아이들이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힘쓸 것이라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재능기부, 해외봉사, 장기기증까지… 국민엄마 고두심의 선행 릴레이 1983년부터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후원자로 나선 고두심(64)은 2006년 이후부터는 재단 내의 스타서포터즈에서 나눔대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배우 채시라와 함께 재단이 진행한 ‘어른이날(성년의 날)’ 캠페인 CF에 목소리 재능기부에 참여했다. 그녀는 “어린이를 돕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옵션이 아닌 필수”라며 “어른들이 나라의 미래인 어린이들의 든든한 지원자가 되자”고 말한 바 있다. 자신의 모교인 제주여자고등학교에 2억 원의 장학금을 기부하고, 2008년 에티오피아 우간다에 봉사활동을 다녀오는 등 다양한 선행을 펼쳐온 그녀는 1999년 장기기증 캠페인에 참여하며 장기기증 서약을 하기도 했다. 고두심은 한 인터뷰를 통해 “장기기증 서약 이후 건강을 더 생각하며 좋은 마음을 갖고 좋은 생각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며 “나이가 드니까 세월이 인생을 가르쳐 주더라. 어차피 흙으로 돌아가 썩을 육신인데 다른 사람에게 주고 가면 얼마나 좋겠는가. 주위 동료 연예인들에게 기증하라고 자주 권하는데 아직은 무서워서 못하겠다는 사람이 많다”며 장기기증 문화를 알리고 동참하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한다는 뜻을 전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1호 공익신탁자 유동근 올해 7월 배우 유동근(59)은 이철희 분당서울대병원장, 김현웅 법무부 장관, 한비야 국제구호전문가와 함께 국내 첫 공익신탁자가 됐다. 공익신탁은 기부자가 은행이나 단체에 재산을 맡기고 이를 운용해 나온 수익금을 장학, 구호 등 자신이 지정한 공익사업에 사용하도록 하는 제도다. 법무부와 외부 감시인 감독 아래 기부자가 원하는 곳에 정확하게 쓰이고, 적은 금액이라도 사용처가 투명하게 공개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간단한 절차로 ‘나만의 재단’을 만드는 셈이다(법무부 상사법무과에 문의 후 참여). 유동근은 광복 70주년을 맞아 독립유공자 후손의 생계 및 교육 지원을 위해 ‘나라사랑 공익신탁’을 만들었다. (이철희 원장은 ‘난치성 질환 어린이 치료를 위한 공익신탁’, 김현웅 장관은 아동학대 피해자를 지원하는 ‘파랑새 공익신탁’, 한비야씨는 인류애를 키우는 사업에 쓰일 ‘세계시민학교 공익신탁’에 참여) 그는 2008년 숭례문 화재 당시 복원 성금으로 1억 원을 기부한 바 있다. 연예계 선행 바이러스 정애리의 ‘하래의 집’ 연예계 기부천사 정애리(55)는 아프리카 구호활동, 몽골 기아체험, 동남아 쓰나미 피해 지역 방문, 도시락 캠페인, 생명의 전화, 연탄은행 홍보대사, 월드비전 친선대사 활동 등 다양하고 끊임없는 선행을 펼치고 있다. 그녀는 2004년부터 SBS 사회공헌 프로젝트 프로그램 에 참여하며 매년 후배 연기자들과 아프리카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2009년에 함께 아프리카에 다녀온 배우 장서희는 “연탄 나르기 봉사활동을 끝내고 드라마 촬영장에 온 정애리 선배의 모습을 보고 나도 아름다운 일을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정애리의 선행이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2005년에는 17년간의 봉사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쓴 에세이 를 펴내며 인세 수익금 1억 원 전액을 정읍의 ‘사랑의 나눔의 집’에 기부했다. 책에는 그녀가 직접 운영하고 있는 고아시설 ‘하래의 집’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 “지상에서 굶는 아이들이 없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해 봉사할 것”이라며 책을 펴낸 소감을 전한 그녀는 책을 통해 ‘하래의 집’에 대한 이야기와 나눔의 의미를 설명했다. 김자옥 재단 ‘공주는 즐거워’ 프로젝트 지난해 11월 안타깝게 우리 곁을 떠난 배우 김자옥을 추모하고 평소 어려운 이웃을 돕고자 했던 그녀의 뜻을 기리는 ‘김자옥 재단’이 내년 1월 설립된다. 기아대책 홍보대사활동, 사랑 나눔 한복 패션쇼 참여 등을 비롯해 2007년에는 배우 주현, 전무송, 나문희 등과 함께 출연료 전액을 어려운 이웃에게 기부하는 도네이션 드라마 (KBS 2TV)에 출연하는 등 다양한 나눔을 실천했던 그녀다. 고 김자옥의 남편인 가수 오승근은 “생전 어려운 이들을 위해 선행을 많이 한 아내의 뜻을 이어가고 싶다”고 재단 설립 배경을 설명했다. ‘김자옥 재단’은 배우 강부자를 비롯한 동료 연기자들이 동참해 장애인 시설 등을 찾아 봉사활동과 재능기부 등을 할 계획이다. 김자옥 재단은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원하는 40~60대 여성들이 불우한 청소년들의 멘토로 활동할 수 있는 ‘공주는 즐거워’ 프로젝트를 첫 공식 활동으로 기획하고 있다.
- 2015-12-18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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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 도서] 명곡으로 만나는 그 시절의 노스탤지어 <인생, 한 곡>의 저자 김동률 인터뷰
- 서강대 기술경영대학원 김동률 교수가 고 권태균 사진작가와 함께 여행하면서 음미한 20곡의 노래와, 각각의 노래가 탄생한 장소에 관한 얘기를 곁들인 음악 여행 에세이다. 두 사람은 노래의 배경이 된 곳을 찾아가 곡이 탄생한 당시 시대 상황과 뒷이야기, 그 시절 청춘들의 낭만과 사랑, 그리고 각각의 노래가 이 땅에 미친 영향 등을 탐색한다. 수록된 노래는 열병처럼 지나온 젊은 날의 사랑과 그리움이 녹아 있는 것들이다. 아득한 낭만을 뒤로하고 세월 속에 야위어가는 추억을 이야기한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를 비롯해, 문득 슬퍼지거나 외로워질 때 돌담길과 함께 회상하게 되는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 등 가버린 젊음과 옛사랑을 추억하며 묵직한 그리움에 젖게 한다. INTERVIEW:: 늙은 노래를 위한 찬가를 부르다 의 저자 김동률 ‘인생도, 청춘도, 꿈도 노래와 함께 간다. 열아홉 순정은 황혼 속에 슬퍼지고 얄궂은 노래와 함께 세월은 간다. 이 책은 삶의 신산함을 겪은 이 땅의 중년에게 바치는 소박한 헌사다.’ 의 저자 김동률 교수가 쓴 서문의 일부다. 늙은 노래가 많이 불리는 사회가 건강하고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를 만나봤다. 을 통해 중·장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노래를 통해 지금 중·장년층의 곤고했던 지난 시절을 공유하고자 했습니다. 이 책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굴곡 속에 험난하고도 신산한 삶을 보낸 중년세대에게 바치는 조그만 헌사’라고 하겠습니다. 386세대는 취업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등 산업화의 과실을 누리면서도 민주화의 진통 속에서 고민이 많았죠. 보도블록을 깨 던지면서도 낭만을 꿈꾸었고, 그 과정에서 노래는 그 시절 황폐해진 젊음을 위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곡절 많고 사연 많은 파란만장한 시절의 의미를 담아보고자 했습니다. 소개된 노래 중 그때 그 시절, 그리고 현재까지 가장 큰 위로가 됐던 곡은 무엇인가요? 책에 수록된 모든 노래가 위로가 됩니다. 굳이 골라내자면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사계’, 그리고 송창식의 ‘고래사냥’을 꼽겠습니다. 요즘 대중가요 가사에 비추어 볼 때, 그 시절 노래에는 시처럼 아름답고 깊이 있는 가사가 많죠. 어떤 노래 가사를 가장 좋아하나요? 역시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손로원 작사, 박시춘 작곡)가 가장 뛰어나죠. 1,2,3절 모두가 폐부를 찌르는 페이소스가 녹아 있습니다. 생의 근원적인 슬픔을 건드린 이 같은 노랫말은 이전에도 없고 앞으로도 다시 나타나기 어려울 것으로 봅니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등의 구절은 김소월의 시구를 능가하는 빼어남이 있죠. 신촌은 예나 지금이나 젊음의 거리입니다. 신촌에서 음악과 얽힌 옛 추억이 있는지요. 대학 시절 신촌에서 하숙 생활을 했어요. 요즘 상업적인 홍대입구와는 다르게 그 시절 젊음의 거리였고, 386세대의 풋풋함과 순수함이 담겨 있죠. 당시 신촌 골목에는 락카페가 많았고 인근 여자 대학생과의 미팅 이후 생맥주로 사랑과 꿈을 나누곤 했습니다. 장밋빛 인생, 러쉬, 우드스탁 등의 술집은 386세대에게는 정신의 고향과도 같습니다. 책에 담지 못한 노래 중에서 중년들이 공감하고, 기억할 만한 게 많을 텐데요. 아직 담지 못한 노래가 많습니다. 고 김정호의 빼어난 명곡들, 서정성이 짙은 해바라기의 노래들, 강산에, 김수철, 그리고 7080시대를 풍미했던 히식스, 키 브라더스, 사랑과 평화 등등 그룹사운드들의 노래들도 앞으로 살펴볼 예정입니다. △ 김동률 서강대 기술경영대학원 교수 경향신문 견습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하여 10년간 취재기자로 활동했다. 현재 YTN에서 와이드 인터뷰 프로그램 을 진행하고 있다.
- 2015-08-11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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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복 70년] 광복 70년을 빛낸 가수와 노래들 - 임진모 음악평론가
- 광복 70년의 역사에서 대중음악은 어떤 분야보다도 일반 대중의 정서와 우리 사회의 흐름을 지속적으로 포착하고 반영하면서 문화의 선두에 서왔다. 한국 사회의 발전상을 축약하면서 우리의 여러 세대와 계층이 알고 기억하는 가장 많은 스타들을 내놓은 곳이 대중가요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글 임진모 음악평론가 광복과 함께 대중음악은 산업적 덩치를 키운 것은 물론 서구의 문화를 창조적으로 수용한 갖가지 스타일을 만들어내면서 예술적 성장과 성숙을 거듭했다. 대중음악은 광복 이후 70년의 역사 속에서 찬란히 꽃을 피운 것이다. 광복 이전에도 대중이 사랑한 음악은 있었다. 이난영, 남인수, 현인, 고복수 등 일제 강점기에 활약한 가수들은 애초 세련된 음악이었으나 갈수록 서민대중의 호흡과 동행한 음악으로 남은 것은 이후 성인가요로 불린 트로트였다. 조금은 저학력과 가난 혹은 단순한 재미로 연결되는 음악이지만 트로트는 꾸준하게 서민대중의 희로애락을 반영하면서 지금도 명맥을 잇고 있다. 광복 이후에 트로트는 ‘엘리지의 여왕’ 이미자가 출현하면서 다시금 힘찬 날갯짓을 했다. 1964년 발표한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는 역사상 최초로 100만장에 준하는 가공할 판매고를 수립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미자는 특히 1960-70년대 경제성장의 뒤안길에서 한과 설움을 삼킨 여인들을 대변한 비가(悲歌)를 많이 부르면서 한국 최고의 여가수, 세기의 가수라는 명예를 지키고 있다. 이미자와 남진 나훈아 라이벌전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반 우리 대중문화 사상 가장 치열한 라이벌전을 전개한 남진과 나훈아는 이미자를 잇는 트로트의 별이었다. 전국을 삼킨 두 가수의 인기대결은 국민 전체가 둘로 나뉘어 설전을 벌일 만큼 살벌했다. ‘님과 함께’를 비롯한 조금은 밝은 톤의 노래를 한 남진이 경제성장 시기의 빛이었다면 ‘물레방아 도는데’와 같은 구슬픈 노래로 이농(離農)의 고통을 표현한 나훈아는 경제성장 시기의 그림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평단은 그러나 남진과 나훈아가 겨뤘던 때를 트로트의 마지막 전성기로 규정한다. 그때까지 어떤 장르들보다도 드높은 위용을 자랑했으나 이후에는 시장의 헤게모니를 다른 스타일에 넘겨주게 됐다는 것이다. 1970년대의 하춘화, 1980년대 주현미와 현철, 1990년대 태진아와 송대관, 그리고 2000년대 ‘어머나’의 장윤정으로 트로트계보는 쉼 없이 이어졌지만 위력은 갈수록 떨어졌다. 1960년대 중반까지 독점적 위력을 행사한 트로트는 광복 후 전국에 미군이 주둔하고 미국을 위시한 서구의 문화가 물밀듯 유입되면서 불가피하게 외국의 영향을 받은 음악들과 경쟁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용산 동두천 부평 대구 등 이른바 미8군 지역의 영내와 영외에는 우리 음악가들의 미군을 위한 공연활동이 러시를 이뤘고 이후 그들은 국내 무대에 진출해 한국 대중음악의 판도를 송두리째 바꿨다. 트로트 일색이었던 음악계에 그들이 들여놓은 음악은 미국의 재즈와 팝에 기초한 소위 ‘스탠더드 팝’이란 것이었다. 아직도 용어가 불분명한 이 스타일의 음악은 1961년 5·16 군사정변이 터진 해에 히트한 한명숙의 ‘노란 샤쓰의 사나이’를 시작으로 현미, 김상국, 최희준, 위키리, 패티김, 정훈희 등의 스타를 배출했다. 발라드를 잘 소화한 스탠더드 팝가수들은 미8군 출신답게 팝송도 자주 불렀으며 노래에 영어를 자주 썼다. 이 가운데 ‘하숙생’의 최희준과 ‘서울의 찬가’의 패티김이 특급스타였다. 서구음악인 스탠더드 팝은 기조와 성격에 있어서 트로트와 대치되는 음악이었지만 국내 방송의 ‘10대 가수가요제’와 같은 프로그램에 의해 트로트와 병치되면서 같은 ‘어덜트(adult) 음악’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베이비붐 세대 이전의 전쟁세대라고 할 1930-40년대 생 인구의 음악에 머무르고 말았다고 할까. ‘록’ 신중현과 ‘포크’ 김민기 미8군을 통해 국내 소개된 음악 중 1950년대 생 이후의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는 청춘의 뜨거운 피를 담은 로큰롤, 즉 록으로(그때 말로는 ‘그룹사운드’) 궁합을 맞췄다.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반에는 청춘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키보이스’를 위시한 그룹사운드가 판을 쳤다. 하지만 역사는 국내 최초의 록밴드 ‘애드포’를 결성한 신중현을 ‘한국 록의 대부’로, ‘한국 대중음악의 총설계자’로 상찬하며 고평을 집중한다. 블루스와 싸이키델릭 등 서구의 음악문법을 창조적으로 가공해 우리식 록의 프레임을 주조해냈다는 역사적 평가는 지금도 유효하다. 스스로 ‘아름다운 강산’, ‘미인’과 같은 명곡을 부른 가수인 한편 펄시스터즈, 김추자, 장현, 박인수, 김정미 등에게 ‘커피 한 잔’, ‘임은 먼 곳에’, ‘미련’, ‘봄비’, ‘봄’ 등 요즘 기준에서도 빼어난 수준의 음악을 잇달아 써준 프로듀서이기도 했다. 그의 도움을 받은 스타가수들을 언론은 ‘신중현사단’으로 일컬었다. 하지만 1975년 유신시대의 대마초와 금지곡 파동에 활동이 급정지된 그와 함께 한국의 록은 침체기로 접어든다. 록만이 아니라 베이비붐 세대의 또 다른 사운드트랙인 포크도 독재통치의 철퇴를 맞는다. ‘청통맥’ 즉 청바지, 통기타, 생맥주로 표현된 베이비붐 세대들의 꿈과 도약, 아픔과 좌절을 창의적으로 그려낸 많은 포크송 가수들이 활동금지를 당하거나 은둔의 처지에 몰렸다. 김민기, 한대수, 송창식, 윤형주, 양희은, 서유석, 이장희, 김정호 등이 한국 포크의 기수들이었다. 이들 음악은 전쟁세대보다 상대적으로 학력이 높은 베이비붐 세대의 대학생들에게 어필했다. 포크 가수들은 대부분 자기들이 곡을 만들어 통기타와 하모니카로 연주하고 노래하며 이전의 악단과 전문 작곡가가 지배한 풍토에서 탈피, 소위 싱어송라이터(Singer-songwriter) 시대를 개척했다. 대부분 자기가 쓴 곡을 담은 LP를 최초로 출반한 김민기에 자극받아 동시대의 많은 가수들이 자작곡을 내놓은 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김민기는 록의 신중현과 같은 인물이다. ‘아침이슬’ ‘백구’ 등 그가 작곡해준 곡을 불러 유명해진 양희은은 김민기의 페르소나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음악의 자가발전을 이뤘다는 점에서 포크를 ‘한국 음악민주주의의 시작’으로 정의하는 관계자들이 많다. 하지만 포크는 베이비붐 세대의 정서라 할 청춘스피릿이 당시 군사정부와 충돌하면서 대마초 파동이라는 암흑기를 초래했다. 한국 대중음악의 네 범주 가운데 어덜트 음악인 트로트와 스탠더드 팝이 1980년대에 들어 정체상태를 맞은 반면 시련을 맞은 영(Young) 음악인 록은 1977년 대학가요제와 밴드 ‘산울림’의 등장으로 힘차게 재도약한다. 참신하고 재기에 넘치는 가사와 실험적인 곡 전개를 특징으로 한 산울림은 흑인음악인 펑크(funk)를 실험한 ‘사랑과 평화’와 함께 록의 기운을 되살렸다. 포크는 1970년대 중·후반 이정선, 조동진, 정태춘을 거친 뒤 시대를 고발하는 민중가요를 낳았고, 1990년대에는 김광석이 활약했지만 장르의 파괴력은 2000년대 들어서 현저히 후퇴했다. ‘가왕’ 조용필, ‘10대 대통령’ 서태지 1980년대의 특급 스타들인 조용필, 윤수일, 김수철, 구창모 등은 대부분 록의 세례를 받은 가수들이었고 실제로 상당수가 밴드를 거느리며 대중적 록의 위용을 뽐냈다. 밴드 송골매와 벗님들은 TV에서도 맹활약했다. 하지만 1980년대는 훗날 ‘가왕’으로 통한 조용필의 것이었다. 그는 ‘단발머리’, ‘못 찾겠다 꾀꼬리’ 등 발랄한 록으로 10대 오빠부대를 이끄는 동시에 ‘허공’ 등 트로트 성향의 노래도 불러 다세대를 망라한 국민가수의 면모를 과시했다. 또한 앨범마다 혁신을 불어넣어 단일 곡이 아닌 앨범 전체의 미학과 음악적 완성도가 중요해진 흐름을 견인했다. 아마도 베이비붐 세대와 1960년대 중반 생 이후의 포스트 베이비붐을 함께 묶는 유일한 가수가 조용필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가 활약하던 1980년대는 가요계의 규모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던 때라서 이전 음악계에는 없던 갖가지 장르의 음악이 용암이 분출하듯 솟아올랐다. 김현식, 한영애, 들국화와 같은 언더그라운드 음악을 젊은이들이 찾았고 ‘봄여름가을겨울’과 김현철은 재즈를 실험했으며 ‘신촌블루스’처럼 블루스를 시도한 음악가도 나왔다. 이문세에 곡을 준 이영훈과 비운의 천재 유재하는 뽕짝 즉 트로트 느낌을 완전 배제한 팝 발라드의 꽃을 피웠다. 이 음악과 함께 고학력 여성들도 시장의 소비자로 참여하게 됐지만 음악의 주도권은 하이틴으로 넘어가 나미, 김완선, 소방차 등 10대가 좋아하는 댄스음악이 각광을 받았다. 중심이 ‘10대’와 ‘댄스음악’이라는 트렌드를 정확히 간파해 시대를 가른 인물은 1992년 광풍을 야기한 ‘난 알아요’의 서태지와 아이들이었다. 글로벌 시장에서 점프한 케이팝 새로운 음악인 랩을 가요에 접목한 서태지는 신세대인 X세대의 공격성을 노골화한 음악을 구사해 10대대통령 또는 문화대통령으로 불렸다. 그가 랩을 끌어들이고 잠시 후 김건모가 ‘레게’를 유행시키고 듀엣 ‘듀스’가 ‘힙합’을 퍼뜨리면서 1990년대 국내음악 판은 과거에는 홀대된 흑인음악으로 쏠려갔다. 한 사회학자는 “요즘 젊은이들이 흑인음악에 열광하는 것은 백인음악에 압도적으로 경도된 기성세대에 대한 은근한 반란”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서태지가 은퇴를 선언한 1996년부터 음악계는 댄스와 비주얼을 내건 대형기획사의 아이돌 가수들이 판세를 장악했다. 동아시아에 한류 붐을 터뜨린 ‘에쵸티’(H.O.T.)를 시작으로 2세대라고 할 ‘동방신기’, ‘빅뱅’,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투애니원’ 등 아이돌 댄스음악은 20년 가까이 된 지금도 대세를 몰이하며 장수하고 있다. ‘애들 음악은 5년을 못 간다!’는 속설을 깼을 뿐 아니라 ‘텔 미’의 걸 그룹 원더걸스가 등장한 2007년부터는 케이팝(K-Pop)이라는 타이틀을 획득했다. 글로벌 시장으로 뻗어간 우리의 아이돌음악은 세계에 ‘다이내믹 코리아’의 문화이미지를 심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상업적인 아이돌 댄스의 주류음악에 반발해 독립을 외친 인디음악이 소생하기도 했다. 크라잉 넛의 ‘말달리자’는 IMF 시절 넥타이부대의 찬가로 등장, 인디의 가능성을 알렸다.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요원했던 빌보드 차트에서 5주간 2위를 차지, 케이팝의 지평을 크게 올려놓았다. “케이팝 때문에 한국을 알았다”는 세계인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각 세대와 계층의 정서를 담아내면서 대중의식을 이끌어온 대중음악이 광복 70년 역사의 내공을 발휘하며 이제 내수시장이 아닌 지구촌 곳곳에서 찬란한 성공스토리를 써내고 있는 것이다. 이제 케이팝이란 깃발 아래 우리 역사의 사운드트랙은 시제를 미래로 맞추고 있다. △ 임진모 음악 평론가 고려대 사회학과 졸업 후 경향신문과 내외경제신문기자를 거쳐 1991년부터 음악평론. 라디오 출연 등 전파. 인쇄매체에서 폭넓게 활동중이다.
- 2015-08-07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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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스마트]그때 그시절 감성 멜로디… 400만 손끝으로 응답했다
- ‘지지직….’ LP판에 바늘을 올리자 귀에 익은 잡음과 함께 가수 이문세의 ‘가로수 그늘 아래’가 흘러나온다. LP가 돌아가며 음악을 뿜어내니 그 날의 추억이 생생하게 피어난다. LP판이 돌아가는 것을 바라보며 신기함을 느꼈고 음악으로 감성을 채웠던 그 시절. 모바일 리듬 게임 ‘행복한 피아니스트’는 이러한 추억을 담고자 했다. 그래서 일까. 화려한 3D 그래픽을 구현해 유저들의 시각을 자극하는 요즘 게임과 달리 LP만 덩그러니 놓여져 투박한 느낌마저 든다. 리듬 게임은 음악에 맞춰 위에서 내려오는 노트를 정확한 타이밍에 지정된 위치에 터치하는 방식으로 LP판을 문지르는 듯한 느낌의 사용자 경험(UX)을 구현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행복한 피아니스트 개발사인 아이즈 소프트는 기술력과 트렌드를 담아 세련된 LP 사용자 환경(UI)을 구현했다. 자신이 아는 노래를 기다리는 설렘을 모바일에 담아내고자 심혈을 기울였고, 사용자들은 다운로드수로 부응했다. 두뇌 싸움도, 치열한 공성전도 아닌 지친 심신을 음악으로 달랠 수 있는 힐링게임 행복한 피아니스트를 개발한 아이즈 소프트 임종관 대표를 만났다. ◇음악 게임의 대중화 앞서다= 리듬 게임은 마니아층이 한정돼 출시된 후 단기간에 호불호가 갈린다. 임 대표는 “행복한 피아니스트는 음악 게임의 대중화를 위해 제작됐다”며 “기존에 주로 마니아들 위주로 인기를 얻었던 이 장르를 좀 더 다양한 유저들이 즐길 수 있도록 눈 높이를 맞췄다”고 강조했다. 임 대표가 굳이 피아노를 선택한 이유는 누구나 한 번쯤 배워보고 싶어 했을 법 한 향수가 배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피아노를 전혀 다루지 못한 사람들에게 대리 만족감을 주고 싶었다”며 “위에서 내려오는 붉은 노트를 가볍게 문지르기만 하면 진짜 피아노를 연주하는 듯 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말 그대로 행복한 피아니스트는 일반인들이 쉽게 즐길 수 있다. 경쟁사의 음악 게임이 노트를 맞추지 못하면 끝나는 것과 달리 틀리더라도 한 곡을 완전히 연주(클리어)할 수 있게 했다. 임 대표는 “행복한 피아니스트는 사용자의 귀를 즐겁게 하는 게 목적이지만 능숙한 유저들의 재미를 더하기 위해 별 4.5~5개 난도의 곡도 꾸준히 업데이트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400만 다운로드… 넓은 유저층이 강점= 임 대표는 행복한 피아니스트의 출시도 감성이 풍부한 ‘크리스마트 이브’에 맞췄다. 이 후 22일 만에 400만 다운로드를 기록,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임 대표는 “국민 게임 기준인 1000만 다운로드 달성 전략을 따로 세운 것은 아니지만 유저들이 리듬 게임의 매력을 느끼고,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하며 힐링할 수 있도록 꾸준히 업데이트 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행복한 피아니스트에서 제공하는 노래가 8090 세대를 겨냥했지만 유저층은 10~40대에서 25%씩 고른 분포를 보이고 있다. 최근 다양한 TV 오디션 프로그램과 드라마에서 ‘복고’가 유행을 타자 10대들도 그 시절의 명곡에 익숙한 덕분이다. 임 대표는 “특정 연령대를 공략하기 보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가요를 중심으로 선택했다”며 “초반에 수록한 가요들을 의외로 다양한 연령층에서 알고 있었고, 노래에 대한 거부감도 없었다”고 전했다. 이어 “빠른 업데이트로 최신곡을 담아낸 것이 주효한 것 같다”고 말했다. ◇가사 삽입도 ‘신의 한 수’= 특히 행복한 피아니스트는 다른 게임과 달리 연주가 시작되면 화면에 가사가 보인다. 귀로 멜로디를 들으며 연주하면 ‘매직아이’처럼 가사가 눈에 쏙 들어온다. 가사의 감성이 또렷하게 전달되는 느낌이다. 임 대표는 “처음엔 망설였지만 퍼블리셔인 넷마블과 숙의해 가사를 넣어봤는데, 주변에서 ‘신의 한수’라고 평가했다”면서 “가사 덕분에 감성 게임이라는 수식어가 완성된 느낌”이라고 의미를 뒀다. 이어 그는 “아이들에게도 부담 없이 권할 수 잇고 가족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어 좋다는 말을 들었을 때 보람을 느낀다”며 “남녀노소 누구나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에 맞게 명곡들을 흥얼거릴 수 있는 대한민국 대표 리듬 게임으로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편, 행복한 피아니스트는 터치 정밀도 부분과 고레벨을 위한 업데이트를 계획 중이다. 임 대표는 “이 게임은 배경음이 재생되면서 피아노 소리를 동시에 재생하는 원리이기 때문에 단말기 사양에 따라 차이가 많다”며 “현재 저사양 단말기를 위한 최적화와 고레벨을 위한 고난도의 곡들에 대한 추가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2014-02-03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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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이문세' 12만 관객 동원… 2013년 콘서트 최고 히트작
- '대한민국 이문세'가 12만 관객을 동원하며 올해 최고 콘서트 히트작으로 2013년 대장정을 마감했다. 지난 6월 1일 '대한민국 이문세'라는 타이틀로 전국 투어에 돌입한 이문세는 서울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5만석을 매진시킨 이후 총 14개 도시 순회 콘서트를 전석 매진시켰다. 지난 28일 오후 7시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2013년 마지막 콘서트에서 이문세는 "12만 관객이 찾아 준 '대한민국 이문세'는 2013년 대단원의 막을 대구에서 내리게 돼 영광이다"면서 " 2014년 5월까지 1년간 '대한민국 이문세'는 계속된다"고 밝혀 팬들의 기대 모았다. 이문세는 애국가를 지휘하며 무대에 등장한 이후 20여 곡에 이르는 자신의 히트곡으로 대구시민들의 가슴을 녹였다. 히트곡 '붉은노을'을 비롯해 '소녀' '난 아직 모르잖아요' '사랑이 지나가면' '빗속에서' '옛사랑' '광화문연가' '이별 이야기'등 공연 레퍼토리 전곡이 히트곡으로 점철된 콘서트였다. 150분간 펼쳐진 공연에서 이문세는 지칠 줄 모르는 무대 매너로 대구팬들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관객들은 이문세의 주옥같은 레파토리에 젖어 지나간 세월을 반추하는 모습이 연출됐다. '대한민국 이문세'는 서울에 이어 강릉 투어 공연을 시작으로 인천, 창원, 전주, 대전, 수원, 울산, 의정부, 안동, 광주, 부산, 고양, 대구까지 전국 주요 14개 도시에서 매진을 기록하면서 브랜드 공연으로 자리매김했다. '대한민국 이문세'를 총 연출한 이종일 감독은 "이문세가 지난 6월 1일 잠실 올림픽 주 경기장에서 5만 관객 매진시키면서 부동의 티켓파워를 과시했고 전국 주요 도시에서도 모두 매진을 기록한 만큼 이문세의 위상은 공연계에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있다"면서 "지난 17년간 공연계에서 머스트 아이템으로 평가받고 있는 이문세의 콘서트는 지칠 줄 모르고 진화했다"고 평가했다. '대한민국 이문세'는 지방 기획사의 요청에 의해 추가 연장 공연에 돌입한다. 2014년 상반기 까지 포항, 부천, 제주, 안양, 경산, 원주 등 10여개 도시에서 열릴 예정이다. 한편, '2014 대한민국 이문세'는 지난 27일 오후 2시 포항, 부천 티켓 오픈을 시작으로 전국 10여개 도시에서 1년간의 대장정에 돌입할 예정이다.
- 2013-12-31 15:39